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4.

도박의 본능

2017년 초 여의도에서는 요새 3트가 없으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비[트]코인 셀[트]리온 그리고 아파[트]. 그리고 우리는 두번째 트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 하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라고 자부하던 바이오주는 각종 사고로 연일 폭락을 기록하며 올해 최악의 섹터에 올랐고 강력하게 바이를 외치던 애널리스트들은 하나둘 씩 빠이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엔 늘 개미들이 있다. 개미들에게 한때의 희망이 현재의 패닉이 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여의도 개미들 중 상폐(상장폐지)를 당해보지 않은 이를 본 적이 있는가? 심지어 모 대형증권사의 내부 분석자료에 따르면 개인 주식계좌의 약 92%, 파생계좌의 약 95%가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훈련받지 못한 개미들은 본능에 따라 투자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돈은 인간의 본능을 싫어한다. 본능대로 투자해서는 결코 장기적으로 돈을 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본능은 위험 그 자체를 쫒지 이윤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잘못된 위험을 쫒을까?

나는 그 기저에 수면욕, 성욕, 식욕처럼 인간에게 도박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에게 왜 그런 욕구가 생겼는지는 호모 사피엔스 종의 진화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사바나 물가에 살던 유인원 중 한 종이 직립보행을 실시한 이래 인간은 7만년에 걸쳐 모든 대륙에 퍼져살게 되었다. 빙하기가 끝나 육로가 막힌 뒤에도 인간은 북아메리카를 넘어 남아메리카 까지 진출했으며 심지어 호주처럼 육로가 존재하지 않았던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것은 단연코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이동일 것이다.

현재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분포는 위와 같은데, 근대 이후 코카시아인과 영어/스페인어로 대체된 호주와 남아메리카의 서쪽 해안의 몇몇 섬을 포함한다면 그들은 단연코 인류역사상 최고의 대항해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동은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약 1천년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심지어 철기는 커녕 청동기시대에도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 문명으로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서부터 아메리카 서쪽 해안에 이르른 루트를 개척했다.
 
이와 같은 대규모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종의 특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마 최초의 사바나 평원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홍해(혹은 아라비아해)를 건너던 그 개체는 같은 종의 그 누구보다도 더 호전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었을 것이다. 따듯하지만 건조한 아라비아반도를 지나, 코카서스 지방을 거쳐 추운 산림지대인 북쪽으로 이동한 무리나, 혹은 수천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지는 스텝지방을 넘어 한반도까지 이르른 우리의 선조, 그리고 이 모든 환경에 적응한 뒤 다시 동아프리카와 다름없던 인도나 아시아 남부로 이동한 개체들은 모두 목숨을 건 도박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을 빌린다면, 호모 사피엔스 중에서도 적당히 무리한 도박에 나선 유전자풀이 아프리카 밖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무리한 도박을 펼친 유전자는 다 멸종했겠지만) 한번 기원전 3천년 전 인도네시아아 해안가에 서 있는 한 남자를 상상해보자. 육분의도 나침반도 구글어스는 물론이고 열명 이상 탈 수 있는 배도 못 만들던 시절, 그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모험을 꿈꾼다. 그 너머에 섬이 있는지, 아니면 끝없이 물이 떨어지는 절벽이나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오징어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항해에 나서기로 한다. 고작 보름치 식량과 물 만을 가지고 바다에 나선 그는 태풍과 파도와 싸워가며 칠일을 걸쳐 나아갔지만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제 선택을 해야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칠일간 더 나아가 육지를 발견할 확률에 목숨을 걸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이 헛된 항해를 마무리해야 한다. 바다로 나아간 이들 중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중 아주 소수가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안길 수 있었다. 하지만 백만명 중 한 둘은 새로운 섬이나 육지를 발견해서 진귀한 동물들과 과일들을 배에 가득 싣고 돌아왔을 것이며 그는 부족의 영웅이 되어 그를 칭송하는 신화가 쓰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릴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영웅들을 많이 가진 부족들이 더 멀리, 더 많이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의 후손이다. 도박은 우리의 본능이고 그 본능 덕에 사바나의 초원을 벗어나 달나라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도박의 욕구가 존재한다. 심리학 실험에서도 보상을 불규칙하게 할 때의 자극이 가장 크다는 것을 여러 실험에서 입증한 바 있지 않은가.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주사위를 너무나 사랑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정육면체인 주사위가 주는 불확실성이 불충분했는지, 4천년 전 스코틀랜드에서는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주사위를 만들어냈고 이미 3천년 전 그리스 수학자들은 정이십면체보다 더 큰 정다면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러자 도박장은 이제 육면체 주사위를 두개, 혹은 세개를 쓰기 시작했다. 불확실성을 좆는 우리의 욕구는 이처럼 너무나도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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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국인들이 접근 가능한 카지노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는 3천년 전의 폴리네시아의 해안가와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과 동일한 도박욕구를 지니고 있다. 만약 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통제된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인간은 계속해서 위험을 찾아 잡주나 사업, 혹은 피라미드 투자에 눈을 돌릴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일본인들이 지나치게 소심하고 중국인들이 지나치게 배짱을 부리는 이유 역시 이 도박욕구의 억제 정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사설 도박장이 허용된데 비해 한국인들은 도박욕구를 해소할 길이 제한되어있고 중국인들은 아예 금지된 것을 보면 무모한 위험 앞에 누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지 예측하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또, 토토, 경마, 테마주 그리고 비트코인. 이것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전혀 다르지 않지만 10만원 짜리 카지노를 열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테마주와 알트코인에 백만원 천만원을 낭비한다. 인간의 본능은 억제하거나 없앨 수 없다. 이는 물과 같아서 억누를 수록 더욱 크게 터진다. 차라리 그들을 건전한 방향으로 발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건설적이지 않을까. 최소한 도박을 투자라고 착각하는 일이 없다면 무의미한 위험에 인생을 탕진하는 이들도 적어질 것이다.



10여년 전, 72시간만에 수천만원을 날리고 담배를 뻑뻑 물어 피던 내가 다시금 생각난다.

댓글 3개:

  1. 와~ 파격적인 결말이네요.하지만 공감하는데 거부감이 없는건 경제학적인 논리에 충실해서 일까요. 멋진 마무리 문장까지~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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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리먼때 파생포지션 잡으셨을까요? ㅎㅎ 저도 두번째 선물하한가때 참지못하고 매수포지션 잡았다가 평생 잊을수 없는 경험을 했더랬죠.. 도박욕이 인간의 기본 욕구라는 말씀 뼈속깊이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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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만때 저랬으면 뭐 그런가보다 할텐데.. 부끄럽지만 그때가 아니었습니다. 리만 아니어도 금새 바보되는 일이 흔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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