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31.

진짜 진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입니다. 똑바로 읽어도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하지만 내가 이상한 변호사라고 불리는 것은 자폐가 있거나 행동이 어눌해서가 아닙니다. 자폐아라고 하지만 나는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니까요. 한번 보기만 해도 모두 기억하는데 어떻게 일반인들이 저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중간고사든 변호사 시험이든 제게는 오픈 북이나 다름없어요. 게다가 저는 무척 창의적인 변호사에요. 신참인데도 불구하고 경력이 십 년이 넘는 베테랑 변호사들마저도 간과하는 쟁점을 파악하고 즉흥적으로 법정에서 변론에 나서도 훌륭하게 해내는 슈퍼스타입니다. 필드 위에 손흥민이 있다면 법정에는 저 우영우가 있는 셈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무척이나 모순적인 존재니까요. 아마 여러분들도 느끼고 있을 거에요. 제 능력은 로스쿨에서나 변호사 시험을 치르는데 대단히 유리해요. 이건 장애가 아니라 사실상 초능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어쩌면 서울법대 창설 이래 최고의 천재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약간의 핸디캡이 있습니다. 펭수를 좋아하던 김정훈 씨나 지적 장애를 가진 신혜영 씨에 비하면 아주아주 사소한 장애이지요. 게다가 사회생활도 잘하고 직장에서는 최고의 능력자입니다. 또 얼굴까지 아주 예쁜 변호사입니다. 그래서 사내연애도 합니다. 회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직원이랑요. 심지어 사실 나는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이지요. 천재도 아니고 로스쿨도 못 가고 회장님 자식도 아니고 사내 훈남과 연애도 못하는 여러분들은 정말로 이런 저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십니까? 그것 참 신기한 일이네요. 아니 이 경우 이상하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존재뿐만이 아닙니다. 제 말과 행동에도 모순이 있습니다. 저는 소덕동을 관통하는 도로의 공사를 막아달라는 사건을 맡아 승소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덕동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팽나무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서로 돕고 웃는 이웃들이 어울려 지내는 아름다운 동네이지요. 그런 소덕동을 개발하겠다니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공사를 좌초시켰어요. 아주 뿌듯한 일입니다. 이제 신도시 거주자들은 교통체증에 시달릴 것이고 이미 몇 년간 진행된 공사를 정지시킨 덕에 세금도 낭비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소덕동에 거주하는 총 2513가구 중 과반이 넘는 1557가구가 개발사업에 찬성하며 보상금을 받기를 원했지만 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소덕동을 대표해서 이 일을 막았습니다. 아, 모르셨습니까? 저는 신도시에 어마어마한 땅과 건물을 가지신 최한수 이장님의 변호사입니다. 법무법인 한바다에 수임료를 내는 건 지역 유지이신 이장님이지 저 소덕동 주민들이 아닙니다. 아마 저분들은 길도 좁고 교통도 열악하고 인프라도 부족한 이 시골 동네에서 평생 사시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깡촌은 계속해서 깡촌으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물론 저라면 여기에 안 살겠지만요. 여기엔 김밥집 배민도 안되고 고래인형 까페도 없어요. 그렇게 저와 부자 이장님은 소덕동의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겠다며 어리석게도 토지보상금을 바랬던 저 1557가구의 주민들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내 사정이 되면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살던 강화도가 개발되어 친구 아버지가 보상금을 받았는데 형들이 모두 가져갔다고 합니다. 모처럼 대박이 터졌는데 그 행운을 자기들이 챙기려 하다니.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는 기지를 발휘해 그 돈을 되찾아옵니다. 네 친형들을 법정에 세우고 함정에 몰아넣어야 할 정도로 돈은 중요해요. 이건 내 돈이니까요. 돈은 매우 중요해요. 우애를 지키겠다고 돈을 포기하는건 어리숙한 바보예요. 이제 동동삼씨는 그렇게 받은 보상금으로 내 친구 동그라미에게 서울 역세권에 번듯한 신축 아파트도 사주고 비싼 도시의 물가도 걱정하지 않도록 생활비도 넉넉하게 대줄 수 있어요. 음? 지금 1557가구의 소덕동 주민들 이야기를 왜 꺼내는 겁니까? 당신은 지금 본 사건과 전혀 연관성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말 못 들어 보셨습니까?? 뒷통수 맞고 싶습니까?  

어린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는 개똥철학을 설파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참. 기억나십니까? 제가 첫 의뢰를 수임 받았을 때 의뢰인은 저를 못 미더워 했어요. 하지만 정명석 변호사님께서 이 몸이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라는 것을 알려줬어요. 그제서야 의뢰인은 저에게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궁지에 몰릴 때면 나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이라는 타이틀을 곧잘 써먹었습니다. 이처럼 간판의 힘은 대단합니다. 보기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 주거든요. 나이키나 애플이 브랜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학부 친구들과 로스쿨 동기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와 로스쿨에 왔어요. 물론 그렇게 공부해 봤자 읽기만 하면 다 기억하는 저를 이길순 없었지만요. 

어린이는 놀아야 합니다. 하지만 맨날 노는 어린이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어요. 네 그렇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될 수 없어요.(어린이 해방군 여러분들은 저 같은 천재가 아니잖아요?) 의사도 될 수 없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는 건 어려워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동네에 집을 사는 것도 힘들어요. 인스타에 멋진 사진들을 올리는 삶을 살 수도 없어요. 물론 그렇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배우들은 촬영이 끝나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로 돌아가요. 이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해도 사기 힘든 집입니다. 작가들은 "어린이는 놀아야 합니다"라는 대사를 쓰고 작업하던 노트북을 덮자마자 나서 지인들에게 전문직들과 소개팅을 좀 주선해 달라고 카톡을 보냅니다. 이왕이면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라면 좋겠어요. 물론 답장은 없어요. 시청자 여러분들도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나, 이상한 우영우가 변호사라서에요. 이상한 고졸경리 우영우. 이상한 쿠팡맨 우영우. 이상한 백수 우영우. 이런 드라마였다면 벌써 망했어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주로 세속적 욕망을 자극해요. 그걸 아주 잘합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근데 우리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우영우라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수퍼맨을 창조해놓고 거기에 장애를 한 스푼 얹은 뒤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요. 그리고 일반 장애인들이 겪지도 않을 상황을 가정해서 사회가 부조리하다며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요. 형들을 고소해서 보상금을 타내는 이야기를 하다, 돈 많은 이장 아저씨가 보상금을 받고 싶다는 동네 주민들의 의사를 묵살하는 이야기를 미화합니다. 나보고 서울대 로스쿨을 나온 천재라고 동네방네 광고할 때는 언제고, 또 곧장 자식을 서울대 보내려고 애쓰는 부모님들을 악당으로 그려요. 갑자기 판자촌이 아름답다며 재개발을 막던 박원순 아저씨나 특목고를 없애자면서 뒤로 자기 아들 둘은 특목고에 보낸 조희연 아저씨 냄새가 나요. 킁킁. 제 이름은 우영우,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지만 드라마는 그렇지 않아요. 앞에서 볼 땐 재미었는데 뒤에서 보니 제작자의 욕망과 컴플렉스를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덮어 사회에 일침을 가하겠다는 의도로 범벅되어 있어요. 정말 이상해요. 아. 그래서 제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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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 딴죽을 걸자면 한도 끝도 없지. 게다가 사회경험도 적고 이해도 얕은 작가들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철학적 빈곤이 뭐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니까. 게다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다큐가 아니다. 하지만 오락영화와 드라마를 양산하는 작가와 감독들이 자꾸 그 선을 넘나드는 시대에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만 오버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나도 그 선을 넘어 다큐라는 돋보기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들여다보련다. 

서울대 로스쿨, 젊은 직원들조차도 수 억의 연봉을 받는 로펌, 그리고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설정까지 이 드라마는 대중들의 세속적 욕망을 한껏 자극하는 장치들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매 화에서 작가는 그 세속적 욕망을 부정하는 사건들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지 않을까. 토지보상은 드라마에서 뜻하지 않은 횡재를 의미하는 클리셰나 다름없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 사건이 두 번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그 차이는 바로 관찰자의 시점에 있다. 삼형제의 난에서는 작가는 보상의 수령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고 소덕동 이야기에서는 보상금 수령자가 내가 아닌 제3자니까. 우리의 불편함은 입장에 따른 작가의 태도가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돈을 욕망하는 것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동그라미와 아버지의 입을 빌려 그 욕망을 표출한다. 하지만 수령자가 내가 아닌 타인이 되니 작가는 갑자기 도덕이라는 몽둥이를 꺼내 그들의 욕망을 매섭게 후려치기 시작한다. 마치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더 나아가 작가는 소덕동을 마치 인디언 보호구역이나 민속촌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묘사한다. 그곳에서 소덕동 주민들은 잘 꾸며진 어항의 관상용 물고기들처럼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 보기 좋도록 정겨운 시골 마을을 연출한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던가. 인디언들도, 또 구한말의 오지 주민들도 지하철과 24시간 편의점, 영어유치원 그리고 신선배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반길 것이다. 소덕동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몰락하는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주민들에게 그런 편의는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람들의 삶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치 주말에 차를 몰고 용인 민속촌을 방문한 관람객의 시선으로 #대박핫플 #소덕동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언제 다시 들릴지 모르는 그 관광지를 보존하기 위해 주민들의 미래를 나락으로 보내는 일조차 서슴지 않는다. 그런 시각은 오로지 자신의 옛 추억을 재현하기 위해 오징어 게임을 열어 455명의 지원자들을 폭력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오일남의 정서와도 이어져있다.   

작가의 모순적 시각은 드라마가 설파하는 교육관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로스쿨과 고학력 고소득자들인 변호사를 소재로 삼아 시청률을 올리면서도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과 경쟁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다. 나 역시 경쟁적인 한국 사회가 바람직한지 의문이지만, 이런 과열된 경쟁은 대중들이 가진 욕망의 결과일 뿐이지 결코 원인이 아니다. 물론 내신 5등급인 학생이 2년제 전문학교를 졸업해 소덕동 인근의 빌라에서 살며 중소기업에 다녀도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밋밋한 스토리는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다. 인기 드라마에는 마치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처럼 대중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꿈틀대야 하는 법. 그래서 작가는 스토리에 서울대 로스쿨과 고소득자들이 모인 로펌, 그리고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을 담았다. 그것들을 욕망하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으랴. 우리 모두는 같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쟁이 발생한다. 이를 부정하려면 욕망 또한 부정해야 하는데 제작자와 작가는 대중들의 그 욕망에 기생하면서도 그 결과물은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고 솔직한 우영우와는 달리 드라마 너머로 보이는 작가가 앞과 뒤가 무척이나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권위주의의 시절, 정부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창작물에 정부가 원하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넣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들이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무너뜨리면서 등장하자 되려 설득력은 반감이 되고 시청자들은 종종 그 메시지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곤 했다. 오늘날 이 이념적 강압은 진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관객들의 눈은 마치 쫑긋 세운 강아지의 귀와 같아서 작가가 완력을 쓰는 순간 그 의도를 기민하게 알아채곤 한다. 작가나 감독 혹은 배우가 이념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그대들에게도 그럴 자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평균적인 대중들보다도 교육 기간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사람들이 따끔하게 일침을 놓겠다며 송곳과 대본을 들고 사회의 이곳저곳을 푹푹 찔러대는 것은 정의감이 아닌 도덕적 우월감을 내보이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욕망이 다른 욕망을 저열하다며 훈계하는 웃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작가들은 이제라도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앉아 훌륭한 오락 TV 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드라마는 정말로 잘 만든 오락 드라마니까. 

2022. 5. 15.

찰스 폰지와 스테이블 코인

188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찰스 폰지는 동네의 한량으로 지내다 부모의 권유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는 배에서부터 도박으로 가진 돈을 모두 탕진했고 웨이터로 일하는 동안 손님의 잔돈을 빼돌리다 해고당했으며 수표를 위조한 죄로 3년간 감옥에 가게 되었다. 마피아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뜨내기 협잡꾼에 불과한 그가 어떻게 금융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을까?

결혼 후 성실하게 생계를 책임질 일자리를 찾던 그는 작은 광고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유럽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광고 아이디어를 홍보했는데, 그중 한 명이 카탈로그를 부탁하며 국제반신권(IRC)이라는 작은 증서를 하나 동봉해서 보냈다. 이는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한 회원국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우표 교환권인데 당시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유럽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국제반신권을 구매해 뉴욕에서 팔면 약 400%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점에 착안한 폰지는 곧장 두 대륙 사이의 차익거래에 나서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실제 발행된 당시의 국제반신권

그는 이 거래로 친구들과 투자자들에게 45일 안에 50%를, 3달 뒤에는 두 배의 수익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은행 이자가 불과 5%에 불과하던 시절에 무위험 차익거래로 연 400%의 수익이라니, 그의 사업 구상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지인들 역시 유럽의 친구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찰스 폰지의 말처럼 차익거래의 기회는 확실히 있었다. 왜 이 투자를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그의 사업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불과 몇 센트에 불과했던 국제반신권을 유럽에서 대량으로 매집해서 미국으로 가져와 현금화하는 비용이 너무 컸다. 게다가 모집액이 약 1500만 달러로 늘어나자 그는 거의 수 억 장에 달하는 국제반신권을 구매해야 했는데 이를 미국으로 들여오려면 거의 타이타닉 호 크기의 배가 필요했던 것이다. 애초에 이 사업은 이민자들의 용돈벌이 이상으로 커질 수 없다는 결함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사업은 더욱 번창했다. 투자자들이 거의 대부분의 배당을 곧장 재투자했기 때문이다. 찰스 폰지는 그들의 돈으로 호화스러운 생활을 지속했으며 마카로니와 와인 회사에 투자하기도 했는데 이후 법정에서 그는 여기서 수익을 내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줄 목적이었다고 증언했다. 일부 투자자들이 환매를 해도 그에게 투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욱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새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그들에게 돈을 내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기행각은 오래가지 않아 들통나고 말았다. 작은 소송에 휘말린 탓에 그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탐사보도에 나선 한 기자가 이 사업의 문제점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만약 찰스 폰지의 사업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미국에서 약 1억 6천만 장의 국제반신권이 유통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유통된 것은 고작 2만 7천 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게다가 설령 그의 사업이 온전하게 적법하게 돌아가고 있어도 그 이익은 미 정부의 이익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가만 둘 리가 없었다. 결국 찰스 폰지의 사기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이리하여 그의 이름이 금융사에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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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 코인이 화폐로 쓰이는 것, 게다가 다른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 코인이 그 역할을 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의 말을 믿으라. 가격을 매기는 일은 화폐와 금융의 영역이지 분산저장의 기술이나 알고리즘의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개발자들과 그 소수 추종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테라의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의결권을 내세우며 경제학자들과 금융가들을 기술 문맹으로 몰아가지만 진짜 문제는 그네들이 화폐와 금융시스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연일 상승하는 달러의 가치에 연동하여 UST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사실상 루나의 발행량을 크게 늘려야 하는데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루나의 수요를 유지하려면, 아니 늘리는 길은 스테이킹의 이자를 더욱 높게 올리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그들은 반대로 행동했다. 애초에 이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테라의 생태계가 더욱 크게 구축되었어도, 아니면 그들이 비트코인을 더 가지고 있었어도, 혹은 공매도 세력이 붙지 않았어도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제고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가상화폐* 시장이 다시 살아나게 된 기폭제는 코로나와 양적완화였다. 각 정부들이 코로나에 무력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며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졌으며 빠른 양적완화는 기축통화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켰다. 그런 현상은 화폐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집단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폭발적인 양적완화에도 달러는 기타 통화 대비 교환 비만 조금 하락했을 뿐 미국 정부의 채권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자산 중 하나였고 이윽고 연준이 비상조치를 거두어들이자 달러는 20년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그리하여 모든 스테이블 코인들이 시험대에 올랐던 것이다. 

이 화폐 호소인들은 태생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정부나 중앙은행으로부터의 탈 중앙화를 외치던 테라의 운명은 사실상 훨씬 더 적은 소수의 사람들의 결정에 달려있었다. 바로 더 신뢰하기 어렵고 더 통제도 안되며 화폐금융에 대해선 더더욱 무지한 사람들에게. 탈 중앙이라는 것이 더 멍청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캐치프레이즈였던가. 또한 다른 스테이블 코인들이 살아남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보유고가 달러로 표시된 자산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무한정 찍혀 나온다던 바로 그 달러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미래의 통화라고 주장하면서도 이미 수십 년 전에 멸종한 금(달러) 본위제나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구닥다리 모델인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그러니 그들의 미래도 테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폰지사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훗날엔 금태환 폐지의 쇼크나 뱅크런, 혹은 중앙은행의 탄생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그러니 아직도 테라의 생태계는 가능했고 또 루나 역시 성공할 수도 있었다고 믿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찰스 폰지에게도 국제반신권이라는 획기적 차익거래나 마카로니 같은 멀쩡한 사업 모델들이 있었노라고. 마카로니 사업이 기적적으로 번창해 모든 미국인들이 폰지의 마카로니를 먹었어도 언젠가 그의 회사는 반드시 실패했을 것이고 찰스 폰지는 여전히 사기꾼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믿음은 화폐금융과 경제사에 대한 완벽한 무지로부터 출발하고 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당신들은 지난 200년간 근현대 금융사에서 벌어졌던 모든 사건사고를 차례대로 답습하려 하고 있다.

탈중앙을 외치는 가상화폐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자본시장의 아나키스트들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기존의 시스템을 열등하다고 여기고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 규제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금융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사고가 터지자 모두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지 않은가. 피해자들은 그들이 회피하려던 규제에 따라 책임자들을 처벌해달라고 외치고 있고 책임자의 가족들은 정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실제 역사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이상론자에 불과했고 그들은 정부의 역할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인간의 법과 질서를 떠나 도착한 곳은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가 아닌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허나 자연에서 거의 대부분의 동물은 피식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포식자를 꿈꾸던 피식자들에게 작은 위로를 바친다.    



*나는 블록체인 기술은 매우 유용하게 쓰일수 있고 또 모든 가상자산들의 내재가치가 반드시 0에 수렴할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에만 해당될 것이며 또 여전히 화폐의 역할을 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운용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들이 꼭 UST나 루나처럼 폭락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수 있다. 페그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화폐로서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해 사장되는 방향으로 끝날 수 있다. 


2022. 5. 12.

페그는 불가능하다

나는 블록체인이나 코인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특정 통화나 재화의 가격을 기축통화인 달러에 페그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수십 수백조의 외환보유고를 지녔던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통화를 달러에 고정시키려고 했지만 그런 모든 시도는 매우 큰 고통과 함께 끝났다. 그런데 일개 개인이 그를 보장한다니.

영구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기술적 문제 때문이 아니다. 특허청에는 매년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몇장짜리 종이쪼가리를 손에 들고서 자신이 영구기관을 개발했다며 찾아온다고 한다. 담당자가 그런 특허를 반려하면 그들은 대개 화를 내며 담당자의 이해도가 부족해서 자신의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몰라준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아래 스테이블 코인의 페깅 매커니즘은 작동하지 않았고 작동할 수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6084677

그리고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영구기관이 폭락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위는 달러에 페그되는 스테이블 코인에 관한 것으로 기타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2022. 5. 10.

쿠오 바디스 부동산(Quo Vadis Domus)

2019년 말 김현미의 마지막 대규모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이래(링크) 부동산에 대해 별다른 분석을 하지 않은 것은 이 시장이 더 이상 저평가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도한 규제로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은 크게 증가한데다 시장의 수급과 적정가치를 판단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기에 나는 부동산 상품을 분석하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직후 자산시장이 버블인지에 대해 잠시 분석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통화량과 재정지출로 인해 모든 자산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한 것이지 꼭 부동산에 국한된 전망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현재 피크를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조만간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고점에서 후퇴하여 하향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 전망이 맞는다면 지난 10년보다 향후 10년의 인플레이션이 높을 것이며 상당 부분은 임금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같은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할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부동산은 어떻게 될까?

현재만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았던 1970년대의 미국을 살펴보자. 당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4.8%까지 상승했는데 이런 인플레이션을 제한하기 위해 연준은 기준금리를 3%에서 20%(1980년 3월)까지 올려야 했고 그 결과 이전 10년간 연평균 약 4.4% 성장했던 미국의 실질 GDP는 3% 아래로 주저앉았으며 다우존스 지수는 1970년 800에서 1979년 말 840으로 거의 오르지 못했다. 동기간 미국의 주택 가격은 어떻게 변했을까? 미국 주택의 중위값은 $24,000에서 $55,000로 약 2.3배 상승했다. 같은 기간 CPI 지수가 약 1.99배 상승했으니 주택 가격은 당시의 주식시장이나 경제성장률이 아닌 인플레이션을 착실히 쫒아간 셈이다. 

1950-90년대의 인플레이션과 주택가격 변동
그래서 장기 차트를 그려 보면 주택가격은 대개 금리가 오를 때 상승하고 금리가 하락할 때 함께 하락한다. 반면 장기간 대규모의 투자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성을 반영한 테크 주식들이나 무형자산의 비중이 큰 회사의 주가는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최근 유망한 테크주들의 하락이 타업종 주가보다도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슈퍼 고성장을 대표하는 테크 주식이 있다면 1970년대엔 Nifty Fifty가 있었다. 고성장 블루칩 50개 주식들로 이루어진 이 포트폴리오는 한때 주식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 반드시 담아야 했던 Must have 아이템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십수 년간 잠잠했던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개를 들고 연준이 이를 제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한때의 블루칩이었던 이들은 다른 업종보다도 더 급격한 손실을 기록했다. 한편 주식과는 달리 물가와 상품, 그리고 주택가격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투자자들의 피웅덩이를 철벅철벅 밟으며 뛰어올랐고 1970년대는 상품가격들이 주가와 가장 크게 괴리된 시기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대표적 성장주들의 밸류에이션은 그 시절의 Nifty Fifty보다도 높다. 아직도.*

따라서 그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면 지금 성장주들이 급격하게 하락했다고 해서 부동산이 그를 쫒아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주가의 하락폭은 수요나 어닝의 급격한 감소보다 단순히 금리의 상승을 반영한 것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오르는 인플레이션과 금리는 부동산의 수요 뿐 아니라 공급에도 타격을 준다. 장기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상당수 건설 프로젝트들의 비용이 증가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고 당면한 인플레이션과 인건비 상승으로 이미 시작된 공사현장들도 멈춰섰다. 한국의 건축 인허가 건수가 급감한 것이 금리 상승이나 인플레이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성장주의 폭락이 부동산 시장에서 재현되긴 어렵다. 물론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과 부동산과의 괴리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인플레이션이 올라온대도 부동산이 과거만큼 그를 정직하게 따라가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부동산은 어떤 잣대로 보아도 저평가되었다고 볼 수는 없기에 투자에 나서기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다루는 상품들 중에서 부동산은 인플레이션을 가장 정직하게 따라가는 자산이고 그렇기에 피터 린치나 워런 버핏뿐 아니라 험난한 인플레이션의 고비를 넘어온 우리의 부모님들이 인플레이션의 피난처로 부동산을 꼽는것 아닌가. 적어도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과대평가된 성장주와 부동산을 같은 그룹으로 묶는 일은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고전 영화의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쿠오바디스라는 구절은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의 일화에서 인용한 것이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달아나는 베드로 앞에 예수의 환영이 십자가를 지고 나타난다. 베드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Quo Vadis Dominu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는 대답한다. "네가 내 백성들을 버리기에 내가 또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로마로 간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심히 부끄러워하며 다시 로마로 돌아가 순교를 택했다. 이 일화를 곱씹으며 베드로의 심정으로 이렇게 물을 수 있지 않을까? Quo Vadis Domus?**(부동산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역사는 이렇게 답한다,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온다면 부동산과 성장주의 길이 결코 같지 않으리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십자가 형을 선고받은 베드로는 감히 자신이 주님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며 자신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더욱 고통스러운 죽음임을 알면서도. 코인이나 나스닥이 하락했다고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을 파는 일은, 만약 내가 전망하는 대로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온다면, 베드로처럼 자신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2000년대 미국의 주택가격 변동과 미국 5년 금리

*하지만 2000년 IT버블보다는 훨씬 낮다.

**라틴어 Dominus는 주님, 혹은 주인님을 의미하는데 이는 집을 뜻하는 Domus와 같은 어원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한다.  

2022. 5. 9.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의 금융범죄를 수사하라

1. 라임

2. 옵티머스

3. 디스커버리

4. 코링크


금융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 펀드들의 구성과정과 투자내역 그리고 실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 알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금융범죄는 두번 다시 존재해서는 안되며 그 관련자들은 물론이고 범죄내역을 은폐하거나 범죄자들을 옹호하려고 한 이들은 모두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공교롭게도 그 정면에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의 최측근들이 포진해 있다.

나는 한 사회에 진보와 보수 모두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진심으로. 하지만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 수호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범죄다. 김경률, 권경애, 진중권과 같이 그 누구보다 진보적이었던 이들이 더불어민주당과 가장 독하게 싸우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적폐라서? 꼴보수라서? 그럴리가 있나. 단순히 이 무뢰배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부패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악취가 난다.

2022. 5. 5.

인플레이션 생존법

투자에서 가장 확실하게 수익을 내는 방법은 저평가된 자산을 매입하고 고평가 된 자산을 매도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보다 더 확실하게 장기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투자법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뇌는 반대로 작동한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우리의 오감과 이성은 주변 개체들의 편향에 쉽게 오염되기 마련. 따라서 우리의 뇌는 대중이 사는 것을 쫓아 사도록 작동한다. 하지만 모두가 매입한 자산은 역설적으로 가장 비싼 자산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모두가 웃는 날은 지속되기 어려운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견뎌낼 투자법을 찾고 있지만 어쩌면 그 해답은 그들의 주식 호가 창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재와 재정/국제정세가 상당히 유사했던 1960년대의 주식시장을 되돌아보자. 한국전쟁 종전 이후 미국의 주식시장은 15년간 약 3.7배 상승하며 연평균 11%의 수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이후의 15년 동안 조금도 오르지 못하며 예금만도 못한 투자수익률을 가져다주었다. 되려 고점에서 42%나 하락하기까지 했으니 무척이나 형편없던 투자였던 셈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S&P500 주가
물론 역사가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근대적인 통화정책이 태동한 이후 중앙은행과 경제학자들은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오래 연구해왔으니까. 하지만 분명 유사점도 존재한다. 국제질서가 실리가 아닌 이념으로 재편되기 시작하고 정부가 재정을 과도하게 확장하는 것, 환경규제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 등. 나야 태생부터 본업까지 투자로 먹고사는 투기꾼 인지라 계속해서 주식시장을 바라보고 투자를 지속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주식은 소망했던 것만큼의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동소득에 집중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투자기회는 대개 오늘날 저평가 된 자산들 중에 있다. 그리고 노동이야말로 지금 가장 저평가 된 자산이다. 자산 시장의 랠리로 사람들은 자신의 임금소득을 가볍게 여기고 있고 지금은 일반 대기업뿐 아니라 전문직 직종의 지인들까지도 본업보다 투자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지속되면 현재 크게 오른 몇몇 자산들의 요구수익률은 크게 재조정될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을 쫓아가는 자산과 그렇지 못한 자산 간의 명암이 크게 갈릴 것이다. 반면 우리들의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착실하게 따라갈 것이다. 여러 인플레이션 중에서 중앙은행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로 wage-price spiral로 인한 인플레이션인데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들이 여럿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저학력/저임금 계층의 임금이 고학력/고소득층의 임금보다도 더 빠르게 오르고 있으며 코로나 이후 노동시장의 공급 부족으로 이런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10년 전의 삼성전자 대졸자 초봉과 오토바이 배달부의 임금격차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 보자) 이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나는 가장 큰 원인은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과 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경제를 개방하면서 무려 15억 명이나 되는 값싸고 숙련된 노동자들이 세계로 쏟아져 나왔고 이런 노동시장의 변혁은*** 이후 세계가 낮은 인플레이션을 누릴 수 있는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노동시장은 더 이상 값싸고 젊지 않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시작된 반이민 정책은 노동시장의 비용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신 앞에 놓인 여러 선택지 중에서 가장 저평가되었으면서도 유망한 자산은 바로 노동이다. 모두가 퇴근 후 주식 스터디에 나서고 새 ICO를 검색하고 전혀 모르는 지역으로 임장을 다닐 때 자신의 노동 수익률을 높이는 데에 시간을 쓰는 것이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합리적인 투자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자들이 고과와 승진을 포기하고 해외 주식 창을 켤 때 당신은 실적을 내는데 집중하고 승진하고 연봉을 높여야 한다. 특히나 젊은 층은 현재 자산보다도 미래소득이 더 큰 데다 동년배 경쟁자들이 회사에서의 노동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한다. 1960년대와 같은 시대가 반복된다면 인플레이션을 가장 정직하게 따라가는 것은 바로 당신의 월급명세서가 될 것이다. 

워런 버핏은 가장 위대한 투자자들 중 하나이다. 단기간에 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린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무려 반세기에 걸쳐, 또 고작 수백 달러의 투자금부터 수백조에 다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수익을 낸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전례 없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믿던 시기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낡은 투자법을 평가절하했지만 버핏은 살아남아 여전히 벤치마크를 상회하는 실적을 내고 있고 한때 그를 퇴물이라고 부르던 헛똑똑이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한 초과수익을 낼 수 있던 데에는 지독하리만큼, 때론 지루하리만큼 원칙을 따르는 지키는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난 주주총회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인플레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는 것입니다. 돈과는 달리 그런 기술들은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하락하지도 않고 달러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던 간에 그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항시 존재할 것 입니다"

나는 트레이더지만 정작 블로그를 통해 어떤 투자에 반드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적은 몇 차례 되지 않는다. 2015년에, 그리고 문재인 집권 초기에 한국 부동산을 사라고 했던 것. 그리고 코로나 직후 최대한의 레버리지로 자산을 매입하라고 권했던 것. 그리고 2021년에도 그를 유지해야 하지만 4분기부터는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등 단지 몇 차례에 불과하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틀렸던 것들도 많다. 비트코인에 대한 전망을 바꾼 것도 그렇고, 또 테슬라처럼 전망을 바꾸지 않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완전히 엇나간 것들도 있다. 하지만 경제 사이클의 큰 흐름에서는 대체적으로 맞는 쪽에 서 있었기에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그리고 그때와 같은 확신으로 이렇게 권한다. 

"당신이 현재 가진 투자자산이 미래소득보다 작다면,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자산배분에 많은 시간을 쓰는 것보다 버핏의 조언을 듣는 것이 올바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재차 강조하는 탓에 오해할 수 있지만 상당히 높은 확률로 미국의 CPI는 이번 상반기에 정점을 찍고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8.5%에 달하는 CPI가 반토막이 나서 4%대를 기록한다고 인플레이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란, 경제에 내재된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둔화시키기 위해 상시 고금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시대를 의미한다. 2010-20년의 평균 인플레이션이 1.8%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향후 10년 평균 인플레이션이 3%, 혹은 그 이상을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은 장기금리 역시 과거의 평균을 큰 폭으로 상회할 것을 암시한다.

**연준은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거기에 중국을 필두로 한 개발도상국의 막대한 투자가 과거 낮은 인플레이션의 근본적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늘 장기적 가치투자로만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때론 자신의 명성이나 자본을 이용해 투자하는 대상에게서 가혹할 만큼의 수익을 얻어내기도 한다. 

2022. 4. 30.

이태원 클래스 그리고 I의 시대

 

정직하고 착한 주인공이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도 성공하는 스토리, 너무나 뻔한 클리셰로 범벅된데다 아이고야,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뽕짝을 매 화마다 4분의 2박자로 펑펑 터뜨리는 드라마. 그런데 또 이렇게 기승전결이 모두 뻔한 청춘 드라마에 울컥하고 열광하는 촌스러운 사람들이 꼭 있다. 마치 나처럼.   

진부하게 우리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내 여름의 정점은 이태원과 함께 시작되었다. 청바지를 골반까지 내려 입은 흑인 아저씨가 F로 시작하는 단어를 연신 외쳐가며 술병을 이리저리 흔들고 이색적인 군복을 입은 미군들이 두셋 조를 짜 완장을 차고 순찰을 하던 골목은 어느새 세련된 바와 이국적인 음식점들로 물들여지기 시작했고 한때 서울의 대표적 게토였던 거리가 뉴욕의 소호로 탈바꿈하던 바로 그 순간, 나와 내 또래들은 삶에서 가장 무더운 시절을 맞이했다.

나와 당신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코로나로 좁은 집 안에 감금된 우리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이태원의 골목들을 보며 그 좁은 거리를 구석구석 누비며 노래하고. 춤추고. 울고. 웃고. 사랑하고. 이별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모든걸 누리던 게 당연했던 시절. 한번 시작된 밤은 동틀 무렵까지 끝나지 않았으며 쌍팔년도 군사정부 시절의 계엄령 같은 영업제한을 들이미는 짓 따위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던 바로 그 시절. 하지만 한번 지나간 젊음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그 시대에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안녕.

그렇게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는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번듯한 대학 졸업장 한 장에 사지만 멀쩡하다면 취업도 하고 집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두 손에 꼭 쥐고 사회의 발을 들여놓은 앳된 얼굴의 청년들은 이윽고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학만 가면 연애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았던 MZ 세대들은 이제 대학만 졸업하면 취직하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에 또 한 번 속아, 그만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긴 그들의 아버지들과 형들조차도 자신들에겐 너무나 당연했던, 취업 내집마련 결혼 뭐 그런 것들이 마치 에르메스 버킨백처럼 한청판 사치품이 될 줄은 몰랐겠지. 포기와 좌절을 거듭해온 이들이 전과자, 외국인, 성소수자, 고졸 인플루언서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로 구성된 단밤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과거에 유행하던 청춘드라마는 주로 회사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해 승진하는 주인공을 그려내곤 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부서장이 되고 본부장으로 승진하고 해외 지부를 개척하는 뭐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청춘들의 욕망은 미생에서 비정규직으로 격하되었고 불과 5년 만에 자영업자로 탈바꿈했다. 장가의 회장이 산업화시대의 성공을, 그리고 실장 오수아가 취직해서 성실하게 일하면 잘 풀릴 거라던 MZ 세대 이전의 성공을 상징한다면 그들과 맞부딪치고 싸우는 단밤의 아웃사이더들은 이태원을 누비던 젊은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뒷골목 자영업자와 고졸 헤비 인스타 유저가 대기업과 싸워 이기는 스토리-이태원 클래스의 인기가 어딘가 모르게 서글픈 이유는 그것이 평균적인 MZ 세대가 꿈꿀 수 있는 욕망의 최대치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               *               *

코로나와 함께 이태원의 상권이 몰락했던 것처럼 우리의 젊음 역시 점차 사그라들고 있고, 그렇게 바야흐로 한 시대가 가고 또 다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새롭게 을지로와 압구정의 로데오 거리가 젊음을 빨아들이고 있으며 길거리에서는 와이드 팬츠가 스키니진을 밀어낸지 오래. 이는 감히 우리의 시대라고 부르던 지난 10년과는 달리 미래의 10년은 완전히 모습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투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판데믹에 맞서는 정부가 공격적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또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이 자신들이 통과시키는 법안들의 잠재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미래는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제 세계 경제는 그 초입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물론 8.5%에 달하는 미국의 CPI는 조만간 잦아들 것이고 공급망 개선과 기저효과의 반전은 연준의 공격적 금리인상과 맞물려 그 절댓값은 낮아지겠지만 사회 저변에 깔린 인플레이션 압력은 장기간 정치인들과 소비자, 그리고 기업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투자자들은 자산시장이 폭락할 것이라는 사람들과 혹은 여전히 성장주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사람들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대개 미래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펼쳐지지 않나. 인플레가 지속된다면 인해 현금 보유자들의 실질 구매력은 시나브로 녹아내릴 것이고 그를 다잡기 위한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은 기업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태원을 오가던 시절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오늘 밤 압구정이나 을지로에 나섰다가는 아재소리를 듣기 십상인 것처럼 지난 10년간 통용되던 투자의 법칙을 미래에 적용시키는 것은 실패와 조롱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럼 미래가 어떻게 되겠냐고? 그걸 누가 알겠는가. 나는 코로나의 타격으로 세계가 저점에 있던 2020년 4월부터 향후 경제는 인플레이션의 역습을 맞을 것이라고 예견했고(링크) 그것이 향후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금융시장의 소수 중 하나였지만 인플레이션은 내 전망보다 더욱 빠르게, 그리고 더 강하게 밀어닥쳤다. 2020년 7월의 글에서 나는 투자자들이 얼마나 많은 빚을 냈는지에 따라 수익이 정해질 것이고 동시에 자신들의 근로소득이 휴지가 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측했고(링크), 2021년 10월에는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니 기본으로 돌아가 비싼 자산을 팔고 값싼 자산을 매입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링크) 그 이후 고평가 성장주는 평균적으로 벤치마크 인덱스를 약 15%가량 하회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2년 3개월 만에 미국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는 비우량 자산을 레버러지해서 매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인플레이션은 둔화될지언정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레버리지의 비용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빚으로 매입한 자산이 저평가되었거나 우량하지 않다면 비용은 수익을 넘어설 것이고 투자자들의 고통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은 적극적으로 디레버리징에 나서야 할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우리는 막 인플레이션의 초입을 지났고 아직도 시장에는 잠재 인플레이션을 과소평가하는 자산들이 다수 존재하며 다소간의 급격한 경기변동을 견딜 수 있다면 그들은 충분한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니까.    

최근의 주식시장의 부진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본디 자산시장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기 마련이고 당신이 트레이딩이 아닌 투자를 하고 있다면 시장의 작은 사이클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잘못된 투자를 하고 있다면 당신의 고통은 남들보다 클 것이고 또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태원 클래스라는 드라마가 한 시대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것처럼 투자의 패러다임에서도 하나의 시대가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니까. 다시금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철 지난 시대의 방식을 따르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