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0.

난민이야기 2

  •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은 주인공 피터 파커에게 말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remember,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sibilities] 이 명제의 대우는 "큰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큰 힘도 없다"인데 홍성대께서 가라사대, 명제가 참이면 대우도 참이라 하셨다. 이 격언을 기억한 피터는 히어로 스파이더맨이 되었지만 이를 무시한 아시아의 두 나라-중국과 일본은 빌런이 되었다. 현재의 G2인 중국은 미국과 싸워줄 제대로 된 우방국 하나 없으며 예전 넘버 투였던 일본은 (강제)우방 한국에게도 종종 무시당한다. 그들은 왜 친구가 없나? 두 나라 모두 뒤따르는 큰 책임을 모른척하고 이득만 취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큰 책임을 받아들인 피터파커가 히어로가 될 때 이 체리피커들은 왕따빌런이 되었다. 우리의 주권을 침해해 사드제제를 가했던 중국이 홍콩의 인권문제가 자국 주권문제라고 주장해도 한국은 중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던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침범당할때, 우리는 일본의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얍삽한 친구를 반장으로 추대할 사람은 없듯 국제사회는 이기적인 국가의 헤게모니를 따르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부끄럽게도 한국은 OECD 최고의 체리피커이다. 세계 제일의 최첨단 휴대폰과 반도체를 만들면서 농산물 협상에서는 개도국 지위를 요구하며 해외자본을 유치한다면서 막상 들어온 외국투자자들을 온갖 비겁한 방법으로 괴롭힌다. 해외원조와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더하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외원조는 GDP의 약 0.15%로 OECD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그리스나 헝가리(0.13%)와 꼴등을 다투고 있다. 심지어 정확히 동유럽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슬로베니아 국민들이 (GDP대비)우리보다 더 많은 해외 원조를 한다. 한국의 난민수용률은 전세계 약 139위로 최저를 달리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선진국을 바라보는 G20국가 중 하나의 성적이라고 할 수 있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싸이나 BTS급 대우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의무는 후진국만큼, 아니 그만큼도 지지 않으려 한다. 이런 한국은 그저 작은 중국일 뿐이고, 가난한 일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나라가 국제사회에 번역도 엉성한 "독도는 우리땅"자료를 들이민다면 과연 몇이나 그를 진지하게 읽어보겠는가. 우리가 더 많은 권리를 주장하려면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 한국은 이민자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도대체 그 준비는 언제 되는 것인가. 한국의 1인당 기부액은 국민소득 3천불일 때부터 3만불이 되도록 OECD평균 언저리에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뭐 한 300만불 쯤 되면 받겠단 말인가. 모든 나라들이 난민을 기피한다. 세상에 난민을 받으며 쾌재를 부르는 나라는 없다. 그러니 먹고 살만한 나라들이 그 짐을 나누어 지자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원조를 받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은 아직도 거지행세를 하며 그 짐을 기피하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쩌리취급 당한다고 억울해하지나 말든가.
  • 1996년 FBI는 미국 해군정보국에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킴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26살에 한국을 떠난 이래 줄곧 미국에 살며 20년 넘게 미 시민권자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기밀을 한국측에 넘겼다. 그 사건 이후 미국은 "한국인들은 민족적 유대가 지나치게 강해 미국계 한국인들을 믿을수 없다"라며 정보국 내 한국어 linguist들을 대거 백인이나 라틴계들로 대체했다. 헐리우드에 자리잡은 한국계 배우, 존 조의 첫 데뷔작은 해롤드와 쿠마인데, 그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를 처음만난 한국인들이 교포인 해롤드에게 김치를 먹어보라고 권하고 안면도 없는 사촌의 취업 청탁을 서슴없이 한다. 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가 그렇다. 꼭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십수년 씩 살면서도 영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도 종종 찾아볼 수 있던 LA한인타운에서는 아주 흔하게 벌어지던 일이니까.

    사실 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난민의 모습 아닌가. 우리는 미국, 혹은 서구 유럽사회의 한인차별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난민문제 앞에서는 갑자기 KKK단이 쓰던 흰색 두건을 꺼내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만약 "한국인들은 미국으로 이민와서 같은 한국인들을 불법고용하고 미국백인사회에 어울리려고도 하지 않으며 자기네들끼리 이상한 음식과 교육방식을 고집한다, 김치 고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응당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우리의 분노가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한국이 그런 태도를 지녀서는 안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대중의 공분을 사는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우리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게다가 지정학적으로 군사&경제로 세계 1,2,3,5위와 맞닿아 있는 나라는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좋든 싫든 국제사회의 책무를 나눠가져야하는데, 문제는 그 짐을 국내에 배분할 때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비용은 내국인 중 가장 취약계층에게 몰리게 된다. 그들은 말도 안통하는 핫싼의 이웃이거나 방글라데시에서 온 멧푸탄과 인력시장에서 경쟁하는 장삼이사들이다. 그들에게 왜 한국이 국제사회의 짐을 나누어야 하는지 설명해봤자 그들은 '그건 잘난 당신네들 얘기지 여권도 없는 내겐 오늘이 전부요, 내가 알게나 뭐요' 라고 답할 것이다. 대신 삶이 조금이라도 덜 팍팍하고,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지위를 파악할 시아를 가진 정우성같은 상류층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우리도 인도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짐을 국내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모두 지게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가진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아 난민사업을 지원하겠습니다, 난민을 받으면서도 여러분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지 않도록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대중은 조금 덜 분노하지 않았을까.
  • 대중은 원래 이기적이고 뻔뻔하다.(링크) 난민들 보고 한국에 땅 맡겨놓았냐며 반대하면서도 멀쩡한 조합원들보고 임대주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자신은 소득세도 면제받고 복지혜택은 누리면서 열심히 노력해 돈 번 사람들보고 세금을 소득의 절반씩 내는 것이 정의라며 윽박지른다. 하지만 공인이라면, 그리고 좋은 정치인이라면 이기적이고 뻔뻔한 그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아, 하지만 내가 가진 재주라곤 대중들에게 내재된 이중성을 꺼내 조롱하는 것 뿐이니 절대 정치판엔 기웃거리지 말아야지. 이대로 돈이나 열심히 벌고 밤에는 이름 모를 글이나 쓱쓱 쓰련다.

정우성, 난민 그리고 임대주택

  • 연예인들의 연예인인 정우성이 연예인도 아닌 내 눈에 못나 보였던 적이 있었다. 바로 한 영화 시사회에서 "박근혜 나와!" 라고 외쳤을 때. 죽어가는 권력을 조롱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왜 그는 박근혜의 힘이 막강하던 임기 초에는 아무말 하지 못하다 대중들이 환호하는 시점에서야 자신의 소신을 드러냈을까. 살아있는 권력들을 마음껏 풍자하다 스러져간 여의도 텔레토비들보다 멋지지도, 웃기지도 않은 그는 그냥 한명의 광대였을 뿐이었다. 그를 움직인 것이 정치적 신념이 아닌 별풍선같은 박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으리.
  • 그 잘생긴 광대에게 내가 동의해 마지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난민정책이다. 나는 우리가 난민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략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시선으로 볼 때 당신의 할아버지들과 나의 할머니들이야말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정책 덕분에 살아난 수혜자들이고, 실제 데이터로도 우리는 그 원조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다. 일본의 가혹한 수탈 이후, 6.25전쟁을 치른 우리 나라에서 대량의 아사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미국이 이끌던 국제사회의 원조 덕이었고 한때는 국제원조가 우리나라 GDP의 약 20%에 가까웠던 적도 있었다. 이 원조는 1945년 해방부터 20여년간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를 떠받친 하나의 기둥이었는데 그 원조의 직접적 수혜자들이 다른 선진국이 떠안은 난민의 부담을 거절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로 비칠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는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싫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든가.

    "우리는 국제원조를 반대한다. 1950년대 인구대비로 최대의 원조를 받은 한국인들이 대다수 선진국들이 합의한 난민수용을 거절하는 것을 보라. 인도적 차원에서 남을 도와줘봤자 그들의 후손은 싸그리 다 잊어버린채 다른 이웃을 돕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 대한민국이 증명한다. 2016년 국제 자선 순위에서 140개국 중 한국은 온두라스와 니카과라에 이은 76위를 차지하지 않았는가. 당신이 돕는 난민과 빈곤층은 부자가 되어도 자신의 이웃들을 돕지 않을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사람들이 그렇듯이"
  • 대중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난민정책을 옹호할때 비로소 정우성은 광대에서 다시 공인이 되었다. 그의 소통방식이 비록 아직 미숙하고 어리지만 적어도 쌀 한톨 희생하지 않으려는 우리보다,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위해 이를 악문 광대가 낫다고 믿는다. 그는 연기자가 되기 전 사당동 판자촌 주민중 하나였다. 우르릉 쾅쾅 하는 포크레인 소리를 참아가며 억지로 잠에 들었다가 깨면 이웃이 한집 한집 사라지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아마도 난민들을 보며 쓰라린 어린시절 기억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대중들은 청담동 고급빌라에서 잠드는 그의 현재와 난민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며 그를 조롱하지만 난민을 위해 기껏해야 ARS 전화 몇통 걸어본 것이 전부인 나는 그를 비난하지 못하겠다.
  • 재미있는 것은 난민을 반대하는 대중들은 비슷한 개념의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꼭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난민들이 범죄율이 높아 치안을 어지럽히고 게으르고 불성실하며 미개하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하지만 가난할 수록 범죄율이 높고, 불성실할 수록 가난하며 가난하면 교양수준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민을 반대한다면서도, 같은 이유로 신축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꺼리면 그들은 갑자기 정우성으로 돌변한다. 아마도 몇몇은 "같은 한국인들을 돕는 것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난민들이 어찌 같은가"라고 항변하겠지만, 인류는 99.8%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임대아파트 주민들과 난민들은 유전적으로 끽해야 0.2%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유전적 유사성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심지어 바나나도(그래 그 바나나) 우리와 유전자의 70%를 공유하는데 바나나 먹는 사람들은 다 사이코패스들인가. 백번 양보해 그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당신은 얼굴 한번 마주친 적 없는 한국인이 수백만원을 요구할때 선뜻 내어줄 수 있는가.(임대아파트와 인접한 동의 가격은 약 0.5-1.0% 저렴하다) 자신은 난민을 위해 2천원짜리 ARS도 돌리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선뜻 수백 수천만원을 희생하지 않는다며 타인을 비난한다. 반면 정우성은 자신의 인기와 시간, 그리고 광고수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난민들을 위해 욕받이를 자처하고 있다. 난민을 반대하면서도 임대주택을 반대하지 말라고 일갈하는 대중들. 그들의 민낯이 정우성보다 추한 것은 외모 뿐만은 아닐 것이다.

2019. 8. 25.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좌절한 청춘들에게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폭등하는 집값을 보며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아마 선대인같은 멍청이들이 10년째 안 맞는 전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데도 계속해서 그들의 유투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대중들이 그들의 전망이 아닌 희망을 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에게 팔 희망이 없다. 애초에 그런 것으로 먹고 사는 직업도 아니고. 내 전망대로라면 부동산은 경제가 침체해도 금융위기만 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고 빈부격차는 크게 벌어질 것이다.

거기에 가장 좌절하는 사람은 바로 2030대일 것이다. 잡도 없고 집도 없는 세대. 하지만 잡은 몰라도 집은 확실하게 살 수 있는 날이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대책없는 낙관론을 펴는 것이 아니다. 정책사이클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고 실제로 과거에 그랬으니까.

위의 그래프는 앞서 글에서 인용힌 서울시의 집값을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우리의 통념과는 반대로 월급쟁이가 자신의 봉급으로 집을 마련하는 일은 80년대가 더욱 힘들었다. 그 당시엔 은행대출도 없었고 인터넷에서 매물을 찾아볼 수도, 실거래가를 보여주는 사이트도 없었다. 복덕방에서 얼마에 거래가 되었다고 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믿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남 대부분의 지역에도 지하철 노선이 뚫리지 않아 도심으로 진입하는데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집값은 (소득대비) 현재보다 거의 두배 이상 비쌌다.

서울시 집값이 미친듯이 폭등했던 것은 철저하게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에는 서울시 거주가구의 1/3이 집이 없이 남의 집어 얹혀사는 구조였기에 "한지붕 세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하고, 다가구 주택이라는 괴상한 형태의 주거형태가 현재까지도 흔하게 눈에 띌 만큼 서울시의 공급부족은 심각했다. 그와 같은 주택난은 노태우정부가 공격적으로 신도시를 짓고 고층 아파트를 공급하며 크게 해소된다. IMF가 터지기 전 까지 주택의 실질가격과 가처분소득대비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고 부동산은 약 10년가량 침체기에 들어선다.

비슷한 현상이 2000년대 말에도 반복되는데 당시 시민들의 생활수준이 큰 폭으로 개선된데 비해 서울의 거주환경은 여전히 낙후된 7080대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에 "양질의" 주택이 크게 모자르게 된다. 80년대의 주거난이 수량적 부족 때문이었다면 현재와 2000년대 초의 주거난은 질적 부족에 가깝다. 이는 이명박이 여러 뉴타운을 개발하고 한강변을 따라 약 5만세대의 재건축을 허용하면서 잠시 완화된다.

현재의 공급부족은 필연적으로 정책노선의 수정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국토부나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모두 현재의 공급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정치인들도 안다. 다만 자신들을 찍어줄 유권자들이 모르니 자신들도 유권자들의 장단에 맞춰 모르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과거를 종종 잊지만 학습의 동물이기도 해서 실질 주택가격이 폭등하고 나면 유권자들은 공급대책을 요구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재건축/재개발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 공급이 늘어나고 주택시장은 다시한번 침체할 것이다. 모든 시장이 그렇듯이.

따라서 현재 주택마련에 실패했다고 해도 너무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자. 우리 청춘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시간이다. 자본과 경험이 많은 6070대 자산가들은 미래가 없다. 내일을 예측할 수 있어도 미래를 살 수가 없다. 내 주변의 한 70대 자산가는 자신이 20년만 더 살수 있다면 투자할 것이 너무 많은데 언제 죽어서 상속해야할지 몰라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청춘들에게는 그 시간이 있다. 버스는 떠났을 지 몰라도 역사는 반복되고 다음 버스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다음 버스에 올라탈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된다. 당신이 만약 40세를 넘지 않았다면 다음 버스도 너끈히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으로 무장한 채 희희낙낙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주변에서 부동산 비관론이 팽배했던 때에 집을 산 부류는 참여정부에서 부동산이 폭등할 때 가장 괴로워했던 친구들이었다. 괴로움의 크기가 컸을 수록 더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부동산 하락사이클이 길어질때에도 더 오래 버텼다. 원하는 지역의 지도를 펴고 대출제도를 살펴보고 임장도 해보고 그리고 과거의 데이터들을 반추하라. 언젠간 다시 당신의 가처분소득이 그 지역을 쫒아 올라오는 날이 올 것이다.



불편하다고 해서 눈을 감아버리고 도피하는 것, 그것 하나만 피하면 된다.

버스는 반드시 다시 올 테니까.

2019. 8. 24.

☆경축☆ 분양가 상한제 시행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기뻐하는 이들을 보고 우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분양가상한제는 분명 재건축 진행중인 소유주들에게 고통이다. 하지만 많은 무주택자들이, 혹은 비강남 거주자들이 분양가상한제를 박수치며 찬성한다. 한강 토막살인 피의자 장대호가 희생자를 보고 "죽을 짓을 했다"라며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하듯 저 대중들 역시 자신의 사이코패스짓을 정당화하고 있다.

나같은 다주택자들에게 이 분양가상한제는 어마어마한 호재다. 이 제도는 주택공급을 철저하게 틀어막아 가격폭등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왜 저 대중들이 이 제도를 반기는지 알 수 없지만, 저들이 사이코패스들처럼 미쳐 날뛰는데 나혼자 반대하고 열 내봤자 결국 내 손해다. 그래서 나는 겸허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했다. 소수의 재건축 조합원들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기뻐하는데 뭐 다 좋은일이라는 것 아닌가. 저들은 기분이 좋고 나는 부자가 되어 좋고.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내 친구들과 후배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남는다. 그래서 다시한번 분상제를 비난하는 글을 남긴다.

현 정부가 발표한 모든 부동산정책은 서울의 공급을 옭죄어왔다. 용적률제한, 기부채납, 임대주택의무화, 한강변 층고제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 그리고 분양가상한제. 용적률을 600%에서 300%으로 낮추면 6천세대를 지을 땅에 3천세대 밖에 못 짓는다. 기부채납은 간단히 집을 지을 땅에 공원이나 학교를 짓는 정책이고 임대주택은 주택의 효율적 배분을 망가뜨린다. 한강변 층고제한은 한강조망 아파트의 수를 줄이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는 말이 초과이익이지, 이익이 없어도 세금을 걷어가는 이상한 제도로 재건축사업을 막는다 그리고 이제 분양가상한제는 재건축을 사실상 금지시키는 제도다. 현재 승인된 재건축사업의 분양이 끝나고 나면 이제 서울에는 신축아파트 공급은 없다. 2021년 하반기부터 2026년까지 매년 서울의 신축아파트 입주는 연평균 5천세대를 넘지 않을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는 분양가가 집값 상승을 야기하지 않도록 가격을 통제하는 것인데 이 정책은 문제의 원인분석부터 예상파급효과까지 잘못되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현재 신축 아파트들은 실제 시세보다 약 10-25% 저렴한 가격에 분양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선분양으로 인한 위험을 짊어지는데에 대한 보상도 있긴 하지만 매번 경쟁률 1:1을 크게 넘어서는 분양실적들을 보면 현재도 분양가가 크게 디스카운트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간단하게 분양가가 fair value라면 대부분의 아파트는 미분양 나야 한다*) 따라서 국토교통부의 주장과 머리나쁜 사이코패스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신축분양은 시세를 올리는 역할을 하기는 커녕 반대로 주변 아파트 시장을 억누르는 역할을 이미 하고 있다. 문제는 이제 이 신축분양이 막힌다는데에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이미 약 20% 할인된 분양가를 추가 20% 할인할 것이라고 한다(아니면 굳이 분양가상한제를 왜 하겠나). 하지만 세상에 손해보며 사업을 벌일 호구는 없다. 조합은 재건축을 하며 신축아파트를 지어 팔며 공사비를 충당하는데, 애초에 10억짜리 집을 6.4억에 팔아야한다면 조합은 3.6억의 현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재건축에 나서겠는가. 이미 HUG의 할인된 분양가때문에 재건축 사업이 곳곳에서 지연되어 공급부족을 야기했는데(링크) 이제 이 효과는 극악으로 치닫는다. 실제로 내가 지켜보는 몇몇 재건축/재개발 희망 단지들은 아예 계획을 접었다. 이 현상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 미시적으로는 해당 단지의 주민들이 인테리어 공사를 보면 된다. 좌절한 구축아파트 주민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대대적 수리다. 거시적으로 서울 내 공급의 폭락을 수치로 보고 싶다면 건설주의 KOSPI대비 퍼포먼스를 보라. 시장은 늘 정직하다.


서울 내 아파트들의 준공년도별 수

재건축 없이 서울의 주택수급환경이 얼마나 악화될지 수치로 확인하자. 보다시피 대부분의 서울 아파트는 1988-2004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부동산시장에서는 보통 20년이 지나면 구축아파트로 분류하는데 올해가 2019년이니 20세기에 지은 아파트들은 모두 구축이 되는 셈인데, 이 물량이 무려 97만채로 전체의 62%를 차지한다. 저 차트에서 빨간선 왼쪽의 집들은 모두 21세기 한국인의 생활수준에 맞지 않는 개발도상국 시대에 지은 집들인 셈이다. 당장 향후 몇년만 보자. 재건축에는 아무리 빨라도 5년이 소요되니 2024년 기준에서 건축연한 40년을 넘은 아파트들은 모두 27만 4천 채로 전체의 17.5%나 차지한다. 그리고 서울 내 신축아파트의 실질가격 상승을 막으려면 이 물량을 모두 소화해줘야 한다. 하지만 2022년 이후 공급실적은 처참하다.

인허가가 없다면 미래의 공급도 없는데, 2017년의 인허가물량이 준공되고 나면 이후에는 지독한 공급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양가 상한제는 저 2017년에 인허가를 신청한 74,984채의 조합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고 그를 본 이웃의 다른 재건축 조합원들은 체념한채 인테리어 업자들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무엇보다 사업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인데, 이제 재건축 조합은 정부가 미래 분양가를 얼마로 후려칠 지 모른다는 두려움과도 싸워야한다. 이제 미래의 주택공급은 서울시내 요지에 멍청이들과 호구가 500-1000가구씩 모여사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

특히 2030대들이여. 이 부동산정책이 자신의 인생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마라. 설문조사를 보면 이 무주택세대들은 잘못된 부동산정책들을 그 누구보다도 충실히 지지했다. 정부는 그 바보장단에 맞춰 장구를 두드린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65층으로 재건축하지 않으면, 또 은마아파트의 용적률을 500%로 올리지 않는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 지역에 등기를 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물려받을 재산이 없다면 더더욱. 게다가 서울의 요지에 아파트가 모자른 것이지, 수도권의 아파트와 서울내 빌라와 다세대 주택의 공급은 충분하다. 포르쉐를 모는 것이 이동권이 아니고 수퍼모델과 섹스를 하고 캐비어를 먹는 것이 기본권에 속하지 않듯 요지의 신축 아파트에 사는 것은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나에게 2호선 역세권 5분거리의 신축을 달라, 조망과 부대시설도 함께"라는 요구는 그 누구도 할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심지어 당신의 부모조차도 그럴 의무를 지니지 않는다. 그 책임은 오롯이 당신에게만 있는 것인데, 자신의 실패를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칼을 꺼낸 강서구PC방 살인사건의 범인처럼 당신들은 성실하게 살아온,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 전부인 재건축 조합원들에게 칼날을 휘두루고 있다. 문제는 그 상흔이 자신들에게도 미친다는 것이다. 2030대들과 무주택자들이 김현미의 집권 첫날부터 그녀의 정책에 반발해 재건축 규제 완화를 지지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철폐했다면 서울의 집값은 현재 수준에 도달 할 수 없었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파생이든 뭐든 나는 정책을 예상하고 분석해서 투자해 수익을 내는 사람이지 정책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수의 2030대들과 무주택자들 그리고 현 정부가 계속해서 실기할 것이라고 믿어 부동산에 투자했고 (조국과는 달리) 그에 따른 폭탄같은, 하지만 수익에 비해서는 미미한 세금을 내고 전세입자들에게 싸게 전세를 준 한낱 임대사업자일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친구들과 후배들이 올라가기만 하는 부동산 가격 앞에서 좌절하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공감하며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술자리를 마무리 하고 돌아서면 또다시 대중이 저 미친 정책을 지지하며 또다시 좌절의 턱을 높이는 것을 목도한다. 나도 지쳤다. 될대로 돼라. 나는 사이코패스들이 한 방에 모여 존재하지도 않는 부동산 작전세력을 처단하겠노라며 서로를 베고 찌르는 칼부림의 향연에서 빠지련다. 그래 실컷 찔러라. 잘한다. 잘한다.


*시장원리대로만 보면 분양신청자는 늘 근처 구축아파트를 매매로 살 수 있는 옵션과 분양에 참여할 옵션, 두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따라서 신축아파트의 가격이 적절하다면 특정 날짜에 근처 매매시장의 몇배에 달하는 물량이 쏟아져나올 때 구매자들이 모두 분양시장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지난 몇년간 서울의 분양시장은 일부 단지를 제외하고는 소수에게만 기회를 주는 1순위 분양만으로도 1:1의 경쟁률을 크게 넘어섰는데 이게 분양가가 매우 저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다.

2019. 8. 23.

지소미아 폐기, 빡친 북한 그리고 병신된 조국

  • 놀랍게도 한국은 오늘 GSOMIA의 폐기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일본은 고노 외무상은 항의의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아마 뒤에서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GSOMIA의 종료는 일본보다 한국에, 그리고 한국보다 미국에게 더 큰 타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구축하는데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70년 동안 극동에서 미국의 첫 전략적 목표는 바로 이 삼각동맹이었고 그 오랜 노력의 첫 결실이 지소미아였는데 한국의 일방적 발표는 미국의 그 노력을 산산조각내는 사건이었다.
  •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분쟁을 일으키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군사적 분쟁, 외교적 분쟁, 그리고 경제적 분쟁.  그리고 이 세 분야 중 우리가 일본에게 가장 열세에 놓인 분야가 바로 경제이다. 차라리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더 승산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위안부협정 때와 같이 우리의 손을 들어 일본의 팔을 비트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 면전에 중지를 내밀며 그들의 구두 코에 침을 뱉었으니 이제 미국이 한국의 편에 서 줄 일은 없다. 게임은 끝났다.  
  • 청와대가 전문가들의 예상과 우방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GSOMIA를 폐기한데에는 두가지 배경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북한의 강력한 비난, 그리고 연일 시간단위로 터지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의 비리들. 경제도 외교도 분배도 망한 정부에게 남은 카드는 북한 뿐인데, 정작 북한은 지난 1주일 간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아주 강도높게 비난했다. 그 비난의 배경에는 한미 연합훈련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대내외의 반발이 지나치게 크다. 따라서 친북 성향이 강한 정부는 북한카드를 되살리기 위해 대신 지소미아를 폐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미훈련을 그만두는 것과 지소미아를 폐기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국내 중도층과 미국의 반발을 부르겠는가. 계산을 끝낸 그들은 후자를 택했다.
  • 법무부장관을 꿈꾸던 조국의 위상이 병신나고 만 것도 지소미아 폐기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시발점은 비선실세의 존재를 알린 정윤회 문건도, 세월호 사건도 아닌 바로 정유라의 입학비리였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아시아 금메달리스트가 이대 체대에 입학한 것이 비리인지 대답하기 어렵긴 하다만. 그리고 대중이 가장 분노하는 조국의 비리는 다름아닌 딸의 입학비리이다. 이 일로 20대 젊은층과 수험생 자녀를 둔 4050대 부모들은 크게 돌아설 것이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지지계층이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다시 한번 반일 카드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 여러 지인들이 청와대가 국익을 놓고 저울질 할 정도로 조국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렇다. 진보사회에서는 출신 성분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이에 따라 현 정권은 세 그룹의 골품제에 기반하고 있다. 성골 주사파, 진골 민주당, 그리고 기6두품 기타좌파들. 그리고 이 성골의 핵심은 바로 임종석과 조국이다. 임종석이 국정운영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면 조국은 제도적 법적 토대를 어떻게 개조할 지 연구하는 행동대장 같은 존재다. 복잡하게 개정된 선거법, 그리고 그를 통과시킬 편법적 패스트트랙, 또 검찰과 경찰 그리고 사법부를 장악할 인사조치 등, 현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위와 같은 법적/제도적 개편을 시작했는데 이 정교한 작업을 누가 설계했겠는가. 지난 1주일 간 재산을 빼돌리고 세금을 탈루하고 학력을 위조하고 입시비리를 저지르고 병역을 기피한 조국의 섬세하고도 성실한 솜씨를 보라. 모두 조국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그 없이는 성골 운동권은 조국혁명의 대업을 완수할 수 없으며, 본인들도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있다. 청와대는 그의 어떤 추문이 터지든 간에 반드시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앉힐 것이다.
  • 이와 별개로 조국에겐 정신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미쳤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욕심을 부리고 편법을 저지르는 것 역시 모두 비양심적인 짓이지, 비합리적인 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저지르고, 또 그런 일들을 가장 앞장서서 비난하던 사람이 스스로 검증대 위에 올라간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많은 사회 저명인사들이 개인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공직을 거절해왔는데 조국은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천하의 우병우도 법무부장관이나 차기 대통령을 꿈꾸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 조심해야할 것은 그가 저런 비합리적 판단을 내린 심적배경이다. 늙고 추한 조국은 자기가 아직도 아이돌인줄 아는 전형적 자기애성 성격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비리가 밝혀져도 남들이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런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저런 mr. 병신(丙申)이 비리를 가득 안고도 법무부장관으로 나서는 병신(病身)짓을 한 피해는 지금에야 가족들만이 보고 있지만, 국가 지도자가 되면 국민 전체가 지게 된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 이번 일로 당과 청의 사이가 벌어질 것이다. 앞서 글에서 김일성이 연안파, 갑산파, 국내파, 소련파 등의 연합정권으로 시작했던 것 처럼 현재의 집권세력도 통합되지 않은, 일종의 연합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조국 하나를 살리기 위해 수 명의, 혹은 십 수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의석을 위협받게 생겼다. 그동안 당의 인기보다 청의 인기가 높았던 터라, 그리고 운동권의 핵심이면서도 DJ정부의 핵심멤버였던 이해찬이 당과 청의 사이를 잘 봉합해왔지만 총선을 8개월 앞두고서 조국을 살리기 위해서는 초개와 같이 몸을 던질 준비가 된 핵심 운동권과 나머지 계파들 간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공천을 앞두고서는 더더욱.
  • 박근혜 몰락의 시발점은 정유라였지만 본격적인 추락은 청과 당의 갈등에 있었다. 애초에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이 동의해주지 않았다면 박근혜는 탄핵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자한당으로 복귀해 조용히 지내는 김무성이 친박과 충돌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여당 의원이 탄핵에 표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청와대가, 더 정확하게는 우병우가 조선일보와 그렇게 다투지 않았다면 보수언론이 보수대통령을 버리는 초유의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늘 그 칼자루가 영원히 자기 손에 놓여 있으리라 믿는다. 대신 언젠가 왕좌에서 물러나는 날엔 나를 지켜줄 것이 권력이 아닌 동료의 비호라는 사실을 쉬이 잊는다. 그를 잊은 박근혜 도당은 한평 반짜리 감방에서 회한을 거듭하고 있고 현재 청와대를 장악한 운동권이 그녀의 뒤를 좆는다면 그들의 운명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2019. 8. 18.

생과 사를 가른 면접

우리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두방의 원자폭탄이 일본의 항복을 가져왔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소련이 만주에서 관동군을 붕괴시켰던 사건이었다. 중국을 무너뜨리기도 전에 소련을 상대해야했던 일본 군부는 주력이 서쪽에 가 있던 소련이 당장 만주를 침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만주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넓었던 터라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방어한다면 소련이 침공하더라도 지연전을 펼칠 수 있을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독일의 전격전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소련은 6년간 약 3000만 명의 인명피해를 낸 끝에 그들의 전략을 완벽하게 숙지했고 스탈린의 붉은 군대는 이제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극동에서 피로 익힌 소비에트식 전격전을 펼칠 준비를 끝마쳤다. 1945년 8월 9일 스탈린의 군대는 일본의 방어선을 넘기 시작했으며 단 일주일 만에 일본 육군의 최정예 주력인 관동군 약 90만 명 중 60만 명을 포로로 잡으며 만주 방어선을 완전히 와해시켰다. 만주의 북쪽에서 황해까지 거리는 연합군이 상륙한 노르망디서부터 소련이 진격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만큼이너 먼 거리였는데 소련이 조선의 청진시에 진입한 것이 작전 시작 후 단 5일차인 8월 13일이니 이 전격전의 파괴력을 가늠할 수 있었으리라.

반면 미국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 위해 수십 발의 핵 투하와 최대 6백만 명의 병력 동원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소련이 일주일 만에 관동의 주력 병력을 분쇄하자 크게 놀라 종전과는 반대로 소련의 남진을 막으려 했다. 미국은 소련에게 38도를 기점으로 한반도를 분할점령하자고 제안했고, 마음만 먹으면 남부지역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소련은 한발 양보하여 미군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다.

한반도 북쪽의 지배권을 확립한 소련은 크렘닌의 지령을 충실히 따르는 괴뢰 공산국가를 세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새 정부는 누가 이끌것인가? 소련이 원하는 북조선의 새 수장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소련의 꼭두각시로 보이지 않기 위해 완전한 조선사람이어야 했다. 처음에는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이면서 소련군에서 3년간 복무한 김일성이 낙점되었지만 소련이 한반도에 진주하자 이윽고 조선공산당의 당수 박헌영의 막강한 영향력을 깨닫게 된다. 소련의 점령지역은 38선 이북에 그쳤지만, 당시 한반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선전의 각축장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소련은 한반도 전체의 조선인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명망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했고 이 부분에서는 국내파의 거두 박헌영이 김일성보다 더 나은 후보였다. 두 선택지 중에서 갈등하던 스탈린은 김일성과 박헌영 모두를 크렘닌으로 불러 면접을 치르게 된다.

1946년 7월 신생공화국의 지도자를 뽑는 면접이 시작됐다. 이는 단순히 김일성 vs 박헌영의 대결이 아니라 해외파(빨치산파, 소련파)와 남로당파의 대결이었기도 하고 더 나아가 KGB의 전신 NKVD와 소련외무성의 알력 다툼이기도 했다. 군부와 NKVD는 소련군 88여단에서 복무했던 김일성을 선호했고 외무부는 한반도 점령전 자신의 소식통이었던 박헌영을 지지했다. 박헌영은 명문가 출신에다 레닌대학교를 졸업한 자존심이 강한 엘리트였던 반면(아마 그래서 같은 지식층 출신인 소련 외무부 인사들이 그를 선호했으리라) 대다수의 빨치산파들이 그랬듯 김일성은 중학교를 자퇴한 뒤 마적으로 활동한 적도 있는 하층민이었다. 하지만 거친 개싸움을 거친 밑바닥 출신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뛰어난 생존본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박헌영이 젠체하는 소련의 지식인들과 교류가 있었던 데에 비해 김일성은 군화발의 폭력과 욕설 그리고 살인이 난무하는 소련군 출신 아닌가. 트로츠키면 몰라도 스탈린과 당시 2인자였던 베리아는 후자에 더 가까운 인간들이었다.

결국 크렘닌은 민족주의자 성향을 숨기지 못한 박헌영 대신 김일성을 선택했고 그가 새로운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수장이 된다.(비슷한 시기 미국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이승만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조선 내 영향력이 워낙 막강했던 터라 김일성조차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6.25전쟁의 승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김일성과 박헌영은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며, 이후 중공의 군사적 지원을 구하는 공식요청서류에도 그 둘은 나란히 서명했다. 하지만 그 둘의 협력은 지속될 수 없었다. 둘은 너무도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두 지도자가 공존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1950년 11월 압록강 연안에 설치된 임시 소련대사관에서 열린 볼세비키 혁명 기념행사에서 만취한 그 둘은 크게 충돌하여 김일성이 박헌영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갈등이 표면화되고 나서도 둘의 불안한 공동체제는 한동안 지속된다. 하지만 권력이란 시소와 같아서 균형이 무너지고 나면 곧 걷잡을 수 없이 기운다. 그리고 남북의 분단이 고착화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시점에서 남로당의 당수인 박헌영의 값어치도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결국 1953년 휴전협정이 이루어지기 직전 그는 미제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는다. 가혹한 고문 끝에 그는 자신의 혐의를 억지로 인정했지만 재판장에서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그렇다"라고 인정하지 않고 "그렇겠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의 지지자들이 많았던 터라 중국공산당과 심지어 소련 조차 그의 처형에 반대하며 여러 경로로 구명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스탈린의 사후 소련뿐 아니라 공산권의 정치 지형이 크게 변하며 북한 내부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축출기도가 터지자 김일성은 두 공산주의 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헌영을 처형한다.

박헌영이 진짜 미국의 스파이였을리는 없다. 그것은 명목상의 핑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데다 무식한 하층민 출신인 김일성에게 복종했다면 숙청을 피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소련 군부에 줄을 잘 섰다는 것과 몇몇 소규모 항일전투를 치뤘다는 명성 외에는 별 영향력이 없던 김일성은 옌안파, 소련파, 남로당파, 갑산파와 연합한 정부를 세운다. 한국전쟁 이후 남로당파를 숙청한 이후, 김일성은 소련파, 연안파를 숙청했다. 심지어 갑산파는 김일성의 빨치산파의 방계나 다름없는 계파였는데도 불구하고 1967년 북한의 경제체제가 위기를 맞자 숙청된다. 분단과 동시에 영향력을 잃어버린 남로당계의 박헌영 역시 그 숙청의 역사에서 AK47의 총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1956년 박헌영이 마주한 죽음은 이미 그가 1946년 7월에 스탈린의 사무실을 나오며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렘닌 궁을 나서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인생에서 모스크바는 그때가 두번째로, 그는 1929년 겨울서부터 1931년 10월까지 약 2년여간 국제레닌대학교를 다니며 모스크바에 머물렀다. 그시절부터 1946년까지 모스크바 서쪽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크렘닌 주변과 붉은 광장은 아마 예전 그대로였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심장에서, 공산주의의 지도자 레닌의 이름을 딴 대학에서 수학하던 한 청년은 이제 조선노동당의 영수가 되어 스탈린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크렘닌 특유의 무거운 공기. 불안한 정적. 그리고 그를 꿰뚫고 울려퍼지는, 군화발이 대리석을 때리는 그 특유의 소리. 이윽고 문이 열리고 강철동지 스탈린의 차가운 미소가 책상 건너에서 그를 반겼으리라. 잠시 후 면접을 마친 그는 지친 얼굴로 크렘닌 궁을 나왔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자신이 자주 찾던 카페와 식당, 그리고 친숙한 거리들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붉은 광장 앞 한 벽돌건물의 벽에 기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는 모스크바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들을 추억했을 것이다. 같이 국제레닌대학교에서 수학하던 조선인 동지들-그 사이의 사랑과 배신, 호치민을 비롯한 동양인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의 지령을 받아 상하이로 떠나며 생이별한 자신의 첫 딸-사랑하는 비비안나. 그리운 이름들과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는 1930년의 봄을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이윽고 담배를 비벼 끄고 그는 무거운 얼굴로 돌아서서 격동하던 조국의 두번째 전선으로 향했다. 한쪽 어깨에 예정된 죽음을 얹고서.

2019. 8. 17.

ZER0

 
 

  • 세상에 0보다 더 강력한 지지선은 없다. 그리고 지난 48시간의 금융시장은 영의 위대함을 깨부수는 충격에 시달렸다. 미국채 금리의 3m vs 30yr 스프레드는 0을 깨고 마이너스로 돌입했으며 유로 스왑금리는 전 테너가 0 아래를 찍었다. 그 여파로 미국 주식시장은 3% 폭락했으며 한국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동안 세계 금융시장은 광기와 복통에 절어야 했다.
  • 인도에서 발명된 이 0은 단순히 zero를 의미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십진법의 자리수를 구분하여 금융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복식부기와 회계학, 재무제표는 모두 영의 부산물일 뿐이다. 와닿지 않는다면 USD 40,101+USD 170,010을 각기 로마숫자, 한자, 한글로 기입해서 계산해보라.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금융시장의 발전은 0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었다.
  • 이성의 화신인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에게도 0은 특별한 숫자이다. 수 체계의 첫번째 구분은 자연수로부터 시작되며, 용어 그대로 0은 수의 세계에서 natural과 unnatural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중학교 수학에도 등장하는 피타고라스의 학파는 우주의 모든 사물은 자연수의 특성에 기인하고 있으며 1부터 10까지의 각 수는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은 학문을 넘어 종교의 영역에까지 도달했고, 피타고라스의 후예들은 자연수의 영역을 벗어난 무리수 √2를 최초로 발견한 동료 히파수스를 강물에 던져 죽이고야 말았다.
  • 굳이 피타고라스 학파가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수학적으로도 0은 신비의 영역이다. 수학적으로 무한의 정의는 1/n에서 n을 극한으로 0에 가깝게 만들때의 값을 의미한다. 즉 0은 가장 작은 숫자임과 동시에 가장 커다란 수의 어머니가 된다. 성경의 "나는 곧 알파요 오메가이니"라는 구절처럼 0은 곧 ∞요, infinite은 곧 zero다.
  • 이렇듯 모든 숫자 중에서 깊이와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은 오로지 0 뿐이지만 애달프게도 이는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정보는 지식이 아니며 지식은 지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금융인들은 정보와 지식을 지혜라고 생각한다. 아니, 자본이 곧 지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가난이 선을 의미하지 않듯 부자는 현자가 아니며 우리는 그저 무한대의 데이터 속에서 황금을 캐내려하는 일개 연금술사에 불과하다. 가진 재주라고는 그저 0으로부터 달아나는 것 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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