2019. 9. 21.

(故)고바우 영감

첫 연재가 언제 어디부터였는지 매체마다 주장이 조금씩 엇갈리긴 하지만 이 고바우 영감이 대한민국의 최장 시사만화라는 데에는 아무 이견이 없다. 무려 1만 4139회에 걸치는 그의 만평은 한국의 살아있는 근대사 그 자체였고 민주화의 역사가 그랬듯이 고바우 영감 역시 수많은 풍파를  겪어야 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단연코 경무대 똥통사건일 것이다. 경무대는 청와대의 전신으로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채, 조선이나 일제 총독부의 신민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에게 경무대는 뭐 경복궁이나 다름없지 않았겠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부터가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였는데. 그리고 1957년 그 권력구조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 터진다.

슬하에 자녀가 없던 이승만은 부통령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한다. 친부는 부통령이요, 양부는 대통령이니 그에게 두려울 것이 무어가 있으랴. 그는 경찰서의 헌병을 폭행하기도 하고 아무런 자격 없이 서울대 법대에 편입하려 드는 등,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던 중 그를 닮은 한 빈손의 백수 청년이 이강석을 사칭하며 경주에 나타나 온갖 접대와 향응, 그리고 금품까지 받고 다니다 적발되어 검거된 것이다. 본디 해프닝으로 끝날 사건이었지만, 아무런 공식직함도 없이 단지 대통령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온갖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자 민심은 흉흉해진다.

경무대의 권위를 팔고 다닌게 과연 대통령 아들 하나 뿐일까. 그리고 거기에 상처받고 다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지금에도 그럴진대 그 시절엔 훨씬 더했을것이다. 그러자 고 김성환 화백은 자신의 만평에서 똥을 치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경무대에 출입하는 사람은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는 촌철살인을 날리다 연행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수도 없이 이런 저런 만평들을 통해 시민을 대신하여 권력자들에게 독설을 날렸다. 서슬 퍼런 박정희때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던 신군부 시절까지도. 대머리였던 전두환을 문어에 비유하기도 했으니 그는 무척이나 고달프게 살아왔을것이다. 그 당시 정권의 탄압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벌금으로 도대체 얼마를 냈는지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웃었다고 하니 기개는 물론이고 꽤나 유쾌하기까지 한 화백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랬던 그가 지난 9월 8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생전 최초로 등록문화재(제538호)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 현대언론사에서 그의 공을 기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대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함께 역사가 되어버린 고 고바우 영감을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9월 10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고바우 영감, 하늘의 별이 되다’ '김성환 화백 회고전'을 개최한다. 위에 올린 경무대 똥통 외에도 "아니 이사람 어떻게 살아남은거야?" 싶은 촌평들이 많으니 한번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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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가 청와대가 되고, 20세기가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두마리 봉황이 가지는 힘은 막강하다. 민주화의 두 영웅,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도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막후에서 실세로 활동하며 돈을 받다 구속되었고 노무현과 이명박은 그들의 아들대신 형들이 돌아다니며 뇌물을 챙겨 먹다 유죄선고를 받았다. 심지어 박근혜는 가족이 없자 친구를 불러 비선실세를 맡겼다가 탄핵되지 않았나.

그리고 이제 우리는 현 정부의 실세들도 그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이 제작한 허접한 제품 수백억 원어치를, 심지어 수의계약으로 사줬지 않은가. 인터넷에 올라온 그 코딩교재는 왠만한 학교의 전기과 2,3학년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인데 아무나 저런 허접한 물건을 국가에 수백억 납입할 수 있다면 나부터 회사를 때려치겠다. 게다가 한투증권 PB는 민정수석의 아내가 부탁하자 별 실적도 없는데도 그녀의 집에 들락날락거리며 하드를 교체해주고 심지어 경상북도 영주까지 따라갔다. 먼저 PB는 그런걸 해주는 사람도 아니고, 저걸 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다. 나와 부모님, 그리고 친척들도 PB를 이용하는데, 조국이 부동산을 뺀 전재산을 저 PB에게 맡겨도 매니저가 영주까지 따라가주지 않는다. 결국 우린 경무대의 똥을 치워도 엣헴엣헴 거리고 다니던 1957년보다 그닥 나아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언론들은 사안을 대할때 옳고 그름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좌파와 우파로 나뉜다. 그들의 시시비비는 정의가 아닌 진영으로 갈린다. 만약 고 김성환 화백이 자유당 정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오늘의 권력형 비리를 보면, 또 진영논리로 이를 감싸는 자칭 "시사만화가"들의 모습을 본다면 과연 고바우 영감은 뭐라고 했을까? 그 빈자리를 무척이나 안타까워하고 서글퍼하는 것이 나 하나는 아니니라.





조국의 권력비리를 대하는 한 시사만화가의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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