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movement in 2019 |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명목환율의 장기적 추세는 인플레이션을 따라간다. 공식 CPI가 40%를 넘어서고 비공식적으로는 100-200%를 오가는 아르헨티나의 페소는 약 17%하락했으니 아르헨 페소의 실질환율은 되려 올라간 셈이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1% 이하인 원화는 8.2%나 하락했으니 만약 실질환율로 이 차트를 그린다면 원화의 성적은 (밑에서)7등이 아니라 더 높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도대체 인플레이션이 세자리 수에 이르는 통화들과 EM 중에서도 가장 DM에 가까운 원화가 비슷한 성적을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식과는 달리 환율이 강해진다는 것이 꼭 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들면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의 통화는 보통 강세를 띄지만 우리는 그 나라의 경제가 좋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통화가 약세로 간다고 해서 꼭 나쁜 시그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환율의 변화는 주로 전년도 대비 국제수지의 변화를 의미하므로 우리나라가 당장 저 EM미만 수준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외환시장은 작년 대비 올해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변화가 아주 크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내 생각엔 전세계 대비 언더퍼폼한 주식시장보다도 외환시장이 현재의 경제상황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에서는 KOSPI 보다도 더 폭락한 다른 나라들도 존재하긴 한다. 물론 뭐 파키스탄, 코스타리카, 레바논, 케냐, 오만 뭐 이런 나라의 주식시장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지만, 외환을 보면 저 나라들을 모두 포함해서도 KRW는 꼴지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도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충격이 더 크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겪는 변화는 이 국제수지를 보아야 더 명백하다.
나는 한국의 경상수지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진 않는다. 예전 GDP의 약 3% 수준이었던 경상수지 흑자가 2015년에 GDP의 7.2%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디플레이션에 따른 결과이고, 디플레이션이 해소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과 소비의 증가는 수입의 증가로 이어져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인다. 실제로 코스피가 고점을 경신하던 2017년 수입이 연 9% 증가하며 경상수지가 GDP대비 약 4.5%로 하락한 적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소비시장과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삼성전자의 최고가는 이재용의 부재일 때 였던 것 처럼, 대한민국의 최 전성기는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 실제 문제는 경상수지가 아니라 자본수지에 있다.
앞서 글에서 대한민국에서 두가지 파업이 일어난다고 했는데(링크) 현재의 환율변화는 이 두가지 파업 중 자본의 파업* 연관되어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의 강제파업과 자본의 도피적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자본은 늘 수익을 좆는 천성을 가진지라, 노동자와는 달리 국내에서 파업을 한다고 그저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게 해외투자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부동산 외에는 투자할 분야가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한 세금과 과거보다 강화된 규제는 한국투자의 세후수익률을 낮추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정부의 개입은 불확실성을 높여 위험가중 수익률을 더욱 낮췄다. 7월 2일 이후 한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가가 강세를 보인 것은 두 회사가 대규모 투자를 연기하거나 중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장래가 있는 기업이 투자를 한다고 하면 주가가 오른다. 미래가 글러먹은 회사가 투자를 늘린다고 하면 주가가 빠진다. 한국 경제의 두 쌍두마차가 투자를 중단한다고 했을때 주가가 오른 것은 대한민국이 쪽바리들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들의 투자엔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본파업은 환율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율이 약 5% 움직이고 나면 환헷지 전략과 투자 전략을 재조정한다.(주식에 비하면 이 5%가 별것 아닌 듯 하지만 환율이 그정도 움직이고 나면 일간지 1면에 FX 트레이더들의 뒷통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국인의 해외투자는 다르다. 2015년 이후 중국과 같이 자본유출을 통제하려던 많은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고작 5%의 움직임으로는 달러 수요를 막지 못한다, 되려 더 강해진다. 그래서 지난 5년간 1200원 위는 무조건 팔면 돈 버는 구간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내국인들은 여전히 이 수준에서도 달러를 사서 해외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경상수지 흑자국은 자본수지 적자를 유지해야하니 자본의 해외유출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 이상으로 자본수지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자본파업이 있다. 자본파업은 마치 케인즈 이전의 경제학과 같아서 경제주체들이 서로가 네거티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더 나빠진다는데에 있다. 특히 한국의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재 고작 6조 남짓한 추경으로는 이 고리를 끊을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 GDP의 1-1.5%에 달하는 대규모 추경이나 감세, 혹은 경제부총리가 마약을 했나 싶을 정도의 막대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는 커녕, 우리는 참새 코딱지만한 추경을 통과시키는 데도 100일이 넘게 걸렸고 같은 기간 동안 주식은 1900을 깨고 환율은 3년 반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으며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의 간접적 피해자 처지로는 감질났던건지, 우리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새로이 시작했다. 이데올로기로 펴는 경제정책은 백종원의 요리를 미적분학으로 풀이하는 것 보다도 더 어색하고 괴상한데 대중은 거기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고3 이래로 공부를 해본 적도, 일해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이 명분만 좆는 사대부새끼들이 외교와 경제를 장악했으며 그들이 내놓는 대책과 비전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다만 장르가 호러일 뿐. 놀라기도 지친 자본들이 한국을 이탈하고 있고 그게 현 환율 상승의 배경이다. 과거의 환율상승기는 잊어버려라. 우리는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니.
그리고 앞서 링크한 글에서 나는 4개 분기 평균 기준으로 한국의 투자가 현재보다 나빳던 적은 단 네번 뿐이라고 했는데 아마 다음 GDP가 발표되면 IT버블때의 기록을 앞질러 사상 세번째 최악의 시기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자본파업은 그저 쉽게 이해하라고 내가 멋대로 붙인 비경제용어지만 그보다 현재의 변화를 더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용어를 찾지 못했다.
글 잘 보았습니다.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데 정말 걱정됩니다..
답글삭제와 좋은 글입니다 선생님
답글삭제유익한글 투고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답글삭제잘봤습니다 추경 부분 빼고는 다 공감가네요 일자리자금이랍시고 54조중 절반이상을 썼는데 의미가 없었고 국가예산 또한 거의 500조에 달하는데 현재 나오는 퍼포먼스가 한국 경제 폭락입니다...세금이 어디에 쓰이느냐가 첫째, 그 규모가 둘째인데 첫째부터가 병신이니 답이 없네요
답글삭제사이버 은사님 오늘도 많이 배우고갑니다. 부디 오래오래 가르침 주세요
답글삭제저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강의료도 못드리니 ‘만수무강 하세요!’ ^^
답글삭제dkdkehfaktmxj1234@gmail.com으로 연락 주실수 있으신가요?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답글삭제찾아봤는데 프로필이랑 블로그 어디에도 이메일을 안적어 두셨더라고요.. ㅜㅜ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
삭제인사이트 넘치는 글 잘 읽었습니다만, 두 부분이 이해가 안됩니다.
답글삭제"예전 GDP의 약 3% 수준이었던 경상수지 흑자가 2015년에 GDP의 7.2%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디플레이션에 따른 결과이고, 디플레이션이 해소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EX-IM) = (S-I)+(T-G)에서...T=G라고 보면...경상수지 흑자는 저축이 투자보다 많았기 때문 아닌가요?
"또한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과 소비의 증가는 수입의 증가로 이어져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인다."는 GDP=C+S+T에서 C의 증가는 S를 위축시켜 경상수지 흑자폭을 줄인다가 맞는 것 아닐까요?
넵 정확하게는 쓰신 바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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