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약 3년 반 전, 메르스가 창궐하던 시기에 이런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공포라는 감정은 애초에 합리적일 수 없는 것이기에 누군가의 공포가 비합리적이라고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다만 두려움을 호소하는 무리와 이성적일 것을 주문하는 사람들의 진영이 뒤바뀌었을 뿐. 광우병, 세월호 그리고 메르스로 대중이 국가시스템을 믿지 못하고 공포에 빠졌을 때 너의 불안감은 결코 비합리적이지 않다며 위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그들을 계몽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시도는 당연히 성공할 수 없지 않겠는가. 저들의 기나긴 노력 끝에 대중은 국가시스템을 본능처럼 의심하고, 음모론을 맹신하며, 마치 조건반사 훈련이 된 파블로프의 개 처럼 보도자료 네글자가 찍힌 하얀 종이를 보면 패닉으로 반응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있다. 마치 가득 찬 성냥통처럼 대중은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다.
2. 먼저 나는 방역과 바이러스의 전문가가 아님을 밝힌다. 그런 나의 단견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우한독감은 사스나 메르스보다 더 큰 공포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스나 메르스는 치사율이 높긴 했지만 전파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사스는 총 8천여 명을 감염시켰고 메르스는 약 1,600명의 환자를 만들었지만, 현재 우한독감은 확진자만 벌써 11,374명에 이른다.
- 2009년에 유행한 신종플루의 경우 첫 확진자가 나타난 뒤 5개월 간 한국에서만 약 74만 명이 감염되었다. 물론 인플루엔자는 코로나와 아예 다른 바이러스지만 현재까지 진행 경과만 놓고 보면 우한코로나는 신종플루와 같은 확산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 일부는 방역이 뚫린건 아닌지 의심하던데, 애초에 방역같은건 존재하지 않았다. 방역의 가장 첫번째 원칙은 사람이나 가축의 이동 통제 아닌가. 하지만 정부는 중국인 입국자에 대해 아무런 통제를 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방역이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단 것인가. 뚫렸다는 것은 막긴 했다는 것이다. 막은 적이 없는데 뚫릴 수도 없다. 우한독감 바이러스는 그냥 한국으로 아무런 제지 없이 걸어들어온 것 뿐이다. 참고로 미국은 2월 2일부로 중국에서 오는 모든 외국인들의 입국을 잠정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 Johns Hopkins CSSE에서 발표하는 발병자현황(링크)을 보면 발달된 방역체계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확진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4시간 전에 비해 홍콩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미국 독일 프랑스 독일 캐나다 영국에서 확진자가 증가했다. 그리고 필리핀 인디아 스웨덴 스리랑카에서 새로 확진자가 발생했다. 잠복기가 1-2주에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최소 1주간은 통제되지 않은 상태서 확산된 확진자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이는 방역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의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이 비전문가이기에 위와 같이 생각할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SARS때와는 달리 훨씬 더 강력하게 방역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확산이 더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사스환자들의 수를 넘어서지 않았나. 그리고 대중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것은 병의 치사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무서운 병"에 걸릴 확률이라는 점이다. 사스로 죽은 사람은 고작 700여명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해 수십억을 호가하던 홍콩의 부동산과 시총 수천조를 자랑하던 항셍지수가 폭락했던 것을 기억하자.
3. 문재인정부는 우한독감을 대하며 방역은 물론이고 정치적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다. 자신들이 야당에서 비판할 때 박근혜가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춘절 기간에 대통령은 휴가를 종료하고 복귀하지도, 과거 포항 지진사태처럼 발빠르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도, 중국입국자들을 막아들라는 국민여론과 소통하지 않았다. 비선실세에 대한 의혹이 차올랐을때 박근혜가 개헌카드를 던졌듯 우한독감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개혁을 외쳤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구체적인 대책 없이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세월호의 선장 이준석의 마지막 방송을 떠올렸다. 불필요한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그 한마디를.
결정적으로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여당은 다음의 두가지 정치적 실수를 저질렀다.
- 우한교민들을 격리수용할 후보지가 천안에서 아산과 진천으로 변경하는 혼선이 있었는데 세 후보지는 모두 충청도였다.
- 평택에서도 확진자가 나왔으며 정부의 능동감시가 실패해서 발생한 6번째 확진자의 딸이 태안의 어린이 집 교사였고, 경기도 남부권에 거주하는 확진자의 아내와 아들 역시 확진자로 판명되었다. (딸은 검사결과 음성으로 나타났다.)
인구 밀집지역인 경기 남부 역시 의석도 많은데 정당별 손바뀜이 잦은 지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역의 유권자들은 젊은 육아 부부들이 많아 커뮤니티를 통한 의견 결집과 전파가 매우 빠르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가장 히스테리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어머니들인데 마침 6번째 확진자가 그 공포를 확산시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포는 원래 다 비합리적인 법이다. 하지만 이제 능동감시자에 어린이집 교사가 최소 둘이나 포함되었으니 경기남부 xx맘들의 맹목적인 충성을 마음놓고 기대할 수 만은 없게 되었다. 백명의 적 보다 더 뼈아픈 것은 한명의 배신자인 법인데. 중국에 보낼 마스크를 경기 남부의 어린이집으로 돌렸더라면 지지율의 손실을 최소로 막을 수 있었으리라.
4. 금융시장의 반응은 강력하고 또 즉각적이었다. 우한독감이 이슈가 된 이후 외국인들이 7 영업일간 약 1.4조의 주식을 팔아치우자 코스피는 약 6.5% 하락하고 달러원 환율은 1190원을 넘어섰다. 금요일 밤에 미국 주식이 또 한차례 폭락했으니 여의도와 광화문의 월요일 아침은 꽤나 분주할 것이다. 2017년과 같은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다시 한번 기대하던 한국 증시는 예상 외의 풍랑을 만나 표류하고 있다. 난 아직 우한독감으로 인한 최악의 시점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 세가지와 같다.
-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이렇게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악재가 터지는 것은 단기에 잦아들기 힘들다. 미국-이란 전쟁이야 트럼프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만 우리가 바이러스에게 퍼지지 말아달라고 빌 수도 없지 않은가. 두려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의 무지이다.
- 세계 금융시장이 기대하던 낙관론은 중국과 한국의 경기반등에 기반한 부분이 컸는데 지금 우한독감이 그 희망의 핵심을 강타하고 있다. 사망자수가 전혀 증가하지 않더라도 물류와 인구 이동의 통제는 1분기의 각종 경제데이터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이다.
-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퍼질때와 구글트렌드 추이를 비교하면 아직은 두려움의 초기단계로 보인다.
*박근혜와 달리 문재인은 청와대는 왜 충성도가 높아 표 이탈이 적을 전남에 격리지역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엔 이것이 청와대가 당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여당 수뇌부와 핵심들을 자신의 친위대로 구성했기 때문에 정부가 당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공수처법/울산선거개입 등등의 이슈로 국회의 지원이 절실한 청와대 입장에서는 당을 설득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는 1. 격리캠프를 전남에 설치해서 표의 손실을 최소화하지 못했고, 2. 격리장소를 민주당의 지역구인 천안으로 밀어붙이지도 못한 채 패닉하며 가까운 충북에서 후보 둘을 고르는 커다란 실수를 범한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