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3.

1998년 두 연구원의 대결, 그리고 18년 뒤.

 
 
위 기사는 오늘로부터 정확하게 18년전에 경향신문에 실린 1998년 2월 14일자 기사이다. 이미 알다시피, 98년부터 향후 10년간 주요 거주지역의 집값은 3배, 일부 인기 지역은 그 이상으로 폭등했다. 인구밀도가 다른 나라들을 두고 집값대비 GDP, 시가총액, 소득 등을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멍청한 분석인지는 예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저 기사에서 언급한 두 연구원의 이후 다른 삶이다.
 
향후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주장한 감정평가연구소의 이성영 연구원은 자신의 전망과 다르게 집값이 큰 폭으로 상승하자,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주장을 "집값은 떨어져야 한다"로 바꿨다. 검색해 보니, 현재 그는 연구소를 나와, 토지정의시민연대, 토지 자유 연규소와 같이 '한국의 집값은 버블이다'라는 주장을 굳건한 신념으로 삼은 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20년동안 꺼지지 않는 다면 그것이 버블이 아니다. 그러나 이성영 전 연구원은 "나의 전망이 틀렸다"라고 인정하기 보다 잘못된 주장을 정의로 승화하는 일에 남은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듯 하다. 사실 지식인일 수록 '내가 틀렸소'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어려운 법이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반면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부동산 비관론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폈던(헤드라인부터 시작해서 기사본문의의 90%를 집값폭락으로 몰아간 해당 신문의 논조를 볼 때, 그는 낙관론에 가까운 견해를 피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규황 부사장은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를 거쳐 한국다국적의약산업 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현재 한국마사회의 사장이 되었다. 물론 대기업 산하의 경제연구소에 있던 그가 부동산 비관론을 주장하긴 어려웠겠지만, 어쨋거나 그는 전망이 맞는 쪽에 서 있었고, 그 결과 국가 산하기관의 수장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만약 이성영 연구원의 주장대로 집값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왔다면 저 둘의 삶은 서로 달라졌을 것이다. 디플레이션 아래서 삼성은 결코 현재의 위치에 이를 수 없을 것이고(14년전만 해도 삼성의 위치는 현격하게 낮았다. 2002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삼성 임원이 5년 안에 소니를 넘어서겠다고 말하자 전세계가 그를 비웃었다.) 이규황 부사장은 거듭되는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된 채 통닭집을 운영 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디플레이션이 왔다면 이성영 연구원의 삶은 매우 순탄 했을것이다. 안정적 직장을 가진 그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올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일본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디플레이션 아래에서는 정부로부터 고정급여를 죽을때까지 받는 공무원들이 최고의 승자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한국은행 공무원들이 나라를 디플레로 몰아넣고 싶어 안달이 난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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