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2.

나는 자본주의 할께 너희는 사회주의 해

또 좌파 정치인이 서민 유권자들을 배신했다. 그들은 진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진보의 가치를 수도 없이 배반했으니 그냥 좌파라고 하자. 굳이 내가 손가락 아프게 일일히 사례를 열거하지 않아도 내로남불이란 네 글자만 네이버나 구글에 검색하면 무수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조국은 그 정점에 있다. 입으로는 사회주의를 외치면서 자기 돈은 사모펀드에 넣는 기행을 보여준 그는 인지부조화를 극복한 초인에 가깝지 않은가. 아마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조국과 그의 아내를 알았더라면 감히 그정도 실력으로 서울대 문서위조학과를 운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성적도 안 나오는 딸을 의대에 밀어넣으며 자신의 능력이 형법이나 정치가 아닌 대치 은마사거리 학원가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니 여의도에 헷지펀드를 차리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조국과 같은 좌파 정치인들의 스탠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자본주의 할테니 너희는 사회주의를 하렴. 자신들은 뇌물을 받고 석연치 않게 국영사업을 수주받고 탈세를 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복지를 줄테니 세금을 내놓으라고 외친다. 공부도 못하는 자기 자식을 이리저리 힘써서 의전에 보내는 것은 자식사랑이고, 흙수저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연대 고대에 가면 미래의 기득권이라며 대학을 없애겠다고 협박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유독 좌파 정치인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어째서 좌파 정치인들은 서민 지지자들을 배신하는가.

그 근본적 원인은 애초에 좌파 정치인이 서민이 아니라는데에 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해있다. 정치는 돈과 조직이 있어야 가능한데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뛰어들 수 없지 않은가. 이는 공식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정당별 국회의원들의 평균 자산을 보면 민주당이 약 55.2억원으로 가장 많고 한국당이 29.8억원으로 그 다음을 차지한다. 심지어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의당의 국회의원들 역시 평균 약 5.2억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마저도 대한민국에서 상위 15%안에 드는 상류층이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재래시장에 방문해 코다리무침을 맨손으로 집어먹고 상인들이 주는 쌀막걸리를 거하게 들이키지만, 저녁이 되면 자신의 짙게 선팅된 검은색 에쿠스를 타고 로얄 살루트를 마시러 워커힐 호텔로 향한다.

그렇게 서민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게 속는다. 배우 류승룡이 영화에서 가난한 경찰역할을 해서 인기를 끌어도 세트장을 나서고 나면 벤츠를 몰고 십수억짜리 주상복합에 살듯, 서민 정치인들도 그 "서민정치인"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을뿐 그들의 실제 삶이 꼭 배역과 일치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윤리기준은 딱 거기에 머물러 있다. 마치 프로레슬링이 다 짜고 치는 쇼지만, 관객들에게 쇼라는 것을 들키지만 않으면 돈을 벌듯 좌파 정치인들도 정말 진짜 같은 연기를 잘 한다면 자신은 도덕적으로 별 흠결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타 여권인사들의 조국 옹호발언에서도 들어난다. 일례로 유시민은 젊은세대가 엄친아 조국을 시기해서 화가 난 것이라고 분석하며 2030대의 화를 돋궜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를 수 있나. 대중이 유영철에게 분노하는 이유가 '다들 사람을 죽여보고 싶은데 못해봐서 질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 역시 살인자일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유시민, 손혜원, 이재명, 박원순의 옹호발언의 기저에 깔린 전제는 다음과 같다, "조국의 도덕성에는 문제가 없다, 우리 사회지도층에게 이정도는 보편적인 것 아닌가."

젋은세대와 좌파정치인들 간의 인식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스크린 상에서는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여배우가 강남의 모 클럽에서 예거밤을 연달아 들이키고 몸을 흔드는게 디스패치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결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딱 그 심정으로 조국 역시 스스로도 정치인으로서 내뱉은 트위터 대사와 실제 삶이 일치하지 않아도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청문회에서 그의 억울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라. 아마 그의 굳게 다문 입술 너머에서는 "내가 법무부 장관만 되면 나는 무죄가 될텐데 왜 이 가재, 게, 붕어, 개구리 새끼들이 지랄일까" 라는 불평이 꾹꾹 눌러 숨겨져있을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태도는 여느 정치인에게나 다 있다. 선거철이 되면 수십조의 재산을 가진 정몽준도 고시원에 찾아가고 앞치마를 두른채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주고 나경원같은 엘리트도 동네 수퍼마켓을 찾아다니며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하지만 그들이 타겟으로 노리는 5060대 유권자들은 그것이 하나의 쇼라는 것을 아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경험이 적은 2030는 이게 진짜인 줄 안다. 과거 조국이 트위터에 입시제도와 강남집값을 비난할 때 젊은세대는 "그는 정말 다르다"고 외치며 좌파정치인들을 지지했지만 세상에 나도 저들과 똑같소, 라고 하는 정치인을 봤나. 장충동 족발골목에 가면 다들 자기네가 원조라고 써붙이듯이 그들도 다 똑같이 자신 만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다만 좌파정치인들의 메소드 연기가 순진했던 2030대들에게 좀 더 어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2030대의 표를 꿀꺽 삼킨 운동권 정치인들은 그들에게서 먼저 집을 빼았고(링크), 잡을 빼았고(링크), 이제는 희망마저 빼앗고 있다.

 
그런 위선과 배신은 좌파정치인들의 핵심 지지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위는 갤럽에서 공개한 가장 최근의 국정지지도 자료인데 흥미로운 사실을 두가지 발견할 수 있다. 첫번째는 바로 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가장 위하는 척 하는 계층, 자영업과 블루칼라, 20대, 저소득가구(빨간색)가 현정부에 불만이 가장 많은 집단이란 것이다. 소주성의 첫 희생자인 그들은 운동권 좌파정치인들의 설익은 정책들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두번째 흥미로운 것은 정책실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계층, 정부의 괴상한 정책 때문에 망하지도, 짤리지도 않고 더운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면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신입사원들에게 자기 집값 자랑하는 사람들, 3040대 화이트칼라 상류층들이 현 정부의 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사실이다.(파란색) 잘사는 사람이 지지하고 못사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정부. 한국 정치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이 표를 보여주면서 현 정부의 정치성향이 어느 쪽일 것 같은지 묻는다면 그는 아마 "뭐여 당연 꼴보수 아녀?"라고 대답하지 않겠는가.

결국 현재의 정치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을 대상으로 사회적 실험을 거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3년간 장하성같은 패션좌파 정치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괴상한 정책을 써서 서민들의 삶을 개차반으로 만들어놓고는,  "허허 이게 안되네"하고 돌아서는데, 그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영업자 무직자 빈민층을 내려다보는 저 화이트칼라 40대 중상류층들은 그래도 이게 맞는 길이라며 그들의 비명소리를 외면한다, 아니 입을 막는다, 아니 사다리를 부숴놓고 그들을 발로 꾹꾹 밟아 수렁으로 더욱 깊게 밀어넣는다. 과연 이게 진보정치인가? 퍽이나. 퍽유. 윤동권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레닌이나 마르크스가 이를 봤다면 유산계급인 그들의 대가리를 망치로 후려쳐서 부쉈을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분노해야한다. 정치를 잘 짜여진 연극이라고 생각하는 저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야한다. 자신들이 이제 기득권의 위치에 올라섰으면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낸 다음 서민들과 하층민들의 분노와 지지를 끌어다 자기 배를 더욱 불리는 그 비위와 부패에 더욱 역겨워하고 분노해야한다. 자기 자식에게는 안 먹이는 똥을 서민들보고 퍼먹으라고 강요하는 정치를 당장 그만두게 해야한다. 손혜원의 부동산투자, 문준용씨의 교육부 사업 수주, 김제동의 시급 천만원 짜리 MIC, 주진우 기자의 명품 발망 자켓, 그리고 조국의 사모펀드 투자. 그들은 모두 개인의 삶에서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철저하게 쫒으면서도 대중에게는 사회주의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소득주도성장, 한반도운전자론, 부동산정책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한 정책들에 당사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어떤 책임을 졌나. 소주성을 주장한 장하성은 주중대사가 되었고 외교정책을 총괄한 문정인은 주미대사로 추천되었다. 부동산 정책을 망친 김수현은 사회수석에서 정책실장으로 승진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략공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피의자여야 할 조국이 사법부와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부 여당 지지자들은 그 개혁이 자신들에게 유리할거라 생각하며 환호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주성이, 외교정책이, 부동산정책이 그 지지자들을 엿먹인 것울 있었나. 서민이 아닌 그들이 이끄는 이 사법개혁도 당신네들 좋으라고 하는게 아닌데 왜 박수치며 좋아하는가.

박정희는 생전 대중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시골에서 주전자로 막걸리를 들이키는 사진을 종종 공개했다. 그리고 몇몇 지자자들은 아마 깡촌의 촌놈이 이리저리 출세해 대통령까지 되었다는 성공 신화에 매료되어 그를 지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최후의 만찬에는 주전자와 막걸리 대신 심수봉과 조니 워커가 있었다. 이처럼 상류층인 정치인들은 가난마져 훔쳐다 서민들의 정치적 지지를 가져다 배를 불린다. 사실 이는 사람과 정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흔하게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에겐 사회주의를 강요하면서 본인은 자본가로 사는 그 이중성은 절대적으로 해롭다. 바라건대 서민 코스프레에 속지 말지어다. 당신의 빈티는 그들의 빈티지와는 결이 같지 않을지니.

2019. 9. 9.

miscellaneous ideas for my own

  • 재무제표를 분석하다 보면 대개 밑바닥에 miscellaneous라고 표기된 항목들을 발견하게 된다. 회사의 경영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너무나도 작고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그런저런 활동들. 그런 하찮은 것들에 회계사, 재무담당자들 그리고 투자자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모두 뭉뚱그려 miscellaneous profits/expenses라고 표기한다.
  • 하지만 신중한 투자자라면 이 항목들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이따금씩 회사가 숨기고 싶어 하는 행위들의 단서가 그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불법이든 편법이든 그 무엇이든. 그리하여 때로는 매출액이나 EBITA가 아닌 바로 이 항목에서 그 회사의 진짜 본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분석하고 투자하고 투기하며 그로 인한 결과에 웃고 울지만 그것들이 내 본질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하루종일 돈을 벌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사람을 연기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는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그 날카로운 간극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단지 돈, 혹은 권력, 혹은 명예를 좆느라 그 마찰음을 외면할 뿐.
  • 그래서 나는 아무도 모를 이 곳에 진짜 내 생각들을 남기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내 실명을 달고서는 아무데서도 할수도 없는-사실 별 쓸모도 없는 그저 그런 잡다한 이야기들. 하지만 나에게는 경제와 시장을 예측하는 것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이 별볼일 없는 생각들이 더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대개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한, 철저히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paint by Saul Steinberg

2019. 9. 8.

희망의 가격

로또를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45개의 숫자 중 6개를 맞춰야 상금을 지급하는 로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바보같이 비싼 상품이다. 로또의 당첨확률은 800만분의 1보다 더 작은데*, 이 바늘구멍을 뚫고 당첨되었을 경우의 상금은 전체 매출액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서 세금을 떼고 나면, 실제 수령액은 매출액의 1/3로 줄어들게 된다. 수학적으로 1천원짜리 한 장의 기대값이 약 333원인 셈이니, 로또는 내재가치의 3배나 되는 증권이나 다름없다.

물론 적정가치의 10배 100배에 팔리는 주식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식들은 애초에 내재가치를 계산하기 어렵지 않은가. 게다가 잡주는 일시적으로 폭등하기도 하지만 결코 과대평가 수준에 장기간 머물수 없다. 하지만 로또의 기대값은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확정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적정 가격의 세배라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보다 더 안정적으로 더 비싼 상품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바보들만이 로또를 산다고 생각했다.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비싼 프리미엄을 내고 이걸 사나. 아무리 얼빠진 동네 바보라도 "돈놓고 돈먹기, 천원 내고 삼백원 먹기"라고 외치는 야바위꾼의 테이블에 앉지는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난 10여년간 나는 이 업계의 수백억대의 자산가들이나 명문대 박사학위를 사진 영재들이 로또를 사는 것을 보았다.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도,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도 로또를 산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희망을 필요로 하고 부자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으스대며 수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늘 부족함을 느낀다. 사람은 원래 만족을 모르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수입이 큰 만큼 지출도 크기에 가족들을 위해 이런 저런 비용을 모두 빼고 남는 돈도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나면 오늘의 나를 위한 돈은 몇 푼 안남게 된다. 당신의 연봉이 5천이든, 5억이든, 50억이든, 다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정, 연봉 50억은 솔직히 장담 못하겠다.) 해가 진 뒤 우리 직장인들의 삶은 다 비슷하다. 연봉 5천의 김과장은 3호선을 타고 연신내로 돌아갈 터이고, 연봉 5억의 대니 킴은 포르쉐를 몰며 타워펠리스로 향하겠지만 집에 도착한 그들은 똑같이 윗집 남편, 아내 친구 남편, 딸내미 반장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좌절한다. 서른살이 넘으면 삶의 테두리가 어느정도 선명해지고 자신의 미래도 적당히 그려지지 않는가. 그 추세에서 벗어나려면 한 번의 모험을 해야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다. 무섭다. 따라서 작은 비용으로 삶을 바꿔줄 희망을 찾게 된다. 그 마음 만큼은 부자도 똑같지 않을까.

게다가 로또는 그런 희망을 독점한 유일한 상품이다. 천원의 소비로 인생이 바뀌진 않는다. 심지어 개폭등할 알트코인을 찾았다고 해도, 고작 천원어치를 사면 당신의 미래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다. 뭐 친구들에게 술 한번 사고 정말 운좋으면 좋은 시계도 하나 살수 있겠지. 천원으로는 이젠 컵라면이나 김밥한줄도 사먹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 돈으로 로또를 한장 사면 수십억 어치 상금을 받을 꿈에 부풀어 한주를 지낼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나. 국가는 이런 극단적 페이아웃 구조를 지닌 상품들을 사행성이라는 명목으로 금지하면서도 뒤돌아서 열심히 복권을 판다. 하기사 담배도 인삼도 그리고 카지노도 마찬가지지. 로또는 그렇게 희망을 독점하고 있다.

공급이 제한적인 독점시장의 가격은 늘 균형점을 넘어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렇게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3배의 프리미엄이 붙어도 불티나게 팔리는 로또는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내일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가 지나고 나면 불꺼진 업무지구 내 조그만한 한 편의점에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대형 금융사의 등기이사도 청소부도 계산대 앞에 나란히 서서 서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눈 뒤 들뜬 마음으로 여섯개의 숫자를 세심하게 고른다. 누구는 사랑하는 이의 생일을 찍을 것이고, 누구는 자신만의 행운의 숫자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그 숫자들 만큼이나 당첨금을 어떻게 쓸지 그 꿈도 다양하겠지. 그렇게 제냐 수트와 아식스 츄리닝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들뜬 마음으로 각자의 꿈을 한장씩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순간 만큼은 모두가 평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희망의 값어치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소중한 법이니까. 부자에게도, 또 빈자에게도.



*1/45C6=8,145,060

2019. 9. 3.

박서보와 국립현대미술관

우리나라의 여러 미술관 중에서도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을 가장 좋아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국립]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품위와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대중들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는 그 자상함에 있지 않을까 한다 . 그리고 지난달 막을 내린 박서보의 전시회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전시회는 특이하게도 작가의 그림을 역순으로 전시했는데, 아마 이는 아래 설명할 모종의 이유 때문이리라.

미술에는, 특히 그 감상에는 정답따윈 존재하지 않으니 이를 내 멋대로 해석해보려 한다. 1950/60년대의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그랬던 것 처럼 박서보 역시 황폐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서구를 동경하는 분위기에서 자랐을 것이다. 한끼를 먹으면 다음 끼니는 굶어야 했고 자고 일어나면 동네의 누군가가 죽어나가던, 우리가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머리 노오란 백인들의 문화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리라. 대다수의 1세대 한국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서구의 화풍을 모사하는 것으로 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술은 모방할 수 있어도 영혼은 베낄 수 없어 그런 것일까. 다른 선후배/동료 작가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내적 갈등을 겪은 끝에 전통적 화풍으로 회귀한다.

내가 금융에 적을 두기 전, 고 이만익 선생님을 뵙고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서양화풍을 곧잘 따라해 '너는 미술에 재능이 있다' 라는 말 한마디에 겁없이 파리로 떠났지만 거기에서 자신은 개성이 없는 아시아 변방의 한 그림장이에 불과했다고. 그러다 결국 그는 한국의 전통미술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한다. 박서보 역시 이와 비슷한 단계를 거쳤다. 그는 1960년대 초기 파리에 머물며 당시 유행하던 엥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형질(原形質) No. 18-64, 1964년 작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한 한계를 느꼈으리라. 막걸리에 파전을 즐기던 우리가 파리의 어느 하우스파티에 초대받아 와인과 치즈를 대접받을 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 처럼, 애초에 파리지앵으로 태어나지 못했던 그 역시 어느 순간 엥포르멜이라는 단어부터 표현기법까지,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 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 그의 작품에선 점차 한국적 정취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유전질(遺傳質) No.2-68, 1968년 작
그가 단색화로 나아가기 전, 당시 유행하던 팝아트적인 느낌에 오방색을 입힌 60년대 후반의 작품은 그런 내면의 갈등을 넌지시 비추고 있다. 스윙스같은 토종 랩퍼들이 아무리 흑인 흉내를 내고 혀를 돌려 꼬아봐도 빌보드 힙합 레이블에 이름을 올리기는 커녕 흉내쟁이에 불과한 취급을 받듯, 그 시절 파리에 머물던 1세대 화가들도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수가 한국 고유의 미적 세계로 회귀한다. 아마 이 작품은 그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묘법 No.991004 / No.000321, No.000327
이후 그는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를 이용해서 자신만의 단색추상화 세계를 구축한다. 더 나아가 작품의 재료로 자연친화적인 닥종이를 사용하면서 단순히 색채로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그는 더욱 깊게 전통적 미학의 세계로 파고든다. 그렇게 그는 한국의 단색화의 대부로 불리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작가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묘법(描法) No.180503, 2018년 작
묘법(描法) No.071208, 2007년 작
앞서 말했듯이 이 전시는 독특하게도 작가의 작품을 시대적 역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한국은 더이상 세계 예술계에서 듣도 보지도 못한 무명의 국가가 아니라 작지만 한편으론 선명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은 신생국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예술가들은 대중예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이나 클래식 그리고 무용에서도 모방을 넘어 그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덕에 BTS가 개량한복을 억지로 입고 춤을 추지 않아도, 싸이가 자신의 신곡에 자진모리 장단을 넣지 않아도, 조수미가 '내 발성의 힘은 김치덕분'이라는 뭐 그런 국뽕적 요소를 강조하지 않아도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동시대 문화와 잘 어우러진다. 그런 오늘날의 눈높이로 볼 때 1세대 화가들의 전통적 미학에 대한 집착은 살짝 고루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칠줄 모르는 수행자 역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한번 자신의 화풍에 변화를 주었다. 그는 형광색이나 밝은 파스텔 톤, 혹은 도발적인 핑크 등 전통적인 한국의 색채에서 벗어나 마치 마크 제이콥스 같은 명품브랜드들과 콜래보레이션이라도 할 것 같은 세련된 색채로 자신의 작품 영역을 확장했다. 여든 여덟살의 노작가의 변신 치고는 꽤나 파격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만큼이나 시계열의 강박에서 벗어나 세련된 현대작들을 먼저 배치하여 관객의 흥미를 이끄려 노력한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자들의 신선한 발상에도 박수를 보낸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한 그들은 이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박서보의 전성기 시절의 작품들, 칙칙하고 올드하지만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앞에 배치하고 싶은 유혹들을 수도 없이 느꼈을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정석적인 전시회의 공식에서 벗어나 아흔을 바라보는 작가의 현대적인 감각의 새 작품들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더 매력을 느끼길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요란한 단어들의 조합 없이는 예술을 설명하지 못하는 일부 미술평론가들이나 불친절한 작가들과는 달리, 그들은 우아하면서도 친절한 태도로 손을 내밀어 우리를 현대미술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MMCA, ♡MMCA

2019. 9. 2.

분노하지 않는 자는 조국(祖國)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사진출처: 중앙일보 (링크)
  •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믿기지 않아 내가 느끼는 감정이 경악인지 분노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는 오늘 11시 경 자신에게 쏟아진 각종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하겠다며 여당에 통보했다고 한다. 정치부 기자들과 법무부 출입 기자들은 기존 일정을 바꾸지 못해 하루 연기해줄 것을 주문했지만 조 후보자는 기자단의 요청을 거절한 채 셀프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이 간담회에는 민주당 출입기자들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법부는 직접증거로 판단하지만 대중과 유권자는 정황증거만으로도 정치인들을 재단한다. 조국은 이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그저 폴리페서인 줄 알았던 시절, 본인 스스로가 수많은 보수 정치인들을 정황증거로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은 자신의 수많은 혐의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정말 억울하고 대중의 분노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왜 이런 비겁한 방식으로 해명에 나서는가. 우리는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지 않는 소인배 모략꾼의 추악한 면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어제 올린 글에서 그를 조로남불이라고 조롱했지만 사실 내로남불은 그의 수많은 악덕 중에서도 가장 하찮은 것이다. 그에게는 범죄 혐의가 짙다. 조민 양이 논문을 위조한 것은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세상 어떤 교수가 고딩이 찾아와서 제1저자를 시켜달라는데 그걸 들어주겠는가. 이것은 명명백백히 조국 후보자의 혐의인데 그 가족간 범죄를 밝히는 것이 패륜이라면 여당 대표는 당장 정유라한테 달려가 무릎꿇고 패륜의 죄를 빌어라.
  • 그의 해명 중 가장 말이 안되는 부분은 사모펀드에 대한 논란이다. 설정금액이 74억이라는 조항은, 말 그대로 74억을 넣겠다는 말이지 그 한도 이하에선 지 맘대로 넣을수 있는 조항이 아니다. 세상에 그런 계약서가 어디있나. 회사가 직원과 계약을 할 때 연봉이 1억이라고 하면 그 이하로 아무 금액이나 줘도 되는 경우를 보았는가. 여당의원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예로 들어가며 국민들을 병신취급하는데 세상에 그렇게 돈을 굴리는 투자자는 없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그런 옵션 조항을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럼 그 내역이 계약서에 소상히 명시되어있어야 한다. 참고로 그 사모펀드는 조국과 일가친척의 돈을 받아 관급공사를 수주했는데 최순실이 운영한 K스포츠재단과 무엇이 다른가.
  • 이러한 의혹에 대해 조 후보자는 사모펀드 자체를 잘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그럼 둘 중 하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금융상품에 전재산을 몰빵하는 등신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범죄자거나. 둘 중 어느쪽이든 법무부장관 자리에는 맞지 않는다. 그가 서야할 곳은 기자간담회도, 국회청문회도 아닌 바로 검찰의 포토라인이다.
  • 내가 더욱 분노하는 것은 국민을 대하는 그와 여당 그리고 정부의 태도이다. 과연 조국은 이 괴상한 간담회가 중도층을 분노케 할줄 몰랐을까? 아니 그는 분명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수를 차지하는 중도 대중을 버리고 소수 여당 지지자들의 신임을 굳히는 길을 택했다. 자신의 향후 거취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당 친위대에게 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가, 또 여당과 청와대가 만약 민주적 정당성에 무게를 뒀다면 야당지지자는 물론이고 중도층에게 공분을 일으키는 이런 해괴한 방식의 기자회견을 기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지지하는 광신도들만을 국민취급하겠다는 저 태도는 반민주적이며 다분히 독재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 과거에도 이런 분노를 느낀적이 있다. 3년 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뜨거운 화두였을때 불편한 질문을 던진 기자를 매섭게 쏘아보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내가 그때 분노한 이유는 좌파빨갱이라서가 아니라 권력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국 전 민정수석에게 분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우파틀딱이라서가 아니다. 위정자가 당신을 개돼지 취급하는데 분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개돼지나 다름이 없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련다. 조국(丙申)에게 분노하지 않는자는 조국(祖國)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2019. 9. 1.

흑석 김의겸 선생과 조로남불

아직도 끝없이 터져나오는 조국의 지저분한 과거를 보며 나는 김의겸을 떠올렸다. 나이 쉰 다섯에 전세금과 아내의 퇴직금, 그리고 은행 대출을 온통 끌어다 재개발 상가에 몰빵하신 고독한 승부사, 흑석 김의겸 선생. 물론 그도 내로남불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한때 재개발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고위직들의 부동산투기에 분노하던 그 언론인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관사에 기어들어가 흑석동에 자신의 여생을 베팅했다. 무엇이 좀스러운 언론인으로 오십평생을 살아온 그를 흑석동의 복덕방으로 이끌었을까?

2017년 언젠가의 그를 헤아려본다. 오랜 투쟁끝에 청와대에 모인 과거의 운동권 진보 동지들. 김수현, 조국, 김상곤, 김현미, 장하성 등. 그들과 웃으며 사랑채를 나서 뜰을 걸으며, 보통의 중년들이 그러듯 그들도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은 나눳을 것이다. 장 실장, 이번에 잠실 집값 많이 올랐다면서? 쏠쏠하겠네? 허허 뭐 다 그렇지, 김 장관 김 실장님들, 부동산 정책 살살 좀 해주세요~ 우리 집사람 걱정이 많아요, 허허허. 뭐 그리 걱정하십니까. 저도 과천 재건축 보유자입니다. 하하하. 뭐 이런 대화가 계속될 동안 그는 대범한 척 함께 껄껄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쓰렸을 것이다. 가재, 게, 붕어, 개구리들의 지지를 받아 도착한 청와대에서 진짜 흙수저는 그 하나 뿐이었다. 심지어 집을 파시라고 외치던 김현미도 집이 두 채라 회의실 저 구석에서 복덕방에 전화를 걸고 있는 것 아닌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러 도착한 청와대에서 혼자 가재나 붕어같은 해물탕 식자재 취급을 받던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대개 많은 집에서는 아내가 집을 사자고 독촉하고 남편은 만류하다 꼭 사단이 난다. 거봐요, 집은 여자 말 듣는거라니까. 우리 아버지들은 그렇게 평생을 시달려왔다. 그도 별반 다를 바 없었으리라. 적폐를 청산하고 가진자들을 혼내 주기 바쁜 그를 두고 그의 아내는 바가지를 긁었을 것이다. 지난번 청와대 부부동반 모임에 가보니 다들 강남에 집 한두채 씩 떡떡 사던데 당신은 뭐냐, 조 수석님은 뭐 이상한 펀드에 수십 억을 넣고 심지어 대통령 아들도 국가사업으로 크게 해먹던데 당신은 도대체 뭐하러 청와대 대변인을 하고 있는거냐. 어허 이 여편네가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어. 그게 그런거 하라고 만든 자린줄 알어? 그럼 뭐하려고 만든 자린데? 당신 빼고 다 부동산 하나씩 끼고 있는거 알기나 해?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아내는 문을 쾅 닫고 나가 문간방에서 잠들었을지 모른다.

어느날 아침, 벌개진 얼굴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김현미 장관의 뒤에서 호갱노노 앱으로 부동산 실거래가를 검색한 뒤 환하게 웃는 조국 민정수석과 장하성 정책실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깨닫는다. '저들이 왜 부동산을 잡아.. 이대로 가단 나만 바보되는거야..' 그날 그는 고교 후배를 만나 아구찜에 소주를 너댓병 시켜 잔뜩 마시고선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도착한 뒤, 자신을 흘겨보는 아내를 붙잡고 그는 자신의 계획을 소상히 털어놓는다.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역시 내 남편 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며 다음날 학교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정산받았다. 그 역시 다음날 청와대 관리자를 불러 관사에 비는 방이 있는지 확인한 후 가족들을 모두 이주시킨 뒤 전세금을 돌려받는다. 청와대 대변인이 가족들과 함께 경호원들이나 사는 관사에 살다니. 모양새가 좀 빠지긴 하지만 뭐 어떠냐. 금수저들 사이에서 혼자 흙수저나 물고 있다 5년 뒤에 쫒겨나는 것 보다야 낫지.

그렇게 그는 아내의 퇴직금과 전세금을 가지고 복덕방으로 향한다. 이보소. 이 동네서 가장 좋은 물건이 뭐요. 어이구. 테레비죤에서나 보던 하늘 같으신 청와대 대변인께서 왕림하셨는데 누가 그를 속일 소냐. 복덕방 주인은 벌벌 떨며 콤퓨타를 켜고 리스트를 쭉 뽑는다. 이건 얼마요? 복덕방 사장은 오른 부동산이 자기 죄라도 된 양 어쩔줄 몰라하며 대답한다. "이,이십오억입니다만." 망할. 아직도 모자른다. 이 낡은 상가가 나같이 훌륭한 언론인도 사지 못할정도로 오르다니. 이 더러운 세상. 하지만 그는 기름기 좔좔 흐르는 조 수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x발 조 수석 딸은 이번에 의전 보냈다던데 내 자식을 가재 게 붕어로 살게 할순 없어..." 그는 얼마 전 술을 함께 마신, 은행 지점장으로 있다던 고등학교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그런데 아뿔싸. 김수현 그 양반이 발표한 뭐시기 정책에 걸려 대출이 안나온댄다. 제길. 어쩐지 생긴것 부터 재수가 없더니만. 그의 침묵에서 무엇인가를 읽었는지 그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저기.. 하지만 형님께서 힘을 좀 써주시면 제가..." 그 후배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김의겸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후배의 은행은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넘겨 대출을 해주고 청와대 대변인은 흑석 김의겸 선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윽고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호되게 털린 김의겸 선생은 짐짓 의연한 태도로 대중에게 감성팔이를 시도해본다. 노모를 모시려고 했다, 이건 아내가 했다. 하지만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작년까지의 그가 그랬던 것 처럼 서민들도 다 한번 씩은 복덕방에 들렀다가 한숨만 지으며 나온 적이 있지 않은가. 다만 그들에겐 들어갈 관사와 복덕방 주인을 움츠러들게 할 권세, 그리고 전화 걸 은행지점장이 없었을 뿐이지. 대중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았고 김의겸 선생은 결국 대변인 직을 사퇴했다. 청와대도 버리고, 아내도 팔고 노모를 팔 지언정 흑석동 재개발은 못팔겠다는 그의 의지에 화답하여 올해 여름부터 부동산은 가파르게 반등했다.

최근 온갖 추문과 범죄혐의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작태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올해 초 매섭게 공격당하던 그는 아마도 기자회견 중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우 열뻗쳐서 정말, 그래 시발 나도 용되고 싶어서 재개발 샀다 왜! 근데 너네 이 중에 내가 가장 깨끗한건 아냐? 내가 김수현처럼 재건축 조합원이면서 지꺼만 피해서 부동산대책 발표하기를 했어, 김현미처럼 토지형질변경을 해서 농지에 건물을 올렸어. 어우 너네 조국은 어떤줄 알어? 재 딸 뭐하는지 봤어? 야 시발 내가 제일 깨끗해!"

무엇이 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온 그 쉰 다섯의 장년을 복덕방으로 밀어넣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위의 대화는 전적으로 본인의 상상력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0년 예산안 평가, 홍남기의 MB화(★★★★☆)

지난 29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513조 5천억원으로 확정하여 오는 9월 3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예년보다 약  9.3% 늘어난 규모로 R&D, 에너지(환경) 그리고 SOC투자지출을 대폭 늘렸다. 나는 과거 포스팅에서 경제불황이 온다면 한국은 과거 리만사태때보다 더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링크), 만약 국회에서 이 예산이 통과된다면 그 예측은 빗나갈 것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재정정책은 어디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지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경제침체 상황에서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지, 정부가 기가막힌 사업에 돈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바보같은 사업에 돈을 퍼부어도 그 돈을 벌어들인 약싹빠른 사업가들은 현명하게 돈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케인즈경은 아예 땅을 파서 돈을 묻으라 했다.) 따라서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만 본다면 정부의 재정적자 폭만 보면 되지, 구체적 예산안을 뜯어볼 필요는 없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내년도 적자재정은 GDP의 약 1.6-1.9%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을 뛰어넘는 가장 공격적 재정지출이 될 것이다.

이 공은 마땅히 홍남기에게 돌아가야할 것 같다. 지난 국회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그는 내년도 예산안의 첫자리가 "5"가 될 것이라며 언질을 주긴 했지만, 그가 실제로 가져온 숫자는 대범하게 500조 선을 훌쩍 넘긴 513.5조였다. 나는 그를 무색무취의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홍남기를 재평가해야할 것이다. 그는 MB와 강만수 못지 않게 공격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

재정건정성에 집착하는 일부는 방만한 예산을 지적하며 국가부채수준을 운운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적은 세가지 이유에서 틀렸다. 첫째,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논할 때가 아니다. 재정건전성은 경제가 건강할 때 관리하는 것이지 위기상황에서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올해 발표되는 모든 데이터는 단 한가지도 빠짐없이 지난 10년 이래 가장 심한 경기침체를 예고하는데 지금 부채비율을 운운하는 것은, 마치 트럭에 치여 피를 줄줄 흘리는 응급환자를 두고 혈중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으니 살을 빼라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나중에 따지자. 둘째, 한국의 공공부채는 공기업의 부채를 포함하더라도 약 GDP의 70%선으로 선진국이나 OECD평균에 비하면 그닥 높지 않다. 다시말하지만 국가부채가 낮은 나라는 탄자니아나 북한, 고조선같은 나라들이 가장 낮다. 우리가 1998년에 겪었던 사태는 달러표시 부채의 상환이 문제였지 그 당시에도 정부는 원화표시 부채를 갚는 데엔 아아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셋째, 재정건전성을 대하는 대중의 기본 시각은 부채가 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이 존재한다. 폐쇄된 시스템 아래서는 한 사람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다. 내가 은행에서 백만원을 빌린다는 것은, 누군가 은행에 백만원을 예금했다는 것과 같다. 즉 한국의 대외부채/자산이 같다면 현재 우리가 진 빚은 지금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 것이지, 우리들의 후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폴 크루그먼의 글을 추천한다.(링크) 부채는 결코 악이 아니다.

물론 좋아하기는 아직 이를 수 있다. 국회는 이 수퍼예산을 반드시 반대할 것이고, 특히나 재정건전성에 변태적으로 집착하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예산안을 축소하려고 들 것이다. 현재 여야는 세가지 이슈, 1. 조국 임명 2. 선거법 3. 내년 예산안 대립하고 있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1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2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야의 합의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양보할 카드는 바로 3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예스맨에 불과한 줄 알았던 홍남기가 이런 공격적인 예산안을 준비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앞서 그는 차기 총리로까지 거론되는 김현미의 분양가상한제를 유예시키는 등, 경제부총리로서의 목소리를 점차 내고 있는데 부디 현 정부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바란다. 애초에 우리가 청와대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은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바라기 때문 아니었던가.


[다만 별을 4개만 준 것은 세입계획에서 법인세의 감소를 가계에 대한 약 8.1조의 세수 증가로 채웠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인 확장적 예산은 감세안을 동반한 공격적 적자예산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