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8.
여의도 정치를 반기는 유권자는 없다
2021. 10. 31.
과연 누가 부채를 늘리고 있을까: 너나 잘하세요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회계 능력을 함께 주었다고 한다. 단둘이 있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자신의 갈비뼈를 현물로 출자하여 하와라는 독립법인을 설립하였지만 의결권은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와는 선악과를 우연히 습득하여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사과라는 자산을 반영했다 아담에게 무상으로 지급하였고 아담은 이를 이전소득이라 기록했다. 그리고 화폐경제가 시작되었다. 둘 사이에서는 빈번하게 화폐가 오갔으며 그들은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금융자산과 금융부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밖에 없는 에덴동산에서 그 둘의 순부채가 동시에 증가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누군가의 부채는 다른 이의 자산이기에 한쪽의 부채가 증가했다면 다른 한쪽의 자산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 그렇기에 둘의 순 부채가 동시에 증가할 수는 없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있다면 한반도에는 정부와 민간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거래내역을 뜯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작 부채를 급격하게 늘리고 있는 것은 민간이 아닌 정부며, 사실상 정부부채를 충당하는 것은 가계의 예금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동안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예금과 채권 투자 잔액은 더욱 빠르게 늘어 약 285조가 증가했고, 그 결과 순부채는 약 120조가 감소했다. 반면 정부부채는 약 120-240조***가 늘었는데 과연 무분별하게 부채를 늘리는 쪽은 누구일까?
따라서 진심으로 높은 부채비율이 걱정됐다면 정부는 국민들을 겁박할 것이 아니라 반성문을 써야 했다.(비록 필자는 코로나 기간 동안 강력한 정부 지출을 지지하지만) 하지만 우습게도 우리는 급격하게 순부채를 늘리는 정부가 순부채를 줄이는 가계를 상대로 부채가 과도하다며 대출을 금지하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새로운 수장이 이끄는 금융위는 이두박근에 힘을 가득 주고 장첸을 쥐어박던 마동석처럼 폭력적으로 은행 창구의 셔터를 쾅 하고 닫으면서 무분별한 부채증가를 막아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가 만약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면 금융위원회 로비를 찾아가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너나 잘하세요.
만약 채권자가 돈을 융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응당히 채무자의 자금을 회수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채권자는 가계고 채무자는 정부다. 그러니 정부의 펀딩이 원활하게 될 리가 없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이달 들어 여섯 차례의 입찰 중 다섯 번이나 발행 예정액을 채우지 못했고 국고채의 발행을 담당하는 PD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자기의 전주의 돈줄을 죄는 정부의 바보 같은 행태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은 정부의 자학적 슬랩스틱 개그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돈을 빌린 채무자가 돈을 빌려준 채권자 보고 빚좀 내지 말라고 윽박질러놓곤 다음날 다시 찾아와 돈 좀 빌려달라고 애걸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최근의 채권시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채로 유지되는 경제를 바꾸어야 한다면서도 내년에도 대규모의 채권 발행을 예고한 멍청한 정부가 있고, 반대쪽엔 대출이 막혀 중도금과 전세금을 구하기 위해 자금을 인출하는 가계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애 먼 고생을 반복하다 결국 삼삼오오 모여 새빨개진 얼굴로 말없이 담배만 뻑뻑 피우는 채권부서 친구들이 있다. 정부는 유동성을 줄여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하지만 공급이 부족한 특정 재화의 가격을 안정시키겠답시고 전체 유동성을 죄는 것은 채권시장 뿐 아니라 주식시장과 내수, 특히나 코로나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된 서비스업과 자영업자들에게 사약이나 다름없으리.
지금이야 위통약을 집어먹는 것이 채권 담당자들 뿐이겠지만 얼마 안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제산제와 아스피린을 찾게 될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 내 작은 위로를 건넨다. 부디 그대들의 고통이 오래가지 않기를.
*외국인도 있지만 편의를 위해 제외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거의 대다수의 나라에서도 발생했다.
***연금충당부채나 지방공기업을 포함하느냐에 따라 집계가 약간씩 다른데 순수정부부채만 계상할 경우 약 125조, 광의의 부채를 모두 포함할 경우 240조가 된다.
2021. 10. 23.
오징어 게임 그리고 다섯 개의 사족
아래 내용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흥행하게 된 데에는 456명의 참가자가 처한 현실이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처럼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실내에 격리되었고 마음속 상자 안에 담긴 고독은 더욱 깊어졌다. 참가자들을 통제하는 진행요원들의 의상 역시 방역을 지시하는 이들이 입은 레벨 D의 방호복을 닮았다, 색상만 조금 다를 뿐. 하지만 그들이라고 뭐가 다를까. 선홍색 슈트 안에 갇힌 진행요원들이 서로 눈빛조차 나누지 못한 채 콜록대며 모스 부호로 소통하는 것처럼 우리가 교감할 수 있는 영역 역시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세계로 쪼그라들었다. 인터넷이 우리를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할 것이라는 바람과는 반대로 우리는 좁은 방 안으로 구속되었으며 따듯한 타인의 온기가 있어야 할 곳은 덕지덕지 붙은 악플로 도배되었다. 참가자들이 복잡하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거닐며 헤메듯 우리 역시 드넓은 온라인 공간에서 길을 잃었다, 자신을 인도해 줄 누군가의 등짝을 찾아서.
이 게임의 세트장에서는 모두가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 역시 누군가의 감시에 놓여있다. 빅 테크 기업들은 당신의 구매내역과 소비습관, 검색 빈도, 인간관계, 심지어 사소한 성적 취향까지 모두 속속들이 캐내어 자신들의 광고주들에게 팔아 치우고 있다. 마찬가지로 빅 브라더는 당신의 동선과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꿰고 있으며 개인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그래서 홉스가 국가라는 존재에 리바이어던이란 괴수의 이름을 달아주었나 보다. 소셜미디어 회사들은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는 것 만으로도 트럼프 같은 막강한 정치인들 조차도 벙어리로 만들 수 있으며 빅 브라더는 당신이 런닝머신에서 어느 정도로 뛰어야 하는지까지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을 넘어서면 당신은 범죄자가 된다. 어디선가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탕.
이렇게 코로나와 금융시장의 패닉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빅 테크와 빅 브라더를 피해 세상 밖으로 나와 마주한 것은 양적완화로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자산들 가격이었다. 마치 참가자들의 숙소 천장에 붙은 거대한 저금통처럼, 내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손만 뻗으면 내것일 수도 있던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 그렇게 우리는 모두 벼락거지, 아니 탈락자가 되었다. 남은 생존자들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기 시작한다.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문과와 이과가, 중년과 대졸자가, 여자와 남자가, 그리고 시민권자와 외국 노동자들이 줄다리기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 드라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그려낸 참으로 불쾌한 우화이며 잔혹한 동화와도 같다.
나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그럴까, 가장 긴 여운을 남긴 등장인물은 서울대 경영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조상우였다. 게임을 거치며 소시오패스로 흑화한 줄 알았던 그에게 연민을 넘어 경외감을 느꼈던 이유는 그가 너무나 절박하고 합리적인 이유로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라운드인 오징어 게임에서 그는 패배했다, 이제 그는 여느 탈락자와 같이 죽어야 했다. 하지만 기훈이 상금을 포기하고 게임을 중단할 테니 함께 집에 가자고 손을 내밀며 인간미를 내비치는 그 순간, 그는 주저 없이 나이프를 뽑아 자신의 목에 박아 넣었다. 바로 강새벽의 목을 찌른 곳과 정확하게 같은 그 자리에.
게임이 중단된 사이 잠시 쌍문동에 들렸을 때, 아마도 상우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것이다. 노모에게는 두 가지 자랑거리가 있었으니 하나는 서울대 경영대를 수석으로 들어간 아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평생을 바쳐 쌍문동 시장 한 구석에 마련한 작은 가게였을 테지. 모진 팔십여 년의 세월을 버텨가며 살아온 그녀에게 그 둘은 마치 훈장과도 같았으리라. 하지만 이제 아들은 시퍼런 수의를 입은 범죄자가 될 것이고 늙은 그녀는 평생을 바친 그 가게가 경매로 넘어가 헐값에 팔려나가는 것을 목도할 것이다. 그래서 상우는 다시 오징어게임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를 그 지옥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이 평생을 여의도에서 살다 몰락한 그의 마지막 베팅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믿고 따르던 알리를 속여서 배신했다. 피 흘리며 죽어가던 강새벽이 게임중단을 요청할까봐 그녀를 살해했다. 어찌 그들의 목숨과 내 사랑하는 어머니의 삶을 저울질하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죽였다. 오로지 기훈의 손에 456억을 쥐어주기 위해서. 그렇다면 저 바보 같은 형이 나를 가엽게 여겨 우리 어머니를 살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겠노라는 기훈의 약속도 계약서나 각서도 없었지만, 그는 그 가느다란 희망 하나만으로도 주저 없이 나이프를 들어 자신의 목을 힘껏 찔렀다. 선물로 60억을 베팅했다 몰락한 그는 마지막으로 그 가냘픈 희망에 목숨을 걸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나이프로 내가 넘지 못할 선은 없다고 답한 셈이다. 자신의 죽음 그 너머까지도.
2021. 10. 9.
모두가 웃지는 못할 것이다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 - 툰베리의 저주
글을 시작하기 앞서 당부할 것이 있다. 당신이 트레이더가 아니라면 단기적 거시경제 전망을 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 그러기에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 트레이더들이야 미국의 채권 금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연준의 통화정책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보유 주식들의 성과가 갈리고 따라서 금이나 리츠, 혹은 다른 파생상품으로 위험을 분산하거나 집중해야 하지만 트레이더가 아닌 투자자라면 그럴 일이 없다. 게다가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일반인들의 거시경제 분석은 대부분 바닥부터 잘못되었고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부분 틀리거나 매일매일 변하며, 또 정부와 교수들은 뒷북을 치기 바쁘니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작년 코로나 초기와 하반기처럼 거시경제가 개별 투자자의 수익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순간은 10년에 한두 번뿐이다. 나머지 기간 동안 투자자들이 해야 할 일은 항상 우직하게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사는 것, 그것 뿐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나는 최대한 트레이더로서의 단기 전망을 삼가고 되도록 투자자로서 장기적 전망에 집중하려고 한다. 트레이딩과 투자는 아주 다르니까. 아래의 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 * *
작년 7월에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라는 글(링크)을 올렸을 땐 미국의 CPI는 1% 아래였고 미국 10년 금리는 0.5% 수준이었으며 누구도 인플레이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정확하게 반대 지점에 와 있다.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연말 미 10년 국채금리가 2%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고 CPI는 5%를 넘어 2008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과연 이제 인플레이션은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을까.
파웰은 그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최근 약간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기저 인플레이션 압력은 내년 상반기로 접어들며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의 주장에 의구심을 보이며 한때 1.75%까지 질주하던 미국의 10년 금리는 크게 주저앉으며 don't fight the fed라는 단순한 경고를 또다시 잊은 많은 트레이더들에게 패배를 선사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다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직면하기 시작했다. 치솟는 원유와 천연가스가격이 경제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고 있고 신조어를 베껴 쓰는것 말고는 별다른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국내 경제 기자들은 그린플레이션이 닥쳤다며 호들갑을 떨기 바쁘다. 과연 파웰이 틀린 것일까.
나는 연준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현재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저효과, 둘은 코로나로 인해 멈췄던 경제가 재가동을 시작하며 나타난 일시적인 공급 차질, 나머지 하나는 코로나 이후 정치사회적 압력으로 생산라인을 바꾸는 것. 이 중 기저효과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며 두 번째 측면도 얼마 안가 정상화될 것이다. 폴 크루그먼 역시 1970년대에는 임금 상승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 기대가 경제에 만성화되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링크)며 연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요소는 세계 경제에 장기적으로, 그리고 불쾌한 방식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할 것이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무척이나 다르다. 정부의 역할은 무척이나 비대해졌고 세계의 각국 유권자들은 중국에 적대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코로나를 일종의 자연재해라고 여긴 탓일까, 환경에 대한 관심과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이 모든 변화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비대해진 정부는 민간의 영역을 구축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낮추는 수준까지 진행될 것이고(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경제학자가 아닌 사실상 일반 유권자들이니까), 국제정치적 이유로 세계 GDP의 17%를 차지하는 중국을 밸류체인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대다수 재화와 서비스의 비용이 더 이상 최적점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규제는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납세자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경제는 회복하니 당연히 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것이 자명한데 과거와는 달리 시추공의 숫자가 유가를 따라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일부는 작년 파산했거나 파산할 뻔한 관련업계가 자본지출을 늘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된 이유는 미래의 유가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하기 때문이다. 시추공을 뚫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 수익은 향후 10년간의 유가에 달렸다. 만약 2030년부터 각국정부가 내연기관 차량들을 금지한다면 10년 뒤의 원유 수요는 낮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시추/정제업체들은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유가가 높아 정제마진이 커져도 모두가 10년 뒤면 그 마진이 박살이 날 것이라고 얘기하니까. 오히려 현재의 휘발유 값이 높아지게 되면 전기차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높아진다. 이는 이코노미스트들로 하여금 미래의 내연기관 수요를 더 낮게 예측하게 만들고 따라서 원유 수요에 대한 전망치를 낮춘다. 그러니 미래의 수요를 바라보고 투자에 나서는 시추/정체업체들은 머뭇거리게 된다. 치솟은 유가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전기차, IOT, 블록체인, 클라우딩, 스트리밍 서비스 등 4차 산업은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독일과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그 늘어난 전력수요를 친환경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새로운 산업인 신에너지의 효율과 생산량을 정확하게 예측해 줄어든 화석연료 생산에 알맞게 대응할 수 있다고? 당장 올해 초 텍사스에서 벌어진 전력난을 떠올려보자, 인류는 고등생명체이긴 하지만 결코 신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다.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업계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한다.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스코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도달하려면 약 40조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링크)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된 것이겠지만 과거 장기적 사업들의 비용은 대부분 기존의 추계치를 크게 벗어났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전기차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리튬이나 알루미늄, 그 외의 다른 원자재 생산라인을 뜯어보면 대부분 환경규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아니 거의 모든 원자재 산업들이 영향을 받는다.
이런 공급충격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근본적으로 70년대의 오일쇼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일쇼크가 초단기적으로 큰 충격을 가했던데에 비해 사회/정치/규제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훨씬 점진적이고 약한 충격을 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경규제로 인한 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하면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은 현재의 환경정책을 재고할 것이고 오일쇼크와는 달리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일 테니까. 그렇기에 이를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심각한 과장이고 그저 다소 불쾌하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재는 대다수의 정치인들, 대중들 심지어 투자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모든 관심이 구글과 아마존 넷플릭스 그리고 전기차에 쏠려있고 또 오로지 장밋빛 미래만을 그리지만 그런 정책들이 가져올 변화가 기저에서 어떤 비용을 야기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미 그 징후들을 목도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고작 중학교만 졸업한 채 배우기보다 남을 가르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 온 그레타 툰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환경전문가가 아니기에 탄소배출을 얼마나 급격하게 줄여야 하는지 이야기해 줄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도덕적 우월감에 가득 찬 툰베리들의 목표만큼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공급 쇼크라는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고. 당신들이 쿨하게 테슬라 전기차를 사고 텀블러를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키지 않고 다이소의 생필품 값이 두 자릿수 퍼센티지, 혹은 그 이상으로 상승할 것인데다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조차 줄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레타 툰베리, 그린에너지 기업, 그리고 환경운동가들 그 누구도 이런 비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시대의 투자 패러다임은 과거와 꼭 같지는 않을것이다. 규제로 인한 공급 측면 인플레이션에 각 중앙은행들이 과거와 같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지 의문이고 또 소비자에게 비용상승을 전가할 수 있는 기업과 아닌 기업들의 장래 역시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단기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에 걸쳐 이뤄질 것이고 순전히 이로 인해 경제가 불황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걸맞게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사는 것. 언제 어디서나 늘 그랬듯이.
2021. 10. 2.
shape of my heart
He deals the cards as a meditation
And those he plays never suspect
He doesn't play for the money he wins
He don't play for respect
He deals the cards to find the answer
The sacred geometry of chance
The hidden law of a probable outcome
The numbers lead a dance
내가 본 최고의 연기 중 하나는 레옹에서의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였다.
아버지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반항적인 눈빛을 놓지 않았던 그 작은 아이가
오로지 살아남기위해 가족들의 주검을 아무렇지도 않은척 지나던 그 작은 아이가
끝끝내 무너져 레옹의 문 앞에서 절규하듯이 매달리며 초인종을 누르던 그 순간
환하게 쏟아지는 빛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작은 아이에게.
그렇게 마틸다는 레옹에게 마리아가 되었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2021. 9. 22.
삶에는 퇴고가 없다
연휴를 맞이하여 예전 글들을 쭉 읽어내려오고 나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오타와 비문에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꼭 내가 살아온 발자취와도 같더라. 그래서 하나하나 고쳐내려가다 에이 하고 관두고 말았다. 내가 온전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내 글이 온전하지 못한게 당연할 터이니.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2007년의 가을, 셔틀마저 끊긴 그 늦은 밤 학관 뒤 벤치에 앉아 미래를 고민하던 내가 있었다. 나는 작은 실수를 하나 저질렀고 그 실수로 인해 작가의 꿈을 버리고 돈이나 벌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둔한 나는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고 어찌저찌 하여 트레이더가 되고 말았노라. 하지만 사실 나는 글을 쓰는 이가 되고 싶었다. 다시 돌아가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지난 십년간 내가 번 돈이 그동안 내가 쓰지 않은 글보다 값지다고 할 수 있을까.
2007년으로부터 7+7년 뒤
늦은 가을 밤, 아라리오 미술관 앞 벤치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