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6.

주택시장에 대한 흔한 착각 두가지.

최근 정부의 새 부동산 정책에 관한 여러 논의를 지켜보며 사람들이 가지는 흔한 오해 두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1. 세입자에게 전월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할 권한을 주는 것과 2. 분양가 할인이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 대중들의 희망과는 반대로 이 둘은 모두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리는 효과를 낼 것이다.

1. 전월세 계약을 2년 연장할 권한은 집값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세입자는 계약기간과 무관하게 최소 2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권한을 가진다. 그리고 현재 당정은 2년이 만료된 뒤, 세입자가 2년 더 전월세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법은 전세가격을 올려 갭투자자들의 주택구매를 더욱 용이하게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 아래서는 전세가격은 대체로 상승한다.(최근 CPI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찍었지만 이는 잘못된 소비자물가 바스켓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4년 간의 전세가격은 2년보다 높고, 향후 10년 간의 전세가는 4년 보다도 더 높다. 따라서 전세기간을 늘리면 세입자가 계약시 맡겨야 할 전세금이 올라간다. 그리고 전세금을 올리는 효과가 하나 더 있다.

시장은 공평하다. 누구도 손해보는 계약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계약의 조항이 다른 한쪽에 불리하게 되어있다면 거래 상대방은 그 만큼을 보상해주어야 계약이 이루어진다. 앞서 정부가 고려하는 개정안에 따르면 2년 뒤 계약을 연장할 권리는 세입자에게만 있다. 집주인은 2년 뒤 세입자를 붙잡고 싶어도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하면 두말없이 전세금을 빼줘야 한다. 하지만 권리는 공짜가 아니다. 세입자에게 일방적으로 권리를 주게 되면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금융용어로 세입자는 2년 뒤 계약을 연장할 옵션을 사게 되는 것이고, 집주인은 옵션을 팔면서 그만큼의 프리미엄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프리미엄은 대개 전세가격의 상승으로 지불될 것이다.


2. 분양가 할인은 공급을 줄이는가.

당연하다. 10억짜리 물건을 9억에 팔 사람은 소수고 그걸 5억에 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정부가 이 10억짜리 물건을 싸게 팔라고 강제하면 물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 제품을 생산하지 않아 공급이 끊어진다. 이런 아주 단순한 원리를 부정하며 공급이 줄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예로 든다. 1980-2000년에도 분양가는 크게 할인되어 판매되었지만 공급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그 시절의 이자율이 높았다는 것과 당시 건설사들의 시공능력이 검증되지 못했다는 것.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짓기도 전에 아파트를 분양하는 선분양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과거 건설사들과 주택조합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집값을 미리 내고, 대신 조합과 건설사는 그 이자 만큼 조달비용을 아끼니 대신 집을 싸게 줄 수 있었다. 집을 다 짓고 분양하는 후분양을 추진할 경우 건설기간 동안 공사비를 조달해야해서 이자비용이 늘어난다. 건설사의 신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강 계산했을때 과거의 기준금리가 6-8%였다면 신축가격 100에 해당하는 분양가는 약 85-90정도가 된다. 따라서 1억짜리 집을 10% 싼 9천만 원에 선분양하는 것은 그냥 제값에 판 것이지, 싸게 분양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조달금리는 턱없이 낮으며 공사기간도 단축되었다. 그러니 과거처럼 신축아파트보다 15% 싼 값에 아파트를 분양하게 되면 조합과 시공사들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도 분양을 안한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선택권을 가지는 것은 늘 유무형의 비용을 동반한다. 반대로 상대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내게 수익이 생긴다는 말이 된다. 선분양에 나선 건설사들은 정말 거지같은 집을 지을 수도, 럭셔리한 고급주택을 지을 수도 있지만 분양받은 계약자는 설령 부실시공이라도 무조건 그 집을 인수해야 한다. 과거에는 수많은 건설사들이 난립했기 때문에 아파트의 질이 A급에서부터 D급까지 다양했다. 따라서 분양가격은 이런 위험을 반영해서 낮게 측정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서울에서 분양에 나서는 대형시공사들은 어느정도의 퀄리티를 보장하고 있고, 심지어 고급 아파트의 경우 독자적 브랜드를 도입하기 때문에 분양가격이 앞서 말한 위험을 반영할 필요가 적어졌다. 그러니 분양가가 기존 신축보다 낮아져야 할 이유도 줄어들었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시행하려 하는 두 정책은 모두 전세가격, 그리고 매매가격 모두를 상승시킬 것이다. 하지만 바보는 끝까지 바보 짓을 반복하니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 처럼 바보 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거주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어서 집을 사기를 권한다.

누구를 위해 연금은 매수를 누르나

와. 도대체 한국 증시가 세계 증시를 앞서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그저 조용히 이 랠리를 즐기고 싶다만 뭔가 석연찮은 것이 있다. 주식을 병들게 한 것이 정치였는데, 주가와는 달리 정치는 점점 악화되니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배경에는 국민연금이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3영업일동안 매일 주식을 사들였고, 그 금액은 이달 들어서만도 벌써 2.5조가 넘어갔다. 역대 30일간 사들인 금액으로 보면 역대 최대치를 찍었으니 국민연금의 이런 매수행테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과연 누구를 위해 연금은 매수를 누르는 것일까.

모든 금융사들은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인다. 고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득을 우선하는 행위는 그 경중에 상관없이 심각한 처벌을 받는다. 최근 여의도에서 몇몇 직원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선행매매를 했다는 루머가 돌았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두번 다시 금융시장에서 잡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짓을 아무리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펀드매니저들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 코스피의 밸류에이션은 지난 몇년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머물러있는데 올해 국내주식비중을 줄인다던 국민연금은 갑자기, 난데없이, 뜬금없이 폭풍같은 매수주문을 내며 시장의 팔자 호가를 뜯었다. 그 배경에 대해 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부진으로 목표한 비중을 맞추기 위해 주식을 더 사야 했다"고 답하지만, 매매 행태와 종목을 보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대단히 어렵다. 그들이 그런 비정상적 매매에 나선 것은 최근 부진한 정권의 지지율이나 일본을 상대로 펼치는 자존심대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입자의 이익보다 다른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당장 현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의 이력부터 보면 금융쪽에서 일한 경력이 단 한줄도 없다. 심지어 비슷한, 덧셈뺄셈이라도 해 본 경력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그는 평생 계산기 한번 두드려 본 적 없고 회계장부의 각 항목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억지로 국민연금의 연관고리를 찾으라면 그가 국민연금 본부가 이전한 전주시 덕진구 출신의 국회의원이라는 점, 그것 단 하나 뿐이다. 국민연금은 세계 4-5위 수준의 대형 기금으로 운용자산이 600조가 넘는데,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탑 펀드매니저들은 아무리 적어도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삶을 누린다.  하지만 그들과 경쟁하는 국민연금은 인구가 꼴랑 65만 명 밖에 안되는 전주시에, 그것도 도심에서 20분 넘게 떨어져 있는 외곽 깡촌에 쳐박혀있다.

그렇다고 돈은 잘 주나. 그럴리가 있나. 이 펴엉등한 나라에서. 장담컨대 아마 그들이 경쟁하는 헷지펀드에서 일하는 비서의 연봉이 더 높을 것이다. 돈도 안주는데다 깡촌에 쳐박혀있는데 우수인력이 거기에서 일하고 싶을 리가 없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전주로 이전하자 막대한 수의 운용역이 우르르 빠져나가 인력충원에 크게 애를 먹지 않았나. 심지어 전주가 고향인 사람도 전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데 누가 거기로 따라가나. 남은 사람들과 새로 충원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의도나 광화문으로 이직하는데 실패하고 업계에서 헷지펀드 비서만큼의 연봉도 못 받는 사람이다. 당신의 연금은, 그리고 노후는 이런 사람들의 손에 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국민연금을 전주로, 그것도 자신의 지역구로 이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국민의 노후를 망가뜨린 보상으로 김성주는 세계 4대 연금의 이사장 자리를 맡았다. 축하한다. 당신의 미래는 그의 손에 달렸다.

이런 펀드의 실적이 좋을리 없다. 국민연금은 먼 미래에 돌려주겠다며 국민에게서 600조의 돈을 걷어간 뒤 계산해보니 나중에 못 돌려주겠다며 돈을 더 내놓으라고 겁박하는데, 이를 보면 사회면에서 숱하게 읽은 연인에게 사기당한 사례가 떠오른다. 처음엔 더 큰돈으로 돌려주겠다며 한푼 두푼 삥땅치다 점점 큰 금액을 뜯어가는 그런 비극적인 결말의 이야기들. 상식적으로 연금이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하면 없애버려야지 왜 돈을 더 붓나.

며칠 전 검찰은 삼성 이재용의 경영승계를 도와준 혐의로 국민연금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연금이 가입자의 이익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진 것은 명명백백히 처벌받아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폭락하는 지지율 대신 주가를 올리는 짓이나 국회에 의석 수 한두 개 늘리겠다고 가입자들의 미래를 망치는 짓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아니, 재벌의 경영승계는 수십 년에 한번 일어나는 일이지만 국민연금을 망치는 짓은 매시매분매초 벌어지는 비극이다. 어제부터 국민연금의 매수세가 멈췄는데 아니나다를까 한국 주식은 여지없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빈자리는 우리 가여운 개미들이 메우고 있다.

정치논리로 국민들의 노후를 망치는 악당들이 있을 곳은 전망 좋은 사무실이 아니라 깜방이다.

당장 가라.




2019. 9. 22.

현재의 이상한 분양제도: 486들의 착취

또다시 분양의 시즌이 돌아왔다.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 오후에 모델하우스 앞에서 몇시간 씩 줄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또 그렇게 몇백대 1의 경쟁률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청약자들을 보면서도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믿는 소수의 멍청이들이 있고 비극은 그들이 정책결정자들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글에서 나는 김수현을 머리가 나쁜 촌놈이라고 비난했는데(링크) 심지어 그랬던 나도 저 인간이 못돼 처먹기까지 한 줄은 몰랐다. 그는 과천의 한 재건축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단지는 그가 스스로 입안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를 간발의 차이로 피해갔다.

하지만 그렇게 못돼 처먹은 것은 김수현 하나가 아니다. 이는 현재의 이상한 분양정책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2030대는 분양시장에 관심이 적어 넘기고 싶겠지만, 차근차근 따라와 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 제도야말로 저들이 노골적으로 당신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제도는 국민주택규모, 즉 약 35평 이하의 아파트의 분양은 100% 가점제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가점제란 무주택기간, 자녀 수, 청약통장 보유기간 등등에 따라 종합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가 높은 사람부터 우선적으로 분양하는 제도이다. 얼핏 듣기에는 합리적으로 들리겠지만 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어떤 사람이 가점이 높을까? 당연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높다. 그들은 과거의 무주택기간도 길었고 자녀 수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가구는 소형이 아닌, 중대형 평수를 원한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 소형평수를 우선배정한다는 것일까? 이 분양정책이 시행된 이후 각 신축단지의 24평 아파트는 거의 모두 486/586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훌쩍 큰 자녀를 하나나 둘을 둔 486가족은 결코 24평 아파트의 실수요자들이 아니다. 소형평형의 실수요자들은 2030대 신혼부부들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실수요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소형아파트를 우선배정하는 괴상한 제도다. 심지어 1주택까지는 청약의 우선순위를 유지할 수 있으니 과거의 무주택 기간이 길었다면 청약점수가 높아 소형아파트를 가져갈 수 있다. 24평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32살의 신혼부부지만, 그 집을 분양받는것은 그들이 아니라 아이를 둘 둔 42살의 운동권세대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저런 정책으로 대출을 모두 막았다. 따라서 미래소득은 많지만 당장 오늘의 자산은 적은 신혼부부는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없고, 모아둔 돈이 좀 있는 42살의 운동권세대가 실수요자도 아니면서 소형아파트를 싼값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신혼부부가 청약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집은 당장 필요도 없는 40평 50평대 뿐인데, 게다가도 그들은 자본이 모자라 이런 집에 청약을 넣을 수도 없다. 즉 현재의 청약제도는 신축아파트를 죄다 4050대에게 몰아주는 제도나 다름없다.

이 개편안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김수현미가 미숙해서 저지른 실수라고 생각했기에 곧 시정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임대사업제도가 변하고 장기보유특공제도가 수정될 동안 이 괴상한 분양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이 개편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한 바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열심히 산 나는 2주택자가 될 테니 젊은 너희는 세입자로 들어와 살아라, 어디 젊은것들이 벌써부터 집을 가질 생각을 하냐, 세입자 신세도 겪어보고 그러는게 다 청춘이지. 너무나 조국스럽지 않은가. 저들이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조국을 쉴드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는  젊은이들에 대한 운동권세대의 착취다. 그리고 이런 착취를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바로 최저임금제. 해고를 어렵게 만들면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회사가 신규고용을 막고 기존 경력자들의 연봉을 높여주는 효과를 낸다.(링크) 저 운동권세대가 구축하려는 사회주의는 이상의 세계가 아닌, 중국이나 북한 러시아처럼 소수의 당원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실제의 사회주의다. 사회주의의 이면을 꿰뚫어 본 조지오웰은 동물 농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동물을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고. 그리고 저 운동권 세대는 자신들에게 더더욱 평등한 분양제도를 만들었다. 우리들은 이에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그 보다 큰 평형은  50%만 가점제, 나머지는 추첨
**1주택까지는 청약의 우선순위를 유지할 수 있고 무주택 기간은 30살부터 세기 시작한다. 따라서 집이 없는 32살의 신혼부부보다 40살에 집을 산 1주택 42세의 운동권 가장이 가점이 훨씬 높다.

2019. 9. 21.

(故)고바우 영감

첫 연재가 언제 어디부터였는지 매체마다 주장이 조금씩 엇갈리긴 하지만 이 고바우 영감이 대한민국의 최장 시사만화라는 데에는 아무 이견이 없다. 무려 1만 4139회에 걸치는 그의 만평은 한국의 살아있는 근대사 그 자체였고 민주화의 역사가 그랬듯이 고바우 영감 역시 수많은 풍파를  겪어야 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단연코 경무대 똥통사건일 것이다. 경무대는 청와대의 전신으로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채, 조선이나 일제 총독부의 신민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에게 경무대는 뭐 경복궁이나 다름없지 않았겠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부터가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였는데. 그리고 1957년 그 권력구조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 터진다.

슬하에 자녀가 없던 이승만은 부통령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한다. 친부는 부통령이요, 양부는 대통령이니 그에게 두려울 것이 무어가 있으랴. 그는 경찰서의 헌병을 폭행하기도 하고 아무런 자격 없이 서울대 법대에 편입하려 드는 등,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던 중 그를 닮은 한 빈손의 백수 청년이 이강석을 사칭하며 경주에 나타나 온갖 접대와 향응, 그리고 금품까지 받고 다니다 적발되어 검거된 것이다. 본디 해프닝으로 끝날 사건이었지만, 아무런 공식직함도 없이 단지 대통령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온갖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자 민심은 흉흉해진다.

경무대의 권위를 팔고 다닌게 과연 대통령 아들 하나 뿐일까. 그리고 거기에 상처받고 다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지금에도 그럴진대 그 시절엔 훨씬 더했을것이다. 그러자 고 김성환 화백은 자신의 만평에서 똥을 치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경무대에 출입하는 사람은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는 촌철살인을 날리다 연행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수도 없이 이런 저런 만평들을 통해 시민을 대신하여 권력자들에게 독설을 날렸다. 서슬 퍼런 박정희때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던 신군부 시절까지도. 대머리였던 전두환을 문어에 비유하기도 했으니 그는 무척이나 고달프게 살아왔을것이다. 그 당시 정권의 탄압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벌금으로 도대체 얼마를 냈는지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웃었다고 하니 기개는 물론이고 꽤나 유쾌하기까지 한 화백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랬던 그가 지난 9월 8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생전 최초로 등록문화재(제538호)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 현대언론사에서 그의 공을 기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대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함께 역사가 되어버린 고 고바우 영감을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9월 10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고바우 영감, 하늘의 별이 되다’ '김성환 화백 회고전'을 개최한다. 위에 올린 경무대 똥통 외에도 "아니 이사람 어떻게 살아남은거야?" 싶은 촌평들이 많으니 한번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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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가 청와대가 되고, 20세기가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두마리 봉황이 가지는 힘은 막강하다. 민주화의 두 영웅,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도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막후에서 실세로 활동하며 돈을 받다 구속되었고 노무현과 이명박은 그들의 아들대신 형들이 돌아다니며 뇌물을 챙겨 먹다 유죄선고를 받았다. 심지어 박근혜는 가족이 없자 친구를 불러 비선실세를 맡겼다가 탄핵되지 않았나.

그리고 이제 우리는 현 정부의 실세들도 그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이 제작한 허접한 제품 수백억 원어치를, 심지어 수의계약으로 사줬지 않은가. 인터넷에 올라온 그 코딩교재는 왠만한 학교의 전기과 2,3학년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인데 아무나 저런 허접한 물건을 국가에 수백억 납입할 수 있다면 나부터 회사를 때려치겠다. 게다가 한투증권 PB는 민정수석의 아내가 부탁하자 별 실적도 없는데도 그녀의 집에 들락날락거리며 하드를 교체해주고 심지어 경상북도 영주까지 따라갔다. 먼저 PB는 그런걸 해주는 사람도 아니고, 저걸 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다. 나와 부모님, 그리고 친척들도 PB를 이용하는데, 조국이 부동산을 뺀 전재산을 저 PB에게 맡겨도 매니저가 영주까지 따라가주지 않는다. 결국 우린 경무대의 똥을 치워도 엣헴엣헴 거리고 다니던 1957년보다 그닥 나아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언론들은 사안을 대할때 옳고 그름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좌파와 우파로 나뉜다. 그들의 시시비비는 정의가 아닌 진영으로 갈린다. 만약 고 김성환 화백이 자유당 정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오늘의 권력형 비리를 보면, 또 진영논리로 이를 감싸는 자칭 "시사만화가"들의 모습을 본다면 과연 고바우 영감은 뭐라고 했을까? 그 빈자리를 무척이나 안타까워하고 서글퍼하는 것이 나 하나는 아니니라.





조국의 권력비리를 대하는 한 시사만화가의 만평

촛불 그리고 언더독.


어제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거기엔 나이 그윽한 어르신들보다 앳된 학생들이 많았고 팜플렛과 촛불을 나눠주던 운영진 모두 내 조카보다도 어린 청년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입학부터 졸업까지 매 학년의 가을은, 그것도 저렇게 청명한 날씨의 가을 밤은 내게 몇 없던 소중한 날이었는데 저 젊은이들은 그 소중한 하루를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데 쓰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속닥거릴 시간에, 혹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번화가를 거니는 대신 아크로폴리스에 나오기를 택한 저들의 하루는 나같은 아즈씨나 할배의 고루한 하루와 결코 같지 않다.

폭력으로 점철된 학창 시절을 겪은 나는, 그리고 나의 선배 세대는 불평등에 익숙하다. 선생은 기분이 나쁘다고 패고, 선배는 담배를 내놓으라며 패던, 뭐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는 권위에 굴복하는데에 익숙하다. 그러니 민정수석이면, 또는 여당 핵심인사면 어느정도 불법을 저질러도 뭐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던 것이 우리세대의 노예같은 도덕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불평등을 거부하며 자란 세대고, 또 그런 구시대를 끝내겠다고 약속한 것은 바로 조국을 포함한 운동권 세대들이다. 그리고 그 운동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이 청년들은 배웠던대로 곧바로 일어섰다. 마치 1987년의 그들과도 같이.

잡과 집을 빼앗긴 세대는 이제 젊음마저 빼앗겼다. 배나오고 다 늙어서 이제 전립선에 문제가 생겨 팔팔정이나 찾아 헤메는 486들은 아직도 지들이 젊은줄 알고 20대들이 못배워먹어서 우경화되었다며 무시한다. 하지만 젊음은 그대들의 사유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의 역시 그대들의 전유물이 될수 없다. 조국이고 우병우고 문재인이고 박근혜고 간에, 불법을 저지르면 빵에 가고 비도덕적인 짓을 하면 욕을 처먹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다. 그게 당신들이 주장한 바 아니었나.

나는 금수저로 곱게 자랐지만, 우리 아버지는 시골 깡촌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달걀을 먹어 보는게 꿈 이었던 소년이었다. 어린시절 우리 집에서 일하던 파출부 아주머니는 한글은 물론이고 숫자도 못 읽어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전화번호 좀 눌러달라고 부탁하던 분이셨지만 그녀의 아들은 명문대 공과대학을 졸업해서 오늘 날에도 유명한 대기업에 재직중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회사에 와서 아들뻘 되는 이들의 커피잔을 닦고 화장실의 휴지를 치우시지만 그녀의 아들은 외국계 회사의 임원으로 해외지사를 오가고 있다. 내 대학 동기 중 하나는 21세기에도 가끔 전기가 끊기는 오지에서 독학으로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이번달 학비를 내기위해 아버지가 농기계를 팔아야하는 흙수저였지만 그는 의대로 편입했으니, 아마 지금쯤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언더독들에게 열광한다. 조국의 자식이 당연히 조민이 되는 그런 세상은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다.

 
광장에 앉아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저 아이들이 맞이할 내일은 그런 언더독들의 세상이기를 바란다. 내가, 그리고 저들이 믿는 진정한 평등한 세상은 오늘 같이 시원한 가을날 밤, 장관의 아들과 파출부의 아들이 서울대의 강의실에 나란히 앉아 '야 우리 중간고사 끝나면 같이 미팅나가지 않을래'라며 키득키득 웃는 그런 날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 9. 15.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정확함과 완벽한 문체가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든 착오를 겪은 후에야 독창성의 이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 독창성과 같은 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창성의 면에는 정확성-'어슴푸레한 달', '미소짓는 착한 마음', '모든 연도 중에서도 가장 불행했던 해'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이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한때는 작가를 꿈꾸었던 내가 금융계에 발을 디딛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장 흔하고 평범한 언어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푸르스트의 조언대로 나는 언어를 공격하고 공격하고 또 물어 뜯어가며 독창적인 색채를 갖추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지만 나만의 언어세계를 구축하는데에 실패했고 몇번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야 나는 작가의 꿈을 접었다.

그렇게 독창성이 없던 글을 쓰던 내가 회사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 글이 너무 독특하다는 것이었으니 어떻게 내가 돌지 않았겠나. 그리고 그렇게 십여 년동안 그저 그런 글을, 숫자와 전문용어가 뒤범벅된 딱딱하고 영혼이 결여된 글을 써오고 나니 이젠 언어를 공격하는 법 마저 잊어버린듯 하다.

 photo by Elliott Erwitt

하지만 난 아직도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노라 ㅋ

2019. 9. 14.

맘충, 사이코패스, 그리고 타인은 지옥이다.

  • 맘충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때가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남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자기 자식을 이기적으로 챙기느라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면서도 뻔뻔한 그들. 맘충. 하지만 그들이 원래부터 그런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배려심 넘치는 여자들이라도 아이가 생기고 나면 맘충으로 변한다. 다소간의 차이만 있을 뿐.
  • 진화생물학 차원에서 보면 그들이 맘충으로 돌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자손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를 돕는 호르몬이 있다.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상대에게 감정적 유대를 느끼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생물학시간에 이 호르몬은 흔히 임신한 여성에게서 분비된다고 배웠는데, 단순히 그 뿐 아니라 사랑에 빠졌을 때, 심지어 가벼운 친밀감을 느낄 때에도 분비된다고 한다. 그리고 옥시토신의 분비는 상대(혹은 집단)에 대한 희생적 행동을 유발한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 더 나아가 가족, 친구 등과 같은 집단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경우, 모두 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흔히 이를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얼핏 들으면 옥시토신은 마치 이타심을 강화시키는 마법의 물질 같지만 근래에 밝혀진 연구에 의하면 이 호르몬에도 숨겨진 그림자가 있다. 바로 옥시토신의 농도가 높을땐 이질적 개체나 집단에 대한 공격성이 증가한다는 것. 심지어 옥시토신이 활발하게 분비된 남성의 경우 새로운 여성을 보았을때 성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따라서 옥시토신 농도가 가장 높게 분비된, 육아기의 맘(mom)들은 내 아이의 편의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나와 내 아이가 아닌 존재에겐 철저한 무관심을 보이고, 더 나아가 과도한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맘충이 되는 것은 교양이 아닌 본능의 문제다.
  • 논의의 범위를 확대하면 이는 역사의 가장 어두운 면과도 연관되어 있다. 인간에게 자기희생이 가장 필요할 때는 언제일까. 바로 육아와 전쟁이다. 한 개인이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 둘로 축약되지 않는가. 단지 후자의 경우 그 대상이 종교냐, 사상이냐, 혹은 민족이나 국가이냐로 달라질 뿐. 그 좋은 사례는 2차 세계대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관동군과 나치의 SS부대를 떠올려 보라. 그 둘 모두 국가나 민족을 위해 개인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던지는 극한의 이타심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타인종을 가장 끔찍하게, 죄책감 없이 살육한 범죄 집단이기도 하다. 의학적으로 조사해 본 바는 없지만 그들의 옥시토신 농도가 일반인 평균보다 높았으리라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따라서 옥시토신이 과도하게 분비된 사람을 보며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내리게 된다. 만약 우리 편이라면 그는 성자가 될 것이고 적이라면 사이코패스로 보일 것이다.
  • 대중은 유영철이나 이영학같은 사이코패스들을 보며 저런 짐승만도 못한, 악마같은 놈이라며 우리와 다른 존재로 그들을 구분짓는다. 따라서 그들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 당연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는 그 유대감의 결여야말로 사이코패스들의 가장 큰 특징이지 않은가.*  그리고 앞서 설명한 옥시토신은 멀쩡한 일반인도 "나와 다르다"라는 사실 하나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 웹툰 원작의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사이코패스들이 우연히 한 고시원에 모여 살게 되며 펼쳐지는 극한 스릴러. 듣기에도 소름돋는 이 제목은 샤르트르의 희곡의 대사 중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작용을 이해한다면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타인에게는 내가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침 추석이니 굳이 글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면, 우리 모두 역시 어머니가 타인에게 맘충이 되어서까지 나를 지킨 덕분에 오늘날 까지 존재할 수 있던, 그 수혜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타인은 지옥이다를 보고 연휴라 오래간만에 본가의 어머니를 뵙고 와서 쓴 글]



*이는 다른 곳에서 약간 변형하여 인용한 내용임을 이미 밝힌다. 물론 나 혼자 하는 사색 중에서도 순수하게 스스로 창작해낸 내용이 얼마나 되겠냐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