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4.

유시민의 타인을 고문할 자유

 전 방송인 유시민(63세)은 김어준이 TBS에서 하차한 배경을 두고 "현 정부는 자기 자유만 자유라고 하면서 반대 진영 사람들의 자유는 없앤다"라고 비판했다. 뒤이어 그는 이제 기존의 언론은 이해집단의 일부가 되어 공론장이 아닌 자기 이해를 관철하는 정보 유통기업이 되었고 따라서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정보를 해설해 주는 방송이 필요하다며 김어준의 유튜브 채널에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람 설정을 부탁한다고 했다. 

언론인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공영방송에서 쫓아내는 것은 분명히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다. 하지만 김어준이 어디 그런 언론인인가. 그가 진행한 뉴스공장은 지난 보궐선거를 앞두고 오세훈이 (땅투기의 목적으로) 내곡동의 생태탕 집을 방문했다고 주장했고, 대선에 앞서 당시 야당 후보의 배우자를 유흥주점에서 봤다는 주장을 검증 없이 내보냈다가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명백한 허위사실이었고 또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던 사건들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태원 사고에 대해서도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지 않았나. 거기에 저널리즘이나 언론인의 사명, 혹은 윤리의식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은 이 일이 자유를 억압한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렇다면 그가 옹호하는 자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대중에게 거짓말을 할 자유, 정치적 중립성을 왜곡할 자유, 범죄가 들통나 자살한 성범죄자를 옹호할 자유, 야당후보의 배우자를 술집 접대부라고 모욕할 자유, 뇌물을 받을 자유, 남의 자식은 못 가게 막으면서 내 자녀들만 특목고에 보낼 자유, 그리고 이 모든 행위가 들통나도 사과하지 않을 자유. 그가 외치는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그 길고 긴 리스트 중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타인을 고문할 자유 아닐까. 

1984년 가을, 시위를 주도하던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네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붙잡아 학생회관에 감금하여 폭행을 시작했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옷을 벗겨 속옷만 입힌 채 폭행을 가해 온몸에 멍이 들었으며 순번을 정해 교대로 폭행에 나서는 등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피해자들을 여자화장실로 데려가 세면대에 물을 가득 채우고 얼굴을 물속에 처넣기도 했는데 한 피해자는 이때 이가 심각하게 부러져 한동안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또 한 피해자는 지나치게 심한 폭행으로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자 응급실로 실려갔으며 이후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피해자 중 하나였던 전기동 씨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은 프락치가 아니고 법대 교수님을 뵙기 위해 캠퍼스에 방문했던 지라 가해자들에게 이 사실을 교수님께 직접 확인해 보라고 했지만 그들은 전 씨의 증언이 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도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 씨는 오히려 자신이 프락치가 아니면 그들의 고문행위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폭행과 협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당시 핵심 수뇌부 중 하나였던 유시민은 스스로 "감금에 찬동했으며 폭행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직접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대하는 유시민의 태도는 놀랄 만큼 전두환과 닮아 있다. 그는 78학번으로 당시 고학번인데다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을 거쳐 복학생 협의회의 대표를 맡아 운동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자신은 직접 폭행을 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마치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전두환의 비겁한 모습처럼. 또 무고한 시민들을 감금하고 끔찍하게 고문을 가한 배경을 두고 독재에 항거하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는데, 바로 그 독재야말로 북한과의 군사적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핑계로부터 탄생한 것 아닌가. 물론 몇 명의 시민을 물고문한 것과 수백 명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은 결코 같지 않다. 하지만 수백만을 죽인 북한과 맞섰다고 수백 명을 죽인 죄가 없던 일이 될 수 없듯, 신군부에게 저항한다는 핑계로 무고한 시민을 고문해 인생을 망가뜨린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한국 현대사의 끔찍한 과거 중 일부인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자신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일했던 애국자라고 주장했다. 그가 고문했던 피해자들 중에는 진짜 간첩이나 반국가단체 소속의 인물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전두환의 독재에 반대했던 사람들, 혹은 아예 무고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범죄자로 기억하지 애국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1984년 관악산 캠퍼스의 학생회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피해자 중 정부의 프락치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은 가해자들과 똑같은 일반 시민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곧 정의라고 믿던 학생들은 이근안이 남영동에서 가하던 것과 똑같은 고문을, 또 훗날 동지 박종철 군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과 똑같은 고문을 스스럼없이 가했다. 그로부터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날의 가해자들 중에서 가장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만이 남아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를 오가는 동안 피해자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하여 빈곤한 생계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실형을 살았던 유시민은 젠체하는 태도로 우리들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치려고 들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래디컬 자유주의자라고 칭했다. 그러나 수많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그렇듯 대개 래디컬리스트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마치 믿음 소망 사랑을 외치던 예수의 이름 아래 이교도의 목을 자르고 몸통을 말뚝에 박아 죽이던 십자군이 그랬듯이. 마찬가지로 노무현이라는 신을 믿는 한 비뚤어진 근본주의자 노친네가 주장하는 자유는 분명 우리가 이해하는, 또 대한민국 헌법에 기록된 자유와 매우 다르다. 앞서 언급한 민간인 고문 사건 이후 실형을 선고받은 유시민은 항소이유서를 작성했는데 그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법과 양심을 모두 지킬 수 없다. 이 경우 양심을 따라야 하기에 나는 반독재운동을 지켜가기 위해 언제라도 기꺼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연행 및 감금 조사를 하겠다" 그리고 유시민은 여전히 현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서슴지 않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모략하고, 스스로 궤변임을 알면서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래도 그의 양심은 찔리지 않는다. 1984년의 학생회관에서 고문당하던 피해자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던 마치 그때처럼. 그러니까 지금 이 육십 넘은 노인이 주장하는 자유란, 내뜻대로 타인을 고문할 자유를 뜻하는 것이다. 



*그가 폭행에 직접 가담했거나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피해자 전기동 씨는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 중 가장 연장자로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2022. 12. 29.

이태원 참사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개 좌뇌가 작동할 때 우뇌는 움츠러들고 반대로 우뇌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 좌뇌는 억제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트레이더들은 감정을 억누르도록 훈련받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뇌를 한 쪽만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듯, 이성 혹은 감정 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태원 사고의 비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순식간에 총 158명이 사망한 이 참사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우리 사회가 이 사고를 품고 받아들이는 데엔 이성과 감성, 둘 모두가 필요했다. 사고 초기 신경정신의학회가 성명서를 발표하며 서로의 감정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유였으리라. 사고 발생 후 나온 몇몇 후속 조치들이 다소 과도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코 불필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감성은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큰 사건이 터지고 나면 사람은 방어기제로 비난할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니 세월호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의 배경을 두고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나 의혹들이 제기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렇다고 그 괴담들이 합리적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또한 몇몇 언론들의 지적과는 달리 이 사고는 쉽게 예견할 수 있던 일도 아니었기에 방지하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손에 닿는 대로 희생양을 찾아 보복에 나선다면, 그것도 정치와 진영에 따라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을지 힘겨루기에만 열중한다면 이와 같은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인간의 이성이 암흑시대를 끝내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18세기 유럽에서 태어난 프란시스 고야. 하지만 이윽고 그는 이성적이라던 유럽인들이 자유와 이념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야만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자유와 평등, 박애를 외치며 혁명정신을 전파하겠다던 프랑스 군은 마드리드에 진군하며 시민군을 대량으로 학살했고 계몽주의적 성향을 지녔던 고야는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고야는 인간의 광기와 야만을 거칠고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을 여럿 남겼는데, 그 연작들 중 하나에 그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오래전 새끼를 잃은 회색 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자식을 잃은 그 암곰이 분노와 슬픔에 미쳐 숨이 멎을 때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동물들을 찢어 죽이고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들까지도 그 곰을 피해 숨고 온 숲이 공포에 떨었다는 이야기. 한낱 짐승들에게도 자식을 잃는 고통은 단장(斷腸)의 아픔이리라. 그렇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감히 이성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감성과 공감이지만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닌 이성이 필요하다. 문제는 우뇌가 작동하게 되면 이성이 마비되고, 그리고 고야가 경고했듯 이성이 잠들면 괴물은 깨어나기 마련이다. 유가족들은 사고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들이 정말로 사고의 진상을 몰라 분노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 무엇으로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 분노로부터 누군가의 자식들을,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분노로부터 유가족들을 지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회는 둘로 나뉘게 될 것이고 한 쪽은 유가족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런 조짐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홀로 방 안에서 보내야 했던 20대들의 첫 축제는 어이없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은 우연과 우연이 겹친 사고였을 뿐 누군가가 악한 의도로 저지른 사건은 아니었지 않은가. 희생자들을 잊어서는 안되고 법을 어긴 이들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우리의 슬픔과 분노는 언제고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로 3만여 명의 동료 시민들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특히나 젊은 20대들은 남은 삶을 최선을 다해 누려야 하지 않을까. 결코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축제여서는 안된다. 나에게도 언젠가 죽음이 찾아오겠지만 그 이후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즐겁고 행복하게 자신들의 남은 몫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행여나 그들이 슬픔에 못 이겨 갈 곳 잃은 분노와 무의미한 증오에 휩싸인다면 부디 다른 이들이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여주고, 또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기를.  



희생자들에게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2022. 9. 27.

미개한 환율정책, 그리고 단호한 통화정책

우리나라에는 통화정책만 존재하지 환율정책이란 괴상한 정책수단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금융을 교과서로만 배운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에는 그 괴상한 환율정책이 존재한다. 하지만 물가의 안정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삼는 통화정책과는 달리 환율정책에는 별다른 원칙도, 철학도 없으며 따라서 비용은 명확한데 반해 실익은 매우 불투명하다. 이런 정책을 미개하다는 말 외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연초만 해도 1200을 하회하던 환율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상승세를 거듭했고 이에 정부는 대량의 달러를 풀어 환율을 낮추려 했다. 1분기 말부터 2분기 말까지 우리나라의 외화보유고는 약 300억 달러가 급감했는데 이 중 거의 대부분이 1200원 초반 수준에 달러를 매도하는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1400원이 넘는 환율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무려 15%나 낮은 수준에 외화보유고를 풀기로 결정한 사람은 국회에 불려가지도 않았고 책임을 지지도 않았으며 국민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시장의 향방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장기적인 적정 수준의 가격이 얼마인지 추정할 수는 있다. 연초의 경제지표들을 보면 그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당시의 환율 수준이 균형가격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투자금은 계속해서 대한민국을 떠났고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기 시작했으며 다른 주요국 통화들 역시 약세를 지속했다. 하지만 정부는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에 터무니없이 많은 외환보유고를 푸는 터무니없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는 그런 개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국제수지 및 국내의 불균형을 악화시켜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왜 이런 미개한 정책을 펴다 외화보유고를 털어먹었을까*. 이는 그들이 무능하면서도 오만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원자재 가격과 금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급변했고 한국을 둘러싼 경제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무능한 정책결정자들은 그런 거시환경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이런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든 일 아닌가) 그저 원숭이처럼 재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환율의 상단이 1200원이었으니 이번에도 비슷하겠거니 하며 멍청하고 게으른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게다가 무역수지와 자본수지가 모두 적자를 찍는 나라의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루나를 풀어 테라의 값어치를 달러에 페그하겠다는 권도형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만한 액수를 풀다니,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믿었나 보다. 게으르고 멍청한 데다 오만하기까지 한 사람들이 내린 판단이 어떻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겠나. 권도형이 여러 개미들의 가상자산을 깨끗하게 지워버린것처럼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유지해 온 외환보유고의 상당액이 몇 주 몇 달 만에 대한민국의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지난 목요일, 일본 중앙은행은 엔 약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대대적 개입을 단행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미국의 빠른 금리 인상으로 자국 통화가 달러 대비 절하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외화보유고를 소진한 것에 반해 일본은 환율이 25% 상승한 후 대대적인 개입에 나섰다. 둘 중 어느 쪽이 한정된 외화자산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했는지, 둘 중 어느 나라의 경제가 균형점에 더 빨리 도달할지 굳이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까. 한국의 대중문화는 이미 일본을 넘어섰는데 한국의 관료들은 어찌 딴따라만도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까.

작년 정부는 한국 시장을 MSCI 선진국 지수에 포함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유는 한국의 주식시장이 작아서도, 거래량이 모자라서도, 안보환경이 불안정해서도 아니었다. 바로 국제표준에 맞지 않는 후진적인 제도 때문이었다. 이처럼 많은 경우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미개한 관료들 덕이다. 세계 1위의 반도체 회사를 만든 사람이 괜히 한국의 관료들을 3류라고 지칭했겠는가. 

문제는 그 관료들의 어리석은 짓이 가져온 비용들은 늘 우리 일반 국민들에게 청구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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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관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제껏 여러 차례 한국은행의 줏대도 없고 원칙도 없는 통화정책을 비난했지만 이창용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전의 글에서 밝힌 대로(링크) 현재의 환경이 과거와 다르다면 중앙은행은 성장과 일자리를 희생시키더라도 인플레를 먼저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정책결정권자 입장에서 매우 어렵고도 고통스러우면서도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이창용 총재는 이에 대해 명확한 시그널을 내놓았다.  

중앙은행이 언변을 모호하게 할 때와 명확해야 할 때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모호해야 할 때 명확하고 명확해야 할 때 모호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좌고우면하던 전임자들과는 사뭇 달리 이창용 총재는 시장과 대중들에게 현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노련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설명했다. 자산 시장은 그의 명쾌한 발언들을 꺼릴지 모르나 정책결정자가 올바른 데이터와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정책을 설명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워낙 불확실한 시대인지라, 미래에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는 가장 어려운 순간에 가장 훌륭한 중앙은행장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올해 소진한 외환보유고는 전체 외환보유고의 10% 미만으로 외환위기를 촉발할 수준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하지만 당국자들이 이런 멍청한 판단을 계속한다면 먼 미래에도 안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2022. 9. 24.

choc promo (by Sound Providers)

 


주식은 주식일 뿐이고 시장은 시장일 뿐이니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터부 요기니, 그리고 노회.

2003년 베니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성대한 비엔날레가 열리던 그 해 여름. 한 동양 여성이 산마르코 대성당 광장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빨갛게 물들인 머리에 경극이나 가부키를 연상시키는 짙은 화장을 한 그녀는 곧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고 빨간 속옷만 입은 채 관객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기괴하면서도 에로틱하지만 또 어딘가 서글픈 그녀의 춤사위는 비엔날레를 찾아온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실 정식으로 초대받지도 못했던 이 무명의 신인은 단번에 가장 유명한 한국 아티스트가 되었으니, 바로 낸시랭-터부요기니가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여전히 사회에 엄숙주의가 만연하던 시절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시절의 화가란 마치 선비나 계룡산의 도사와도 같은 것이었고 그런 이들과 결탁한 인사동의 화랑들은 카르텔을 형성하며 온 힘을 다해 퇴보하던 중이었다. 그러니 어찌 낸시랭이 이뻐 보였겠나. 젠체하던 이들은 겉으로는 그녀를 관대하게 대하는 척하면서도 그녀의 예술을 저급한, 마치 인스턴트식품과도 같다며 은근히 까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평단의 분위기를 몰랐을까. 낸시랭은 대중들과 평단에 굴복하기는커녕 근엄한 예술의 성지와도 같던 예술의 전당에 나타나 입던 바바리를 벗어던지고 다시금 비키니 차림의 육신을 대중 앞에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대중들은 그녀를 비난하기 바빴지만, 세상에 얌전히 순응하기만 하는 예술이란 게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계속해서 위선을 권위로 덮은 예술계와 관음적인 관객 모두에게 당차게 중지를 내밀었다. 

보수적이고 젠체하는 평론가들 앞에 그녀가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한지 어느덧 20여 년이 지났다. 더운 여름이 가시기 시작했던 지난 8월 말 그녀의 개인전이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허나 그녀의 전시를 둘러보고 난 뒤 나는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 모두와 싸우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치던 낸시랭은 온데간데없고 과거의 영광을 답습하거나, 지나간 작가들의 작품에 올라타거나, 혹은 미디어 아트나 NFT와 같이 한 물 가기 직전의 진부한 트렌드에 영합한 작품들을 보게 될 줄이야. 내가 기억하던 그녀는 결코 그럴 작가가 아니었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전시장을 나서야 했다. 어쩌면 그녀는 지쳤던 것이 아닐까. 대중의 손가락질과 싸우느라, 또 개인적인 아픔을 이겨내느라 더 이상 싸울 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김빠진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아버지 정수리에 난 흰머리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서글픈 일이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전히 몇몇 작품은 충분히 도발적이었더라. 인터넷 홍위병들과 PC라는 신을 섬기는 광신도들이 창작자들의 입을 틀어막는, 마치 중세 암흑기와도 같은 이 끔찍한 시대에 그녀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여전히 권태를 깨부수는 작가였고 또 충분히 도발적인 아티스트였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낸시랭_Bubble Coco Woonwoodocheop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22

낸시랭_Picnic on the plum tree_캔버스에 유채_162.1×909.9cm_2022


*그리고 그녀는 노래방 기기로 보랏빛 향기를 불렀다.

2022. 9. 23.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I) - 파월은 21세기 볼커가 될 수 있을까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 (링크)

지난 8월 말 잭슨홀에서 파월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연준은 계속해서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그로 인해 다소간의 고통이 뒤따르는 것조차도 감내할 것이라고.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경제의 과열을 방치하던 미국의 중앙은행(링크)이 이렇게 급격하게 돌아선 이유는 무엇인가. 작년 상반기 연준은 인플레의 주원인이 일시적으로 지연된 공급에 있다고 보았고 따라서 그 때문에 수요를 억제하는 것은 디플레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난 사반세기 동안 인플레를 잠재우는 일보다 디플레로부터 경제를 끄집어내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연준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디플레보다 인플레의 위험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판데믹의 여운이 모두 가시고 난 뒤에도 공급은 여러 측면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반면 수요는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5% 중반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믿었던 미국의 물가는 9%를 넘기며 2차 석유파동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연준은 빅 스텝을 넘어 자이언트 스텝에 나서게 되었다. 그와 같은 노력의 결과 월별 CPI 변동률은 0%에 근접했고 미국의 장기 cpi 기대치 역시 2% 대로 안정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월은 인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의 바로 옆에서는 가장 좋은 친구였던 중앙은행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고 폭락하는 주식시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변심에는 이유가 있다.

이전에 언급했던 것처럼(링크)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이와 싸우는 중앙은행은 경제를 오랫동안 짓누를 것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대로 실업률이 높아지더라도 중앙은행은 반드시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켜야만 한다. 경기가 어렵다고 섣불리 금리를 인하하거나 부양책을 사용하게 되면 기대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쳐들 것이고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면 경제는 반드시 심한 불황을 겪게 된다. 따라서 단기간의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긴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와 같은 상황에 놓였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은 올바른 정책을 택할 수 있을까.

1979년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는 두 자릿수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 금리를 급격하게 올렸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경제가 빠르게 꺾이고 실업률은 급등했지만 여전히 인플레는 낮아지지 않았다. 물가와 싸우던 연준이 긴축정책을 이어가자 농부들은 트랙터를 몰고 연준 본부 앞에 몰려와 가두시위를 벌였고 중고차 딜러들은 차 키들을 관에 넣어 연준에 보내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연준은 거의 15%에 달하는 물가 상승률을 보면서도 17%가 넘던 기준금리를 700bp나 인하해야 했고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악화시켰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던 연준은 1981년에 들어서야 과감하면서도 단호한 정책을 펼 수 있었다. 미국 경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불황을 마주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리며 마침내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60% 후반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레이건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10년이 넘는 시행착오 끝에 중앙은행 내에서도 단호한 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점도표(2022년 9월) 

과연 지금은 어떨까.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암묵적으로 연임이 보장되었던 연준 의장의 임기는 옐런의 시대에 처음으로 단임으로 끝났고 파월 역시 첫 임기 이후 교체될 뻔 했다 가까스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간밤에 발표된 점도표를 보면 위원들 사이에서 2024년의 금리 전망에 대해 큰 이견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연준 내에서 파월이 볼커처럼 고통스러운 금리 인상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긴다. 무엇보다 레이건과는 달리 현재 바이든의 지지율은 재선에 실패한 도날드 트럼프나 카터 만큼이나 낮은데 그런 행정부가 여론의 압박으로부터 연준을 얼마나 보호할 수 있을까.

게다가 몇몇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부가 재정적자를 크게 유지하는 한 긴축적인 통화정책 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의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과 싸우겠다고 주장하면서도 쉽사리 급격한 긴축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표를 고려하기 때문인데, 이 가운데 과연 파월은 볼커가 될 수 있을까.

지난 30여년간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수 있었던 것은 인플레이션 기대가 매우 낮고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켰던 여러 조건들은 매우 크게 돌아섰거나 영영 사라졌다. 그런 환경에서는 중앙은행은 더이상 당신의 친구가 아니다. 통화정책은 경제 전반에 걸쳐 무차발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현재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노동시장에 기인한다면, 중앙은행은 가장 경직적인 노동시장에 영향을 줄 때까지 금리를 올려야 한다. 즉 사람들의 소득이 깎이고 일자리를 잃을 때까지, 또 고령의 노동자들이 가난해져서 은퇴를 미루도록 중앙은행은 긴축을 지속해야만 한다. 과연 우리는 그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아마도 올해 말을 기점으로 중앙은행들은 중립금리에 도달하거나 넘어서게 될 것이니 따라서 우리는 인플레이션과의 대결에서 전반전을 막 끝낸 셈이다. 그리고 그 전반전은 투자자나 중앙은행에게 너무나 쉬운 경기나 다름없었다. 투자자들은 부채를 늘리면 돈을 벌었고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은 자산 가격의 하락을 가져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 후반전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싸움이 될 것이다. 부채는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금리는 이제 자산가격 뿐 아니라 우리의 소득과 소비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 대중들은 "자산 가격 잡으라고 금리를 올리랬지, 내 월급을 잡으라고 금리를 올리랬나"며 불만을 터뜨릴 것이고 중앙은행이 필요한 인상을 거듭할 때마다 그 반발은 점차 거세질 것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실제적인 생존의 위협을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되려 더욱 부자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마주하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세계 사망률을 증가시킨 코로나에 비하면 별것 아닌, 마치 천연두처럼 지난 세기에 멸종된 줄 알았던 인플레의 위협과 싸우기 위하여 사람들은 가난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중앙은행의 대응 여부에 따라 이 후반전은 아주 길어질 수도, 혹은 빠르게 끝날 수도 있다. 과거에 이와 같은 시대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졌는지 첫 글의 마지막 문단을 다시금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인플레이션의 초입에서는 당신이 무엇을 사는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빚을 냈는지에 따라 수익이 정해지고 당신의 근로소득이 휴지가 되는 것을 겪을 것이다. 그렇게 인플레이션의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이윽고 하반기가 시작될 것고 시대의 막바지를 향해 달릴수록 각 중앙은행들이 뒤늦게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을 겪을 것이다. 디레버리징의 시대가 오겠지만 그 시기를 완벽하게 맞춰 적응하는 투자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가 레버리지 된 채 새로운 후반전을 맞이하겠지. 그제야 투자자들은 자신이 어떤 자산을 샀는지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더 나아가 자신의 생사가 엇갈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레이건 이후 집권 100일 차에 그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               *               *


퇴고를 하고 나서 다시 읽으니 의도에 비해 지나치게 암울한 이야기만 늘어놓은듯하여 한 가지 희망적 사례를 들어보려고 한다. 히피 문화가 한 풀 꺾이고 비틀스가 해체하고 난 뒤의 미국은 건국 후 가장 음울한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주식시장의 성장은 멈추었으며 인플레이션은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위협했으며 변덕을 부리는 연준의 금리 탓에 경기의 부침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과 창조를 거듭하는 기업들은 계속해서 탄생하였고 몇몇은 오늘날까지 뉴욕 거래소에 상장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에 오른 애플이다.      

2022. 8. 28.

글, 그리고 폭력

 


오히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정 부분 타인의 정신과 감성을 지배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폭력성을 내재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행간을 따라 읽는 이의 정신은 조작된다. 육체의 하중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언어의 하중으로 누른다. 글은 내밀한 지배욕의 소산이다.


그리고 나는 그 폭력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written by 하헌기

painted by egon schie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