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8.

창용상회 사장의 철없는 푸념

한 전통시장이 있다. 이름하여 대한시장. 한때는 크게 번창하기도 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이제는 시설도 낡았고 가게들도 트렌드에 뒤떨어져서 점차 활력을 잃어가는, 뭐 그저 그런 여느 전통시장 중 하나인 곳이다. 이 전통시장에 새로운 가게를 내려면 먼저 상인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컨셉의 가게가 시장 분위기에 어울리는지, 요 상품들이 여 대한시장에서 팔리는게 적절한지 일일이 검사를 받고 허가를 받아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아따 그거시 우리 대한상회의 전통이랑께? 죠오기 도심에서 잘 나간다는 유명 프랜차이점도, TV에도 나왔던 유명 쉐프들이나 인플루언서들도 한 번씩은 대한시장의 명성을 듣고 가게를 내려고 했지만 상인회의 까다로운 허가를 받지 못해 계획을 접어야 했다. 거 뭐라카노, 로마 오면 로마법 따르라 카더라.

게다가 대한시장에는 아름다운 전통도 내려온다. 잘 팔리는 가게들이 파리 날리는 가게들의 관리비와 월세를 모두 대신 내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낮에 반짝 열고 잠깐 앉아있다 집에 가는 베짱이 가게들이 늘어하긴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혼자 잘 되는 게 어딨어유, 다 같이 먹고 사는 게 중요하쥬. 그들의 월세까지 버느라 잘 되는 가게의 사장들은 더더욱 열심히 일하느라 골병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저찌 대한시장은 안 망하고 잘 돌아가고 있다. 아니,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이 모든게 상인회가 상가들을 잘 지도편달하고 관리한 덕 아니겠는가. 그 보답으로 각 상인회들은 회비를 걷어다가 상인회에 갖다 바친다. 상인회의 임직원들을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하고, 여름휴가도 보내주고 경조사도 챙기고 장사 말고도 할 것이 참 많다. 아 이게 다 우리 시장 잘 되라고 애쓰는 분들 아니던가요잉.

그렇게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대한시장의 요새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쩐지 옛날보다 빈 가게도 많이 보이고 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매출도 줄었다. 경기가 어려워 그렇겠지, 해보지만 시내 백화점과 쇼핑몰은 불황이 없단 말도 들린다. 상인들끼리도 뭔가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저기 골목에 있던 이가네 있쥬? 여기 월세가 비싸다구 시내로 나가부렀다유." "아랫목에서 가게 크게 하던 김 씨는, 여기서는 장사해먹기 힘들다꼬 문 닫아부렀다 카더라." 이대로는 안된다. 상인회는 팔을 걷어부쳤다. 그래그래,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해서 신토불이 말구 요새 아들이 좋아하는 깔쌈한 카페도 허가하고! 주차장도 늘리고! 대청소도 하자카이! 다시금 대한상회의 부흥을 꿈꾸며 대대적 캠페인을 일으킨다. 자자 거 김씨. 내가 다 해결해줄라니께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루만 허랑게?” 하지만 나훈아 메들리로 가득 찬 CD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빛바랜 새마을운동 모자를 쓰고 갑질하는 상인회가 이 재래시장을 뒤바꿀 수 있을 리 없다. 상인회장은 계속 화만 낸다. "아니 시방 우리는 런던 베이글인가 뭔가 그 거시기를 못 해부는 거여??" 

상품이 거지 같으면 장사가 안 되고 음식이 맛이 없으면 손님이 끊기는 것처럼 경쟁력을 잃어가는 재래시장에도 한파가 찾아온다. 대한상회도 예외는 아니다. 듣자 하니 대한상회 상품권이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의 반값에 팔린다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하. 잘나가던 우리 시장이 어쩌다 이 꼬라지가 됐는지 상인회 간부 중 하나인 창용상회 사장님이 한 말씀하신댄다. 야야 있어봐라, 가가 그래도 서울대까지 나온 우리 동네 최고 천재라 안카나? 연단에 오른 창용상회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거시 그 뭐다냐 요새 아들이 쿨허다구 저기 읍내 쇼핑몰 가브러고 시내 백화점만 들락날락 허니께, 그러니께 우리 시장이 망한 거 아니여??" 상인회 간부들이 옳소를 연발하며 박수를 친다. 환호하는 사람들 앞에 기분이 한껏 들뜬 창용상회 사장의 핸드폰에는 그 집 아들들이 시내의 백화점에서 긁어 대는 신용카드의 결제 문자들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한국의 관치금융과 자본제도가 후져서가 아니라 외국시장이 쿨해보여서 환율이 오른다는 쿨병 창용상회 사장


2025. 12. 7.

진보는 갑자기 왜 토착왜구가 되었나

지난 며칠간 소년범 출신 배우를 옹호하는 진보 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그들의 논리가 일본 극우의 사고 구조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극우들은 과거 전범행위들이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모두 처벌받았으니, 해당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미 여러 차례의 사과와 보상으로 과거사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으니, 그 시대의 범법자들이 아닌 현대의 일본인들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과거사를 되묻는 이들을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피해자들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부로 격하되어 어느덧 삭제된다. 

신기한 것은 그런 관점을 그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비난하던 진보진영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일본 극우들의 관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에서 대상을 일제로 바꾸어 보자. "과거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나라가 국제연합의 주요 국가로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 아닌가.", "한번 전쟁범죄를 일으킨 나라는 영원히 전범국가로 살아야 하나", "이미 과거사 배상과 처벌은 다 끝났는데 이를 계속 언급하는 의도가 뭔가" 욱일기를 머리에 두르고 혐한 시위에 나선 일본의 극우들이 박수 치고 환호할 논리가 펼쳐진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진보가 이와 같은 극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룬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쟤, 우리 편이잖아. 초딩같은 진영논리에 따라 하루는 말이 사슴이 되고 다음 날은 사슴이 말이 되는 고무줄 논리를 펴면서도 도덕적 선민의식이 그윽한 그들의 태도란 참으로 보기 흉하다. 자신의 위선과 가식을 온갖 현학적 용어와 유려한 문체로 치장하는 것은 구차하고 추하게 보일 뿐이다. 보수 역시 진영논리에 따라 같은 편이면 계엄도 옹호하는 머저리들인데도 불구하고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유독 진보를 상징하게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하다못해 이제는 자신들이 극렬하게 비난하던 일본 극우들의 뇌구조까지 빌려와서 침튀기며 아군 지원사격에 나선 영포티들과 쉰세대들의 태도가 괴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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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예인들에게 정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대중사회의 정서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술계가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가슴이 차갑고 뇌가 뜨거우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많은 작가나 배우, 감독 화가들 중에서는 훨씬 더 큰 결함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폭행, 마약, 도박, 더 나아가 싸이코패스나 살인자, 사디스트, 아동 성착취, 인종차별주의자, 여성 혐오, 파시스트 등 개인적으로 상종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창작물이 모두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이 배우 또한 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그가 영영 은퇴하는 대신 이제 정의의 용사 코스프레를 그만두고 과거의 피해자들에게 뉘우친 뒤에 계속해서 활동하며 소년범들을 갱생하는데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길이라고 믿는다. 나는 진심으로 미래에 그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보다 더 사소한 잘못으로 커리어가 박살 난 수많은 연예인들도 함께.

하지만 자기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아주 티끝만 한 잘못에도 린치를 가하고 축출하고 선거날 특정 색이 들어간 옷만 입어도 우르르 달려가 멍석말이를 할 때는 같이 낄낄거리며 웃던 인간들이 이번엔 자기편이랍시고 갑자기 정색하며 차가운 이성을 되찾는 진보 인사들의 모습이 참 싫다. 그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만들었는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라. 예술계에는 박근혜의 블랙리스트만이 있던 것이 아니다. 진보 홍위병들의 린치는 그보다 더 폭력적이었고 현재진행형이다. 언제는 피해자 중심적 사고를 하라더니, 어라? 이번엔 우리 편이다 사격중지를 외치며 어느새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슬그머니 빼버리는 그 이중잣대가 싫다. 그런 주제에 틈만 나면 남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그들의 선민의식과 위선이 진심으로 싫을 뿐이다. 으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논리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보편타당하다 믿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너 혹시 토착왜구니?

2025. 12. 6.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V) - 인플레이션, 그리고 1965년 12월 5일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I) (링크)


반세기 전, FOMC를 앞두고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가 동료들을 설득해 금리 인상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며칠 뒤인 1965년 12월 5일, 대통령 린든 존슨으로부터 서늘한 초대장이 날아왔다. 존슨은 마틴을 자신의 텍사스 목장으로 불러 처음에는 환대와 미소로 맞이했지만, 목장 내 저택의 깊숙한 곳에 이르자 그의 태도는 돌변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존슨은 마틴을 벽에 몰아붙이며 격렬하게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는 “내 병사들이 베트남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은 내가 필요한 돈을 찍어주지 않는다”라고 얼굴 바로 앞에 대고 외쳤다. 마틴이 간간이 중앙은행의 책무를 상기시키려 했지만, 이는 오히려 존슨의 분노를 더 키웠다. 존슨은 욕설을 섞어가며 마틴을 인격적으로 몰아붙였고, 그의 격앙된 고함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키가 190cm가 넘는 대통령이 왜소한 연준 의장을 벽에 밀어붙이며 위협하던 장면은 당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얼마나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해 연준은 이미 결정한 대로 금리 인상을 발표했지만 다음 해부터 통화정책은 눈에 띄게 완화 기조로 돌아섰고 1967년 5월에는 50bp 인하와 함께 기준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 인플레이션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후임 의장이었던 아서 번즈가 진정한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들은 1970년대의 실패가 이미 마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마틴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영예로워야 할 은퇴 만찬에서 이 노쇠한 중앙은행가는 잠시 침묵을 머금은 뒤 “I've failed”이라는 문장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했으니. 

후임자 아서 번즈는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전미경제연구소를 거친 그는 자타공인 경제 전문가였으며, 과거 선거에서 닉슨의 패배가 지나치게 긴축적인 통화정책 때문이었다고 대통령에게 직언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금리 인하를 바랐던 닉슨이 연준 의장 자리에 앉힌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운전대를 잡은 이 신참 중앙은행장은 자신의 책상에 놓은 여러 경제지표를 보자 지금은 금리인하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행정부는 그가 소신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이 샌님 경제학자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철학을 이러쿵 저러쿵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재무장관과 백악관의 보좌관들은 아주 집요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아서 번즈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했고 결국 연준은 이에 굴해 금리를 크게 내렸다. 그 결과 과열된 경제는 더욱 달아올랐고,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것은 폭발적으로 불어난 통화량과 거센 인플레이션의 파고였다. 그 선택이 어떤 시대를 열어젖혔는지는 오늘의 역사적 평가가 분명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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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옆에 선 연준의장 파월, 그리고 린든 존슨과 악수하는 연준의장 마틴  


1970년대의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여러 전쟁 같은 인상적인 사건들에 가려 마치 피할 수 없었던 우발적 비극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은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정치적 압력에 오염된 통화정책이 폭발적인 통화 팽창을 불러왔고, 파괴적 인플레이션은 그 필연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현재를 돌아보자. 지금 백악관과 연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면은 기이한 데자뷔를 일으키고 있다. 존슨이 마틴을 직접 텍사스 목장으로 호출한 사건과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파월을 공격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위협적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당시와 지금 사이의 닮은 점이 대통령의 190cm 장신 하나가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례마다 차이는 있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을 받을 때 이후의 인플레이션이 뚜렷하게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50년 전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한 이유는 독립적 통화정책의 원칙을 몰랐거나 경제학적 식견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틴은 전후 19년에 걸쳐 연준의 독립성을 체계화한 최장수 의장이었고, 번즈는 연준 역사상 최초의 경제학 박사 출신 의장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처절한 실패를 겪었다는 사실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결정적 변수는 중앙은행의 모델이나 경제학 박사들보다 백악관과 의회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는 또한 어느 한쪽 진영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의 연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민주당 역시 지난 집권기에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유력 대선 후보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마치 당적이 달랐던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이 똑같이 연준을 몰아붙였던 것처럼. 따라서 어느 쪽이 집권하든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고 선거를 앞둔 갈등이 극단적으로 고조된 오늘날 연준이 오롯이 중립적 데이터만을 근거로 금리를 조절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잠시 언급하지 않았나. 정치로 오염된 통화정책 뒤에 인플레이션이 따라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1970년대의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이 탄생한 1965년 12월 5일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현재 우리가 마주한 장면들은 반세기 전의 모습들과 데자뷔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맞이할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결국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다. 아, 이미 헤겔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2025. 10. 4.

미 통화스왑과 기재부의 오래된 그짓말

1998년 여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당시 월가의 스타였던 존 메리웨더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즈가 손잡고 세운 LTCM이라는 헤지펀드는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은 뒤 극단적인 레버리지를 활용해 최대 1조 달러 규모의 포지션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의 핵심 투자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 국채였다는 것이다. 이미 아시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은 펀드는 러시아 채무 불이행으로 치명적 손실을 보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LTCM의 포지션 규모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공포는 순식간에 미국 금융시장으로 확산되었다. 우량 회사채조차 매수자를 찾지 못해 시장이 얼어붙었고 신용경색의 조짐은 점차 뚜렷해졌다. 연준은 여러 차례 금리를 인하했지만 위기를 잠재우는 데 실패했고, 결국 주요 투자은행들을 불러들여 구제금융 참여를 압박해야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연준은 신흥국 위기가 미국 금융 시스템까지 직접 위협할 수 있음을 절감했고, 이는 주로 국내 통화정책에 집중하던 연준이 EM 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첫 사례가 되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연준은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겼다. 미국 금융기관들의 해외 자산 익스포저가 매우 컸기 때문에, 해외에서 달러 자금 경색이 발생하면 우량 자산의 투매가 이어지고 연쇄적인 충격으로 번질 위험이 높았다. 이에 연준은 ECB와 영란은행 등 주요 기축통화국 중앙은행과 스왑라인을 체결했고, 위기의 후반부에는 한국, 싱가포르, 브라질, 멕시코 등 신흥국 중앙은행과도 스왑라인을 열었다. 연준이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는 목적과 기준은 분명했다. 첫째, 해당 국가에서 외화 자금 경색이 발생하고 있는가. 둘째, 이를 방치할 경우 미국 금융시장까지 신용경색이 확산될 위험이 있는가. 이 프로그램은 미국 내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자, 연준은 기존 상설 스왑라인에 더해 9개 중앙은행과의 한시적 스왑라인을 추가로 개설했으며, 이 역시 미국계 금융기관이 글로벌 우량 자산을 무분별하게 매도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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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 정부는 이러한 통화스왑의 본질적 배경을 외면하고, 의도적으로 국내에 왜곡된 여론을 조성해왔다. 연준의 조치는 한국을 특별히 신뢰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금융 안정을 위한 조치였으며, 글로벌 달러 유동성 경색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외교적 성과로 포장하며 마치 한국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해 쟁취한 승리인 것처럼 홍보했다. 리만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 환율주권론을 내세우던 강만수의 경제팀은 대규모 외환보유액을 이미 소진한 탓에 정작 위기가 현실화하자 대응 여력이 크게 부족했다. 당시 정부는 위기는 크지 않으며 대응 여력은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했지만, 여러 리서치 기관들은 한국의 외환보유고 상당 부분이 모기지 채권이나 파산 위기에 직면한 Fannie Mae·Freddie Mac 채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로 가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훨씬 적다고 지적했다. 그릇된 판단과 대응으로 신뢰를 잃고 파산 위기에 몰린 기획재정부를 구원한 것이 바로 통화스왑이었다. 이후 강만수와 경제팀은 곧바로 태세를 전환해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이것이 마치 FTA와 같은 경제외교적 성과인 양, 통화스왑을 한국 정부의 외교적 성취이자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경제부 기자들 역시 해외 언론들과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정부 프레임을 그대로 확대 재생산하며 국민들에게 국가 위상이 높아졌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주입했다. 이러한 왜곡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도 반복되었다. 연준이 9개국과 일괄적으로 임시 스왑라인을 개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우리의 특별한 노력으로 미국의 지원을 얻어냈다”라는 식의 홍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실제 연준의 기록이나 연준 의장들의 회고록, 혹은 국제 언론 보도에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스왑을 성사시켰다는 내용은 없었으며, 당시 연준은 동일한 조건으로 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와 같은 신흥국들도 함께 스왑을 맺었다. 무엇보다 2008년에도 그리고 2020년에도 한국의 기재부 외 다른 나라 정부들 중 그 어느 나라도 연준과의 스왑라인을 자국의 성과로 포장해 발표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연준과의 스왑라인은 정치/외교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재부는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성취로 포장해 대중을 기만하는 거짓말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성과 포장은 단기적으로는 조직의 위상을 높여주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민과 정치인들에게 통화스왑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심화시켰다. 사실 이 제도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미국 금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 뿐인데, 한국 내부에서는 마치 경제외교적 역량에 따라 성사되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게 된 것이다. 이 왜곡된 인식은 위기 때마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과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환율이 다시 1200원을 돌파하자 기재부는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외환보유액을 투입했지만, 이미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서 무리한 개입을 쏟아부은 탓에 환율 안정에 실패했다. 그러자 기재부는 과거와 똑같은 그짓말을 반복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미 재무부 장관을 만나 “통화스왑을 논의했다”, “긍정적 대화가 있었다”와 같은 별 의미가 없는 문구를 언론 헤드라인에 올리는 데 주력한 것이다. 그러나 통화스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만 있었더라도 한국의 요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을 진행 중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만 달러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것은 애초에 들어줄 수 없는 요청이었다. 더구나 통화스왑은 연준의 권한임에도 이를 미 재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것은 연준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처사로 비칠 위험이 있었다. 하물며 당시 재무부 장관은 전직 연준 의장이던 자넷 옐런이지 않았던가.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던 경제관료들이 얼마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반복하는 한국 정부를 보는 일은 괴로울 만큼 쪽팔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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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재부의 그짓말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이 과거 플라자 합의처럼 달러 약세 정책을 선호할 것이라는 기대가 제기되자, 기재부는 이를 외환보유액을 소진하지 않고도 코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 미국 내부 일부 논의가 있었던 정황은 보인다. 그러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나 백악관 고위 당국자의 환율 관련 발언을 보면, 적어도 5월 이후부터는 미국 정부가 달러 약세를 정책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이 분명하다. 실제로 한국 외 다른 어떤 국가에서도 미국이 통화 절상을 요구한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마치 ‘플라자 합의식 환율 압박’이 존재하는 것처럼 헤드라인을 내며 시장과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 시장은 곧 이러한 언론 플레이가 근거 없는 것임을 간파했지만, 양치기 소년의 행태는 멈추지 않았다. 불과 지난 주말까지도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미국을 방문한 뒤 귀국길에서 “환율 협의를 마쳤다”라는 식의 발언을 내놓으며 어떤 기대를 부추겼지만 곧이어 공개된 합의문에는 의미 있는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기재부가 스스로 “미국 측에서 원화 절상 요구는 없었다”라고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반년간 이어온 언론 플레이가 결국 값싼 기만전술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외환보유고 Flex의 원조 강만수는 한 인터뷰에서 "정부는 환율에 관해서는 거짓말할 권리가 있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세기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거짓말로 국민과 시장을 기만하는 그 그릇된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에는 대가가 따른다. 시장이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정책당국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무능과 부정직함을 반복적으로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또 연준이 함부로 통화스왑라인을 열지 않는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 리만위기 때 연준이 한국에게 열어준 스왑라인이 300억 달러였는데 비해 불과 몇 년 전 정부가 개입을 시작하며 1년 반 만에 팔아버린 금액이 무려 600억 달러에 달했다. 연준이 당시 스왑라인을 열어주었다면 한국은 진작에 그 달러를 모두 끌어다 1200원대에 팔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서도 환율이 훨씬 더 올라왔으니 그들은 스왑이 만기가 되었을때 돌려줄 상황이 아니라며 드러누웠겠지. 그뿐이겠는가, 달러 돌려줄 상황이 아니다, 근데 한도를 좀 늘려주면 안 되냐며 땡깡을 피웠을 것이다. 지금 이미 그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비상금을 평소 군것질하는데 펑펑 써버렸다 비상상황이 닥치자 손 벌리러 오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에게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줄 사람은 없다. 연준은 바보가 아니다.

미국은 관세 협상의 대가로 한국에 터무니없는 금액의 백지수표를 요구했다. 한국은 연준의 스왑라인 없이는 그 금액을 충당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연준의 독립성이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대인 만큼, 이번에는 연준과의 스왑라인 체결 가능성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들은 반드시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무엇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다각적인 고려가 필요하며, 그 결론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촌뜨기들이 국제 금융시장의 룰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바쁜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걸복걸하며, 마치 다섯 살 아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만 되풀이하는 구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재부와 경제 관료들은 과거 주먹구구식 외환정책이 거듭된 실패를 낳았고, 특히 대외환경이 급변할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대량의 외환보유고를 허비하는 실수를 저질러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스왑라인은 한국의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비상시에 작동하는 연준의 금융시장 안정책일 뿐이며,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억지를 부린다고 얻어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과 언론에 솔직히 알려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다. 그들은 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선진국 대우를 받지 못하냐며 묻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온 힘을 다해 후진국스럽게 굴면서 선진국 배지가 갖고 싶다고 온종일 징징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리냐고. 


PBR이 고작 5밖에 안되는 나라를 방문해 아무 의미 없는 사진 한 방 찍고 오신 구윤철 경제부총리

2025. 7. 9.

오징어게임3: 최악의 사이코패스 성기훈

비범한 일을 겪은 사람은 결코 이전의 평범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그가 겪었던 사건이 끔찍하다면 더더욱. 이 잔혹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은 성기훈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지막 게임에서 그의 친구-상우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게임을 포기하겠다는 기훈을 막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그렇게 기훈은 자신의 손으로 단 한 명조차 죽이지 않았음에도 이 잔혹한 데스매치의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깨달았다. 자기 안에서 무엇인가가 분명히 부서졌음을.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는다는 도파민의 끝을 경험한 그의 뇌는 더 이상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었다. 머리를 빨간색으로 물들여 보아도, 456억이라는 돈을 아무리 써도, 아무도 없는 호텔 방에서 소총을 난사해 보아도, 심지어 가까운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그의 뒤틀린 욕구는 도통 만족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광적으로 프런트맨을 찾는 일에 집착했다. 새로 피어난 사이코패스적 욕망을 자각하지 못한 그는, 그것이 오징어게임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포장했다. 하지만 기훈은 형사처럼 섬을 수색하지도, 이 끔찍한 사건을 언론이나 유튜브에 폭로하지도 않았다. 그가 간절하게 찾던 것은 바로 지원자를 모집하던 딱지맨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태 살인마가 되어버린 기훈이 진심으로 원했던 건, 다시 그 게임에 참가하는 것이었으니까.

오징어게임의 세계관에서는 큰돈을 내면 죽음을 구경할 수 있다. 살인 게임을 두고 내기를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오징어게임을 설계하고 플레이했던 오일남조차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다고. 수십 회의 라운드를 거치며 그가 본 모든 극적인 살인과 자극적인 죽음들을 다 합쳐도, 단 한 번의 직접 겪어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455개의 죽음을 직접 경험한 성기훈의 내면은 과연 얼마나 비틀려 있었을까. 그리고 그 너머에는 오일남도, 프런트맨도, 딱지맨조차도 미처 도달하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의 쾌락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넘어, 영혼을 파괴하는 일.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바로 그 믿음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쾌감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쾌감에 눈을 뜬 세계관 최악의 싸패 살인마가 그 두 번째 게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 게임에서 그는 낯선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나를 믿지 않는 이들이 랜덤하게 죽는 일은 아무런 재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자 그는 끔찍한 욕망을 분출한다. 밤에 혈투가 벌어질 것이 뻔하니 먼저 기습하자는 오영일의 제안을 극구 말린다. 그러다 X파가 이겨서 게임이 끝나면 재미없잖아. 또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부터 미궁 같은 게임장의 지리도 모르고 병력도 적고 무기도 탄약도 없던 반란파가 이길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희생자들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무모한 반란을 감행한 건, 한 번 게임을 경험했다는 기훈에게 뭔가 믿을 만한 계획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애초에 기훈의 계획은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한 번에 몰살시키는 것이었으니까.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기훈은 목숨을 걸고 그들의 믿음을 샀던 것 아닌가. 타다다다탕.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이 끔찍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미션 완료.

모든 것이 끝난 그는 의욕을 잃었다. 이제 나를 신뢰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나를 믿고 죽어줄 사람도 없다. 아 재미없다. 나는 고작 돈이나 벌자고 이 게임에 다시 들어온 것이 아닌데. 왜 벌써 끝났지. 힘이 빠진다. 그 와중에 눈치 빠른 대호라는 자식이 내 본심을 꿰뚫어 보았다. 그가 절규한다. "그때 차라리 동그라미 새끼들이랑 싸웠으면 이길 수도 있었어.  싸움도 이기고! 투표도 이기고!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말한 그 말도 안 되는 작전 때문에 다 죽은 거야! 당신이 죽인 거야!" 

아니 어떻게 알았지. 안 그래도 화가 나는데 그를 가만둘 수 없다. 누군가를 죽여야 통과할 수 있던 네 번째 게임에서 그는 다른 타겟들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대호 만을 노린다. 뭐 여기서 이겨서 456억을 더 받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징어게임 전 시즌의 모든 참가자들이 생존을 위해, 또 상금을 늘리기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인을 저지를 동안 기훈은 오로지 살인 그 자체를 움직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탈락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지독한 싸패 살인마였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는 결국 목적을 달성한다.

아 이제 정말 끝이다. 아무 재미가 없다. 오징어게임 밖에서도, 또 안에서도 이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여기까지다. 모든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한 그 앞에 갑자기 새로운 사건이 펼쳐진다. 한 아이가 탄생하고 여러 사람들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한 미친 노파는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제 손으로 친아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아 이거다. 이 미친 싸이코패스의 눈이 다시 희번덕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벌떡 일어나 이 아이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아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를 위해 스스로 죽어줄 것인가. 히히.

그래서 그는 준희에게 헛된 희망을 준다. 혹시나 그녀가 무리해서 다리를 건너다 하찮게도 고작 사고로 죽을까 봐 그녀를 만류한다. 끝까지 자신을 믿고 거기에 남아 있으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그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발목을 다친 준희를 데리고 돌아오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진짜 간다? 내가 간다, 갈게? 참 근데 그랬다가 나도 죽으면 애는 어떻게 하지. 응? 사실상 기훈은 준희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국 이 싸이코패스는 그 목적을 이룬다.

기훈: 네가 거기서 다 죽이면 재미가 없잖아

마지막 고공 오징어게임에서도 그의 천연덕스러운 싸패 짓은 계속된다. 그는 100번 참가자의 도시락 제안이 답이 아니라며 이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럼 한 명밖에 안 죽잖아. 어차피 누군가 최소 하나는 죽어야 나머지가 사는 이 게임에서 기훈은 아득바득 분란을 일으켜 기어코 하나 대신 다수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자 이제 드디어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친부인 명기와 엄마를 잃은 아이. 그것이 기훈이 기획한 엔딩이었다. 근데 이런 젠장, 엄마처럼 아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어줄 줄로만 알았던 명기가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일 수 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 아닌가. 아니 애써 극적인 마지막까지 다 준비했더니 이 쬐그만 놈이 망쳤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가만둘 수 없다. "넌 자격이 없어" 기훈은 저 아래로 그를 밀어 떨어뜨린다. 

이제 정말 다 끝났다. 이제 죽일 사람은 모두 죽었고 나를 믿고 더 죽어줄 사람도 없다. 밖으로 나가면 기다리는 건 또다시 아무 의미 없는 하루들. 공허함이 몰려온다. 차라리 아까 죽을걸. 그런 그의 눈에 VIP들의 관람석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깨닫는다, 아직 그가 배반할 믿음이 하나 더 남아있음을. 타인의 믿음을 배신하며 죽음을 가져오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던 이 뇌가 망가진 사이코패스는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믿음을 배반하기로 한다. 자신을 죽여가면서까지. 절벽 아래로 뛰어들기 전 그는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는 프런트맨의 질문을 떠올리며 이렇게 답한다 "(응 그리고) 사람은 (그 믿음 때문에 죽더라)" 


*               *               *


극적인 장치와 연출, 그리고 탄탄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시즌 3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박하다. 그 이유는 많은 시청자들이 성기훈의 변화된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오징어게임을 한차례 겪었던 인물이 별다른 계획도 없이 진행요원들의 본부에 무작정 침입한다거나, 순박한 얼굴로 모두를 살리겠다고 다짐하던 성기훈이 갑자기 증오에 휩싸여 대호를 추격 끝에 죽인다는 설정은, 감정선의 연속성이 너무 부족했다. 그의 반복적인 변화와 불규칙한 선택들은 시청자에게 설득력을 주기 어려웠고, 도리어 그는 세계관 최강의 변태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인물처럼 보였다.

이렇게 모순된 주인공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황동혁 감독 본인의 모순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오징어게임이라는 세계관을 통해 경쟁적 자본주의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을 비판적으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 테크회사의 막대한 자본 덕분이었다. 황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오징어게임의 시나리오를 구상했지만, 국내의 협소한 펀딩 환경에서는 이질적인 내용을 다룬 작품에 선뜻 투자할 이가 없었다. 결국 그 모험을 감수한 것은 자금력이 막강한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였다. 그리고 시즌 1은 성공했다.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 수많은 경쟁작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황 감독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마치 게임의 최종 우승자가 모든 것을 거머쥐듯이. 이제 그는 후속 시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도 원래 하나였던 이야기를 두 시즌으로 쪼개는 방식으로. 황 감독 본인도 인터뷰에서 인정했듯이, 그 동기는 다름 아닌 돈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감독은 다시 기훈을 게임으로 밀어 넣었지만, 그의 페르소나가 반영된 주인공은 그 작품 안에서 이상주의를 호소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성기훈이라는 인물은 갈라지고 어그러진다. 자본을 비판하려는 이상과 자본을 좇는 욕망 사이에서

결국 성기훈의 혼란스러운 변화는 단지 캐릭터의 붕괴가 아니라, 창작자인 황동혁 감독 스스로가 겪고 있는 자기기만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자본을 비판하며 만들어진 이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의 힘으로 탄생했고,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 역시 그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시즌 3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오징어게임은 작품 자체로는 어색하고 파편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작품 밖 현실과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창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열음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제 현실에서 VIP에 더 가까워진 이 글로벌 스타 감독은, 억지로 사회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참가자들에게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려 애쓰며, 그 간극을 지적하는 대중의 비판을 오히려 사회 탓으로 돌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와 자신이 택한 현실 사이의 모순과 균열이 다음 작품에서는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지, 또 감독은 어떤 변명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2025. 7. 2.

문제는 공급이야, 멍청아 (It's gong-gub, stupid)

한국의 부동산이 저평가되어 있다고 분석한 것이 10년 전의 일이다(링크). 그리고 진보 정부가 각종 세금과 규제로 공급을 막아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불과 5년 전의 일이다(링크). 그리고 이후 서울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5년 마다 두 배씩 뛰어올라 이제는 10억을 훌쩍 넘어간 지 오래다. 올해 들어 다시금 부동산 가격은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정부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강력한 대출 규제를 들이밀었다. 자, 규제는 하늘로 치솟은 집값을 끌어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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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인류가 마실 식수가 가까운 미래에 크게 오염될 위험이 크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장 미래에 자신들이 마실 물을 사재기할 것이다. 당장 오늘의 물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 물의 공급이 끊길지 모르기에 모두들 비싼 값에 물을 사서 저장하기 시작한다. 패닉바잉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을 모두 물을 사 모으는데 쓸 뿐 아니라, 대출까지 내서 물뿐 아니라 대형 물통과 저장탱크를 사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TV에서 갑자기 몇몇 저수지의 물이 마시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더욱 패닉 할 것이다. 사람들을 다른 소비와 투자를 줄이더라도 더 많은 물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병당 300원밖에 하지 않던 생수의 가격은 열 배로 크게 뛰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래의 소득을 영끌 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생수를 확보하려고 들 것이다.

그런 와중에 생수부 장관 김 씨가 등장해서 아무 근거 없이 미래의 물이 부족하지 않다고 백날 우겨봤자 사람들의 불안을 부채질할 뿐이다. 그녀는 결국 비참하게 경질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전문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다리 짧고 관종기 가득한 인간이 장관으로 와서 손놓고 놀다 정작 식수가 부족하기 시작하니 재빨리 사퇴하고 도망가고 말았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점점 짙어진다. 거기에 뜬금없이 금융당국이 등장한다. "아, 미래 식수가 모자랄지 말지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물값이 폭등한 것은 투기적 수요 때문이야"라며 국민들이 당장 마시지 않을 물을 미리 사들일 경우 페널티를 주기로 했다. 뒤이어 징벌적 물 보유세가 등장했다. 금융권에서 인기 있던 물 담보대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얼굴에 기름기 낀 장차관들이 대국민 담화에서 근엄한 얼굴로 미래의 소득을 끌어당겨 과도하게 물을 사들이는 일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일침을 가한다. 올바른 거시건전성을 위해 이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훈시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얼마 못가 고위 공직자들이 뒤로 수백 톤의 물을 쟁여놓고 있었다는 폭로가 등장한다. 정부 예산으로 세종시 생수 특공이라는 혜택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에 그들은 자신들이 쟁여 놓은 물은 실수요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리고서 되려 눈을 부라리며 요새 애들이 물을 너무 많이 쓴다, 오염됐다는 그 물 마셔도 안 죽는다 그냥 마셔라, 라며 국민 탓을 한다. 그렇게 언론이 시끌벅적하게 난리를 피우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각종 대출을 막은 탓에 미래가 창창한 사회 초년생들만 미래에 마실 물을 확보하지 못해 불안할 뿐이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과도하게 오른 물값을 낮추는 가장 올바른 정책은 앞으로도 식수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뢰를 주는 것이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에 양질의 신축 아파트가 부족해 가격이 치솟는 상황이라면, 이를 안정시키는 유일한 해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그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결국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예고했던 대로 공급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제는 일반 수요자들조차도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이 공급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판단, 그 차이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서울시 아파트의 공급 부족은 이제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 주택 인허가 수

왜 서울시의 공급은 막혀버렸을까. 일반적인 시장 환경에서는 공급이 막힐 이유가 없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한다는 강남의 신축 아파트 가격은 이제 평당 1억 5천만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아파트 공사비는 아무리 고급 사양으로 지어도 평당 1천만 원을 겨우 넘기는 수준에 불과하다. 용적률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구축 단지도 많기 때문에,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일단 추진만 해도 조합이 수백억 원을 벌 수 있는 수익성 높은 사업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종 인허가권을 무기로 그 수익을 적극적으로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초과이익이 생기면 환수하고, 기부채납을 요구하고,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수많은 규제를 덧붙인다. 분양가는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하고, 공공시설도 함께 지으라고 한다. 심지어 정부가 세금으로 책임져야 할 취약계층의 주거 복지까지 조합에 떠넘기며, 너희 돈으로 지어서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공사비 상승이 공급 부진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강남 신축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에 비하면 건축비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규제와 기부채납으로 뜯기는 금액이 건축비보다 훨씬 더 크다.

하지만 이런 공급 절벽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규제를 바꾸거나 완화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관의 권력은 이 인허가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장경제가 수요공급을 이끌면 우리 관료들은 뭘 먹고살겠는가, 누가 우리의 눈치를 보겠는가. 그래서 규제는 늘어나기만 할 뿐,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 문제를 규제완화 대신 완전히 빈 땅에 정부가 대규모 신축을 지어 해결했다. 수많은 신도시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이제 이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먼저 이제는 서울시 요지에 빈 대규모 택지가 거의 없고, 과거처럼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아 새로 만든 신도시에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려울뿐더러, 무엇보다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경기도 외곽에 살며 출퇴근에 수 시간을 들이는 비용이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의 한국을 발전시킨 관 주도의 성장 공식이 21세기에 먹히지 않는 것처럼 과거의 주거난 해소법이 21세기에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자신들의 실책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서울에 신축 아파트가 없으면 빌라에 살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지만, 정작 빌라 공급도 줄어들고 있다. "경기도 외곽엔 빈 아파트가 많다"고 하지만, 그 말은 인생에서 총 5년을 통째로 빨간 버스 안에서 보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역세권 재건축을 장려하겠다"고는 하지만, 세대당 수억 원씩 정부에 바치라는 조건이 붙는다. 이처럼 현실과 괴리된 방안들만 쏟아내는 사이, 주택시장의 수급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시장이 자신들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정부는, 급기야 망가진 공급에 맞춰 수요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야 인마, 침대가 너무 짧으면 손님의 다리를 자르면 되는 거 아니냐 이 말이야." 이번에 발표된 6.27 부동산 대책은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발표했던 수많은 수요 억제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어벙한 정치인들이 설계한 수많은 대책이 그랬듯이,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서 무능한 관료들이 내놓은 수많은 대책이 그랬듯이, 그들은 또다시 당신들의 다리를 슥삭슥삭 자르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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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책은 대통령실이 아닌 금융위원회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부동산 시장이 아니라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억제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최근 늘어난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부동산과 연관되어 있고, 가계가 무리해서 집을 사는 이유는 미래의 공급이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 그건 내 소관이 아니고, 난 가계부채만 때려잡으면 돼"라고 주장하는 금융위의 모습은 침몰하기 시작하는 배에서 도망쳐 나오는 학생들을 후드려 패며 복도에서 뛰지 말랬지! 라며 외치는 학주의 모습처럼 기괴하고 사악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말만 믿고 따랐던 순진한 학생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건 선장의 책임이고, 나는 교칙대로 복도에서 뛰는 애들만 처벌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선생이 있다면, 그 모습은 얼마나 혐오스럽겠는가. 앞서 든 비유처럼, 빚을 못 내게 막는다고 해서 생수 사재기를 유발한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다른 소비와 투자를 줄이면서라도 식수를 사 모을 것이다. 지난 3년간 윤석열 정부 아래서 소비와 투자가 망가진 것은 기재부나 금융위 같은 재경직 부처들이 공급 부족이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대신 가계부채의 폭증이라는 현상만 때려잡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정책 실패의 원인을 되려 피해자인 국민들에게 돌리는 것으로 비열하고 무책임한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된, 공급에 맞춰 수요자의 다리를 자르는 강도의 칼이 무척이나 날카로운 것은 사실이다. 다리가 잘린 시장은 잠시 동안은 안정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손님은 끊임없이 올 텐데, 언제까지 침대에 맞춰 국민들의 다리를 잘라댈 수 있겠는가? 나는, 그리고 당신들 역시 이 게임을 이미 해봤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이 옳다고 믿는다면, 네 다리부터 잘라라. 금융위를 미분양 주택이 넘쳐나는 지방으로 이전하자. 이제 필요 없을 테니 수도권의 집 팔 기회도 드리겠다. 거기에 딸려 있는 대출도 다 상환하시라. 당신의 대출도 엄연히 가계대출의 일부다. 부당하다고? 그렇다. 부당하지. 그런데 당신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짓은 왜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가계부채가 심각한데 그럼 어쩌냐고 되묻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문제는 공급이야, 멍청아.  

2025. 6. 7.

한국 보수는 어째서 무능해졌는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에게 묻다

계엄이 없었더라도 지난 보수 정권은 재집권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경제적 성과가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숫자만 보더라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을 크게 밑돌았고, 최근 4개 분기 동안은 무성장 혹은 역성장을 기록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세계 주식지수와 비교했을 때, 코스피는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을 냈다. 환율은 무려 220원이나 급등하며, 외환시장 자유화 이후 전례 없는 불안정을 보여줬다. 이전 정부는 그 원인을 외부 변수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지난 3년간 글로벌 경제를 흔들만한 사건들은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9.11 테러, 북한의 첫 핵실험, 혹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필적할 수준은 아니었다. 단 하나, 본인들이 자초한 ‘계엄’만을 제외하면 말이다. 게다가 2024년은 세계 경제가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고, AI 열풍의 영향으로 글로벌 수출이 호조를 이뤘다. 한국 역시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지만, 그 와중에도 한국 경제 성장률과 주식시장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경제는 보수”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주리를 틀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한국 보수는 무능해졌다. 단순히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내부 대립을 중재해 정치적 해법을 도출하는 능력마저 상실했다. 이제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조차, 보수 정치인들이 더 유능하거나 탁월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거쳐 김영삼과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과거 보수는 눈부신 경제 성장과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주도했던 DNA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유산은 온데간데없다. 그렇다면, 이 보수의 몰락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때마침 보수가 폭주하던 해에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대런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A. 로빈슨)의 주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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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국가의 경제적 성공과 번영이 인종이나 지리적 요인보다, 법과 제도 같은 사회 시스템에 달려 있다는 점을 인류 역사 전반에 걸친 방대한 사례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남한과 북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처럼 인종과 지리적 조건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차이로 인해 경제적 성과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경제 주체들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그 성과를 정당하게 분배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양한 실증 사례를 통해 강조한다. 더 포용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일수록 경제적 번영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일관된 결론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일부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는 오히려 강력한 독재 체제 아래서 초기 산업화를 빠르게 달성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이들은 ‘착취적 제도의 초기 효율성’이라 설명한다. 기존 사회에서 생산요소가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있을 경우, 권위주의적 체제가 단기적으로 높은 집중력으로 자원을 재배치해 급속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대부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며 제도적 개혁과 정치적 포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장은 정체되고 사회 불안정이 증폭된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대표적 사례다. 내전 이전 러시아는 낮은 부가가치의 농업 중심 구조였으나, 공산당은 폭압적으로 자원을 중공업으로 이동시켜 단기적으로는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산요소의 배분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성장을 이룬 이후에는 곧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이러한 역사는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다. 과거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형식적으로 소련의 계획경제와 유사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한반도를 지배했던 일본 제국은 1930년대 대공황의 충격을 극복하고 전시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제1차 5개년 계획을 면밀히 분석했고, 만주사변 이후에는 중공업 중심의 계획경제적 요소를 전략적으로 도입하여 만주국을 실험무대로 삼았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만주국에서 군사 및 행정 경험을 쌓은 박정희는 이러한 국가 주도 개발 체제의 작동 방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인물이었다. 이후 그가 한국의 지도자가 되자, 이러한 방식은 한국의 산업화 전략으로 이어졌고, 강력한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따라서 보수가 이상화하는 과거 한국의 고도성장은 서구의 자유시장경제보다, 소련식 계획경제와 이를 기술적으로 흡수한 일제의 국가통제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

다행히 한국은 소련이나 일제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빠른 성장 이후 시민들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했고, 미국 역시 군사독재에 제동을 걸며 민주화를 압박했다. 내외부의 압력 속에서 한국은 점진적으로 더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정치 체제로 이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환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민주 정부 아래서도 여전히 정부는 권위적인 태도로 시장에 개입했으며 생산과 소비 분배를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와 관료 사회는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경제성장을 저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촉진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국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면서도 중앙 정부의 관료가 신축 아파트 분양가부터 수천가지 의료행위의 값을 정하고, 택시비도 정하고, 전기값도 정하고, 누구한테 돈을 빌려주고 누구는 빌려주지 말지도 정해주고, 뭐 이것도 정해주고 저것도 정해주는 경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본질적으로 스탈린식 계획경제와 닮아 있다. 앞서 언급한 노벨 경제학 수상자들이 경고했듯, 이러한 체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에 봉착한다. 계획경제는 실시간 수요·공급 변화가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아 자원 배분이 왜곡되며, 과잉생산이나 물자 부족이 반복된다. 이는 중앙에서 복잡한 경제를 계산하고 통제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계획경제는 유인의 결여로 인해 구조적 비효율을 초래한다. 고시공부 외에는 아무런 실무 경험이 없는 세종시 어진동의 사무관들이 가격과 생산요소의 배분을 통제하는 방식은, 현장의 성과를 과장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이는 곧 생산성 저하와 보고 체계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결국 스탈린식 계획경제는 단기적 산업화에는 일정 부분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기술 혁신, 복잡한 자원 배분이 요구되는 현대 경제 체제에는 근본적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다수 경제학자들의 일관된 평가다.

이런 비효율은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서울은 집이 부족해 집값이 폭등하는데도 공급은 이뤄지지 않고, 수요가 없는 지방엔 과잉 공급으로 건설사들이 파산한다. 필수 의료 분야의 공급은 줄고, 피부과는 넘쳐난다. 출퇴근 시간에 택시는 안 잡히는데, 기사들은 저임금에 시달린다. 에너지 가격이 올라 한전은 수십조의 적자를 내지만, 인스타 핫플 카페는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튼다. 부도 위험이 높은 소상공인 대출은 권장되면서도, 담보가 충분한 부동산 대출은 막힌다. 그 차이는 결국 재정으로 메워지고 있다. 정부가 개입하는 분야마다 자원과 자본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있으며, 이는 전반적인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구소련을 무너뜨린 계획경제의 비효율이, 그 정도만 다를 뿐 지금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계획경제의 비효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경제 시스템 아래에서, 민간 경제 주체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지 않고, 관의 의중이 좌우한다면, 기업은 당연히 로비에 자원을 투입한다. 이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존재하는 일이지만, 계획경제에 가까울수록 관료의 힘이 더 크기에, 로비는 투자보다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기업들은 퇴직 관료에게 억대 연봉을 내밀며 임원으로 영입하고, 그렇게 들어온 그들은 충실한 로비스트가 되어 법인카드를 들고 후배 관료들을 찾아간다. 그렇게 전체주의적 경제 체제에서는 늘 카르텔이 자라난다. 독일에서는 융커들이, 일제 아래에서는 자이바쓰가, 그리고 한국에서는 관피아와 재벌이 그렇게 등장했다. 이제 많은 재벌 가문에게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정부 정책을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되었고, 실제로 보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전직 관료 출신 사외이사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으며, 그 추세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보수 정권이 자본시장 정상화를 외쳤음에도 결국 상법 개정을 포기한 배경에는 이런 비대칭적 권력 구조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오늘날 한국 보수가 무능해진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이 경험한 경제성장은 반세기 전 박정희 시대에나 효과가 있었던 스탈린식 계획경제 덕분이었고, 이제 그 모델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다. 중앙정부 관료들이 공급과 수요, 그리고 가격을 결정하는 모델은 오늘날처럼 고도화된 경제에서는 비효율만 키울 뿐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이 모델은 더욱 비현실적이 된다. 나라에 축적된 자본이 없던 초기에는 창업주가 곧 회사였다. 마치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의 관계처럼. 그런 시절에 정부와 재벌의 편의를 봐주던 것은 기업 활동에 다소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재벌 3세로 태어나 개차반으로 살다 아빠 돈으로 비싼 로열티 주고 외국 햄버거 브랜드나 가져오는 무능한 경영인을 정부가 싸고도는 것은 기업가치에 해를 끼치는 일이고 국내 자본시장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가 가진 성장에 대한 기억과 경험은 대부분 1인당 GDP가 1,000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의 유산이며, 그 유효 기간은 이미 끝났다. 보수가 지지율에 개의치 않는 대통령을 만나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해본 결과, 경제가 철저히 무너졌다는 사실은 바로 이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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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이 계획경제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정부가 민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이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폭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스탈린이 시인이 되고 싶었던 미하엘을 군수공장으로 내몰고, 도조 히데키가 자전거를 사고 싶었던 다카시에게 대신 전쟁 국채를 강매했듯, 한국 보수가 안전한 부동산 담보대출에 집중하려던 신한은행에 대신 위험한 큰 소상공인 대출을 늘리도록 강제하려면, 정부와 관료가 강력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 자신들의 명령을 거스르면 처벌할 힘을 가져야 한다. 계획경제는 늘 민간의 자유, 그리고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혐오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더 많은 법, 더 복잡한 규제, 그리고 더 강력한 처벌을 들고나온다.

이러한 국가사회주의적 가치관은 민주주의적 시스템과 양립할 수 없기에 경제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갈등을 더욱 확산한다.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시도에서부터 계임계 검열, 나무위키 차단, 생필품 가격통제, 수능카르텔 척결, R&D 지원, 그리고 의대정원 갈등까지. 정부의 온 부처와 관료들은 민간을 지배하려는 욕구를, 마치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의 성범죄자처럼 사방으로 분출하며 갈등을 더욱 키웠다. 타협은 없다. 민간과 일일이 얘기하고 설득하면서 어떻게 중앙정부가 국가 경제를 "계획"하겠는가. 바빠 죽겠는데. 관료 출신이자 가장 K-보수적 이념에 심취한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희대의 광기를 분출한 그 배경에는, 민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보수의 이념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대런 애쓰모글루가 지적한 대로 민간의 자율성과 정치적 포용성이 약화되는 것과 성장의 지속 가능성이 훼손되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그 결과 국가는 장기적 침체의 수렁에 빠진다. 이는 단지 경제적 후퇴에 그치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지식의 확산, 창의성의 발현까지 억제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활력을 잃게 만든다. 지난 보수 정부의 일련의 정책과 태도는 이러한 경고를 현실로 옮기고 있으며, 마치 구시대적 국가사회주의의 유령이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 위를 떠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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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는 너무나 성공적인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뤄냈기에, 과거의 방식을 지나치게 신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개발독재 시절의 국가 주도 성장 모델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때 육사 출신들이 사회경제 전반을 독점하던 시대가 있었다. 대통령, 장관, 시장은 물론이고, 공기업의 감사나 대표, 심지어 민간 기업의 사장 자리까지 군 출신들이 점령했다. 그것이 효율적이던 때도 있었다. 1960년대의 한국은 매우 가난했고, 행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교육받은 엘리트도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군의 행정력과 인재 풀이 민간보다 훨씬 우수했고, 실제로 사회 전반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군 출신이 사회를 주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 되었고, 결국 그들은 정치와 경제·사회 전반에서 물러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문제는 그 시절을 이상적으로 기억하는 보수 이념만은 그대로 남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군대와 유사한 조직을 새롭게 찾았다. 바로 관료 조직이다. 엘리트주의, 수직적 조직문화, 강한 권력 지향성과 집단주의 등은 과거 군부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다. 관료 집단은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를 그리워하는 보수 세력과 궁합이 잘 맞았다 .그 결과, 과거 군인들이 차지하던 자리에는 이제 관료 출신들이 낙하산처럼 내려앉았다. 과거 군 출신들이 민간으로 내려가 낙후된 군대 문화를 퍼뜨려 조직을 병들게 했듯, 관료 출신들 역시 어진동의 후진 관료 문화를 민간에 전이시켜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끊임없이 터진 인사 참사들은 다수가 이 구조적 병폐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처럼 한국 보수는 철학과 현실이 완전히 괴리된 집단으로 전락했다. 겉으로는 친미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미국과 정반대인 스탈린식 계획경제를 추진한다. 자본주의를 주창하지만, 자본시장 질서를 해치는 재벌들의 편을 든다.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반자유적인 정책을 도입하며 환호한다. 심지어 계엄령까지 시도했다. 반미 보수, 반자본 보수, 반자유 보수.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들을 보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쯤 되면 그들의 극단적인 언어를 빌려 "너희야말로 빨갱이 아닌가?"라는 말이 나올 법 하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들이 예고했던 대로 그들이 도입한 이 빨갱이식 시스템은 경제를 좌초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보수가 처한 위기의 핵심이다. 한국 보수는 철학적으로 파산 상태에 있으며, 스스로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 보수가 신봉하는 성장 모델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을 가장 빠르게 발전시킨 방식이기도 하다. 이 모델은 여전히 많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유효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성적이 바닥이던 학생을 두들겨 패서 대학에 보내는 스파르타식 교사의 방식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 학생이 박사학위를 따고 세계적 연구자가 되어 노벨상을 받으려면 전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국 보수는 슬럼프에 빠진 이 과학자에게 맞으면 연구가 잘 돼서 노벨상도 가능하다며,  어디서 새롭게 구해온 무식한 선생에게 몽둥이를 쥐여주고 연구실로 밀어넣은 셈이다. 왕년에 이게 얼마나 잘 먹혔는데! 라고 외치면서. 올해 대선에서 많은 유권자들은 여러 잡음과 논란이 있었음에도 야당 대표 이재명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그의 당선 이후 주요 시장 지표들은 한국 경제의 향후 회복 가능성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유권자와 시장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야당 대표의 처참한 도덕성보다, 보수의 끔찍한 무능이 나라경제에 더 해롭다는 것이다. 남 탓만 하며 어정쩡한 표정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한국 보수의 모습을 지켜보던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이런 구시대의 왜곡된 철학은 이제 퇴장할 때가 되었음을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그 경고를 들을 귀가 아직 남아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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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5. 27.

노쇼경제학 vs 고시주도성장

모 후보의 노쇼 경제학이 논란을 빚고 있다. 승수효과를 설명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이 맞으려면 애초에 호텔 예약이 취소되어서는 안됐다. 케인즈 경제학은 정부가 실제로 돈을 써서 시작되는 것이지 뉴딜 하겠다고 설레발 치다 갑자기 입씻고 취소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약이 취소되는 일이 반복되면 경제주체들이 불확실성을 반영하여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화려한 언변과 경제이론을 비틀어가며 이 모델을 옹호하는 이들은 지식이 아닌 자신들의 세속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반대 진영이라고 이 사이비 경제학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현재 한국 경제가 전례 없이 끔찍한 저성장을 마주한 배경에는 무능한 관료집단의 무분별한 민간 개입이 자리하고 있다. 고시 출신들이 경제정책도 짜고, 개혁안도 마련하고, 집행도 하고, 환율도 정해주고 수천 가지 의료 서비스의 가격도 정해주고, 은행의 예대마진이나 강남 집값까지 정해주는 데다 민간에게 무슨 사업을 하고 어디에 대출을 할지 지시를 잘 하면 경제가 발전할 것이란 이 고시주도성장모델은 4분기 연속 0% 성장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게다가 그 바람에 세수가 줄어 재정건전성은 되려 더 나빠졌다. 무능한 보수, 반자유 보수, 반시장 보수. 보수의 진짜 위기의 원인은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다.

경제 상황에 따라 통화·재정정책은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명목성장률이 8%에 달하던 2021년에 재정확대를 외치던 이재명의 경제관이 현실감각을 상실한 것이라면,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의 반에도 못 미치는 시점에 균형재정을 고집하는 관료들의 경제 인식도 마찬가지로 정신줄을 놓은 셈이나 다름없다. 엑셀만 밟는 병신과 브레이크만 밟는 등신이 멱살 잡고 싸우는 사이, 나라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그리고 인플레고 디플레고 알바 없이 재정건전성에만 교조적으로 집착하던 경제 관료들이 남긴 가장 해로운 유산은, 그들이 급브레이크로 경제를 좌초시키는 바람에 이제 엑셀밖에 밟을 줄 모르는 바보가 마치 유능한 것처럼 보이게끔 환경을 만들어 그들에게 넘겨준 일이다.

2025. 4. 24.

금융위원장 봉이 김병환의 지분형 주택공유제: 없는게 양심인가 지능인가

주택공유제의 골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주택 구매 시 주택금융공사가 50%의 지분을 가져가고 구매자는 나머지 50%를 부담한다
- 구매자 지분의 50% 중 40%는 은행 대출이 가능하다
- 집값이 반 토막이 날 때까지는 주택금융공사가 손실을 100% 떠안는다 (주금공, 후순위 보유) 
- 집값이 상승할 경우 구매자는 주금공의 지분을 시세보다 낮게 매입할 수 있다
- 거주 기간 동안 구매자는 주금공에 이자보다 저렴한 월세를 지급한다
- 대상 주택은 서울의 경우 10억 이하, 지방의 경우 4억 이하의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자 이 혜택을 주식으로 바꿔보자

- 주식 구매 시 산업은행이 50%의 지분을 가져가고 구매자는 나머지 50%를 부담한다
- 구매자 지분의 50% 중 40%는 증권사에서 대출이 가능하다
- 주식이 반 토막이 날 때까지는 산업은행이 손실을 100% 떠안는다 (산은, 후순위 보유)
- 주식이 상승할 경우 구매자는 산은의 지분을 시세보다 낮게 매입할 수 있다
- 주식 보유기간 동안 구매자는 산은에 이자보다 저렴한 지분 대여료를 지급한다 (배당은 구매자가 모두 가져감)
- 대상 주식은 서울시민 경우 시총 1000억 이하, 지방의 경우 시총 400억 이하의 주식을 대상으로 한다

자 이 조건으로 당장 잡주에 베팅을 안 한다면 당신은 정녕 바보다. 재테크는 포기하고 그냥 은행 예금만 해라. 

모두가 사고 싶어 하는 우량주들은 이 혜택을 절대 볼 수 없다. 펀더멘털이 워낙 엉망이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개잡주들이 이 정책의 최고 수혜자들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정책금융을 실시하면 미분양이 산더미같이 쌓인 산간벽지와 지방에 마구잡이로 지은 악성 매물들의 가격이 뛰게 된다. 반 토막이 나면 그때 손절하면 된다. 어차피 내 손해는 0이니까.(제도가 존속하는 한 어치피 제 2의 테마주 투기꾼이 또 이것을 지분공유제로 사 줄 것이다.) 나라가 다 책임져준다는데. 문제는 누군가가 반드시 그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이 경우 그 호구는 바로 주택금융공사가 된다. 주택 값이 오를 경우 주금공은 시세보다 싸게 지분을 넘겨줘야 하고, 주택 값이 내릴 경우 주금공은 독박을 쓰게 된다.  

이렇게 상식에서 어긋나는 구조를 설계한 사람의 의도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 설계자가 멍청해서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고시가 어느 정도의 지능을 보장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는 사시에 합격한 대통령이 계엄을 발표한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둘, 악성 미분양을 주금공에게 떠넘겨 파산 직전에 내몰린 지방의 시행사들을 살려주기 위한 것이다. 수상하게도 이번 정부에서 나온 거의 모든 부동산/금융 대책들은 부족한 주거용 부동산의 공급을 늘리기보다, 마치 리만 브라더스만큼이나 부실한 PF들을 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도무지 알 길은 없지만 공교롭게도 마음에 두 가지 기사들이 떠오른다. 하나는 수많은 전직 기재부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신탁사/시행사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고, 또 시행사들 중에서는 엄청나게 부패한 방법으로 뇌물을 돌리고 접대를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의도의 금융인이라면 한 번쯤은 그들의 화려한 영업방식과 한도를 알 수 없는 법인카드들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들어보지 않았나. 그중 일부 사례는 사실로 드러나 법적인 처벌까지 받기도 했다.(링크1)(링크2) 한때 화려하게 역삼동 지하 술집들과 백화점의 명품 가게들을 누비던 그 법카들과 현금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에이. 국가와 민조옥을 위해 헌신하신다는 우리 고매하고 높으신 나으리들이 설마 퇴직자들의 연줄 때문에, 혹은 양아치 같은 로비의 영향을 받아 이런 정책들을 내놓았을까. 에이, 설마. 에이, 그럴 리가. 그래서 나는 그들이 그냥 멍청하다고 믿기로 했다. 그래서 우연히 PF들의 부실을 우량 금융기관에 떠넘길 대책이 나온 것이고, 또 서울의 공급을 막고 풍선효과가 지방으로 번지도록 유발한 것이며, 그리고 이번처럼 지분형 주택공유제 같은 근본 없는 대책을, 그저 우연히, 정말 멍청해서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럴 만도 하다. 평생 시장경제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백면서생들이 시장경제를 고쳐 보겠다고 나서는데 그 결과가 엉망진창인 게 당연하지 않나.

이번 대책은 금융위가 주도했다는데, 그 수장은 기재부 출신의 김병환이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것처럼, 그는 주금공의 자본을 주인 없는 대동강 물처럼 아무 데나 팔아넘기려 한다. 그리고 그 손실은 우리의 세금으로 메워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에게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이의 호는 고사를 본떠 봉이 김병환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의 이름을 한자로 풀어보니 잡을 병(秉)에 빛날 환(煥)이란다. 좌우 합작으로, 또 정치와 관료들의 합작으로 비정상적이고 반시장적 규제로 집값 폭등을 일으켜놓고 그 해결책으로 반시장적 정책금융을 내놓는 관료답게, 그의 이름 첫 글자는 통제와 관리를 의미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완벽한 작명센스인가. 하지만 다음 글자는 뭐가 빛난다는 것인지 도통 맥락에 맞지 않는다. 그러니 감히 추천하건대 그 이름의 두 번째 글자로 신중하고 겸허하다는 의미의 삼갈 신(愼)을 쓰는 게 어떠하신지.

봉이 김秉愼, 빼어난 관료들이 시장을 다스리는 아름답고 푸근한 전근대적 관료사회에 걸맞은 훌륭한 이름 아닌가.

금융위원장 봉이 김병환


2025. 2. 1.

한 번의 계엄과 열여덟 번의 탄핵

과거 박근혜의 하야나 탄핵에 반대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탄핵 절차와 새 선거 시점을 고려하면 기존의 대선 일정과 불과 7,8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자리를 비워두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작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당시 박근혜의 탄핵 사유로 제시된 비리들이 전임자들에 비해 무엇이 더 심각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링크


그리고 같은 기준으로 나는 윤석열은 탄핵되어야 할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독선적 행동으로 고립을 자초해서 정치적 뇌사상태에 빠진 정치 초보가 그 돌파구로 계엄을 선택한 어처구니없는 일은 87년 헌법 이후 최초이자 최악의 사고였고, 이런 선택을 한 그의 사고력에는 커다란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탄핵이라는 결정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계엄보다 훨씬 경미한 사유로 탄핵소추된 노무현의 탄핵에 9명 중 3명이나 찬성한 사실과, 전임자는 물론이고 후임자도 저지른 흔한 비리를 사유로 탄핵당한 박근혜의 전례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반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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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수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일부 중도층이 계엄을 비난하면서도 탄핵에 쉽사리 찬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이후에 벌어질 정치적 후폭풍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입법부를 장악해서 깽판만 쳐 온 야당 대표가 이제는 전방위적 행정 권력까지 차지하게 될 때 벌어질 일들에 대해 심지어 일부 민주당 지지층까지 우려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탄핵 이후 되려 여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일이나, 야당 대권주자들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보수 유권자들의 과표집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8년 전 탄핵 사건과 비교해서 여론의 추이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민심에는 정신 나간 대통령에 대한 혐오 못지 않게, 총 18번이나 탄핵 소추안을 올린 야당에 대한 불만도 함께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탄핵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다 모조리 실패한 한 얼뜨기가 자유 민주주의 시스템이 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 시스템을 강제로 셧다운 시켰는데 그를 탄핵시키지 않고 놔둔다면 이는 현대 정치사에 아주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일이다. 나는 결코 그를 용인할 수 없다. 각 유권자들의 가치관과 지향점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에겐 공유하는 가치가 있지 않은가. 자유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그 시스템을 공격하는 이들은 누구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드시. 설령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이 이토록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면, 중요한 순간마다 그릇된 판단을 거듭한 윤석열이야말로 그 과업을 수행하기에 매우 부적절한 인물 아닌가. 가망이 없던 부산 엑스포가 박빙이라고 믿었던 것이나, 얻을 것도 없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김태우를 사면한 뒤 내보낸 것, 별 목적 없이 대기업 총수들 보고 헤처모여를 시킨 일, 선거 앞두고 뜬금없이 공매도를 금지하고 비상식적 규모의 의대 정원을 증원한 것을 떠올려 보라. 어떤 장군이 군사작전을 이따위로 펼쳤다면 그의 군대는 벌써 전멸했을 것이다. 심지어 극우적 시각으로 보아도 그는 너무나 무능하다. 하필 그 시점에 계엄을 꺼낸 윤석열이야말로 정치적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이재명을 되살려내 걷게 해준 예수나 다름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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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왜 계엄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평생 오로지 검사로만 살아온 배경이 그의 이런 이 결정을 다소간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검사는 일반적인 직역에 비해 피드백을 잘 받지 않는 직업이다. 이는 사회생활에서 모든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데 갑에게 제대로 된 피드백을 전달할 을은 거의 없고, 또 이를 받아들여 개선할 압박을 느끼는 갑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율권을 보장해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은 이런 독불장군들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잘 모르는 사안도 잘 안다고 착각하는데 평생 그 부푼 자의식을 고쳐줄 사람도 거의 만나지 못한다. 우리 트레이더들도 정확하게 똑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단점들을 잘 알고 있다. 나부터가 이 블로그에 온갖 주제로 글을 쓰지 않는가. 하지만 적어도 트레이더들은 다른 회사들과, 또 외국의 금융기관들과 경쟁하며 실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그나마 강제로 자기 주제를 주입당한다. 하지만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 조직은 그럴 기회조차 없다. 오만한 트레이더가 심각한 오판을 내리면 대부분의 피해는 그 자신이 보지만, 오만한 검사가 심각한 오판을 내리면 대부분의 피해는 다른 누군가가 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능 인재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자신들이 현대미술의 정의와 분류까지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나.(링크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정부의 인사권을 가지게 되면 이 검사 만능주의에 대한 괴상한 믿음이 전체 조직을 장악하게 된다. 검사에게 금융감독을 맡기고, 토목과 건설을 맡기고, 공정거래를 맡기고, 통일정책을 맡기고, 첩보와 보안을 맡기고, 국민의 권익과 인권을 맡기고, 공공기관 감사를 맡기고,  방송통신도 관여하고, 국민연금에도 가고. 또 이 모든 인사검증을 한 늙은 검사와 어린 검사가 했다. 그리고 남는 자리에는 기재부 출신들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기재부 출신들이 과학기술도 하고, 환경부도 가고, 금융위도 가고, 보건복지부도 가고, 국민연금도 가고, 농업도 하고, 해수부에도 가고, 통계도 하고, 관세도 하고, 조달도 하고, 문화체육도 하고, 공공기관 감사들로도 가고, 원내대표도 하고, 심지어 친정을 감사하는 기획재정위원도 했다. 조직관리 학자들은 하버드 출신들을 가지고도 이런 식으로 조직을 구성하면 실패하는데(링크)  고작 아시아 변방의 국립대 출신들이 자기네들이 천하제일이라며 국정을 이렇게 운영했으니 그들이 추진하는 개혁과제들이 성공할 리가 있나. 쌍팔년도 서울대 문리대에서 진로를 정하듯 사시 성적과 행시 성적대로 인사를 했고, 그들은 21세기에 쌍팔년도에나 통하던 정책을 펴다 망했다. 이 정부가 추진하다 실패한 모든 개혁과제들은 전부 검사나 행시 관료들의 작품이지 않았나.

임기 후반에 들어서며 총선에서까지 참패하자 이대로 無업적 대통령으로 남을 자신의 미래를 보며 그는 초조함이 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모든 개혁이 실패할 수가 있지, 아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세상에 서울법대 나와 검사한 나보다 어떻게 저 범죄자 새끼의 지지율이 더 높을 수 있지. 거기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나, 나와 내 사람들이 국정운영을 무능하게 하고 있구나. 둘, 나는 옳은데 누군가가 우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구나. 서울대 나와 고시까지 붙은 나와 내 똘마니들이 무능할 리가 결코 없기에 자연스레 답은 2번이 된다. 이 반 국가세력들이 환율을 올리고, 주식을 떨구고, 집값도 올리고, 양극화도 벌리고, 그래서 내 지지율도 떨구는 것이다. 거기에 관료들의 나쁜 버릇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관 출신들이 공적인 자리에 가면 그 직위에 딸린 권력을 자신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모시는 날이라든지, 수행의전이라든지. 관료들의 후진 조직문화가 오래 이어지는 것은 권력을 자신의 권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행사한 인사권이나 행정명령에 여론이 반발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늘 아침으로 된장찌개를 먹는 것이 오로지 나의 권리이듯, 오로지 내 입맛대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그래서 여론을 무시한다. 유권자들이 반발할수록 대통령과 그 측근 관료들은 그들을 가상의 적인 "반국가 세력"으로 묶어 무시한다. 그들은 내가 아침에 된장찌개를 먹을 정당한 권한을 억압하는 아주 나쁜 놈들이다. 놀랍게도 관료들의 세계관은 그렇게 돌아간다.

최종적으로 그가 계엄이란 선택지까지 이르게 된 것은 특수부 출신이라는 배경도 일조했을 것이다. 주로 정치인이나 대기업 오너 등, 권력자들을 수사하라는 매우 어려운 임무를 받은 특수부는 법의 테두리를 모범생처럼 지켜가면서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선을 넘는 법을 배웠다. 수사 과정이나 절차에 대해, 혹은 그들이 적용한 법리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됐지만, 특수부가 밝혀낸 사안들이 워낙 엄중하고 심각했기 때문에, 또 그들은 절대권력의 부패를 견제할 몇 안 되는 장치였기 때문에 여론은 특수부의 탈선을 눈감아주곤 했다. 이것이 반복적으로 겪은 검사들은 결과가 정당하다면 절차의 흠결은 용서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대통령은 국회를 멈추고 자기와 관료 똘마니들이 밀어붙이려 했던 정책들을 시행하면 대단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진심으로 믿었을 것이고 그러면 국민들이 용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계엄조차 똑바로 못하는 대통령의 정책들이 성공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망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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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대단한 실수도 아니었습니다. 가볍게 야단치고 끝날 일이었죠. 근데, 그 친구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아닐 수도 있어요. 내 착오일 수도 있는 거죠. 근데, 조직이란 게 뭡니까.....오야가 누군가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실수한 일이 없어도 실수한 사람은 나와야 하는 거죠. 간단하게 끝날 일인데, 그 친구 손목 하나가 날아갔어요. 잘나가던 한 친구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끝장이 났습니다."

이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이 철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시나브로 지워졌지만 그의 첫 국정운영 방향은 이권 카르텔의 혁파로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그는 민간의 분야를 하나하나 조지기 시작한다. 교육부터 시작했다. 대통령께서 개혁을 명하셨으니 잘못한 일이 없어도 잘못한 사람은 나와야 한다. 그래서 사교육 카르텔이 등장한다. 그리고 검찰과 국세청을 동원해서 조진다. 그렇게 개혁은 완료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교육시스템과 수능이 뭐가 개선되었나. 다음은 과학기술계의 차례다. R&D 예산을 줄이자 과학계가 반발한다. 나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카르텔이다, 반국가 세력이다. 과기부와 교육부를 동원해서 R&D 카르텔을 적발해서 조진다. 다음은 은행들의 차례다. 기준금리가 올라갔다고 대출금리를 올려 돈을 버는 것은 카르텔이다, 이건 갑질이다, 소상공인 보고 종노릇을 시키는 것이다. 각하께서 노하셨다. 자, 이제 은행을 조진다. 검사와 금감원을 동원해 은행들의 팔을 꺾고 비틀며 관치금융의 진수를 보여준다. 뜬금없이 지방은행 하나를 시중은행으로 격상도 시켜준다. 이야. 각하께서 금융 카르텔도 해결하셨도다. 자, 다음은 의료 카르텔이다. 선거도 있고 하니 인상적인 숫자로 나도 표 좀 빨아보자. 하지만 반발이 강하다. 지지율이 오르기는커녕 빠지고 있다. 포퓰리즘 하나도 똑바로 못하는 우리 검사 대통령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필수의료 인력을 조지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미용시장으로 빠진다. 허.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내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적폐고 카르텔이고 반국가 세력이기 때문이다. 하. 이것들을 반드시 조져야 하는데. 계엄령 포고문 5항 전공의 처단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대든 의료인들에게 조직을 관리하는 오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나한테 반대하면 반국가 세력이라는 그 사고의 이면에는 내가 곧 국가라는 오만함이 가득 차 있다. 그러니 내 반대편에 앉은 과학기술계, 은행들, 금융시장, 교육계, 의사들의 이야기 따윈 들을 필요가 없다. 대화도 하지 않는다. 내가 곧 국가고 내 맘대로 하라고 대통령선거도 이겼는데 뭐. 선거에서 0.7%로 간신히 이긴 주제에 17세기 태양왕에 빙의한 이 오만한 대통령은 지금도 자신의 처지가 개혁을 추진하다 암살당한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와도 같다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보수층들은 윤석열 탄핵안이 기각되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저렇게 믿는 사람이 다시 대통령 자리로 돌아온다면 어떤 짓을 벌이겠는가. 그는 반성하고 얌전히 있을 사람이 결코 아니다. 만약 기각된다면 그것이 보수 종말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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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통령이 믿는 부정선거의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여러 증거 중에서 일부는 대법원에서 해명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언뜻 보면 납득되지 않는 현상들이 많다. 하지만 그 이유는 우리가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전체 사실관계를 파악하려 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수천만 표를 두고 조작하면서 걸리지 않으려면 그 계획은 매우 치밀해야 하는데, 이제까지 선관위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저런 조직력과 저런 일 처리로는 부정선거를 할 능력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음모론을 믿는 모든 유권자들을 무시해야 할까. 아니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동물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음모론 믿고, 어떤 사람들은 광우병을 믿었다.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 합리적인 사람들 중에서도 코로나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한 만 65세 뇌과학자 유 씨(경제학 전공)께서는 미국이 달에 간 적이 없고 천안함 음모론을 믿는 것까지 모두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시지 않았나(링크). 나의 음모론은 합리적 의심이고 너희의 음모론은 무지몽매한 소리이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이다. 어떤 테마주가 버블이라는 주장과, 그 테마주의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다른 주장이다. 우리가 모든 음모론을 검증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나라의 수장이, 설령 그가 미쳤을지언정, 계엄의 사유로 부정선거를 들었다면 우리는 그 주장을 완전히 불식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검증에 나서야 한다. 그 목소리를 억압할 권리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없다. 참고로 세월호 사건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은데도 약 9번에 걸쳐 진상조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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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오로지 나만 맞고 너희들은 모두 다 틀렸다는 광신적 믿음 때문이다. 계엄을 지지하는 사람도, 열여덟 번의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좌파도 우파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남자도 여자도. 우리 모두 다 그렇다. 예전에 박사모들과 문빠들이 매우 닮은 집단이라고 주장했는데(링크), 저 둘을 비난하는 다른 빠돌이/빠순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정치적 심정지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상대의 생각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계엄이 맞았을 수도 있겠지, 친북친중 세력의 공작을 막기 위해서. 어쩌면 이재명이 사람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지. 어쨌든 우리 모두는 이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단지 그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상대는 나라를 망치는 주적이므로 나라를 지키는 것은 오로지 이것 밖에 없다는 그 편협한 생각이 모이고 쌓여 오늘 날의 비극을 낳은 것이다. 나 부터가 그러지 않았을까, 반성한다. 


2024. 12. 2.

그래, 대통령을 증원하자

그렇지 않은가? 매년 대선 후보로 10명에 가까운 후보들이 난립하지만 대통령 정원은 단 1명 뿐이다. 지대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게다가 대통령은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에 폭리를 취하고 깽판을 쳐도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의 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밀턴 프리드먼의 가르침에 따르면 대통령 정원을 늘려야 한다. 아니, 되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더 낫다는 것 아닌가.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모든 분야에 정부가 반강제적으로 정원만 늘리면 만사형통이라는 용산의 한심한 인식은 어떻고? 대통령을 증원하자는 말을 비웃기 전에 저 멍청한 관료들의 입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관치로 시장경제를 대체하겠다며 나대는 저들이야말로 스탈린주의자들이며 빨갱이들이다.



2024. 11. 10.

윤석열의 기괴한 사과와 눈먼 관료들의 정부

윤석열의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한 동료가 대통령의 장광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결국 '씨발 미안하다고 이 새끼들아' 이거네" 그는 대선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기자회견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평론가의 지적대로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형식과, 변명이 덕지덕지 붙은 사과의 내용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견 내내 보여준 저렴한 어투와 고압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불쾌감을 안겼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품격 있는 리더의 겸손한 모습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당황스러운 것은 그들이 이 회견이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임기 내내 그들의 정무감각은 처참하게 박살 나 있고 현실 인식은 기괴할 정도로 어긋나 있었으니까. 집권 후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대통령실과 여당이 17%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윤석열과 그 보좌관들이 거듭해서 이런 오판을 내리는 것이 나는 그들이 관료 출신이라는 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감각의 부재, 권위주의적인 태도, 개저씨라는 단어를 연상케 하는 후진 매너 등 관료로 오래 지낸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이번 정부에서 유독 강하게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대통령부터가 사상 최초로 관료 출신이고 원내대표도 관료, 당 대표도 관료, 심지어 당의 사무총장과 초대 비서실장까지도 모두 전직 관료로 꽉꽉 채워졌지 않은가. 군부독재가 끝난 1987년 이후 관료들이 이렇게까지 정치의 요직을 독점한 적은 없었다. 까라면 까는 사람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일 처리를 설득과 합리가 아닌 권위와 서열에 의존하는 사람들, 서류 결재 외에는 별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 그렇게 혁신이나 발전과 가장 거리가 먼 관료들로 수뇌부를 구성하고서 사회를 모조리 개혁하겠다는 대통령의 포부는 비참한 착각에 불과하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왜 제임스 뷰캐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과 같은 수많은 철학자,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관료제의 비합리와 비효율성을 비판했겠는가. 

한 언론사의 분석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2년간 공식 연설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약 1000번가량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금융시장에서 이렇게까지 심한 관치로 시장경제를 왜곡시킨 정부는 단연코 없었다. 현재의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반시장적이라고 비난했던 이전 정권 못지 않게 반시장적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국정농단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써야 한다고 일갈했는데, 국립국어원은 그보다 먼저 대통령이 이해하는 자유의 의미부터 다시 정의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부터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와 주장을 자주 인용했다. 그런데 이 경제학자는 관료조직은 시장과 달리 경쟁에 의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자원을 낭비하고 경제성장에 해가 된다고 주장했고 또한 관료주의적 이해관계에 얽혀 왜곡될 수 있는 정부의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하지만 윤석열과 그의 관료출신 부하들은 정확하게 프리드먼이 하지 말라던 짓들을 거듭했다. 그러니 나라의 경제와 한국 금융시장의 성적들이 좋을 턱이 없다. 자본과 시장은 사회주의자들을 싫어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능하고 권위적인 관료들도 혐오하니까.

과감하게 나선 기자회견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직접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임기 전반기에는 민간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간 주도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했다"라고 자평했지만 그와 그의 관료 쫄따구들은 단 한 번도 민간에게 주도권을 이양한 적이 없었다. 용산과 세종시는 공매도 금지를 포함하여 온갖 기괴한 규제들을 쏟아냈으며 각종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에 맞춰 일방적으로 기업의 오너들을 질질 끌고 다녔고, 민간 기업의 수주 성과까지 가로채 정권의 치적 홍보에 동원했다. 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간을 지배하는 이런 행태는 객관적 지표로도 드러난다. 동아일보가 한 리서치 회사에 의뢰하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30대 기업의 신규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은 약 47%로 이번 정부 들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70대 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결과는 비슷하여서 판검사와 고위 관료 출신의 비율은 41%로 전년 대비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견제/감시하지 못하고 사실상 합법적 로비나 뇌물을 전달하는 통로로 전락한 현실을 감안하면 기업이 어디에 돈을 뿌려야 득을 보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는 한 소설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면 정부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또 작은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집단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마찬가지로 권력을 쥔 고시 출신의 관료들은 지난 2년  반 동안 현실에 대한 얕은 이해만 가지고서도 경제와 시장을 제 입맛대로 뜯어고치겠다는 야만적 시도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단기적 문제를 해결하지도, 국가에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눈은 멀어 있다. 그렇기에 관료들의 정부는 실패할 것이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부패한 진보 사상가들에 이어 무능한 보수 관료들이 후퇴시킨 나라는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며 당신과 나는 계속해서 그들의 실패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안타깝게도.    

2024. 10. 21.

악법이 말아먹은 국장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문구를 상법개정에 포함하는 것을 가장 강하게 반대한 측이 재계와 법무부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문제를 놓고 벌인 좋은 토론이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여러 법조인들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법의 문구가 다른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느슨하거나 가벼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두고 대법원이 기존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쳐도 회사 법인에게 해를 끼친게 아니면 괜찮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재벌들의 국장서 돈 빼먹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법률가들은 이것이 온전히 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에 현실이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토론에서 반대 측에 선 권재열 교수는 상법체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지만, 엉망인 법을 지키자고 자본시장을 망가뜨리는 행동이 과연 정당한가. 애초에 상법과 자본시장법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자본시장이 이렇게 크게 왜곡될 이유도 없었다. 허술한 법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과 경제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법학자의 오만과 무지에 침을 뱉으라. 

정치철학은 rule of law(법의 지배)와 rule by law(법에 의한 지배)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 둘은 매우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전자는 공평무사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의미하지만 후자는 권력자가 제멋대로 법을 휘두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서양의 정치철학은 그 출발서부터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당나라 시절의 제도를 본딴 고시출신들의 법무부와 권재열 교수와 같은 사람들은 자본시장이 어떻게 되든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일단 악법도 법이니 너희도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마시라며 자본시장의 입에 사약을 밀어넣고 있는데, 자신들의 태도가 저 두 문구 중 어느 쪽에 서있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2024. 10. 19.

밸류없, 무능 그 잡채

새로 상법개정안이 공개되었다. 이딴걸 플랜이라고 들이밀며 자본시장의 거버넌스가 개선될 것이라며 주식을 사라는 정부와 경제관료들은 백치이거나 사기꾼들이다. 무능한 것일까, 부패한 것일까. 

뭐든 당장 전부 잘라라. 




2024. 10. 10.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돈 버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주가 없는 나는 작가였던 적도, 작가가 될 만큼의 재능을 가졌던 적도 없지만 늘 그들을 동경했다.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홀로 남아 손익을 정리하다, 창밖 먼 곳에서 차분히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는 그런 심정으로 그들을 선망했다. 그러던 중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랐던지. 문득 예전에 누군가 쓴 문구가 떠올랐다, "문학 만이 나에게 구원을 준다" 동경하는 이들의 위대한 성취에 왠지 모르게 울컥하여 거듭 찬사를 보낸다. 짝짝짝.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



2024. 10. 3.

왜 밸류업은 실패했는가: 고졸 6등급 과외하기


서학 개미들이 주로 미국 시장에 투자하다보니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미국 대비 성적이 저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절대평가로도 형편없는 것이다. 미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처참한 성적을 보이고 있으니까. 전 세계의 주식시장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성적이 나쁜 곳은 방글라데시, 라트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슬로바키아 이 다섯 나라뿐인데 그나마 비슷한 체급인 멕시코는 저점에서 40%가량 반등했다 하락했으니 그야말로 코스피는 세계 최악의 주식시장인 셈이다. 그 배경으로 금투세의 영향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국가들은 이미 자본이득세를 시행하고 있으며 작년에도, 또 재작년에도 코스피의 성적이 변변찮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예상 밖의 반도체 특수도 있지 않았나. 따라서 전쟁이 난 중동보다도, 심지어 경제제제를 맞은 러시아보다도, 그리고 ELS 사태를 촉발한 홍콩 지수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망하고 있다는 것. 

사실 이 프로젝트의 실패는 널리 예견된 일이었다.(링크) 이미 10년 전에 실패한 계획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밀어붙였으니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닌가. 만약 당신에게 밸류업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던 금융계 지인이 있었다면 그는 아주 멍청하거나 당신의 친구가 아니니 손절하라. 지난 대선에서 시장경제를 중시한다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기가 차게도 그와 그의 경제관료들은 지난 2년간 온갖 반시장적 정책들을 밀어붙이며 투자자들과 찌질한 기싸움을 벌였으니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관치로 망가진 밸류에이션을 관치로 고치겠다는 이들의 병든 철학이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금융사들에게 배당을 확대하지 말라며 꼬장을 부리던 정부와 규제당국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이젠 배당을 늘리라며 윽박지르고 있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더니 난데없이 제품 가격을 올린 소비재 회사를 비난하며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또 언제는 은행들 보고 대출을 늘리라고 했다가, 아니 늘리지 말라고 했다가, 아니 다시 늘리라고 했다가, 도로 늘리지 말라고 했다가, 아 다시 늘리라고 했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줄이라고 하기를 반복하지 않나. 십수 년간 멀쩡히 팔리던 ELS 상품을 난데없이 틀어막고 리스크 관리를 건전하게 해 온 은행과 보험사에게 부실 자산을 떠안으라고 강매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광적인 시장개입을 거듭하고 있다. 관치(官治)를 넘어선 광치(狂治)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업들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자신들의 공약을 철저히 배신했다.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부터 최근의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까지, 이사회가 다수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며 자본시장에 큰 악영향을 끼친 사례가 명명백백히 존재하는데도 여당과 정부는 당초 약속들을 뒤집어 이런 배임행위들을 금지하는 개정안에 반대했다. 정부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어도 여전히 재벌들은 물적분할에 나설 것이며 대다수 주주들이 가지고 있던 우량주들은 허울만 좋은 지주회사로 전락하여 밑도 끝도 없이 주가가 희석되는 것을 겪을 것이다. 되려 그들이 빨갱이라고 비난하던 야당과 한겨레 언론이 더 친시장적인 상법 개정안을 지지하는(링크) 이 기현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재벌 사회주의자들과 친북 사회주의자들 간의 웅장한 대결?   

정부의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는 엉성하게 구성된 밸류업 인덱스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많은 리포트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이 지수에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투자자들을 화나게 했던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며 주머니를 털어먹으려던 불건전한 회사들을 다수 포함했다는 것이다. 지수가 발표된 날 인덱스에 속한 주식들이 주식시장 평균보다 더 하락한 데에는 어이없는 종목 구성을 보고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한 탓도 크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눈속임이고 반쯤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자인한 셈이니까.

이 프로젝트의 실패를 단순히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거머리처럼 사기업의 이윤을 빨아먹는 일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신의 (잘못된) 정책을 위해 상장된 금융사들에게 부실 자산을 떠넘기거나 손실을 강제하고 있으며 그 비용들은 모두 주주들이 진다.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단 한번도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수백 명의 낙하산들이 북한의 오물 풍선처럼 각 기업들과 협회들에 우수수 내려온다. 이 백치스러운 퇴직 관료들은 무수한 직간접적인 비용을 초래하며 그 부담은 모두 민간영역으로, 돌고 돌아 해당 섹터의 주주들 앞으로 청구된다. 그런 전관들의 거의 유일한 효용은 오로지 정부나 규제당국을 상대로 펼치는 로비에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부수적 효과를 낸다. 물론 그 비용은 모든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몫이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빈사상태로 내몰릴 정도로 피를 빠는 거머리들의 명단에는 정부와 각료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어떤 이유를 내세우든 정부가 새 주식 인덱스를 내놓은 것은 관이 무엇이 좋은 주식인지 찍어주겠다는 의도를 다분히 내포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회사가 우량한지 판단하는 것은 시장의 영역이지, 세종시에서 멍 때리는 관료들의 일이 아니다. 평생 이윤을 추구해 본 적이 없는 집단이 전 세계 자본들이 모두 모여 경쟁하는 시장을 가르치려고 나대는 것은, 마치 수능 6등급의 고졸 낙제생이 아이비리그 입시를 가르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오늘도 왜 성적이 오르지 않냐며 머리를 벅벅 긁으며 미중 갈등이 문제다, 중동전쟁이 문제다, 모 회사의 보고서가 문제다, 라며 한심한 핑계를 늘어놓지만 정작 중국보다도, 이스라엘보다도, 기술주 비중이 더 높은 대만의 주식시장보다도 더 못난 것이 바로 코스피 아닌가. 이게 다 무자격 고졸 낙제생이 오만한 태도로 금융시장을 주물럭거리다 망쳐놓은 탓이다. 

경제관료들은 괴상한 망상에 빠져 있다. 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다, 우리가 좋은 주식들을 찍어주면 주식시장이 오르지 않을까? 아야, 너 정말 에이스구나. 오늘도 이 수능 6등급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서로 이게 정답이네 너 똑똑하네 주접을 떨지만 그들 앞에 놓인 성적표는 너무나 처참하다. 세계 꼴등. 이는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다. 생뚱맞은 인덱스 하나 내놓는다고 주가가 오르는 일 따윈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으니까. 정부의 역할은 그저 자본시장의 룰을 공정하게 세우고, 자본시장의 피를 빠는 거머리들과 도둑들만 속아내면 주가는 자연스럽게 펀더멘털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싫다면 허튼짓을 벌일 시간에 그냥 배민이나 뛰고 편의점 가서 알바나 해라. 차라리 그것이 국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더 기여하는 길일 테니까.


2024. 9. 21.

IMF의 기억-기재부는 어떻게 나라를 파산시켰는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국제사회는 이 침략국의 자산을 동결하고 대대적인 경제 제제를 가했다. 그리고 금융시장의 수많은 전문가들과 저명인사들이 러시아의 경제가 머지않아 파탄에 이르러 부도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너무나 자명한 일 아닌가.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을 때도, 심지어 유가가 마이너스로 폭락하던 코로나의 한가운데서도 이 동토의 나라는 파산하지도, 국가부도의 날을 겪지도 않았다. 모스크바는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다. 호들갑을 떨던 이들이 정수리를 벅벅 긁으며 머쓱해해할 무렵, 국제금융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설명했다. "자유로운 변동환율제 아래서 외환위기를 겪는 나라는 드물다"

반대로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거나 외환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던 나라들은 어김없이 위기를 겪었다. 러시아보다 더 자원이 많았던 남미의 나라들이나, 더 부유했던 선진국들도 예외는 없었다. 영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폴란드, 브라질 등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모두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그 리스트의 끝자락에는 우리나라의 이름도 있다. 왜 전쟁을 겪지도, 경제 제제를 맞지도 않았던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던가.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같은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자 IMF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끄집어내보자, 당시 경제관료들은 어떻게 나라를 파산시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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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 앞서 먼저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의 한국의 펀더멘털은 비교적 건강하기 때문에 같은 방식의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은 낮으니 97년과의 비교가 잘못된 인상을 전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은 관료제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지,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IMF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매우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조직 자체의 문제로 이들의 노력의 합은 빈번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때로는 파멸적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그런 폭주를 견제하지 못한 것은 구조적인 문제이지 대다수 공무원들이 사악하고 부패해서가 아니다. 조직이 무능한 것이다, 개개인이 아니라. 어떤 관점에서는 그들 역시 이 비합리적인 조직의 희생자들이기도 하다.  

1997년 외화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국가적 위기를 야기한 그 배경을 두고 우리는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 원인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외적 환경,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나 일본의 버블 붕괴 때문에 한국이 유탄을 맞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악화된 대외적 여건도 물론 중요한 요인이지만 원래 거시환경은 좋다가 나쁘기도, 나쁘다가도 좋기도 하는 것 아닌가. 97년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대외여건이 훨씬 나빠진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부도 위험에 처한 것은 오로지 그때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달랐던 것인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핵심은 비탄력적인 환율에 있었다. 당시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정무적인 이유로 낮은 환율을 고집했다. 당시의 기사들과 여러 시장 참가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외환시장의 일과는 기재부(당시 공식 명칭은 재정경제원)의 눈치를 살피는 일로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적자를 찍든 해외송금액이 줄든 늘든, 관에서 내려라 하면 내리는 것이고 오르라 하면 오르는 것이 환율이었던지라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관의 눈치를 살피며 거래를 했지 경제지표들을 분석하지 않았다. 애초에 펀더멘털을 무시했던 것은 환율을 결정하는 관료들이었다. 경제 부처에서 청와대를 거쳐 정치권에 입문하는 것은 당시에도 매우 인기 있던 출세 루트였던 터라, 많은 관료들은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며 정책들을 짰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주요 경제적 성과로 OECD 가입과 국민소득 1만 불 달성을 내세웠기 때문에 낮은 환율을 선호했고, 청운의 꿈을 꾸며 청와대를 바라보던 경제 부처의 여러 고위직들은 이에 동조하여 아주 무리하게 낮은 환율을 유지했다. 이런 선택은 이후 아래 몇 가지 사안과 맞물려 큰 재양을 초래했다.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기재부는 세계화라는 표어 아래 여러 개혁적 조치들을 내놓았는데, 그중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은 규모가 작고 전문 인력들이 미비했던 소규모 단자회사(단기자금회사)들을 대거 종금사(종합금융회사)로 전환시키고 그들에게 외환 조달과 여수신까지 허용한 일이다. 오늘날로 치면 러시앤캐시나 듣보잡 저축은행 같은 회사에 면허를 모두 몰아줬다고나 할까. 이 단자회사들은 본디 지방에서 주로 사채업을 하던 회사들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외화를 조달해 국내에 풀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으니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생소했던 종금사들이 해외 금융시장에서 어떻게 외환을 조달하겠는가? 여기에 전직 기재부 관료들이 등장한다. 당시에는 경제관료들이 퇴임 후 각종 금융사의 임원으로 가는 것이 지금보다도 더 흔하던 시기였는데, 이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했던 기관들 중 하나가 바로 종금사였다. 90년대 중반에 강남 아파트 한 채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고 재취업한 전직 관료들은 시중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관이 누우라면 눕고 서라면 서던 시중은행들은 부실한 그들의 회사에 외화를 공급했다. 즉 시중은행들이 높은 대외 신인도를 바탕으로 해외에서 달러를 조달하고 나면 위험관리도 안 되고 자본도 부실한 종금사들이 전관들을 비롯한 여러 루트를 동원해 가져간 것이다. 그들은 이를 영향력이라고 하지 않고 영업력이라고 불렀다.

정부가 새 업종에 특혜를 주고, 우후죽순 생긴 신생 종금사들이 경제관료들을 뽑아가며, 그렇게 빳빳한 새 명함을 든 고개 뻣뻣한 전관들이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에서 달러를 뽑아다가 돈을 버는 조선식 창조경제 일자리는 처음에는 그럭저럭 돌아갔다. 특히 반도체 특수와 맞물렸던 당시에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1996년 D램 가격이 폭락하자 낮은 환율을 고집했던 한국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환율이 치솟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관료들은 외환시장에 대한 통제를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리석으면서도 오만했던 그들은 세 번째 실수를 저질렀다. 사실 우리가 외화부족 사태를 겪은 것은 97년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과거 최소 4번 이상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일본에서 차관을 도입하거나 미국 재무부의 협조를 받아 문제없이 고비를 넘겨왔기에 기재부는 이번에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반도가 이념대결의 장이 된 이후 미국은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남한의 경제를 구제해 주었기에, 그 타성에 젖은 한국의 관료들은 이번에도 우방국이 이 위기를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현역이었던 부시를 물리치고 백악관에 들어서지 않았던가. 오랜 저성장을 끝내기 위해 이 젊은 대통령은 동맹국들이 불공정 무역을 일삼는 것을 더는 좌시하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와 재무부는 불평등한 무역조치들과 비관세 장벽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 기업들이나 상품을 차별하는 조치를 내놓는 동맹국들에게 기존의 특혜를 제공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상응하는 조치를 가하겠다고 통보했다. 냉전 이후 바야흐로 정치가 아닌 경제논리가 워싱턴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게다가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의 북한 핵 시설 폭격을 저지하고 제네바 핵 협상에서 배제되는 등 관계가 매우 나빴기 때문에 미국의 호혜적 지원을 기대하기 아주 어려웠다. 그것도 비정상적으로 낮은 환율과 부실한 제도로 실시간으로 외화를 탕진하는 한국의 사정을 고려하면 더더욱. 하지만 여전히 경제관료들은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에 돈을 퍼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공무원들의 사고 구조는 늘 그렇게 삼엽충 화석처럼 굳어있는 법이니까. 따라서 정부는 구제금융이 필요하지 않냐는 시장과 외신의 질문에 코웃음을 치며 큰소리를 쳤다. 그들의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후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배신감으로 돌변해 IMF 막후에 미국의 음모가 있었다는 피해 망상의 근원이 되었다. 

하지만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한국에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IMF와의 협상 과정에서도 이 관료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꼬장을 부렸다. 부실의 핵심이 된 종금사들을 모두 일괄 정리하라는 협상단의 요구를 거절하곤 한국 정부와 공동 실사 후 선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끝까지 부실의 핵심이었던 종금사를 감싸고돌았다. IMF가 요구했던 관치금융의 철폐, 자본시장 개방, 노동/금융시장 개혁 등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선진화의 필수조건일 뿐 아니라 자본을 끌어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관료들은 끝까지 한국식 관치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며 똥고집을 부렸다. 누가 같은 핏줄 아니랄까 봐 북쪽 동무들처럼 벼랑 끝 전술을 펼치는 한국 관료들을 보며 IMF와 막대한 자금을 출자했던 미국의 실무자들은 한숨을 내쉬었고, 이를 보고받은 미 재무부 장관은 격분하며 이런 태도를 보이는 나라를 구제할 방법은 없다며 조기 지원을 반대했다. 하지만 펜타곤과 주한미군 사령관까지 나서서 구원을 요청하고 한국 역시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가용 외화보유고가 20억 불 아래로 떨어져 불과 일주일도 버티기 어려워지자 양 측은 개혁안에 합의했고 IMF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결국 나라를 외환위기라는 폭풍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무능한 경제관료들이었다. 물론 방만한 경영과 무분별한 차입에 의존한 대기업과 금융사들의 잘못도 있지만 원가가 만원인 국밥을 나라가 오천 원에 팔라며 돈을 대주다 끊어서 식당들이 부도났다면, 국밥 장사를 하던 사장님들이 문제일까? 아니면 비정상적인 이유로 돈을 대주다가 끊은 나라가 문제일까? 게다가 기업들과 금융기관은 그 값을 치렀다. 우리나라 30대 대기업 중 거의 대부분이 부도를 냈거나 자회사를 매각했고 당시만 해도 5대 은행으로 불리던 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이 모두 인수되거나 합병되어 사라졌으니까.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룬 탓에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상당히 낮은 편이며 대형은행들 역시 매우 탄탄한 재무제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를 파산으로 몰아간 경제관료들과 정부 조직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적으로 아무런 처벌이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행이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있다며 23차례나 기재부와 청와대에 보고를 올렸지만 모두 묵살됐으며 KDI 역시 97년 3월에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간했지만 기재부는 이 보고서의 발간을 막고 이미 발행된 부수를 회수하기까지 했다. 이를 진두지휘한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기재부 출신의 김인호 경제수석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으로 기소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또 외환위기를 악화시킨 종금사들이 1995~1996년에 무더기로 허가가 난 배경 역시 핵심 의혹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밝혀진 것 없이 국정조사가 마무리됐다. 또 종금사 허가 때문에 책임지고 처벌받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고작 6급에 불과했던 자금시장과 주무관에게도 다수의 종금사들이 무려 천만 원이 넘는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실(링크)로 미루어 볼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배경에 뭔가 석연찮은 동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건국 이래 최대의 환난이라고 했던 IMF는 이렇게 발생했다. 기재부가 변화한 거시환경에 눈을 감고 저환율을 밀어붙이고, 무자격 부실회사들이 무분별하게 단기외채를 쌓는 것을 적극적으로 조장하였으며, 그렇게 문제가 터지자 다른 기관의 입을 틀어막고서, 달라진 국제관계를 무시한 채 관행적 대외원조에만 매달리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은 것이 바로 IMF의 본질이다. 그 가운데 경제관료들은 정치권에 줄을 대거나 민간 금융사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전관 대접을 받으며 출세를 노렸고, 이미 그렇게 출세한 그들의 선배들은 그 연줄을 한껏 이용해 국가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대로 비틀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국가 부도의 길이었다. 그러다 나라가 망할뻔하자 그들은 전국민 가스라이팅에 나섰다. 순진한 국민들은 무분별한 해외여행에 나섰던 과거를 반성하고 금모으기 운동에 나서며 국산품을 애용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확보한 외화는 당시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바보같이 탕진하던 금액의 불과 며칠 치 밖에 되지 않았다. 환란의 주범으로 몰린 경제관료들은 자신들은 불을 끄는데 실패한 소방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무리한 환율조작에 나서다 나라를 홀랑 태워먹은 그들이 방화범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가스라이팅에 몰두하다 진심으로 자신이 선의의 피해자라고 믿게 된 과천의 사고뭉치들은 결국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했다. 바로 탐욕스러운 양키 금융가들이 의도적으로 아시아 외환위기를 촉발하여 결과적으로 한국의 자산을 싸게 샀다는 것. 게다가 IMF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기에, 일본이 우리를 도와주려 했지만 양키들이 일본의 원조를 막고 한국의 외채 상환을 독촉했으며, 또 한국에 호의적이었던 IMF가 강경하게 돌아서도록 막후에서 조종했다는 민족주의적 음모론이 등장했다. '그래 내가 국가를 부도낸 것이 아니라 미국이 나로 하여금 부도를 내도록 조종했다, 이거야.' 하지만 그런 견해에 동의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이는 현실도피를 위한 애처로운 망상에 불과하다. 계속해서 인위적 환시 개입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과도한 관치금융과 비정상적 리스크를 진 국내 금융기관의 위험성, 그리고 폐쇄적인 자본시장으로 인한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한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그 모든 조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다 부도를 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 자신이었다. 실제로 외환위기가 터지기 불과 1년 전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MIT의 뤼디거 돈부쉬 교수가 당국자들에게 환율시장을 통제하는 정책의 잠재적 위험성을 경고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 관료들은 거기에 "한국의 금융시장은 성숙하지 못해 이렇게 통제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돈부쉬 교수가 지적한 바로 그 이유로 한국은 국가부도에 내몰렸으니, 미개한 것이 한국의 금융시장이었을까 아니면 한국의 관료들이었을까. 

그들의 뒤틀린 세계관은 미 로버트 루빈 미 재무부 장관과의 일화를 기억하는 방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과거 루빈 장관이 골드만 삭스의 회장으로 있던 시절 그가 과천 기재부 청사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원래 장관이나 차관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둘 다 각기 개인 사정을 이유로 자리를 비웠고 따라서 루빈은 과천 청사의 비상계단을 걸어 오르락내리락 하며 뺑뺑이를 돌다 고작 과장 하나를 만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수모를 당한 루빈 장관이 이후 한국과의 IMF 협상에서 그가 거칠게 나온 배경이다,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그 일화를 거듭 언급하는 관료들의 의식 저변에는 우리가 귀한 분인 줄 몰라뵙고 의전에 실패했기 때문에 한국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라는 너무나 김치스러운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관료들이 금융사들 법카를 빌려다가 그를 풀코스로 모셨어도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당시 한국의 외화보유고는 2011년에 관료들과 국내언론이 그렇게 비웃고 멸시하던 그리스보다도 훨씬 더 작았고 기업들의 부실은 더 심각했으니까. 부패하고 도태된 조직문화의 수호자들답게 그들은 IMF의 원인을 접대와 의전에서 찾았다, 발전된 선진국의 시스템에서는 민간 영역의 인사가 공공 부문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대신에.   

하지만 실제 구제금융의 배경은 관료들의 망상과는 매우 달랐다. 당시 아시아에서만 해도 한국뿐 아니라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했으며 게다가 우리에게 지원된 패키지는 역사상 최대 규모로 IMF가 과거 영국에 지원한 액수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러니 여차하면 추가 출자가 필요할 수도 있던 상황에서 최대 출자국인 미국의 협의 없이 IMF가 막대한 자금을 쓸 수는 없었기에 쩐주인 미국 재무부 차관이 함께 파견된 것이다. 게다가 당시 그들이 요구했던 포괄적인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은 매우 교과서적인 내용들로 낙후된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던 사안들이었다. 자본잠식에 빠져도 연줄만 잘 대면 화수분처럼 대출이 나오던 금융과 과도한 중복투자, 연공서열로 돌아가던 종신고용제, 그리고 불투명하게 관치가 판치던 금융시장이 오늘날까지 지속되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은 어땠을까? 관료들은 당시 미 재무장관이 월가 출신이어서 약탈적인 투자회사들의 입장을 관철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IMF 지원 결정 이후에도 추가 대출을 꺼리던 JP모건과 시티은행에 압박을 넣어 한국이 낮은 금리로 달러를 조달하게 도운 것은 바로 그 루빈이었다. 물론 IMF의 처방에도 흠결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과 개입으로 경제를 파탄내 놓고서도, "나는 금융사 법카로 룸싸롱에서 마이웨이나 부르며 하던 대로 할 테니, 너희는 얌전히 돈만 두고 가라" 라는 요구를 들어줄 상대는 없다. 나라가 파산한 것은 관의 도덕적 해이가 파산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료들은 한국이라는 방구석에서만 통하던 자신들의 여포짓이 해외에 먹히지 않으니 해묵은 자본주의 음모론으로 메타버스를 구축하고 그것이 외환위기의 배경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작년 크레디트 스위스라는 대형 금융사가 붕괴했지만 스위스는 망하지 않았다. 2008년 리만과 메릴린치가 파산하며 금융시장이 붕괴했지만 미국은 망하지 않았다. 무리하게 빚을 내고 투자를 했다가 회사가 망하는 것은 그 회사의 문제지만 그렇다고 나라가 같이 파산하는 것은 국가의 문제다. 제도의 문제다. 외환위기의 배경을 뜯어보면 무분별하게 부실을 키운 기업들의 파산 이전에 외화보유고를 탕진하고, 부실을 키우라고 적극적으로 독촉했으며, 문제 제기를 막은 기재부와 관료들이 있었다. 그 결과 한국은 전쟁을 겪거나 금융제제를 얻어맞은 나라조차도 겪지 않았던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와 관료들은 참사를 초래한 자신들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축소하였고 우리가 기억 속에서도 그들이 저지른 참사는 재정경제원이라는 이름과 함께 시나브로 지워졌다. 그래서 여전히 그들을 견제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그 이후 25년, 기업들은 혁신을 이뤘고 은행들의 대차대조표는 훨씬 더 건전하다. 97년 이후 한국경제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상당 부분 개선했다. 하지만 환란의 주범인 기재부는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여전히 똑같은 구조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마치 구제금융을 신청하던 그날이 어제인 것처럼. 우리는 과연 IMF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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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건을 다시금 끄집어내어 사실관계를 정리한 이유는 이것이 아직도 끝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IMF 구제금융을 받아 개혁안을 수용한 일은 당시 많은 기재부 고위공직자들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남겼는데, 이후 관가에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부류가 탄생했다. 그들의 신념은 환율주권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한 나라가 자신의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주권의 영역이라는 것. 그러나 환율이라는 것은 달러화와 원화의 거래비율을 의미하고, 이를 결정하는 것이 한국 정부라면 반대로 미국 정부에게는 주권이 없어야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이 과천에, 뒤이어 세종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이 믿음은 외환위기가 어리석은 관료들의 처참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외국의 투기세력으로 인해 촉발된 일이라는 생각을 내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관을 개혁하고 견제할 것이 아니라 되려 우리 관료들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정부의 시스템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늘린 권한으로 이 신흥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은 여전히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다닌다. 리만사태 전후로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금융시장 밖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사례를 열거하면 끝도 없다. 특히 거시환경이 급변할 때마다 그들은 엄청난 실패를 저질렀다. 2000년대 대표적 환율주권론자였던 강만수와 최중경 듀오는 수출을 위해 높은 환율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주권이니까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환율을 방어하겠다며 무제한으로 달러를 사다 수조 원의 손실을 내고 항복하더니, 얼마 후 리만사태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자 갑자기 돌변해서 이번엔 낮은 환율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주권이라며 막대한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다 또 위기를 맞는다. 붕괴의 진원지에 있던 연준조차도 경제적 여파를 가늠하지 못해 사력을 다하고 있던 순간 법대 학부 출신의 장관까지 나서서 이제 곧 환율이 안정될 것이라며 큰소리를 치며 정부는 미네르바라는 전문대 나온 무직 블로거와 영혼의 맞다이를 벌였지만 환율이 하루 세 자리수 씩 오르자 처참하게 패배했고, 그러자 그들은 다분히 보복적인 의도로 그를 기소했다. 죄명은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유포. 하지만 실제로 허위사실을 적극적으로 뿌리던 것은 바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관료들 아니었던가.

바닥에 떨어져 짓밟힌 체면을 살리기 위해 그들은 또다시 언론 플레이와 대국민 가스라이팅에 나섰다. 당시 연준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미국 내의 자산 가격뿐 아니라 미국의 기관들이 보유한 해외자산의 가격도 안정시켜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여러 신흥국들의 외화스왑라인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버냉키의 회고록에 이 과정이 서술되어 있는데, 당시 미 금융기관들의 익스포저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선별하여 브라질 싱가포르 멕시코 4개국과의 통화스왑을 일괄적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연준이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진 네 신흥국들과의 스왑라인을 같은 금액으로 결정해서 같은 날에 발표한 것을 고려하면 이 프로그램에 한국 정부의 역할이나 기여도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뉴스를 접한 기재부는 이게 웬 떡이냐며 마이크와 기자들 앞으로 달려가 아, 이게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가 노력한 한국 경제외교의 쾌거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이 허풍은 두고두고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앞서 거시환경이 급변할 때마다 기재부가 크게 삽질을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최근에도 거시환경이 크게 변했다. 그러자 경제관료들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삽질을 시작했다. 연준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나서며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자 그들은 선제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환율은 1200원보다도 낮았던 데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 크게 강세였으며 결정적으로 한국의 무역수지가 건국 이래 최대 적자폭을 기록했던 시점이기에 그렇게 낮은 환율에서 펼치는 정부의 매도 개입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 그깟 경제지표가 나라님의 발목을 잡을 소냐. 한국은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외환보유고를 퍼부었는데, 그들이 이후 1년간 환시 개입에 쓴 규모가 코로나 당시에 시장안정에 투입된 보유고의 무려 5배에 달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옆 나라 일본의 사례와 비교해 보자. 일본중앙은행의 경우 연준의 첫 금리 인상 이후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것은 불과 네다섯 차례뿐인데 그 모두 환율이 현재보다 현격하게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졌으니 일본의 환시 개입은 시가평가 기준으로도 모두 큰 이익을 본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같은 기간 거의 매달 매도 개입에 나설 정도로 아주 빈번하게 시세조작에 나섰는데 그마저도 대부분을 올해 상반기 말 기준보다도 낮은 환율에 팔아버렸으니 상당히 큰 평가손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개입은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움직이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금융관료들은 아주 빈번하게 시장개입에 나서 비이성적인 결과를 초래하니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과거의 허풍이 만기 된 어음처럼 돌아왔다. 그들도 기억력은 있는지라 이렇게 계속 달러를 퍼붓다 외화보유고를 거덜 냈던 과거의 사례들을 떠올렸다. 따라서 그들은 보유고를 쓰지 않고도 개입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과거 통화스왑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연준이 스왑라인을 열어준 것은 국제금융시장이 극심한 패닉에 빠져있을때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위한 것이지, 너희 마음대로 펀더멘털로부터 벗어나서 환율조작을 하라고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절대 아니다. 마치 실업급여는 부득이하게 해고된 실직자들을 위한 것이지, 몇 달 일하다 자발적으로 잘려서 여행비로 흥청망청 쓰라고 있는 프로그램이 아닌 것처럼. 게다가 지금은 미국이 유동성을 흡수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라 리만이나 코로나 시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기에 연준이 통화스왑을, 그것도 무모하게 환시 조작에 나선 한국에게 열어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법. 과거 통화스왑을 마치 FTA와 같은 경제외교의 성과처럼 포장했으니 이제 와서 통화스왑이 안된다면 경제외교를 못했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경제관료들은 마치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들처럼 계속해서 연준과 미국 재무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려야 했다. 이를 바라보는 미국 재무부와 연준의 눈에 한국 관료들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실제 배경이나 제도의 취지도 모르고 예나 지금이나 관료들이 불러주는 대로 기사를 쓰던 국내 언론들도 마치 통화스왑이 마치 매달리면 될 것도 같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 이는 무척이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국제정세에 무지한 채 타성에 젖어 미국과 일본의 직접 지원에 매달리던 97년의 재경원과 22년의 기재부는 매우 닮아 있었다.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이 어디 그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부실한 PF를 살려보겠다고 관치금융의 주먹을 휘두르다, 집값이 오르니 이젠 마치 조현병 환자처럼 반대쪽 주먹을 휘두르는 금융위, 금감원, 기재부, 그리고 대통령실의 전직 기재부 출신의 관료들. 기자회견 이후 돌아서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종금사를 감싸고돌던 과거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 나 하나뿐은 아닐 것이다. 무역수지가 빠르게 적자로 돌 때, 불가능한 정책목표에 매달리며 국가자원을 소진하고, 소수의 이익단체들을 비호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 다른 시대, 다른 상황에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것은 명확하게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정부의 시장개입을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꾸준하게 실패하는 역사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실패는 당신과 나의 유년 시절의 비극을 낳았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한심한 개입은 외환시장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의 거듭된 실패는 기재부의 칸막이를 넘어, 교육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사실상 정부의 전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기재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던 밸류 업은 코스피 다운으로 나타나는 중이고 국토부는 주택 공급에 10년 넘게 실패하고 있으며, 필수 의료를 살리겠다던 보건복지부는 성형외과 개원의들이 아닌 필수과 전공의들이 파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능한 관료들이 사방에서 나라를 파산시키고 있다.

옛말에 잘못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던가. 현대사회에서 잘못된 정책은 전쟁보다도 무섭다. 그것이 IMF에서 우리가 얻은 진짜 교훈이다. 이젠 정부와 관료들이 주도하는 경제모델은 성공할 수 없다. 오늘날의 시스템은 더 이상 고작 학부 나와 십수 년 전에 행시 붙은 게 인생 업적의 전부인 비전문가들이 순환보직을 돌다 몇 날 야근한다고 해서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이 뒤처진 관료조직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권력을 확장해가며 민간을 지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슨 무슨 개혁안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관 주도의 성장 모델은 이미 지난 세기에 한보와 조흥은행과 함께 파산했다. 정부와 관료조직은 결코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되려 그들은 가장 시급한 개혁의 대상이다. 그러니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 또 삽질하다 외환위기 같은 것이나 터뜨리지 말고. 명심하라. 당신들이 정말로 개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도태된 자기 자신뿐이다. 




위의 내용은 이제까지 언론에 공개된 내용과 개인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2024. 8. 10.

니케이 폭락과 매미

8월의 첫 주는 트레이더들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한 주였다. 월요일 장 개장 이후 니케이 지수가 버블이 터졌던 1987년 이후 최악의 폭락을 연출하더니, 바로 다음날 사상 최대 폭으로 상승하며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럴 줄 모르고 그날 하필 친척 동생과 식사를 잡았던 터라 몇 번이나 시간을 늦춘 끝에 간신히 약속 장소에 내 멍멍한 얼굴을 드리밀 수 있었다. "주식이 왜 이렇게 폭락했어요?" 금융권 진로를 희망한다던 그 똘망똘망 한 눈이 던진 그 단순한 질문에 나는 멍한 눈으로, 아 이게 엔케리라는 게 있는데 그게 청산이 되어서, 혹은 기술주 실적이 기대만큼 좋지 못해서, 라며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웅얼웅얼 읊었지만 내심 그 어느 것도 폭락의 진짜 이유라고 믿지 않았다. 우라까이를 남발하는 싸구려 경제기사와 방송에 얼굴 내밀며 젠체하기 바쁘신 저 전문가 호소인들이 지목하는 폭락의 원인들이야 많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반박할 충분한 근거들도 존재하니까. 

아마도 진짜 원인은 시장 전체가 과도한 자기 확신과 집단사고에 빠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주의 실적이 과거의 페이스만큼 개선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또 소비의 둔화 없이 이렇게 빠른 금리인하가 펼쳐질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하지만 시장은 그 드문 확률이 실현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단일대오를 유지하며 밀어붙이던 무리들에서 갑자기 한둘씩 이탈하기 시작하자 시장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칸나이 평원에서 한니발에게 포위당해 학살당하던 로마군처럼. 장이 열리고 닫히기까지 그 몇 시간 동안 트레이더들은 자신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여러 상관계수들이 무참하게 갈려나가는 것과 롱과 숏으로 이루어진 여러 자산군들이 통계적으로 극히 희귀한 수준까지 튀어 오르는 것을 멍하니 지켜 보다 다급하게 손절에 나섰다. 그렇게 자비를 구걸하던 투자자들의 손절이 끝나고 나자,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반등하고야 말았으니 손실을 낸 이는 물론이고 수익을 낸 트레이더에게도 참으로 고통스러운 한 주였다.


*               *               *


이렇게 지수의 등락에 따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반복하다 지쳐 가까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던 길이었다. 1층 엘레베이터 현관 앞 자동문이 닫히자 갑자기 파드닥 하고 바닥에서 무언가가 튀어 오르다 천장에 부딪쳐 떨어졌다. 이미 니케이에 한차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게 뭐야 그냥 매미였다. 여름이 저물어가듯, 그리고 하나의 사이클이 저물어가듯 숨이 멎어가는 매미 한 마리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생의 끝자락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안쓰러워 "땅속에서 평생을 보낸 네가 그래도 마지막은 하늘을 보며 맞아야지"라는 생각으로 후후 불어 자동문밖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웬걸. 밖에 나가자마자 이 죽어가던 매미새끼가 발악하듯 날개를 파닥거리며 다시 현관으로 들어와 온 힘으로 조명을 들이박고 또 바닥으로 나자빠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미련한 시키가. 나는 다시 손을 휘휘 저어 자동문을 열면서 숨을 후후 불어 매미를 밖으로 내보냈지만 이 파고다 공원 할배마냥 고집 센 매미는 또 문이 닫히기 전에 실내로 들어와 천장 조명으로 돌진하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하. 그래 내가 포기한다. 네가 이겼다. 네 맘대로 죽어라,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본능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는 한 가지 실험을 계획했다. 미리 섭외한 몇 명의 연기자와 피실험자 하나를 같은 방에 앉히고 그들에게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한 뒤에 방에 연기를 흘려보냈다. 물론 섭외된 연기자들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설문지를 작성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피실험자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두리번대다 다른 이들이 침착하게 앉아있는 것을 보며 불안해하면서도 자신도 똑같이 앉아 착실히 설문지를 채워나갔다. 계속해서 스며드는 연기에 고통스러워하며 콜록거리면서도. 반면 대조군에서 혼자 방안에 있던 피실험자들은 연기가 발생하자마자 밖으로 달려나갔다고 한다. 죽어가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빛을 들이박는 것이 매미의 본능이듯, 사방에서 위험 신호가 번쩍이는데도 가장 붐비는 포지션을 택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 인간은 홀로 살아남기보다 함께 죽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트레이더들은 어떻게든 살아서 수익을 내야 하는 존재아닌가. 그러니 나와 당신은 계속해서 본능을 거슬러 싸워야 한다. 그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러니 이 주가 어찌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휴, 그리고 딸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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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6. 30.

19세기 청전철폐와 21세기 공매도금지

친정을 선포한 고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임자 대원군의 흔적들을 지우는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도입했던 여러 제도를 폐지하거나 되돌리면서 명목상의 이유로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는 상투적 수사에 불과했다. 그러다 이 미욱한 왕은 큰 사고를 친다. 당시 청나라의 화폐를 수입하는 것이 직접 화폐를 주조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낮았기에 대원군은 청전(淸錢)을 국내로 수입해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민간 거래뿐 아니라 세금 납부까지 모두 이 화폐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국고의 재정 역시 대부분 청전으로 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종은 육조판서는 물론이고 의정부 정승들과의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또 아무런 유예기간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 청전의 사용을 금지한다. 난리가 난 것은 백성들 만이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국고에 수납된 청전 300만 냥이 휴지가 되자 조정이 쓸 돈이 없었으니 1주일 만에 조선은 파산에 내몰렸다. 졸지에 셀프로 거지가 된 고종이 재정을 담당하던 호조판서에게 물었다. "국고에 돈이 얼마나 남았는가?" 호조판서는 김세균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급한 지출과 사용이 금지된 청전을 빼고 나면 딱 800냥이 남습니다." 500년간 이어진 조선은 이제 단 1주일 만에 파산의 위기에 내몰렸다. 어떤 멍청한 왕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수를 인정하고 자신의 칙령을 거두어들이는 대신 청전철폐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조정 대신들에게 대안을 마련해 오라며 윽박질렀다. 고종은 말했다. "청나라 돈 때문에 날이 갈수록 물건은 귀해지고 돈은 천해져 지탱할 수가 없다. 백성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비단 옷과 쌀밥도 편안하지 않다. 청전은 혁파되어야 하며 모든 세금은 반드시 상평통보로 거두라" 하지만 정작 백성들에게 인플레보다도 더 큰 고통을 안긴 것은 멍청한 왕의 독선적인 개혁이었고 나라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진 동안 그는 여전히 비단 곤룡포를 입고 쌀밥에 12첩 반상까지 곁들여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처먹고 가베(커피)로 입가심까지 했다. 결국 대신들은 조정의 지출을 벌충하기 위해 세금을 추가로 징수하고 나라가 보유한 자산을 팔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꿀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고종은 떠 환곡까지 팔아 치우기로 결정한다. 환곡은 흉년이 들어도 다음 해 농사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백성들에게 종자나 곡식을 꿔 주는 일종의 보험이었는데 고종은 이를 털어 모자란 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영의정 이유원이 반대했다. "환곡은 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이를 모두 돈으로 바꾸는 것은 원대한 계책이 아닌 듯 하옵니다." 하지만 고종은 고집을 꺾고 청전폐지를 유예하는 대신 조선의 몇 안 되는 복지제도를 털어먹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뻘짓에 뻘짓을 거듭하면서도 그는 백성을 핑계로 들었다. "(청전폐지가)참으로 백성에게 이롭다면 나라 재산에 손해가 나더라도 무슨 해로움이 있겠는가" 근데 정작 나라 재산을 거덜내고 백성에게 큰 해를 끼친 것은 자신의 급진적 조치가 아니었던가.

비슷한 사건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2023년 11월 한국의 금융당국은 불법 공매도의 폐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전격적 조치를 발표했다. 금융위기가 아닌데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것은 국내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고 해외의 사례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규제 당국의 의지는 확고했다. 불법 공매도의 폐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지만 금감원이 압수수색을 펼친 결과 적발한 사례는 그런 비상조치가 과연 필요했는지 의구심을 낳았다. 규제당국은 먼저 두 외국계 증권사의 지난 몇 년 치 거래내역을 모두 뒤져 총 540억 원의 불법 공매도 사례를 적발했는데, 국내 주식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이 20조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흐르는 강에 콜라 한 캔을 부은 것처럼 미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금감원은 추가로 공매도 상위기관 14곳을 조사하여 1500억여 원의 불법 공매도 사례를 적발한다. 하지만 동기간 국내 주식시장 거래량이 총 몇 경원에 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여전히 별 의미가 없는 수치에 불과했다. 

게다가 적발된 상당수의 사례들은 단순 실수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금감원의 자체 발표에서도 입증되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례들은 시스템 미비 때문에 발생했는데, 구체적으로 입력 실수나 대차물량의 중복 계산, 혹은 수기입력 과정에서 차입수량을 잘못 입력했거나 빌린 주식의 규모가 확정되기 전에 매도 주문을 제출하는 등, 대부분이 단순 착오나 실수에 의한 것으로 시세조종이나 미공개 정보의 이용 등 불공정거래와 연계된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국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들은 이미 적발된 두 회사에 역대 최대의 과징금을 때리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이 비정상적인 당국의 조치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공매도 금지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추측했다. 심지어 해외통신사인 블룸버그조차 4월 총선을 목적으로 내놓은 조치라는 평가를 내렸다. 저명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한국의 어이없는 조치를 두고, 이것이 바로 MSCI가 한국을 선진국 지수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다, 윤석열 정부가 MSCI 승격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대대적으로 홍보하다 총선 전에 목표 달성이 어렵자, 갑자기 뒤통수를 쳤다고 평가했다(링크). 투자계의 구루인 짐 로저스 역시 이 조치는 명백한 실수고 아주 어리석은 짓이라며, 정부가 이런 짓을 벌이기 때문에 한국은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혹평이 어디 언론뿐이겠는가. 금융시장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발표 직후 매수 사이드카를 발동했던 주식시장은 바로 다음날 반대쪽 사이드카를 걸며 이 전대미문의 병신 놀음에 화려한 병신굿으로 화답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선진국 대열에 끼워달라고 매달리던 한국의 규제당국이 갑자기 돈키호테로 돌변하여 자살골을 넣으면서도 그들은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핑계를 댔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전수조사로 적발된 공매도의 규모는 극히 미미했고 그마저 대부분 단순 실수로 드러났다. 오히려 정부의 난데없는 조치로 출렁인 금융시장의 시가총액의 변화가 적발된 공매도의 규모보다 몇백 배가 더 컸으니 투자자들에게 고통을 안긴 것은 공매도가 아닌 바로 금융당국이나 다름없다. 마치 구한말 조선 백성에게 혼란을 안긴 것이 청전이 아니라 고종의 청전철폐 조치 그 자체였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에 빙의한 금융당국은 실수를 인정하기는커녕 시장과 기싸움을 벌이며 압수수색의 범위를 크게 늘렸다. 하지만 이 사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구한말 고종만큼이나 무능하고 미개한 한국 규제당국과 정부-여당이 금융시장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는 것.    

그리고 그 대가는 무척이나 혹독하다. MSCI는 최근 연례 시장 접근성 평가에서 플러스’(+)에서 개선이 필요한 ‘마이너스’(-)로 바꿨으니 시간의 문제라고 여겼던 선진국 지수 편입은 아예 없던 일이 된 셈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시장접근성을 보장하겠다는 신뢰를 정면으로 어겼기 때문에 차후 공매도가 재개되고 정부의 스탠스가 바뀌더라도 MSCI 측은 계속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한국을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는 것을 소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2008년 처음으로 한국이 선진국 지수로의 편입을 신청한 이후 오랫동안 우리 금융인들은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이 선진국으로 분류되기를 기다려왔다. 그것이 실제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유입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 역사적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재부는 마지막 빗장이었던 외환시장의 접근성을 열어주는 전격적 조치를 취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떤 멍청한 아마추어 무리들이 금융계에 우우 몰려들더니 그 소망을 제멋대로 갈아다가 자신들의 비루한 정치적 야망을 위한 거름으로 썼다. 그러고서도 여당은 총선에서 참패했으니 그 무리들은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병신들을 봤나. 이 덜떨어진 고종의 DNA를 이어받은 이들은 우리나라가 왜 후진국인지 국내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피부로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고 오히려 잘한 조치라고 항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초 한 대담에서 연초부터 외국인들의 주식 매수 자금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공매도를 금지한 것이 잘한 조치라고 평가했는데 그 모습은 청전을 폐기한 뒤 치졸한 변명으로 일관했던 고종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130년 전의 전의 조선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금융시장을 어지럽히는 건 덜떨어진 관료들의 관치금융과 멍청한 규제들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일일 거래대금이 20조가 넘는 시장에서 실수로 몇백 주 어치 매도 주문을 낸 실무자들이 아니라, 바로 미개한 당신들에게 있다. 이 사태는 21세기 한국의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금융시장의 진정한 호러는 이것이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를 즐겨 읽고 시장경제와 자유주의를 중시하겠다는 보수정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다.


*               *               *


결국 6월의 마지막 날까지 공매도 금지는 해제되지 않았고 MSCI는 한국의 선진국 지수 편입을 불허했다. 지난 정부에서 진보 지식인들이 추태를 부리고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며 몰락했던 것과 같이 이번 정부에서도 우리는 여러 지식인들의 추락을 보고 있다. 공개적으로 공매도 금지에 반대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제외하면 현 정부의 경제학자/금융계 출신 인사들은 모진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앉은 김소영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자신이 강단에서 제자들에게 했던 발언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부끄러워하기를 바란다. 이복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벗어나는 과분한 직분에 앉고서도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느라 절대로 좋은 평가를 줄 수 없었는데, 이번 사태로 또 하나의 큰 업보를 쌓았다. 그리고 김동조 대통령실 비서관. 한때 트레이더였던 그가 이 공매도 조치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부당한지 모를 리가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막지도, 그렇다고 비서관 직을 사임하지도 않았다. 트레이딩보다 블로거로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Hubris라는 필명을 사용하곤 했는데,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 그리고 이 필명은 이름값을 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마지막 회사를 그만둔 후 그는 한 포스팅에서 자신의 거시경제 전망이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자찬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트레이더가 그처럼 이른 나이에 트레이딩을 그만두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경우 뿐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던가. 그리고 그의 부끄러운 닉네임처럼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깊디깊은 Hubris의 늪에 빠져있다.

왼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고백컨대 2024년판 병신오인방이 쓰이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는 아직 5명을 다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의 모든 내용은 작성자 개인의 주관적 의견임을 밝힙니다) 


2024. 6. 8.

멸망을 이끈 대한제국의 고종, 그리고 대한민국의 세종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근대 이전부터 크게 벌어졌던 조선과 일본의 잠재력을 감안한다면 조선이 성공적으로 개혁을 이루어 독립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개화의 기회가 있었더라도 조선은 실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지도자였던 고종에게는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었으니까. 여러 대중매체들이 그를 비운의 개혁군주로 묘사하는 것과는 반대로 고종은 조선이 전쟁 한 번 없이 멸망하게 된 중요한 원인들을 제공했다. 그의 여러 실정과 잘못된 조치로 국가의 재정은 더욱 빈곤해졌고, 그는 몸소 나서서 관직을 팔며 부패를 권장했으며, 국제정세에도 어두워 외교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조선이 마지막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던 마지막 기회였던 갑오개혁을 무산시키고 부패한 적폐 세력인 민씨 척족을 등용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고종 그 자신이었다. 또 근대적 의회 시스템과 헌법을 도입하자던 독립협회를 군대를 동원해 해체하고 개화파 인사들을 체포한 것도 고종이었으며 이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사람 중에는 이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고종의 밀서를 받아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 중 한 명인 이위종까지도 당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동시에 이를 야기한 고종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니 더 볼 것이 있으랴. 구한말-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이끈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입헌군주제 대신 공화정을 지지한 데에는 고종과 왕실에 대한 좌절에 가까운 실망이 큰 몫을 했다.

고종은 서구식 제복을 입고 미국에서 수입한 캐딜락을 타고 커피를 마시며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서구식 건물에 살았지만 정작 자신의 의식과 국가의 시스템을 개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근대화의 핵심은 권력을 분산하고 국가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바꾸는 데에 있었지만 반대로 권력을 강화하고 싶었던 이 아둔한 군주는 무려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온힘을 다해 전제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대한제국의 통치제도는 되려 조선 전기보다도 크게 후퇴한 1인 전제 군주정으로 돌아갔다. 다만 나라가 그를 유지할 힘이 없었을 뿐. 미개한 시스템의 정점에 있던 고종은 어떻게 보아도 개혁의 대상이었지, 결코 주체가 될 수 없었다.


*                    *                    *


100여 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정부와 거기에서 일하는 관료들은 늘 숨 가쁘게 이런저런 개혁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중 대다수는 변화하는 환경과 민간의 수요를 맞추어 따르는 대신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와 관료들이 통제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시대 고종이 그랬듯이. 거창한 구호로 시작된 개혁안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철학으로 귀결된다. 정부가 통제를 잘 해서 발전하겠다. 그리고 그 기저에 놓인 철학만큼이나 쉰내 나는 디자인의 hwp 문서의 핵심은 거창한 포부와 그럴듯한 문구로 치장된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따라서 이런저런 규제와 지도를 강화하겠다, 그래 우리 관료들이. 관료조직이 대개 요지부동이듯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구태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하다. 고작 2년 밖에 안된 이번 정부에서도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 밸류업 프로그램, 금융개혁, PF 연착륙 대책 등. 이런저런 방안들이 나왔지만 그 세부내역은 필요한 개혁이나 시장경제와 질서를 강화하는 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정부의 감독 권한과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채워져있다. 정부가 마련한 개혁안들 중 국가의 간섭을 줄이고 민간의 영역을 확대-강화하는 것이 뭐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라.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 개혁이나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는 수두룩하게 많다. 최경환이 이끌었던 초이노믹스의 증시 정책은 가장 보수적인 인사들조차도 고개를 저을 정도로 완전한 실패로 끝났고, 수십 년째 동북아 금융허브를 외쳤지만 금융도시로서의 서울의 순위는 10년 전보다 되려 내려갔으며 그사이 십여 개의 외국계 금융사들이 서울에서 철수했거나 사업 규모를 크게 축소했다. 금융계는 그 주된 원인으로 글로벌 기준 어긋난 비합리적 규제들과 관료들의 조선식 갑질을 꼽는다. 여러 차례 밀어붙였던 경제자유구역과 각종 동북아 xx 중심지 정책은 모조리 다 실패해 이제는 그저 그런 신도시들 사이에서 그 흔적만 간신히 남았으며 그 가운데 엄청난 예산과 자원, 그리고 인력이 소모되었다. 비단 이것이 경제정책이나 금융에 국한된 문제랴. 산업이나 통상, 혹은 건설이나 심지어 문화 예술이나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모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도 주택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민간의 손발을 규제로 꽁꽁 묶어두고 정부가 나서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안은 애초에 성공할 수가 없었기에 주거안정의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났다. 안타깝지만 이 외에도 21세기 들어 국가가 주도한 대형 프로젝트나 개혁안은 거의 대부분이 실패해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국가가 아니면 리드할 수 없던 소수의 토목사업이나 비영리 정책을 제외하면.

이런 실패가 거듭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체급이 이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계획으로 이끌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라의 전체 GDP 규모가 20억 불 남짓하던 시절에야 소수의 유능한 관료들이 효율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기업들을 윽박질러 국가의 발전방향을 세우는 것이 가능했지만 같은 방식으로 2조 달러를 바라보는 경제를 운용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50년 전만 해도 민간의 경쟁력이 열악했기에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정부로 모여들었으나, 이제 똑똑하고 진취적인 인재들은 더이상 행시를 보지 않는다. 오늘날의 관료조직은 두뇌를 독점하지도 못하고 민간에 비해 경쟁적이지도 않은, 뒤처진 조직이 되었다. 당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같이 일해본 관료들을 떠올려보라. 과연 그들이 민간을 이끌고 발전방향을 제시할 깊이와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인지.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통제 욕구는 더욱 강해진다. 관료조직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민간에 비해 뒤처질수록 이 기관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조선 말기에 나라를 통치할 능력을 상실한 고종이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더욱 왕권을 강화하고 개혁을 억눌렀던 것처럼. 심지어 관료들은 민간의 자유로운 발전을 허용하는 것을 일종의 위협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가상자산이 각광을 받던 시기 법무부 장관은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겁박했고 당시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어른들이 올바른 투자를 가르쳐 줄 의무가 있다며 어리석으면서도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같은 시기 미국의 하원이 "우리는 가상화폐의 내재가치에 논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가상화폐를 자유롭게 거래하는 일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논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자유주의적 관점과 완벽하게 대비된다. 이에 힘입어 얼마 전 SEC는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를 승인했는데, 이와 반대로 코인의 거래를 금지한 국가로는 이집트, 이라크, 중국, 카타르, 오만,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방글라데시 등이 있다. 우리나라 관료들의 평균적 의식은 OECD보다 저 아프리카 나라들에 더 가깝다. 그들의 이런 후진적이고 극단적인 통제 성향은 최근 직구 금지 사태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관료들은 미국과 EU와 같은 선진시장의 인증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한국의 인증을 별도로 받아야 하며 그렇지 못할 시 반입을 금지할 것이라는 규제를 내놓았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각 나라마다 배타적인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과거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에 수입 공산품의 수가 적던 산업화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은 서로의 인증을 인정해 주는 협약을 맺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관료들은 그런 노력은 게을리하면서도, KC 인증을 찍는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규제를 만들어 나간다. 그래, 우리 관료들의 권력은 바로 거기에서 나오니까.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이런 뒤떨어진 시스템과 철학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 결과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여러 장애물들을 보면 그 끝에는 꼭 관료들이 있다. 식약처, 금감원, 과기부, 정통부, 기재부, 법무부, 관세청, 국세청, 보건복지부 등 규제가 규제를 낳고 규제의 본 목적은 사라지고 이제는 규제 그 자체를 위한 규제만 남아 복지부동인 관료들이 시장과 기싸움을 벌이고 민간에 갑질하는 모습만 가득하다. 규제.규제.규제. 규제는 관료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정부는 늘 새 규제를 도입하며 해외의 사례를 들먹이지만 그 반대의 사례는 단 한차례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직구규제를 발표하는 인상적인 표정의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

대개 경제발전이 더디고 후진 나라일수록 관료들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정부와 관료들의 역할이 작다. 전자의 대표주자가 중국이고 그 반대편에는 미국이 있다. 2020년 말,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었던 마윈은 "미래의 시합은 혁신의 시합이어야지 감독 당국의 (규제) 기능 경연 시합이어서는 안된다"라며 규제당국을 거세게 비판했고 당국은 강도 높은 보복에 나섰다. 그 결과 마윈이 계획했던 사상 최대 규모의 IPO는 취소되었고 뉴욕에 상장되었던 알리바바의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국가 기관인 NASA가 주도하던 우주탐사를 민간 기관인 스페이스 X가 대체했다. 그 과정에서 스페이스 X는 NASA를 상대로 소송까지 걸기도 했지만, 미 정부의 관료들은 괘씸하다며 민간의 발전을 가로막거나 견제하기는커녕 제도를 개선하고 협조에 나섰다. 이런 철학의 차이 때문일까. 한동안 안정되었던 두 나라의 시가총액의 비율은 이후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고 달러 기준으로 보면 그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관료의 계획경제가 이끄는 나라와 시장경제가 이끄는 나라, 어느 시스템이 더 우수한지는 이미 명확하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관료들은 중국을 지향하는가, 미국의 모델을 지향하는가.

이런 논의를 할 때마다 대한민국의 관료제를 예찬하는 사람들은(대개 공무원들이다) 우리 행정부에 얼마나 우수한 고학력 능력자들이 많은데 일부의 실패 사례로 전체를 재단하냐며 항변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실패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지 일부의 문제가 아닌데다가, 관료제에서는 개개인의 능력보다 조직의 구조가 그 효율성과 아웃풋을 결정한다. 그리고 한국의 정부 조직은 공부를 잘하는 인재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에 특화된 조직이다. 그래서 독특하게도 우리나라 정부는 아래로 갈수록 효율적이고 생산적인데 반해, 직급이 올라가고 상위 조직으로 갈수록 비합리적이고 멍청하게 퇴화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당신들은 과거 산업시대 발전을 이끈 선배들보다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사명감이 더 크지도 않지 않은가. 나는 여러 번 관료들이 민도를 거론하며 관료 주도형 통제 모델을 옹호하는 것을 보았는데,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들과 우리의 민도의 차이보다 관료들의 의식수준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위직일수록. 게다가 일반 국민들의 수준과 관료들의 격차는 구한말 이래 지금이 가장 적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인데, 언제까지 시대착오적인 선민사상에 젖어 민간과 시장을 통제하려 들 것인가.

세종특별시는 그 이름에 걸맞게 대한민국 관료제가 처한 기형적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행정에 특화된 특별시를 자처하면서도 이 도시의 구조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세종시와 가장 가까운 KTX 역은 오송역인데 여기에서 택시를 타고 아주 한참을 달려야 세종시 정부청사에 도착한다. 그 뒤에도 여러 부서를 방문하려면 발이 아프도록 주차장을 가로질러 뛰어야 한다. 점심이라도 먹으려 외부로 나가려면 더욱 그렇고. 그러려면 대중교통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차로 다니기에도, 버스를 타기에도 여러모로 불편하다. 택시 숫자마저 모자르다고 한다. 게다가 이곳은 기존의 도시를 확장해서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종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공무원들이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다시 택시를 타고) 오송역 플랫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오가고 있고 아직 때묻지 않은 젊고 능력 있는 사무관들은 이 정체된 도시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다 함께 시나브로 침전하고 있다. 이건 실패한 도시다. 세상에 공항은 물론이고 기차역 하나 없이 고립된 수도가 있던가? 갈라파고스 세종. 그리고 도시가 고립된 만큼 거기에서 일하는 관료들도 세상과 고립되어 점차 도태되다 이제는 심지어 자신이 얼마나 뒤떨어졌는지조차 모르는 단계에 이르렀다. 관료를 위한, 관료에 의한, 관료의 도시가 이렇게 비효율적인 설계로 실패했다면 그들이 그리는 한국의 미래도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을까. 세종시가 그렇게 된 것은 정치권 때문이라고? 그래, 그런 이유도 있지. 하지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행정부가 있던가? 어공이든 늘공이든 그들이 국회와 국민들을 설득할 능력이 없다면, 그들의 권한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오래전 이건희는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 이제 세계에서 순위를 다투는 우리나라 기업은 감히 말하건대 1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관료와 정치의 수준은 과거보다 후퇴했으니 4류와 5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정부가 내놓는 개혁안이란 결국 5류의 눈치를 보는 4류가 1류를 선도하겠다고 나대는 꼴이다.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고종은 기나긴 재위 기간 동안 여러 개혁을 시도했지만 애초에 미개한 전제 군주정과 개화는 양립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밸류체인이 통합되고 경쟁하는 시대에 관치와 선진화는 양립할 수 없다. 중세의 제도인 과거제를 모방한 행시로 선발된 인사들로 꽉꽉 채워진 관료조직이 자신의 전근대적 권한은 강화하면서 이미 선진사회와 경쟁하는 민간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백여 년 전 고종이 죽어야 조선이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제는 세종시의 권력이 죽어야 한국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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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까운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세종시의 여러 부처에서 관료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들 중 몇 분도 경제 부처나 규제에 관련된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퇴직하셨다. 의심할 나위 없이 그들은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던 인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현실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며, 또 관료제와 조직에 대한 이런 비판들이 그들 개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오도되어 사기를 더욱 낮춘다는 점도 알고 있다. 민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수, 걸핏하면 들어오는 비난의 여론, 적체된 승진에다가 암울한 지방근무까지. 물론 관료조직을 개혁하는 일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개혁하는 일도 포함해야 한다. 

개혁의 방향은 관료들의 권한을 제한하고 처벌은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에 처우를 대폭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관료들에겐 지나치게 많은 권력과 지나치게 적은 보수가 주어지는데, 이러면 관료들이 정치인이나 이권을 제공하는 집단/단체/회사에게 회유될 가능성이 커지고 권력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들이 남는다. 이는 국민 모두에게 크게 해가 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관료제의 개혁은 그들의 연봉부터 대폭 상향하는 것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