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9.

병신오인방(丙申五人幇)

한때의 히어로가 빌런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롭다. 개미들의 재테크 희망이던 신라젠이 3연방 하한가를 찍는 일이나, 또는 어린시절 즐겨보던 TV프로의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 이후 성인물의 주인공이 되었다든가. 그런데 그 악몽이 매일 9시 뉴스마다 반복되고 있다. 한때 영웅이었던 몇몇 진보 지식인들은 권력과 위세를 얻으며 과거 자신들의 주장과 정확하게 역행해서 사익을 추구하며 쫌생이로 전락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이제 인정하자. 그들은 정의롭지도 않고 쿨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그저 열등감에 미친 찐따였음을.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다섯을 뽑아봤다.

이 다섯명은 을사오적과 다름없다. 나름 지배층이나 엘리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나라를 골로 보내고 있다. 또한 그들은 각기 다른 시점에 추락했지만 그 출발점은 모두 2016, 병신년의 박근혜의 탄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을사오적을 본따 병신오적(丙申五賊)이라고, 아니 워딩을 좀 현대적으로 다듬어 병신오인방(丙申五人幇)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부디 동음이의어로 인한 저급한 해석은 삼가주길 바란다. 또한 뻑뻑한 키보드로 급하게 쓰는 글이니 다소간의 오타는 양해해주길 바란다.


조국-형법 잘 모르는 형법학자, 법무부장관을 꿈꾸다. 
내 학창시절에 처음 알게 된 그는 정치에 끈을 대고 있는 기회주의적 동료 교수들을 폴리페서라고 부르며 매섭게 비난하던 젊은 법대 교수였다. 하지만 그는 곧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폴리페서, 폴리페서의 고유명사 그 자체가 되었다. 그는 청와대 인사수석에 이어 법무부장관에 내정되고서도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지 않아 진정한 내로남불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며 압도적 표차로 2019년 가장 부끄러운 동문 1위에 올랐다. (2016년 1위 우병우)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학내 여론을 비난하며 자신의 제자들을 엄히 꾸짖겠다고 말했는데,  ㄲ짖는 것은 본인의 자유라고 해도 제자들을 보려면 수업을 해야 하는것 아닌가. 참고로 과거 그는 2학년 수업시간에 오상방위라는 개념이 법조문에 존재한다며 우기며 법전을 뒤지다 못찾자 책은 파본이라 없다고 주장했고, 이를 보다 못한 몇몇 학생들이 법조문에 그런건 없다며 가르침을 주었다. 수직적 도제식 교육으로부터 탈피해 교수가 학생에게 배우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그는 이번에는 연구도 교육도 하지 않지만 교수는 할 수 있다는 마르셀 뒤상 급의 새로운 행위예술을 준비중이다.

그는 왜 이런 조롱까지 들어가며 교수직을 놓지 않을까? 내가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닐까 한다. 대중은 그의 내로남불을 조명하고 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교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그의 무식과 완벽하게 검증된 무능함이다. 2년여간 그가 검증한 공직자 중 절반 이상이 인사 5대 원칙에 어긋났고 청문회 통과율은 이명박근혜 시절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다. 교수 시절에는 중간고사를 까먹어 당일에 연기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뭐 변호사 자격증도 없으니 개업을 할 수도 없고 또 서울대 교수를 사임하고 나면 학생보다 법 모르는 형법학자를 교수로 임용할 학교도 많지 않겠지. 조국이 찌질하고 비굴하게 서울대 교수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능하다는 것을 본인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는 중간고사 날짜는 까먹을지언정 sns 업로드는 잊지 않는, 현대 소셜네트워크 시대에 가장 걸맞는 바이럴 마케팅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과 무역분쟁이 시작되자마자 죽창가를 올리는 저 반응 속도를 보라. 누가 온라인에서 그를 당하랴. 이런 족ㄱ같은 교수는 학교를 떠나야 한다. 본인을 위해서는 타인을 위해서든.

이준구-부등식을 못 푸는 꼴보수 경제학자 (22조 원> 54조 원)
경제학자의 눈으로 이명박의 토목사업 지출을 매섭게 지적하던, 서울대학교의 살아있는 지성 이준구 교수.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그는 이명박근혜와 함께할 때만 진리의 등불을 밝히는 진정한 숨은 꼴보수였다.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은 5년간 22조 였는데 비해 현 행정부의 일자리 지출은 2년여 동안 54조를 넘어섰다. 현대건설 신화를 써내려 간 이명박을 쫌생이처럼 보이게 만드는 규모의 돈을 쓰고도 민간고용을 감소시키는 역대급 자살골이 매달 터지는데 이 노교수는 입을 딱 씻고 아무 지적도 하지 않는다. 공돌이 정책실장이 경제정책을 총괄하며 IS곡선을 무시하는 발언과 정책을 내놓아도 그는 아무런 촌평을 하지 않는다. 혹시 그가 꼴보수라 현 정부에게 자신의 빛나는 지혜를 빌려주기 싫은 것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이런 의혹은 그가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쓴 장문의 글을 보면 더욱 짙어진다. 두서도 없는데다 사실관계도 틀린 소주성 정책의 평가를 올린 글을 보자 그를 찬양했던 대다수의 경제학도들은 실망하며 분노했지만, 소수는 현 정부의 실권자가 꼴보수인 그를 협박해 ID를 강탈한 뒤 대필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아니고서야 과거 이명박근혜 시기에 나라가 잘되길 바란다며 고언을 아끼지 않던 경제학자가 경제지표가 역대 최악으로 박살나는데 저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경제학계의 오랜 난제-최저임금은 고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후배 한국인 경제학자들이 명확한 답을 낼 수 있도록 눈물을 머금고 박살나는 고용시장을 묵과하는 지도 모른다. 전세계 2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이토록 급진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린 적이 없었는데 이를 논문으로 정리해 발표하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것도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내가 존경했던 이준구 교수님은 후학을 위해 전략적으로 침묵하고 계신 것이리라 믿는다.

장하성-경제는 잘 모르지만 경제정책은 잘아는 풍운아
주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절대선처럼 여겨지던 2000년대에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소득불평등을 강조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소득불평등은 나쁘지만 자산불평등은 괜찮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쳤는데, 아마 본인은 금수저라 물려받은 자산은 많지만 별 능력은 없어 소득은 그저 그런데, 학창시절 자기보다 못 살던 고대경영 동기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만큼 잘 살게 되는 것을 보며 느끼던 정체모를 배아픔으로부터 탄생한 이론이 아닐까 한다. 경제가 아닌 재무를 전공했지만 자기가 경제정책을 펴면 성장이 자동적으로 된다고 큰소리를 땅땅 쳤지만 그의 말대로 하자 사람들의 소득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소득불평등이 역대 최고로 악화되었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난 그는 곧장 주중대사로 임명되었다. 경제 몰라도 경제정책을 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어도 못하고 중국은 처음이지만 중국대사는 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여전히 사철나무처럼 굳건하다. 그는 내가 강남에 살아보니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공분을 샀는데 때때로 광주에서 태어난 본인은 왜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해 자신의 강남 집을 기부하고 고향으로 낙향하겠단 뜻이었을까? 아니라면 너무 병신 같잖아. 그는 퇴임하면서 무지개 쫒는 소년 처럼 살고 싶다고 했는데 적어도 나에게 그는 무지.개같은 ㅅ년이었다.

유시민-만 60세, 뇌가 썩으신 분
북한 얘기가 나오면 눈이 뒤집히고 사람이 약간 돌긴 하지만, 촌철살인을 가진 진보측 논객이라 생각했다. 학교다닐때 운동하느라 바빴지만 경제학에는 통달했고, 학위는 없지만 한국사 책까지 저술한데다 합리적으로 볼 때 미국은 달에 간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 분에게는 숨은 전공분야가 있으니 바로 의학이다. 그는 일찍이 사람이 60대가 넘으면 뇌가 썩기 시작해서 다른사람이 된다는 "뇌 유통기한 60년설"을 주장했고 그 학설이 사실임을 본인이 직접 증명했다. 젊어서 명문고를 없애고 서울대를 폐지해 교육평등을 외치던 그는 딸을 외고에, 아들을 유명 자사고에 보내 수시로 각기 서울대와 연대에 진학시켰다. 내로남불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 스스로 해명하길, 딸이 외고를 다녀보니 외고를 없애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명언을 남겼다. 전두환이 죽기전에 민주화 선언을 하고 "내가 독재를 해보니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선언한다면 과연 유시민과 그 자녀들은 전두환을 보고 뭐라고 할까.

하지만 시류를 읽는 능력만큼은 여전한 듯 하다. 젊은 시절 운동권 동지들이 국보법으로 구속될 때, 그는 멀쩡한 시민 넷을 붙잡아 몇주간 감금 폭행 고문한 죄로 구속되었지만 방송에서는 자신의 수감시절을 고 박종철 열사마냥 비장한 눈빛으로 회상한다. 또 합수부 수사 당시 동료 학생들의 행적을 소상하게 줄줄줄 불어서 민주화 학생열사들이 대거 구속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예능에서 마치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재치를 발휘한 것 처럼 포장했다. 그의 시류를 읽는 능력은 썰전의 드루킹 보도에서 정점을 찍는다. 킹크랩을 통한 댓글조작이 처음 보도되고 느릅나무가 주최한 강연에 참가한 사진이 공개됐을땐 드루킹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더니, 각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그는 재빨리 썰전 패널 자리를 사임하고 그 뒤는 노회찬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고 뇌회찬 의원은 드루킹에게 돈 받고 거짓말 한 것이 들통나 자살했다. 하지만 유시민 의원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신다. 혹시나 그분이 자기 뇌가 썩는게 걱정된다면 내 사비를 털어 방부제를 사서 먹여 드리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도.

김상조-특기: 윽박질러 경제성장하기, 일명 행보관모델
나는 문재인 정부의 모든 인사중에서 김상조의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가장 지지했다. 나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태에 분노하는 그의 주장에 공감했고, 또 그 신념이 이 역할에 정확하게 꼭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대기업, 특히 삼성을 조지는 것이 공정하다고 잘못 알고 있는듯 하다. 그는 국회 청문회 자리에 늦게 도착한 이유로 "재벌들 혼내주다가 늦었다"라고 대답했지만 본인의 역할은 공정거래를 유도하는 것이지 흥신소 깡패처럼 대기업을 겁박하는 것이 아니다. 미대를 나오고도 무려 1:1의 경쟁률을 뚫고 공기업에 입사했던 대통령의 능력자 아들은 김상조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S/W회사를 차려 정부에 납품하고 있었고 서울시의 태양광 수주 사업은 박원순의 측근들이 대표로 있는 회사들이 쓸어갔는데 그는 이재용에게 갑질이나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장하성(전공: 재무)과 김수현(전공: 공대)의 후임으로 정책실장의 자리로 옮기며 문재인 정부 최초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학 전공자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가 이룬 성과는 자기가 조지던 삼성의 이재용 회장을 불러 반도체 원료 국산화 계획을 내놓으라며 또다시 윽박지른 것이 전부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따면서 배운게 조지고 윽박지르는 것 뿐인가. 사실 이 스킬셋은 공정거래위원장보다 군대 행정보급관에 더 어울리는데 군바리 식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 아닌가. 미제 괴수 우두머리 맥아더장군이나 괴뢰도당 박정희처럼 라이방 선글라스를 쓰고 전선을 시칠하던 비서실장 림종석 동무도 그렇고, 이 정부 사람들은 왜 자꾸 자기가 비난하던 무리들을 닮아갈까.


나는 이 다섯을 결코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철학에 따라 뭉치고 나뉜 것이 아니라 그저 파벌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을 그냥 좌파라고 부르기로 하자. 서두에서 밝혔듯 나를 비롯한 대중들이 그들에게 더 분노하는 이유는 한때 저들은 우리의 히어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개를 돌리면 책상 옆 책장에 꽂혀있는 그들의 저서들을 볼 수 있으며 현재의 그들이 아닌, 뇌가 썩으시기 전의 그들은 내 지적 성장을 도와줬던 멘토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그들은 모두 죽고 없다. 이 기회주의자 병신오인방은 (丙申五人幇) 그저 권력과 명성, 그리고 지적 허영을 위해 지성의 가죽을 벗겨 두른 뒤 파벌을 이뤄 우우 달려가 언어적 집단폭행이나 저지르는 찐따들이었을 뿐이고 그 탈을 벗은 본모습은 마치 심각한 성형부작용에 시달리는 강남언니마냥 흉측하고 기괴하다.

하지만 너무 좌절하진 말자. 아직 몇몇 진보 히어로들은 자신의 코스튬을 벗어던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박준영 변호사가 그렇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외치던 그는 일련의 광기어린 마녀사냥 앞에서 신중할 것을 여러번 주문한 바 있다. 대중과 언론이 이성 대신 G컵 베이글녀를 쫒아다닐 때 그는 냉철하게 여론이나 진영이 아닌 법과 정의를 따진 진보지식인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에는 파벌에 휩쓸리지 않는 진보와 보수가 아직 남아있다고 믿고 싶으니, 몰락한 히어로는 이 병신오인방(丙申五人幇)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2019. 8. 7.

한국의 금융시장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가

최근 정치적 성향이 강하거나, 혹은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내가 금융시장에서 일하다보니 시장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았다. 나도 눈치가 있는지라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아둔 채 에둘러 변명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우리는 시장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장의 시그널을 무시한 사람은, 트레이더가 아니라 경영자나 정치인 심지어 일반 시민들조차도 무거운 대가를 치뤄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FX movement in 2019
위의 차트는 귀금속을 포함한 전세계 약 146개국의 통화의 올해 퍼포먼스이다. 최하위 10개 통화 중 하나에 원화가 당당히 이름을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저 중 SEK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정상적인 시장에서 거래조차 되지 않는, EM에도 속하지 못한 나라의 통화들이다. 아마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저 모든 국가들과 통화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소수일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통화들의 리스트에 원화는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위풍당당 코리아.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명목환율의 장기적 추세는 인플레이션을 따라간다. 공식 CPI가 40%를 넘어서고 비공식적으로는 100-200%를 오가는 아르헨티나의 페소는 약 17%하락했으니 아르헨 페소의 실질환율은 되려 올라간 셈이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1% 이하인 원화는 8.2%나 하락했으니 만약 실질환율로 이 차트를 그린다면 원화의 성적은 (밑에서)7등이 아니라 더 높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도대체 인플레이션이 세자리 수에 이르는 통화들과 EM 중에서도 가장 DM에 가까운 원화가 비슷한 성적을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식과는 달리 환율이 강해진다는 것이 꼭 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들면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의 통화는 보통 강세를 띄지만 우리는 그 나라의 경제가 좋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통화가 약세로 간다고 해서 꼭 나쁜 시그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환율의 변화는 주로 전년도 대비 국제수지의 변화를 의미하므로 우리나라가 당장 저 EM미만 수준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외환시장은 작년 대비 올해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변화가 아주 크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내 생각엔 전세계 대비 언더퍼폼한 주식시장보다도 외환시장이 현재의 경제상황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에서는 KOSPI 보다도 더 폭락한 다른 나라들도 존재하긴 한다. 물론 뭐 파키스탄, 코스타리카, 레바논, 케냐, 오만 뭐 이런 나라의 주식시장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지만, 외환을 보면 저 나라들을 모두 포함해서도 KRW는 꼴지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도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충격이 더 크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겪는 변화는 이 국제수지를 보아야 더 명백하다.

나는 한국의 경상수지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진 않는다. 예전 GDP의 약 3% 수준이었던 경상수지 흑자가 2015년에 GDP의 7.2%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디플레이션에 따른 결과이고, 디플레이션이 해소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과 소비의 증가는 수입의 증가로 이어져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인다. 실제로 코스피가 고점을 경신하던 2017년 수입이 연 9% 증가하며 경상수지가 GDP대비 약 4.5%로 하락한 적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소비시장과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삼성전자의 최고가는 이재용의 부재일 때 였던 것 처럼, 대한민국의 최 전성기는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 실제 문제는 경상수지가 아니라 자본수지에 있다.

앞서 글에서 대한민국에서 두가지 파업이 일어난다고 했는데(링크) 현재의 환율변화는 이 두가지 파업 중 자본의 파업* 연관되어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의 강제파업과 자본의 도피적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자본은 늘 수익을 좆는 천성을 가진지라, 노동자와는 달리 국내에서 파업을 한다고 그저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게 해외투자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부동산 외에는 투자할 분야가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한 세금과 과거보다 강화된 규제는 한국투자의 세후수익률을 낮추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정부의 개입은 불확실성을 높여 위험가중 수익률을 더욱 낮췄다. 7월 2일 이후 한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가가 강세를 보인 것은 두 회사가 대규모 투자를 연기하거나 중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장래가 있는 기업이 투자를 한다고 하면 주가가 오른다. 미래가 글러먹은 회사가 투자를 늘린다고 하면 주가가 빠진다. 한국 경제의 두 쌍두마차가 투자를 중단한다고 했을때 주가가 오른 것은 대한민국이 쪽바리들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들의 투자엔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본파업은 환율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율이 약 5% 움직이고 나면 환헷지 전략과 투자 전략을 재조정한다.(주식에 비하면 이 5%가 별것 아닌 듯 하지만 환율이 그정도 움직이고 나면 일간지 1면에 FX 트레이더들의 뒷통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국인의 해외투자는 다르다. 2015년 이후 중국과 같이 자본유출을 통제하려던 많은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고작 5%의 움직임으로는 달러 수요를 막지 못한다, 되려 더 강해진다. 그래서 지난 5년간 1200원 위는 무조건 팔면 돈 버는 구간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내국인들은 여전히 이 수준에서도 달러를 사서 해외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경상수지 흑자국은 자본수지 적자를 유지해야하니 자본의 해외유출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 이상으로 자본수지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자본파업이 있다. 자본파업은 마치 케인즈 이전의 경제학과 같아서 경제주체들이 서로가 네거티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더 나빠진다는데에 있다. 특히 한국의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재 고작 6조 남짓한 추경으로는 이 고리를 끊을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 GDP의 1-1.5%에 달하는 대규모 추경이나 감세, 혹은 경제부총리가 마약을 했나 싶을 정도의 막대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는 커녕, 우리는 참새 코딱지만한 추경을 통과시키는 데도 100일이 넘게 걸렸고 같은 기간 동안 주식은 1900을 깨고 환율은 3년 반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으며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의 간접적 피해자 처지로는 감질났던건지, 우리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새로이 시작했다. 이데올로기로 펴는 경제정책은 백종원의 요리를 미적분학으로 풀이하는 것 보다도 더 어색하고 괴상한데 대중은 거기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고3 이래로 공부를 해본 적도, 일해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이 명분만 좆는 사대부새끼들이 외교와 경제를 장악했으며 그들이 내놓는 대책과 비전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다만 장르가 호러일 뿐. 놀라기도 지친 자본들이 한국을 이탈하고 있고 그게 현 환율 상승의 배경이다. 과거의 환율상승기는 잊어버려라. 우리는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니.

그리고 앞서 링크한 글에서 나는 4개 분기 평균 기준으로 한국의 투자가 현재보다 나빳던 적은 단 네번 뿐이라고 했는데 아마 다음 GDP가 발표되면 IT버블때의 기록을 앞질러 사상 세번째 최악의 시기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자본파업은 그저 쉽게 이해하라고 내가 멋대로 붙인 비경제용어지만 그보다 현재의 변화를 더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용어를 찾지 못했다.

2019. 8. 5.

오늘자 시장

뭐라도 한줄 남기고 싶은데 그럴 기력이 없다.

아직도 나는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

2019. 8. 4.

도박의 본능

2017년 초 여의도에서는 요새 3트가 없으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비[트]코인 셀[트]리온 그리고 아파[트]. 그리고 우리는 두번째 트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 하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라고 자부하던 바이오주는 각종 사고로 연일 폭락을 기록하며 올해 최악의 섹터에 올랐고 강력하게 바이를 외치던 애널리스트들은 하나둘 씩 빠이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엔 늘 개미들이 있다. 개미들에게 한때의 희망이 현재의 패닉이 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여의도 개미들 중 상폐(상장폐지)를 당해보지 않은 이를 본 적이 있는가? 심지어 모 대형증권사의 내부 분석자료에 따르면 개인 주식계좌의 약 92%, 파생계좌의 약 95%가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훈련받지 못한 개미들은 본능에 따라 투자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돈은 인간의 본능을 싫어한다. 본능대로 투자해서는 결코 장기적으로 돈을 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본능은 위험 그 자체를 쫒지 이윤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잘못된 위험을 쫒을까?

나는 그 기저에 수면욕, 성욕, 식욕처럼 인간에게 도박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에게 왜 그런 욕구가 생겼는지는 호모 사피엔스 종의 진화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사바나 물가에 살던 유인원 중 한 종이 직립보행을 실시한 이래 인간은 7만년에 걸쳐 모든 대륙에 퍼져살게 되었다. 빙하기가 끝나 육로가 막힌 뒤에도 인간은 북아메리카를 넘어 남아메리카 까지 진출했으며 심지어 호주처럼 육로가 존재하지 않았던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것은 단연코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이동일 것이다.

현재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분포는 위와 같은데, 근대 이후 코카시아인과 영어/스페인어로 대체된 호주와 남아메리카의 서쪽 해안의 몇몇 섬을 포함한다면 그들은 단연코 인류역사상 최고의 대항해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동은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약 1천년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심지어 철기는 커녕 청동기시대에도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 문명으로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서부터 아메리카 서쪽 해안에 이르른 루트를 개척했다.
 
이와 같은 대규모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종의 특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마 최초의 사바나 평원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홍해(혹은 아라비아해)를 건너던 그 개체는 같은 종의 그 누구보다도 더 호전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었을 것이다. 따듯하지만 건조한 아라비아반도를 지나, 코카서스 지방을 거쳐 추운 산림지대인 북쪽으로 이동한 무리나, 혹은 수천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지는 스텝지방을 넘어 한반도까지 이르른 우리의 선조, 그리고 이 모든 환경에 적응한 뒤 다시 동아프리카와 다름없던 인도나 아시아 남부로 이동한 개체들은 모두 목숨을 건 도박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을 빌린다면, 호모 사피엔스 중에서도 적당히 무리한 도박에 나선 유전자풀이 아프리카 밖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무리한 도박을 펼친 유전자는 다 멸종했겠지만) 한번 기원전 3천년 전 인도네시아아 해안가에 서 있는 한 남자를 상상해보자. 육분의도 나침반도 구글어스는 물론이고 열명 이상 탈 수 있는 배도 못 만들던 시절, 그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모험을 꿈꾼다. 그 너머에 섬이 있는지, 아니면 끝없이 물이 떨어지는 절벽이나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오징어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항해에 나서기로 한다. 고작 보름치 식량과 물 만을 가지고 바다에 나선 그는 태풍과 파도와 싸워가며 칠일을 걸쳐 나아갔지만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제 선택을 해야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칠일간 더 나아가 육지를 발견할 확률에 목숨을 걸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이 헛된 항해를 마무리해야 한다. 바다로 나아간 이들 중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중 아주 소수가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안길 수 있었다. 하지만 백만명 중 한 둘은 새로운 섬이나 육지를 발견해서 진귀한 동물들과 과일들을 배에 가득 싣고 돌아왔을 것이며 그는 부족의 영웅이 되어 그를 칭송하는 신화가 쓰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릴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영웅들을 많이 가진 부족들이 더 멀리, 더 많이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의 후손이다. 도박은 우리의 본능이고 그 본능 덕에 사바나의 초원을 벗어나 달나라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도박의 욕구가 존재한다. 심리학 실험에서도 보상을 불규칙하게 할 때의 자극이 가장 크다는 것을 여러 실험에서 입증한 바 있지 않은가.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주사위를 너무나 사랑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정육면체인 주사위가 주는 불확실성이 불충분했는지, 4천년 전 스코틀랜드에서는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주사위를 만들어냈고 이미 3천년 전 그리스 수학자들은 정이십면체보다 더 큰 정다면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러자 도박장은 이제 육면체 주사위를 두개, 혹은 세개를 쓰기 시작했다. 불확실성을 좆는 우리의 욕구는 이처럼 너무나도 강력하다.
 
*        *        *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국인들이 접근 가능한 카지노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는 3천년 전의 폴리네시아의 해안가와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과 동일한 도박욕구를 지니고 있다. 만약 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통제된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인간은 계속해서 위험을 찾아 잡주나 사업, 혹은 피라미드 투자에 눈을 돌릴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일본인들이 지나치게 소심하고 중국인들이 지나치게 배짱을 부리는 이유 역시 이 도박욕구의 억제 정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사설 도박장이 허용된데 비해 한국인들은 도박욕구를 해소할 길이 제한되어있고 중국인들은 아예 금지된 것을 보면 무모한 위험 앞에 누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지 예측하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또, 토토, 경마, 테마주 그리고 비트코인. 이것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전혀 다르지 않지만 10만원 짜리 카지노를 열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테마주와 알트코인에 백만원 천만원을 낭비한다. 인간의 본능은 억제하거나 없앨 수 없다. 이는 물과 같아서 억누를 수록 더욱 크게 터진다. 차라리 그들을 건전한 방향으로 발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건설적이지 않을까. 최소한 도박을 투자라고 착각하는 일이 없다면 무의미한 위험에 인생을 탕진하는 이들도 적어질 것이다.



10여년 전, 72시간만에 수천만원을 날리고 담배를 뻑뻑 물어 피던 내가 다시금 생각난다.

2019. 8. 3.

어째서 한국은 병신 외교의 종주국이 되었나?

대한민국은 병신외교의 종주국이다. 물론 우리보다 더 한심한 외교를 하는 나라가 없는, 혹은 없던 것은 아니나 우리처럼 위험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병신외교를 고집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 10대 군사 대국 중 3개 나라가 우리와 직접 영토/영해를 맞대고 있으며 나머지 하나인 북한 역시 세계 20위 안에 드는 군사 대국이다. 우리 역시 육군만 보면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강한 나라지만 심지어 육해공 모두 세계 1위인 미국도 외교를 한다. 그것도 우리나라보다 더 열심히. 따라서 우리가 병신외교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우리의 민족성이나 인종적 특성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 증명해주고 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링크) 줄도 잘못서고 정치체제도 잘못 택한 북한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저력은 군사력이 아닌 외교력에 있다. 게다가 최근 대외전략과 업적만 두고 본다면 김정은은 서희 이래 한반도 최고의 외교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한국이 고집하는 병신외교는 전후 남한이 걸어온 특수한 배경에 그 적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음 세가지와 같다.

첫째, 미국의 안보우산.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한 나라는 모두 멸망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서 아무리 멍청한 선택을 해도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제2공화국의 장면 정권이 국내의 정치적 소요를 전혀 통제하지 못해도, 혹은 신군부가 국내 정치투쟁을 위해 전방의 사단을 빼돌리는 짓을 해도 한국의 국가안보는 사실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버텨주고 있었으니까. 비슷한 상황에 처했지만 미국처럼 기댈 강국이 없던 고구려 백제 신라, 후백제, 발해는 모두 외적에 의해 멸망했다. 반면 오판을 내려도 운좋게 세계 1위 국가와 군사동맹을 맺은 남한과 우리는 아무 탈 없이 살아 남았다. 그 사이 한국이 받은 대외적 위협은 북한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미국이 원조를 줄이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공갈 밖에 없었다. 주던걸 뺏는 일을 대외위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바람이 치는 동안 비닐하우스, 아니 방탄유리에 사시사철 온습도 조절기능을 갖춘 세계최강 인큐베이터 안에서 곱게 자란 온실속의 화초는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생존게임을 가볍게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병신외교의 저변에는 이래도 안 망할거라는 강한 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반면 남한처럼 소련의 원조만 바라보던 북한은 1960년대 중반에서부터 외교적으로 홀로서기를 해왔다. 소련이 원조를 줄이기 시작하자 그들은 대중 외교를 강화했고 공산주의의 두 종주국 중소가 서로 으르렁대기 시작하자 그들은 양자를 오가는 외교를 택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에게 외교란 국가의 안위를 넘어 나와 개인 가족의 생명이 달린 문제였다. 아오지 탄광과 요덕수용소를 피해 살아남도록 단련된 북한의 외교관들이 곱게 자란 남한을 깔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외무상 총 책임자가 통역하던 강경화라니. 개가 똥구멍으로 웃을 일 아닌가.

둘째, 잘못된 전통사상의 잘못된 계승.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 한국사에서 배운 국가들 중 우리는 어느시대의 철학을 가장 많이 계승하고 있을까? 답은 우리나라 공식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대한제국이다. 병신외교를 펼치는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은 딴 한글자, 帝를 民으로 바꾼 것 딱 그정도만 다르다. 우리는 일제지배로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잘못된 방식으로 치유했다. 바로 식민지 이전의 역사를 긍정하는 것이다. 성리학과 명심보감은 현대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도덕이고 명청교체기에 병신외교의 선두주자였던 김상헌은 대나무같이 올곧은 절개를 지닌 선비이며 사익을 좆느라 나라를 말아먹은 민비와 고종은 비운의 주연으로 탈바꿈한 채, 우리가 여러번의 전란 끝에 나라를 잃은 것은 외적이 사악하고 무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라졌어야 할 한의학은 현대의 제도 아래서도 살아남아 의료보험의 대상까지 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근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셋째, 안정된 한반도의 정치 상황. 제러미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지중해로 인해 통일된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어렵던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는 천년 전 부터 훨씬 안정된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중 한반도의 정치상황은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우리가 조선을 피폐했던 전란의 시기로 기억하지만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공식적으로 멸망을 고한 1910년까지 한반도는 매우 평화로운 500년을 보냈다. 두번의 왜란과 두번의 호란, 그리고 마지막의 식민지배가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전란의 기간을 모두 합쳐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구한말의 식민지배는 별다른 군사적 충돌 없이 진행되었음을 기억하자.(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이다.) 동시대 다른지역의 역사를 보자.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에도막부가 설립하기까지 거의 150여년 동안 수많은 군벌들이 수도 없는 전쟁을 치뤘다. 우리는 단순히 동시대 중국의 역사를 명청교체기로 기억하지만 명은 청의 손에 멸망하지 않았다. 누르하치를 키워준 이자성의 손에 멸망했고, 당시에는 그 말고도 수많은 군벌이 존재했다. 청나라 말기에도 여러 군벌들이 난립하며 일부는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고, 일부는 각기 다른 외세와 협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분열사도 서구사학자들의 눈에는 안정적으로 보일 만큼 동시대 유럽의 역사는 더욱 격렬했다.

누구나 1차세계대전을 알고 있지만, 그 전쟁이 어째서 벌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주 소수이며 아직도 그 발발원인과 경과에 대해서 논쟁이 이뤄질 정도로 그 배경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전쟁을 통해 근대의 국경선이 탄생했으며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은 이러한 격량을 거쳐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들이고 그들은 사소한 판단 하나가 어떻게 국가와 민족의 흥망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를 체화한 사람들로, 그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아들딸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한국 역시 그들 중 하나로 우리의 독립은 2차세계대전 전후처리를 논의하던 카이로회담에서 확정되었다. 당시 연합국 중 하나로 인정받은 중화민국 대표 장제스는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청일전쟁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다시말해 조선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기 위해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지만 현 대한민국은 후손에게 "장제스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크게 감명받아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병자호란을 겪은 뒤 첫 다음세대의 지배자였던 효종은 현실정치를 폈다. 그는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조선의 역사가 청나라의 지배 없이 쓰여질 수 없음을 깨달은 동시에 형의 비극으로 인해 청에 대한 내부의 반발이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명목상의 북벌정책을 펴는 동시에 청에 대한 현실외교를 펼쳐 청의 파병요구까지 받아들이기도 했다. 현대적 용어로 그의 이런 투트랙 외교전략은 같잖은 민족주의적 자기위안과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가져다주었지만 김상헌과 그의 병신외교를 이어받은 사대부들에게 헤게모니를 돌려주었고 그들은 이백여년 뒤 최익현을 낳고 또 그로부터 백여년 뒤 sns의 신진사대부새끼들을 낳았다. 반면 근대 일본의 전신인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전국시대 말기 정치적 소용돌이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아들에게 내려진 자결명령을 순순히 따랐다. 현재의 동아시아 외교무대에서 두 나라를 대표하는 이는 김상현과 도쿠가와라고 할 수 있다. 병신외교와 음흉외교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 하루빨리 우리가 병신외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추가 on 2 Aug 2019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회담을 듣다 내 귀를 의심했다. 제정신인가. 한달 전 일본이 무역제제를 발표한 이래 한국대표는 일본을 네번이나 방문했지만 일본 관료/정치인 중 그 누구도 한국을 방문한 적 없다.

두 연인이 싸운지 한달이 지났다. 남자는 여자의 집앞에 네번이나 찾아가서 여자를 기다렸지만 화해하지 못했고 여자는 남자의 집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남자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일이 도대체 제정신으로 할수 있는 것인가.


우리 한국인들은 어둠속을 벌거벗은채 헤메이고 있다.

2019. 7. 24.

대한민국의 외교, 예견된 개차반의 향연

7월 23일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가 거의 동시에 일본과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들었다. 심지어 러시아 조기경보기는 대한민국 건국 사상 최초로 영공을 침범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더 막장인 것은 그 직후에 한국이 처한 외교적 상황이다.
  • 함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당한 일본은 러시아 뿐 아니라, 한국이 독도 상공에서 공격적 조치를 취한데 대해 항의했다.
  • 러시아는 영공을 침범한 사실을 부인했으며 되려 한국 전투기들이 위험한 비행으로 위협을 가했다고 한국을 비난했다.
  • 중국과 러시아는 합동으로 한국과 일본의 방공망을 농락했으며 그 지점은 정확하게 최근 고조된 한일간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할 독도였다.
  • 한국에 방문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청와대와의 공식회담 전, 야당 대표인 나경원 대표와 단독회담을 가졌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래 내가 공개적으로 비난한 정책이 딱 두개가 있다. 하나는 부동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외교. 약 2년 전에 썼던 세편의 글(링크1, 링크2, 링크3)에서 나는 어떻게 대북, 대일, 대중 외교가 망가지고 있는지 지적했고 대한민국의 외교라인을 전부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지전능하신 통역사 강경화가 외교부의 수장으로 남아있는것 처럼 대한민국의 외교적 현실은 여전히 처참하다. 아래와 같이 과거의 글에 썼던  문구를 오늘의 글에 그대로 옮겨도 될 만큼.

(모두 위 링크 글에서 발췌)
1. 현 정부의 외교정책은 수준 이하다. 외교부 인턴만도 못한 현실인식을 가졌는데 어렵게 꼬인 국제문제를 다룰 능력이 있을 턱이 없고, 그런데도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끝없이 나서니 패닉하며 갈팡질팡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2. 유엔 봉사기구에서 잡일하다 외교부 장관이 된 강경화 장관은 외국 정상들과 전화통화와 방문일정을 잡는 비서역할만 할 뿐, 실질적 외교 채널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신 냉전시대에 한국은 가장 위험하면서 취약한 고리로 전락했다. 외교전의 처참한 패배다.

3. 그들의 한심한 현실감각을 보여주는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지난 7월, 베를린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청와대는, "사드문제에 대해 차갑던 시진핑을 문재인 대통령이 '끈질기게 설득'하여 '전향적인 태도'를 이끌어 냈다"고 자평했다. 그 때, 김현철 보좌관이 손뼉을 쳐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이에 대해 김 보좌관은 “회담이 끝날 때 중국과의 관계가 풀려가는 것을 보고 경제문제도 풀리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고 해명했다.......문제는 시큰둥한 시진핑을 붙잡고 앉아서 자기 주장만 반복하는걸 '끈질긴 설득'으로 보는 청와대의 외교전략 수준과 단호히 친북으로 돌아선 시진핑의 태도를 '전향적'이었다고 해석하는 그들의 아마추어적 현실인식 수준이다. 이 무의미한 회담은 기본적 외교 에티켓도 모르는 촌뜨기가 환각에 빠져 상대 정상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으로 개그의 대미를 장식했다.

4.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는 이기적으로 굴면서 다른나라보고 도덕교과서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미국은 인도주의적으로 우리를 도와야만 하고, 중국은 더 강한데도 남한을 존중하며 알아서 기어야하고 일본은 남한이 기분나쁠때 마다 계속 자존심 굽혀가며 사과해야 한다고 한다. 타인의 이익과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지능의 문제일까 극단적 편협함의 문제일까.

5. 아마추어들이 삼삼오오 앉아 자화자찬하며 셀카를 sns에 올리고 있는 동안, 일본은 멀어지고 미국은 안보 영수증을 청구했으며 북한은 우리의 코앞에 중지를 내밀었고 중국은 남한 기업의 팔을 비틀었다. 예전에 유행했던 드라마 미실에서 주연을 맡은 고현정이 이런 대사를 했다. "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래선 안됩니다" 우리의 외교라인도 마찬가지다, 얼른 다 잘라라.

 6. (2017년 11월 트럼프의 방한 당시)의전은 개판과 굴욕의 연속이었다. 한국 대통령은 트럼프를 공항이나 청와대에서 맞이하는 대신 평택 미군기지에서 예방하는 파괴적 의전을 선보였다. 미군 기지는 국제법상 대사관 처럼 상대국의 관할지역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다. 아무 이유없이 아관파천식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니 이는 파격 보다는 파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또 한번 의전 굴욕을 당해야 했다. 사전 조율에서 트럼프의 dmz를 방문을 관찰시키지 못한 문재인은 정상회담 첫날, 떼를 써서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일정을 잡았지만 트럼프는 기상상태를 핑계로 출발한 지 10분만에 돌아왔고 문재인은 꼭두 새벽부터 1시간이나 먼저 가서 기다리다 바람맞았다. 청와대는 국가 수반이 자국 영토에서 바람맞은 이 초유의 사건을 애써 축소하려고 들지만 이게 가려질 일인가.......이는 결국 미국의 의중과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한국 측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미국은 중지를 펼쳐 화답한 셈이다.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또 최소한의 성의와 함께.

7. 통상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가 기초 상식인 국제 외교계에서 파격을 거듭하는 천둥 벌거숭이 행보는 실제 선물에서도 들어난다. 국빈만찬 후 한국은 트럼프를 포함한 참석자들에게 돌솥과 놋수저 세트를 선물했다. 한 네티즌은 "금수저에게 돌과 놋은 신기할지도"라고 평했지만 우리나라 흙수저들도 집들이 선물로 돌솥과 놋수저 한짝을 받으면 얼굴을 붉힌다. 참고로 지난 러시아 순방때는 18세기 조선 보검을 돌려준 푸틴에게 답례로 종로에서 산 대나무 낚싯대를 줬다. 이를 기획한 것이 탁현민이라는데 그는 이런 선물 고르는 센스로 어떻게 여중생을 꼬셔서 섹스를 했을까?

8. 외교는 의전에서 시작해서 의전으로 끝난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상복에 관한 의전을 두고 자신의 목숨과 가문의 미래를 걸고 싸운 것 처럼, 외교의 승패는 의전으로 나타난다. 바로 그 의전에서 우리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9. 왕족의 권력 다툼을 다루는 한 인기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왕이 자기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해야한다면 그는 왕이 아닌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스로 홀대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홀대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내실없는 회담에 별 관심도 없는 중국에게 매달려서 억지로 방중 스케줄을 잡은 외교 실무진의 잘못이다. 더욱이 노영민 주중대사의 이력을 보면 95년 환경운동으로 경력을 시작 한 뒤 단 한번도 외교에서, 그와 비슷한 분야에서도 경력을 쌓은 적이 없다. 이런 사람에게 맡길 정도로 어디 외교가 쉬운 일인가. 안보와 외교가 현 정부의 지지율을 갉아먹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얼른 다 잘라라.


어리버리한 고문관 이등병도 2년이 지나고 나면 말년병장이 되어 짬밥으로 신참 소대장 정도는 주무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정부의 외교라인은 그 이등병이 말뚝박아 부사관이 될 만한 시간동안 여전히 고문관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무능의 대명사인 강경화가 외교부의 수장인데다 주중대사는 중국어를 못하고 주일대사는 일본어를 못하며 주미대사로는 반미의 아이콘인 문정인이 거론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동맹구도는 북중러 vs 한미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부 각료나 관계자들은 미국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두고 "재수없는 백인 기병대 대장 같다"고 했고 대통령부터 나서서 면전에 대고 동맹이 아니라고 못박은 일본을 비하하며 토착왜구를 운운하며 동맹국의 손에 침을 뱉고 면상에 중지를 내밀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주적인 북한은 남한이 갖다바치는 쌀을 거절하고 우리나라 대통령을 모욕하며 미사일을 발사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사이좋게 손에 손잡고 영공을 넘었다. 이걸 외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기의 대결로 손꼽혔던 AI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을 기억하는가. 그 인간과 기계가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격전에서 이세돌은 4국에서 유일하게 1승을 거뒀고 이는 인간이 알파고에게 마지막으로 이긴 대국으로 남아있다. 그 대국에서 사실상 승부를 결정한 것은 78수였지만 알파고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패배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61수를 두고 난 뒤였다. 바둑이나 체스의 고수들은 패배가 확정되기 수십 수 전부터 자신의 유불리를 깨닫는다. 대마가 죽고 나서야 자기가 패배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저능아거나 초보자들 뿐이다. 우리가 이렇게 사면초가에 몰린 것은 이미 한참 전에 함부로 던진 악수 이후로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하지만 외교 저능아들은, 그리고 외교를 처음 해보는 촌뜨기들은 아무도 한국을 편들어주는 이 없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묘수를 두고 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아니다. 위기는 그저 위기일 뿐이다.

앞서 글에서 언급한 민정수석 조국, 아니 ㅈ조다구치 렌야(발음주의)께서는 이제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친일파라며 21세기 신 매카시즘, 아니 조카시즘(발음주의)을 선도하기 위해 불철주야 스마트폰을 쥐고 트윗질을 하고 계시다. 거기에 외교는 처음이지만 (daum댓글에 따르면)신의 한수를 마구 두시는, 외교가의 숨겨진 고스트 바둑왕 강경화님께서는 대내외의 비판과 무시에 굴하지 않고 고문관을 넘어 실제로 국민들을 고문하기 위해 일본 무역분쟁 와중에도 아프리카 순방에 나서셨다. 매카시즘과 고문관이 만나면 아우슈비츠나 시베리아 굴라크, 관타나모 수용소가 탄생한다. 그게 우리가 향하는 미래다.

그게 싫다고? 그럼 하루라도 빨리 저들을 다 잘라라.

2019. 7. 19.

혼이 비정상인 병신외교 옹호론자들

*일단 토착왜구라는 단어의 사용을 멈춰야 한다. 영어에도 정확하게 매치되는 단어가 있다. Japs. 이는 상당히 모욕적인 인종차별이기 때문에 만약 외신이 청와대와 언론이 이런 용어를 지속적으로 쓴다는 것을 보도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비난을 받을 것이다. 산케이 신문이 만약 "조센징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라고 보도한다면 이를 번역해 읽은 미국인들은 과연 누구를 비난할까?

* 죽도록 쳐맞은 민족에게 중요한 것은 어쩌다 맞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세상에 쳐맞다 죽을뻔 하기까지 했는데 그걸 잊어버리는 바보는 없다. 개새끼나 쥐새끼같은 짐승들도 쳐맞았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하지만 동물은 자기가 맞게 된 상황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지 못한다. 그러니 제발 사람새끼같이 행동하자. 또 쳐맞기 전에.

* ufc선수 김동현 옆집에 두 형제가 살고있었다. 어느날 동생이 물었다. "형 아빠랑 옆집 아저씨랑 싸우면 누가이겨?" 형이 대답한다. "아빠가 이기지!!", 동생은 다시 "진짜? 그 아저씨 종합격투기 대회서 28전 22승이라는데??"라고 반문하자 형은 역정을 내며 빼액 소리를 지른다. "야 그럼 넌 아빠가 쳐맞았으면 좋겠냐?? 넌 아빠아들 아니냐?? 이 호로새끼야"

지금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마주하는 감정적 애국주의자들의 태도가 이와 정확하게 같다. 아빠가 김동현과 맞붙어서 이길 수 있는지의 문제는 내가 얼마나 아빠를 사랑하는지와 아예 무관한 문제다. 현재의 무역분쟁도 마찬가지다.

* 애초에 무역분쟁에서 한국의 승산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현실감각이 결여됐다는 증거이다. 한국과 일본의 1인당 GDP는 엇비슷해서 만만해 보일 지 몰라도 인구가 두배 이상 차이나기 때문에 일본의 GDP규모는 우리의 3배가 넘는다. 게다가 이 GDP는 딱 한 해동안 창출된 부가가치지 누적의 개념이 아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이건희의 근로소득보다 올해 내 월급이 더 크지만 그렇다고 내가 더 부자는 아니듯 누적 수치를 봐야한다. 대충 1960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GDP를 보면 일본은 우리보다 6배가 더 크다. 게다가 그 이전 우리가 가내수공업으로 낫과 호미나 만들던 시기에 항공모함과 비행기를 만들던 일본의 격차를 고려하면 전체 누적 값은 6배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일본은 총 무역액이 GDP의 30%에 불과한 내수중심의 국가지만 우리는 이 비율이 70%가 넘는 무역중심의 모델을 가지고 있다.

즉 일본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는, 게다가 수출지향적 국가가 내수중심의 국가와 무역분쟁을 벌이면서 이게 해볼만 한 싸움이라고 주장하는 셈인데, 진심인가? 차라리 그냥 김동현과 맞장을 뜨자.

* 많은 사람들이 수출제한이 지속될 경우 일본측에도 크나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 일본에는 거의 타격이 없다. 물론 해당원료를 생산하는 일본 업체들은 다소간에 영향이 있겠지만 전체 경제에서 그들의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대표적 예로 삼성전자가 수입하는 불화수소는 일본에서 Stella Chemifa와 모리타 화학공업이 만드는데 모리타는 상장사도 아니고 Stella Chemifa는 도쿄 주식거래소에서 거래되는 2139개 상장사 중 982위 규모의 작은 회사로 시가총액 기준으로 전체의 0.0072%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불화수소 자체는 그들 매출비중 중 상대적으로 일부에 불과하고. 반면 우리는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전체 상장사 중 1위(시총비중 21%)인 삼성전자의 가장 주력 사업이 타격을 받게 된다. 물론 삼성전자와 모리타 화학공업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삼성이 이길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어디 두 기업간의 문제인가. 정부와 정부의 대결이지. k리그의 랭킹 1위가 프리미어 리그의 1000등 보다 실력이 위니까 한국축구의 수준은 영국에 견줄 만 하다는 정신나간 주장을 우리는 그대로 믿고 있다.

* 일본 역시 청나라와 러시아를 꺾고 난 뒤 아시아 최강이라는 국뽕에 취해 미국에게 덤볐다가 미친듯이 쳐맞았다. 하기사, 왜 아니겠는가. 전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의 그랑드 아미를 쳐발랐던 러시아도 물리치고 오천년 동아시아의 패자 청나라까지도 이겼는데. 전함의 크기가 국력을 상징하던 시절, 일본이 1941년에 진수한 야마토전함은 만재배수량 7만2천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전함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미국 앞에서 그저 깡통 덩어리에 불과했다. 심지어 천황의 아들들이 태평양의 조그만한 섬들에서 보급을 받지 못해 차례차례 굶어죽어갈 때 미군은 군용식량을 너무 많이 생산해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그냥 항복한 일본인들에게 줘버렸다. 그제서야 일본은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싸움을 시작했는지 깨닫고 철저하게 미국에게 복종하는 것을 외교의 첫번째 수칙으로 삼았다. 그들은 70여년 전에 리틀보이와 팻맨까지 쳐맞아가며 배운 교훈을 절대 잊지 않는다. 고이즈미와 아베가 부시와 트럼프에게 얼마나 저자세로 나섰는지를 보라. 하지만 미국도 바보가 아니기에, 일본이 왜 저렇게까지 자존심을 버려가며 굴종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근데 한국은 모른다. 한국인들만 모른다.

* 일본제국의 전쟁사를 보면 우리가 농담으로 숨은 독립운동가라고 부르는 일본군 지휘관이 있다. 바로 무다구치 렌야. 그는 1942년 버마를 넘어 인도로 진입해서 영국을 압박한다는 작전을 구상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10만에 이르는 대병력을, 현지인은 물론이고 동물들도 다니기 어려운 험지를 통해 보급도 없이 이동시키겠다는 망상에 기반한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전문가인 히로히토 천황조차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지 되물었지만 그는 밀어붙였고 결국 예상한대로 식량이 떨어지자 "일본인은 원래 초식이기 때문에 길가의 풀을 먹으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게다가 그 와중에 기생을 끼고 술판을 벌여 지휘통제마저 엉망이 되었다. 그 결과 인도차이나 반도를 방어할 소중한 병력을 모두 소모시켜 연합군의 진격을 앞당기고 대한민국의 해방에 기여했다. 망상에 기반한 우발적 전쟁의 결과는 이토록 참혹하다.

그의 임팔 작전은 현재 우리의 무역전쟁과 매우 흡사하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망상에 기반해서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국인들이 일본관광을 끊고 유니클로를 안 사면 일본 경제가 타격을 받겠지? 캬. 거기에 트위터와 페북에 일본의 전쟁범죄를 올리면 국제사회에서 망신당한 아베와 일본인들은 별수없이 스미마셍을 연발할거야. 이야 신난다." 순수 보병만으로 정글을 뚫고 아삼 지방에 진공하고, 더 나아가 인도를 해방시켜 영국에게 막대한 타격을 줄 상상을 펼치던 렌야 역시 딱 우리만큼 신났을 것이다. 교수 시절부터 관종으로 유명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이 간밤 본인의 sns에 무역전쟁을 독려하는 글을 올렸는데 현실인식은 물론이고 그 비장함이나 반대자 들을 불충한 이로 몰아가는 방식까지 임팔작전을 몰아붙이던 렌야와 똑 닮았다. 이 조국 수석은, 아니 조다구치(발음주의) 렌야 상께서는 과거 국민을 가재, 게, 붕어에 비유하며 그들이 사는 개천을 따듯하게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해서 빈축을 샀는데 이젠 따듯한 것을 넘어 우릴 끓는 물로 몰아넣고 있다. 그가 이끄는 우리의 미래는 해물탕이다.

무다구치 렌야가 지휘하던 제 15군 병사들은 임팔 작전이 실패한 뒤 지독한 영양실조와 풍토병을 겪어가며 철군을 시작했다. 이동수단도, 보급도, 제대로 된 지휘체계도 없는 그 지옥같은 밀림에서 살아남는 것은 순전히 현지인들이나 심지어 적군의 자비에 달린 일이었다. 현재 우리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나는 일본의 추가제제가 없다면 현재 조치만으로는 우리 경제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적인 일본의 의지나, 중재자인 미국에게 달린 것이다. 우리는 짐짓 의연한 태도로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계란으로 바위를 존나 세게 치면 바위도 다칠 수 있다는 류의 주장을 펼치지만 한국이 일방적으로 상처입힐 수 있는 일본인은 BTS 팬들 뿐이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