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앞서 당부할 것이 있다. 당신이 트레이더가 아니라면 단기적 거시경제 전망을 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 그러기에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 트레이더들이야 미국의 채권 금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연준의 통화정책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보유 주식들의 성과가 갈리고 따라서 금이나 리츠, 혹은 다른 파생상품으로 위험을 분산하거나 집중해야 하지만 트레이더가 아닌 투자자라면 그럴 일이 없다. 게다가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일반인들의 거시경제 분석은 대부분 바닥부터 잘못되었고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부분 틀리거나 매일매일 변하며, 또 정부와 교수들은 뒷북을 치기 바쁘니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작년 코로나 초기와 하반기처럼 거시경제가 개별 투자자의 수익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순간은 10년에 한두 번뿐이다. 나머지 기간 동안 투자자들이 해야 할 일은 항상 우직하게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사는 것, 그것 뿐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나는 최대한 트레이더로서의 단기 전망을 삼가고 되도록 투자자로서 장기적 전망에 집중하려고 한다. 트레이딩과 투자는 아주 다르니까. 아래의 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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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에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라는 글(링크)을 올렸을 땐 미국의 CPI는 1% 아래였고 미국 10년 금리는 0.5% 수준이었으며 누구도 인플레이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정확하게 반대 지점에 와 있다.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연말 미 10년 국채금리가 2%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고 CPI는 5%를 넘어 2008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과연 이제 인플레이션은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을까.
파웰은 그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최근 약간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기저 인플레이션 압력은 내년 상반기로 접어들며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의 주장에 의구심을 보이며 한때 1.75%까지 질주하던 미국의 10년 금리는 크게 주저앉으며 don't fight the fed라는 단순한 경고를 또다시 잊은 많은 트레이더들에게 패배를 선사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다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직면하기 시작했다. 치솟는 원유와 천연가스가격이 경제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고 있고 신조어를 베껴 쓰는것 말고는 별다른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국내 경제 기자들은 그린플레이션이 닥쳤다며 호들갑을 떨기 바쁘다. 과연 파웰이 틀린 것일까.
나는 연준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현재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저효과, 둘은 코로나로 인해 멈췄던 경제가 재가동을 시작하며 나타난 일시적인 공급 차질, 나머지 하나는 코로나 이후 정치사회적 압력으로 생산라인을 바꾸는 것. 이 중 기저효과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며 두 번째 측면도 얼마 안가 정상화될 것이다. 폴 크루그먼 역시 1970년대에는 임금 상승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 기대가 경제에 만성화되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링크)며 연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요소는 세계 경제에 장기적으로, 그리고 불쾌한 방식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할 것이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무척이나 다르다. 정부의 역할은 무척이나 비대해졌고 세계의 각국 유권자들은 중국에 적대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코로나를 일종의 자연재해라고 여긴 탓일까, 환경에 대한 관심과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이 모든 변화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비대해진 정부는 민간의 영역을 구축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낮추는 수준까지 진행될 것이고(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경제학자가 아닌 사실상 일반 유권자들이니까), 국제정치적 이유로 세계 GDP의 17%를 차지하는 중국을 밸류체인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대다수 재화와 서비스의 비용이 더 이상 최적점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규제는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납세자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경제는 회복하니 당연히 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것이 자명한데 과거와는 달리 시추공의 숫자가 유가를 따라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일부는 작년 파산했거나 파산할 뻔한 관련업계가 자본지출을 늘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된 이유는 미래의 유가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하기 때문이다. 시추공을 뚫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 수익은 향후 10년간의 유가에 달렸다. 만약 2030년부터 각국정부가 내연기관 차량들을 금지한다면 10년 뒤의 원유 수요는 낮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시추/정제업체들은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유가가 높아 정제마진이 커져도 모두가 10년 뒤면 그 마진이 박살이 날 것이라고 얘기하니까. 오히려 현재의 휘발유 값이 높아지게 되면 전기차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높아진다. 이는 이코노미스트들로 하여금 미래의 내연기관 수요를 더 낮게 예측하게 만들고 따라서 원유 수요에 대한 전망치를 낮춘다. 그러니 미래의 수요를 바라보고 투자에 나서는 시추/정체업체들은 머뭇거리게 된다. 치솟은 유가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전기차, IOT, 블록체인, 클라우딩, 스트리밍 서비스 등 4차 산업은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독일과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그 늘어난 전력수요를 친환경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새로운 산업인 신에너지의 효율과 생산량을 정확하게 예측해 줄어든 화석연료 생산에 알맞게 대응할 수 있다고? 당장 올해 초 텍사스에서 벌어진 전력난을 떠올려보자, 인류는 고등생명체이긴 하지만 결코 신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다.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업계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한다.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스코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도달하려면 약 40조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링크)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된 것이겠지만 과거 장기적 사업들의 비용은 대부분 기존의 추계치를 크게 벗어났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전기차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리튬이나 알루미늄, 그 외의 다른 원자재 생산라인을 뜯어보면 대부분 환경규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아니 거의 모든 원자재 산업들이 영향을 받는다.
이런 공급충격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근본적으로 70년대의 오일쇼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일쇼크가 초단기적으로 큰 충격을 가했던데에 비해 사회/정치/규제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훨씬 점진적이고 약한 충격을 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경규제로 인한 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하면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은 현재의 환경정책을 재고할 것이고 오일쇼크와는 달리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일 테니까. 그렇기에 이를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심각한 과장이고 그저 다소 불쾌하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재는 대다수의 정치인들, 대중들 심지어 투자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모든 관심이 구글과 아마존 넷플릭스 그리고 전기차에 쏠려있고 또 오로지 장밋빛 미래만을 그리지만 그런 정책들이 가져올 변화가 기저에서 어떤 비용을 야기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미 그 징후들을 목도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고작 중학교만 졸업한 채 배우기보다 남을 가르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 온 그레타 툰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환경전문가가 아니기에 탄소배출을 얼마나 급격하게 줄여야 하는지 이야기해 줄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도덕적 우월감에 가득 찬 툰베리들의 목표만큼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공급 쇼크라는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고. 당신들이 쿨하게 테슬라 전기차를 사고 텀블러를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키지 않고 다이소의 생필품 값이 두 자릿수 퍼센티지, 혹은 그 이상으로 상승할 것인데다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조차 줄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레타 툰베리, 그린에너지 기업, 그리고 환경운동가들 그 누구도 이런 비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시대의 투자 패러다임은 과거와 꼭 같지는 않을것이다. 규제로 인한 공급 측면 인플레이션에 각 중앙은행들이 과거와 같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지 의문이고 또 소비자에게 비용상승을 전가할 수 있는 기업과 아닌 기업들의 장래 역시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단기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에 걸쳐 이뤄질 것이고 순전히 이로 인해 경제가 불황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걸맞게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사는 것. 언제 어디서나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