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그렇듯이, 시장에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은(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지곤 한다. 바로 오늘의 브렉시트가 그랬다. 평화롭게 시작했던 아시아의 아침은 곧 패닉으로 뒤덮혔고 화면의 모든 차트와 상품가격들은 발작하듯 요동쳤다. 계좌의 손익보다도 더 큰 마음의 충격을 받았을 트레이더들은 멍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으리라. 불면의 밤을 보낸 런던/뉴욕의 친구들에게는 몇시간이 더 지나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 많은 사람들은 브렉시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니 시장이 금새 회복할 것이라고 말한다.(나 역시 진심으로 그러길 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브렉시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지 않은 미국의 2년 금리는 20bps나 하락했는데, 나는 적어도 지난 3년간 이런 충격을 본 적이 없다. 만약 모두가 대비하고 있었다면 왜 이런 쇼크가 오는가? 미국 이자율 시장은 또한번의 리세션을 예고하고 있었고, 이와같은 충격은 간신히 반등하던 레버리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주말동안 준비해 둔 시장 안정책을 내놓을텐데, 만약 조치들이 시장의 패닉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폭락은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 여로모로 지금의 사건은 2011년 여름과 닮아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영국의 EU탈퇴 모두 제도적으로 대비할 틈이 없던 상황에서 그 여파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터졌으며, 마침 경제는 매우 취약한 지점에 있었다. 하지만 리만사태처럼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리만은 근 10년간의 낙관론이 무너진 사고였고 은행시스템이 붕괴했다. 브렉시트는 그정도로 걱정할 사건은 아니다.
* 브렉시트가 더 충격적인 점은 조현증 환자마냥 분열된 영국의 맨얼굴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불과 2년전 스코틀랜드인들에게 UK에 남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잉글랜드인들은 EU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잔류를 원하던 스코틀랜드인들은 UK에 속한 죄로 EU에서 같이 방출되었다. 북아일랜드인들과 뉴햄프셔인, 런던에 거주하는 삼십대의 화이트칼라는 교외 농장에서 일하는 오십살의 블루칼라와 너무도 달랐다.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에 분노하고있고, 그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총리는 사임했다. 이제 스코틀랜드의 이탈을 어찌 막을 것인가. 그리고 불과 30년 전까지 소총과 사제폭탄으로 독립을 외치던 아일랜드인들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United" Kingdom의 시대는 끝났다.
* 흥미롭게도 영국의 통합과 분열의 역사는 그들의 흥망성쇠와 수명을 같이했다. 약 300여년 전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한 뒤, 그들은 전 세계를 제패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뤄냈다. 그리곤 제국을 유지할 힘을 잃게되자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시도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와 같은 현상은 영국 뿐 아니라 전 유럽의 문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분열했던 지역인 유럽(한때 독일은 약 1500여개 공국으로 쪼개져 있었다.)에서 크고작은 나라들이 이리저리 뭉쳐 (상대적으로) 소수의 근대국가들로 다시 태어나자 그들은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현재 21세기에 그들은 미국과 아시아의 부상에 밀려 점차 세계무대의 주연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분열이 시작됐다. 그렉시트와 브렉시트 외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신조어들이 생겨날까? 우리는 아마 EU에서 국가들이 이탈하는 것 뿐 아니라 국가에서 지방이 이탈하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그 선두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그 뒤를 카탈루냐, 바스크, 롬바르드 등이 따르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21세기는 분열의 시대가 될 것이며 잉글랜드인들은 오늘 그 첫 총성을 쏘아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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