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

어째서 한국은 병신 외교의 종주국이 되었나?

대한민국은 병신외교의 종주국이다. 물론 우리보다 더 한심한 외교를 하는 나라가 없는, 혹은 없던 것은 아니나 우리처럼 위험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병신외교를 고집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 10대 군사 대국 중 3개 나라가 우리와 직접 영토/영해를 맞대고 있으며 나머지 하나인 북한 역시 세계 20위 안에 드는 군사 대국이다. 우리 역시 육군만 보면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강한 나라지만 심지어 육해공 모두 세계 1위인 미국도 외교를 한다. 그것도 우리나라보다 더 열심히. 따라서 우리가 병신외교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우리의 민족성이나 인종적 특성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 증명해주고 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링크) 줄도 잘못서고 정치체제도 잘못 택한 북한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저력은 군사력이 아닌 외교력에 있다. 게다가 최근 대외전략과 업적만 두고 본다면 김정은은 서희 이래 한반도 최고의 외교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한국이 고집하는 병신외교는 전후 남한이 걸어온 특수한 배경에 그 적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음 세가지와 같다.

첫째, 미국의 안보우산.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한 나라는 모두 멸망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서 아무리 멍청한 선택을 해도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제2공화국의 장면 정권이 국내의 정치적 소요를 전혀 통제하지 못해도, 혹은 신군부가 국내 정치투쟁을 위해 전방의 사단을 빼돌리는 짓을 해도 한국의 국가안보는 사실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버텨주고 있었으니까. 비슷한 상황에 처했지만 미국처럼 기댈 강국이 없던 고구려 백제 신라, 후백제, 발해는 모두 외적에 의해 멸망했다. 반면 오판을 내려도 운좋게 세계 1위 국가와 군사동맹을 맺은 남한과 우리는 아무 탈 없이 살아 남았다. 그 사이 한국이 받은 대외적 위협은 북한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미국이 원조를 줄이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공갈 밖에 없었다. 주던걸 뺏는 일을 대외위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바람이 치는 동안 비닐하우스, 아니 방탄유리에 사시사철 온습도 조절기능을 갖춘 세계최강 인큐베이터 안에서 곱게 자란 온실속의 화초는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생존게임을 가볍게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병신외교의 저변에는 이래도 안 망할거라는 강한 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반면 남한처럼 소련의 원조만 바라보던 북한은 1960년대 중반에서부터 외교적으로 홀로서기를 해왔다. 소련이 원조를 줄이기 시작하자 그들은 대중 외교를 강화했고 공산주의의 두 종주국 중소가 서로 으르렁대기 시작하자 그들은 양자를 오가는 외교를 택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에게 외교란 국가의 안위를 넘어 나와 개인 가족의 생명이 달린 문제였다. 아오지 탄광과 요덕수용소를 피해 살아남도록 단련된 북한의 외교관들이 곱게 자란 남한을 깔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외무상 총 책임자가 통역하던 강경화라니. 개가 똥구멍으로 웃을 일 아닌가.

둘째, 잘못된 전통사상의 잘못된 계승.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 한국사에서 배운 국가들 중 우리는 어느시대의 철학을 가장 많이 계승하고 있을까? 답은 우리나라 공식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대한제국이다. 병신외교를 펼치는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은 딴 한글자, 帝를 民으로 바꾼 것 딱 그정도만 다르다. 우리는 일제지배로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잘못된 방식으로 치유했다. 바로 식민지 이전의 역사를 긍정하는 것이다. 성리학과 명심보감은 현대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도덕이고 명청교체기에 병신외교의 선두주자였던 김상헌은 대나무같이 올곧은 절개를 지닌 선비이며 사익을 좆느라 나라를 말아먹은 민비와 고종은 비운의 주연으로 탈바꿈한 채, 우리가 여러번의 전란 끝에 나라를 잃은 것은 외적이 사악하고 무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라졌어야 할 한의학은 현대의 제도 아래서도 살아남아 의료보험의 대상까지 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근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셋째, 안정된 한반도의 정치 상황. 제러미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지중해로 인해 통일된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어렵던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는 천년 전 부터 훨씬 안정된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중 한반도의 정치상황은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우리가 조선을 피폐했던 전란의 시기로 기억하지만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공식적으로 멸망을 고한 1910년까지 한반도는 매우 평화로운 500년을 보냈다. 두번의 왜란과 두번의 호란, 그리고 마지막의 식민지배가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전란의 기간을 모두 합쳐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구한말의 식민지배는 별다른 군사적 충돌 없이 진행되었음을 기억하자.(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이다.) 동시대 다른지역의 역사를 보자.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에도막부가 설립하기까지 거의 150여년 동안 수많은 군벌들이 수도 없는 전쟁을 치뤘다. 우리는 단순히 동시대 중국의 역사를 명청교체기로 기억하지만 명은 청의 손에 멸망하지 않았다. 누르하치를 키워준 이자성의 손에 멸망했고, 당시에는 그 말고도 수많은 군벌이 존재했다. 청나라 말기에도 여러 군벌들이 난립하며 일부는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일부는 각기 다른 외세와 협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분열사도 서구사학자들의 눈에는 안정적으로 보일 만큼 동시대 유럽의 역사는 더욱 격렬했다.

누구나 1차세계대전을 알고 있지만, 그 전쟁이 어째서 벌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주 소수이며 아직도 그 발발원인과 경과에 대해서 논쟁이 이뤄질 정도로 그 배경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전쟁을 통해 근대의 국경선이 탄생했으며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은 이러한 격량을 거쳐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들이고 그들은 사소한 판단 하나가 어떻게 국가와 민족의 흥망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를 체화한 사람들로, 그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아들딸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한국 역시 그들 중 하나로 우리의 독립은 2차세계대전 전후처리를 논의하던 카이로회담에서 확정되었다. 당시 연합국 중 하나로 인정받은 중화민국 대표 장제스는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청일전쟁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다시말해 조선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기 위해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지만 현 대한민국은 후손에게 "장제스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크게 감명받아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병자호란을 겪은 뒤 첫 다음세대의 지배자였던 효종은 현실정치를 폈다. 그는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조선의 역사가 청나라의 지배 없이 쓰여질 수 없음을 깨달은 동시에 형의 비극으로 인해 청에 대한 내부의 반발이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명목상의 북벌정책을 펴는 동시에 청에 대한 현실외교를 펼쳐 청의 파병요구까지 받아들이기도 했다. 현대적 용어로 그의 이런 투트랙 외교전략은 같잖은 민족주의적 자기위안과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가져다주었지만 김상헌과 그의 병신외교를 이어받은 사대부들에게 헤게모니를 돌려주었고 그들은 이백여년 뒤 최익현을 낳고 또 그로부터 백여년 뒤 sns의 신진사대부새끼들을 낳았다. 반면 근대 일본의 전신인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전국시대 말기 정치적 소용돌이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아들에게 내려진 자결명령을 순순히 따랐다. 현재의 동아시아 외교무대에서 두 나라를 대표하는 이는 김상현과 도쿠가와라고 할 수 있다. 병신외교와 음흉외교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 하루빨리 우리가 병신외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추가 on 2 Aug 2019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회담을 듣다 내 귀를 의심했다. 제정신인가. 한달 전 일본이 무역제제를 발표한 이래 한국대표는 일본을 네번이나 방문했지만 일본 관료/정치인 중 그 누구도 한국을 방문한 적 없다.

두 연인이 싸운지 한달이 지났다. 남자는 여자의 집앞에 네번이나 찾아가서 여자를 기다렸지만 화해하지 못했고 여자는 남자의 집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남자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일이 도대체 제정신으로 할수 있는 것인가.


우리 한국인들은 어둠속을 벌거벗은채 헤메이고 있다.

댓글 7개:

  1. 요즘 나라꼴 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상식적이지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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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너무나 좋은 글이 많습니다. 우연히 링크를 타고 들어와 글들을 읽다가 일은 못하고 하루종일 여기 글들을 읽고 또 읽게 되네요. 그동안 박식한 척 많이 하고 다녔는데 사실 여기 있는 글의 30프로도 이해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럽네요. 그 30프로마저도 여러번 읽고 이해하는 지경이니 세상엔 참 대단한 고수들이 많다는 생각에 머리가 숙여지네요 앞으로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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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댓글 모두 감사드립니다. 부디 제가 틀렸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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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거 끝을 모르게 계속 글 하나씩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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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부동산 관련 정보를 둘러보는 중에 HHMM님 글이 우연히 들어와 정신없이 읽고 잇습니다. 아마 저 역시도 HHMM님과 같은 마음에서 사안들을 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뛰어난 필력에 통찰력에 가치있는 정보들로 글 전체를 수놓으시네요, 근래 시간날 때마다 님의 글 읽을 생각에 사뭇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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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정말 공감합니다 혹시 퍼가도 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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