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1.

젊은이들의 피로 이루어진 방역

미국의 31대 대통령 허버 후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늙은이들이지만 정작 싸우고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라고. 이 말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방역은 젊은이들의 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방역의 기본은 사람 혹은 가축의 이동 통제로부터 출발한다. 방역의 효율만 놓고 보면 개인의 통제보다 더 확실한 조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방역 외에 다양한 목표가 존재한다. 개인의 자유, 경제적 영향, 종교의 자유 등. 어쩌면 극단적인 자연보호론자들은 썩지 않는 마스크를 대량생산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 현재의 방역지침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정부는 여러 가치와 목표를 고려해서 최적의 조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마다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하다. 모두가 방역의 비용을 동등하게 지불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

노인들에게 인생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모두 20대를 뽑지 않을까. 그 질문에 60대로, 또는 지난주 월요일로, 혹은 3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대와 문화를 불문하고 20대 청춘을 예찬하는 수필과 노래가 만들어진 것을 보면 젊음이 인생에서 특별한 시기라는 사실은 너무나 확실하다. 우리 모두가 안다. (20대만이 그 사실을 모른다.) 

그들의 하루는 우리의 하루와 결코 같지 않다. 길게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지루한 노인의 하루보다, 갈 곳은 없지만 집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 부하직원에게 3차를 강요하는 진상 김 부장의 하루보다도 20대의 하루는 몇 배나 더 값지다. 그런 그들에게서 지난 일 년을 앗아간 우리는 또다시 청년들의 청춘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정치인들과 꼰대들은 4차 확산의 주범으로 젊은이들을 지목하고 있다. 애초에 따듯한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젊은이들이 야외로 몰려나올 줄 몰랐는가. 젊은 층의 확산이 걱정되었다면 50대보다 20대에게 먼저 접종하면 되었다. 백신은 나부터 맞을 테니 너희는 방 안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나 보고 있어라, 올 한해 더. 라고 외치는 꼰대들이여, 초기 국경 차단과 백신 확보에 실패해놓곤 K-방역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이여, 당신들의 얼굴에 비말을 뱉으리. 퉤. 

출처: 질병관리청 (링크)

더욱이 코로나에 걸려도 20대의 치명률은 고작 0.01%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집에 머무는 것은 자신들을 위함이 아니요, 나이든 장년-노년들을 살리기 위함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희생하고 있다. 마치 후버의 말처럼 노쇠한 정치인들이 일으킨 전쟁에 투입되는 건 오로지 젊은이들뿐인 것처럼. 우리는 그들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나는 이제 젊다고 말하긴 민망하고, 또 젊지 않다고 말하기엔 억울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온 삶을 통틀어 딱 10년만 자유로이 뛰놀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은 감옥에 갇혀야 한다면 언제를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20대를 들 것이다. 술에 취해 홍대와 강남역을 오가고, 친구들과 쓸데없는 이야기에 밤을 새우기도 하고, 또 울고 웃고 사고 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또 사랑했던 많은 기억들. 점차 늙어가는 나에겐 너무나 과분한 그런 것들을 젊은이들에게 허용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에게 허락할 것인가. 차라리 그들을 위해 나머지 사회구성원들이 사회활동을 줄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니 꼰대들이여 더 이상 당신들의 유흥과 골프, 그리고 정치적 치적을 위해 젊은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당신들은 이미 이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았는데 이젠 젊음마저 앗아가려 하는가.



인생에 단 한번뿐인 젊음을 방역을 위해 희생해주신 20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1. 7. 10.

예술인들은 왜 백치가 되었나

나는 예술가가 사회나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그들은 그 문제를 이해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종종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아니 정말 많은 경우 그렇다.  

당장 [미술가]와 [환경오염]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자. 수도 없이 많은 전시회와 작품들 인터뷰들이 쏟아져 나온다.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은 하나같이 도덕적 우월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르고 대중들과 사회를 향해 따끔한 훈계를 던진다. 너희들은 문제가 많고 따라서 변화해야 한다고. 명목상으로 너희라는 단어 대신 우리라고는 하지만 그 [우리]라는 단어에 자신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느낀다.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이 우리 구구단을 외워보아요, 라고 할 때 자신은 이미 외우고 있다는 것처럼.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어떤가. 한 명의 미술학도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화학물질이 필요하다. 일부 수채화 물감에는 강한 독성이 포함되어 물감의 독성을 검증하는 국제기구도 존재하며 아크릴물감 유화 에칭 금속공예 섬유예술을 위해서는 화학물질들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그것들이 얼마나 유독한지 검색해 볼 필요도 없이 냄새만으로도 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한 명의 미술가가 평생토록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중국 산둥의 공장의 노동자들 못지않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우리에게 환경오염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이러한 모순은 그들이 자주 언급하는 다른 사회문제-자본주의나 기술의 폐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상 지금보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중이 더 많았던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주기적으로 기근을 겪어 인구가 줄던 고대나 중세에는 먹고살기가 바빠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인구를 부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대의 자본주의, 그리고 과학문명은 일부 계층이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를 가져왔고 그들 중 일부는 예술인이 되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그 누구보다도 가장 기술발전과 과학문명에 철저하게 목 매인 사람들이다. 어느 시대나 경제 불황이 오면 가장 먼저 굶는 것은 예술인들 아닌가. 그들은 우리 사회의 정신을 구성하고 있지만 동시에 물질적으로 사회에 기생하고 있기도 하다. 예술적 표현은 인간의 본능이긴 하지만 식욕보다 앞선 욕구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 집단이 기술문명과 자본주의를 천대하고 심지어 공격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에게 숟가락을 집어던지는 사춘기 아이를 보듯 마음이 심히 불편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괴로운 수많은 일 중 하나는 한때 사회적 문제에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던 예술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어버렸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이들이 정치적 노선이 다르단 이유로 특정 배우와 작업을 꺼리고 사회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가수가 가장 부조리한 정치인을 옹호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몇년 전만 해도 정유라가 받은 말은 명백한 비리라며 노발대발하던 미술평론가들이 문준용이 받은 지원금은 정당한 예술 지원 사업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읽다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어둔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던 관객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성경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질문 하나를 던진다. 하지만 예수는 다음과 같은 현명한 대답으로 그 함정을 피해 간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문재인의 집권과 함께 갑자기 백치 아다다로 변한 예술인들은 이 구절을 마땅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사실상 다른 학생들과 예체능을 분리해서 가르친다. 그들의 전공은 일반 학생들보다 몇 배의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예술가들은 다양한 교양 지식을 쌓을 여유가 없다.(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따라서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학생이 대중에게 아그리파 소묘를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예술가들이 대중에게 사회문제에 대해 일갈하고 가르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예수의 대답처럼 권력자인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남겨두고 고흐의 것은 고흐에게 남겨두는 것이 어떨까. 고흐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비비느라 자기모순에 빠져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글들을 읽노라니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 맥주 한 캔을 또 따서 들이키게 된다. 그들 덕에 뱃살이 늘었다. 그게 왜 그들 때문이냐고? 뭐 어때. 바야흐로 남 탓의 시대인데. 

2021. 7. 8.

한은의 설레발은 코로나도 춤추게 한다

통화정책에 골든 라즈베리 상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한국은행과 이주열에게 돌아가야 한다. 밀어닥치는 코로나의 위기 앞에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금리 인하가 필요 없다고 장담한 중앙은행장이 아니라면 그 누가 왕관의 무게를 견디랴. 그리고 총재의 설레발은 다시 한번 적중했다. 한국은행이 금리 정상화를 외치자마자 코로나 확진자 수가 폭증하며 정부는 대응 단계 상향을 검토 중이다. 한국은행은 미국의 CDC, 질병관리청에 이어 가장 높은 정확도로 우한폐렴의 위험을 알리는 기관으로 선정되어야 한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1년간 코로나로 세계대전 수준의 타격을 입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시도를 펼치는 동안 가장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관이 가장 먼저 정상화를 외칠 정도로 코로나의 영향을 과소평가한 만큼 사람들도 판데믹의 영향을 가볍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백신 접종률이 절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방역단계를 완화하겠다고 공언했으니 대중이 경계심을 낮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대중인가. 장삼이사들과 같은 수준의 판단력을 가졌다면 그들과 같은 보수를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참고로 작년 한국의 평균임금은 4875만 원인데 반해 이주열과 금융통화위원들의 연봉은 3억 6700만 원에 달한다. 물론 업무추진비와 부가적 의전은 별도.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델타 변이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현저히 낮은 사망률이 유지되니 설령 4차 유행이 크게 번져도 금융시장이 패닉 하지는 않을 것이고 되레 집단면역에 이르는 시점을 앞당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방역이 아니다. 바로 엉망으로 운영되는 중앙은행의 정책 실패가 끝도 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이 블로그의 세 번째 글이 한국은행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한 글이었는데(한국은행은 왜 실패하는가 링크) 글이 쓰인 2015년 5월 4일부터 지금까지 한국은행이란 조직과 이주열이란 개인은 아무런 발전이 없다. 아니 퇴보했다. 이번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통화정책이 코로나의 가장 큰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이니까.

기준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유동성이 플리는 속도를 늦추겠다는 말과 같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관치금융이 만연한 국가에서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줄이는 신호를 보내면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어떤 대출을 먼저 줄이겠는가. 삼성전자와 삼성동의 정승 네트워크, 삼성동 김 회장님과 삼송동 김 씨.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줄어든 유동성의 타격은 수익이 낮고 상환능력이 낮은 계층에게 집중된다. 늘 그렇듯이. 하지만 이 계층이야말로 코로나의 가장 큰 희생자들이다. 금리 인상의 효과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사람들은 한계에 몰린 중소기업들, 자영업자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1분위 계층, 그리고 취업 길이 막힌 젊은이들이 될 것이다. 연준이 급작스러운 위기로 안한 상흔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일시적 과열을 용인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길로 한국은행은 나아가고 있다. 다만 그들 앞에 코로나가 있을 뿐. 

현대의 국가 시스템에서 정부 조직의 모든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이다. 하지만 관료제가 발달하게 되면 각 조직은 자신에게 위임된 권한을 조직의 권리라고 착각하곤 한다. 기준금리를 한은에게 결정하도록 허용한 것은 경제 상황에 맞게 통화정책을 운용하도록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것이지 총재에게 주어진 천부권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흔히 인플레이션 파이터라고 불리는 은행으로 독일의 분데스방크와 일본의 BOJ를 드는데 이것이 두 나라에서 관료제가 크게 발달했다는 사실과 아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분데스방크는 동독과 통일 이후, 일본은 버블 직후 잘못된 통화정책을 펼쳐 디플레이션과 장기 불황을 초래했다. 이들의 전철을 착실하게 밟아 한국은행은 2010년대 중반 한국경제를 디플레이션의 구렁으로 밀어 넣었다. 기재부가 개입해서 우리를 다시 끄집어내기 전까지.  

한국은행 법 1조 1항은 한국은행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 지난달 CPI는 고작 2.4%로 그들의 물가목표 2%를* 살짝 상회한 반면 마지막 금리 인상 이후 지난달까지 약 31개월 동안 목표치를 하회한 누적분을 모두 더하면 무려 38.8%에 달한다.** 매달 평균 1%가 넘는 저물가를 방치한 셈인데 한국은행은 매번 실기의 순간마다 대외변수와 불확실성을 핑계로 든다. 그리고 다음 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주열은 어김없이 불확실성을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경제가 어디에 있는가. 확실한 것은 죽음뿐이다. 이 조직이 고작 2주짜리의 불확실성조차 다룰 능력이 없다면 확실하게 사멸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다. 바로 형편없는 한국은행과 이주열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진 시대에 2%의 물가목표가 적절한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물가목표를 재설정할 책임도 한은에게 있다.

**물론 저물가가 장기간 누적되었다고 당장 고물가를 방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2021. 7. 5.

진화하는 연준-FED는 어째서 경제의 과열을 방치하는가

지난 글에서 한국은행과 이주열을 비난한 것은 그들이 금리를 올리기 때문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의무는 인플레에 대한 기대감을 조절하는 것이고 그들의 첫 번째 도구는 바로 금리이다. 제때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은 경제의 과열이나 자본의 잘못된 배분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마땅히 지양해야 한다. 내가 지금의 총재와 한은이라는 조직이 비난하는 것은 금리를 올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방식과 정책의 부재 때문이다. 그와 가장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니 그들을 행보를 조명해보자.

경제나 금융시장이 예상치 못한 충격을 마주하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유지하여 그 충격을 최소화한다. 버블이 꺼지거나 911테러와 같은 급작스러운 사고, 혹은 2008년 서브 프라임 사건과 같은 충격이 발생하면 중앙은행은 가장 먼저 금리를 인하한다. 금리를 제로로 만들고 나면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통화정책이다. 그리고 21세기 중앙은행들은 이를 넘어 더욱 정교한 통화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모형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다소간의 오류는 있지만 큰 그림에서 위기 직후의 경제의 반응과 중앙은행의 대응은 위와 같다. 위기 전후의 성장경로를 파란색 선이라고 가정할 때 경제에 충격이 발생하면(1) 실제 성장경로는 빨간색 선을 따라 급격하게 하락한다. 이때 중앙은행과 정부는 부양책을 사용하게 되고(2) 그에 따라 경제는 반등한다(3). 이것이 일반적으로 위기 직후에 정부/중앙은행이 지향하는 경로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이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던 경제와 시장은 종종 다시 고꾸라지거나 저성장에 빠지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90년대의 일본을 들 수 있다. 세계의 여러 정책 연구자들은 OECD 국가들 중 국가채무비율이 가장 높고 기준금리도 가장 낮은 일본이 가장 낮은 성장성을 보이는 기현상에 주목했고 그들은 일본이 부양책을 너무 약하게, 그리고 너무 늦게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아직 경제가 성장궤도에 진입하지 않은 순간에(4) 부양책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경제가 자생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것.

이를 연구한 학자 중 하나가 바로 버냉키였다. 따라서 그가 연준 의장이 되어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연준은 일본은행의 실수를 답습하는 우를 저지르지 않았다. 연준은 위기 직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되살아나 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하는 동안에도 경제가 탈출속도에 도달하기까지 지속적으로 강력하고 충분한 부양책을 써야 한다며 강력한 어조로 백악관과 의회 대중을 설득했다. 당시 정치인들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며 연준에 서한까지 보냈지만 오늘날 우리는 누가 옳았는지 알고 있다. 연준과 반대의 길을 갔던 모두는 인플레이션은 커녕 가장 지독한 디플레이션을 마주했고 타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꽁무니를 쫒아 금리를 도로 낮추고 양적완화라는 길을 따라가야 했다. 미국 역시 두번째, 세번째 양적완화에 나서며 세계경제 회복세를 견인했다. 
하지만 그런 21세기의 통화정책도 온전하지 못했다. 경제가 성장 동력을 회복한 뒤에도 미국에는 장기 실업자들이 상당수 존재했으며 이중 일부는 경제가 완전히 회복한 이후에도 고용시장으로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불균형은 특히나 인종, 교육수준, 지역, 직종별로 다르게 나타났으며 그룹 간 불평등을 낳았다. 이는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빠르게 낮아지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빠르게 상승한 이유도 있지만 고용이 줄어든 속도에 비해 회복의 속도가 느려 노동자들의 숙련도와 나이가 악화한 탓도 크다. 위의 차트에서 보듯 경제가 이전 궤도로 회복해도 A 만큼의 성장은 영영 잃어버린 셈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에도 큰 영향을 남기게 된다. 마치 IMF처럼.
그래서 오늘날의 연준은 새로운 관점을 도입했다*. 경제가 본궤도로 회복하더라도 A만큼의 잃어버린 성장을 상쇄할 만큼 오버슈팅(B)을 방치하겠다고. 그리고 이를 위해 연준은 정책시차를 고려해 1-2년 뒤의 상황에 맞춰 오늘날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과거의 방식 대신 실제 회복이 완전히 가시화된 뒤에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다. 바로 이전 연준 의장이었던 옐런 재무부장관도 이를 high pressure economy라고 부르며 연준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것이 AIT혹은 FIT의 핵심이다. 지난 6월의 FOMC에서 연준은 첫 금리인상 계획을 앞당겼지만 terminal rate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10년 미국채 금리는 FOMC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연준이 금리를 언제 올릴지, 얼마나 올릴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이와 같은 철학과 믿음을 바탕으로 시장과 소통하고 있다.  

정의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현대적인 통화정책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1971년 닉슨이 금태환을 정지한 이래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갔다. 과거 물가가 강하게 올라오면 금리를 강하게 올리고 물가가 약하게 내리면 금리를 약하게 올리던 1차원적인 20세기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 통화정책이 좀 더 정교하게 운용되어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많은 연구가 이어져왔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오늘날 보는 통화정책이다. 

물론 연방준비위원회가 실수했던 적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채권 학살의 해라고 부르던 1994년이 그렇다. 당시 연준이 금리를 25비피 올리면서 시장금리가 소폭 상승했는데, 이후 공개된 의사록을 보니 FOMC는 금리를 올릴지 말지가 아니라 한 번에 두 단계를 올릴지 한단계만 올릴지를 고민했던 것이 드러났다. 채권시장의 폭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리를 3%에서 6%로 올리던 연준은 바로 이듬해 금리를 세 차례나 내리며 94년의 결정이 사실상 실수였음을 자인했다. 그 당시의 연준은 비밀에 쌓인 조직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시장과 언론은 연준의 결정을 팩스로 받아보아야 했다. 그래서 금리를 결정하는 날이면 모든 주식, 선물, 채권 상품시장의 트레이더들이 팩시밀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지지직 지직 하며 연준으로부터 전송되는 종이를 바라보다 숫자가 뜨는 순간 객장으로 고함을 지르며 뛰어가던 아주 원시적인 시절. 의장의 기자회견도 없었고, 질의응답도 없었으며 금리 경로를 예고하는 점도표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현대의 통화정책은 얼마나 세련되었는가. 그린스펀은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보여주었고 버냉키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결코 금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옐런과 파웰은 재정과 통화정책이 훨씬 정교하게 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그들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지금으로는 알 수 없지만 현대적 통화정책의 최전선에 연준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한국은행이 1994년의 연준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준이 내년 말의 점도표를 1년 반 앞서 공개하는데 비해 한은은 다음 분기에 곧장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마치 변심한 애인의 이별 통보만큼이나 급작스러운 예고에 시장이 발작하자 총재는 자신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어 시장이 나의 미묘한 뉘앙스를 캐치하지 못했다며 슬쩍 책임을 전가한다. 이런 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던가. 그는 중앙은행이 급박하게 움직여야 했던 이유로 견고한 경제지표를 들었다. 그렇게 21년 2분기 경제지표가 좋으리란 예측을 21년 2분기에나 내놓고 있다. 이럴 바엔 통계 집계를 통계청으로 일원화하고 통계청장이 금리를 결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무리 레트로가 유행이라지만 중앙은행마저 복고풍인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연준이 이와 같은 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후술한 이유 외에, 판데믹이 시작되기 전에도 미국 경제가 다운사이클에 있어 하방압력을 받고 있었고 2010년대에 장기화된 저물가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가 무조건적으로 과열의 상태로 흐르게 방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경제를 다소간 과열 상태에 두는 것은 인플레이션과 성장이 일시적이고 통제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명백하게 밝혔다. 물론 옐런과 연준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치게 경제를 미세조정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2021. 6. 25.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 시즌2 (feat. 이주열 again)

문재인 정부의 다른 어벤져스들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전까지 이 블로그에서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이는 바로 한국은행과 이주열이다. 그들은 잘못된 편향을 바탕으로 한국을 디플레이션의 구렁에 몰아넣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경제 변곡점에서 매우 잘못된 시점에 매우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그 빛나는 사례가 바로 작년인데, 코로나로 세계경제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직전인 2020년 2월 이주열 총재는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곧 회복될 것이기에 금리를 인하할 필요는 없다고 세 번이나 장담했다.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되었던가. 당시에 내가 시장에 대해 쓴 글 중 반이 그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링크1 2 3 4

이처럼 총재는, 그리고 한국은행이란 조직은 통화정책을 운용할 역량이 없는 소모적인 조직이다. 작년 3월 미국의 연준이 긴급회의를 통해 금리를 50bp 내린 뒤에도 이주열이 금리인하를 거부했을 때 나는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는 글을 올렸다. 오늘날 그 쪼다는 정확하게 똑같은 쪼다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또다시 실기하고 있으며 이 쪼다짓은 결코 한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자 이 덤앤 더머의 행적을 다시 한번 따라가보자. 고통스럽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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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재는 연내 금리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했고 내년 4월에 끝나는 자신의 임기 내에 두 번의 인상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는 급격하게 반등하며 연내 2회 이상의 금리 인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코스피는 신고점을 찍고 있고 부동산은 조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보면 총재의 시그널은 타당해 보인다. 현재 경제성장률은 매우 견실하고 물가 상승률은 1월 0.6%에서 5월 2.6%으로 반등 중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총재와 한은을 쪼다라고 부르는 데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미래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현재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2020년은 우한 폐렴의 전 지구적인 확산으로 인해 주요국 경제가 대부분 큰 슬럼프를 겪었고 이에 따라 금융시장 역시 신용경색의 발발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래 가장 강력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경제와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금융시장과 자산의 가격은 되려 금융위기 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자가격리와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난 몇몇 대중들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방금 위기를 겪었는데 자산 가격이 되려 올랐다면 잘못된 것 아닌가. 거기에 미 재무장관 옐렌과 연준의장 파웰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우리가 의도한 바라고.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리만사태 직후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예측하지 못한 이벤트로 인해 경제가 잠재성장률 아래로 주저앉으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통화정책을 사용해서 경제를 본 궤도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버냉키가 이끄는 연준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를 단행했으며 그 결과 2008년부터 미끄러진 미국의 경제는 2018년에서야 본궤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경제가 기존의 성장경로로 회복한다고 해서 그 상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고는 빠르게 일어난 반면 고용시장의 회복은 매우 더뎠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장기 실업에 직면하였고 이들은 경기가 완전히 회복한 뒤에도 적절한 직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날 2020년에 대학을 졸업한 신규 구직자들을 보자, 그들은 코로나로 인해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했고 일용직과 저숙련 임시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경제가 본 궤도로 완전히 회복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면 삼십 줄에 들어섰지만 경력이라곤 아르바이트 경험밖에 없는 2020년 졸업생들이 2025년 졸업생들과 신규 구직시장에서 경쟁이 될 리가 없다. 이들은 영영 잃어버린 세대로 남을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위기 직후의 경제 회복은 빨라야 하고, 또 과도해야 한다. 옐렌은 이를 high pressure economy라고 불렀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단기적 과열을 방치하겠다는 뜻이다. 연준은 지난 6월의 FOMC에서 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적절한 중립금리의 수준은 변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재무부와 연준은 high pressure economy를 유지하기 위해 과도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다. 

또 연준은 경제 위기 직후의 인플레와 성장이 대체로 일시적이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2019년에 100이었던 경제가 코로나 타격으로 2020년에 98로 후퇴했다가, 2021년에 회복해 다시 102가 되었다고 해서 다음 해에 106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점진적으로 100-101-102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했던 경제의 성장경로가 중간에 좀 뒤틀린 것이지. 따라서 내년에 올해만큼의 성장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이를 여러 번 강조했고 사람들과 시장에게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지난달 미국 CPI가 한국의 2배를 넘는 5.0%를 기록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기금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어떤가. 아무런 철학도 없고 기준도 없다. 이들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이유는 그저 지금 경제가 좋기 때문이고 자산 가격이 많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기저효과는 올해 안에 사라지고 내년에는 마이너스로 돌 것이다. 우리는 통화정책이 선행적이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총재와 금통위원들은 지금 경제가 좋으니 지금 금리를 올릴 것을 고려하는 것이지 그들의 머릿속에 내년 내후년에 대한 전망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장기적인 통화정책이 나올 리 없다. 연준이 첫 금리 인상이 빨라야 2022년 말이라고 미리 상세하게 언질을 준 데 비해 한국은행 총재는 3분기의 인상을 2분기의 끝자락에 던졌다.

연준과는 달리 불황의 상흔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수출과 자산 시장이 회복되어도 20대 구직자들과 한계에 직면한 자영업자들, 그리고 과도하게 높은 최저임금으로 직업을 잃은 빈곤층들은 상황은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회복의 온기가 그들에게까지 미치려면 경기가 어느 정도 과열로 흐르도록 방치해야 하지만 한국은행은 그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금리 정상화의 이유로 가계부채를 들지만 정작 급증하는 것은 국가부채 아닌가. 2020년 가계부채가 125조 증가하는 동안 국가부채는 거의 두 배인 무려 241조가 증가했다. 게다가 가계가 부채를 주택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매입에 쓴 반면 정부는 보조금이나 지원금 같은 일회성 지출에 쏟아부었다. 빚내서 탕진하는 정부가 빚내서 투자하는 가계에게 훈수를 두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대책 없는 정책인가.

그들이 게으르고 무능한 조직이라는 점은 수치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Bank of America 리서치는 자신들이 커버하는 약 100여 개 국가들의 코로나 사태 이후 통화/재정정책을 정리했는데 이 중 한국의 재정 대비 통화정책의 규모는 약 0.5%로 세계에서 가장 미약한 통화정책을 사용한 나라이다. 참고로 이 비율은 미국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경우 60-80% 선이며 프랑스 스페인 영국은 재정정책과 비등한 통화정책을 썼고 심지어 네덜란드의 경우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의 약 4배에 달한다.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의 재정정책이 너무 과도해서 통화정책이 작아보이는 것 아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선진국들의 재정정책이 GDP의 20%에 넘는데 비해 한국은 고작 15.2%에 불과하다. 그런 재정의 고작 0.5%라니, 명백히 한국은행은 세계에서 가장 게으른 중앙은행이고 경제 위기의 한가운데서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조직이다. 일반 기업이 이 정도로 무책임하게 대응했다면 배임으로 고발당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조직은 없는 것이 낫다.

정작 위기 시에는 뒷짐 지고 6주에 한번 만나 노가리나 까며 아무것도 안 하던 조직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경제의 고삐를 쥐겠다고 나섰다. 중국에 이어 코로나의 두 번째 피해자였던 나라인데도 가장 마지막에 움직였던 한국은행이 가장 먼저 금리를 정상화하겠다고 나서는 희극이 펼쳐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플레와 성장은 일시적이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주체들의 상흔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면 경제가 어느 정도 과열로 흐르도록 해야 한다던 연준과, 위기에서도 아무것도 안 했지만 지금 경제가 회복되고 있으니 금리부터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은행은 또다시 대립하고 있다. 마치 2020년 3월과도 같이-긴급 미팅을 열어 금리를 150비피 인하한 연준과 긴급 미팅을 열어 경제가 긴급하지 않으니 인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이주열 총재. 차후 누가 맞을지는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흰색-미국의 기준금리    주황색-한국의 기준금리    빨간원-둘의 통화정책이 엇갈린 기간 

연준과 한국은행이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2008년 그리고 2010-11년 모두 한국은행은 연준과는 반대로 금리를 올렸으며 모두 한은이 결국 금리를 급격하게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주열 총재는 또다시 돈키호테처럼 연준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떨까? 내 기억에 총재가 이처럼 강력하게 금리 정상화를 외친 적이 딱 세 번 있었는데 처음은 취임 직후, 두 번째는 코로나 직전,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오늘이었다. 그리고 세 번 모두 결국 금리를 크게 인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바보는 늘 바보짓을 반복하기에 이주열 총재와 한국은행은 또다시 금리를 너무 많이 올리고 결국 도로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그 뒷수습을 새로운 총재가 하게될 뿐.

나는 총재의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금리를 언제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 나 역시 알지 못한다. 다만 금융위기에서 거의 배임에 가까운 태업을 펼친 총재가 갑자기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정책을 펼치는 것을 우려할 뿐이다. 그가 연준과 반대되는 길을 간다면 더더욱. 임기의 처음과 그의 재직 중 가장 큰 위기, 그리고 마지막을 모두 쪼다 짓으로 마무리하는 우리 이주열 총재의 완벽한 일관성에 나의 찬사를 바친다.


*GDP갭 기준










2021. 5. 7.

아시아의 미래 4. 문재인의 외교, 매국의 경계에서

옛날 옛적에 신흥 강대국 A가 있었다. 그리고 그를 경계하는 패권국 B, 그리고 B의 식민지인 약소국 C가 있다. A는 대담하게도 전통적 패권국인 B와 전쟁을 벌여 크게 승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승전국인 A가 B와 맺은 휴전협정의 첫 번째 조항은 전쟁 배상도, 영토할양도 아닌 바로 C의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 저런 의로운 국가가 어디 있냐고? 이는 실제로 벌어진, 당신도 나도 잘 아는 역사이다. A는 일본, B는 청나라, 그리고 C는 조선. 청일전쟁 후 A와 B가 맺은 조약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그 1항은 다음과 같다. [청은 조선이 완전 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하며, 일본과 대등한 국가임을 인정한다] 놀랍게도 승전국인 일본은 2억 냥에 달하는 전쟁배상금이나 영토나 항구보다도 먼저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후 어떤 역사가 펼쳐졌는지 잘 알고 있다. 진짜 일본이 자신을 독립시켜준 줄 알았던 고종은 이듬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라고 선언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7년 뒤 외교권을 빼앗겼다. 그리고 2년 뒤 열강들이 평화롭게 식민지를 나눠먹는 헤이그 회의에 특사를 보내는 촌극을 벌여 강제로 퇴위당했다. 개인적으로 한반도 3천 년 역사 중 최고의 개그는 바로 이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자주나 외세로부터의 독립, 혹은 중립이라는 단어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비틀리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 역시 자주와 중립을 외치고 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자폐아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중얼거리곤 하지만 한 나라의 자주와 독립은 아브라카다브라와 같은 주문을 외운다고 이루어지지 아니다. 고종이 혼자 황제국을 선언한다고 대한제국이 진짜 제국이 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앞서 세 편의 글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내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외전략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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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바이든을 sleepy joe라고 조롱한 데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정치인생은 길지만 연로한데다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라는 점 외엔 워싱턴에서 특별하게 부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의 대중적 약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별칭이었으니까. 오바마가 시카고의 법조인이었고 트럼프가 기업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바이든은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35년의 상원 의원 재임 기간 중 약 33년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보낸 외교 전문가이고 바로 그 때문에 오바마의 부통령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이끄는 미국의 체스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외교는 매우 다르다.* 대중들은 트럼프를 대외적으로 강경파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협상가이자 비즈니스맨이다. 거친 언사와 태도는 막후에서 거래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의 기술일 뿐, 그는 여전히 북한이나 중국을 적국이 아닌 하나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했다. 반면 민주당과 바이든의 대외정책은 선악의 이분법에 가깝다. 민주냐 독재냐. 자유냐 통제냐. 폭력이냐 인권이냐 등. 따라서 그들의 외교에는 타협의 여지가 적다. 악당과 딜을 치는 정의의 용사는 없으니까. 트럼프가 겉으로는 거칠지만 뒤에서는 합의점을 찾아나갔다면 바이든 시대의 대중 외교는 정반대로 점잖은 외교적 수사로 충돌과 대립을 감추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은 명백히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3월 블링컨 장관 방문 당시 쿼드 참여 요청이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미국이 일본과 논의한 사안을 한국과 논의하지 않을 리 없다. 회담 직후 한미 공동선언을 보면 두 나라가 거의 아무런 합의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현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전에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의도적으로 미국과 엇박자를 냈고 이에 대해 미국은 백신 지원국 중 한국을 제외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등거리외교는 결코 등거리일 수 없다. 형이 옆집 아들과 치고받고 싸우는데 동생이 뒷짐지고 중립을 지킨다면 형은 동생을 어떻게 바라볼까. 더욱이 동맹국들과도 투닥거리기 일쑤였던 트럼프 시대에 중립을 지키는 것과 적과 아군을 나누기 시작한 바이든의 코앞에 대고 중립을 선언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대립의 시대에 중립을 외치는 것은 배신이나 다름없다.

배신이 뭐 어떤가. 그리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코쟁이 양키들 뒷통수쯤이야 얼마든지 후려칠 수 있는 것 아닌가. 외교의 1순위는 친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익이니까. 문제는 우리가 동맹에서 이탈하면서도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있다. 문재인은 노골적으로 친중 노선을 택했지만 한한령은 풀리지 않았고 국내 기업의 중국 사업은 계속 난항을 겪고 있으며 중국인 내국 관광객의 수 역시 회복되지 않았다. 외교를 보아도 중국은 전승절에 참가한 박근혜에게 푸틴 바로 다음의 의전을 제공한데 비해 문재인에겐 모욕에 가까울 정도로 의전을 낮추었다. 이런 태도는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문재인은 친북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그를 대하는 북한의 말과 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짜고 맵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역적 도당이라고 부르던 조선중앙방송은 문재인을 삶은 소대가리라는 참신한 언어로 지칭했고 2차 북미대화가 수포로 돌아간 2019년 여름 그들은 역대 가장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외교란 득과 실을 엄정히 계산해야 하는 것인데 문재인의 대외정책은 실과 실만 낳았다.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거리며 북한 이야기만 늘어놓던 부끄러운 모습은 덤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문재인이 사모해 마지않는 중국과 북한이 호혜적이지 않는 국가라는데에 있다. 지난 2편에서 분석했던 것처럼(링크) 호전적이데다 팽창주의를 택한 중국은 주변국들과 미래를 공유하지 않는다. 강탈하려 하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런 나라나 정치세력의 겁박이 한 번으로 끝난 적은 없었다. 로마는 경쟁자였던 카르타고에게 함선을 부수고 뒤이어 도시 내의 모든 무기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 카르타고가 이를 받아들이자 얼마 안 가 그들을 멸망시켰다.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 지역을 강제합병했는데 연합국이 이를 묵인하자 그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호전적인 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상대는 부강해지는데 비해 자국의 세력은 약해지기 마련인지라 힘의 균형은 더욱 기울고 상대가 도발할 인센티브를 강화한다. 6:4의 싸움이 버겁다고 약자가 1을 양보한다고 평화가 오겠는가. 7이 된 패권국이 남은 3을 강탈하기가 더 쉬워졌는데. 역사적으로 팽창주의적 국가들의 확장이 멎은 것은 그들의 군대가 무력으로 저지되었을 때 뿐이다.

이런 실패의 배경에는 참여정부에서 밀려나 자신들의 뜻을 펴지 못한 자주파들의 고집이 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입성한 자주파와 동맹파 간의 대립이 극심했다. 참여정부의 첫 외교부장관이 경질된 이유가 한 외교부 간부가 "영어도 못하고 미국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미 외교를 하느냐"라며 자주파들이 포진한 NSC를 비난한 것이 언론에 알려졌기 때문이니 당시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은 미국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취임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반미 좀 하면 어떠냐"라고 발언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그는 말과는 반대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위해 애썼다. 경질된 외교부장관의 후임자로 정통 외무고시 출신인 반기문을 임명했고 첫 번째 주미대사로 김영삼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한승주를 임명했다. 그가 자신을 주미대사로 임명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해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당신을 찍지도 않은 나를 왜 주미대사로 임명했는가" 라고 묻자 노무현은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임명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뒤이어 한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부시 행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영국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고 미국은 다분히 호혜적인 FTA로 그에 화답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한 운동권들의 철학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있는지 빠르게 파악했고 그들 대신 관료들을 등용했다. 반면 당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문재인은 자신의 동지들이 밀려나는 것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겨, 청와대에 돌아오자마자 한때 노무현이 내쳤던 인사들을 모두 모아 다시 경제, 부동산, 외교를 맡겼다. 특히 그는 애초부터 관료들과 동맹파가 정책결정에 참여할 여지를 봉쇄했다. 첫 외교부장관은 통역사 강경화였고 사상 최초로 4강 대사를 모두 비외교관 출신으로 임명했다. 심지어 주미대사로 노골적 반미주의자인 문정인을 고려했다가 미국 측의 거부로 철회하였으니 사실상 동맹외교는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무현의 인사와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는가.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문재인이 집권 초기에 천명한 한반도 운전자론과 베를린 선언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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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내가 진동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외교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인물이 있다. 명청 교체기의 광해군. 그들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그처럼 중립외교를 펼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광해, 남한산성, 그리고 왕이 된 남자 등.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문화계에서 광해군의 삶과 시대를 그린 작품을 쏟아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인식은 명나라 같은 미국에 붙지만 말고 뜨는 청나라 같은 중국에게도 잘 보여야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정말 명이 지는 해, 청은 뜨는 해 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청태조가 후금을 세울 당시 명의 인구는 약 1.5억 명, 조선의 인구가 1500만 명인데 비해 여진족의 인구는 50-70만 명에 불과했으며 후금의 전투병력도 고작 10-15만 명으로 이는 도요토미가 조선에 파병한 병사와 일본이 실효지배한 지역의 인구 수가 더 많았다. 오늘날 우리가 도요토미의 명나라 정벌 계획을 망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청나라의 승리를 점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실제로 명의 수도를 함락시킨 것은 누르하치가 아닌 명의 반란군이었고 그 잔여세력들을 후금이 완전히 평정하기까지 약 50여 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이 중원을 제패하고 조선을 정복할 수 있던 것은 광해군의 잘못된 대외정책에도 일부 그 책임이 있다. 역사적으로 만주를 지배한 북방세력이 한반도를 정복하지 못하면 중원을 차지할 수 없었다. 백제/신라를 평정하지 못한 고구려가 그랬고 요나라와 금나라가 그랬다. 대제국을 건설한 몽고인들도 고려를 완전히 정복하고 나서야 남송을 평정할 수 있었는데 지정학적 특성상 한반도가 후방을 노리는 이상 중원 공략에 병력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금의 지도부 역시 조선의 충성을 받아내거나 한반도를 정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조선은 이때 명과 연합하여 적극적으로 후금을 견제하나 아니면 명을 배신하고 후금과 연합해 수로로 명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병력과 식량을 공급했어야 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사르후 전투에서 패하고도 북방의 병력을 적극적으로 증강하지도 않았고 명나라와 긴밀히 협력하여 후금을 견제하지도, 그렇다고 후금과 연합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다음 황제가 될 홍타이지가 조선과 협력은 불가하니 반드시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알면서도 명의 만력제가 보낸 수만 냥의 은자로 군대를 키우는 대신 사치품과 비단을 사는데 탕진한다. 반면 명나라는 미온적인 조선의 태도를 보며 조선이 청과 연합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고*** 따라서 연합전선을 구축해 다른 중원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북방세력을 견제할 수 없었다. 광해군의 어설픈 중립은 명도 청도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만약 명이 청나라를 멸망시켰어도 결코 조선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편 것이 아니라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양측의 눈치만 보면 딱 광해군같이 행동하게 된다. 미중 사이에 껴서 갈피를 못 잡고 양측을 모두 화나게 하는 문재인의 외교도 그렇지 않은가. 흥미롭게도 광해군의 무대책 엉거주춤 외교를 세련된 중립외교로 포장한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의 학자들이었다. 한국사를 연구한 이나바 이와키치와 다카와 고조는 "광해군 시대의 만주와 조선의 관계"라는 논문에서 광해군이 명과 후금의 대립 가운데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지킨 택민주의자라고 찬양했다. 이 논문의 발간된 것은 1933년으로 만주사변이 일어난 직후, 일제가 만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인들에게 한만사관(조선인과 만주는 불가분의 관계)을 설파하던 시기이다. 거기에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는 해(중국)와 뜨는 해(일제) 사이에서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조선인들을 향한 암묵적 위협도 담겼으리라. 

그리고 흔히 매국노라는 단어는 친일파들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 매국노들과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문재인의 외교는 분명 어리석음과 매국, 그 경계에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외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의 이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이를 경제적 문제로 정의한다. 따라서 동맹국들이 점차 군비를 축소해서 미국에게 막대한 국방비를 부담하게 만드는 것 역시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 그의 시각으로 볼 때 서유럽의 나토회원국들이나 불평등 무역을 지향하는 중국이나 얌체 같기는 매한가지이다. 따라서 그는 동맹국들과도 마찰을 빚었다. 반면 바이든은 자국의 이익을 미국식 헤게모니의 확산으로 바라보는데 이것이 미국의 냉전시대의 대외정책에 더 가깝다. 

**도요토미의 중국 정벌 계획이 육군과 해군의 합동작전으로 해안선을 따라 보급을 유지하며 중원으로 육군을 진출시키는 것이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좌초되고 일본의 육군은 평양성에서 공세 종말점에 도달해 패주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이 조선에 조기에 군대를 파병하지 않은 것은 조선이 도요토미와 연합해 명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2021. 4. 21.

아시아의 미래3. 다가오는 사무라이의 귀환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캔들차트를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캔들차트가 언제 어디서 발명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캔들차트 기법은 18세기 일본의 쌀 거래상이었던 혼마 무네히사가 쌀 선물시장의 가격 움직임을 분석하기 위해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같은 시기 조선의 경제활동의 대부분은 여전히 물물교환에 의존했다. 이는 조선과 일본이 엇비슷한 발전과정을 거치다 운 나쁘게도 개화기부터 차이가 벌어졌다는 한국인들의 편견과는 다르게 두 나라가 아주 다른 출발선상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경제력 차이는 아무리 늦어도 고려 시대 중반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일본의 농경지가 한반도의 약 2배인데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특성상 3모작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공업생산력도 뛰어나서 1863년 일개 지방정부에 불과한 조슈 번은 자신들이 직접 주조한 대포로 영국을 포함한 서구의 4개국 함대와 포격전을 펼치기도 했다. 승리했지만 의외의 전투력에 놀랐던 영국군은 자신들과 대적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이 극동의 섬나라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는 이후 영국이 일본을 식민지로 삼을 대상이 아닌 대등한 국가로, 더 나아가 러시아를 견제할 아시아의 파트너로 여기게 된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의 교과서는 이러한 일본의 역량을 가르치지 않는다. 거기에 개량한복을 입고 이크, 에크와 같은 추임새를 읊조리며 교내를 배회하는 전교조 민족주의자들의 망상이 가미되면 그들의 근대사는 더욱더 초라하게 각색된다. 이는 일부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는데, 미개한 일본이 선진국으로 도약한 것처럼 우리도 산업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우리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아시아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또 거기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었는지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한국인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사무라이의 후손들은 다시금 동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는 당연하고 군사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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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국방비만 천 조원을 쓰는 나라,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과 싸워서 이기는 법이 있다. 미군을 3만 명 이상 죽이고 3년만 항복하지 않고 버티면 된다. 그러면 대개 미국의 의회와 언론이 알아서 미군을 쫓아낸다. 6.25에서 유엔군은 3년간 약 4만 8천여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약 6만여 명이 사망하였다. 공산정권과 정면으로 맞붙은 이 두 전쟁에서 미군은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과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이 인명 손실을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현상은 21세기 들어 더욱 심해졌다. 아프간-이라크 전쟁에서 미군 손실은 비전투원을 포함해 만 5천 명에 지나지 않고 이름만 바꾼 테러조직들이 다시 결성되고 있지만 미군은 전쟁을 매듭지으려 한다. 따라서 미국의 적국이나 단체는 스텔스기인 F22를 상대로 어떻게 방공망을 구축할 것인지, 스트라이커 여단으로부터 어떻게 요충지를 방어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3년간 3만 명의 미군을 죽일지만 고민하면 된다. 이 얼마나 손쉬운 전략적 목표인가. 

미군 역시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각국에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줄 전략적 파트너를 심어두었다. 극동에서는 대한민국이, NATO에서는 터키가 전투보병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미군이 돈과 장비를 대면 동맹국이 목숨을 대는 이 간단한 구도로 미국은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최근 이 구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터키는 나토의 주적인 러시아의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여 동맹국들의 신경을 긁고 있고 대한민국은 노골적인 친중/친북 행보를 보이며 미국과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지속된다면 미국이 반세기에 걸쳐 구축한 세계전략이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전략 파트너를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유사시 극동에서 미국이 대한민국 대신 기댈 수 있는 나라는 일본 뿐이다.

일본은 육군을 육성하기에 유리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바다로 둘러써여 중국이나 소련이 선제적으로 공격하기 어렵고 남한의 3배에 달하는 인구와 막강한 공업 생산량 덕에 병력과 물자를 충당하기도 용이하다. 게다가 생산시설 역시 동쪽에 분포되어 있어 적이 공업지대를 파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육군을 육성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동맹국들 중 아무도 일본의 재무장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과 전면전을 펼친 일본이 대규모 군대를 육성하는 것이 불편할 것이고 또한 다른 동맹국인 한국의 반발을 가져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일본 스스로도 자신의 재무장을 거부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미군은 일본이 육군을 재건해 극동 방위의 한 축을 맡기를 바랐지만 수상 요시다 시게루는 이를 거부하는 요시다 독트린을 공표하곤 자국 내 경제발전에 전념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에게 훈도시 속까지 탈탈 털린 일본인들은 전략적으로 총칼보다 돈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역학구도가 변하고 있다는데에 있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일본과 싸운 마지막 세대의 대통령인 W.H. 부시**는 2018년 사망했고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가미카제와 진주만의 흔적은 점점 옅어져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이 재무장을 거부한 것은 과거 일본군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며 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던 기억과도 연관이 깊다. 하지만 현 자위대는 그런 과격파들과는 거리가 멀고 또 자국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일본의 전략목표가 경제발전보다 이젠 대외 팽창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이 미국에게 위협이라면 이는 일본에겐 몸서리치는 공포라는 뜻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일본은 더욱 재무장을 서두를 것이다.(링크) 이런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미일 양국의 최근 성명서를 살펴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새롭게 출발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압박하는 전선을 구축하는 데 있어 계속해서 엇박자를 보이는 한국 정부보다 일본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평화헌법의 개정과 재무장이 논의되지 않았을 리 없다. 육군이 빠진 반쪽짜리 군대로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일본을 노쇠하여 침몰한 국가로 업신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명확하게 디플레에서 벗어나 본궤도로 진입하기 직전이며 국내총생산 역시 작년 우한 폐렴의 충격에서 벗어나 올해 약 4%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1980년 후반의 일본의 장기 침체가 시작된 원인중 하나가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을 견제해야하는 미국이 반대로 이젠 일본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태평양전쟁 후 일본이 수백 년이나 앞선 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잿더미와 원폭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이 잃어버린 xx년 시리즈를 연장할 가능성도 낮다.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서 평화라는 배당금으로 배를 한껏 불린 사무라이가 다시 칼을 쥐는 것은 시간의 문제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대한민국에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일간 분쟁이 재발할 때마다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던 것은 남한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었는데 일본이 그 역할을 일부 분담한다면 한국의 입지는 과거보다 좁아진다. 게다가 자칫하면 일본과 한국이 군비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는데 양국의 경제력 차이를 고려하면 이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게임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미국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상황이 된다.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 지리적 여건만 보면 미국이 한국을 버리고 일본을 택할 수는 있어도 일본을 버리고 한국을 택할 순 없으니까.

한 역사학자는 한반도의 역사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로 해석했다. 대륙과 해양세력 중 어느 한쪽이 부상하게 되면 그들은 다른 한쪽을 침략하기 위해 반드시 한반도를 지나게 된다고. 그리고 지난 50년은 전통적 해양세력이었던 일본은 군대가 없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자처했고 중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주변국보다 가난한 시기를 보냈다. 그 결과 양 세력의 충돌의 기점이었던 한반도는 최대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허니문은 끝났다. 대륙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호전적인 국가가 들어섰으며 일본열도는 히키코모리처럼 칩거하던 기간을 마치고 외부로 팽창할 준비를 끝마쳤다. 당신과 내가 살아갈 미래의 국제정세는 지난 50년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세계 최초의 상품선물시장 역시 17세기 일본에서 태동했다.
**그는 전투기 조종사였는데 복무 당시 일본군이 포로로 잡은 자신의 동료 조종사의 인육을 먹는 사건이 벌어져 일본에 대해 비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아시아의 미래4. 문재인의 대한민국, 병신외교와 매국의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