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6.

디케의 저울에 올려진 화투장

아침에 집을 나서며 어머니와 조영남의 작업방식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 현관에 서서 30분간 아야기하다 나왔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미술평론가 반이정씨의 논평이 있으니 이를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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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검찰의 간단한 입장 발표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검찰은 "조 씨가 대작 화가인 송모(61) 씨에게 똑같은 그림을 배경만 조금씩 바꿔서 여러 점을 그리게 한 뒤 이를 고가에 판매한 것은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작 화가가 그린 그림을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판매한 것은 불특정 다수의 구매자를 속인 행위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중략) 조 씨는 검찰 조사에서 '팝아티스트로서 통용되는 일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으나, 이 사건이 불거지기 이전에는 조 씨가 자신을 팝아티스트라고 표현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이 인터뷰에서 검찰은 "화가의 그림"의 범주를 제멋대로 규정하고 있고 더 나아가 팝 아티스트 범위를 스스로 정의하고 있으며(스스로 팝 아티스트라고 한 적이 없으니 조씨는 팝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에 따른 법 집행을 예고했다.  

예술인들은 아테네와 법복입은 사람들 앞에 조영남을 방치했다. 다수의 신문 사설은 조영남을 비난하는 화가들의 인터뷰를 실었고 몇몇 미술인들은 '그는 예술가들의 고뇌를 욕보였다'고 성토했다. 그들은 조영남이 미웠을 것이다. 아마도 조영남같이 쉽게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아트테이너들 모두가 미울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사람들의 편견, 그리고 자기 내면의 감정들과 싸워가며 예고, 미대를 졸업하여 십수년간 작품활동을 이어와도 미술계 한켠에 자기 자리를 만들기 쉽지 않은 현실이 더욱 그들을 그렇게 몰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영남이 미워, 그의 화투장을 변호해주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무엇이 그림인가"를 논할 주도권을 (미술에 대해)가장 무식한 검찰과 대중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미술인들은 (조영남이 아닌)그의 작품들을 대신해 법원에 서서, "변기 하나 사다가 제목 하나 붙이고 출품한 마르셀 뒤상보단 더 작품제작에 관여했다"고 해주지 않았고, "라파엘로도 자기 작품에 조수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니, 그도 사기죄에 해당하는가."라고 반문하지 않았으며 "표현기법 뿐 아니라 소재선정과 아이디어같은 컨텐츠도 현대미술의 핵심인데, 왜 자기 손으로 직접 윤전기를 돌리고 표지디자인을 하지 않는 소설작가들의 책은 대작이 아닌가"라는 의문들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엇이 미술인지 (아무리 관대히 봐줘도)대충 5분에서 10분쯤 고민해 보았을 법조인들이 국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심지어 그런 고민을 해봤는지도 매우 의심스러운 대중이 여론몰이를 통해 미술과 화가를 통제하게 만들었다. 이제 모든 미술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그림이 합당한 미술인지 아닌지 법원과 SNS의 판결을 기다려야할 지도 모른다.(아마 일부 국회의원은 그림 뒷편에 조수의 작품 기여도를 명시하고 이를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에서 검증받는 '조영남법'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치가 집권하던 1937년, 독일 뮌헨의 호프가르텐 회랑에서 '퇴폐예술전시회'가 열렸고, 32개의 독일 미술관에서 압수한 650점의 미술작품이 전시되었다. 당시 나치는 올바른 미술을 정의한 뒤, 이에 어긋나는 모든 기타 현대 미술, 그리고 유대인 화가들의 작품을 '퇴폐예술'이라고 규정지은 뒤 이를 억압했다. 이 전시회에는 에드바르트 뭉크나 파블로 피카소같이 대중들에게 유명한 이들 뿐 아니라 막스 베크만, 막스 에른스트,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파울 클레, 케테 콜비츠처럼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38년 5월 31일에는 '퇴폐예술품 압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이 새 법률에 따라 베를린 중앙 소방서 마당에서 1004점의 회화와 3825점의 그래픽이 소각되었고 그 외에 규모를 알수 없는 상당수의 작품들이 은닉되거나 해외로 유실되었다.


예술계 인사들은 미술에 대한 평가를 제복입은 이들에게 위임했을때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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