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0.

난민이야기 2

  •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은 주인공 피터 파커에게 말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remember,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sibilities] 이 명제의 대우는 "큰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큰 힘도 없다"인데 홍성대께서 가라사대, 명제가 참이면 대우도 참이라 하셨다. 이 격언을 기억한 피터는 히어로 스파이더맨이 되었지만 이를 무시한 아시아의 두 나라-중국과 일본은 빌런이 되었다. 현재의 G2인 중국은 미국과 싸워줄 제대로 된 우방국 하나 없으며 예전 넘버 투였던 일본은 (강제)우방 한국에게도 종종 무시당한다. 그들은 왜 친구가 없나? 두 나라 모두 뒤따르는 큰 책임을 모른척하고 이득만 취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큰 책임을 받아들인 피터파커가 히어로가 될 때 이 체리피커들은 왕따빌런이 되었다. 우리의 주권을 침해해 사드제제를 가했던 중국이 홍콩의 인권문제가 자국 주권문제라고 주장해도 한국은 중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던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침범당할때, 우리는 일본의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얍삽한 친구를 반장으로 추대할 사람은 없듯 국제사회는 이기적인 국가의 헤게모니를 따르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부끄럽게도 한국은 OECD 최고의 체리피커이다. 세계 제일의 최첨단 휴대폰과 반도체를 만들면서 농산물 협상에서는 개도국 지위를 요구하며 해외자본을 유치한다면서 막상 들어온 외국투자자들을 온갖 비겁한 방법으로 괴롭힌다. 해외원조와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더하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외원조는 GDP의 약 0.15%로 OECD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그리스나 헝가리(0.13%)와 꼴등을 다투고 있다. 심지어 정확히 동유럽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슬로베니아 국민들이 (GDP대비)우리보다 더 많은 해외 원조를 한다. 한국의 난민수용률은 전세계 약 139위로 최저를 달리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선진국을 바라보는 G20국가 중 하나의 성적이라고 할 수 있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싸이나 BTS급 대우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의무는 후진국만큼, 아니 그만큼도 지지 않으려 한다. 이런 한국은 그저 작은 중국일 뿐이고, 가난한 일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나라가 국제사회에 번역도 엉성한 "독도는 우리땅"자료를 들이민다면 과연 몇이나 그를 진지하게 읽어보겠는가. 우리가 더 많은 권리를 주장하려면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 한국은 이민자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도대체 그 준비는 언제 되는 것인가. 한국의 1인당 기부액은 국민소득 3천불일 때부터 3만불이 되도록 OECD평균 언저리에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뭐 한 300만불 쯤 되면 받겠단 말인가. 모든 나라들이 난민을 기피한다. 세상에 난민을 받으며 쾌재를 부르는 나라는 없다. 그러니 먹고 살만한 나라들이 그 짐을 나누어 지자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원조를 받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은 아직도 거지행세를 하며 그 짐을 기피하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쩌리취급 당한다고 억울해하지나 말든가.
  • 1996년 FBI는 미국 해군정보국에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킴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26살에 한국을 떠난 이래 줄곧 미국에 살며 20년 넘게 미 시민권자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기밀을 한국측에 넘겼다. 그 사건 이후 미국은 "한국인들은 민족적 유대가 지나치게 강해 미국계 한국인들을 믿을수 없다"라며 정보국 내 한국어 linguist들을 대거 백인이나 라틴계들로 대체했다. 헐리우드에 자리잡은 한국계 배우, 존 조의 첫 데뷔작은 해롤드와 쿠마인데, 그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를 처음만난 한국인들이 교포인 해롤드에게 김치를 먹어보라고 권하고 안면도 없는 사촌의 취업 청탁을 서슴없이 한다. 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가 그렇다. 꼭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십수년 씩 살면서도 영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도 종종 찾아볼 수 있던 LA한인타운에서는 아주 흔하게 벌어지던 일이니까.

    사실 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난민의 모습 아닌가. 우리는 미국, 혹은 서구 유럽사회의 한인차별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난민문제 앞에서는 갑자기 KKK단이 쓰던 흰색 두건을 꺼내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만약 "한국인들은 미국으로 이민와서 같은 한국인들을 불법고용하고 미국백인사회에 어울리려고도 하지 않으며 자기네들끼리 이상한 음식과 교육방식을 고집한다, 김치 고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응당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우리의 분노가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한국이 그런 태도를 지녀서는 안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대중의 공분을 사는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우리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게다가 지정학적으로 군사&경제로 세계 1,2,3,5위와 맞닿아 있는 나라는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좋든 싫든 국제사회의 책무를 나눠가져야하는데, 문제는 그 짐을 국내에 배분할 때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비용은 내국인 중 가장 취약계층에게 몰리게 된다. 그들은 말도 안통하는 핫싼의 이웃이거나 방글라데시에서 온 멧푸탄과 인력시장에서 경쟁하는 장삼이사들이다. 그들에게 왜 한국이 국제사회의 짐을 나누어야 하는지 설명해봤자 그들은 '그건 잘난 당신네들 얘기지 여권도 없는 내겐 오늘이 전부요, 내가 알게나 뭐요' 라고 답할 것이다. 대신 삶이 조금이라도 덜 팍팍하고,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지위를 파악할 시아를 가진 정우성같은 상류층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우리도 인도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짐을 국내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모두 지게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가진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아 난민사업을 지원하겠습니다, 난민을 받으면서도 여러분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지 않도록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대중은 조금 덜 분노하지 않았을까.
  • 대중은 원래 이기적이고 뻔뻔하다.(링크) 난민들 보고 한국에 땅 맡겨놓았냐며 반대하면서도 멀쩡한 조합원들보고 임대주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자신은 소득세도 면제받고 복지혜택은 누리면서 열심히 노력해 돈 번 사람들보고 세금을 소득의 절반씩 내는 것이 정의라며 윽박지른다. 하지만 공인이라면, 그리고 좋은 정치인이라면 이기적이고 뻔뻔한 그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아, 하지만 내가 가진 재주라곤 대중들에게 내재된 이중성을 꺼내 조롱하는 것 뿐이니 절대 정치판엔 기웃거리지 말아야지. 이대로 돈이나 열심히 벌고 밤에는 이름 모를 글이나 쓱쓱 쓰련다.

정우성, 난민 그리고 임대주택

  • 연예인들의 연예인인 정우성이 연예인도 아닌 내 눈에 못나 보였던 적이 있었다. 바로 한 영화 시사회에서 "박근혜 나와!" 라고 외쳤을 때. 죽어가는 권력을 조롱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왜 그는 박근혜의 힘이 막강하던 임기 초에는 아무말 하지 못하다 대중들이 환호하는 시점에서야 자신의 소신을 드러냈을까. 살아있는 권력들을 마음껏 풍자하다 스러져간 여의도 텔레토비들보다 멋지지도, 웃기지도 않은 그는 그냥 한명의 광대였을 뿐이었다. 그를 움직인 것이 정치적 신념이 아닌 별풍선같은 박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으리.
  • 그 잘생긴 광대에게 내가 동의해 마지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난민정책이다. 나는 우리가 난민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략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시선으로 볼 때 당신의 할아버지들과 나의 할머니들이야말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정책 덕분에 살아난 수혜자들이고, 실제 데이터로도 우리는 그 원조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다. 일본의 가혹한 수탈 이후, 6.25전쟁을 치른 우리 나라에서 대량의 아사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미국이 이끌던 국제사회의 원조 덕이었고 한때는 국제원조가 우리나라 GDP의 약 20%에 가까웠던 적도 있었다. 이 원조는 1945년 해방부터 20여년간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를 떠받친 하나의 기둥이었는데 그 원조의 직접적 수혜자들이 다른 선진국이 떠안은 난민의 부담을 거절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로 비칠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는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싫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든가.

    "우리는 국제원조를 반대한다. 1950년대 인구대비로 최대의 원조를 받은 한국인들이 대다수 선진국들이 합의한 난민수용을 거절하는 것을 보라. 인도적 차원에서 남을 도와줘봤자 그들의 후손은 싸그리 다 잊어버린채 다른 이웃을 돕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 대한민국이 증명한다. 2016년 국제 자선 순위에서 140개국 중 한국은 온두라스와 니카과라에 이은 76위를 차지하지 않았는가. 당신이 돕는 난민과 빈곤층은 부자가 되어도 자신의 이웃들을 돕지 않을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사람들이 그렇듯이"
  • 대중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난민정책을 옹호할때 비로소 정우성은 광대에서 다시 공인이 되었다. 그의 소통방식이 비록 아직 미숙하고 어리지만 적어도 쌀 한톨 희생하지 않으려는 우리보다,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위해 이를 악문 광대가 낫다고 믿는다. 그는 연기자가 되기 전 사당동 판자촌 주민중 하나였다. 우르릉 쾅쾅 하는 포크레인 소리를 참아가며 억지로 잠에 들었다가 깨면 이웃이 한집 한집 사라지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아마도 난민들을 보며 쓰라린 어린시절 기억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대중들은 청담동 고급빌라에서 잠드는 그의 현재와 난민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며 그를 조롱하지만 난민을 위해 기껏해야 ARS 전화 몇통 걸어본 것이 전부인 나는 그를 비난하지 못하겠다.
  • 재미있는 것은 난민을 반대하는 대중들은 비슷한 개념의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꼭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난민들이 범죄율이 높아 치안을 어지럽히고 게으르고 불성실하며 미개하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하지만 가난할 수록 범죄율이 높고, 불성실할 수록 가난하며 가난하면 교양수준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민을 반대한다면서도, 같은 이유로 신축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꺼리면 그들은 갑자기 정우성으로 돌변한다. 아마도 몇몇은 "같은 한국인들을 돕는 것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난민들이 어찌 같은가"라고 항변하겠지만, 인류는 99.8%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임대아파트 주민들과 난민들은 유전적으로 끽해야 0.2%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유전적 유사성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심지어 바나나도(그래 그 바나나) 우리와 유전자의 70%를 공유하는데 바나나 먹는 사람들은 다 사이코패스들인가. 백번 양보해 그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당신은 얼굴 한번 마주친 적 없는 한국인이 수백만원을 요구할때 선뜻 내어줄 수 있는가.(임대아파트와 인접한 동의 가격은 약 0.5-1.0% 저렴하다) 자신은 난민을 위해 2천원짜리 ARS도 돌리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선뜻 수백 수천만원을 희생하지 않는다며 타인을 비난한다. 반면 정우성은 자신의 인기와 시간, 그리고 광고수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난민들을 위해 욕받이를 자처하고 있다. 난민을 반대하면서도 임대주택을 반대하지 말라고 일갈하는 대중들. 그들의 민낯이 정우성보다 추한 것은 외모 뿐만은 아닐 것이다.

2019. 8. 25.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좌절한 청춘들에게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폭등하는 집값을 보며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아마 선대인같은 멍청이들이 10년째 안 맞는 전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데도 계속해서 그들의 유투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대중들이 그들의 전망이 아닌 희망을 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에게 팔 희망이 없다. 애초에 그런 것으로 먹고 사는 직업도 아니고. 내 전망대로라면 부동산은 경제가 침체해도 금융위기만 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고 빈부격차는 크게 벌어질 것이다.

거기에 가장 좌절하는 사람은 바로 2030대일 것이다. 잡도 없고 집도 없는 세대. 하지만 잡은 몰라도 집은 확실하게 살 수 있는 날이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대책없는 낙관론을 펴는 것이 아니다. 정책사이클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고 실제로 과거에 그랬으니까.

위의 그래프는 앞서 글에서 인용힌 서울시의 집값을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우리의 통념과는 반대로 월급쟁이가 자신의 봉급으로 집을 마련하는 일은 80년대가 더욱 힘들었다. 그 당시엔 은행대출도 없었고 인터넷에서 매물을 찾아볼 수도, 실거래가를 보여주는 사이트도 없었다. 복덕방에서 얼마에 거래가 되었다고 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믿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남 대부분의 지역에도 지하철 노선이 뚫리지 않아 도심으로 진입하는데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집값은 (소득대비) 현재보다 거의 두배 이상 비쌌다.

서울시 집값이 미친듯이 폭등했던 것은 철저하게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에는 서울시 거주가구의 1/3이 집이 없이 남의 집어 얹혀사는 구조였기에 "한지붕 세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하고, 다가구 주택이라는 괴상한 형태의 주거형태가 현재까지도 흔하게 눈에 띌 만큼 서울시의 공급부족은 심각했다. 그와 같은 주택난은 노태우정부가 공격적으로 신도시를 짓고 고층 아파트를 공급하며 크게 해소된다. IMF가 터지기 전 까지 주택의 실질가격과 가처분소득대비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고 부동산은 약 10년가량 침체기에 들어선다.

비슷한 현상이 2000년대 말에도 반복되는데 당시 시민들의 생활수준이 큰 폭으로 개선된데 비해 서울의 거주환경은 여전히 낙후된 7080대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에 "양질의" 주택이 크게 모자르게 된다. 80년대의 주거난이 수량적 부족 때문이었다면 현재와 2000년대 초의 주거난은 질적 부족에 가깝다. 이는 이명박이 여러 뉴타운을 개발하고 한강변을 따라 약 5만세대의 재건축을 허용하면서 잠시 완화된다.

현재의 공급부족은 필연적으로 정책노선의 수정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국토부나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모두 현재의 공급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정치인들도 안다. 다만 자신들을 찍어줄 유권자들이 모르니 자신들도 유권자들의 장단에 맞춰 모르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과거를 종종 잊지만 학습의 동물이기도 해서 실질 주택가격이 폭등하고 나면 유권자들은 공급대책을 요구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재건축/재개발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 공급이 늘어나고 주택시장은 다시한번 침체할 것이다. 모든 시장이 그렇듯이.

따라서 현재 주택마련에 실패했다고 해도 너무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자. 우리 청춘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시간이다. 자본과 경험이 많은 6070대 자산가들은 미래가 없다. 내일을 예측할 수 있어도 미래를 살 수가 없다. 내 주변의 한 70대 자산가는 자신이 20년만 더 살수 있다면 투자할 것이 너무 많은데 언제 죽어서 상속해야할지 몰라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청춘들에게는 그 시간이 있다. 버스는 떠났을 지 몰라도 역사는 반복되고 다음 버스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다음 버스에 올라탈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된다. 당신이 만약 40세를 넘지 않았다면 다음 버스도 너끈히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으로 무장한 채 희희낙낙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주변에서 부동산 비관론이 팽배했던 때에 집을 산 부류는 참여정부에서 부동산이 폭등할 때 가장 괴로워했던 친구들이었다. 괴로움의 크기가 컸을 수록 더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부동산 하락사이클이 길어질때에도 더 오래 버텼다. 원하는 지역의 지도를 펴고 대출제도를 살펴보고 임장도 해보고 그리고 과거의 데이터들을 반추하라. 언젠간 다시 당신의 가처분소득이 그 지역을 쫒아 올라오는 날이 올 것이다.



불편하다고 해서 눈을 감아버리고 도피하는 것, 그것 하나만 피하면 된다.

버스는 반드시 다시 올 테니까.

2019. 8. 24.

☆경축☆ 분양가 상한제 시행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기뻐하는 이들을 보고 우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분양가상한제는 분명 재건축 진행중인 소유주들에게 고통이다. 하지만 많은 무주택자들이, 혹은 비강남 거주자들이 분양가상한제를 박수치며 찬성한다. 한강 토막살인 피의자 장대호가 희생자를 보고 "죽을 짓을 했다"라며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하듯 저 대중들 역시 자신의 사이코패스짓을 정당화하고 있다.

나같은 다주택자들에게 이 분양가상한제는 어마어마한 호재다. 이 제도는 주택공급을 철저하게 틀어막아 가격폭등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왜 저 대중들이 이 제도를 반기는지 알 수 없지만, 저들이 사이코패스들처럼 미쳐 날뛰는데 나혼자 반대하고 열 내봤자 결국 내 손해다. 그래서 나는 겸허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했다. 소수의 재건축 조합원들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기뻐하는데 뭐 다 좋은일이라는 것 아닌가. 저들은 기분이 좋고 나는 부자가 되어 좋고.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내 친구들과 후배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남는다. 그래서 다시한번 분상제를 비난하는 글을 남긴다.

현 정부가 발표한 모든 부동산정책은 서울의 공급을 옭죄어왔다. 용적률제한, 기부채납, 임대주택의무화, 한강변 층고제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 그리고 분양가상한제. 용적률을 600%에서 300%으로 낮추면 6천세대를 지을 땅에 3천세대 밖에 못 짓는다. 기부채납은 간단히 집을 지을 땅에 공원이나 학교를 짓는 정책이고 임대주택은 주택의 효율적 배분을 망가뜨린다. 한강변 층고제한은 한강조망 아파트의 수를 줄이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는 말이 초과이익이지, 이익이 없어도 세금을 걷어가는 이상한 제도로 재건축사업을 막는다 그리고 이제 분양가상한제는 재건축을 사실상 금지시키는 제도다. 현재 승인된 재건축사업의 분양이 끝나고 나면 이제 서울에는 신축아파트 공급은 없다. 2021년 하반기부터 2026년까지 매년 서울의 신축아파트 입주는 연평균 5천세대를 넘지 않을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는 분양가가 집값 상승을 야기하지 않도록 가격을 통제하는 것인데 이 정책은 문제의 원인분석부터 예상파급효과까지 잘못되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현재 신축 아파트들은 실제 시세보다 약 10-25% 저렴한 가격에 분양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선분양으로 인한 위험을 짊어지는데에 대한 보상도 있긴 하지만 매번 경쟁률 1:1을 크게 넘어서는 분양실적들을 보면 현재도 분양가가 크게 디스카운트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간단하게 분양가가 fair value라면 대부분의 아파트는 미분양 나야 한다*) 따라서 국토교통부의 주장과 머리나쁜 사이코패스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신축분양은 시세를 올리는 역할을 하기는 커녕 반대로 주변 아파트 시장을 억누르는 역할을 이미 하고 있다. 문제는 이제 이 신축분양이 막힌다는데에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이미 약 20% 할인된 분양가를 추가 20% 할인할 것이라고 한다(아니면 굳이 분양가상한제를 왜 하겠나). 하지만 세상에 손해보며 사업을 벌일 호구는 없다. 조합은 재건축을 하며 신축아파트를 지어 팔며 공사비를 충당하는데, 애초에 10억짜리 집을 6.4억에 팔아야한다면 조합은 3.6억의 현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재건축에 나서겠는가. 이미 HUG의 할인된 분양가때문에 재건축 사업이 곳곳에서 지연되어 공급부족을 야기했는데(링크) 이제 이 효과는 극악으로 치닫는다. 실제로 내가 지켜보는 몇몇 재건축/재개발 희망 단지들은 아예 계획을 접었다. 이 현상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 미시적으로는 해당 단지의 주민들이 인테리어 공사를 보면 된다. 좌절한 구축아파트 주민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대대적 수리다. 거시적으로 서울 내 공급의 폭락을 수치로 보고 싶다면 건설주의 KOSPI대비 퍼포먼스를 보라. 시장은 늘 정직하다.


서울 내 아파트들의 준공년도별 수

재건축 없이 서울의 주택수급환경이 얼마나 악화될지 수치로 확인하자. 보다시피 대부분의 서울 아파트는 1988-2004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부동산시장에서는 보통 20년이 지나면 구축아파트로 분류하는데 올해가 2019년이니 20세기에 지은 아파트들은 모두 구축이 되는 셈인데, 이 물량이 무려 97만채로 전체의 62%를 차지한다. 저 차트에서 빨간선 왼쪽의 집들은 모두 21세기 한국인의 생활수준에 맞지 않는 개발도상국 시대에 지은 집들인 셈이다. 당장 향후 몇년만 보자. 재건축에는 아무리 빨라도 5년이 소요되니 2024년 기준에서 건축연한 40년을 넘은 아파트들은 모두 27만 4천 채로 전체의 17.5%나 차지한다. 그리고 서울 내 신축아파트의 실질가격 상승을 막으려면 이 물량을 모두 소화해줘야 한다. 하지만 2022년 이후 공급실적은 처참하다.

인허가가 없다면 미래의 공급도 없는데, 2017년의 인허가물량이 준공되고 나면 이후에는 지독한 공급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양가 상한제는 저 2017년에 인허가를 신청한 74,984채의 조합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고 그를 본 이웃의 다른 재건축 조합원들은 체념한채 인테리어 업자들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무엇보다 사업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인데, 이제 재건축 조합은 정부가 미래 분양가를 얼마로 후려칠 지 모른다는 두려움과도 싸워야한다. 이제 미래의 주택공급은 서울시내 요지에 멍청이들과 호구가 500-1000가구씩 모여사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

특히 2030대들이여. 이 부동산정책이 자신의 인생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마라. 설문조사를 보면 이 무주택세대들은 잘못된 부동산정책들을 그 누구보다도 충실히 지지했다. 정부는 그 바보장단에 맞춰 장구를 두드린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65층으로 재건축하지 않으면, 또 은마아파트의 용적률을 500%로 올리지 않는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 지역에 등기를 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물려받을 재산이 없다면 더더욱. 게다가 서울의 요지에 아파트가 모자른 것이지, 수도권의 아파트와 서울내 빌라와 다세대 주택의 공급은 충분하다. 포르쉐를 모는 것이 이동권이 아니고 수퍼모델과 섹스를 하고 캐비어를 먹는 것이 기본권에 속하지 않듯 요지의 신축 아파트에 사는 것은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나에게 2호선 역세권 5분거리의 신축을 달라, 조망과 부대시설도 함께"라는 요구는 그 누구도 할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심지어 당신의 부모조차도 그럴 의무를 지니지 않는다. 그 책임은 오롯이 당신에게만 있는 것인데, 자신의 실패를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칼을 꺼낸 강서구PC방 살인사건의 범인처럼 당신들은 성실하게 살아온,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 전부인 재건축 조합원들에게 칼날을 휘두루고 있다. 문제는 그 상흔이 자신들에게도 미친다는 것이다. 2030대들과 무주택자들이 김현미의 집권 첫날부터 그녀의 정책에 반발해 재건축 규제 완화를 지지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철폐했다면 서울의 집값은 현재 수준에 도달 할 수 없었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파생이든 뭐든 나는 정책을 예상하고 분석해서 투자해 수익을 내는 사람이지 정책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수의 2030대들과 무주택자들 그리고 현 정부가 계속해서 실기할 것이라고 믿어 부동산에 투자했고 (조국과는 달리) 그에 따른 폭탄같은, 하지만 수익에 비해서는 미미한 세금을 내고 전세입자들에게 싸게 전세를 준 한낱 임대사업자일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친구들과 후배들이 올라가기만 하는 부동산 가격 앞에서 좌절하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공감하며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술자리를 마무리 하고 돌아서면 또다시 대중이 저 미친 정책을 지지하며 또다시 좌절의 턱을 높이는 것을 목도한다. 나도 지쳤다. 될대로 돼라. 나는 사이코패스들이 한 방에 모여 존재하지도 않는 부동산 작전세력을 처단하겠노라며 서로를 베고 찌르는 칼부림의 향연에서 빠지련다. 그래 실컷 찔러라. 잘한다. 잘한다.


*시장원리대로만 보면 분양신청자는 늘 근처 구축아파트를 매매로 살 수 있는 옵션과 분양에 참여할 옵션, 두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따라서 신축아파트의 가격이 적절하다면 특정 날짜에 근처 매매시장의 몇배에 달하는 물량이 쏟아져나올 때 구매자들이 모두 분양시장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지난 몇년간 서울의 분양시장은 일부 단지를 제외하고는 소수에게만 기회를 주는 1순위 분양만으로도 1:1의 경쟁률을 크게 넘어섰는데 이게 분양가가 매우 저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다.

2019. 8. 23.

지소미아 폐기, 빡친 북한 그리고 병신된 조국

  • 놀랍게도 한국은 오늘 GSOMIA의 폐기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일본은 고노 외무상은 항의의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아마 뒤에서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GSOMIA의 종료는 일본보다 한국에, 그리고 한국보다 미국에게 더 큰 타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구축하는데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70년 동안 극동에서 미국의 첫 전략적 목표는 바로 이 삼각동맹이었고 그 오랜 노력의 첫 결실이 지소미아였는데 한국의 일방적 발표는 미국의 그 노력을 산산조각내는 사건이었다.
  •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분쟁을 일으키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군사적 분쟁, 외교적 분쟁, 그리고 경제적 분쟁.  그리고 이 세 분야 중 우리가 일본에게 가장 열세에 놓인 분야가 바로 경제이다. 차라리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더 승산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위안부협정 때와 같이 우리의 손을 들어 일본의 팔을 비트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 면전에 중지를 내밀며 그들의 구두 코에 침을 뱉었으니 이제 미국이 한국의 편에 서 줄 일은 없다. 게임은 끝났다.  
  • 청와대가 전문가들의 예상과 우방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GSOMIA를 폐기한데에는 두가지 배경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북한의 강력한 비난, 그리고 연일 시간단위로 터지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의 비리들. 경제도 외교도 분배도 망한 정부에게 남은 카드는 북한 뿐인데, 정작 북한은 지난 1주일 간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아주 강도높게 비난했다. 그 비난의 배경에는 한미 연합훈련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대내외의 반발이 지나치게 크다. 따라서 친북 성향이 강한 정부는 북한카드를 되살리기 위해 대신 지소미아를 폐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미훈련을 그만두는 것과 지소미아를 폐기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국내 중도층과 미국의 반발을 부르겠는가. 계산을 끝낸 그들은 후자를 택했다.
  • 법무부장관을 꿈꾸던 조국의 위상이 병신나고 만 것도 지소미아 폐기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시발점은 비선실세의 존재를 알린 정윤회 문건도, 세월호 사건도 아닌 바로 정유라의 입학비리였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아시아 금메달리스트가 이대 체대에 입학한 것이 비리인지 대답하기 어렵긴 하다만. 그리고 대중이 가장 분노하는 조국의 비리는 다름아닌 딸의 입학비리이다. 이 일로 20대 젊은층과 수험생 자녀를 둔 4050대 부모들은 크게 돌아설 것이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지지계층이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다시 한번 반일 카드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 여러 지인들이 청와대가 국익을 놓고 저울질 할 정도로 조국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렇다. 진보사회에서는 출신 성분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이에 따라 현 정권은 세 그룹의 골품제에 기반하고 있다. 성골 주사파, 진골 민주당, 그리고 기6두품 기타좌파들. 그리고 이 성골의 핵심은 바로 임종석과 조국이다. 임종석이 국정운영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면 조국은 제도적 법적 토대를 어떻게 개조할 지 연구하는 행동대장 같은 존재다. 복잡하게 개정된 선거법, 그리고 그를 통과시킬 편법적 패스트트랙, 또 검찰과 경찰 그리고 사법부를 장악할 인사조치 등, 현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위와 같은 법적/제도적 개편을 시작했는데 이 정교한 작업을 누가 설계했겠는가. 지난 1주일 간 재산을 빼돌리고 세금을 탈루하고 학력을 위조하고 입시비리를 저지르고 병역을 기피한 조국의 섬세하고도 성실한 솜씨를 보라. 모두 조국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그 없이는 성골 운동권은 조국혁명의 대업을 완수할 수 없으며, 본인들도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있다. 청와대는 그의 어떤 추문이 터지든 간에 반드시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앉힐 것이다.
  • 이와 별개로 조국에겐 정신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미쳤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욕심을 부리고 편법을 저지르는 것 역시 모두 비양심적인 짓이지, 비합리적인 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저지르고, 또 그런 일들을 가장 앞장서서 비난하던 사람이 스스로 검증대 위에 올라간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많은 사회 저명인사들이 개인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공직을 거절해왔는데 조국은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천하의 우병우도 법무부장관이나 차기 대통령을 꿈꾸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 조심해야할 것은 그가 저런 비합리적 판단을 내린 심적배경이다. 늙고 추한 조국은 자기가 아직도 아이돌인줄 아는 전형적 자기애성 성격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비리가 밝혀져도 남들이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런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저런 mr. 병신(丙申)이 비리를 가득 안고도 법무부장관으로 나서는 병신(病身)짓을 한 피해는 지금에야 가족들만이 보고 있지만, 국가 지도자가 되면 국민 전체가 지게 된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 이번 일로 당과 청의 사이가 벌어질 것이다. 앞서 글에서 김일성이 연안파, 갑산파, 국내파, 소련파 등의 연합정권으로 시작했던 것 처럼 현재의 집권세력도 통합되지 않은, 일종의 연합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조국 하나를 살리기 위해 수 명의, 혹은 십 수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의석을 위협받게 생겼다. 그동안 당의 인기보다 청의 인기가 높았던 터라, 그리고 운동권의 핵심이면서도 DJ정부의 핵심멤버였던 이해찬이 당과 청의 사이를 잘 봉합해왔지만 총선을 8개월 앞두고서 조국을 살리기 위해서는 초개와 같이 몸을 던질 준비가 된 핵심 운동권과 나머지 계파들 간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공천을 앞두고서는 더더욱.
  • 박근혜 몰락의 시발점은 정유라였지만 본격적인 추락은 청과 당의 갈등에 있었다. 애초에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이 동의해주지 않았다면 박근혜는 탄핵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자한당으로 복귀해 조용히 지내는 김무성이 친박과 충돌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여당 의원이 탄핵에 표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청와대가, 더 정확하게는 우병우가 조선일보와 그렇게 다투지 않았다면 보수언론이 보수대통령을 버리는 초유의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늘 그 칼자루가 영원히 자기 손에 놓여 있으리라 믿는다. 대신 언젠가 왕좌에서 물러나는 날엔 나를 지켜줄 것이 권력이 아닌 동료의 비호라는 사실을 쉬이 잊는다. 그를 잊은 박근혜 도당은 한평 반짜리 감방에서 회한을 거듭하고 있고 현재 청와대를 장악한 운동권이 그녀의 뒤를 좆는다면 그들의 운명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2019. 8. 18.

생과 사를 가른 면접

우리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두방의 원자폭탄이 일본의 항복을 가져왔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소련이 만주에서 관동군을 붕괴시켰던 사건이었다. 중국을 무너뜨리기도 전에 소련을 상대해야했던 일본 군부는 주력이 서쪽에 가 있던 소련이 당장 만주를 침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만주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넓었던 터라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방어한다면 소련이 침공하더라도 지연전을 펼칠 수 있을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독일의 전격전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소련은 6년간 약 3000만 명의 인명피해를 낸 끝에 그들의 전략을 완벽하게 숙지했고 스탈린의 붉은 군대는 이제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극동에서 피로 익힌 소비에트식 전격전을 펼칠 준비를 끝마쳤다. 1945년 8월 9일 스탈린의 군대는 일본의 방어선을 넘기 시작했으며 단 일주일 만에 일본 육군의 최정예 주력인 관동군 약 90만 명 중 60만 명을 포로로 잡으며 만주 방어선을 완전히 와해시켰다. 만주의 북쪽에서 황해까지 거리는 연합군이 상륙한 노르망디서부터 소련이 진격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만큼이너 먼 거리였는데 소련이 조선의 청진시에 진입한 것이 작전 시작 후 단 5일차인 8월 13일이니 이 전격전의 파괴력을 가늠할 수 있었으리라.

반면 미국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 위해 수십 발의 핵 투하와 최대 6백만 명의 병력 동원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소련이 일주일 만에 관동의 주력 병력을 분쇄하자 크게 놀라 종전과는 반대로 소련의 남진을 막으려 했다. 미국은 소련에게 38도를 기점으로 한반도를 분할점령하자고 제안했고, 마음만 먹으면 남부지역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소련은 한발 양보하여 미군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다.

한반도 북쪽의 지배권을 확립한 소련은 크렘닌의 지령을 충실히 따르는 괴뢰 공산국가를 세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새 정부는 누가 이끌것인가? 소련이 원하는 북조선의 새 수장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소련의 꼭두각시로 보이지 않기 위해 완전한 조선사람이어야 했다. 처음에는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이면서 소련군에서 3년간 복무한 김일성이 낙점되었지만 소련이 한반도에 진주하자 이윽고 조선공산당의 당수 박헌영의 막강한 영향력을 깨닫게 된다. 소련의 점령지역은 38선 이북에 그쳤지만, 당시 한반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선전의 각축장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소련은 한반도 전체의 조선인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명망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했고 이 부분에서는 국내파의 거두 박헌영이 김일성보다 더 나은 후보였다. 두 선택지 중에서 갈등하던 스탈린은 김일성과 박헌영 모두를 크렘닌으로 불러 면접을 치르게 된다.

1946년 7월 신생공화국의 지도자를 뽑는 면접이 시작됐다. 이는 단순히 김일성 vs 박헌영의 대결이 아니라 해외파(빨치산파, 소련파)와 남로당파의 대결이었기도 하고 더 나아가 KGB의 전신 NKVD와 소련외무성의 알력 다툼이기도 했다. 군부와 NKVD는 소련군 88여단에서 복무했던 김일성을 선호했고 외무부는 한반도 점령전 자신의 소식통이었던 박헌영을 지지했다. 박헌영은 명문가 출신에다 레닌대학교를 졸업한 자존심이 강한 엘리트였던 반면(아마 그래서 같은 지식층 출신인 소련 외무부 인사들이 그를 선호했으리라) 대다수의 빨치산파들이 그랬듯 김일성은 중학교를 자퇴한 뒤 마적으로 활동한 적도 있는 하층민이었다. 하지만 거친 개싸움을 거친 밑바닥 출신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뛰어난 생존본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박헌영이 젠체하는 소련의 지식인들과 교류가 있었던 데에 비해 김일성은 군화발의 폭력과 욕설 그리고 살인이 난무하는 소련군 출신 아닌가. 트로츠키면 몰라도 스탈린과 당시 2인자였던 베리아는 후자에 더 가까운 인간들이었다.

결국 크렘닌은 민족주의자 성향을 숨기지 못한 박헌영 대신 김일성을 선택했고 그가 새로운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수장이 된다.(비슷한 시기 미국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이승만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조선 내 영향력이 워낙 막강했던 터라 김일성조차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6.25전쟁의 승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김일성과 박헌영은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며, 이후 중공의 군사적 지원을 구하는 공식요청서류에도 그 둘은 나란히 서명했다. 하지만 그 둘의 협력은 지속될 수 없었다. 둘은 너무도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두 지도자가 공존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1950년 11월 압록강 연안에 설치된 임시 소련대사관에서 열린 볼세비키 혁명 기념행사에서 만취한 그 둘은 크게 충돌하여 김일성이 박헌영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갈등이 표면화되고 나서도 둘의 불안한 공동체제는 한동안 지속된다. 하지만 권력이란 시소와 같아서 균형이 무너지고 나면 곧 걷잡을 수 없이 기운다. 그리고 남북의 분단이 고착화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시점에서 남로당의 당수인 박헌영의 값어치도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결국 1953년 휴전협정이 이루어지기 직전 그는 미제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는다. 가혹한 고문 끝에 그는 자신의 혐의를 억지로 인정했지만 재판장에서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그렇다"라고 인정하지 않고 "그렇겠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의 지지자들이 많았던 터라 중국공산당과 심지어 소련 조차 그의 처형에 반대하며 여러 경로로 구명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스탈린의 사후 소련뿐 아니라 공산권의 정치 지형이 크게 변하며 북한 내부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축출기도가 터지자 김일성은 두 공산주의 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헌영을 처형한다.

박헌영이 진짜 미국의 스파이였을리는 없다. 그것은 명목상의 핑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데다 무식한 하층민 출신인 김일성에게 복종했다면 숙청을 피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소련 군부에 줄을 잘 섰다는 것과 몇몇 소규모 항일전투를 치뤘다는 명성 외에는 별 영향력이 없던 김일성은 옌안파, 소련파, 남로당파, 갑산파와 연합한 정부를 세운다. 한국전쟁 이후 남로당파를 숙청한 이후, 김일성은 소련파, 연안파를 숙청했다. 심지어 갑산파는 김일성의 빨치산파의 방계나 다름없는 계파였는데도 불구하고 1967년 북한의 경제체제가 위기를 맞자 숙청된다. 분단과 동시에 영향력을 잃어버린 남로당계의 박헌영 역시 그 숙청의 역사에서 AK47의 총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1956년 박헌영이 마주한 죽음은 이미 그가 1946년 7월에 스탈린의 사무실을 나오며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렘닌 궁을 나서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인생에서 모스크바는 그때가 두번째로, 그는 1929년 겨울서부터 1931년 10월까지 약 2년여간 국제레닌대학교를 다니며 모스크바에 머물렀다. 그시절부터 1946년까지 모스크바 서쪽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크렘닌 주변과 붉은 광장은 아마 예전 그대로였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심장에서, 공산주의의 지도자 레닌의 이름을 딴 대학에서 수학하던 한 청년은 이제 조선노동당의 영수가 되어 스탈린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크렘닌 특유의 무거운 공기. 불안한 정적. 그리고 그를 꿰뚫고 울려퍼지는, 군화발이 대리석을 때리는 그 특유의 소리. 이윽고 문이 열리고 강철동지 스탈린의 차가운 미소가 책상 건너에서 그를 반겼으리라. 잠시 후 면접을 마친 그는 지친 얼굴로 크렘닌 궁을 나왔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자신이 자주 찾던 카페와 식당, 그리고 친숙한 거리들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붉은 광장 앞 한 벽돌건물의 벽에 기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는 모스크바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들을 추억했을 것이다. 같이 국제레닌대학교에서 수학하던 조선인 동지들-그 사이의 사랑과 배신, 호치민을 비롯한 동양인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의 지령을 받아 상하이로 떠나며 생이별한 자신의 첫 딸-사랑하는 비비안나. 그리운 이름들과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는 1930년의 봄을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이윽고 담배를 비벼 끄고 그는 무거운 얼굴로 돌아서서 격동하던 조국의 두번째 전선으로 향했다. 한쪽 어깨에 예정된 죽음을 얹고서.

2019. 8. 17.

ZER0

 
 

  • 세상에 0보다 더 강력한 지지선은 없다. 그리고 지난 48시간의 금융시장은 영의 위대함을 깨부수는 충격에 시달렸다. 미국채 금리의 3m vs 30yr 스프레드는 0을 깨고 마이너스로 돌입했으며 유로 스왑금리는 전 테너가 0 아래를 찍었다. 그 여파로 미국 주식시장은 3% 폭락했으며 한국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동안 세계 금융시장은 광기와 복통에 절어야 했다.
  • 인도에서 발명된 이 0은 단순히 zero를 의미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십진법의 자리수를 구분하여 금융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복식부기와 회계학, 재무제표는 모두 영의 부산물일 뿐이다. 와닿지 않는다면 USD 40,101+USD 170,010을 각기 로마숫자, 한자, 한글로 기입해서 계산해보라.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금융시장의 발전은 0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었다.
  • 이성의 화신인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에게도 0은 특별한 숫자이다. 수 체계의 첫번째 구분은 자연수로부터 시작되며, 용어 그대로 0은 수의 세계에서 natural과 unnatural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중학교 수학에도 등장하는 피타고라스의 학파는 우주의 모든 사물은 자연수의 특성에 기인하고 있으며 1부터 10까지의 각 수는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은 학문을 넘어 종교의 영역에까지 도달했고, 피타고라스의 후예들은 자연수의 영역을 벗어난 무리수 √2를 최초로 발견한 동료 히파수스를 강물에 던져 죽이고야 말았다.
  • 굳이 피타고라스 학파가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수학적으로도 0은 신비의 영역이다. 수학적으로 무한의 정의는 1/n에서 n을 극한으로 0에 가깝게 만들때의 값을 의미한다. 즉 0은 가장 작은 숫자임과 동시에 가장 커다란 수의 어머니가 된다. 성경의 "나는 곧 알파요 오메가이니"라는 구절처럼 0은 곧 ∞요, infinite은 곧 zero다.
  • 이렇듯 모든 숫자 중에서 깊이와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은 오로지 0 뿐이지만 애달프게도 이는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정보는 지식이 아니며 지식은 지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금융인들은 정보와 지식을 지혜라고 생각한다. 아니, 자본이 곧 지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가난이 선을 의미하지 않듯 부자는 현자가 아니며 우리는 그저 무한대의 데이터 속에서 황금을 캐내려하는 일개 연금술사에 불과하다. 가진 재주라고는 그저 0으로부터 달아나는 것 밖에 없는.
paint by Saul Steinberg


2019. 8. 11.

빼앗긴 구직시장에도 봄은 오는가

우리 2000년 전후 학번들, 특히나 명문대생들에게 취직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학교에서 취업설명회나 박람회가 열리면 해당 회사에 다니는 선배들이 아직 재학중인 후배들에게 문자를 돌리곤 했다. 관심있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 심심하니까 부스에 와서 좀 놀다 가라고. 고시나 유학 석박사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기였던 터라, 선배 중 누군가가 삼성전자나 SK에 취업을 한다고 하면 "맞아 저 선배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지"하고 평가하기도 했다. 고시나 영어가 아니라 취업스터디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대충 살아도 잘 풀리던 시대는 박진영의 비닐바지나 HOT의 캔디 춤과 함께 사라졌고 지금의 20대는 취업이 입시만큼이나 힘들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데이터에 드러나는 청년의 실업난은 마치 백악기 말 대멸종 만큼이나 끔찍하다. 정부 발표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10-30대 근로자는 고작 2만여 명이 증가했는데, 50세 이상의 노동자는 무려 151만명 증가하여 사실상 그 5년간의 취업시장을 50-60대가 독차지한 것이다. 2 151. 이런 스코어는 20대가 60대 할배들과 농구시합을 해도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쪽이라니. 저성장 하나 만으로는 이 난수표같은 데이터를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이 20대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벨제붑과 바알이 대한민국의 고용을 지옥으로 이끈 무기는 바로 최저임금이다. 청년실업은 정확하게 이 최저임금때문에 발생했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병신오인방을 다섯손가락으로 치면 중지쯤 되는 장하성 실장의 혁혁한 공로 덕에 최저임금이 왜 고용시장을 악화시키는지 설명할 노력을 아낄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최저임금이 만원이라는 말은, 생산성이 만원이 안되는 노동자들은 일하지 말라는 말이다. 학창시절에 경제원론도 똑바로 안 들은 멍청이들의 구호와는 다르게 값어치가 시간당 8천원 밖에 안되는 직원에게 시급 만원을 주고 고용할 회사는 없다. 어차피 만원을 줘야 한다면 진짜 만원어치 일을 하는 직원을 쓰거나 기계를 돌리지, 호구가 되고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적정한 최저임금은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하지만 현재의 최저임금이 오르는 속도는 이미 한참 전에 적정선을 벗어났다. 아래의 차트를 보자.
 
위의 난잡한 그래프를 보기 전 하나 퀴즈, 지난 30년동안 강남 부동산보다 더 많이 오른 것은? 답은 최저임금이다. 위에서 다른 선은 모두 잊어버리고 녹색 막대그래프만 보자. 노동운동이 결실을 맺은 이래 최저임금 상승률은 소비자물가보다 더 많이 올랐는데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면 노무현-박근혜 정부는(이상한 조합이지만) 최저임금을 3-4배 더 올렸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방점을 쾅 하고 찍었다.

언론에서는 최저임금이 고용 전반에 악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고용시장 내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시장에서는. 이 정책의 첫번째 호구는 단연코 구직자들이다.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경력직의 연봉을 줄 수는 없으니, 그냥 검증된 경력직을 쓴다. 반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 모든 경력직들이 이득을 본다. 기업이 신입을 뽑을 수 없다면 경력직들을 계속해서 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한 코메디언이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모두들 경력직만 찾으면 나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뭐 어쩌겠나. 나라에서 경력직만 쓰라는데. 최저임금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대강 정리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출처: 뇌피셜
 
최저임금은 취준생들의 영역을 갉아먹는다. 반면 대부분의 경력직들에게 그들 생산성 이상의 연봉을 주도록 강제한다. 동시에 기존 경력직 중 최저임금보다 못한 생산성을 가진 소수는 실직하게 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강력하게 쓰자 저소득층의 소득이 폭락한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우리 회사는 신입을 거의 안뽑는 대신 고연봉을 주지만 만약 최저임금이 시간당 뭐 한 5만원쯤 되면 우리도 신입을 못 뽑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절대로 나를 자르지 못한다. 적어도 최저임금이 내 연봉을 상회해서 폐업하는게 이득이 되는 그 날까지는. 이것이 모든 회사 모든 산업 모든 업종에 걸쳐 벌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지지하는 단체를 보라. 40-50대가 주축인 생산직 노조들이고 그들이 현 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20대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지지한 것은 자기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래의 그 증거를 보자.
 

20대의 실업률은 최저임금을 따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부터 최저임금이 물가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상승했고 그 결과 전체 실업률은 대단히 안정적인데 비해 청년실업률(파란색)은 고점을 깨고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같은 기간 전체실업률(빨간색)은 매우 안정적인데 저기서 20대 실업률을 뺀다면 빨간색 선은 되려 더 낮아졌을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실업 데이터를 들여다 보는 것은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청년들의 젊음을 무의미하게, 또 끝없이 소모시키는 동안 중장년의 장성들이 뒷짐지고 성과를 논하고 있으니. 안타깝게도 당신의 실업은 내일이면 잊혀질 숫자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를 계급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나 역시 그 시각에 동의한다. 그리고 전쟁에서는 올바른 전선을 택하는 것이 승패를 결정짓는다. 누군가는 그 선을 남/녀에 그을 것이고, 누군가는 남/북으로 또는 빈자와 부자로, 혹은 화개장터 어드매로 그을 것이다. 과거 20대들은 모든 대선투표에서 노동계와 연대해서 싸워왔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역대 최다 격차로 여당 후보를 꺾었을때도 20대는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남아있었다. 나 역시 내 20대 그 어느 해에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고 그에 따라 표를 던졌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20대가 나눠준 열정과 땀을 삼켜 힘을 얻은 4050대 노조들은 일자리를 독점했고 순진했던 젊은 세대는 직업을 잃고 또 비전을 잃었다.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는 결국 일자리였는데 그들은, 그리고 한때의 나는 전선을 잘못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자리를 얻고 내 후배들이 얻지 못한 것은 순전히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예전에 썼던 한 글에서 나는 20대들은 과거엔 취업이 쉬웠다고 불평하면서도 그시절 구직자들이 얼마나 낮은 생활수준과 나쁜 근로여건을 받아들였는지 간과한다고 비난했지만, 나 역시 그 나이때는 알지 못했다. 전적으로 그들을 탓할수만은 없다.

최근 20대들 사이에서 보수적 여론이 높아지는 이유는 군사정권때 교육받은 쌍팔육(486/586)들 주장처럼 못 배워서가 아니라 좌파꼰대들과 자신들 사이에서 뭔가 날카로운 간극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저임금의 두번째 피해자는 20대의 반대편 극단의 6070대들, 노령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황혼세대라는 것이다. 4050대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연대하는 것을 아버지 세대가 혀를 끌끌차며 조롱하는 것이 오늘의 정치다. 문재인의 당선 이후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을 6배가 넘었을때, 노조들은 강원랜드에서 잭팟을 터뜨린 양 축배를 들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강남 재건축 아파트보다도 빨리 오르는데. 그 승리를 멀찍이서 박수쳐주다 돌아선 20대들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취소된 공채 일정과 서류탈락 통보문자 뿐이었다. 그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라도 해주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6070대들은 하나 둘 씩 스러져 줄어들 것이고 전 연령층 중 가장 투표 안하는 20대들은 미래에도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이 청년들은 당차게 사회로 한 발을 내딛으며 누구에게 힘을 빌려줄 지 고민했겠지만 정작 자신들이 도움을 필요로할 때 누구도 손내밀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정치적 패배는 계속될 것이고 좌파꼰대층의 최저임금을 통한 일자리의 독점 역시 계속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내 한표와 이 레퀴엠같은 글 하나 뿐이다.

(아멘)

 
*무엇보다 저성장은 단기적 실업을 설명할 뿐이지 십년이 넘게 이어지는 장기실업을 설명하지 못한다. 학파간 시기에 대한 견해차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수요공급 시장이 그렇듯 고용시장도 수요가 줄면 가격이 내려가 다시 균형점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은 장기간 이어졌다. 지난 15년간 경제성장률이 OECD평균보다 높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기간을 통틀어 악화된 청년실업률은 경제성장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최저임금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크고 여기에는 많은 경제학자도 동의하며 나 역시 최저임금 제도를 지지한다. 하지만 세상에 장점만 있는 제도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아주 급격하게 올린 최저임금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2019. 8. 9.

병신오인방(丙申五人幇)

한때의 히어로가 빌런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롭다. 개미들의 재테크 희망이던 신라젠이 3연방 하한가를 찍는 일이나, 또는 어린시절 즐겨보던 TV프로의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 이후 성인물의 주인공이 되었다든가. 그런데 그 악몽이 매일 9시 뉴스마다 반복되고 있다. 한때 영웅이었던 몇몇 진보 지식인들은 권력과 위세를 얻으며 과거 자신들의 주장과 정확하게 역행해서 사익을 추구하며 쫌생이로 전락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이제 인정하자. 그들은 정의롭지도 않고 쿨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그저 열등감에 미친 찐따였음을.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다섯을 뽑아봤다.

이 다섯명은 을사오적과 다름없다. 나름 지배층이나 엘리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나라를 골로 보내고 있다. 또한 그들은 각기 다른 시점에 추락했지만 그 출발점은 모두 2016, 병신년의 박근혜의 탄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을사오적을 본따 병신오적(丙申五賊)이라고, 아니 워딩을 좀 현대적으로 다듬어 병신오인방(丙申五人幇)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부디 동음이의어로 인한 저급한 해석은 삼가주길 바란다. 또한 뻑뻑한 키보드로 급하게 쓰는 글이니 다소간의 오타는 양해해주길 바란다.


조국-형법 잘 모르는 형법학자, 법무부장관을 꿈꾸다. 
내 학창시절에 처음 알게 된 그는 정치에 끈을 대고 있는 기회주의적 동료 교수들을 폴리페서라고 부르며 매섭게 비난하던 젊은 법대 교수였다. 하지만 그는 곧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폴리페서, 폴리페서의 고유명사 그 자체가 되었다. 그는 청와대 인사수석에 이어 법무부장관에 내정되고서도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지 않아 진정한 내로남불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며 압도적 표차로 2019년 가장 부끄러운 동문 1위에 올랐다. (2016년 1위 우병우)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학내 여론을 비난하며 자신의 제자들을 엄히 꾸짖겠다고 말했는데,  ㄲ짖는 것은 본인의 자유라고 해도 제자들을 보려면 수업을 해야 하는것 아닌가. 참고로 과거 그는 2학년 수업시간에 오상방위라는 개념이 법조문에 존재한다며 우기며 법전을 뒤지다 못찾자 책은 파본이라 없다고 주장했고, 이를 보다 못한 몇몇 학생들이 법조문에 그런건 없다며 가르침을 주었다. 수직적 도제식 교육으로부터 탈피해 교수가 학생에게 배우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그는 이번에는 연구도 교육도 하지 않지만 교수는 할 수 있다는 마르셀 뒤상 급의 새로운 행위예술을 준비중이다.

그는 왜 이런 조롱까지 들어가며 교수직을 놓지 않을까? 내가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닐까 한다. 대중은 그의 내로남불을 조명하고 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교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그의 무식과 완벽하게 검증된 무능함이다. 2년여간 그가 검증한 공직자 중 절반 이상이 인사 5대 원칙에 어긋났고 청문회 통과율은 이명박근혜 시절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다. 교수 시절에는 중간고사를 까먹어 당일에 연기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뭐 변호사 자격증도 없으니 개업을 할 수도 없고 또 서울대 교수를 사임하고 나면 학생보다 법 모르는 형법학자를 교수로 임용할 학교도 많지 않겠지. 조국이 찌질하고 비굴하게 서울대 교수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능하다는 것을 본인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는 중간고사 날짜는 까먹을지언정 sns 업로드는 잊지 않는, 현대 소셜네트워크 시대에 가장 걸맞는 바이럴 마케팅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과 무역분쟁이 시작되자마자 죽창가를 올리는 저 반응 속도를 보라. 누가 온라인에서 그를 당하랴. 이런 족ㄱ같은 교수는 학교를 떠나야 한다. 본인을 위해서는 타인을 위해서든.

이준구-부등식을 못 푸는 꼴보수 경제학자 (22조 원> 54조 원)
경제학자의 눈으로 이명박의 토목사업 지출을 매섭게 지적하던, 서울대학교의 살아있는 지성 이준구 교수.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그는 이명박근혜와 함께할 때만 진리의 등불을 밝히는 진정한 숨은 꼴보수였다.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은 5년간 22조 였는데 비해 현 행정부의 일자리 지출은 2년여 동안 54조를 넘어섰다. 현대건설 신화를 써내려 간 이명박을 쫌생이처럼 보이게 만드는 규모의 돈을 쓰고도 민간고용을 감소시키는 역대급 자살골이 매달 터지는데 이 노교수는 입을 딱 씻고 아무 지적도 하지 않는다. 공돌이 정책실장이 경제정책을 총괄하며 IS곡선을 무시하는 발언과 정책을 내놓아도 그는 아무런 촌평을 하지 않는다. 혹시 그가 꼴보수라 현 정부에게 자신의 빛나는 지혜를 빌려주기 싫은 것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이런 의혹은 그가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쓴 장문의 글을 보면 더욱 짙어진다. 두서도 없는데다 사실관계도 틀린 소주성 정책의 평가를 올린 글을 보자 그를 찬양했던 대다수의 경제학도들은 실망하며 분노했지만, 소수는 현 정부의 실권자가 꼴보수인 그를 협박해 ID를 강탈한 뒤 대필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아니고서야 과거 이명박근혜 시기에 나라가 잘되길 바란다며 고언을 아끼지 않던 경제학자가 경제지표가 역대 최악으로 박살나는데 저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경제학계의 오랜 난제-최저임금은 고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후배 한국인 경제학자들이 명확한 답을 낼 수 있도록 눈물을 머금고 박살나는 고용시장을 묵과하는 지도 모른다. 전세계 2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이토록 급진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린 적이 없었는데 이를 논문으로 정리해 발표하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것도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내가 존경했던 이준구 교수님은 후학을 위해 전략적으로 침묵하고 계신 것이리라 믿는다.

장하성-경제는 잘 모르지만 경제정책은 잘아는 풍운아
주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절대선처럼 여겨지던 2000년대에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소득불평등을 강조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소득불평등은 나쁘지만 자산불평등은 괜찮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쳤는데, 아마 본인은 금수저라 물려받은 자산은 많지만 별 능력은 없어 소득은 그저 그런데, 학창시절 자기보다 못 살던 고대경영 동기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만큼 잘 살게 되는 것을 보며 느끼던 정체모를 배아픔으로부터 탄생한 이론이 아닐까 한다. 경제가 아닌 재무를 전공했지만 자기가 경제정책을 펴면 성장이 자동적으로 된다고 큰소리를 땅땅 쳤지만 그의 말대로 하자 사람들의 소득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소득불평등이 역대 최고로 악화되었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난 그는 곧장 주중대사로 임명되었다. 경제 몰라도 경제정책을 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어도 못하고 중국은 처음이지만 중국대사는 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여전히 사철나무처럼 굳건하다. 그는 내가 강남에 살아보니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공분을 샀는데 때때로 광주에서 태어난 본인은 왜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해 자신의 강남 집을 기부하고 고향으로 낙향하겠단 뜻이었을까? 아니라면 너무 병신 같잖아. 그는 퇴임하면서 무지개 쫒는 소년 처럼 살고 싶다고 했는데 적어도 나에게 그는 무지.개같은 ㅅ년이었다.

유시민-만 60세, 뇌가 썩으신 분
북한 얘기가 나오면 눈이 뒤집히고 사람이 약간 돌긴 하지만, 촌철살인을 가진 진보측 논객이라 생각했다. 학교다닐때 운동하느라 바빴지만 경제학에는 통달했고, 학위는 없지만 한국사 책까지 저술한데다 합리적으로 볼 때 미국은 달에 간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 분에게는 숨은 전공분야가 있으니 바로 의학이다. 그는 일찍이 사람이 60대가 넘으면 뇌가 썩기 시작해서 다른사람이 된다는 "뇌 유통기한 60년설"을 주장했고 그 학설이 사실임을 본인이 직접 증명했다. 젊어서 명문고를 없애고 서울대를 폐지해 교육평등을 외치던 그는 딸을 외고에, 아들을 유명 자사고에 보내 수시로 각기 서울대와 연대에 진학시켰다. 내로남불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 스스로 해명하길, 딸이 외고를 다녀보니 외고를 없애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명언을 남겼다. 전두환이 죽기전에 민주화 선언을 하고 "내가 독재를 해보니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선언한다면 과연 유시민과 그 자녀들은 전두환을 보고 뭐라고 할까.

하지만 시류를 읽는 능력만큼은 여전한 듯 하다. 젊은 시절 운동권 동지들이 국보법으로 구속될 때, 그는 멀쩡한 시민 넷을 붙잡아 몇주간 감금 폭행 고문한 죄로 구속되었지만 방송에서는 자신의 수감시절을 고 박종철 열사마냥 비장한 눈빛으로 회상한다. 또 합수부 수사 당시 동료 학생들의 행적을 소상하게 줄줄줄 불어서 민주화 학생열사들이 대거 구속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예능에서 마치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재치를 발휘한 것 처럼 포장했다. 그의 시류를 읽는 능력은 썰전의 드루킹 보도에서 정점을 찍는다. 킹크랩을 통한 댓글조작이 처음 보도되고 느릅나무가 주최한 강연에 참가한 사진이 공개됐을땐 드루킹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더니, 각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그는 재빨리 썰전 패널 자리를 사임하고 그 뒤는 노회찬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고 뇌회찬 의원은 드루킹에게 돈 받고 거짓말 한 것이 들통나 자살했다. 하지만 유시민 의원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신다. 혹시나 그분이 자기 뇌가 썩는게 걱정된다면 내 사비를 털어 방부제를 사서 먹여 드리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도.

김상조-특기: 윽박질러 경제성장하기, 일명 행보관모델
나는 문재인 정부의 모든 인사중에서 김상조의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가장 지지했다. 나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태에 분노하는 그의 주장에 공감했고, 또 그 신념이 이 역할에 정확하게 꼭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대기업, 특히 삼성을 조지는 것이 공정하다고 잘못 알고 있는듯 하다. 그는 국회 청문회 자리에 늦게 도착한 이유로 "재벌들 혼내주다가 늦었다"라고 대답했지만 본인의 역할은 공정거래를 유도하는 것이지 흥신소 깡패처럼 대기업을 겁박하는 것이 아니다. 미대를 나오고도 무려 1:1의 경쟁률을 뚫고 공기업에 입사했던 대통령의 능력자 아들은 김상조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S/W회사를 차려 정부에 납품하고 있었고 서울시의 태양광 수주 사업은 박원순의 측근들이 대표로 있는 회사들이 쓸어갔는데 그는 이재용에게 갑질이나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장하성(전공: 재무)과 김수현(전공: 공대)의 후임으로 정책실장의 자리로 옮기며 문재인 정부 최초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학 전공자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가 이룬 성과는 자기가 조지던 삼성의 이재용 회장을 불러 반도체 원료 국산화 계획을 내놓으라며 또다시 윽박지른 것이 전부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따면서 배운게 조지고 윽박지르는 것 뿐인가. 사실 이 스킬셋은 공정거래위원장보다 군대 행정보급관에 더 어울리는데 군바리 식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 아닌가. 미제 괴수 우두머리 맥아더장군이나 괴뢰도당 박정희처럼 라이방 선글라스를 쓰고 전선을 시칠하던 비서실장 림종석 동무도 그렇고, 이 정부 사람들은 왜 자꾸 자기가 비난하던 무리들을 닮아갈까.


나는 이 다섯을 결코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철학에 따라 뭉치고 나뉜 것이 아니라 그저 파벌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을 그냥 좌파라고 부르기로 하자. 서두에서 밝혔듯 나를 비롯한 대중들이 그들에게 더 분노하는 이유는 한때 저들은 우리의 히어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개를 돌리면 책상 옆 책장에 꽂혀있는 그들의 저서들을 볼 수 있으며 현재의 그들이 아닌, 뇌가 썩으시기 전의 그들은 내 지적 성장을 도와줬던 멘토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그들은 모두 죽고 없다. 이 기회주의자 병신오인방은 (丙申五人幇) 그저 권력과 명성, 그리고 지적 허영을 위해 지성의 가죽을 벗겨 두른 뒤 파벌을 이뤄 우우 달려가 언어적 집단폭행이나 저지르는 찐따들이었을 뿐이고 그 탈을 벗은 본모습은 마치 심각한 성형부작용에 시달리는 강남언니마냥 흉측하고 기괴하다.

하지만 너무 좌절하진 말자. 아직 몇몇 진보 히어로들은 자신의 코스튬을 벗어던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박준영 변호사가 그렇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외치던 그는 일련의 광기어린 마녀사냥 앞에서 신중할 것을 여러번 주문한 바 있다. 대중과 언론이 이성 대신 G컵 베이글녀를 쫒아다닐 때 그는 냉철하게 여론이나 진영이 아닌 법과 정의를 따진 진보지식인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에는 파벌에 휩쓸리지 않는 진보와 보수가 아직 남아있다고 믿고 싶으니, 몰락한 히어로는 이 병신오인방(丙申五人幇)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2019. 8. 7.

한국의 금융시장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가

최근 정치적 성향이 강하거나, 혹은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내가 금융시장에서 일하다보니 시장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았다. 나도 눈치가 있는지라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아둔 채 에둘러 변명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우리는 시장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장의 시그널을 무시한 사람은, 트레이더가 아니라 경영자나 정치인 심지어 일반 시민들조차도 무거운 대가를 치뤄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FX movement in 2019
위의 차트는 귀금속을 포함한 전세계 약 146개국의 통화의 올해 퍼포먼스이다. 최하위 10개 통화 중 하나에 원화가 당당히 이름을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저 중 SEK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정상적인 시장에서 거래조차 되지 않는, EM에도 속하지 못한 나라의 통화들이다. 아마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저 모든 국가들과 통화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소수일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통화들의 리스트에 원화는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위풍당당 코리아.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명목환율의 장기적 추세는 인플레이션을 따라간다. 공식 CPI가 40%를 넘어서고 비공식적으로는 100-200%를 오가는 아르헨티나의 페소는 약 17%하락했으니 아르헨 페소의 실질환율은 되려 올라간 셈이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1% 이하인 원화는 8.2%나 하락했으니 만약 실질환율로 이 차트를 그린다면 원화의 성적은 (밑에서)7등이 아니라 더 높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도대체 인플레이션이 세자리 수에 이르는 통화들과 EM 중에서도 가장 DM에 가까운 원화가 비슷한 성적을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식과는 달리 환율이 강해진다는 것이 꼭 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들면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의 통화는 보통 강세를 띄지만 우리는 그 나라의 경제가 좋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통화가 약세로 간다고 해서 꼭 나쁜 시그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환율의 변화는 주로 전년도 대비 국제수지의 변화를 의미하므로 우리나라가 당장 저 EM미만 수준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외환시장은 작년 대비 올해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변화가 아주 크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내 생각엔 전세계 대비 언더퍼폼한 주식시장보다도 외환시장이 현재의 경제상황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에서는 KOSPI 보다도 더 폭락한 다른 나라들도 존재하긴 한다. 물론 뭐 파키스탄, 코스타리카, 레바논, 케냐, 오만 뭐 이런 나라의 주식시장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지만, 외환을 보면 저 나라들을 모두 포함해서도 KRW는 꼴지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도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충격이 더 크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겪는 변화는 이 국제수지를 보아야 더 명백하다.

나는 한국의 경상수지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진 않는다. 예전 GDP의 약 3% 수준이었던 경상수지 흑자가 2015년에 GDP의 7.2%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디플레이션에 따른 결과이고, 디플레이션이 해소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과 소비의 증가는 수입의 증가로 이어져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인다. 실제로 코스피가 고점을 경신하던 2017년 수입이 연 9% 증가하며 경상수지가 GDP대비 약 4.5%로 하락한 적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소비시장과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삼성전자의 최고가는 이재용의 부재일 때 였던 것 처럼, 대한민국의 최 전성기는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 실제 문제는 경상수지가 아니라 자본수지에 있다.

앞서 글에서 대한민국에서 두가지 파업이 일어난다고 했는데(링크) 현재의 환율변화는 이 두가지 파업 중 자본의 파업* 연관되어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의 강제파업과 자본의 도피적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자본은 늘 수익을 좆는 천성을 가진지라, 노동자와는 달리 국내에서 파업을 한다고 그저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게 해외투자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부동산 외에는 투자할 분야가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한 세금과 고거보다 강화된 규제는 한국투자의 "세후"수익률을 낮추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정부의 개입은 불확실성을 높여 "위험가중" 수익률을 더욱 낮췄다. 7월 2일 이후 한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가가 강세를 보인 것은 두 회사가 대규모 투자를 연기하거나 중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장래가 있는 기업이 투자를 한다고 하면 주가가 오른다. 미래가 글러먹은 회사가 투자를 늘린다고 하면 주가가 빠진다. 한국 경제의 두 쌍두마차가 투자를 중단한다고 했을때 주가가 오른 것은 대한민국이 쪽바리들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들의 투자엔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본파업은 환율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율이 약 5% 움직이고 나면 환헷지 전략과 투자 전략을 재조정한다.(주식에 비하면 이 5%가 별것 아닌 듯 하지만 환율이 그정도 움직이고 나면 일간지 1면에 FX 트레이더들의 뒷통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국인의 해외투자는 다르다. 2015년 이후 중국과 같이 자본유출을 통제하려던 많은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고작 5%의 움직임으로는 달러 수요를 막지 못한다, 되려 더 강해진다. 그래서 지난 5년간 1200원 위는 무조건 팔면 돈 버는 구간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내국인들은 여전히 이 수준에서도 달러를 사서 해외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경상수지 흑자국은 자본수지 적자를 유지해야하니 자본의 해외유출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 이상으로 자본수지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자본파업이 있다. 자본파업은 마치 케인즈 이전의 경제학과 같아서 경제주체들이 서로가 네거티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더 나빠진다는데에 있다. 특히 한국의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재 고작 6조 남짓한 추경으로는 이 고리를 끊을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 GDP의 1-1.5%에 달하는 대규모 추경이나 감세, 혹은 경제부총리가 마약을 했나 싶을 정도의 막대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는 커녕, 우리는 참새 코딱지만한 추경을 통과시키는 데도 100일이 넘게 걸렸고 같은 기간 동안 주식은 1900을 깨고 환율은 3년 반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으며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의 간접적 피해자 처지로는 감질났던건지, 우리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새로이 시작했다. 이데올로기로 펴는 경제정책은 백종원의 요리를 미적분학으로 풀이하는 것 보다도 더 어색하고 괴상한데 대중은 거기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고3 이래로 공부를 해본 적도, 일해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이 명분만 좆는 사대부새끼들이 외교와 경제를 장악했으며 그들이 내놓는 대책과 비전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다만 장르가 호러일 뿐. 놀라기도 지친 자본들이 한국을 이탈하고 있고 그게 현 환율 상승의 배경이다. 과거의 환율상승기는 잊어버려라. 우리는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니.

그리고 앞서 링크한 글에서 나는 4개 분기 평균 기준으로 한국의 투자가 현재보다 나빳던 적은 단 네번 뿐이라고 했는데 아마 다음 GDP가 발표되면 IT버블때의 기록을 앞질러 사상 세번째 최악의 시기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본파업은 그저 쉽게 이해하라고 내가 멋대로 붙인 비경제용어지만 그보다 현재의 변화를 더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용어를 찾지 못했다.

2019. 8. 5.

오늘자 시장

뭐라도 한줄 남기고 싶은데 그럴 기력이 없다.

아직도 나는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

2019. 8. 4.

도박의 본능

2017년 초 여의도에서는 요새 3트가 없으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비[트]코인 셀[트]리온 그리고 아파[트]. 그리고 우리는 두번째 트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 하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라고 자부하던 바이오주는 각종 사고로 연일 폭락을 기록하며 올해 최악의 섹터에 올랐고 강력하게 바이를 외치던 애널리스트들은 하나둘 씩 빠이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엔 늘 개미들이 있다. 개미들에게 한때의 희망이 현재의 패닉이 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여의도 개미들 중 상폐(상장폐지)를 당해보지 않은 이를 본 적이 있는가? 심지어 모 대형증권사의 내부 분석자료에 따르면 개인 주식계좌의 약 92%, 파생계좌의 약 95%가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훈련받지 못한 개미들은 본능에 따라 투자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돈은 인간의 본능을 싫어한다. 본능대로 투자해서는 결코 장기적으로 돈을 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본능은 위험 그 자체를 쫒지 이윤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잘못된 위험을 쫒을까?

나는 그 기저에 수면욕, 성욕, 식욕처럼 인간에게 도박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에게 왜 그런 욕구가 생겼는지는 호모 사피엔스 종의 진화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사바나 물가에 살던 유인원 중 한 종이 직립보행을 실시한 이래 인간은 7만년에 걸쳐 모든 대륙에 퍼져살게 되었다. 빙하기가 끝나 육로가 막힌 뒤에도 인간은 북아메리카를 넘어 남아메리카 까지 진출했으며 심지어 호주처럼 육로가 존재하지 않았던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것은 단연코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이동일 것이다.

현재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분포는 위와 같은데, 근대 이후 코카시아인과 영어/스페인어로 대체된 호주와 남아메리카의 서쪽 해안의 몇몇 섬을 포함한다면 그들은 단연코 인류역사상 최고의 대항해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동은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약 1천년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심지어 철기는 커녕 청동기시대에도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 문명으로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서부터 아메리카 서쪽 해안에 이르른 루트를 개척했다.
 
이와 같은 대규모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종의 특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마 최초의 사바나 평원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홍해(혹은 아라비아해)를 건너던 그 개체는 같은 종의 그 누구보다도 더 호전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었을 것이다. 따듯하지만 건조한 아라비아반도를 지나, 코카서스 지방을 거쳐 추운 산림지대인 북쪽으로 이동한 무리나, 혹은 수천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지는 스텝지방을 넘어 한반도까지 이르른 우리의 선조, 그리고 이 모든 환경에 적응한 뒤 다시 동아프리카와 다름없던 인도나 아시아 남부로 이동한 개체들은 모두 목숨을 건 도박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을 빌린다면, 호모 사피엔스 중에서도 적당히 무리한 도박에 나선 유전자풀이 아프리카 밖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무리한 도박을 펼친 유전자는 다 멸종했겠지만) 한번 기원전 3천년 전 인도네시아아 해안가에 서 있는 한 남자를 상상해보자. 육분의도 나침반도 구글어스는 물론이고 열명 이상 탈 수 있는 배도 못 만들던 시절, 그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모험을 꿈꾼다. 그 너머에 섬이 있는지, 아니면 끝없이 물이 떨어지는 절벽이나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오징어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항해에 나서기로 한다. 고작 보름치 식량과 물 만을 가지고 바다에 나선 그는 태풍과 파도와 싸워가며 칠일을 걸쳐 나아갔지만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제 선택을 해야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칠일간 더 나아가 육지를 발견할 확률에 목숨을 걸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이 헛된 항해를 마무리해야 한다. 바다로 나아간 이들 중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중 아주 소수가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안길 수 있었다. 하지만 백만명 중 한 둘은 새로운 섬이나 육지를 발견해서 진귀한 동물들과 과일들을 배에 가득 싣고 돌아왔을 것이며 그는 부족의 영웅이 되어 그를 칭송하는 신화가 쓰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릴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영웅들을 많이 가진 부족들이 더 멀리, 더 많이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의 후손이다. 도박은 우리의 본능이고 그 본능 덕에 사바나의 초원을 벗어나 달나라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도박의 욕구가 존재한다. 심리학 실험에서도 보상을 불규칙하게 할 때의 자극이 가장 크다는 것을 여러 실험에서 입증한 바 있지 않은가.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주사위를 너무나 사랑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정육면체인 주사위가 주는 불확실성이 불충분했는지, 4천년 전 스코틀랜드에서는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주사위를 만들어냈고 이미 3천년 전 그리스 수학자들은 정이십면체보다 더 큰 정다면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러자 도박장은 이제 육면체 주사위를 두개, 혹은 세개를 쓰기 시작했다. 불확실성을 좆는 우리의 욕구는 이처럼 너무나도 강력하다.
 
*        *        *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국인들이 접근 가능한 카지노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는 3천년 전의 폴리네시아의 해안가와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과 동일한 도박욕구를 지니고 있다. 만약 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통제된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인간은 계속해서 위험을 찾아 잡주나 사업, 혹은 피라미드 투자에 눈을 돌릴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일본인들이 지나치게 소심하고 중국인들이 지나치게 배짱을 부리는 이유 역시 이 도박욕구의 억제 정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사설 도박장이 허용된데 비해 한국인들은 도박욕구를 해소할 길이 제한되어있고 중국인들은 아예 금지된 것을 보면 무모한 위험 앞에 누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지 예측하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또, 토토, 경마, 테마주 그리고 비트코인. 이것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전혀 다르지 않지만 10만원 짜리 카지노를 열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테마주와 알트코인에 백만원 천만원을 낭비한다. 인간의 본능은 억제하거나 없앨 수 없다. 이는 물과 같아서 억누를 수록 더욱 크게 터진다. 차라리 그들을 건전한 방향으로 발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건설적이지 않을까. 최소한 도박을 투자라고 착각하는 일이 없다면 무의미한 위험에 인생을 탕진하는 이들도 적어질 것이다.



10여년 전, 72시간만에 수천만원을 날리고 담배를 뻑뻑 물어 피던 내가 다시금 생각난다.

2019. 8. 3.

어째서 한국은 병신 외교의 종주국이 되었나?

대한민국은 병신외교의 종주국이다. 물론 우리보다 더 한심한 외교를 하는 나라가 없는, 혹은 없던 것은 아니나 우리처럼 위험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병신외교를 고집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 10대 군사 대국 중 3개 나라가 우리와 직접 영토/영해를 맞대고 있으며 나머지 하나인 북한 역시 세계 20위 안에 드는 군사 대국이다. 우리 역시 육군만 보면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강한 나라지만 심지어 육해공 모두 세계 1위인 미국도 외교를 한다. 그것도 우리나라보다 더 열심히. 따라서 우리가 병신외교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우리의 민족성이나 인종적 특성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 증명해주고 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링크) 줄도 잘못서고 정치체제도 잘못 택한 북한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저력은 군사력이 아닌 외교력에 있다. 게다가 최근 대외전략과 업적만 두고 본다면 김정은은 서희 이래 한반도 최고의 외교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한국이 고집하는 병신외교는 전후 남한이 걸어온 특수한 배경에 그 적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음 세가지와 같다.

첫째, 미국의 안보우산.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한 나라는 모두 멸망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서 아무리 멍청한 선택을 해도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제2공화국의 장면 정권이 국내의 정치적 소요를 전혀 통제하지 못해도, 혹은 신군부가 국내 정치투쟁을 위해 전방의 사단을 빼돌리는 짓을 해도 한국의 국가안보는 사실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버텨주고 있었으니까. 비슷한 상황에 처했지만 미국처럼 기댈 강국이 없던 고구려 백제 신라, 후백제, 발해는 모두 외적에 의해 멸망했다. 반면 오판을 내려도 운좋게 세계 1위 국가와 군사동맹을 맺은 남한과 우리는 아무 탈 없이 살아 남았다. 그 사이 한국이 받은 대외적 위협은 북한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미국이 원조를 줄이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공갈 밖에 없었다. 주던걸 뺏는 일을 대외위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바람이 치는 동안 비닐하우스, 아니 방탄유리에 사시사철 온습도 조절기능을 갖춘 세계최강 인큐베이터 안에서 곱게 자란 온실속의 화초는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생존게임을 가볍게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병신외교의 저변에는 이래도 안 망할거라는 강한 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반면 남한처럼 소련의 원조만 바라보던 북한은 1960년대 중반에서부터 외교적으로 홀로서기를 해왔다. 소련이 원조를 줄이기 시작하자 그들은 대중 외교를 강화했고 공산주의의 두 종주국 중소가 서로 으르렁대기 시작하자 그들은 양자를 오가는 외교를 택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에게 외교란 국가의 안위를 넘어 나와 개인 가족의 생명이 달린 문제였다. 아오지 탄광과 요덕수용소를 피해 살아남도록 단련된 북한의 외교관들이 곱게 자란 남한을 깔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외무상 총 책임자가 통역하던 강경화라니. 개가 똥구멍으로 웃을 일 아닌가.

둘째, 잘못된 전통사상의 잘못된 계승.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 한국사에서 배운 국가들 중 우리는 어느시대의 철학을 가장 많이 계승하고 있을까? 답은 우리나라 공식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대한제국이다. 병신외교를 펼치는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은 딴 한글자, 帝를 民으로 바꾼 것 딱 그정도만 다르다. 우리는 일제지배로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잘못된 방식으로 치유했다. 바로 식민지 이전의 역사를 긍정하는 것이다. 성리학과 명심보감은 현대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도덕이고 명청교체기에 병신외교의 선두주자였던 김상헌은 대나무같이 올곧은 절개를 지닌 선비이며 사익을 좆느라 나라를 말아먹은 민비와 고종은 비운의 주연으로 탈바꿈한 채, 우리가 여러번의 전란 끝에 나라를 잃은 것은 외적이 사악하고 무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라졌어야 할 한의학은 현대의 제도 아래서도 살아남아 의료보험의 대상까지 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근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셋째, 안정된 한반도의 정치 상황. 제러미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지중해로 인해 통일된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어렵던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는 천년 전 부터 훨씬 안정된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중 한반도의 정치상황은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우리가 조선을 피폐했던 전란의 시기로 기억하지만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공식적으로 멸망을 고한 1910년까지 한반도는 매우 평화로운 500년을 보냈다. 두번의 왜란과 두번의 호란, 그리고 마지막의 식민지배가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전란의 기간을 모두 합쳐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구한말의 식민지배는 별다른 군사적 충돌 없이 진행되었음을 기억하자.(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이다.) 동시대 다른지역의 역사를 보자.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에도막부가 설립하기까지 거의 150여년 동안 수많은 군벌들이 수도 없는 전쟁을 치뤘다. 우리는 단순히 동시대 중국의 역사를 명청교체기로 기억하지만 명은 청의 손에 멸망하지 않았다. 누르하치를 키워준 이자성의 손에 멸망했고, 당시에는 그 말고도 수많은 군벌이 존재했다. 청나라 말기에도 여러 군벌들이 난립하며 일부는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일부는 각기 다른 외세와 협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분열사도 서구사학자들의 눈에는 안정적으로 보일 만큼 동시대 유럽의 역사는 더욱 격렬했다.

누구나 1차세계대전을 알고 있지만, 그 전쟁이 어째서 벌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주 소수이며 아직도 그 발발원인과 경과에 대해서 논쟁이 이뤄질 정도로 그 배경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전쟁을 통해 근대의 국경선이 탄생했으며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은 이러한 격량을 거쳐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들이고 그들은 사소한 판단 하나가 어떻게 국가와 민족의 흥망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를 체화한 사람들로, 그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아들딸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한국 역시 그들 중 하나로 우리의 독립은 2차세계대전 전후처리를 논의하던 카이로회담에서 확정되었다. 당시 연합국 중 하나로 인정받은 중화민국 대표 장제스는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청일전쟁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다시말해 조선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기 위해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지만 현 대한민국은 후손에게 "장제스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크게 감명받아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병자호란을 겪은 뒤 첫 다음세대의 지배자였던 효종은 현실정치를 폈다. 그는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조선의 역사가 청나라의 지배 없이 쓰여질 수 없음을 깨달은 동시에 형의 비극으로 인해 청에 대한 내부의 반발이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명목상의 북벌정책을 펴는 동시에 청에 대한 현실외교를 펼쳐 청의 파병요구까지 받아들이기도 했다. 현대적 용어로 그의 이런 투트랙 외교전략은 같잖은 민족주의적 자기위안과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가져다주었지만 김상헌과 그의 병신외교를 이어받은 사대부들에게 헤게모니를 돌려주었고 그들은 이백여년 뒤 최익현을 낳고 또 그로부터 백여년 뒤 sns의 신진사대부새끼들을 낳았다. 반면 근대 일본의 전신인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전국시대 말기 정치적 소용돌이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아들에게 내려진 자결명령을 순순히 따랐다. 현재의 동아시아 외교무대에서 두 나라를 대표하는 이는 김상현과 도쿠가와라고 할 수 있다. 병신외교와 음흉외교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 하루빨리 우리가 병신외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추가 on 2 Aug 2019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회담을 듣다 내 귀를 의심했다. 제정신인가. 한달 전 일본이 무역제제를 발표한 이래 한국대표는 일본을 네번이나 방문했지만 일본 관료/정치인 중 그 누구도 한국을 방문한 적 없다.

두 연인이 싸운지 한달이 지났다. 남자는 여자의 집앞에 네번이나 찾아가서 여자를 기다렸지만 화해하지 못했고 여자는 남자의 집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남자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일이 도대체 제정신으로 할수 있는 것인가.


우리 한국인들은 어둠속을 벌거벗은채 헤메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