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4.

순실이 아줌마 미안해

최순실 아줌마, 잘 지내? 이번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이 징역 25년 구형했더라. 그 뉴스를 보자마자 아줌마한테 사과 해야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어.

미안해.

난 아줌마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악당인 줄 알고 욕했어.이제보니 아줌마는 순위권 안에도 못들것 같아. 시덥잖은 사업이나 하다 청와대 대가리 마누라랑 동창이라 금뱃지도 단 손혜원이 처먹는 규모를 보니 참 순실이 아줌마는 통이 작았다 싶네. 목포같은 지방 도시 문화재 가지고도 수십억을 해먹고 정숙이아줌마랑 친구면 청주같은데서도 수천억을 버는데, 아줌마는 세계적 이벤트인 평창올림픽 가지고 고작 10억도 못벌었더라. 그것도 12년 존버한 땅이라며. 한심하게 왜그랬어. 아줌마, 고작 그거 가지곤 요새 청와대에서는 순위권에도 못들어. 혹시 김의겸이라고 알아? 아줌마가 손이 작았던 건지 순박한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호스트 고영태랑 놀아났다고 욕해서 미안해. 이제보니 운동권이면 광주 5.18 전야제에 룸싸롱 가서 술집여자 끼고 놀고 그래도 용서받더라고. 또 민주당이면 부하직원 강간하고 추행하고 성기 꺼내 털고 만지고, 여자인턴 데리고 국세로 해외출장다니고 그래도 되는 거였더라. 다 관행이래. 오해래. 그냥 돈내고 남자 불러다 논 아줌마보고 더럽다고 욕했는데 내가 후진국에 살고 있다는 걸 깜박했어. 미안해.

그리고 딸 유라씨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줘. 정유라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가지고 고작 이대 체대 갔는데, 조민은 가라서류로 시험 한번 안보고 sky가고 의대가고 그러더라. 아줌마 남편이 조국이었다면 유라는 전국체전서 동메달만 따도 서울대법대 수석으로 갔을텐데. 지나고 보니 유라 말이 맞았네.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야. 아줌마도 민주당에 줄서지 그랬어. 그럼 김어준이랑 유시민이 #내가 정유라다 #승마여신 이지랄 떨었을텐데.

그리고.. 솔직히 국정농단 사건 터졌을때 대통령 연설문을 대학도 안나온 아줌마가 손봤다는 건 좀 충격이었어. 근데 이번 정부를 3년 겪고 나니까 아줌마가 천재였더라. 박사 하고 교수까지 한 사람들이 아무리 못해도 고졸인 아줌마보단 잘할줄 알았거든. 난 교수들이 그렇게 빡대가리일줄 몰랐어. 경제부터 외교 부동산까지 시원하게 다 말아먹으니 요새 너무 허탈해. 차라리 아줌마가 나라 다스릴때가 나았는데. 순실이 아줌마. 비선 말고 비서실장을 하지 왜 그랬어. 아니, 시발 내가 미안해..

우병우랑 엮여서 검찰 농락한다고도 욕했는데 병우형 알고보니 참 소심한 사람이었더라. 말 안들으면 수십이든 수백이든 죄다 귀양보내고 정 안되면 지가 검찰총장 해서 기소 다 막으면 되는거였는데 왜 법대로 했대.. 또 조국처럼 포토라인 쌩까고 뒷문으로 기어들어가지 왜 빙신같이 굳이 백주 대낮에 당당하게 출두해서 여기자 노려보다 쓸데없이 욕만 처먹고. 게다가 딸은 삼수인가 사수해서 고대갔다며? 조국 딸이 시험 안보고 의대갈때. 또 아들은 운전병 차출된게 특혜라고 까였다면서. 조국 아들은 군대 그냥 안 가던데..

또.. 아줌마 아빠 사이비종교라고 비하해서 미안해. 우리나라 헌법에 종교의 자유도 있는데 아빠가 목사든 스님이든 무당이든 드루이드든 알게 뭐야. 그 왜 요새 헌법 강의하던 못생긴데 안웃긴 개그맨 있잖아. 김제동. 걔는 맨날 앵무새처럼 헌법 1조 1항만 외우고 다니던데 20항에 있는 종교의 자유는 안읽어봤나봐. 특히나 외교고 경제고 다 말아먹는데도 친북, 소주성 외치는 무리들을 보니 어디까지가 종교인지 요새 헷갈려. 그냥 점봐서 정책짜는게 이거보단 나을것 같아. 그럼 운좋게 용한 무당이라도 걸릴수도 있잖아..

휴 여튼 아줌마 요새 날씨도 추운데 깜빵은 더 춥지? 아줌마가 검찰에 출두하는게 생방송될때 억울하다! 한마디 외쳤을때 옆에 지나가던 청소부 아줌마가 "옘병하네" 한마디 했던게 생각이 나. 그 분은 빌딩관리하시던 비정규직 노동자셨는데, 지난 3년간 경제지표 보니 그게 가장 많이 없어진 일자리 중 하나더라. 혹시나 그 분 지금쯤 집에서 "아아 꽃이 진 다음에야 봄인줄 알았읍니다" 이러고 있지 않을까? 나 아줌마가 너무 미운데 미안하기도 하고 시발 내가 무슨소리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그냥 아줌마 외롭지 말라고 깜방동기들 많이 보내줄게. 조금만 기다려. 시발.

2020. 1. 19.

방구석 제갈량들과 부동산

당신이 어떤 분야의 전문가나 참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해결방안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자신이 병신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발끈하기 전에 적어놓고 외워라. 이 한마디를 기억하는것 만으로 당신의 인생의 다운사이드가 크게 줄어들 것이니까.

부동산에는 이런 병신들이 유난히 많다. 부동산시장은 경제학, 건축기술, 인구구조, 사회학, 주택정책, 통화정책 등 복잡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결합된 시장이라 거시적인 예측이 대단히 힘들다. 수십명의 전문가/박사를 보유한 건설연구원이나 KDI를 제외한다면 여러 부동산 전문가들이 거시적 예측보다 미시에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한 사람이 저 모든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기 어려우니 거시적 예측보다 미시적 분석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복덕방 아줌마와 말도 한번 안 나눠본 초짜들이 부동산 시장이 이리이리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또 자신이 시장을 바로잡을 일격필살의 비기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아마 예전부터 봐 왔던 소수의 독자들은 눈치 챘겠지만, 이 블로그를 시작한 목적 자체가 그 병신들과 논쟁하며 똑같은 소리를 하는게 지겨워 아예 완성된 글을 올려놓고 링크만 달기 위해 만든것이다. 이 블로그의 첫 글(링크)이 일본은행이 어떻게 디플레를 초래했는지를 분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는 그 멍청이들과 논쟁할 일이 없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 없이 내가 옳았다는 것을 시장 가격이 증명해주고 있으므로 굳이 초딩수준의 방구석 제갈량들과 진흙탕에 뒹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빗나간 전망을 고집하는 자존심 센 멍청이들의 전망은 곧 소망이 되고, 그 소망마저 무시당하면 분노하기 시작한다. 한 예로 1998년 역대급 부동산 저점에서 추가폭락을 전망하던 한 연구원은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외치다 지쳐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토지정의시민연대에 가입하지 않았나.(링크) 문제는 이 키보드워리어들의 오랜 등신 짓은 결과적으로 자신과 사회를 더욱 더 깊은 똥통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데에 있다. 내가 이런 글을 쓴다고 그들이 그런 뻘짓을 멈출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블로그 독자들이 그 멍청이들과 말을 섞는데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작은 선물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그 방구석 여포들과 논쟁하는 대신 이 글의 링크를 떡 붙여넣고는 대화를 종료하시라. 당신의 시간은 그보다 가치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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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득세/보유세를 폭발적으로 올리면 집값이 잡힌다.
어느 시장이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거의 대부분 수요와 공급이다. 사막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는 조난자에게 물을 팔 때 소비세를 붙여 봤자 가격과 수요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지금 부동산이 폭등하는 원동력은 공급절벽인데 거기에 세금으로 대응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게다가 이렇게 수급이 심각하게 왜곡되어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부대비용이 세입자에게 전가된다. 예를 들어 한 마을에 한명의 세입자와 한명의 집주인이 있고, 갑자기 종부세가 부가되었다고 치자. 집주인은 부가된 세금을 세입자에게 전가시켜려고 가격을 올리려 하겠지만, 빈 집이 존재할 경우 세입자는 전월세 비용을 올리는 대신 새 집을 매입하는 것을 고려할 것이다. 하지만 빈 집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세입자는 집주인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노숙을 해야한다.(물론 집주인은 월세를 못받겠지만, 월세를 못받는것과 노숙하는 것 중 어느쪽이 더 괴로울까?)  따라서 조세는 세입자에게 전가되게 된다.

현실사회에서 한 집주인이 전월세를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옆집 집주인과의 경쟁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집주인에게 공평하게 비용을 발생시키면 공급자끼리의 경쟁이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한다. 이처럼 수요곡선이 비탄력적인 경우 조세의 부과는 수요자에게 전가되는 과정은 경제학에서도 쉽게 설명되어있으니 심심하면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시길.(링크)

2. 전세를 없애면 우리나라의 부동산 버블이 사라진다.
모든 시스템은 양측의 필요에 의해 생기고 필요가 사라지면 점차 소멸한다. 전세 역시 집주인과 세입자 양측의 니즈를 만족시켜주기에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링크) 금융시스템이 미개한 나라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담보기반의 P2P대출이 바로 전세시스템이다. 전세시장은 또 하나의 금융시스템이나 다름없고 따라서 전세를 불법으로 만들면 집값이 잡힌다는 이야기는 일부 금융시스템을 파괴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즉 이는 시중은행들 중 약 절반을 강제로 도산시키면 집값이 잡힌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베이징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삼성동 지하에서 핵실험을 해도 강남 집값이 잡힐 것이다. 폭락하는게 집값 하나가 아니어서 문제지. 전세시스템을 없애면 된다는 말은 앞의 예시와 전혀 다를바가 없다. 수요에 파괴적인 충격을 가하면 집값이 잡힌다는 븅신같은 주장.

게다가 앞서 말했듯 모든 시스템은 양측의 필요에 의해 생겨나기에 필연적으로 전세시스템으로 덕을 보는 세입자의 피해도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월세는 서울시 신축의 경우 약 1.8-2.5%로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다. 그 이유는 임대차 시장의 거의 70% 를 차지하는 전세시스템 덕인데 전세가 모두 소멸하고 월세로 전환된다면 세입자의 주거비용이 크게 폭등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이자보다 세후 월세수익률이 높아져 돈 많은 자산가들이 예금을 빼서 부동산을 보유하게 되니 집값은 크게 변하지 않는데 주택소유구조만 바뀌게 된다. 더 나쁜쪽으로. 임대소득에 높은 세금을 매기면 되지 않냐고 주장하는 븅신은 1번을 다시 읽고 올것.

3. 다주택자들에게 징벌적 과세를 매기면 부동산이 잡힌다.
주택을 공급하는데엔 자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본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 부자들이다. 더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 다주택 보유를 금지한다고 치자, 그러면 신규주택 공급이 끊어질 것이다. 건설사에서 대치동에 새 아파트를 지으려 해도 그 아파트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은 무주택자가 많지 않으니 미분양을 염려해 사업을 포기할 것이다. 결국 얼마 안되는 무주택자들의 자본만 가지고 사업을 하는 셈이기 때문에 경기도 변두리에나 짓거나 부실시공을 하다, 이윽고 주택공급이 끊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는 더 낡은 집의 가격이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결과를 낳는다. 현재의 재건축초과이익환수, 용적률제한, 분양권전매제한, 임대주택 의무화, 분양가상한제 등의 제도도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다주택자들에게 징벌적 과세를 매기는 것은 주택 공급을 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저렇게 규제하면 집값이 잡힐것이라는 병신에겐 한가지 질문을 던져라. 그럼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주의국가 북한은 왜 남한보다 못사냐고.

4. 부동산 가격 하락은 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적 문제다.
당신이 집이 없다고 해서 모든 서민들이 집이 없는 것이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약 58%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 자산의 약 70%는 부동산이다. 게다가 부동산을 보유하지 않은 1인 가구 중 상당수가 독립한 자녀로 차후 부동산을 상속받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의 폭락은 서민에게 이득이 아니라 지옥이 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의 완만한 상승은 경제발전의 성과를 서민들의 나눠주는 가장 중요한 루트 중 하나지, 빼앗는 것이 아니다.

5.차후 창의적이고 멍청한 주장을 접하면 다시 업데이트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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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부동산을 잘 모르는 초짜들이 무슨 배짱으로 각종 괴랄한 정책을 내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부동산시장과 정책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다. 혜초스님의 왕오축국전이 발견된 둔황동굴의 나머지 문서 중 상당수는 당나라 시기에 작성된 복잡한 부동산 계약서였다고 하지 않는가. 자기가 인류 5천년 역사상 가장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서 부동산을 잡을 수 있다는 망상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당신이 진짜 제갈량이면 방구석에 있지 않고 천하를 다퉜겠지.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이 방구석 뭐시기들에게 감사해야한다. 그들이 모두 우리보다 똑똑했다면 나는 예전 그 가격에 집을 사지 못했을 것 아닌가. 김수현이 참여정부에서 븅신 짓을 한 자신의 과오를 뉘우쳤다면 현재 부동산이 이렇게 폭등하지 못했을 것이니, 이 얼마나 고마운 븅신들인가. 다시 한번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이 자애로우신 방구석 제갈량들과 고마운 븅신들에게 감사하며 잠들도록 하자. 부디 진화하지 마시고 오래오래 그따위로 남아주시길.

2020. 1. 11.

독재의 서막

모든 독재는 법을 어겨가면서가 아니라 법을 지배하며 완성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독재는 지극히 합법이다. 김일성이 북한의 실정법을 거슬러 권력을 잡았는가? 스탈린이나 히틀러는? 당시의 헌법과 법전에 따르면 그들의 독재는 온전히 합법적 행위였다. 하지만 이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독재자들은 항상 적법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법의 경계는 민주와 독재를 나누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재의 서막을 알려주는가.

그 답은 권력의 분산에 있다. 일부 인본주의자들이나 감성넘치는 돌대가리들의 허망한 구호와는 달리(ex. 난 달라) 유전적 다양성이 침팬치의 1/4도 안되는 인간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인간의 본성은 놀랄 정도로 균일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누구에게나 절대 권력을 주면 어김없이 타락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인류는 수천년 간 압제자와 민중간 피의 다툼을 벌인 끝에 이를 깨달았고 근대 민주주의를 완성하던 정치철학자들은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권력의 적절한 분산을 강조했다. 우리는 구약성경의 주인공들 처럼, 현인이 벼락처럼 나타나 절대권력을 쥐고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이 다른 타락한 인간을 견제하기 위해 정의로운 시늉이라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차선의 경계는 딱 거기까지다.

대한민국 역시 이 삼권분립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독재의 시기를 겪지 않았나. 빈번한 독재자의 등장은 권력이 적절히 분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그리고 그 원죄는 행정부, 더 나아가 청와대의 지나친 권력집중에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독재자들은 늘 행정부의 권한을 늘리려고 하고, 독재를 막으려는 이들은 그를 분산하려고 한다. 이 법칙은 현재에도 널리 통용된다. 당신이 박근혜를 지지하든 문재인을 지지하든 , 혹은 김정은이나 허경영을 밀던 간에. 따라서 우리는 시끄러운 정치사안들과 개혁들이 권력이 무게중심을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 벌어지는 사건들은 삼권분립의 균형을 반드시, 또 영구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게추는 분명히 행정부(혹은 청와대)로 기울어져 있다. 이는 여당 인사들, 심지어 청와대조차 반대하지 않는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미개한 신민들은 늘 자신이 좋아하는 임금님이 전권을 휘두르기를 바란다. 따라서 과거의 독재자들은 이런 점을 아주 영리하게 이용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를 장기화하는 유신헌법을 두 차례나 국민투표에 붙였는데, 이는 압도적인 찬성표(1차 91.5% 2차 73%)를 얻었다. 당시 선거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 수치를 조정한다고 해도 그가 상당수의 국민들에게 열성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더욱이 그의 딸 박근혜가 87년 헌법체제 아래서 유일무이하게 과반을 넘겨 득표한 것을 보아도 그렇지 않나.(나중에 애비랑 다르게 어버버하다 탄핵됐지만) 그리고 문재인 정부도 이런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초동 조국수호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보라. 거기에 어떤 민주적 가치와 삼권분리의 원칙이 있나. 그저 "우리 사랑하는 임금님을 괴롭히다니, 고오얀 것!" 이라며 분노하는 신민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소수 광신도들의 열성적 지지에 힘입어 청와대는 권력을 확대하고 있다, 독재의 서막은 서서히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독재자들은 늘 법의 기본 정신이 아니라 껍데기 같은 형식에 치중한다. 정족수를 계산할 때 반올림을 해야한다던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이 그랬고,  현재 헌법을 수호한다는, 그러니 또 체육관대통령을 뽑겠다던 전두환의 호헌조치가 그랬다. 자신에게 불리한 수사를 진행한다고 검찰인사를 모조리 다 갈아치우는 법무부의 변명도, 국회인사청문회 보고서를 무시하면서 임명하는 행정부의 변명도 마찬가지로 법의 껍데기를 강조한다. 이는 법에 의거한 적법한 인사권이라고. 하지만 검찰청법이나 인사청문회법이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에게 인사권 행사 시, 국회나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으라고 명시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당신들의 권한은 견제/감시받아야한다는 것이지 듣고 걍 니맘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의 유치한 말장난이 떠오르지 않나, "야 무슨 소원이든 들어준다며", "응 네 소원 정말 잘 듣기만 했는데"

운동권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좋은 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4.19와 6월 항쟁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각의 사건들은 1960년, 그리고 1987년에 일어났다. 이 민주화의 공을 특정 세대에게 돌리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를 무릅쓰면서 분석한다면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대한민국 가장 큰 몫은 1940-50년대 출생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링크) 그들은 10대에는 이승만에게 대항해서, 그리고 3040대가 되어서는 전두환에게 대항하여 시위를 이끌었다.(영화 1987에서도 광장을 메운 것은 종북대학생들이 아닌 넥타이부대들이었다.)  현재 여당 지지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30-40대는 그 두 사건에 기여하기엔, 또 기억하기엔 너무 어렸다. 당신들이 시계를 돌려 이승만, 혹은 전두환의 독재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봤더라면 아마 지금 운동권들의 권력독점 시도를 좀 다르게 보지 않았을까.

이 글은 [민주화에 별로 기여한게 없으면서 스스로를] 민주화세대라고 일컫는 이들이 읽기엔 다소 불편할 이야기가 되겠지만, 앞서 말했듯 독재를 낳는 것은 개인의 인성이 아니라 조직의 권력구조이다. 따라서 현 제도를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권여당이 내편이 아니라 상대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는 것 아닐까. 대깨문들이여, 그리고 골수 민주당원들이여. 공수처가 박근혜 정권에서 설치되었다고 생각해보라.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탄압이 우병우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보라. 그 결과가 끔찍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나쁜 개혁이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처음으로 기존의 정치구조를 바꿔 독재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그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자신의 정치력을 모두 소진해버리고 제거된 뒤, 엉뚱한 사람이 그 과실을 차지했다. 루비콘 강을 넘은 것은 시저였지만 세습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옥타비우누스였고, 프랑스 대혁명 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것은 로베스피에르였지만 역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현재 권력의 균형을 부수고 있는 것은 문재인이지만 정작 그 독재의 힘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당신이 반기지 않을 사람일 것이다.

나는 문재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실각 후 집권할 그 누군지 모를 미래의 독재자에게 반대하기 때문에 현재의 정치/사법개편 정책을 반대할 뿐이다. 다들 광화문에서 봅시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양강 구도보다 삼자대결이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이를 서기 200년에 깨달은 제갈량은 천재.
**전국적인 사건으로 두 항쟁을 언급한 것이지, 광주항쟁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2019. 12. 27.

협찬인생 박원순의 불로소득

위대하신 박원순 대통령지망자께서는 오늘 서울시부터 부동산 국민공유제를 실시하겠다는 원대한 뜻을 천명하셨다. 그가 불로소득을 적극으로 환수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을 때 나는 골이 땡 하고 울리는 것을 느꼈다. 40년의 협찬인생 외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분이 일해서 번 것외엔 다 환원해야한다니.

챨리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는 것 처럼 듣기만 해도 곰팡이 냄새 폴폴나는, 그런 공감각적 심상을 불러 일으키는 이 단어, 불로소득이라는 말은 19세기 경제철학자 헨리 조지가 도입한 개념이라고 한다. 그는 토지와 건물을 통한 지대 뿐 아니라, 그 외에도 이자나 배당, 중개수수료 등 노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모든 소득을 묶어 불로소득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14세에 중학교를 중퇴한 이후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선원이나 인쇄공으로 일했던, 정말 밑바닥부터 올라온 블루칼라였던 터라 땀흘려 일하는 육체노동을 중점에 두고 자신의 이론을 만들었다.

자 이제 헨리의 눈으로 박원순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는 1978년부터 법원 사무관으로 일하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3년에 개업변호사가 되었지만 86년 이후로는 시민운동에 매진한다. 네이버에서 찾아본 그의 이력은 한 페이지가 꽉 차도록 다양했지만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없었다. 펴엉생 땀 흘려본 일이라고는 여름에 삼양동 옥탑방에서 쇼할때 뿐이었을 그를 헨리 조지가 보면 뭐라고 할까? 곯을대로 곯은 관상과는 정 반대로 뽀송뽀송한 그의 손을 살펴보곤 박시장의 뒷통수를 세게 후려쳤을 것이다.

평생 남의 돈으로 놀고먹는, 그런 모두가 꿈꾸는 삶을 살아온 우리 박원순 시장.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꿈을 좆는 소년이나 다름없다. 오늘 그는 스스로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고 따라서 사회에 환원해야한다고 천명하셨는데, 그 말인즉슨 일 하지 않고 먹고 자고 싸고 서울망치고 쌈박질하고 예능나가던 자신의 40년 협찬인생을 드디어 사회에 환원한다는 말 아닐까.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장기기증? 서울 의대에 카데바? 아니면 협찬 노하우를 경제에 접목, 세계에 빌붙는 협찬국가의 건설? 요새 북한 참 좋아하시던데 월북 후 평양시장이 되어 적의 수도를 망쳐놓으려고? 하. 도통 가늠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찌 기생충의 뜻을 헤아리겠는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것은, 대통령이 잘생겨서 뽑았다던 민주당 지지자들은 왜 세번이나 박원순을 뽑은 것일까.

2019. 12. 25.

좌절하는 청춘들에게 II, 부제: 라떼는 말이야

블로그에 방문자수가 늘어난 뒤로 내가 가장 많이 접했던 댓글들은 오르는 집값을 두고 좌절한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담고있었다. 나는 여전히 지난 30년 중 가장 길고 커다란 부동산 상승 사이클을 볼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당신이 무주택자라도 아직 40이 넘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좌절하고 분노할 필요는 없다. 모든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고 부동산 또한 예외는 아니니까. 현재 우리는 상승기에 있지만, 언제고 내릴 때도 있을 것이며 당신이 충분히 젊다면, 그때에도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테니 너끈히 집을 마련할 것이다.

예전의 글에서 어떻게 이런 사이클이 완성되는지를 밝혔다.(링크) 요약하면 과거에도 잘못된 주거정책으로 인해 집값이 크게 폭등하자, 정부는 돌아서서 과도한 공급으로 집을 오히려 지나치게 공급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집값이 오랜기간 낮게 유지되어 중산층들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하지만 몇몇은 이렇게 반문했다. "과거에는 고도성장기에 금리가 높아 재테크도 더 쉬웠고 집값도 싸서 사기 쉽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잘못된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아니, 집 사기는 과거가 훨씬 더 어려웠다. 옛 데이터를 뒤적거리는 것은 늙은이들의 넋두리를 듣는 것 만큼이나 고역이겠지만, 그래도 꾹 참고 한번 1980년대의 "라떼는 말이야"에 귀 기울여 보자.

한국의 소비자물가 연 상승률
7080년대의 은행이 예금자에게 10%가 넘는 이자를 주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목돈을 예금으로 모아 집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했다. 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보다시피 7080년대에는 물가가 20-30%씩 오르는 일이 흔했다. 일반적으로 주택가격이 소비자물가보다 더 빠르게 오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저 시절의 집값은 해마다 더 크게 올랐을 것이다. 은행에 100만원을 넣으면 1년 뒤 110만원이 되지만 1000만원짜리 집은 1200만, 1500만원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일은 가능했을까. 그것이 거의 유일한 길이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은행예금금리가 10%인데 대출금리가 그보다 더 낮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친척 중 한분이 처음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때의 대출금리는 무려 15%였다고 한다. 아무리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도, 두자리 수라는 살인적 고금리에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는 것이 어찌 쉬웠겠나.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대출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느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혜같은 것이었고, 때때론 은행 지점장에게 고맙다며 소정의 보답을 해야 하던 시대였다. 장담컨대 집을 사는 것은 7080년대가 훨씬 힘들었다.
과거에는 집이 매우 싸서 소득만으로 살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철부지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데이터는 그 반대를 보여준다. 위에서 보다시피, 소득대비 주택가격은 80년대가 말도 안되게 더 비쌌기 때문에 소득으로 집을 사는 것은 몇배나 더 힘들었다*.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는 뉴스 아카이브에서 당시 신문들을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 2월 27일 경향신문 기사
이처럼 고작 17평짜리 아파트, 현재는 찾아보기도 힘든 그런 초소형 거주지를 마련하는데 1980년의 도시근로자들은 11년 이상의 저축을 쏟아부어야 했다. 아마 당시의 물가상승률이 예금금리보다 훨씬 높았을테니 실제 도시 노동자가 집을 장만하는데엔 훨씬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게다가 위의 사례가 한국의 13개 주요도시의 평균을 구한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울의 사정은 더욱 처참했을 것이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불과 40%를 갓 넘기던 시절이었으니까. 현재의 주택난이 아무리 지옥같아도 7080년대 보다는 더 낫지 않은가.

1990년 4월 30일 매일경제 기사
거기에 대응하는 우리 윗 세대의 반응도 똑같았다. 집값이 계속해서 폭등하자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결혼을 연기하고 부업에 나서며 돈을 모으기도, 아예 포기하기도 했다. 현재 젊은 세대들의 반응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그랬던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 주택가격 / 물가인덱스 = 서울 주택 실질가격
아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보통사람을 자처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수도권 주택 200만호 건설을 약속했고 그에 따라 서울의 실질주택가격은 1991년에 정점을 찍은 뒤 약 10년간 하락했다. 결혼을 미뤘던 사람들은 다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부업을 뛰며 종잣돈을 모으던 사람들은 큰 집을, 그리고 현재를 즐기며 소비를 하던 사람들은 뒤늦게 돈을 모아 작은 집을 마련하고, 뭐 그렇게 살아갔으리라. 1980년에 20-30대였던 세대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10년 만에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41%에서 80%까지 뛰어오르자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이 더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 소수의 무주택 투기꾼을 제외한다면.
당시에도 재산세를 늘려야 집값이 잡힌다고 주장하던 멍청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정부가 공급으로 방향을 선회한 후 일어난 일이다. 현재의 정부는 너무나 멍청하고 너무나 고집이 세서 공급을 꽉꽉 틀어막고 있지만, 민주주의 아래서 이런 멍청한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어디까지나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면) 1987년 민주화항쟁을 겪은 군사정권이 대중의 필요에 따라 정책의 방향을 주택공급으로 돌렸듯, 현재의 정부도 결국 굴복할 것이다. 언젠가 공급을 약속한 정부가 들어설 것이며, 그때 좌절한 청춘들은 1980년대의 신혼부부 崔모씨(31살)가 그랬듯 자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미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울 아파트의 실질가격이 떨어지던 저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일 것이다. 내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옛날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꼰대처럼 그때가 더 힘들었어! 라고 일갈하며 당신들의 좌절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입견과는 정반대로 그대의 아버지들 역시 1970-80년대 주택 폭등기를 힘들게 견뎌낸 끝에 가까스로 내 집 하나 마련한 분들임을, 그리고 그들의 인고와 노력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자 고통스러운 시절도 지나가고 지금의 그대들이 기억하듯, 어찌보면 너무나 쉽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듯이, 당신들이 겪을 오늘과 내일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고 사이클 역시 돌아올 것이다. 나는 희망을 파는 사람이 아니지만 뭐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밀레니얼 세대여,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몇몇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7080년대에 집을 사는 것이 더욱 쉬웠다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대치동이나 잠실같은 지역을 예로 드는데 그 당시의 이 지역들은 사실상 신도시나 다름없던 지역이거나, 심지어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이 아닌 곳들도 있었다. 지하철 3호선도 개통되기 전이라 그 지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데에 1-2시간이 걸렸는데, 지금도 출퇴근에 그정도 걸리는 교외의 아파트 가격은 월급으로도 살 수 있을 만큼 싸다.

2019. 12. 16.

12.16 부동산 대책 평가: 문은 닫혔다.

* 문은 닫혔다. 이제 무주택자가 집을 살 길은 없어졌고 비강남 사람들이 강남에 입성할 방법도 사라졌다. 앞으로 계층이동은 불가능하며 안타깝게도 이제 당신은 복덕방 앞을 지날 때마다 자신의 노동력이 저 자본재 앞에서 얼마나 하찮게 절하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욕하지 마라. 나 역시 그 중 하나 일테니까. 이제까지 집을 사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 10년 동안 집을 사지 못할 것이고, 이제부터 무택자들의 고민은 (집을) 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전세를 택할지 월세를 택할지가 될 것이다. 아멘.

* 이번 정책은 헌법의 선을 넘나드는 것 처럼 보일만큼 과격하지만 그 본질은 단순하다. 하나, 대출을 죄고, 둘, 세금을 올리는 것. 하지만 앞서 17번의 부동산대책을 통해 이 둘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돈이란 물과 같아서 수익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쪽으로 흐르게 되어있기에, 정부가 고가주택 수요자의 대출을 죄어도 다른 곳에서 자본이 들어와 균형을 맞출 것이다. 여러 시장 중에서 부동산에서만 유동성을 퍼 내려는 것은, 한강변 반포대교에 앉아 열심히 물을 퍼내면 딱 그 부근만 수위를 낮출 수 있다고 믿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세금은 의심의 여지 없이 보유비용을 높이나 그 실질적 부담은 늘 세입자들이 지게 되어있다. 지금도 홍콩, 싱가포르, 런던, 맨하탄의 부동산은 모두 월세가 모기지 대출금리보다 비싸 월세보다 매매가 유리하지만, 세금과 매매비용 때문에 목돈 가진 부자들만이 집을 사고 월급쟁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금리보다 비싼 월세를 내야한다. 부자들은 그 월세에서 세금을 내고 나머지 수익으로 더욱 부자가 된다.

* 이번 조치로 월세와 전세가가 올라갈 것이고, 이는 또 매매가를 끌어올릴 것이다. 일부 무주택자들은 해당 조치들을 반기고 집값이 빠질 꿈에 부풀어있던데, 이는 헛된 바람으로 끝날 것이다. 멍청이들이 멍청한 짓을 더 세게 하는데 똘똘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거의 미친짓 아닌가. 만약 당신에게 아직도 집을 살 여력이 있다면 하늘과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곧장 달려가 사라.

* 오늘의 모든 조치는 주택이 부족한 상황 아래에서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 나쁜 머리를 굴려가며 희망적인 상황을 가정해보지만, 미팅의 룰을 아무리 바꿔도 퀸카가 당신에게 먼저 대쉬할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전제 아래 오늘의 조치는 다음의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 15억 이상 고가주택 대출 전면 금지
    => 매매가 막힌 실거주자들이 전세로 들어가며 전세가를 올릴 것이고, 이는 갭투자를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 9억 이상 고가주택 보유자 전세자금 대출 금지
    => 전세입자들은 월세로 전환할 것이니 월세 수익률이 올라갈 것이고, 세후 월세수익률이 은행이자보다 높으니 은행권의 예금을 빨아들일 것이다.
  • 임대등록한 주택도 2년 거주 해야 양도세 비과세
    =>임사주택이 매물로 나오는 시기가 2년 늦어짐.
  •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 가중
    =>집값이 종부세보다 열배씩 오르는데 양도세까지 물어가며 파는게 바보. 세입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
  • 조정지역 내 대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한시적 배제
    => 이번 대책 중 딱 둘밖에 없는 유인책이지만, 양도세를 50%가 아닌 40%만 매긴다고 신나서 집 팔 멍청이는 없다.
* 오늘의 정책에는 뭔가 새로운 대책을 고심해 본, 그런 최소한의 성의조차 없었다. 38페이지에 달하는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보도자료는 이미 봤던 정책과 이미 들었던 대책들을 짜깁기했을 뿐이고, 그 행간에는 깊은 짜증과 원망 그리고  분노가 담겨있었다. 마치 구몬수학이 어려워 풀리지 않는다고 연필을 부수는 바보 덤보처럼, 권한은 많은데 머리는 나쁜 행정부의 무능한 수장들은 한 편의 개그콘서트의 꽁트 캐릭터들마냥 심각한 얼굴로 무게를 잡고 있었지만 그 아래 사무관들 조차 뒤에서 그들을 비웃고 있었으리라. 본인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이명박근혜의 잃어버린 9년이 부동산 상승 이야기였던가.

* 당신이 만약 40을 넘지 않았다면 다음의 글을 꼭 읽기 바란다. (링크)

2019. 11. 24.

세 수퍼스타들의 몰락

나는 다음의 세 수퍼스타가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지난 5년간 가장 사랑받아온 업종/회사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다소 과감한 주장처럼 보이겠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진 않을 것이다.

1. 쿠팡

한국의, 아니 아시아의 아마존을 꿈꾸는 쿠팡. 하지만 그들은 영업 전략을 잘못세웠기 때문에 망할 것이다. 이마트나 롯데의 수익을 멱살잡고 끌어내릴 정도로 공격적인 할인정책을 펼쳤지만 애초에 이런 전략이 통하려면 1.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혁신적이라 경쟁자들보다 비용이 낮거나 2. 자본이나 규모가 월등하게 커서 출혈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지만 쿠팡은 둘 다 갖추지 못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는 점이 그들의 유일한 장점이나 지난 3년간 그들의 손실은 매출에 비례해서 늘어난 것을 보면 쿠팡은 그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애초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본인들은 아마존이 목표라고 하지만 아마존의 수익 절반 이상은 클라우드에서 나오는데, 쿠팡은 클라우드 컴퓨팅은 제쳐놓고 되려 아마존의 사업 중 가장 돈 안되는 물류에 집중하고 있는데다 그마저도 훨씬 다양한 경로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고 모회사나 계열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마트나 롯데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10년 뒤 쿠팡은 골드뱅크 처럼 한때를 풍미했던 회사로 기록 속에 이름만 남을 것이다. 물류계의 돈키호테여 안녕.


2. 테슬라

내가 테슬라에 탑승해 본 것은 불과 몇번 뿐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테슬라는 신박해보이는 패션을 파는 회사고, 샴페인 좌파들의 도덕적 우위로 타는 액세서리 카,  그 뿐이라는 것. 나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을 완전히 대체할거라는 데에 극히 회의적이지만(그만한 발전/축전/송전 능력을 갖춘 나라는 몇 없다. 게다가 탈원전과 전기자동차는 양립할 수 없다) 설령 그런 세상이 온다고 해도 그 미래는 테슬라의 것이 아닐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결국 규모의 경제를 반드시 갖춰야 하는 치킨게임이나 다름없는데 이제 겨우 연 50만대를 찍어내기 시작한 기업이 수십년간 매년 1000만대 가까이 생산해 온 TOP5와 단가/유통망/비용최적화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도체나 휴대폰과는 달리 기계분야에서 국가간, 기업간의 역전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 분야야 말로 경험과 데이터가 누적되어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동력원은 다이슨 같은 청소기 업체도 뛰어든다고 선언할(도로 취소했지만) 정도로 기술적 장벽이 낮은데 비해 나머지 파트들은 전통적인 기계공업의 영역으로 후발주자가 그렇게 쉽게 역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투자만 때려박는다고 그게 되는 것이었다면 세계 자동차 시장의 거의 절반은 중국이 먹었어야 했다. 그 규모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GM이나 폭스바겐, 도요타지 테슬라는 아닐 것이다. 테슬라가 연 2-5만대 정도만 생산하며 셀럽들의 진보 코스프레용 세컨, 혹은 써드카로 쓰일 땐 그 조악한 품질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누적생산대수가 50만대를 넘어서며 중산층들이 일상용 차로 테슬라의 핸들을 잡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내 생각에는 테슬라의 연간 생산량이 200만대를 넘어서면 품질관리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량으로 생산할 수록 일정한 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또 차량이 노후화 되면 진짜 품질수준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테슬라가 픽업트럭을 공개하며 방탄성능을 테스트 한답시고 창문에 쇠공을 던지자 유리가 퍽 하고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하여, 당일 주가가 폭락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에 대한 내 전망이 암울한 근본적 원인은 (그닥 쓸모도 없는) 미약한 방탄성능에 있지 않다. 기존에 양산모델들의 기본적 품질관리도 안되면서 꿈같은 차를 남들과 같은 가격에 출시하겠다는 그 과대망상에 있다. 전기모터의 토크로 굴릴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그렇게 싼 방탄소재를 개발했다면 테슬라는 승용차가 아니라 방산업체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 차가,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야심을 뒷받침하는 것이 과학인지 망상인지 5년 안에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실 이 회사가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길은 완성차 제조를 그만두고 특허료나 걷는 것이었는데 그 마저 포기했으니 테슬라의 미래는 아예 없다.


3. 바디프랜드 (외 안마의자 생산업체들)

앞의 두 회사가 수익도 못 내면서 희망만 신나게 파는데 비해 안마의자 생산자들은 두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내고 있으니 같은 선 상에 두는 것이 어색할 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안마의자 생산업체들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안마의자의 경제성에 있다. 안마의자는 최소 2.1제곱미터, 설치 후 집안의 가구배치나 동선을 고려한다면 최대 약 5제곱미터, 약 1.5평의 면적을 잡아먹는다. 서울시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조만간 9억을 돌파할 것이고 이들의 평균 면적을 국민주택규모(84m2)라고 가정한다면 현재 안마의자를 사는 가구의 집값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평당 약 3500만원이다. 따라서 안마의자를 놓으려면 약 5250만원(1.5평x3500만원)의 주택가격을 추가로 지불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를 연 3% 금리로 펀딩한다고 가정하면 매년 150만원의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집값이 폭등할 수록 이 비용도 늘어날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주택수급은 소형보다 대형에서 두드러질 것인데, 안마의자를 편하게 두고 쓸 대형아파트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안마의자의 수요도 곧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과거에도 중산층이 이런 대형 사치재를 집안에 들여놓은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90년대의 피아노였다. 당시 1기 신도시와 함께 대형평수 아파트들이 대거 공급되자 대형평수 프리미엄이 빠르게 내려가면서 집안에 피아노를 한 대쯤 들여놓는 것이 중산층의 필수조건처럼 여기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imf 이후 집값이 폭등하자 큰 면적을 차지하는 피아노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각 가정은 이 사치품을 팔아치우기 바빴다. 안마의자들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