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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 |
2021. 4. 11.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전
2021. 4. 10.
0.7%의 확률
나는 트레이더다. 세상에 고작 0.7%의 확률에 베팅하는 바보 같은 트레이더는 없다. 사실상 그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비참하게도 지난 몇 주간 나는 그 멍청한 확률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고 무릎 꿇고 애원해야 했다. 0.7%이라니. 이 얼마나 하찮은 숫자인가.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희망에 더더욱 매달리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청천벽력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던 그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금요일 오후,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그 희망들을 잔인하게 잘라냈다. 날개가 있는 것은 추락하기 마련이니 희망을 품은 우리들은 결과를 받아본 순간 더욱 절망할 것이다. 그들이 의지할 사람은 나뿐이니 적어도 나만큼은 그 순간 더 절망해선 안되었다. 기업이 재무제표에서 잔존가치가 얼마 남지 않은 악성부채를 상각하듯이 나 역시 0.7%의 희망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막상 겪어보니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더라. 예상하지 않았던,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비극을 약간이라도 막을 방법은 돈에 의지하는 것 외엔 없었다. 얼마 전 의사가 내게 심부전증이 의심된다고 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그날 내 심장이 그랬던 것 아닐까. 제멋대로 날뛰는 심박을 애써 무시하고 최악의 경우를 모면할 비용을 계산했다. 반쯤 마비된 머리로 어떻게 그 숫자를 도출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그 계산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것들이 몰락했다. 미국채는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고 빌황의 펀드는 하루아침에 파산했으며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여당의 지지도는 보궐선거에서 25개 구 모두에서 패배하리만큼 떨어졌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무엇도 나보다 더 빨리 침몰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0.7%란 확률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신에게 애원하는 것과 동시에 희망을 버리기를 반복하는것, 또 반복해서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신이 내 기도를 들었는지 한낱 인간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고, 버렸다고 생각한 희망은 문득문득 고개를 쳐들어 나를 더욱 괴롭혔으며 밥은 먹는 족족 체했고 별일 없이도 숨을 헐떡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간절히 바랬던가. 암울하게 글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0.7%의 확률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구원했다. 사실 담당자가 몇몇 특이사항을 간과하는 바람에 그 확률을 잘못 전한 것이라고 했다. 화가 나기는커녕 울음이 터져 나오도록 기뻤다. 지난 몇 주간 나는 삶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가장 혹독한 방법으로 깨닫고 있었으니 지금 그 고통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 처음 전화를 받던 날이나 마지막 날이나 여전히 시장에서는 여러 가격들이 어지러이 점멸하고 있었고, 창밖에선 봄이랍시고 벚꽃이 피고 지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가장 끔찍한 지옥에서 엉금엉금 기어돌아왔다.
이렇게 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삶에서 최악의 비극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또) 겪을 것이며 궁극엔 나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미쳐 생각지도 못한, 참으로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비극을 선사하곤 한다. 그저 주식이 좀 빠지고 오른다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앞차가 끼어든다고 빵빵대며 부잣집 친구 놈이 전화해서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듣는 이 삶은 얼마나 평온한가. 내 일상이 또다시 부서지기 전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보고, 느끼고, 웃고, 만나고, 나누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2021. 3. 13.
도조 히데키와 아스트라제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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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로 접종을 거부한 채 남의 백신접종을 구경하는 국가지도자 |
2021. 1. 3.
고루한 비관론자를 위한 해는 없다(No year for old bears)
2020. 12. 23.
황제 네로의 시, 그리고 문준용의 예술
2020. 11. 29.
위에 민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리고 비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정치지도자는 누구일까. 그 물음에 우리는 아마 콧수염을 기른 독일(오스트리아)인이나 러시아(그루지아)인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마오쩌둥이다.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흔히 그의 치세 아래서 약 3천만에서 최대 1억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그리고 천안문사태까지. 여느 아시아 나라들의 근대화가 대개 그러했듯 중국의 근현대사도 피와 총탄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광기의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말수가 적다. 와전된 말 한마디, 혹은 동료들 사이의 작은 오해가 온 마을을 도살장으로 둔갑시키곤 하던 시대였으니까. 말을 아끼고 생각을 숨기고 감정을 감추는 것, 그것이 가장 기초적인 생존법이었던 시대를 목도한 이 작가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그 시대상을 그려냈다.
작가가 밝혔듯이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자화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그림 안에서 위에 민쥔은 필사적으로 웃는다.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온 몸을 고통으로 배배 꼬면서도,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죽음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웃는다. 웃음이 광기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 그런 것일까.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는다는데 설마 총알을 박아 넣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과 절규가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저 심연과도 같이 어두운 입을 가리고 다시 그림을 보라.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 아닐까.
"위에 민쥔의 작품은 특유의 표정과 풍자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리시엔팅
그의 작품이 런던이나 뉴욕의 경매에 올라온 지도 벌써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다. 나는 너는, 그리고 세계는 그의 불편한 함박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외면한다. 그 저변의 시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거부한다. 이제 그의 웃음은 너무나 흔해 마치 하나의 패션이나 캐릭터상품으로 전락했고 가장 슬픈 웃음을 띤 작품은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바로 전 세기만 해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최고의 가치라고 외치던 자유진영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일당독재국가를 경제파트너로 받아들였고 전체주의와 타협했다. 자본과 물자는 끊임없이 중국의 국경을 넘나들지만 자유와 이념은 그렇지 못하다. 죽의 장막은 아직도 실존하며 새로운 도약을 이끈 구글과 아마존조차도 그를 걷어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장막의 뒤켠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비극은 서서히 잊혀지면서도, 다른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위에 민준은 그 불편한 현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웃는 동물이라고. 그리고 인간이 짐승으로 돌변하는 시대에 그는 더더욱 웃어야 했다. 우리는 기술과 다양성이 지배하는 21세기가 이전의 시대와는 아주 다르다고 믿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슬프게도 이번 세기에도 위에 민쥔의 발작 같은 웃음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김창열, the path
언뜻 단색화의 열풍에서 살짝 비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창열을 빼놓고 한국의 현대미술사를 논하긴 어려우리라. 회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아 그 물방울' 하고 알아차릴 정도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이미지는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이 화가는 한때 자신의 문패에 이름 대신 물방울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물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가벼이 대답했지만 젠체하는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아내곤 한다. 아마 각각의 해석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어떤 대조를 읽어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수천 년을 이어온 상형문자와 순간적으로 사라질 물방울 사이에서, 어떤 이는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또 누군가는 철저한 관념의 세계인 서예와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미지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읽었을 것이다. 마치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파리에 정착한, 조부에게 서예를 사사받고 현대화가로 살아온 그의 삶과도 같이.
최근 갤러리현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1929년 생인 이 노화가의 나이와 올해 작품활동이 뜸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쩌면 올해가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1972년 파리에서 한 무명의 화가가 세수를 하다 그만 캔버스에 물을 튀기고 만다. 어지럽고 좁은 아틀리에에 세면장이 따로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는 다급하게 캔버스의 물을 닦으려다 순간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본다. 김창열의 물방울이 태어난 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마치 작품에 그려진 문자처럼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2021년 1월 5일 김창열 화백이 작고하셨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니기를 바랬건만. 그저 부디 편히 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