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9.

miscellaneous ideas for my own

  • 재무제표를 분석하다 보면 대개 밑바닥에 miscellaneous라고 표기된 항목들을 발견하게 된다. 회사의 경영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너무나도 작고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그런저런 활동들. 그런 하찮은 것들에 회계사, 재무담당자들 그리고 투자자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모두 뭉뚱그려 miscellaneous profits/expenses라고 표기한다.
  • 하지만 신중한 투자자라면 이 항목들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이따금씩 회사가 숨기고 싶어 하는 행위들의 단서가 그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불법이든 편법이든 그 무엇이든. 그리하여 때로는 매출액이나 EBITA가 아닌 바로 이 항목에서 그 회사의 진짜 본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분석하고 투자하고 투기하며 그로 인한 결과에 웃고 울지만 그것들이 내 본질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하루종일 돈을 벌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사람을 연기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는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그 날카로운 간극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단지 돈, 혹은 권력, 혹은 명예를 좆느라 그 마찰음을 외면할 뿐.
  • 그래서 나는 아무도 모를 이 곳에 진짜 내 생각들을 남기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내 실명을 달고서는 아무데서도 할수도 없는-사실 별 쓸모도 없는 그저 그런 잡다한 이야기들. 하지만 나에게는 경제와 시장을 예측하는 것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이 별볼일 없는 생각들이 더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대개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한, 철저히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paint by Saul Steinberg

2019. 9. 8.

희망의 가격

로또를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45개의 숫자 중 6개를 맞춰야 상금을 지급하는 로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바보같이 비싼 상품이다. 로또의 당첨확률은 800만분의 1보다 더 작은데*, 이 바늘구멍을 뚫고 당첨되었을 경우의 상금은 전체 매출액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서 세금을 떼고 나면, 실제 수령액은 매출액의 1/3로 줄어들게 된다. 수학적으로 1천원짜리 한 장의 기대값이 약 333원인 셈이니, 로또는 내재가치의 3배나 되는 증권이나 다름없다.

물론 적정가치의 10배 100배에 팔리는 주식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식들은 애초에 내재가치를 계산하기 어렵지 않은가. 게다가 잡주는 일시적으로 폭등하기도 하지만 결코 과대평가 수준에 장기간 머물수 없다. 하지만 로또의 기대값은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확정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적정 가격의 세배라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보다 더 안정적으로 더 비싼 상품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바보들만이 로또를 산다고 생각했다.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비싼 프리미엄을 내고 이걸 사나. 아무리 얼빠진 동네 바보라도 "돈놓고 돈먹기, 천원 내고 삼백원 먹기"라고 외치는 야바위꾼의 테이블에 앉지는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난 10여년간 나는 이 업계의 수백억대의 자산가들이나 명문대 박사학위를 사진 영재들이 로또를 사는 것을 보았다.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도,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도 로또를 산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희망을 필요로 하고 부자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으스대며 수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늘 부족함을 느낀다. 사람은 원래 만족을 모르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수입이 큰 만큼 지출도 크기에 가족들을 위해 이런 저런 비용을 모두 빼고 남는 돈도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나면 오늘의 나를 위한 돈은 몇 푼 안남게 된다. 당신의 연봉이 5천이든, 5억이든, 50억이든, 다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정, 연봉 50억은 솔직히 장담 못하겠다.) 해가 진 뒤 우리 직장인들의 삶은 다 비슷하다. 연봉 5천의 김과장은 3호선을 타고 연신내로 돌아갈 터이고, 연봉 5억의 대니 킴은 포르쉐를 몰며 타워펠리스로 향하겠지만 집에 도착한 그들은 똑같이 윗집 남편, 아내 친구 남편, 딸내미 반장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좌절한다. 서른살이 넘으면 삶의 테두리가 어느정도 선명해지고 자신의 미래도 적당히 그려지지 않는가. 그 추세에서 벗어나려면 한 번의 모험을 해야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다. 무섭다. 따라서 작은 비용으로 삶을 바꿔줄 희망을 찾게 된다. 그 마음 만큼은 부자도 똑같지 않을까.

게다가 로또는 그런 희망을 독점한 유일한 상품이다. 천원의 소비로 인생이 바뀌진 않는다. 심지어 개폭등할 알트코인을 찾았다고 해도, 고작 천원어치를 사면 당신의 미래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다. 뭐 친구들에게 술 한번 사고 정말 운좋으면 좋은 시계도 하나 살수 있겠지. 천원으로는 이젠 컵라면이나 김밥한줄도 사먹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 돈으로 로또를 한장 사면 수십억 어치 상금을 받을 꿈에 부풀어 한주를 지낼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나. 국가는 이런 극단적 페이아웃 구조를 지닌 상품들을 사행성이라는 명목으로 금지하면서도 뒤돌아서 열심히 복권을 판다. 하기사 담배도 인삼도 그리고 카지노도 마찬가지지. 로또는 그렇게 희망을 독점하고 있다.

공급이 제한적인 독점시장의 가격은 늘 균형점을 넘어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렇게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3배의 프리미엄이 붙어도 불티나게 팔리는 로또는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내일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가 지나고 나면 불꺼진 업무지구 내 조그만한 한 편의점에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대형 금융사의 등기이사도 청소부도 계산대 앞에 나란히 서서 서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눈 뒤 들뜬 마음으로 여섯개의 숫자를 세심하게 고른다. 누구는 사랑하는 이의 생일을 찍을 것이고, 누구는 자신만의 행운의 숫자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그 숫자들 만큼이나 당첨금을 어떻게 쓸지 그 꿈도 다양하겠지. 그렇게 제냐 수트와 아식스 츄리닝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들뜬 마음으로 각자의 꿈을 한장씩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순간 만큼은 모두가 평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희망의 값어치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소중한 법이니까. 부자에게도, 또 빈자에게도.



*1/45C6=8,145,060

2019. 9. 3.

박서보와 국립현대미술관

우리나라의 여러 미술관 중에서도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을 가장 좋아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국립]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품위와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대중들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는 그 자상함에 있지 않을까 한다 . 그리고 지난달 막을 내린 박서보의 전시회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전시회는 특이하게도 작가의 그림을 역순으로 전시했는데, 아마 이는 아래 설명할 모종의 이유 때문이리라.

미술에는, 특히 그 감상에는 정답따윈 존재하지 않으니 이를 내 멋대로 해석해보려 한다. 1950/60년대의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그랬던 것 처럼 박서보 역시 황폐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서구를 동경하는 분위기에서 자랐을 것이다. 한끼를 먹으면 다음 끼니는 굶어야 했고 자고 일어나면 동네의 누군가가 죽어나가던, 우리가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머리 노오란 백인들의 문화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리라. 대다수의 1세대 한국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서구의 화풍을 모사하는 것으로 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술은 모방할 수 있어도 영혼은 베낄 수 없어 그런 것일까. 다른 선후배/동료 작가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내적 갈등을 겪은 끝에 전통적 화풍으로 회귀한다.

내가 금융에 적을 두기 전, 고 이만익 선생님을 뵙고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서양화풍을 곧잘 따라해 '너는 미술에 재능이 있다' 라는 말 한마디에 겁없이 파리로 떠났지만 거기에서 자신은 개성이 없는 아시아 변방의 한 그림장이에 불과했다고. 그러다 결국 그는 한국의 전통미술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한다. 박서보 역시 이와 비슷한 단계를 거쳤다. 그는 1960년대 초기 파리에 머물며 당시 유행하던 엥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형질(原形質) No. 18-64, 1964년 작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한 한계를 느꼈으리라. 막걸리에 파전을 즐기던 우리가 파리의 어느 하우스파티에 초대받아 와인과 치즈를 대접받을 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 처럼, 애초에 파리지앵으로 태어나지 못했던 그 역시 어느 순간 엥포르멜이라는 단어부터 표현기법까지,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 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 그의 작품에선 점차 한국적 정취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유전질(遺傳質) No.2-68, 1968년 작
그가 단색화로 나아가기 전, 당시 유행하던 팝아트적인 느낌에 오방색을 입힌 60년대 후반의 작품은 그런 내면의 갈등을 넌지시 비추고 있다. 스윙스같은 토종 랩퍼들이 아무리 흑인 흉내를 내고 혀를 돌려 꼬아봐도 빌보드 힙합 레이블에 이름을 올리기는 커녕 흉내쟁이에 불과한 취급을 받듯, 그 시절 파리에 머물던 1세대 화가들도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수가 한국 고유의 미적 세계로 회귀한다. 아마 이 작품은 그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묘법 No.991004 / No.000321, No.000327
이후 그는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를 이용해서 자신만의 단색추상화 세계를 구축한다. 더 나아가 작품의 재료로 자연친화적인 닥종이를 사용하면서 단순히 색채로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그는 더욱 깊게 전통적 미학의 세계로 파고든다. 그렇게 그는 한국의 단색화의 대부로 불리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작가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묘법(描法) No.180503, 2018년 작
묘법(描法) No.071208, 2007년 작
앞서 말했듯이 이 전시는 독특하게도 작가의 작품을 시대적 역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한국은 더이상 세계 예술계에서 듣도 보지도 못한 무명의 국가가 아니라 작지만 한편으론 선명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은 신생국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예술가들은 대중예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이나 클래식 그리고 무용에서도 모방을 넘어 그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덕에 BTS가 개량한복을 억지로 입고 춤을 추지 않아도, 싸이가 자신의 신곡에 자진모리 장단을 넣지 않아도, 조수미가 '내 발성의 힘은 김치덕분'이라는 뭐 그런 국뽕적 요소를 강조하지 않아도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동시대 문화와 잘 어우러진다. 그런 오늘날의 눈높이로 볼 때 1세대 화가들의 전통적 미학에 대한 집착은 살짝 고루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칠줄 모르는 수행자 역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한번 자신의 화풍에 변화를 주었다. 그는 형광색이나 밝은 파스텔 톤, 혹은 도발적인 핑크 등 전통적인 한국의 색채에서 벗어나 마치 마크 제이콥스 같은 명품브랜드들과 콜래보레이션이라도 할 것 같은 세련된 색채로 자신의 작품 영역을 확장했다. 여든 여덟살의 노작가의 변신 치고는 꽤나 파격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만큼이나 시계열의 강박에서 벗어나 세련된 현대작들을 먼저 배치하여 관객의 흥미를 이끄려 노력한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자들의 신선한 발상에도 박수를 보낸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한 그들은 이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박서보의 전성기 시절의 작품들, 칙칙하고 올드하지만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앞에 배치하고 싶은 유혹들을 수도 없이 느꼈을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정석적인 전시회의 공식에서 벗어나 아흔을 바라보는 작가의 현대적인 감각의 새 작품들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더 매력을 느끼길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요란한 단어들의 조합 없이는 예술을 설명하지 못하는 일부 미술평론가들이나 불친절한 작가들과는 달리, 그들은 우아하면서도 친절한 태도로 손을 내밀어 우리를 현대미술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MMCA, ♡MMCA

2019. 9. 2.

분노하지 않는 자는 조국(祖國)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사진출처: 중앙일보 (링크)
  •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믿기지 않아 내가 느끼는 감정이 경악인지 분노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는 오늘 11시 경 자신에게 쏟아진 각종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하겠다며 여당에 통보했다고 한다. 정치부 기자들과 법무부 출입 기자들은 기존 일정을 바꾸지 못해 하루 연기해줄 것을 주문했지만 조 후보자는 기자단의 요청을 거절한 채 셀프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이 간담회에는 민주당 출입기자들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법부는 직접증거로 판단하지만 대중과 유권자는 정황증거만으로도 정치인들을 재단한다. 조국은 이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그저 폴리페서인 줄 알았던 시절, 본인 스스로가 수많은 보수 정치인들을 정황증거로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은 자신의 수많은 혐의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정말 억울하고 대중의 분노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왜 이런 비겁한 방식으로 해명에 나서는가. 우리는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지 않는 소인배 모략꾼의 추악한 면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어제 올린 글에서 그를 조로남불이라고 조롱했지만 사실 내로남불은 그의 수많은 악덕 중에서도 가장 하찮은 것이다. 그에게는 범죄 혐의가 짙다. 조민 양이 논문을 위조한 것은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세상 어떤 교수가 고딩이 찾아와서 제1저자를 시켜달라는데 그걸 들어주겠는가. 이것은 명명백백히 조국 후보자의 혐의인데 그 가족간 범죄를 밝히는 것이 패륜이라면 여당 대표는 당장 정유라한테 달려가 무릎꿇고 패륜의 죄를 빌어라.
  • 그의 해명 중 가장 말이 안되는 부분은 사모펀드에 대한 논란이다. 설정금액이 74억이라는 조항은, 말 그대로 74억을 넣겠다는 말이지 그 한도 이하에선 지 맘대로 넣을수 있는 조항이 아니다. 세상에 그런 계약서가 어디있나. 회사가 직원과 계약을 할 때 연봉이 1억이라고 하면 그 이하로 아무 금액이나 줘도 되는 경우를 보았는가. 여당의원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예로 들어가며 국민들을 병신취급하는데 세상에 그렇게 돈을 굴리는 투자자는 없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그런 옵션 조항을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럼 그 내역이 계약서에 소상히 명시되어있어야 한다. 참고로 그 사모펀드는 조국과 일가친척의 돈을 받아 관급공사를 수주했는데 최순실이 운영한 K스포츠재단과 무엇이 다른가.
  • 이러한 의혹에 대해 조 후보자는 사모펀드 자체를 잘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그럼 둘 중 하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금융상품에 전재산을 몰빵하는 등신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범죄자거나. 둘 중 어느쪽이든 법무부장관 자리에는 맞지 않는다. 그가 서야할 곳은 기자간담회도, 국회청문회도 아닌 바로 검찰의 포토라인이다.
  • 내가 더욱 분노하는 것은 국민을 대하는 그와 여당 그리고 정부의 태도이다. 과연 조국은 이 괴상한 간담회가 중도층을 분노케 할줄 몰랐을까? 아니 그는 분명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수를 차지하는 중도 대중을 버리고 소수 여당 지지자들의 신임을 굳히는 길을 택했다. 자신의 향후 거취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당 친위대에게 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가, 또 여당과 청와대가 만약 민주적 정당성에 무게를 뒀다면 야당지지자는 물론이고 중도층에게 공분을 일으키는 이런 해괴한 방식의 기자회견을 기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지지하는 광신도들만을 국민취급하겠다는 저 태도는 반민주적이며 다분히 독재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 과거에도 이런 분노를 느낀적이 있다. 3년 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뜨거운 화두였을때 불편한 질문을 던진 기자를 매섭게 쏘아보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내가 그때 분노한 이유는 좌파빨갱이라서가 아니라 권력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국 전 민정수석에게 분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우파틀딱이라서가 아니다. 위정자가 당신을 개돼지 취급하는데 분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개돼지나 다름이 없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련다. 조국(丙申)에게 분노하지 않는자는 조국(祖國)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2019. 9. 1.

흑석 김의겸 선생과 조로남불

아직도 끝없이 터져나오는 조국의 지저분한 과거를 보며 나는 김의겸을 떠올렸다. 나이 쉰 다섯에 전세금과 아내의 퇴직금, 그리고 은행 대출을 온통 끌어다 재개발 상가에 몰빵하신 고독한 승부사, 흑석 김의겸 선생. 물론 그도 내로남불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한때 재개발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고위직들의 부동산투기에 분노하던 그 언론인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관사에 기어들어가 흑석동에 자신의 여생을 베팅했다. 무엇이 좀스러운 언론인으로 오십평생을 살아온 그를 흑석동의 복덕방으로 이끌었을까?

2017년 언젠가의 그를 헤아려본다. 오랜 투쟁끝에 청와대에 모인 과거의 운동권 진보 동지들. 김수현, 조국, 김상곤, 김현미, 장하성 등. 그들과 웃으며 사랑채를 나서 뜰을 걸으며, 보통의 중년들이 그러듯 그들도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은 나눳을 것이다. 장 실장, 이번에 잠실 집값 많이 올랐다면서? 쏠쏠하겠네? 허허 뭐 다 그렇지, 김 장관 김 실장님들, 부동산 정책 살살 좀 해주세요~ 우리 집사람 걱정이 많아요, 허허허. 뭐 그리 걱정하십니까. 저도 과천 재건축 보유자입니다. 하하하. 뭐 이런 대화가 계속될 동안 그는 대범한 척 함께 껄껄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쓰렸을 것이다. 가재, 게, 붕어, 개구리들의 지지를 받아 도착한 청와대에서 진짜 흙수저는 그 하나 뿐이었다. 심지어 집을 파시라고 외치던 김현미도 집이 두 채라 회의실 저 구석에서 복덕방에 전화를 걸고 있는 것 아닌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러 도착한 청와대에서 혼자 가재나 붕어같은 해물탕 식자재 취급을 받던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대개 많은 집에서는 아내가 집을 사자고 독촉하고 남편은 만류하다 꼭 사단이 난다. 거봐요, 집은 여자 말 듣는거라니까. 우리 아버지들은 그렇게 평생을 시달려왔다. 그도 별반 다를 바 없었으리라. 적폐를 청산하고 가진자들을 혼내 주기 바쁜 그를 두고 그의 아내는 바가지를 긁었을 것이다. 지난번 청와대 부부동반 모임에 가보니 다들 강남에 집 한두채 씩 떡떡 사던데 당신은 뭐냐, 조 수석님은 뭐 이상한 펀드에 수십 억을 넣고 심지어 대통령 아들도 국가사업으로 크게 해먹던데 당신은 도대체 뭐하러 청와대 대변인을 하고 있는거냐. 어허 이 여편네가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어. 그게 그런거 하라고 만든 자린줄 알어? 그럼 뭐하려고 만든 자린데? 당신 빼고 다 부동산 하나씩 끼고 있는거 알기나 해?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아내는 문을 쾅 닫고 나가 문간방에서 잠들었을지 모른다.

어느날 아침, 벌개진 얼굴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김현미 장관의 뒤에서 호갱노노 앱으로 부동산 실거래가를 검색한 뒤 환하게 웃는 조국 민정수석과 장하성 정책실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깨닫는다. '저들이 왜 부동산을 잡아.. 이대로 가단 나만 바보되는거야..' 그날 그는 고교 후배를 만나 아구찜에 소주를 너댓병 시켜 잔뜩 마시고선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도착한 뒤, 자신을 흘겨보는 아내를 붙잡고 그는 자신의 계획을 소상히 털어놓는다.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역시 내 남편 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며 다음날 학교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정산받았다. 그 역시 다음날 청와대 관리자를 불러 관사에 비는 방이 있는지 확인한 후 가족들을 모두 이주시킨 뒤 전세금을 돌려받는다. 청와대 대변인이 가족들과 함께 경호원들이나 사는 관사에 살다니. 모양새가 좀 빠지긴 하지만 뭐 어떠냐. 금수저들 사이에서 혼자 흙수저나 물고 있다 5년 뒤에 쫒겨나는 것 보다야 낫지.

그렇게 그는 아내의 퇴직금과 전세금을 가지고 복덕방으로 향한다. 이보소. 이 동네서 가장 좋은 물건이 뭐요. 어이구. 테레비죤에서나 보던 하늘 같으신 청와대 대변인께서 왕림하셨는데 누가 그를 속일 소냐. 복덕방 주인은 벌벌 떨며 콤퓨타를 켜고 리스트를 쭉 뽑는다. 이건 얼마요? 복덕방 사장은 오른 부동산이 자기 죄라도 된 양 어쩔줄 몰라하며 대답한다. "이,이십오억입니다만." 망할. 아직도 모자른다. 이 낡은 상가가 나같이 훌륭한 언론인도 사지 못할정도로 오르다니. 이 더러운 세상. 하지만 그는 기름기 좔좔 흐르는 조 수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x발 조 수석 딸은 이번에 의전 보냈다던데 내 자식을 가재 게 붕어로 살게 할순 없어..." 그는 얼마 전 술을 함께 마신, 은행 지점장으로 있다던 고등학교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그런데 아뿔싸. 김수현 그 양반이 발표한 뭐시기 정책에 걸려 대출이 안나온댄다. 제길. 어쩐지 생긴것 부터 재수가 없더니만. 그의 침묵에서 무엇인가를 읽었는지 그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저기.. 하지만 형님께서 힘을 좀 써주시면 제가..." 그 후배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김의겸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후배의 은행은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넘겨 대출을 해주고 청와대 대변인은 흑석 김의겸 선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윽고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호되게 털린 김의겸 선생은 짐짓 의연한 태도로 대중에게 감성팔이를 시도해본다. 노모를 모시려고 했다, 이건 아내가 했다. 하지만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작년까지의 그가 그랬던 것 처럼 서민들도 다 한번 씩은 복덕방에 들렀다가 한숨만 지으며 나온 적이 있지 않은가. 다만 그들에겐 들어갈 관사와 복덕방 주인을 움츠러들게 할 권세, 그리고 전화 걸 은행지점장이 없었을 뿐이지. 대중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았고 김의겸 선생은 결국 대변인 직을 사퇴했다. 청와대도 버리고, 아내도 팔고 노모를 팔 지언정 흑석동 재개발은 못팔겠다는 그의 의지에 화답하여 올해 여름부터 부동산은 가파르게 반등했다.

최근 온갖 추문과 범죄혐의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작태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올해 초 매섭게 공격당하던 그는 아마도 기자회견 중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우 열뻗쳐서 정말, 그래 시발 나도 용되고 싶어서 재개발 샀다 왜! 근데 너네 이 중에 내가 가장 깨끗한건 아냐? 내가 김수현처럼 재건축 조합원이면서 지꺼만 피해서 부동산대책 발표하기를 했어, 김현미처럼 토지형질변경을 해서 농지에 건물을 올렸어. 어우 너네 조국은 어떤줄 알어? 재 딸 뭐하는지 봤어? 야 시발 내가 제일 깨끗해!"

무엇이 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온 그 쉰 다섯의 장년을 복덕방으로 밀어넣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위의 대화는 전적으로 본인의 상상력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0년 예산안 평가, 홍남기의 MB화(★★★★☆)

지난 29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513조 5천억원으로 확정하여 오는 9월 3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예년보다 약  9.3% 늘어난 규모로 R&D, 에너지(환경) 그리고 SOC투자지출을 대폭 늘렸다. 나는 과거 포스팅에서 경제불황이 온다면 한국은 과거 리만사태때보다 더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링크), 만약 국회에서 이 예산이 통과된다면 그 예측은 빗나갈 것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재정정책은 어디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지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경제침체 상황에서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지, 정부가 기가막힌 사업에 돈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바보같은 사업에 돈을 퍼부어도 그 돈을 벌어들인 약싹빠른 사업가들은 현명하게 돈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케인즈경은 아예 땅을 파서 돈을 묻으라 했다.) 따라서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만 본다면 정부의 재정적자 폭만 보면 되지, 구체적 예산안을 뜯어볼 필요는 없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내년도 적자재정은 GDP의 약 1.6-1.9%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을 뛰어넘는 가장 공격적 재정지출이 될 것이다.

이 공은 마땅히 홍남기에게 돌아가야할 것 같다. 지난 국회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그는 내년도 예산안의 첫자리가 "5"가 될 것이라며 언질을 주긴 했지만, 그가 실제로 가져온 숫자는 대범하게 500조 선을 훌쩍 넘긴 513.5조였다. 나는 그를 무색무취의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홍남기를 재평가해야할 것이다. 그는 MB와 강만수 못지 않게 공격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

재정건정성에 집착하는 일부는 방만한 예산을 지적하며 국가부채수준을 운운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적은 세가지 이유에서 틀렸다. 첫째,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논할 때가 아니다. 재정건전성은 경제가 건강할 때 관리하는 것이지 위기상황에서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올해 발표되는 모든 데이터는 단 한가지도 빠짐없이 지난 10년 이래 가장 심한 경기침체를 예고하는데 지금 부채비율을 운운하는 것은, 마치 트럭에 치여 피를 줄줄 흘리는 응급환자를 두고 혈중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으니 살을 빼라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나중에 따지자. 둘째, 한국의 공공부채는 공기업의 부채를 포함하더라도 약 GDP의 70%선으로 선진국이나 OECD평균에 비하면 그닥 높지 않다. 다시말하지만 국가부채가 낮은 나라는 탄자니아나 북한, 고조선같은 나라들이 가장 낮다. 우리가 1998년에 겪었던 사태는 달러표시 부채의 상환이 문제였지 그 당시에도 정부는 원화표시 부채를 갚는 데엔 아아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셋째, 재정건전성을 대하는 대중의 기본 시각은 부채가 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이 존재한다. 폐쇄된 시스템 아래서는 한 사람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다. 내가 은행에서 백만원을 빌린다는 것은, 누군가 은행에 백만원을 예금했다는 것과 같다. 즉 한국의 대외부채/자산이 같다면 현재 우리가 진 빚은 지금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 것이지, 우리들의 후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폴 크루그먼의 글을 추천한다.(링크) 부채는 결코 악이 아니다.

물론 좋아하기는 아직 이를 수 있다. 국회는 이 수퍼예산을 반드시 반대할 것이고, 특히나 재정건전성에 변태적으로 집착하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예산안을 축소하려고 들 것이다. 현재 여야는 세가지 이슈, 1. 조국 임명 2. 선거법 3. 내년 예산안 대립하고 있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1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2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야의 합의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양보할 카드는 바로 3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예스맨에 불과한 줄 알았던 홍남기가 이런 공격적인 예산안을 준비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앞서 그는 차기 총리로까지 거론되는 김현미의 분양가상한제를 유예시키는 등, 경제부총리로서의 목소리를 점차 내고 있는데 부디 현 정부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바란다. 애초에 우리가 청와대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은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바라기 때문 아니었던가.


[다만 별을 4개만 준 것은 세입계획에서 법인세의 감소를 가계에 대한 약 8.1조의 세수 증가로 채웠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인 확장적 예산은 감세안을 동반한 공격적 적자예산이라고 생각한다.]

2019. 8. 30.

난민이야기 2

  •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은 주인공 피터 파커에게 말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remember,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sibilities] 이 명제의 대우는 "큰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큰 힘도 없다"인데 홍성대께서 가라사대, 명제가 참이면 대우도 참이라 하셨다. 이 격언을 기억한 피터는 히어로 스파이더맨이 되었지만 이를 무시한 아시아의 두 나라-중국과 일본은 빌런이 되었다. 현재의 G2인 중국은 미국과 싸워줄 제대로 된 우방국 하나 없으며 예전 넘버 투였던 일본은 (강제)우방 한국에게도 종종 무시당한다. 그들은 왜 친구가 없나? 두 나라 모두 뒤따르는 큰 책임을 모른척하고 이득만 취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큰 책임을 받아들인 피터파커가 히어로가 될 때 이 체리피커들은 왕따빌런이 되었다. 우리의 주권을 침해해 사드제제를 가했던 중국이 홍콩의 인권문제가 자국 주권문제라고 주장해도 한국은 중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던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침범당할때, 우리는 일본의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얍삽한 친구를 반장으로 추대할 사람은 없듯 국제사회는 이기적인 국가의 헤게모니를 따르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부끄럽게도 한국은 OECD 최고의 체리피커이다. 세계 제일의 최첨단 휴대폰과 반도체를 만들면서 농산물 협상에서는 개도국 지위를 요구하며 해외자본을 유치한다면서 막상 들어온 외국투자자들을 온갖 비겁한 방법으로 괴롭힌다. 해외원조와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더하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외원조는 GDP의 약 0.15%로 OECD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그리스나 헝가리(0.13%)와 꼴등을 다투고 있다. 심지어 정확히 동유럽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슬로베니아 국민들이 (GDP대비)우리보다 더 많은 해외 원조를 한다. 한국의 난민수용률은 전세계 약 139위로 최저를 달리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선진국을 바라보는 G20국가 중 하나의 성적이라고 할 수 있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싸이나 BTS급 대우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의무는 후진국만큼, 아니 그만큼도 지지 않으려 한다. 이런 한국은 그저 작은 중국일 뿐이고, 가난한 일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나라가 국제사회에 번역도 엉성한 "독도는 우리땅"자료를 들이민다면 과연 몇이나 그를 진지하게 읽어보겠는가. 우리가 더 많은 권리를 주장하려면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 한국은 이민자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도대체 그 준비는 언제 되는 것인가. 한국의 1인당 기부액은 국민소득 3천불일 때부터 3만불이 되도록 OECD평균 언저리에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뭐 한 300만불 쯤 되면 받겠단 말인가. 모든 나라들이 난민을 기피한다. 세상에 난민을 받으며 쾌재를 부르는 나라는 없다. 그러니 먹고 살만한 나라들이 그 짐을 나누어 지자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원조를 받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은 아직도 거지행세를 하며 그 짐을 기피하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쩌리취급 당한다고 억울해하지나 말든가.
  • 1996년 FBI는 미국 해군정보국에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킴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26살에 한국을 떠난 이래 줄곧 미국에 살며 20년 넘게 미 시민권자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기밀을 한국측에 넘겼다. 그 사건 이후 미국은 "한국인들은 민족적 유대가 지나치게 강해 미국계 한국인들을 믿을수 없다"라며 정보국 내 한국어 linguist들을 대거 백인이나 라틴계들로 대체했다. 헐리우드에 자리잡은 한국계 배우, 존 조의 첫 데뷔작은 해롤드와 쿠마인데, 그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를 처음만난 한국인들이 교포인 해롤드에게 김치를 먹어보라고 권하고 안면도 없는 사촌의 취업 청탁을 서슴없이 한다. 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가 그렇다. 꼭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십수년 씩 살면서도 영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도 종종 찾아볼 수 있던 LA한인타운에서는 아주 흔하게 벌어지던 일이니까.

    사실 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난민의 모습 아닌가. 우리는 미국, 혹은 서구 유럽사회의 한인차별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난민문제 앞에서는 갑자기 KKK단이 쓰던 흰색 두건을 꺼내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만약 "한국인들은 미국으로 이민와서 같은 한국인들을 불법고용하고 미국백인사회에 어울리려고도 하지 않으며 자기네들끼리 이상한 음식과 교육방식을 고집한다, 김치 고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응당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우리의 분노가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한국이 그런 태도를 지녀서는 안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대중의 공분을 사는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우리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게다가 지정학적으로 군사&경제로 세계 1,2,3,5위와 맞닿아 있는 나라는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좋든 싫든 국제사회의 책무를 나눠가져야하는데, 문제는 그 짐을 국내에 배분할 때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비용은 내국인 중 가장 취약계층에게 몰리게 된다. 그들은 말도 안통하는 핫싼의 이웃이거나 방글라데시에서 온 멧푸탄과 인력시장에서 경쟁하는 장삼이사들이다. 그들에게 왜 한국이 국제사회의 짐을 나누어야 하는지 설명해봤자 그들은 '그건 잘난 당신네들 얘기지 여권도 없는 내겐 오늘이 전부요, 내가 알게나 뭐요' 라고 답할 것이다. 대신 삶이 조금이라도 덜 팍팍하고,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지위를 파악할 시아를 가진 정우성같은 상류층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우리도 인도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짐을 국내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모두 지게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가진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아 난민사업을 지원하겠습니다, 난민을 받으면서도 여러분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지 않도록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대중은 조금 덜 분노하지 않았을까.
  • 대중은 원래 이기적이고 뻔뻔하다.(링크) 난민들 보고 한국에 땅 맡겨놓았냐며 반대하면서도 멀쩡한 조합원들보고 임대주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자신은 소득세도 면제받고 복지혜택은 누리면서 열심히 노력해 돈 번 사람들보고 세금을 소득의 절반씩 내는 것이 정의라며 윽박지른다. 하지만 공인이라면, 그리고 좋은 정치인이라면 이기적이고 뻔뻔한 그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아, 하지만 내가 가진 재주라곤 대중들에게 내재된 이중성을 꺼내 조롱하는 것 뿐이니 절대 정치판엔 기웃거리지 말아야지. 이대로 돈이나 열심히 벌고 밤에는 이름 모를 글이나 쓱쓱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