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2.

다른 신흥국은 금리를 올리고 있을까


*

한국의 통화정책을 미국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마침 한 보고서에서 여러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에 대한 요약이 있어 간단하게 표로 정리했다. 우리는 선진국이 아닌 EM들을 하나로 묶지만 각각은 매우 다르다. 이들을 크게 둘로 나누면 저인플레이션 국가들과 고질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미 인상에 나선 신흥국들은 주로 후자에 속하는 그룹으로 대부분 1차 산업의 비중이 높고 수출품의 상당수가 원자재나 농산물이다. 그리고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한국은 여느 아시아 국가들처럼 낮은 인플레이션 그룹에 속한다. 그리고 그 나라들 중 단기간 내에 금리인상을 예고한 국가는 한국뿐이며 동시에 인상을 예고한 나라 중 CPI가 가장 낮은 나라 역시 한국이다. 한국은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매파적인 중앙은행이다.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산업, 젊은이들과 저소득층이 타격을 받은 것은 모든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자산시장의 급격한 상승을 겪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은행만이 인플레이션의 압박 없이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나섰다. 오로지 자산가격을 잡기 위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무모한 도전에 나선 한국은행, 단언컨대 그 짐은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아닌 한국의 한계계층에게 돌아갈 것이다. 대만의 국숫집보다, 폴란드의 취준생보다 그리고 태국의 여행사보다 한국의 경제적 약자들은 더욱더 고통받을 것이다. 오로지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


*위 도표는 향후 1년간 금리상승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정리한 것으로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2021. 7. 16.

파웰이 이주열에게 보내는 경고

미안하게도 또 한국은행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며 막장 너머 더한 막장을 보는 기분이라 다시금 이주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한국은행과 선진 중앙은행들의 대응이 얼마나 극명하게 대조되는지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썼는데 둘의 차이가 지난 24시간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난 적이 몇 없었으니까.
흰색: 미국 cpi      주황색: 한국 cpi

이번 주 발표된 미국의 6월 CPI는 5.4%으로 2008년 이래 가장 가파른 상승세 보였지만 파웰은 간밤의 청문회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잦아들 텐데 때이른 금리 인상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상원의원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강력한 어조로 저지했다. 반면 불과 몇 시간 뒤 한국 시간에 열린 금통위에서 이주열 총재는 6월 CPI는 고작 2,4%에 불과하지만 금리인상은 불가피하며 당장에라도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5% 이상도 문제없다는 파웰과 고작 2%에 화들짝 놀란 이주열, 둘 사이에는 분명 거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거시적 환경을 보면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극명한 차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되려 표면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은 미국이 2배 이상 높으며, 경제성장이나 통화량 증가율, 백신 접종 속도, 소매판매 회복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의 회복세가 한국을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웰이 출구전략을 늦추는 핵심 이유는 바로 고용시장의 더딘 회복에 있다. 코로나 이전 6.8%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아직도 높은 수준인 9,8%에 머물러 있는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하지 않다면 고용시장의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서 연준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행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자신들의 분석에 따르면 CPI가 내년엔 2% 선에서 등락할 것이니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지만 회복하지 못한 내수와 고용시장을 희생시켜서라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한다. 한국은행법 제1조 1항에 명시된 이 조직의 첫 번째 존재의의는 바로 물가안정인데 그들은 물가고 고용이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이젠 금리 인상 그 자체를 조직의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들은 계속해서 금융 불안정을 금리 인상의 빌미로 들지만 진짜 문제는 그 정책목표가 전혀 계량화되지 않았다는데에 있다. 금융 불안정을 어떤 지표로 측정할 것인가. 주식의 P/E?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은 절대적으로 보나 시계열로 보나 미국이 훨씬 높다. 주택시장의 PIR? 수급불균형으로 가격이 상승한 재화가 통화정책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부채 증가율? 지금 급증하는 부채는 정부로 인한 것이고 그걸 뒷받침하는 것은 급증한 가계저축률이다. 부채위험이 걱정된다면 기재부와 국회에 가서 따질 일 아닌가. 다른 중앙은행들이 정책목표를 더욱 구체화하고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과 정반대로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에 직접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추상적인 대상을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고, 고용시장은 아직 위축되어 있고, 서비스 분야와 자영업자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그것은 한국은행이 알 바 아니라던** 이주열. 그가 금리 인상을 서두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산 가격의 통제. 지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언급한 자산이 세가지 있었는데 바로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가상화폐였다. 그러니 이주열과 금통위원들은 강남 부동산과 삼성전자,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르는게 문제라서 금리정책으로 이를 잡겠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링크) 여기에는 개인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금통위원들은 개개인의 경제적 입장을 통화정책에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다. 아니라고? 2017년 첫 금리인상을 불과 두달 앞두고 상도동의 아파트부터 팔아치운 총재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금통위가 전세계에서 가장 매파적인 것이 금통위원들의 예금잔액과 비율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인 것과 완전히 무관할까? 이주열과 금통위는 통화정책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앞선 글에서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자산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은 고용시장의 회복세를 막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계급갈등을 낳는다. 당장 방역의 희생양이 된 20대 청년들을 보자. 미래의 주택가격과 주식 가격은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 공급이 충분히 많다면 그들은 미래에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이 미래에 적절한 직업을 가지고 소득을 낼 가능성은 극히 낮다. 실업상태에 10년 이상 놓인 청년은 결국 중년 알바생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그러면 주택 가격과 상관없이 집을 사지 못한다. 지금 청년들에게 시급한 것은 자산가격이 아니라 바로 구직과 소득이다. 물론 실업의 걱정이 전혀 없는 금통위원들에겐 오르는 비트코인과 아리팍 가격만 보이겠지만.  

아마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내 글을 본다면 발끈할 것이다. 과도한 자산 가격의 상승은 금융 안정을 위협할 수 있으니 초기에 통제해야 하는 것인데다 현재 추이를 보면 한국 경제가 부채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대외변수의 영향을 심하게 받기 때문에 미국처럼 정교한 통화정책을 펴는데 한계가 있고 이번 사태는 코로나로 인한 돌발적 변수 등 현재 한국은행의 행보를 정당화할 백만 가지 이유를 댈 것이다. 사실 그들의 말이 대부분 옳다. 무엇보다 일개 트레이더에 불과한 내가 통화정책에 특화된 이 조직보다 적절한 중립금리 수준과 인플레이션 경로에 대해 어찌 더 잘 알겠는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한국은행은 분명 연준과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으며 파웰은 자신과 반대되는 주장을 펴는 이들에게 명백히 경고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열린 금통위는 어김없이 제한된 인원만 참석한 채 유튜브를 통해 진행되었고 배석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작년 우한페렴이 창궐한 이래 한국은행은 계속 금통위를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어 예전처럼 기자들이 배석해 왁자지껄한 금통위를 보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여전히 마스크를 낀 총재는 아직 금통위를 유튜브로 진행해야 하지만 경제는 정상화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땅땅 치고 있었고, 반대로 마스크를 벗은 파웰은 상원 의원들과 대면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은 줄어들 것이며 고용시장이 아직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은 틀릴 수밖에 없다. 고용을 위해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무릅쓴 파웰, 그리고 금리 인상을 위해 고용을 희생시키겠다는 이주열. 오늘 방역 당국은 여의도에서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국회와 여의도에 위치한 35개 금융사 전직원에게 코로나 검사를 권유했다. 오늘 낮 여의도공원의 임시검사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뙤양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줄 선 금융인들은 파웰과 이주열을 번갈아가며 떠올리다 아마 이 격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Don't fight the fed

마스크를 착실히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열린 금통위

다들 백신 맞았으니 마스크와 거리두기는 필요 없다는 미국의 상원과 연준의장,

과연 둘 중 누가 매파적이어야 할까?


하지만 트레이더로서 나는 한국은행의 실수를 무척이나 반길 것이다. 우리는 금리가 오를 때 수익을 내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또 그들이 실수를 되돌릴 때 돈을 버는 여러 방법이 있다. 또 금리가 오를때 오르는 주식이 있고 내릴때 강세로 가는 주식이 있다. 사실 그들이 실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가 돈을 벌겠는가. 트레이더의 입장에서 실수하지 않는 중앙은행이란 실책 없는 메이저리그의 투수처럼 까다로운 존재다. 게다가 나에겐 한은이 실기해서 성장성을 훼손하더라도 적절한 수준으로 회복할 때까지 견딜 자본과 소득도 있다. 다만 모두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뿐.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보낸다.


사족: 나는 정치인이든 관료든 모든 사람들은 개인적 동기를 정책철학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금통위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3명의 총재와 수도 없이 많은 금통위원들의 구성을 보았는데 그 중 이렇게나 현금보유성향이 강한 조합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통화정책을 운용하게 되면 디플레이션을 지향하게 된다. 다 잘라라***. 


*한국은행법 1조 2항은 금융안정인데 과도한 금융불안정은 향후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금융안정이 심각하게 위협받던 작년 2월 한국은행과 이주열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국가경제를 신용경색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우리나라 국회가 좀 더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면 청문회에서 이 점을 혹독하게 지적했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향후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는데, 쉽게 말해 별 관심이 없다는 말을 격식을 갖춰 말한 관용어구나 다름없다.

***실제로 자를 길은 없다.

2021. 7. 14.

금리의 온도

우리 모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분야의 아마추어 혹은 초보들이다. 그리고 그 둘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종종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다 오해를 낳는다. 나 역시 금통위를 앞두고 작성된 기사의 댓글들을 보고서야 왜 일부 대중들이 금리인상을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요구하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지난 1년여간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강력한 부양책을 사용했고 그 결과 금융시장이 발달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가와 부동산이 고점을 경신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주변을 돌라보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제 자산 가격들이 마천루보다 더 높아진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고 그런 정서는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전해 듣기론 모 재벌도 술자리에서 측근들에게 그런 푸념을 늘어놓았다고 하니 일반 서민들이야 오죽하랴. 

대중은 상대적 빈곤의 원인으로 느슨한 통화정책을 지목하고 있다. 우한폐렴의 지독한 상흔이 지나갔으니 어서 통화량 공급을 줄여 이 늘어나는 빈부격차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특히 한국에서는 끝도 없이 올라버린 집값이 사람들의 박탈감을 자극하고 있다. 규제로도 세금으로도 집값을 잡을 수 없다면 그 범인은 분명 통화정책 때문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때이른 금리 인상 기대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이 불은 꽁꽁 언 얼음을 녹이는 동시에 바짝 마른 종이를 태워버릴 것이다. 아니 얼음이 녹기보다 종이가 타는 것이 빠를 것이다. 금리의 온도는 당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매우 다를 테니까.

부문별 대출 연체 추이를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가계부채의 연체율이 가장 낮고 중소법인의 연체율이 가장 높은데 심지어 주택 담보대출은 대기업 대출보다 연체율이 낮은,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대출 중 하나라는 것. 또 우리는 연체율의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지원으로 코로나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중소법인과 신용대출의 연체 추이가 지난 1년간 크게 하락했다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각종 지원책들을 종료시키거나 거두어들이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정책의 영향은 경제주체와 부문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일부 대중들은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의 상승세가 잡히고, 따라서 빈부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이른 출구전략은 그들의 믿음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로 괴로워하는 몇몇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질 것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사라진 개인사업자들이 청산될 것이며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산업의 기업들도 투자를 줄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용을 줄일 것이니 구직시장에서 소외된 청년들의 취직이 회복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주택시장이 잠시 주춤하는 동안 취약계층과 업종의 소득이 크게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는 결국 빈부격차를 개선하고 서민들의 주택 구입을 용이하게 하기는커녕 반대로 악화시킬 것이다. 

흥미롭게도 내 주변 금융권 중 이른 금리 정상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 든 자산가들이다. 한국 가계가 소유한 금융자산은 금융부채의 2.2배인데 그 상당액을 중/장년층, 그리고 노년층 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자산가들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한다. 반면 가장 가난한 1분위 계층이나 젊은 층, 특히 학생들은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아 금리 상승은 그들의 소득을 갉아먹는다. 2020년 자료를 보면 순자산 기준으로 가장 가난한 1분위의 대출은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21.6%가 늘어났으며 그들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무려 81%에 달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득은 각종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17.1%가 감소했다. 같은 기간 5분위의 대출은 고작 2.2%가 늘었고 부자들의 부채비율은 14.5%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금리 인상이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타격을 줄지 너무나 명확하지 않은가.

금리를 결정하는 이들의 자산 내역을 보면 그들의 편향을 이해할 수 있다. 금통위원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임지원 위원은 약 71억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고 총재 역시 16억 원을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조윤제와 서영경 위원도 각각 22억 원의 예금을 보유 중이고 고승범 의원도 18억이 넘는 예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예금액은 모두 합해 반올림하면 200억이다. 이들이야말로 벼락거지란 말에 가장 속이 쓰릴 사람들이다. 불과 몇년 전에는 강남 신축을 몇 채나 살 수 있던 돈이 이젠 전셋값도 간당간당하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그들만큼 예금이 많다면 경제상황을 무시하고 금리를 올리고 싶지 않을까? 금통위원들이 가장 견실한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배경엔 이러한 편향이 있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아리팍과 샤넬, 그리고 포르쉐를 소비하는 현금부자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평균적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코로나로 타격받은 산업과 계층이 금리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건실한가. 그것도 가장 높은 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새롭게 실시하는 이 시점에서.

당신이 경제가 매우 견고하다고 느낀다면 코로나의 타격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금리 인상을 부르짖는 그대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축복받은 그런 운 좋은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처럼 축복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벼락거지의 기분을 느끼기 싫어 때이른 그리고 과도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것은 서민들을 진짜 거지로 만들 것이다. 각각이 느끼는 금리의 온도는 무척이나 다를테니까. 부디 나의 이 모든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출처: KOSIS



*사실 통화정책의 영향은 동일하지만 각 경제주체들이 현재 너무나 다른 위치에 있어 파급력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똑같이 초콜렛을 먹어도 당뇨환자와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른 것처럼

2021. 7. 11.

젊은이들의 피로 이루어진 방역

미국의 31대 대통령 허버 후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늙은이들이지만 정작 싸우고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라고. 이 말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방역은 젊은이들의 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방역의 기본은 사람 혹은 가축의 이동 통제로부터 출발한다. 방역의 효율만 놓고 보면 개인의 통제보다 더 확실한 조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방역 외에 다양한 목표가 존재한다. 개인의 자유, 경제적 영향, 종교의 자유 등. 어쩌면 극단적인 자연보호론자들은 썩지 않는 마스크를 대량생산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 현재의 방역지침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정부는 여러 가치와 목표를 고려해서 최적의 조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마다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하다. 모두가 방역의 비용을 동등하게 지불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

노인들에게 인생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모두 20대를 뽑지 않을까. 그 질문에 60대로, 또는 지난주 월요일로, 혹은 3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대와 문화를 불문하고 20대 청춘을 예찬하는 수필과 노래가 만들어진 것을 보면 젊음이 인생에서 특별한 시기라는 사실은 너무나 확실하다. 우리 모두가 안다. (20대만이 그 사실을 모른다.) 

그들의 하루는 우리의 하루와 결코 같지 않다. 길게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지루한 노인의 하루보다, 갈 곳은 없지만 집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 부하직원에게 3차를 강요하는 진상 김 부장의 하루보다도 20대의 하루는 몇 배나 더 값지다. 그런 그들에게서 지난 일 년을 앗아간 우리는 또다시 청년들의 청춘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정치인들과 꼰대들은 4차 확산의 주범으로 젊은이들을 지목하고 있다. 애초에 따듯한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젊은이들이 야외로 몰려나올 줄 몰랐는가. 젊은 층의 확산이 걱정되었다면 50대보다 20대에게 먼저 접종하면 되었다. 백신은 나부터 맞을 테니 너희는 방 안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나 보고 있어라, 올 한해 더. 라고 외치는 꼰대들이여, 초기 국경 차단과 백신 확보에 실패해놓곤 K-방역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정치인들이여, 당신들의 얼굴에 비말을 뱉으리. 퉤. 

출처: 질병관리청 (링크)

더욱이 코로나에 걸려도 20대의 치명률은 고작 0.01%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집에 머무는 것은 자신들을 위함이 아니요, 나이든 장년-노년들을 살리기 위함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희생하고 있다. 마치 후버의 말처럼 노쇠한 정치인들이 일으킨 전쟁에 투입되는 건 오로지 젊은이들뿐인 것처럼. 우리는 그들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나는 이제 젊다고 말하긴 민망하고, 또 젊지 않다고 말하기엔 억울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온 삶을 통틀어 딱 10년만 자유로이 뛰놀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은 감옥에 갇혀야 한다면 언제를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20대를 들 것이다. 술에 취해 홍대와 강남역을 오가고, 친구들과 쓸데없는 이야기에 밤을 새우기도 하고, 또 울고 웃고 사고 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또 사랑했던 많은 기억들. 점차 늙어가는 나에겐 너무나 과분한 그런 것들을 젊은이들에게 허용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에게 허락할 것인가. 차라리 그들을 위해 나머지 사회구성원들이 사회활동을 줄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니 꼰대들이여 더 이상 당신들의 유흥과 골프, 그리고 정치적 치적을 위해 젊은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당신들은 이미 이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았는데 이젠 젊음마저 앗아가려 하는가.



인생에 단 한번뿐인 젊음을 방역을 위해 희생해주신 20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1. 7. 10.

예술인들은 왜 백치가 되었나

나는 예술가가 사회나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그들은 그 문제를 이해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종종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아니 정말 많은 경우 그렇다.  

당장 [미술가]와 [환경오염]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자. 수도 없이 많은 전시회와 작품들 인터뷰들이 쏟아져 나온다.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은 하나같이 도덕적 우월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르고 대중들과 사회를 향해 따끔한 훈계를 던진다. 너희들은 문제가 많고 따라서 변화해야 한다고. 명목상으로 너희라는 단어 대신 우리라고는 하지만 그 [우리]라는 단어에 자신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느낀다.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이 우리 구구단을 외워보아요, 라고 할 때 자신은 이미 외우고 있다는 것처럼.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어떤가. 한 명의 미술학도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화학물질이 필요하다. 일부 수채화 물감에는 강한 독성이 포함되어 물감의 독성을 검증하는 국제기구도 존재하며 아크릴물감 유화 에칭 금속공예 섬유예술을 위해서는 화학물질들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그것들이 얼마나 유독한지 검색해 볼 필요도 없이 냄새만으로도 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한 명의 미술가가 평생토록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중국 산둥의 공장의 노동자들 못지않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우리에게 환경오염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이러한 모순은 그들이 자주 언급하는 다른 사회문제-자본주의나 기술의 폐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상 지금보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중이 더 많았던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주기적으로 기근을 겪어 인구가 줄던 고대나 중세에는 먹고살기가 바빠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인구를 부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대의 자본주의, 그리고 과학문명은 일부 계층이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를 가져왔고 그들 중 일부는 예술인이 되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그 누구보다도 가장 기술발전과 과학문명에 철저하게 목 매인 사람들이다. 어느 시대나 경제 불황이 오면 가장 먼저 굶는 것은 예술인들 아닌가. 그들은 우리 사회의 정신을 구성하고 있지만 동시에 물질적으로 사회에 기생하고 있기도 하다. 예술적 표현은 인간의 본능이긴 하지만 식욕보다 앞선 욕구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 집단이 기술문명과 자본주의를 천대하고 심지어 공격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에게 숟가락을 집어던지는 사춘기 아이를 보듯 마음이 심히 불편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괴로운 수많은 일 중 하나는 한때 사회적 문제에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던 예술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어버렸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이들이 정치적 노선이 다르단 이유로 특정 배우와 작업을 꺼리고 사회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가수가 가장 부조리한 정치인을 옹호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몇년 전만 해도 정유라가 받은 말은 명백한 비리라며 노발대발하던 미술평론가들이 문준용이 받은 지원금은 정당한 예술 지원 사업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읽다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어둔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던 관객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성경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질문 하나를 던진다. 하지만 예수는 다음과 같은 현명한 대답으로 그 함정을 피해 간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문재인의 집권과 함께 갑자기 백치 아다다로 변한 예술인들은 이 구절을 마땅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사실상 다른 학생들과 예체능을 분리해서 가르친다. 그들의 전공은 일반 학생들보다 몇 배의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예술가들은 다양한 교양 지식을 쌓을 여유가 없다.(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따라서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학생이 대중에게 아그리파 소묘를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예술가들이 대중에게 사회문제에 대해 일갈하고 가르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예수의 대답처럼 권력자인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남겨두고 고흐의 것은 고흐에게 남겨두는 것이 어떨까. 고흐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비비느라 자기모순에 빠져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글들을 읽노라니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 맥주 한 캔을 또 따서 들이키게 된다. 그들 덕에 뱃살이 늘었다. 그게 왜 그들 때문이냐고? 뭐 어때. 바야흐로 남 탓의 시대인데. 

2021. 7. 8.

한은의 설레발은 코로나도 춤추게 한다

통화정책에 골든 라즈베리 상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한국은행과 이주열에게 돌아가야 한다. 밀어닥치는 코로나의 위기 앞에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금리 인하가 필요 없다고 장담한 중앙은행장이 아니라면 그 누가 왕관의 무게를 견디랴. 그리고 총재의 설레발은 다시 한번 적중했다. 한국은행이 금리 정상화를 외치자마자 코로나 확진자 수가 폭증하며 정부는 대응 단계 상향을 검토 중이다. 한국은행은 미국의 CDC, 질병관리청에 이어 가장 높은 정확도로 우한폐렴의 위험을 알리는 기관으로 선정되어야 한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1년간 코로나로 세계대전 수준의 타격을 입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시도를 펼치는 동안 가장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관이 가장 먼저 정상화를 외칠 정도로 코로나의 영향을 과소평가한 만큼 사람들도 판데믹의 영향을 가볍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백신 접종률이 절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방역단계를 완화하겠다고 공언했으니 대중이 경계심을 낮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대중인가. 장삼이사들과 같은 수준의 판단력을 가졌다면 그들과 같은 보수를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참고로 작년 한국의 평균임금은 4875만 원인데 반해 이주열과 금융통화위원들의 연봉은 3억 6700만 원에 달한다. 물론 업무추진비와 부가적 의전은 별도.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델타 변이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현저히 낮은 사망률이 유지되니 설령 4차 유행이 크게 번져도 금융시장이 패닉 하지는 않을 것이고 되레 집단면역에 이르는 시점을 앞당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방역이 아니다. 바로 엉망으로 운영되는 중앙은행의 정책 실패가 끝도 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이 블로그의 세 번째 글이 한국은행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한 글이었는데(한국은행은 왜 실패하는가 링크) 글이 쓰인 2015년 5월 4일부터 지금까지 한국은행이란 조직과 이주열이란 개인은 아무런 발전이 없다. 아니 퇴보했다. 이번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통화정책이 코로나의 가장 큰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이니까.

기준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유동성이 플리는 속도를 늦추겠다는 말과 같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관치금융이 만연한 국가에서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줄이는 신호를 보내면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어떤 대출을 먼저 줄이겠는가. 삼성전자와 삼성동의 정승 네트워크, 삼성동 김 회장님과 삼송동 김 씨.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줄어든 유동성의 타격은 수익이 낮고 상환능력이 낮은 계층에게 집중된다. 늘 그렇듯이. 하지만 이 계층이야말로 코로나의 가장 큰 희생자들이다. 금리 인상의 효과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사람들은 한계에 몰린 중소기업들, 자영업자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1분위 계층, 그리고 취업 길이 막힌 젊은이들이 될 것이다. 연준이 급작스러운 위기로 안한 상흔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일시적 과열을 용인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길로 한국은행은 나아가고 있다. 다만 그들 앞에 코로나가 있을 뿐. 

현대의 국가 시스템에서 정부 조직의 모든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이다. 하지만 관료제가 발달하게 되면 각 조직은 자신에게 위임된 권한을 조직의 권리라고 착각하곤 한다. 기준금리를 한은에게 결정하도록 허용한 것은 경제 상황에 맞게 통화정책을 운용하도록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것이지 총재에게 주어진 천부권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흔히 인플레이션 파이터라고 불리는 은행으로 독일의 분데스방크와 일본의 BOJ를 드는데 이것이 두 나라에서 관료제가 크게 발달했다는 사실과 아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분데스방크는 동독과 통일 이후, 일본은 버블 직후 잘못된 통화정책을 펼쳐 디플레이션과 장기 불황을 초래했다. 이들의 전철을 착실하게 밟아 한국은행은 2010년대 중반 한국경제를 디플레이션의 구렁으로 밀어 넣었다. 기재부가 개입해서 우리를 다시 끄집어내기 전까지.  

한국은행 법 1조 1항은 한국은행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 지난달 CPI는 고작 2.4%로 그들의 물가목표 2%를* 살짝 상회한 반면 마지막 금리 인상 이후 지난달까지 약 31개월 동안 목표치를 하회한 누적분을 모두 더하면 무려 38.8%에 달한다.** 매달 평균 1%가 넘는 저물가를 방치한 셈인데 한국은행은 매번 실기의 순간마다 대외변수와 불확실성을 핑계로 든다. 그리고 다음 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주열은 어김없이 불확실성을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경제가 어디에 있는가. 확실한 것은 죽음뿐이다. 이 조직이 고작 2주짜리의 불확실성조차 다룰 능력이 없다면 확실하게 사멸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다. 바로 형편없는 한국은행과 이주열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진 시대에 2%의 물가목표가 적절한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물가목표를 재설정할 책임도 한은에게 있다.

**물론 저물가가 장기간 누적되었다고 당장 고물가를 방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2021. 7. 5.

진화하는 연준-FED는 어째서 경제의 과열을 방치하는가

지난 글에서 한국은행과 이주열을 비난한 것은 그들이 금리를 올리기 때문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의무는 인플레에 대한 기대감을 조절하는 것이고 그들의 첫 번째 도구는 바로 금리이다. 제때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은 경제의 과열이나 자본의 잘못된 배분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마땅히 지양해야 한다. 내가 지금의 총재와 한은이라는 조직이 비난하는 것은 금리를 올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방식과 정책의 부재 때문이다. 그와 가장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니 그들을 행보를 조명해보자.

경제나 금융시장이 예상치 못한 충격을 마주하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유지하여 그 충격을 최소화한다. 버블이 꺼지거나 911테러와 같은 급작스러운 사고, 혹은 2008년 서브 프라임 사건과 같은 충격이 발생하면 중앙은행은 가장 먼저 금리를 인하한다. 금리를 제로로 만들고 나면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통화정책이다. 그리고 21세기 중앙은행들은 이를 넘어 더욱 정교한 통화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모형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다소간의 오류는 있지만 큰 그림에서 위기 직후의 경제의 반응과 중앙은행의 대응은 위와 같다. 위기 전후의 성장경로를 파란색 선이라고 가정할 때 경제에 충격이 발생하면(1) 실제 성장경로는 빨간색 선을 따라 급격하게 하락한다. 이때 중앙은행과 정부는 부양책을 사용하게 되고(2) 그에 따라 경제는 반등한다(3). 이것이 일반적으로 위기 직후에 정부/중앙은행이 지향하는 경로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이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던 경제와 시장은 종종 다시 고꾸라지거나 저성장에 빠지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90년대의 일본을 들 수 있다. 세계의 여러 정책 연구자들은 OECD 국가들 중 국가채무비율이 가장 높고 기준금리도 가장 낮은 일본이 가장 낮은 성장성을 보이는 기현상에 주목했고 그들은 일본이 부양책을 너무 약하게, 그리고 너무 늦게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아직 경제가 성장궤도에 진입하지 않은 순간에(4) 부양책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경제가 자생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것.

이를 연구한 학자 중 하나가 바로 버냉키였다. 따라서 그가 연준 의장이 되어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연준은 일본은행의 실수를 답습하는 우를 저지르지 않았다. 연준은 위기 직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되살아나 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하는 동안에도 경제가 탈출속도에 도달하기까지 지속적으로 강력하고 충분한 부양책을 써야 한다며 강력한 어조로 백악관과 의회 대중을 설득했다. 당시 정치인들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며 연준에 서한까지 보냈지만 오늘날 우리는 누가 옳았는지 알고 있다. 연준과 반대의 길을 갔던 모두는 인플레이션은 커녕 가장 지독한 디플레이션을 마주했고 타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꽁무니를 쫒아 금리를 도로 낮추고 양적완화라는 길을 따라가야 했다. 미국 역시 두번째, 세번째 양적완화에 나서며 세계경제 회복세를 견인했다. 
하지만 그런 21세기의 통화정책도 온전하지 못했다. 경제가 성장 동력을 회복한 뒤에도 미국에는 장기 실업자들이 상당수 존재했으며 이중 일부는 경제가 완전히 회복한 이후에도 고용시장으로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불균형은 특히나 인종, 교육수준, 지역, 직종별로 다르게 나타났으며 그룹 간 불평등을 낳았다. 이는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빠르게 낮아지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빠르게 상승한 이유도 있지만 고용이 줄어든 속도에 비해 회복의 속도가 느려 노동자들의 숙련도와 나이가 악화한 탓도 크다. 위의 차트에서 보듯 경제가 이전 궤도로 회복해도 A 만큼의 성장은 영영 잃어버린 셈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에도 큰 영향을 남기게 된다. 마치 IMF처럼.
그래서 오늘날의 연준은 새로운 관점을 도입했다*. 경제가 본궤도로 회복하더라도 A만큼의 잃어버린 성장을 상쇄할 만큼 오버슈팅(B)을 방치하겠다고. 그리고 이를 위해 연준은 정책시차를 고려해 1-2년 뒤의 상황에 맞춰 오늘날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과거의 방식 대신 실제 회복이 완전히 가시화된 뒤에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다. 바로 이전 연준 의장이었던 옐런 재무부장관도 이를 high pressure economy라고 부르며 연준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것이 AIT혹은 FIT의 핵심이다. 지난 6월의 FOMC에서 연준은 첫 금리인상 계획을 앞당겼지만 terminal rate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10년 미국채 금리는 FOMC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연준이 금리를 언제 올릴지, 얼마나 올릴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이와 같은 철학과 믿음을 바탕으로 시장과 소통하고 있다.  

정의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현대적인 통화정책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1971년 닉슨이 금태환을 정지한 이래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갔다. 과거 물가가 강하게 올라오면 금리를 강하게 올리고 물가가 약하게 내리면 금리를 약하게 올리던 1차원적인 20세기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 통화정책이 좀 더 정교하게 운용되어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많은 연구가 이어져왔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오늘날 보는 통화정책이다. 

물론 연방준비위원회가 실수했던 적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채권 학살의 해라고 부르던 1994년이 그렇다. 당시 연준이 금리를 25비피 올리면서 시장금리가 소폭 상승했는데, 이후 공개된 의사록을 보니 FOMC는 금리를 올릴지 말지가 아니라 한 번에 두 단계를 올릴지 한단계만 올릴지를 고민했던 것이 드러났다. 채권시장의 폭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리를 3%에서 6%로 올리던 연준은 바로 이듬해 금리를 세 차례나 내리며 94년의 결정이 사실상 실수였음을 자인했다. 그 당시의 연준은 비밀에 쌓인 조직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시장과 언론은 연준의 결정을 팩스로 받아보아야 했다. 그래서 금리를 결정하는 날이면 모든 주식, 선물, 채권 상품시장의 트레이더들이 팩시밀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지지직 지직 하며 연준으로부터 전송되는 종이를 바라보다 숫자가 뜨는 순간 객장으로 고함을 지르며 뛰어가던 아주 원시적인 시절. 의장의 기자회견도 없었고, 질의응답도 없었으며 금리 경로를 예고하는 점도표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현대의 통화정책은 얼마나 세련되었는가. 그린스펀은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보여주었고 버냉키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결코 금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옐런과 파웰은 재정과 통화정책이 훨씬 정교하게 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그들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지금으로는 알 수 없지만 현대적 통화정책의 최전선에 연준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한국은행이 1994년의 연준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준이 내년 말의 점도표를 1년 반 앞서 공개하는데 비해 한은은 다음 분기에 곧장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마치 변심한 애인의 이별 통보만큼이나 급작스러운 예고에 시장이 발작하자 총재는 자신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어 시장이 나의 미묘한 뉘앙스를 캐치하지 못했다며 슬쩍 책임을 전가한다. 이런 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던가. 그는 중앙은행이 급박하게 움직여야 했던 이유로 견고한 경제지표를 들었다. 그렇게 21년 2분기 경제지표가 좋으리란 예측을 21년 2분기에나 내놓고 있다. 이럴 바엔 통계 집계를 통계청으로 일원화하고 통계청장이 금리를 결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무리 레트로가 유행이라지만 중앙은행마저 복고풍인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연준이 이와 같은 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후술한 이유 외에, 판데믹이 시작되기 전에도 미국 경제가 다운사이클에 있어 하방압력을 받고 있었고 2010년대에 장기화된 저물가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가 무조건적으로 과열의 상태로 흐르게 방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경제를 다소간 과열 상태에 두는 것은 인플레이션과 성장이 일시적이고 통제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명백하게 밝혔다. 물론 옐런과 연준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치게 경제를 미세조정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