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경제백치 대통령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종의사결정권자라면 핵심적인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상식은 갖추고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일례로 군사, 정치, 입법, 그리고 지금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경제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하지만 추경재원 마련에 대해 대통령이 내놓은 한마디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황당하고 또 창피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위태로운 경제여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지출을 늘릴 추경을 주문한다"고 밝히며, 또한 동시에 "그 재원 대부분을 정부예산 구조조정으로 마련하겠다. 국회의 협력을 당부드린다”고 답했다. 이게 어떻게 한 문장안에 묶일 수 있는 내용인가.
 
경제가 다운사이클에 들어서면 정부는 수요부족을 메워주기 위해 지출을 늘린다. 따라서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지출을 늘리지만, 그 돈을 다른 지출을 줄여 마련한다는 발상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지출항목을 변경하는 것 뿐이다. 치매가 아니라면 그는 마땅히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에게 왜 적자재정을 펼쳐야 하는지 물었을 것이며 그들은 대통령에게 알기 쉽게 설명했을 것이다. 장담컨대 문재인 대통령은 추가경정예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뭔지도 모르면서 경망스럽게 몇마디 던졌다 망신당한 일이 비단 이번 뿐인가.
 
평생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해본 적이 없고, 자기 손으로 돈 벌어본 적도 거의 없으며 돈이라는 건 윽박지르면 튀어나오는 줄 아는데다 최소한의 상식마저도 없는 사람들이 경제 사령탑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가장 위험한 시기에 경제백치들에게 정책을 맡기고 있다. 이런데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착란이다, 일종의 정신병이다.
   
나보고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해서 이러는 것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무능한 사람이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국정을 망치는데도 좋아한다면 그게 더욱 문제인 것 아닌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그는 내게 비호감보다는 호감에 가까운 정치인이었으며 아마 그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무능하고 부도덕하며 또 비상식적 행보를 거듭하는데도 호감/비호감을 따지고 앉은 것은 미친 짓이다.
 
 
단언컨대 그는 내 생애 가장 최악의 대통령이다.

2020. 3. 23.

America, save the world.

                                              한국                            미국
첫 사망자 발생일                   2/21                            2/29
기준금리 인하              50bp(29일 뒤)        150bp(4일, 17일 뒤)
추경예산(GDP대비)            1%이상                     10%이상
중앙은행매입자산               10억불                        무제한
대통령 특단의 대책     공무원월급삭감           기본소득 $1k


대한민국에서 종부세 소득세 양도세 등등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영하는 것이 결코 달가울 수 없다. 게다가 정부가 내가 피 토하며 번 돈을 걷어가서 등신같이 쓰는 것을 보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이 사치인 시점이다. 미네르바처럼 잡혀가기 싫어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한국은행조차 1년짜리 채권을 완판하기 힘들정도로 경제 주체들이 심각한 신용경색을 겪고 있으며 이와 같은 일들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미국 GDP가 25%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 벌렁거리는 가슴이 진정하기도 전에 모건스탠리는 이에 질세라 -30%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내놓았다. 2차세계대전에서도 이와 같은 수치가 나온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면 이게 얼마나 커다란 일인지 가늠이나 할까.

전대미문의 사건에 맞서 연준과 미국의 행정부, 그리고 의회는 전대미문의 정책으로 맞서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국은행과 한국의 정치인들은 쓸데없이 자기자신의 어리석음과 싸우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셋 중 하나는 실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당신이 내년 이맘때에도 소득세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저 코쟁이 중앙은행장과 미국 하원에 달린 것이다.

대가리에 뇌 대신 우동사리가 든 이주열과 홍남기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no brainer by DJ Khaled

2020. 3. 14.

이주열. 치매거나, 혹은 못났거나

최악의 순간에 최악의 인물이 정책결정자 자리에 앉아있을 때 어떤 촌극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라의 경애왕은 견휜이 침공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포석정에서 파티를 열었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잡혀 죽었으며, 한국의 현대사에서 5.16사태가 터지자 미군까지 나서서 쿠데타군을 진압하겠다고 한국정부에게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시 결정권자였던 장면총리는 수녀원에 쳐박혀 기도나 하고 있다 축출되었다. 그리고 이런 희극인지 비극인지 구분되지 않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증시가 동시에 10% 안팎으로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극심한 신용경색을 겪자 거의 모든 주요국의 금융수장들은 앞다투어 대책을 내놓았다. 연준은 일정에 없던 50bp 금리인상을 단행하여 가장 선제적으로 대응하였고, 영국 호주에서는 중앙은행과 행정부가 동시에 통화정책 완화와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것으로 대응했다.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역시 재정과 금리인하를 동시에 시행하여 경기침체와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무것도 없다. 중앙은행장이 대통령에 이어 우한코로나 사태가 별것 아니라고 선언한 것 외엔.

한국은행은 2월 14일, 2월 18일, 그리고 3월 4일 세차례나 시장의 패닉에 대응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이 사태가 별거 아니라며 설레발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특히 오늘 코스피와 코스닥, 그리고 선물시장에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자 한국은행은 "임시 금통위 개최를 고려할 것"이라고 발표하여 큰 웃음을 선사했다. 마치 핏물이 흐르는 전쟁터의 야전병원마냥 시뻘겋게 변한 모니터 속의 숫자들 한 가운데서 하얗게 질린 우리에게. 아마 전쟁이 터져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국군통수권자가 "군사적 대응까지 고려할 것"이라는 촌평을 내놓는다면 이만큼 웃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것은 2월 20일이었는데 그로부터 23일이 흘렀건만 한국은행은 아직도 금리인하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첫 사망자가 나온 것이 2월 29일인데 연준의 첫 인하는 3월 3일이니 두 중앙은행간의 엄청난 갭이 돋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현재 3월 13일까지 미국 이외에도 호주, 캐나다, 일본, 잉글랜드, 노르웨이, 홍콩, 중국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모리셔스 세르비아 같은 나라들도 모두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전환했다. 과연 한국은행은 뭘 하는 조직일까. 과연 우리나라가 현대 통화정책을 쓰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혹자는 대규모 판데믹으로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금리를 0.25%내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 의문을 품고 한국은행을 옹호할 지 모른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역할은 주식시장의 안정이 아니라 물가와 금융시장의 안정에 있지 않냐고 하면서. 하지만 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고작 주식이 몇%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불안을 넘어 패닉으로 치닫고 있고 실물경제의 타격으로 다시 한번 디플레의 위협에 빠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3달 뒤에 나오는 GDP 수치를 보고서야 대응에 나서겠다는 중앙은행을 보고 있노라면 맥박이 멎어야 응급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사와 무엇이 다른가 싶다. 무엇보다 정부는 착한 임대료운동이라며 건물주들에게 임대료를 낮출 것을 지시하는데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얌말로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매기는 임대료와도 같지 않은가. 할 수 있는 정책은 방기하면서 할 수 없는 착한임대료운동이나 운운하는 것은 업무상 배임에 가깝다. 법률적으로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은 금융수장들과의 만찬을 주선하고 대책을 내놓을 것을 당부했지만 거기서도 통화정책이 설 자린 없었다. 유일한 조치라고는 주식공매도를 6개월간 전면 금지한 것 뿐인데 이는 투자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조치로 한국의 금융시장에 더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대부분의 주식을 공매도하는 펀드들은 한국기업이 망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롱숏 전략의 일종으로 전망이 나쁜 기업을 공매도하고 전망이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뿐이다. 6개월간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은 숏 뿐만 아니라 롱도 하지 말라는 뜻과 같다. 따라서 롱숏전략이 막힌 투자자들은 이제 전망이 좋은 기업의 주식까지 팔아치울 것이다. 아멘.

우리는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총재를 짊어지고 있다. 어쩌면 박근혜의 최고 실책은 최순실이 아니라 애초에 이주열을 한은 총재로 앉힌 것이며 저런 무능한 인간을 연임시킨 것이야말로 문재인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이다. 처음엔 글의 제목을 못난 이주열이라고 적었지만 그의 위대함 멍청함을 장식하기엔 두글자의 수식어로는 너무도 부족하다. 시장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별것 아니라고 우기는 모습은 그가 혹시 치매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으며 강남부동산 때문에 나라경제가 무너져도 금리인하를 할 수 없다는 발언은 마치 한복 입고 클럽에 가서 EDM에 맞춰 사물놀이 춤을 추는 것 만큼 우스꽝스러웠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한국은행이라는 조직이 유지되는게 과연 합리적인지 모두가 돌아보게 만들었다는데에 있다. 단언코 그는 내가 본 모든 중앙은행장 중 가장 최악의 인물이며 우리는 최악의 순간에 최악의 결정권자를 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앙은행장은 당장 탄핵해야 한다.

trading the fear(2)

아인슈타인이 굳이 어려운 수식으로 증명해주지 않아도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즐거운 순간은 너무나 짧게 지나가는 반면, 아픈 시간들은 너무나 길다. 특히 그 한가운데서는 매 순간이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나 영원히 계속될 것 처럼 느껴지곤 한다. 마치 내무반에 정자세로 앉아 시계나 바라보는 이등병의 하루처럼. 트레이더들에겐 지난 2주 간의 시간들이 그랬다. 미국 주식은 폭락하다 반등하길 반복하다 20%나 하락한 채 끝났고 모니터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본 적이 없던 온갖 경고등들이 번쩍거렸다. 덜떨어진 한국 시장은 물론이고 세계 최강의 미국 주식시장마저도 심정지가 온 80대 노인의 맥박마냥 거래가 정지되었다 풀렸다 다시 정지가 걸리곤 했다. 까먹었던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의 차이를 몇년 만에 검색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번 말하지 않았나.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비명을 지를 때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경게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각종 시장은 금융시스템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우리가 지난 200여년간 쌓아온 자본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는 성급한 분석까지 내놓는다. 하지만 현대의 경제학과 금융시장은 재정의 승수효과를 모르던 케인즈 이전의 시대도 아니고, 금본위제가 폐지된 것 만큼의 충격도 아니며, 아무리 저 우한코로나가 위험하다 해도 인명의 손실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보다 더 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시스템이 붕괴되는 경우도 제외한다면 모든 패닉은 길어야 6개월 안에 마무리되었다. 서브프라임과 은행들의 줄도산을 겪은 2008년 가을 미국의 주식시장도 불과 반년만에 저점을 찍고 반등했으며 패닉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언급되던 1987년의 블랙먼데이조차 불과 한달만에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이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지 못하고 시장의 저점이 어디일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가 미래의 거울이라면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은 어떤 자산을 어느 가격에 매입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전에 언급했듯(링크) 첫번째 폭락이 마무리되면 시장은 빠른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횡보할 것이고, 두번째 폭락이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섣부른 투자로 단기 반등을 쫒아 투자하다가 이어지는 두번째 폭락에 손절하고 싶지 않지만, 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웅크려있느라 그 두번째 기회를 놓치기도 싫기 때문이다. 시장은 언제고 다시 얼어붙을 것이며 그 순간 다른 모두를 제치고 우리가 과감하게 발을 내딛기 위해선 그 어느때보다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현금흐름도, 지식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도.

*                 *                 *

위에서 한국시장에 덜떨어졌다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다분히 중의적 의미였다. 오늘 당국이 보여준 모습은 총체적 개망신/개뻘짓/개무능의 완벽한 콤비네이션이었으니까. 한국이 다른 나라들과 같이 움직일거라 생각하지마라. 병신같은 한국은행 총재가 다른 중앙은행들과 따로 놀듯 한국 시장도 그러할 테니까. 이젠 빡치기는 커녕 의문이 든다, 저새끼는 대가리에 뭐가 들었을까. 지지난주 금요일처럼 시장에 대한 글과 무능한 총재에 대한 글을 두편 썼는데 고소당할까봐 좀 다듬어서 올리련다. 에휴.

2020. 3. 8.

제로금리 그리고 마그나카르타

일본식 영어표기를 따르는 우리나라는 경제와 재정을 총괄하는 경제부처를 Ministry of finance*라고 부르지만, 영국과 미국은 보통 treasury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이 단어는 재무부라는 딱딱한 이름보다 머릿속에 해적선과 대포를 연상시키는 보물/재화라는 뜻이 더 친숙한데 어원을 찾아보니 아니나다를까 불어에서 온 단어로 14세기 왕의 재정을 담당한 대신이 보물을 담아두던 방의 열쇠를 지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중앙집권시스템이 갖춰졌고, 또 유교식 국가관에 익숙한 우리에겐 다소 어색한 개념이지만 강력한 왕권을 갖추지 못했던 봉건 유럽에서는 돈이 없으면 왕도 파산하고 자산을 저당잡히곤 했다. 시대에 따라 다소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왕과 신하들의 관계도 일종의 계약이라고 볼 수 있었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해도 영주였던 신하들이 병력을 보내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군대도 소집하지 못할 정도로 왕의 위상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무지왕 존(John Lackland)의 수모가 그 대표적 예인데,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해 영지를 잃어 재정이 악화되는데도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다 파산위험에 처하자 귀족들에게 세금을 더 징수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귀족들이 반발해서 군사반란을 일으켜 런던을 포위하자 존 왕이 항복하며 자신의 권한을 제한하는 문서에 서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영국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하는 마그나카르타이다.** 이후 삼권분립이 정립된 근대국가에서도 세금을 걷는 권한은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가 지닌다.

 
*              *              *

누구나 아는 역사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이유는 우리가 조만간 마주할 경제현실이 저 무지왕 존이 겪었던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월가는 우한폐렴이 창궐한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그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가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어떠한 타격을 줄 지 아무도 그 끝을 모른다. 투자은행들은 계속해서 성장전망을 수정하고 있지만 그들의 전망이 하향되는 속도보다 사태가 악화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더 퍼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경제를 전망하나. 이코노미스트들도 월급을 받으니 밥값하려고 억지로 고통스럽게 숫자를 짜내는거지 솔직히 죄다 무의미한 가정에 근거한 엉터리 전망이라 주말 내내 보고서를 읽다 그냥 때려치웠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더욱 귀기울여 듣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시장의 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똑똑한 경제학자들의 글이다. 전자는 저번 글(링크)에서 언급한 대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후자의 사례 중 하나로 폴 크루그먼의 기고를 종종 찾아보곤 한다. 최근의 글 두편(1 / 2)에서 그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고 통화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재정정책, 그것도 매우 강력한 재정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역시 통화정책으로는 시장의 공포를 잠재울 수 없으며 과감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링크)

현재 미국의 10년 채권금리는 0.75%로 잃어버린 20년을 마주한 당시 일본 수준으로 하락했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탄탄했던 미국의 성장전망이 저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굳이 분석해 볼 필요조차 없다. 그리고 시장은 중앙은행이 2008년 리만사태때 만큼이나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의 패닉이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통화정책의 한계는 0%가 아니라 상상력과 중앙은행의 의지 뿐이니 연준이 더욱 놀라운 조치를 취할 수도 있고 그들은 이에 대한 연구도 해왔지만 비전통적인 방법에는 늘 정치적 반대와 마찰이 따른다. 연준이 첫 QE를 실시할 때 얼마나 많은 멍청이들이 하이퍼인플레이션 운운하며 반대했는가. 따라서 신속하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재정정책밖에 없다.

하지만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한 존 왕이 겪었던 고통을 현재의 행정부도 겪고 있다. 세수감소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재무부가 지출을 늘리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공화당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지출한도를 증액해주지 않아 정부가 셧다운 되도록 방임한 적이 있으며 다분히 그에 대한 보복적 성격으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를 3년간 두번이나 셧다운시켰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의 정치성향도 과거보다 훨씬 더 양극화되었고 또 대선을 앞둔 터라 정치적 마찰이 더 심할텐데 과연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쉽게 재정지출 확대를 승인할 수 있을까. 참고로 2008년 리만이 파산한 직후 부시행정부가 제시한 구제금융법안을 하원이 부결시키면서 S&P가 사상 최대의 일중 폭락을 기록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 중 하나가 현재의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

과거보다 훨씬 더 양극화 된 미국

미국인들은 자국 정치인들을 멍청하고 이기적이며 어리석다고 하지만 문재인이 당선되고 강경화가 외교부장관을 맡는 한국인의 눈에는 적어도 미국의 정치인들은 정쟁으로 나라를 파산시킬 얼간이들이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영민하고 추진력을 갖춘 대통령으로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정책을 관철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에 언급한 대로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또 낙관적 결과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아마도 시장은 좀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전에 말했듯이 좋은 투자자가 되려면 가장 비관적인 순간에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가 자리를 지키는 한 미국은 또다시 공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원이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킨 날의 S&P500


*정확히는 Ministry Of Economy and Finance
** 그러나 이후 왕의 요청으로 교황이 무효를 선언하고 절대왕정 시대에는 사실상 사문화되는 등, 그 의의는 후대에 과장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2020. 3. 6.

☆경축☆ 사회주의 강성대국 수립 기념일


오늘은 너무나 경축할 날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아니 남조선이 드디어 사회주의강성대국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에이씨.. 아니 남조선 정부는 드디어 마스크 배급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 나는 먼 훗날 오늘이 남조선사회주의강성대국의 수립일로 기념되리라 믿는다. 3월 6일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 길이 빛나는 날로 기억되리. 만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가격을 시장이 결정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선 국가가 결정한다. 그런데 지난 한달간 우리 아니 남조선정부의 정책은 다음과 같다. 제국주의자들의 더러운 자본시장이 무너지든 말든 남조선인민중앙은행장 리주열 동무께서는 기준금리를 동결하시었고, 민족의 얼을 빼앗아가는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도 묶어 놓으시었다. 괴뢰도당들의 본산지 대구에서 발병한 자한당코로나로 인해 인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지자 준엄하신 남로당 총수 문재인 동지께서 마스크의 생산과 배급을 지시하시었다. 가격도 천오백원 정가에. 아마 주식도 조금만 더 빠지면 국민 아니 인민연금을 동원해 코스피도 고정가격으로 박아두어 계속해서 민족기업을 팔아치우는 미제투자자들에게 철퇴를 내릴 것이니 어찌 사회주의강성대국으로 나아간 것을 기뻐하지 않을수 있으랴!

물론 저 미제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역겨운 괴뢰도당들은 신용경색의 조짐이 보일 땐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제국주의 앞잡이들의 수장인 훼-드(FED)의 결정을 예로 들겠지만 자본주의에 통달하신 우리 맑스 동지의 자본론엔 그런 내용 따윈 없다. 그러니 이는 새빨간 거짓임에 틀림이 없다. 또 재수없게 생긴 백인 기병대장들의 후손들이 날조해 낸 이론을 믿는 신자유주의자들은 고정환율제가 주기적 외환위기를 부르고 국가 간의 불균형을 조정하지 못하니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사회주의강성대국에 더러운 미제 달러는 더이상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총폭탄 정신 뿐이다. 꼭 필요할 땐 우리의 혈맹 마오동지에게 린민비를 빌려 쓰면 된다. 일부 계급주의 사상에 찌들은 자본가들은 가격상승을 방임해야 대대적 자본투자가 이루어져 마스크 아니 입가리개의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개뼉다귀같은 주장을 늘어놓는데, 남한의 오천만 혁명전사들에겐 그런 타락한 이론은 통하지 않는다. 모오든 입가리개 공장에 천리마운동을 펼쳐 우리 촛불전사들이 불철주야 공장의 기계를 돌리면 생산량은 열배로 늘어나면서 단가는 반으로 하락할 것이다. 그러고도 물량이 남아 우리 마오동지들의 후예에게 상납할 수 있으니 7억개 쯤 미리 주자. 남조선에서 배급이라는 공적 업무에 사기업과 민간 약사들을 동원하는건 잘못 된 것 아니냐고? 그런 썩어빠진 정신을 가진 간나새끼들은 모조리 태백 탄광에 쳐넣어 강제노동을 통해 사상을 뜯어고쳐야 한다. 게다가 곧 여름이 오면 또 전력이 모자르니 화력발전용 갈탄이 더 필요하다. 하나의 마스크로 미세먼지와 바이러스를 동시에 막을 수 있으니 수령님의 지혜가 하늘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라! 우라! 우라!

특히나 남조선 에미나이들이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는데 아무 걱정하지 말라. 우리 사회주의강성대국들은 주기적으로 기근을 겪어 인민들의 평균체중이 15-25%씩 빠지곤 하는데 이제 남조선 인민들도 사회주의 다이어트를 겪을 날이 머지 않았다. S라인을 넘어 체지방률 0%에 가까운 l라인 인민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라!


농담 아니냐고? 진담이다. 지난 한달간 정부가 내놓은 모든 정책들은 정확하게 사회주의 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조치였는데 어떻게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자본주의에서는 사치재를 누리는 것이 필수가 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필수재를 구하는 것이 사치가 된다. 사채재로 둔갑한 첫번째 필수재는 아파트였고, 이제 마스크가 그 두번째 사례가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필수재가 사치재로 승격될 것인가.

시장의 비명, 그리고 병신된 이주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2번째로 높게 올라간 공포지수 VIX
지난 열흘간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면서 수도 없는 시장 전망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절대 다수는 금융시장 참가자가 아닌 사람들이 상상력을 가미해 쓴 것이고 나머지 중 또 대다수는 금융인이라고는 하나, 트레이딩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쓴 뇌피셜에 불과하다.(얼마나 많은 금융권 종사자들이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안다면 놀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국제 금융시장을 가까이 관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끽해야 주식이나 환율 몇개나 볼 뿐. 물론 나보다 더 열심히 트레이딩하는 사람들도, 나보다 실적이 더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은 한글로 글을 쓰지 않거나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나는 지금부터 설명할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글을 쓸만큼 한가한, 딱 그 경계에 있다. 그리고 최대한 쉽게 써볼테니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보다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내 개인적 전망은 []로 따로 표시하겠다.

지난 글에서 금과 주식이 동시에 하락하면서 국채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는 신용경색의 대표적 징후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좋지 않을때엔 금이 오르고 채권금리가 내린다. 금이 내리면서 금리가 오른다면 경제(인플레)전망이 좋기 때문이라 주식이 오른다. 금이 빠지면서 주식이 하락하는데 채권금리가 내린다면? 역사적으로 그런 경우의 수는 딱 둘 뿐이었다. 하나, 금시장에 투기적 포지션이 과도하게 들어와 있었거나 둘, 유동성이 마르고 있을때. 그리고 지금은 적어도 첫번째 경우는 아니다.

두번째 신호는 자산 간의 상관관계가 부서지는 것이다. 대개 주식이 좋지 않으면 환율은 오르기 마련이다. 경제전망이 좋지 않으면 성장주보다 가치주가 선방한다. 유가가 오를때 정유/화학주가 강세를 가는 등, 모든 금융자산 사이에는 시장에서 널리 통용되는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투자자들은 이를 참고하여 투자를 한다. 그런데 지난 14일간 우리는 이들이 망가지는 것을 목격했다.

세번째 신호는 자본을 조달하면서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은행은 판사보다 목수에게 더 비싼 금리를 받고 돈을 빌려준다. 우리가 아무리 일본에게 지지 않는다고 외쳐도 국제금융시장은 국민은행보다 미즈호은행에게 더 낮은 금리를 받고 돈을 빌려준다. 금융기관끼리도 1주간 융통하는 돈의 이자가 1달간 운용할 자금의 이자보다 낮다. 그리고 지난 12시간 동안 자금을 조달하는 프리미엄이 빠르게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 모든 신호는 금융시장이 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비명소리나 다름없다. 그것도 연준이 50bp의 깜짝 인하를 단행하고 시장이 이달 말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준의 가장 과감한 안정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비명을 멈추지 못하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던 글과 같이 리만사태 이후 연준이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지 못한 적은 2011년을 제외하면 지금이 유일하다. 우리는 이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경제성장률을 수정하거나 아니면 기업의 실적을 하향하는 사건은 주가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수익률이 다시 올라가 다시 매입할 환경이 조성되지만, 신용경색이 일어나게 되면 가치평가와 무관하게 무조건 팔아야 할 압력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천억 짜리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의 입장에서, 만약 무역분쟁이 터져 메모리 수요가 감소한다면, 생산업체의 목표주가를 낮추면 끝이다. 실적이 100에서 80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만원이 아니라 8천원에 사면 되지 뭐. 설령 시장이 과도하게 하락해 7천원까지 간다고 해도, 버티거나 아니면 물타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금융시장이 붕괴하며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급격한 환매를 시작하면 펀드매니저는 무조건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주가와 상관없이 무조건 팔아야 한다. 심지어 주식이 저렴해 질 수록 사기는 커녕 더 많이 팔아야 하는 딜레마에, 그것도 잘 팔리는 가장 우량한 자산부터 팔아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다. 삼성전자와 개잡주를 들고있는데, 개잡주가 하한가라 팔 수 없으니 우량한 삼성전자를 팔아서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처럼. 이 단계에서는 가치평가와 미래 실적 예측은 아무 의미가 없다. 파산하느냐, 돈을 돌려주지 않고 고소당하느냐, 아니면 팔 것이냐의 기로에 있을 뿐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나는 현 상황이 금융위기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008년의 금융위기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는 것 외에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랐던 상황에서 맞이한 신용경색이었고, 지난 10년 간의 경험 끝에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의 한계는 0%라는 가상의 선이 아니라 상상력과 중앙은행의 의지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금리가 더 인하될 지, 또 신용경색이 얼마나 더 강하게 발생할 지 모르겠지만 중앙은행은 우한코로나 환자들은 구하지 못해도 금융시장은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할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개입이 시작되어 신용경색은 피하더라도 주식의 부진은 한동안 멈추지 않는다. 중앙은행들이 돈을 더 풀기까지 주식시장은 5% 폭락했다, 금리인하 소식에 도로 상승했다가 또 나쁜 헤드라인 하나에 폭락하는 상황을 반복할 것이고, 또 이렇게 변동성이 커지게 되면 각 투자자들은 자산을 재평가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좋은 자산이란 무조건 절대수익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변동성은 낮은데 투자수익률이 괜찮은 자산들이다. 거의 모든 투자자들은 이 기준에 따라 좋은 자산과 나쁜 자산을 구분한다. 허나 변동성은 순식간에 몇배로 커질 수 있는데 비해 투자수익률은 그러기 어렵다, 아니 현재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는 되려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회사의 기업가치가 변한 것도 아니고, 경제전망이 바뀌지 않아도 변동성이 커졌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좋은 기업이 하루아침에 나쁜기업으로 탈바꿈한다. 물론 투자자들도 바보가 아니니, 하루 이틀 혹은 1주와 같은 짧은 기간의 변동성만으로 자산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식의 급등락이 단기에 그치지 않고 한달 이상 이어질 경우 그들은 변동성을 새롭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은 2차 충격을 겪는다. [내가 이전 글에서 시장에 두번째 폭락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주식시장 변동성이 현재와 같은 수준에 이를 경우 이와 같은 프로세스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저점매수 기회를 노리는 사람은 1차가 아닌 이 2차 폭락기에 진입해야 한다. 저점을 정확하게 잡아내지 못하는 이상, 1차 폭락에 진입하면 대개 2차 폭락을 못견디고 손절하게 되기 대문이다.

[나는 우한코로나가 스페인독감과 같은 치명적 재앙을 가져오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이나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높은 사망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공포의 본질은 늘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치료제 제조가 임박하다곤 하지만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사망률이 뭐 한  2%에서 0.2%로 줄어들 뿐이다. 이는 의학적 관점에선 엄청난 발전일 지 몰라도 인간의 감정은 합리적으로 확률을 계산하지 않기에 공포를 크게 경감하진 못할 것이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길은 백신을 맞아서 면역을 갖추는 것 뿐인데 현재 전문가들 중에 백신이 3달 안에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시장의 공포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가장 불쌍한 투자자들은 연준의 깜짝 금리인하했다고 다음날 곧장 한국 주식을 매입한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2차 폭락은 아직 오지 않았을 뿐더러 역대급으로 무능한 한국은행 총재를 둔 덕에 전세계 금융시장이 신용경색을 일으킬 동안 한국은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앙은행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시장으로 남았고, 또 동시에 환시개입으로 환율수준을 찍어누르기 때문에  해외중앙은행들이 공급한 유동성이 국내로 흘러들어올 루트도 막은데 동시에, 환율의 자연스러운 조정으로 국내 수출이 개선될 여지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 인구당 확진자 수가 세계 1위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주식시장은 박살나는데 중앙은행이 완화에 나서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 국가의 미래를 거하게 말아먹은 케이스가 있다. 바로 옆 나라 일본. 이 블로그의 첫 포스팅(링크)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중앙은행장 하나가 어떻게 나라경제를 20년간 거덜냈는지 분석한 글이고 이를 작성한 지 자그마치 5년이나 흘렀는데, 놀랍게도 그 마지막 문단은 오늘날의 총재를 평가하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의 주장과는 다르게 디플레이션 압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고,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이미 디플레와 싸우기 시작했다. ........ 어쩌면 총재는 속으로 조직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잔다르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장은 그를 시대착오적 돈키호테라며 조롱했다.


5년이 흘렀건만 같은 병신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병신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20. 3. 5.

파리, 전쟁의 신 그리고 선거의 여왕


파리에 방문한 이들은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대개 역사가 오래된 도시는 구조가 엉망인데 파리는 한국의 왠만한 신도시보다도 더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 해질녘에 개선문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발 아래를 중심으로 곧게 뻗은 방사형 도로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대혁명 이후 반복적인 시민봉기에 시달린 정부가 적은 수의 대포로도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설계라고 하지만, 그런 섬뜩한 배경을 잊고 보면 이런 도시구조야말로 파리를 파리답게 만들어 준 것이다. 현재의 파리는 조르주 외젠 오스만 시장의 손에 재탄생한 셈이나 다름 없는데 그는 임기 내내 파리 전체 면적 중 거의 절반의 구조물을 부수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고작 몇백 몇천 세대에 불과한 재개발이 십수년 씩 걸리는 것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것도 수틀리면 왕과 귀족의 목을 뎅강 쳐내는 혁명의 도시에서.

두번째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건물과 도시구조가 1850년대 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파리 구도심에는 6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으며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거나 개보수하려고 해도 문화재관리당국의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 다큐에서는 개축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문화재관리국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계단의 난간이 아르누보시대의 양식이니 보존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건축기술은 100층 따윈 가볍게 넘길 정도로 발전했는데 도시 전체를 나폴레옹시대의 기준에 맞추고 있으니 파리의 거주여건이 좋을 수 없다. 평균적인 파리 시민은 소득의 약 1/3을 월세로 지불하고 있으며 1-3평 밖에 되지 않는 하녀방조차도 약 500-1000유로의 월세를 내야 한다고 한다. 이러니 인구가 집중될 수 없고, 인구가 모이지 않으면 혁신도 없다. EU내에서 프랑스의 경제적 위상은 나날이 하락하고 있으며 이제 유럽의 경제적 리더는 프랑스가 아닌 독일이라고 보는 시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다. 한때 런던과 경쟁하던 파리의 금융가 역시 순위에서 밀려나 제네바나 토론토 뿐 아니라 심지어 서울보다도 순위가 아래다.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하지만, 예술계와 미술품시장에서도 파리의 위상은 런던이나 뉴욕과 비교할 수 없다. 이게 무슨 굴욕인가. 과연 이런 현상이 파리의 낡은 도시구조와 무관한 일일까.

당시 오스만 시장의 도시계획은 분명 혁신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19세기가 아니다. 당시부터 경쟁하던 도시들 뿐 아니라 베이징, 도쿄, 홍콩에서 마천루들이 속속들이 올라가는 데도 파리와 시민들은 미래로 나아가는 대신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기를 택했다. 파리에서 시작된 대혁명은 상퀼로드와 삼색기와 함께 전 유럽으로 뻗어나갔고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이념적 토대가 되지 않았는가. 심지어 전제적 독재국가인 북한조차도 공식명칭에 인민이라는 두 글자를 박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거의 모든 근대국가는 프랑스 대혁명의 직계, 혹은 방계 후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 영광의 시대와 영영 작별해야 했다. 보불전쟁에서는 처참하게 패해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히고, 1차세계대전에서는 적의 영토에 한걸음도 진출하지 못한채 자국 영토가 쑥대밭이 되도록 방어전만 펼쳤으며 2차 세계대전에서는 6주 만에 파리를 점령당했으니. 그렇게 무참하게 무너진 프랑스인들의 시선이 자꾸만 과거로 향하는 것을 어리석다고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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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프랑스의 영광은 나폴레옹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동시에 그는 영광의 시대를 영영 끝장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남자를 황제로 출세한 코르시카의 촌드기 정도로 기억하지만 그는 혼자의 힘으로 한 시대를 열어젖힐 만큼의 군사적 재능을 지닌 천재였다. 그를 워털루에서 쳐부순 아서 웰즐리는 자신과 나폴레옹을 비교하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에도, 과거에도, 언제라도, 최고의 전략가는 나폴레옹일 뿐이오"라고 답했고 전쟁론을 집필한 클라우제비츠는 그를 가르켜 "전쟁의 신 그 자체"라고 평했다. 그와 그가 이끄는 혁명군을 꺾기 위해서 온 유럽이 총 7차례에 걸쳐 연합을 결성해야 했으며 그는 거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적들을 철저하게 분쇄했다. 그는 총 68회의 전투 중에서 60회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러시아에서 후퇴하기 전까지 그가 패한 것은 고작 3번에 불과했다. 오늘날까지 프랑스인들이 기억하는 프랑스의 영광은 거의 대부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지휘봉 끝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바로 그때문에 몰락한다. 나폴레옹의 군사적 재능이 너무나 뛰어났던 탓에 프랑스는 연합을 결성하고 적을 회유하거나 분열시키는 외교적 노력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전 유럽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간단한 외교적 노력으로도 풀 수 있는 문제를 두고도 그는 걸핏하면 군대를 동원해서 전쟁을 일으켰으며 상대에게 패배의 치욕을 안겼다. 어찌 보면 그의 몰락을 촉발한 러시아 원정 역시 불필요한 군사작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거듭된 승리과 믿을 수 없는 전과는 그가 적들을 가벼이 보게 만들어 이 무모한 도박판에 앉게 만들었으며 결국 그 한번의 패배는 혁명군의 몰락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그의 치명적 실수는 프랑스에게 호되게 당한 다른 유럽의 열강들이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독일의 통일을 방기하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자신의 이웃에 강력한 정치세력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주변국가들의 방해 탓에 독일은 본디 수백개의 크고 작은 공국과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나폴레옹의 패전 이후 전후체제를 논하던 빈 회의에서 동맹군은 프랑스를 견제할 목적으로 39개 국가와 자유시로 구성된 독일연합을 탄생시키기로 했고 이후 1871년 프러시아가 이들을 통합하고 독일제국을 세운 이래 프랑스는 단 한번도 독일을 넘어서지 못했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일어난 보불전쟁과 두 번의 세계대전은 큰 관점에서 독일이 유럽의 맹주 자리를 프랑스에게서 빼앗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성은 결국 본인과 당시의 프랑스 뿐 아니라 현재의 프랑스를 몰락시킨 것이나 다름 없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친필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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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치 아다다 같은 캐릭터로 전락했지만 본디 박근혜의 별명은 선거의 여왕이었다. 그녀가 1997년 이회창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이래 그녀는 거의 모든 선거에서 본인이나 자신이 지지한 후보들을 승리로 이끌었다. 2004년 탄핵과 차떼기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공멸할 상황에 처했을때 그녀는 당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를 차리고 낡은 이미지를 지닌 후보들을 쳐내고 새로운 정치 신인들을 등용하여 예전의 당세를 회복하기도 했다. 심지어 2008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의 계파가 주도하던 공천심사에서 박근혜측 후보들을 대거 탈락시키며 공천학살을 일으키자 친박계 의원들은 탈당하여 친박신당을 창당하여 여당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딴 팬클럽이 원내교섭단체까지 이루는 한국 현대사에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후 그녀는 18대 대선에 출마해 87년 헌법 이래 최초로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승리하여 다시금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증명했다. 혹자는 그녀의 성공을 아버지의 후광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박정희에겐 세 자녀가 있었지만 나머지 둘은 정계 가까이에도 가지 못했고 김대중 김영삼 등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거물정치인들이 있지만 그들의 2세들 중 정치인으로 성공한 것은 박근혜 뿐이다.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도,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녀가 선거때마다 보여준 저력을 폄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은 선거에서 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오만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된 것은 그녀가 전무후무한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지금 정부에서 보다시피), 보수대통령이 공격당할 때 사상 최초로 보수세력이 지원사격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거 한나라당을 재건할 때와는 다르게 그녀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적인 친이계 의원들 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지 않는 비박계 의원들을 공천에서 대거 배제하는 악수를 두었고 그 결과 새누리당은 의석의 과반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이어 자신의 정책을 비판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당청간의 갈등을 악화시켜 이후 그녀에 대한 탄핵투표가 실시되자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찬성표가 대거 쏟아져 탄핵안이 통과되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 기고만장한 우병우가 조선일보와 싸우는 바람에, 섹스비디오, 세월호인신공양설, 최순실 300조 등과 같이 자극적 뉴스들이 퍼져나갈 때 보수여론은 그녀를 감싸기는 커녕 함께 공격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결과를 초래했는지 상상하려면 현 문주당 정부가 악정을 거듭해도 한결같이 빨아주는 진보언론의 역할을 떠올려 보면 쉽다.

결국 전쟁의 신이 전쟁만 하다 망했듯 선거의 여왕도 자기 맘대로 선거를 하다 망한 셈인데, 그 여왕폐하께서 총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어제, 갑자기 지지자들에게 옥중서신을 보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중도표를 모으는데 유리할텐데 왜 목소리를 냈는지 궁금해서 그 편지를 찬찬히 읽어보다 잊혀진 그녀의 별명을 떠올렸다. 현 보수층은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사람들과 반대한 사람들의 어정쩡한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태극기세력은 민주당과 문재인 만큼이나 보수세력 내의 탄핵찬성파를 증오하는데, 과연 그들이 총선까지 마찰 없이 견고한 연합을 유지할 수 있을까? 20대 국회의 초선의원 중에는 친박계가 많고 아마 그들 중 다수는 공천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반발이 있을 것이며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은 으레 그렇듯 분당하거나 우리공화당같은 극우당으로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는 아마 중도표를 약간 잃더라도 자신을 빌미로 연합에 반대하는 극우세력을 막는게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6차 대프랑스동맹군에게 패한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됐지만 탈출해 다시 황제로 복귀했다 95일만에 쫒겨나 더 먼 세인트헬레나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평생 영애로 불리다 한 끗 차이로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는 구속된 지 약 2년여 만에 다시 여의도 정계에 승부수를 던졌다. 이 편지 한장이 그녀의 워털루 전투가 될지 아니면 선거의 여왕이라는 이름값을 다시금 증명할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2020. 3. 4.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 (feat. 이주열)

비단 금융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내기 마련이다. 때론 내가 투자한 회사 실적이 나빠져서 화를 내고, 실적이 잘 나와도 오너가 사고를 쳐서 주가가 빠지면 책상을 내려친다. 비오는 날 간신히 카톡택시를 잡아서 나갔더니 엉뚱한 사람이 이미 탑승해서 출발했댄다. 니미럴. 그 때마다 터져나오는 욕지거리를 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주열 씨에게 빡치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비록 연준이 2008년 이후 최초로 기습적으로 금리인하를 감행했지만 나는 한국은행이 이를 무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침에 부총재보가 주관하던 긴급회의를 총재가 이어받았을 때도 절대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총재는 이미 두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사람이고 나라짬밥을 오래 먹은 꼰대들의 행동패턴은 대체로 변하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총재는 2월 14일에 열렸던 긴급기자회견에서 금리인하가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엇다. 바로 그 직후 확진자 수가 폭증하고 최초 한국인 사망자까지 나왔다. 따라서 온 시장은 2월 27일 금통위에서 한국은행이 기존의 스탠스를 뒤엎고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DNA와 RNA의 차이도 모르는 총재는 그 믿음을 배신하고 우한코로나의 영향은 3월 중반에 곧 잦아들 것이라고 큰소리를 땅땅 치며 금리인하를 거부했다. 그 바로 다음날 부터 세계 경제는 패닉에 빠져 미국 주가가 5일간 18%나 곤두박질쳤으며 전세계 경제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랬던 인간이 연준이 긴급인하를 했다고 갑자기 인하를 한다고? 천만에. 늙은 개에겐 새로운 기술을 가르칠 수 없는 법이다.

이 추태는 한국은행이 오후 3시에 발표하기로 한 긴급회의 결과를 오후 3시 46분, 즉 한국거래소의 선물시장이 닫히고 나서 1분 뒤에 발표하기로 하며 정점을 찍었다. 왜 이주열은 자신의 결정을 시장이 닫힌 직후로 연기했을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똥고집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알고 있었고 시장의 평가를 예감하고 있던 것이다. 다만 하룻밤이 지나면 파웰이 나 대신 뭔가 해주겠지, 하는 기대감에 일부러 장 끝난 직후로 발표를 미뤘을 뿐.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금융안정이다.*금융안정의 기본 원리는 시장이 과열상태라면 금리를 올려서 진정시키고, 시장이 패닉을 향해갈 때 금리를 내려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선제적 조치에 있다. 경제가 나빠진 뒤 내리고 좋아진 뒤 올릴 것이라면 중앙은행은 뭐하러 존재하는가? 통계청에서 GDP 발표하며 그냥 같이 하면 되지. 그리고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우한폐렴의 급격한 확산을 겪은 나라고 다른 모든 나라보다 먼저 시장불안을 겪은 나라다. 미국보다도 더 빨리 정보를 분석하고 여파를 관측했을텐데 총재는 경제학 박사학위도 없는 파웰이 행동에 나설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연히도 한국은행의 정례금리결정은 우한코로나가 대대적으로 발발한 직후였지만 총재는 아무것도 안했고 연준은 다음 미팅이 고작 2주 밖에 안 남았지만 손 놓고 스케줄을 기다리는 대신 기습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금융불안을 대하는 두 중앙은행장의 차이는 첫 사망자가 나온 날 짜파구리를 먹은 문재인과 긴급기자회견을 연 트럼프 만큼이나 달랐다.

첫 사망자가 나온 날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상반된 대응


그럼 왜 총재는 금리를 동결했을까? 아마도 그는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자신)의 고유 권한이고 금리인하는 자신이 결정해야지 행정부나 시장 혹은 외부변수에 떠밀려 인하를 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2월 14일의 긴급회의에서 동결을 주장했다. 은성수와 홍남기는 개념없는 총재의 자신감이 어떤 비극을 초래할 지 알고 있었지만 책임을 지기 싫어 내버려뒀고, 우쭐한 총재는 당당하게 이후 이어진 "긴급해서 긴급회의는 했지만 긴급하지 않으니 금리를 인하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바보의 비극은 바보 짓이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는 2월 14일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2월 27일에 똑같은 실수를 몇배 더 큰 강도로 저질렀으며, 드디어 오늘 판돈을 몇배로 키워 연준의 결정에 반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는 재능없는 도박꾼들이 손모가지를 날리는 전형적 패턴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손모가지가 저 할배 손에 달렸다는 거지.

결국 오늘의 긴급회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상식적 예측과는 달리, 아마도 총재는 어떻게 해야 내 거듭된 실수들을 숨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면피를 할지, 그리고 언제 발표를 해야 가장 욕을 덜 먹을지 고민하느라 가장 중요한 하루를 소비했을 것이다. 오늘의 회의는 한국의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총재의 체면, 그 하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애초에 발표시간을 오후 3시로 잡은 것도 주식시장 폐장시간이 3시 반으로 연기된 것을 까먹고 잡은 것 아닌지 심히 의심된다.

청와대의 존재 이유는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권력으로 국민을 섬기기 위해서 존재한다. 한국은행의 존재 이유 역시 총재의 권한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데에 있다. 하지만 총재는 반대로 자신의 권위를 위해 통화정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보다. 금리를 올려야 할 때엔 올리지 못하고,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한 채 자신의 결정을 연준이 대신 해주길 바란다면 월급도 연준한테 줘야지. 이 블로그에서 여러번 주장했던 바지만 저런 총재가 존재하는 한 한국은행은 당장 폐지해도 될 조직이다. 아니, 폐지해야만 한다. 어차피 통화량 조절은 재경부에서 단기국고채 발행하면 되는 것이고 경제보고서와 전망은 KDI에게 위임하면 되고 통화증발은 어차피 조폐국이 하는 일이다. 금리결정도 연준에게 맡기고 쳐놀다 재경부에게 팔 비틀려 할 것이라면 애초에 한국은행을 없애고 업무를 분산하는게 낫지 않나. 대충 계산해보니 한국은행 제도를 폐지할 경우 무려 약 1억 장의 마스크를 국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수 있는데!

제목을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고 썼지만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쪼다가 하고 있다. 지금 그래서 한국은행 총재가 쪼다냐는 애기냐고? 그렇다. 국가정책과 미래, 그리고 통화정책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자신의 자존심을 앞세워 직무를 유기한 사람을 달리 뭐라고 부를까.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는 총재의 가오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믿는 분


*아니라고? 물가안정이라고? 그럼 어째서 물가는 11년째 한국은행의 목표수준을 하회하는가.


2020. 3. 1.

트럼프 긴급 기자회견

  • 뉴욕에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깼다. 어제 블로그에 썼던 것과 비슷한 내용을 친구에게 애기했더니, 분명 내가 이걸 보고 싶어할테니 깨운걸 고맙게 생각하라는 뻔뻔한 멘트를 날리면서. 에휴. 한숨 내쉬다가 대충 졸며 듣다가 그제서야 미국에서 우한코로나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 나라마다 전형적 공포영화의 클리셰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한 맺혀 죽은 귀신이고, 추운 지방에서 살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는 강시(얼어죽은 귀신)가 있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공포영화의 클리셰들은 그 문화권이 가진 가장 큰 두려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럼 미국 공포영화의 클리셰는 무엇일까? 바로 좀비다. 따라서 미국인들의 가장 큰 공포는 감염/전염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민족 이민자들로 시작한 미국은 필연적으로 병균과 바이러스의 용광로였으니까. 미국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뉴욕에서는 정말 세계 모든 바이러스와 세균을 채취할 수 있었다고.
  • 그런 두려움을 지닌 나라에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우한코로나 환자들이 발생했고 그 중 첫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별다른 공포가 없는 우리나라는 첫 사망자가 나와도 대통령이 짜파구리나 먹으며 히히덕대도 맞아죽지 않을 수 있지만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한국의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던 것은 자식을 잃은 한이었듯, 미국의 대통령을 갈아치울수 있는 것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다. 수 억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수십 조 원을 다루는 펀드매니저도 결국 감정에 휘둘리는 일개 사람일 뿐이고 그의 가장 근원적 두려움을 건드리는 일이 터진 것이다.
  • 자꾸 지난 전망을 수정해서 머쓱하지만 나는 이제 파웰 혼자서 시장을 구원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통화정책만 으로는 노동생산성의 향상도 없고 수요의 반등도 없으며 무엇보다 시장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지울 수도 없다. 공포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강력한 행정부 뿐이다. 나는 트럼프가 그럴만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가진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은 그를 확인할 때 까지 고통스러운 하락을 겪게 될 것 같다.
  • 비록 정제된 언어로 조심스럽게 언급하긴 했지만, 트럼프행정부는 한국의 일부 도시에 4급 여행경보를 걸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여행금지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노노재팬 이후 반년 만에 다시금 위기의 진원지가 되었는데 이 모든 일이 터지기 고작 몇일 전에 우한폐렴은 별 것 아니니 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며 큰소리 땅땅 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혜안이 너무나 눈부시지 않은가! 세계 최고의 생물학 전문가들이 포진한 한국의 중앙은행은 코로나의 종식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