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8.

대한민국 외교, 처참한 실패

*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3일부터 3박 4일간 중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다. 현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두 약점-외교와 안보에 대해 중국이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만큼 , 청와대는 아마 해를 넘기기 전에 성과를 내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중국은 한국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고, 마치 산타처럼 연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려던 문재인 대통령은 서류쪼가리와 사진 몇장만 들고 귀국해야 했다. 여러 논란을 빚은 이번 방중을 두고, 청와대는 120점짜리였다며 자평했지만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문재인의 지지율은 2.2%가 하락하며 다시 70%선 아래로 주저앉았는데, 이는 북한 도발이 멎은 이래 가장 큰 하락세이다.

* 외교는 의전에서 시작해서 의전으로 끝난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상복에 관한 의전을 두고 자신의 목숨과 가문의 미래를 걸고 싸운 것 처럼, 외교의 승패는 의전으로 나타난다. 바로 그 의전에서 우리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대통령의 방중 행사는 항상 국가주석과 총리와 각각 한 번씩, 그리고 지방 지도부와 한번씩 만찬을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경우에 따라 지방 지도부와의 만찬이 생략되는 경우는 있어도, 총리와의 만남이 빠지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 방중에서는 처음으로 빠졌다. 중국에게 가장 구구절절한 러브콜을 보낸 문재인 대통령은 한중 수교 25년만에 가장 낮은 대우를 받고 돌아왔다.

* 그렇게 홀대받았는데 협상의 결과가 좋을 리도 없다. 사드 압박에 관한 부분은 지난 10.31 한중 합의에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고 공동 선언문 채택도 불발되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중국의 대북억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없었다.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항하여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고난이도의 다자외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결국 문재인은 또 한번 중국이 발행한 공수표 몇 장만 들고 귀국했고 청와대는 방중 성과 브리핑에서 화려한 수식어와 형용사로 숫자들의 빈 자리를 메워야 했다.

* 애초에 이는 대등한 협상이 아니었다. 중국의 사드제제라는 카드는 애초에 없던 걸 만들어낸 것이고, 한국은 거기에 주권국가의 자위권을 걸었다. 이제 중국이 만약 관광을 넘 서비스업 전체, 혹은 제조업을 걸고 한국의 모든 순항미사일을 폐기하라던가, 아니면 F35 전투기의 도입을 막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중국은 새로운 카드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남한은 나라의 주권이란 카드를 내미는 소모적 게임을 시작해야한다. 그 불리한 테이블에 자진해서 앉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그것도 울고불고 애걸복걸해서.

* 청와대와 여당 지지자는 "중국이 삐쳤으니 달래러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정신착란에 가까운 현실 인식이다. "달랜다"는 표현은 강자가 약자를 대할 때 쓰는 말이다. 아니면 적어도 관계가 동등하든가. 중국은 강자고 우리나라는 약자다. 약자가 화가 난 강자의 집앞에 찾아가는건 "달래"는 것이 아니라 "빌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치면 인조도 땅바닥에 아홉번 머리를 찧은 뒤 "내 시끄러워서 오랑캐놈들 자존심 한번 살려줬다" 하고 허세를 떨 것이다. 애초에 자위권이라는 삥을 뜯기고도  상대의 집에 찾아가 홀대를 당하는 마당에 외교와 협상, 그리고 성과를 논하는 것이 웃기는 일이다.

* 수행 기자들이 구타당한 사건에 두고 여당 지지자들은 기레기라 맞았다, 맞을 짓을 했다며 이 사건의 외교적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물론 중국에서 기자들 폭행은 가끔 있는 일이며 일부 기자들의 잘못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어쨋거나 그들은 대통령을 수행하는 기자단이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평소 행실과 무관하게 중국인들이 개패듯이 팬 사람은 청와대의 봉황과 무궁화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어찌 외교적 의미가 없다고 믿는가.

* 왕족의 권력 다툼을 다루는 한 인기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왕이 자기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해야한다면 그는 왕이 아닌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스로 홀대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홀대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내실없는 회담에 별 관심도 없는 중국에게 매달려서 억지로 방중 스케줄을 잡은 외교 실무진의 잘못이다. 더욱이 노영민 주중대사의 이력을 보면 95년 환경운동으로 경력을 시작 한 뒤 단 한번도 외교에서, 그와 비슷한 분야에서도 경력을 쌓은 적이 없다. 이런 사람에게 맡길 정도로 어디 외교가 쉬운 일인가. 안보와 외교가 현 정부의 지지율을 갉아먹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얼른 다 잘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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