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에는 가급적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아주 어릴때부터 저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엔 걷는 순간에도 무엇을 읽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문자에 대한 강박이 심해 어린시절 상담을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길을 건너다 몇번 차에 치일뻔 했거든요. 또 열살 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대들어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시험에서 5개 이하로 틀리면 무슨무슨 전집을 사주시기로 했는데 하필 제가 딱 5개를 틀렸더라고요. 어차피 한번 읽고 버릴 책을 뭐하러 사느냐며 다그치는 부모님께 저는 서재의 국어사전을 가져와 5개 이하라는 말엔 5개도 해당된다고 박박 우겨 그 전집을 받아냈습니다. 그래도 두번은 읽었던 것 같네요. 다른 집 아이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혼나는데 왜 나는 책을 읽는다고 혼을 내느냐, 뭐 그런 거로 부모님과 다투곤 했습니다. 아마 제가 좀 다른 환경에 있었거나 그 시절에도 유튜브같은게 있었더라면 좀 다른 강박증이 생겼겠지만 여하튼 제 삶은 그랬습니다. 이쯤이면 이게 취미인지 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제 환경이 좀 안정되고 친구들이 늘어나며 사춘기가 되자 글자에 대한 강박도 좀 덜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며 동시에 글을 쓰는 것에 취미가 붙더군요.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지나며 제 진로나 전공과는 무관하게 글을 쓰는 것이 제 가장 큰 무기이자 기쁨이었습니다. 물론 학교 밖에서 글로 상을 타 본 적도 없고 졸업 후에도 글로 밥벌이를 하지 못했을 만큼 졸필이고 어디 내놓기엔 너무나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그 시절의 제 글을 사랑합니다. 누군가에겐 젊은 날의 빛바랜 사진 하나가 소중한 것 처럼 제겐 그 시절의 글이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지금 저는 직업상, 그리고 여러 다른 이유로 제 이름으로 글을 낼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차피 다 제가 선택한 것이니 거기에 미련을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글은 제게 소중한, 자식같은 존재입니다. 이제 저는 자본주의에 한껏 찌들어 "내 전재산을 다 줘도 내 글들과는 바꿀 수 없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마치 어미가 아이를 낳듯 고통으로 써내렸노라고 장담할 열정조차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 글은 다 하나같이 소중한 자식입니다. 아무리 못생긴 아이도 그 어미에게만은 소중한 것처럼요. 그리고 이 블로그는 그렇게 태어난 수만 편의 글 중 일부가 세상의 빛을 보는 공간입니다. 제 가장 가까운 직장 동료들도, 제 친구들도, 심지어 제 가족들도 제가 이런 글을 쓰는건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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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딘의 양 어깨에 앉은 까마귀 Huginn과 Muninn |
Huginn과 Muninn은 북유럽 신화의 주신인 오딘의 양 어깨에 앉은 까마귀로 각각 생각과 기억을 의미합니다. 이 두 까마귀는 하룻동안 미스가르드를 돌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오딘에게 보고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제 생각과 기억을 정리하고자 그 까마귀들의 이름을 본따 블로그 주소를 지엇더니 구글의 AI님께서 제 이름을 HHMM라고 달아주시더군요. 발음하기도 힘들고 무슨 신음소리같은 이 괴상한 필명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몇번 제 글들이 카톡방과 여러 인터넷 게시판을 떠도는 것을 보았고 심지어 그 중 한두편은 친구들이 저한데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거기에 대고 이거 잘썼네, 라며 낯뜨거운 짓도 해봤습니다. 막상 해보니 그런 염치없는 짓이 생각보다 재밌더군요. 그 재미로 조국과 추미애는 사나 봅니다. 원래 제 내면에서 쓰였다 지워지고 잊혀힐, 그렇게 제가 죽으면 같이 순장되었을 글들이 세상의 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것은 기쁘고, 감사할 일이지만 자식을 자식이라 하지 못하는 제 처지가 떠올라 허탈해지곤 합니다. 물론 널리 퍼지라고 쓴 글이니 올리신 분들께도 감사하며 또 제 주장과 믿음에 동의해주시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 비난할 마음도 없고 또 당연히 법적 대응 따위는 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글의 출처를 명기해 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고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사적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뭐 제 글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하긴 우리네 인생이 다 그런 법입니다. 나에겐 소중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남에겐 별 흥미조차 없는 그런 세상. 네글자로 줄여서 안물안궁. 하지만 또 그런 삭막한 세상이기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공감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이 블로그는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이 혼자 쓰던 곳이기에 앞으로도 독재자처럼 제 맘대로 글을 써내릴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웹 상의 오지나 변방과도 같은 이곳까지 찾아와 교감해주시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그런 행운이 이어지기시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HHMM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