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6.

역사, 그 생존의 교과서

국토가 길게 늘어진 탓일까, 일본에서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주요 세력이 둘로 나뉘어 큰 전투를 벌이곤 했다. 그 대표적 사건이 일본 열도를 동서로 나누어 붙었던 세키가하라 전쟁인데 전 일본의 주요 다이묘와 무장들이 대부분 출전하여 싸웠던, 그야말로 그 시대의 빅 매치였던 셈이다. 이 전투에서 패하는 진영에 줄을 잘못 서게 되면 영지를 삭감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몰수, 혹은 가문이 모두 처형당하는 혹독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각 다이묘들은 신중히 진영을 택했다. 그리고 그런 전국시대 말기에 인상 깊은 족적을 남긴 두 가문이 있다. 바로 사나다와 시마즈가. 그들의 행보를 짧게 돌아보자. 


#사나다 가문

가장 복잡한 상황에 처한 다이묘들 중 하나가 바로 사나다 마사유키였다. 본래 다케다 가문을 섬기던 그는 주인이 몰락하자 살아날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오다 노부가나에게, 그가 죽고 난 뒤 호조 가문에, 뒤이어 도쿠가와에게 복속한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영지를 양도하라고 명하자 그는 명을 거부하고 전쟁에 나선다. 분노한 이에야스가 토벌대를 보내지만 전략가인 마사유키는 우에다 성에서 토벌군을 섬멸한다. 하지만 이 작은 다이묘가 일본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도쿠가와에게 언제까지 저항할 수는 없는 법. 그는 둘째 아들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인질로 보내어 중재를 부탁하고, 히데요시는 마사유키의 장남과 도쿠가와의 가신의 딸을 결혼시키며 화해를 주선한다.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제안이었지만 전투에서도 이기고 도요토미도 등에 업은 사나다 마사유키는 호기롭게 반발하며 나도 다이묘이고 저쪽도 다이묘인데 어째서 내가 급이 낮은 도쿠가와의 가신과 사돈을 맺겠느냐며 항의한다. 결국 이에야스는 신부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 혼인을 맺는 것으로 이 석연찮은 중재안을 받아들인다.

그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동군을 이끌고 천하를 벌이는 전투를 벌인다고 하니 사나다 가문의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동군의 수장과 사이가 껄끄러우니 서군에 참가하기엔 가문의 존속과 미래가 달린 일 아닌가.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도쿠가와 측과 사돈인 큰아들을 동군에 참가시키고 자신은 도요토미의 인질이었던 둘째 아들을 데리고 서군에 참가하기로. 어느 편이 이기든 가문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분산투자지만, 자칫하면 한솥 밥을 먹던 아버지와 형제, 그리고 가문의 중신들이 전장에서 서로를 죽고 죽여야 했던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동군이 승리했지만 사나다 마사유키는 불과 소수의 병사로 이에야스의 아들이 이끄는 3만 8천 명의 군대의 발목을 잡아 그들이 세키가하라에 참전하는 것을 막는다. 동군 총 병력의 약 1/3에 달하는 이들이 전장에 도달하지 못하는 바람에 동군은 서군에 비해 수적 열세에서 싸워야 했고 화가 단단히 난 이에야스는 마사유키를 죽이려고 했지만 동군에서 싸운 사나다의 장남, 노부유키의 간청으로 아버지와 둘째 아들을 유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사나다 가문은 살아남았다. 도쿠가와의 삼엄한 감시에도 큰아들 노부유키는 유폐된 아버지와 동생에게 지속적으로 생활비를 보내고 그들이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나다 가문은 우에다와 마쓰시로 번을 지배하며 막부 말기까지 존속했으며 폐번 이후에도 메이지 정부에서 현의 지사를 지냈고 세이난 전쟁에서 공을 세워 백작의 지위에 올랐다. 


#시마즈 가문

임진왜란에서 활약하여 우리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 시마즈지만 군공만으로 평가한다면 그들은 세키가하라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시마즈 가문은 사나다와는 반대로 도요토미 가문과 껄끄러운 관계여서 처음엔 동군에 합류하려고 했지만 영지가 서쪽 끝 규슈에 있었고 도요토미의 본거지인 오사카 성에 시마즈의 인질들이 잡혀있던데다 병사를 이끌고 이동하던 도중 서군의 대장, 이시다 미쓰나리가 거병하여 어쩔수 없이 서군에 합류한다.

이때 시마즈 본가는 형인 요시히사가 지키고 있었는데 동생 요시히로는 전공을 세우기 위해 형에게 지원을 요청하지만 요시히사는 단칼에 거절했고 그 결과 요시히로는 약 2천이 안되는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그러나 전투 내내 그는 거의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참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미쓰나리가 직접 찾아와 출격을 부탁했을 때에도 딴소리를 하며 수수방관할 뿐이었다.  

망부석처럼 서있던 시마즈의 용사들이 전장에서 활약한 것은 역설적으로 전투의 승패가 갈린 이후였다. 2시간여의 전투에서 서군이 패주하게 되고 시마즈의 본대도 포위당하게 되자 후방이 막힌 시마즈군은 불과 천오백의 병력으로 전방의 팔만이 넘는 동군의 본진을 돌파하기로 결정한다.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이 작전은 놀랍게도 성공한다. 혼다 타다카츠나 이이 나오마사와 같은 쟁쟁한 명장들이 그들을 저지했지만 되려 부상을 입고 물러나고 요시히로는 본진을 뚫고 오사카에 들러 인질들을 구출해 영지로 돌아갔다. 생환한 인원은 불과 수십 명에 불과하고 조카 토요히사와 다수의 중신들이 전사했지만 대장 요시히로를 무사히 탈주시킨다는 전략적 목적을 달성했고, 또 패주한 소수의 군대가 승리한 대군의 정면을 뚫어 후퇴한 이 놀라운 사건은 시마즈 퇴각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동군의 정면을 돌파한 시마즈 요시히로는 도쿠가와의 본진을 지나치면서 이에야스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원치 않는 싸움을 시작했다 본국 사츠마로 돌아가지만 제 본심에 대해 훗날 바로 말씀드리겠다고. 요시히로는 살아서 영지로 돌아갔지만 형 요시히사는 조카를 포함한 가문의 누구도 그를 환대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동시에 도쿠가와 측과 협상을 시작한다. 요시히사는 동생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 소수의 병력만이 참전했고 전투에서 사실상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피해는 동군이 무리하게 시마즈군을 포위 섬멸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화의를 청한다. 이에야스는 후환을 끊어놓고자 시마즈가 다스리는 사쓰마를 평정하고 싶었고 실제로 토벌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불과 천오백에 불과한 시마즈군의 활약을 목도한 터라 시마즈의 근거지로 쳐들어가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불과 일주일 만에 자신이 내린 토벌령을 철회한다. 그래서 시마즈 가문은 요시히로가 근신하는 것 외에 다른 처벌을 면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남은 시마즈 가문은 사쓰마 번을 지배하며 막부 말기까지 번성하였는데 막말 사쓰마-죠슈동맹을 이끌며 도막파의 수장이 되어 결국 도쿠가와 막부를 몰아낸다. 시마즈의 놀라운 활약을 목도한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죽으면서도 그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자신의 시신을 사쓰마를 향해 묻어달라고 하였는데 그의 염려는 265년이 지나 결국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는 현대를 비추는 거울일 뿐 아니라 현대인의 의식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이번 정부에서 유난히 두드러지지만 과거에도 한국 정부가 납득할 수 없는 1차원적 외교를 펼쳐 국익을 갉아먹은 사건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는데 나는 유권자들이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책임은 우리나라의 편협한 역사교육에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교과서가, 그리고 그 교과서로 배운 대중이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은 큰 틀에서 명분을 따지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너무나 편협하고 감정적이며 또한 비현실적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입만 산 병신외교로 이어진다.(링크)

만약 우리의 역사교육이 세키가하라의 두 인물들을 평가한다면 과연 어떻게 보았을까? 아마도 사나다 가문은 붕당에 휩쓸려 아비와 아들, 형과 동생이 총부리를 겨눈 비극의 동족상잔을 벌인 막장 집안으로, 시마즈는 유유부단하게 움직여 서군의 패배에 일조한 기회주의자들로 보지 않았을까. 실제로 우리의 역사교육은 명분만 강조하고, 또 그에 따른 별 역사적 의미도 없던 소규모의 항쟁만 조명한다. 그래서 고려든 조선이든 나라가 몰락하거나 위험한 시기를 배울 때면 어김없이 명분론과 항쟁이 교과서를 수놓는다. 물론 그중에는 임진왜란의 의병처럼 의미있는 무력투쟁도 있었지만 무신정권 몰락 후 삼별초의 항쟁이나 1930년대 이후 만주의 소규모 독립군 활동처럼 실제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사건들조차도 우리의 역사교육은 애써 의의를 부여하고 명분을 입혀 포장한다. 하지만 고려가 자주국으로 남을 수 있던 것은 고려 원종이 쿠빌라이가 왕위 계승 경쟁에서 이기는데 크게 기여한 외교술 덕이고* 전후 한국이 독립할 수 있던 것은 일본의 힘을 꺾어놓고 싶은 미국과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싶었던 중국 측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나다와 시마즈의 역사를 배운 일본인과 삼별초와 조선의용대의 역사를 배운 한국인들이 국가적 위기를 마주했을 때 각각의 전략적 대응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마사유키나 요시히사처럼 자존심을 버리더라도 생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투쟁과 협상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겠지만 한국인들은 무지성으로 투쟁만 하면 된다고 믿는다. 불굴의 의지로 반항하고 대들고 싸우고 죽고 살해당하고 그래도 대들고, 그렇게 줄기차게 투쟁에 나서면 궁극적으로 소년만화와도 같은 승리가 알아서 찾아올 거라 믿는다. 그 의지를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명분과 혹독한 정신교육뿐이지 타협은 매국노 배신자들이나 꺼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병신외교는 오늘날에도 그렇게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바로 절름발이 정신승리로 점철된 역사교육을 통해서.   

오늘은 광복절이다. 우리는 독립의 기쁨과 의의만 기념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살아남았는지 실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유럽 대륙만 해도 몇천 개가 넘던 정치세력들은 불과 두 세기 만에 두 자릿수의 국가들로 통합되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독립국가로 존속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생존을 위해 절박하게 투쟁한 역사이고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과 더불어 지정학적 여건 덕에, 또 한 강대국의 전폭적 지원 덕에 격동의 세기에도 살아남아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은 머지않아 끝날 가능성이 크다.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은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셰일가스의 발견,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소련의 붕괴로 미국이 국제사회에 이전처럼 깊숙이 개입할 이유가 사라졌으며 먼로주의로의 회귀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미국은 세계 시장의 개방, 자유무역, 항행의 자유, 그리고 군사적 안정을 보장하였고 그 결과 대다수의 약소국들이 사실상 정치에서 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할 이유를 없앴다. 오늘날 그 어떤 정치인도 자국의 안정적인 석유 수입을 위하 말라카 해협에 해상 군사력을 투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소비시장의 확보를 위해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는 미국의 세계의 경찰 역할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미국이 석유 때문에 중동문제에 개입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미국이 수십 년간 수입해온 석유 중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물량은 1/5이 채 되지 않았고, 그나마 그 절반은 사우디가 동맹국 미국에 비축한 분량이었다. 미국이 중동을 지키는 것은 동아시아 동맹국의 에너지 수급 때문이었는데 미국에 안보를 가장 의존하는 한국인들 조차도 미국의 중동 침공을 줄기차게 미 패권주의라며 비난했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점점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세계의 경찰놀이에 자신의 세금과 재정을 낭비하는 것을 꺼릴 것이며 그러기 시작하면 나머지 세계가 태어나 누려온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지금 내 세대는 죽기 전에 그 역사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다시금 지정학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오를 것이며 전략적인 외교를 펴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운명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광복을 기념하던 바로 그날,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서 미국의 한 동맹국이 멸망했다. 휴전 직후 남한의 상황을 떠올리면 과연 우리가 아프가니스탄과 아주 다르다고만 할 수 있을까. 국제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도덕 책이 아니라 피와 철과 돈이지만 우리는 그를 잊고 있다. 지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복병은 경제도, 북한도, 사회정치나 지역 대립, 성별 갈등도 아닌, 심지어 출산율도 아닌 바로 이 지지리도 못난 병신외교라고 생각한다. 역사 교육을 처음부터 재고해 볼 때이다. 



*               *               *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일부 젊은 세대들까지도 이런 명분에 치우친 사고방식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준석에 대한 논란에 대해 블로그에 달린 댓글들을 찬찬히 읽은 결과 몇몇 사람들은 이준석 사태에 대한 해답으로 젊은 남성들이 더욱 단결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당 대표를 더 강하게 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전 연령층에서 가장 소수인 세대가, 그리고 투표율이 가장 낮은 세대가, 심지어 세대 내에서도 남녀로 갈라진 집단이 일치단결해서 시마즈처럼 나머지 인구 장벽을 돌파하겠다는 발상은 무모함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하다. 

1600년 세키가하라에서 요시히로가 전방으로 퇴각하기로 결정한 것은 서군이 패주하며 동군 병력의 상당수가 이미 전진하여 생각보다 본진의 방어가 느슨할테니 전방을 지키는 병력이 적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에 기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마즈 군은 거의 전멸했으며 다수가 살아남기 위해 두셋으로 구성된 자살조를 끝도 없이 투입해야 했다. 지금 젊은 남성들 역시 전방 돌파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행동에 나서는 이유는 이것이 실현 가능한 작전이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옳고 이준석 대표가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안하지만 세상은 그런 명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양분되어 있으며 이제부터 펼쳐질 선거는 세키가하라 전투처럼 양 당의 총력전이 될 것이다. 거기에서 실현 가능성을 계산해보지도 않은 작전은 자살작전이 아닌, 그냥 자살일 뿐이다.



*고려는 후계자 경쟁이 벌어지던 두 후보 중에서 쿠빌라이측을 찾아가 협상을 벌였고 이를 바탕으로 쿠빌라이는 자신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알릴수 있었다. 이후 원나라는 고려 원종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 고려에서 몽골의 군대와 다루가치를 철수하였고 고려인들이 국호와 사직을 보존하는 것을 허가했다. 게다가 자신의 막내딸을 원종의 아들과 혼인시켰는데 그의 사위 중 비 몽골인 출신은 충렬왕 단 하나였고 제국 내 그의 서열은 7위였다.

**대만과 조선은 태평양 전쟁 발발 시점 이전에 일본의 영토로 병합되었고 심지어 조선이 병합되던 당시의 일본은 서방의 동맹국이었다. 

2021. 8. 13.

완장 찬 준초딩과 반장선거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화를 학습하는 곳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초등학교에서도 반장선거를 여는 이유는 어린아이들에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무, 그리고 마땅한 권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은 이 점을 구분하지 못한다. 반장은 학우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자리이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학우들을 지배하는 왕좌가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반장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고집 센 아이들이 있다. 어느 학급이든 반장이 언제 환경미화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주번을 정할지, 그리고 급훈을 무엇으로 정할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반장은 그저 회의를 주재하여 급우들의 의견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아무리 늦어도 초등학교 4,5학년만 되어도 이 사실을 알지 않는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만이 이 사실을 모른다. 이 대표는 윤석열 캠프와는 물론이고 최재형, 원희룡 당사자들과 공개적으로 충돌했으며 윤희숙, 홍준표 등, 심지어는 아군인 유승민과도 마찰을 빚었다. 대선을 불과 반년 앞두고 모든 대선주자들과 충돌하는 당 대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모두 그가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7월 여당 대표인 송영길과 만난 자리에서 이준석이 당의 공식적 입장을 정면으로 거슬러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독단적으로 합의한 사건은 그가 당론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당내 주요 후보들과의 마찰도 당사자들과 협의되지 않은 일정이나 행사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그와 지지자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나 토론회를 여는 것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그가 전례 없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혁신이 아닌 철저한 퇴보다. 박근혜가 당 로고를 빨간색으로 바꾸고 미래통합당이 파격적인 핑크색 로고를 동원하는 것이 혁신과 무관한 일이었듯 수십여 회의 토론회를 열고 토론배틀을 여는 것이 당의 혁신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저 철없이 신난 당 대표의 장기자랑 대회에 불과한 것이지. 게다가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가장 형편없는 토론자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나. 

당을 장악하고 선거에서 이긴 대통령조차도 이런 독선적인 결정을 내리면 당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는데 처음으로 이겨본 선거가 내부의 당 대표 경선인 30대 중고 신인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마당에 어떻게 마찰이 없겠나, 충돌이 없기를 기대한다면 멍청한 것이고 일부러 그랬다면 사악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당의 이미지 쇄신과 외연 확장을 기대하는 당원들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들과 당원들은 이제 그의 입과 페북에 따라 사분오열하여 네 탓 내 탓을 다투고 있는데 책임소재를 따지기에 앞서 대선이 불과 반년 남은 시점에서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을 보면 나는 그를 무능한 당대표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그의 미흡한 리더쉽은 성적으로 드러난다. 당내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와 쌈박질을 벌이는 돈키호테 같은 당 대표의 달갑지 않은 지원 덕분에 범야권 후보들의 지지율은 하락세에 있으며 여야 1위 후보의 양자대결 결과는 뒤집혔다. 이준석 대표의 말과 페북 포스팅이 20대 남성에겐 카타르시스를 주었을지 몰라도 그들보다 수가 몇 배나 많은 중도/무당층은 그에게서 반감과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아니 준초딩은 20대들의 홍카콜라에 불과하다.* 그리고 과거 박사모들의 청량한 홍씨 탄산음료가 어떻게 중도층을 쫓아냈는지 기억하자. 

어쩌면 일부 지지자들과 이준석 본인은 당과 후보들이 대표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면 이런 마찰이 없었을 것이라고 옹호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으면서도 위험한 발상이다. 대표가 당심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게다가 당 대표란 자리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리인데 이준석이 그런 노력을 조금이라도 보였던가. 태어나 처음으로 완장을 차 본 코흘리개 아이처럼 제멋대로 지시하고 자신의 지시를 무시한다며 역정을 내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이준석 대표가 당을 통솔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무능하고 독단적이기 때문이지 결코 어려서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와 정치경력과 상관없이 그런 리더는 실패했다. 게다가 자신의 무능으로 인한 실패의 원인을 타인과 사회에게 돌리는 것이야말로 여성우월주의에 적대적인 그대들이 가장 혐오하는 태도 아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판을 납득할 수 없다고 항변하는 젊은 꼰대들이여, 그렇다면 초등학교 앞에 서서 열 살짜리 아이에게 묻길 바란다, 내가 반장이니 내 마음대로 장기자랑도 하고 소풍지도 정하고 참가자들을 채점하고 상벌을 내리려고 하는데 학우들이 말을 안듣는다고. 인생 최대의 관심사가 초통령 유튜버의 근황인 그 어린아이들도 당신들을 힐끔 쳐다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저씨 그러시면 왕따 돼요"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토론으로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글이 바로 이전에 포스팅한 이대남과 테스토스테론의 저주(링크)라는 사실과, 이 블로그의 주 방문자층이 젊은 남성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준석이 모든 20대들에게 청량감을 주는 지도 심히 의문이다.

2021. 8. 7.

이대남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의 저주

때때로 어떠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표면의 존재가 아닌 부재를 살펴보아야 할 때가 있다.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것은 인류애지만 그가 동시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문다면 그것은 정치인 것처럼. 최근 붉어진 한 양궁 선수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20대 남성들은 안산 선수가 sns에서 사용한 몇몇 단어들 때문에 분개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지난 몇 년간 사회가, 그리고 주류 언론이 그들에게 엄격한 자가검열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이중잣대였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한 선수는 자신의 팬들에게 "노무노무 고맙습니다"라는 포스팅을 올렸다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고 한 유명 유튜버 역시 해당 문구를 자신의 영상에 삽입했다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나를 포함하여 저들의 인터넷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윗세대들이 보기에 오조오억이나 웅앵웅이 뭐가 문제냐며 젊은 남성들을 타박하겠지만 그렇다면 노무노무는 왜 문제가 되었나, 그리고 왜 우리는 그때 침묵했던가. 이대남들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말과 입이 억압당하고 검열당할 때 주류언론과 윗세대들이 소극적으로, 때때로 적극적으로 동조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표면의 웅앵웅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부재를 보아야 한다. 그들의 표현의 자유에 무관심했던, 우리 여론과 관심의 부재를.

그리고 지금 이 젊은 남성들은 우리가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 역시 표면의 현상에 집착하느라 수면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다시 정치적 오판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실수는 자신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               *               *

공권력의 성추행을 고발하여 명성을 얻은 박원순 시장이 공권력으로 성추행을 저지르다 들통나서 자살하는 바람에 열린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여당 후보를 57.5%대 39.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며 시장직에 복귀했다. 불과 1년 전에 서울 시민들이 여당에 지배적인 의석수를 안겼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분명 이는 엄청난 변화였고 그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그중 20대 남성들의 해석은 다분히 이색적이었는데, 오세훈 후보가 성평등 관련 질문들에 답변을 거부했는데 이런 반 페미니즘 선언이 유권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독특한 세계관은 젊은 이준석이 제1야당의 당 대표가 되며 더욱 강화되었다. 반 페미니즘을 외치는 젊은 남성이 구체제의 인사들을 제치고 당의 얼굴이 되는 것을 보며, 집을 마련하는 것도 취직도 여의치 않았던 20대 남성들은 최초의 정치적 승리를 맛보았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가장 커다란 패배는 모두 작은 승리로부터 출발했다. 이 두 사건으로 이십 대 젊은 남성들은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졌다. 마치 그들이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당 대표의 페르소나가 된 것처럼.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어야 한다.

19년 대선 총 투표수 (연령별/성별)

지난 대선은 20대 남성들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선거였지만 그들의 정치참여도는 여전히 처참하다. 지난 대선에서 20대 남성은 고작 228만 표를 행사했는데 이 숫자는 그들이 주적으로 여기는 40대 남성의 절반에 불과하고 심지어 동년배 여성보다도 50만 표나 더 적다. 산술적으로 보면 20대 남성의 정치적 영향력은 인천광역시의 투표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구월동의 한 주민이 선거 직후 우리 인천이 승리의 주역이라고 외친다면 그들의 현실 인식엔 크나큰 결함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착각은 야당의 당 대표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의 힘에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은 약 28만 명이고 그중 50대 이상이 72.8%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20대는 고작 3.9%, 30대는 7.7%에 불과한데 그런데도 이준석 대표는 43.8%의 득표로 2위 나경원 후보(37.1%)를 큰 표 차로 이겼다. 젊은 남성들은 젊은 당 대표라는 표면을 보고 있지만, 이 승리의 진짜 함의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50대 이상의 보수층이 정권교체를 위해 전략적으로 30대 당대표를 밀어 줬다는 데에 있다. 즉 이준석의 승리는 20대의 지지가 아닌 중년/노년층의 양보 덕이다. 게다가 책임당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핵심 보수층이 탄핵에 찬성한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원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또 전략적으로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젊은 남성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50-70대들의 양보와 협력을 자신들의 승리, 즉 그들의 패배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준석 대표는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내 주요 대선주자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합당 과정에서 안철수와도 파열음을 내고 있다. 당내에서 다수인 80%는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양보를 하는데, 소수인 20%는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각자의 옳고 그름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택은 대단히 위험하다. 정치적 소수가 다수를 무시하며 대립하기 시작하면 다음 양보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럼 소수집단인 2030대 남성들은 당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고립될 것이다.

이런 징조는 최근 안산 선수의 페미니즘 논쟁에서 드러난다. 웅앵웅과 오조오억이 젊은 남성들에게는 중요한 주제지만 그 위 세대들에겐 정말이지 생소한 문제다. 나 역시 당신들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그러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나보다 더 윗세대인 중년 노년층이 그를 어찌 알겠는가. 당신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도 당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중도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언론이 젊은 남성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는 거대한 어둠의 세력 때문이 아니라, 당신네들을 제외한 다른 세대들이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고립된 소수집단이 극단적 주장을 펴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프리퀼에 불과하다.  


젊은 남성들이 정치적으로 실수를 저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때 그들은 40대 민주화 세대와 연합하여 보수정권을 몰아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터무니없이 오른 주택 가격과 줄어든 일자리, 그리고 교육을 잘 못 받았다는 조롱과 모욕뿐이었다. 불과 4년 전 20대 학생들은 그 어느 계층보다도 충성스럽게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지만 오늘날 이들의 정치적 입장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특히 20대/남성/학생의 지지율은 4년 전 9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는데 이런 급격한 변화는 한국 정치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처음 정치판에 뛰어든 그들은 아무런 정치적 경험도, 식견도, 배경도, 지식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고 대개 그러한 오만은 패배를 부른다. 2017년 그들의 선택이 그러했듯이.

나는 진심으로 20대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길 바라며 그들의 목소리가 나라정책에 더욱 반영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더욱 영리해져야 하고 좀 더 성숙해야 한다. 국민의힘 당의 책임당원들 상당수는 탄핵에 반대했던 이들이며 아직도 그들은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배신자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박근혜 특검수사를 담당한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지지하고 있고 바른미래당 출신인 이준석을 당 대표로 뽑았다. 반대로 젊은 남성들은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홍준표를 대선후보로 뽑고 나경원을 지지할 수 있을까. 전략적으로 유연한 계층은 과연 누구일까, 파릇파릇한 20대 청년들이 골다공증으로 골골대는 노년층보다도 더 완고하고 고집 센 이 현상을 뭐라고 설명할까?

작년 주식시장에서 20대 남성의 수익률은 평균 3.81%로 전체 계층 중에서 가장 낮았다. 이에 관한 몇몇 논문들은 그 원인으로 남성호르몬을 지적한다. 평균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집단의 주식 수익률이 낮았는데 이 남성호르몬이 과도한 자기 확신을 야기하고 새로운 정보의 습득을 막으며 사고의 유연성을 억제해 수익률을 낮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현재의 20대 남성들의 정치적 태도와도 일치한다. 한때 문재인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던 계층이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으로 돌아서서 특정 사상과 특정 인물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강력한 자기 확신과 독단은 지난 2016-17년과 똑같이 닮아있다. 그 과정에서 연합해야 할 장년/노년층을 틀딱이라며 조롱하고, 그들의 양보를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를 원한다. 그것도 야권에서 1/5도 안되는 지분을 가진 집단이,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줄 나머지 절대다수를 분노케 하면서. 그런 현실인식을 가진 그들에게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부디 그들의 선택이 주식수익률과는 다른 결과를 낳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진심으로 당신네들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2021. 8. 4.

빨간구두



안데르센 동화 중 빨간 구두라고 알아?

소녀는 엄숙하고 경건한 정소에도 굳이 그 빨간 구두를 신고 가지.


그 구두를 신으면 두 발이 저절로 춤을 추게 되고

영원히 춤을 멈출 수도 구두를 다시 벗을 수도 없게 돼


그런데도 소녀는 빨간 구두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

결국 사형집행인이 나서서 소녀의 발목을 잘라냈지만

잘려나간 두 발은 빨간 구두를 신은 채 계속해서 춤을 췄어


억지로 갈라놔도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게 있어.

집착은 그래서 숭고하고 아름다운 거야.



나, 

이제야 내 빨간 구두를 찾았어.


 사이코지만 괜찮아 中


paint by Egon Schiele

2021. 7. 24.

에드바르트 뭉크와 뱀파이어

 

모든 예술가에게 저마다의 뮤즈가 있다면 에드바르트 뭉크의 뮤즈는 바로 죽음일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뭉크가 5세가 되던 해에 죽었고 몇 년 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큰누나마저 세상을 떠났다. 이어지는 비극을 견디지 못한 그의 여동생은 정신병에 걸렸으며 아버지는 가족이 파괴되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광적으로 종교에 집착했다. 노르웨이의, 아니 근대 유럽의 최고의 화가 중 하나인 에드바르트 뭉크의 음울함은 죽음으로부터 탄생했다. 

때때로 사랑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뭉크의 운명은 불행히도 정반대였다. 그의 첫사랑은 자유분방한 사교계 인사로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연애를 지향하던 보헤미안이었으며 동시에 치명적인 팜프파탈이었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들이 흘린 피 내음을 마치 향수처럼 온몸에 두른 그녀가 고작 스무 살짜리 풋내 나는 그림쟁이에게 만족할 리 없지 않은가. 6년여의 연애 기간 동안 뭉크는 그녀만을 바라보고 헌신했지만 그녀는 뭉크의 사랑에 오롯이 거짓으로 응답한다. 보헤미안 부인의 주위엔 늘 욕정에 불타는 남자들이 맴돌았고 그 가운데 뭉크의 순수한 사랑은 그녀에게 가벼운 키스나 갓 구운 마들렌만도 못한, 그저 작은 오락에 불과할 뿐이었다. 철저하게 농락당한 뭉크는 마침내 그녀를 떠나면서 일기에 그녀가 자신의 생의 향기를 영영 앗아갔다고 기록했으니 그에게 실연이란 마치 죽음이나 다름없었나 보다.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떠나보내던 것처럼.

그의 두 번째 사랑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는 다그니 유엘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지만 자유연애주의자였던 그녀는 베를린에서 만난 뭉크의 동료이자 건축가인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를 선택한다. 그야말로 잘못된 만남의 조연이 된 뭉크는 연인이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이 러브 스토리의 비극적 조연에 불과했다. 유엘과 프시비세프스키는 얼마 뒤 결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그녀를 놓지 못했던 뭉크의 영혼과 작품세계는 더욱 침전한다. 심연의 어둠으로. 첫사랑의 비극이 방종이었고 두 번째 사랑이 배신이었다면 세 번째 사랑의 비극은 집착이었다. 새 연인인 튤라 라르손은 그에게 깊이 집착하고 결혼을 강요했으며 대답을 회피하는 뭉크에게 자살하겠다며 협박한다. 한 손에 권총을 쥐고 죽겠노라며 울부짖는 연인을 말리다 실수로 총이 격발되고 말았다. 그녀의 가냘픈 손을 떠난 탄환은 화가인 뭉크의 왼손을 관통했고, 화약 내음, 폭발, 그리고 비명소리에 뒤이어 그의 손가락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후 그는 평생토록 독신으로 살았다. 그가 사랑한 모든 여자들은 일찍 죽거나 그를 배신하거나 상처 입혔으며 그에게 애정과 사랑이란 이윽고 밀어닥칠 처절한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뭉크는 술에 더욱 의존했고 폭음을 거듭했으며 불안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환각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핏빛으로 물든 하늘이 질러낸, 그 찢어질듯한 비명소리에 공황에 빠져 귀를 틀어막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 것인데 아마도 이는 비유나 은유가 아닌 뭉크가 실제로 겪은 환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뭉크가 처음으로 겪은 실연의 고통을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 바로 맨 처음 소개한 이 작품이다. 한 여자가 엎어져있는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다. 남자가 무슨 악몽이라도 꾼 것일까, 여자는 남자를 다독이고 있고 또 그들 위로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들이 흐르고 있다. 힘없이 늘어진 그들의 머리와는 달리 그녀의 오른팔은, 그리고 그의 왼팔은 서로를 간절히 붙들고 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음울한 어둠을 밀쳐낼 힘도 의지도 완전히 잃은 두 연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서로에게 절절하게 매달리는 것뿐인 양. 이 그림의 제목이 무엇일까? 사랑하는 연인들? 절망 속에서의 사랑?



작가는 이 그림에 뱀파이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뺨이 다소 창백해 보이지 않은가. 



*               *               *



나를 처음으로 미술로 이끈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세상에는 서로가 서로를 부수는 사이가 있다. 하지만 대개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과거 스무 살을 갓 넘긴 나 역시 그런 파괴적인 관계의 한 가운데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고 철부지였던 나는 그 수렁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지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 빠져나올 의지조차 없었다. 그녀가 나에게 뱀파이어였던 것처럼 나 역시 그녀의 목에 이를 박아넣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이 그림을 마주쳤고, 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제목과 이미지를 번갈아 보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마치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황무지에서 헤매다 앞서 이곳을 지난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낸 앳된 이방인처럼. 당시 길을 잃은 이가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그리고 그 작은 흔적들을 따라 다시금 걷고 또 넘어지고 또다시 절뚝이며 헤매고, 뭐 그렇게 어찌어찌하다 오늘날 여기까지 왔노라. 그러니 내일도 모레도 또 다른 이들의 자취를 따라 어찌어찌 살아가겠지. 당신들도 나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Kiss(1897) by Edvard Munch

2021. 7. 22.

다른 신흥국은 금리를 올리고 있을까


*

한국의 통화정책을 미국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마침 한 보고서에서 여러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에 대한 요약이 있어 간단하게 표로 정리했다. 우리는 선진국이 아닌 EM들을 하나로 묶지만 각각은 매우 다르다. 이들을 크게 둘로 나누면 저인플레이션 국가들과 고질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미 인상에 나선 신흥국들은 주로 후자에 속하는 그룹으로 대부분 1차 산업의 비중이 높고 수출품의 상당수가 원자재나 농산물이다. 그리고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한국은 여느 아시아 국가들처럼 낮은 인플레이션 그룹에 속한다. 그리고 그 나라들 중 단기간 내에 금리인상을 예고한 국가는 한국뿐이며 동시에 인상을 예고한 나라 중 CPI가 가장 낮은 나라 역시 한국이다. 한국은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매파적인 중앙은행이다.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산업, 젊은이들과 저소득층이 타격을 받은 것은 모든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자산시장의 급격한 상승을 겪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은행만이 인플레이션의 압박 없이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나섰다. 오로지 자산가격을 잡기 위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무모한 도전에 나선 한국은행, 단언컨대 그 짐은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아닌 한국의 한계계층에게 돌아갈 것이다. 대만의 국숫집보다, 폴란드의 취준생보다 그리고 태국의 여행사보다 한국의 경제적 약자들은 더욱더 고통받을 것이다. 오로지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


*위 도표는 향후 1년간 금리상승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정리한 것으로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2021. 7. 16.

파웰이 이주열에게 보내는 경고

미안하게도 또 한국은행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며 막장 너머 더한 막장을 보는 기분이라 다시금 이주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한국은행과 선진 중앙은행들의 대응이 얼마나 극명하게 대조되는지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썼는데 둘의 차이가 지난 24시간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난 적이 몇 없었으니까.
흰색: 미국 cpi      주황색: 한국 cpi

이번 주 발표된 미국의 6월 CPI는 5.4%으로 2008년 이래 가장 가파른 상승세 보였지만 파웰은 간밤의 청문회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잦아들 텐데 때이른 금리 인상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상원의원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강력한 어조로 저지했다. 반면 불과 몇 시간 뒤 한국 시간에 열린 금통위에서 이주열 총재는 6월 CPI는 고작 2,4%에 불과하지만 금리인상은 불가피하며 당장에라도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5% 이상도 문제없다는 파웰과 고작 2%에 화들짝 놀란 이주열, 둘 사이에는 분명 거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거시적 환경을 보면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극명한 차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되려 표면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은 미국이 2배 이상 높으며, 경제성장이나 통화량 증가율, 백신 접종 속도, 소매판매 회복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의 회복세가 한국을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웰이 출구전략을 늦추는 핵심 이유는 바로 고용시장의 더딘 회복에 있다. 코로나 이전 6.8%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아직도 높은 수준인 9,8%에 머물러 있는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하지 않다면 고용시장의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서 연준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행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자신들의 분석에 따르면 CPI가 내년엔 2% 선에서 등락할 것이니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지만 회복하지 못한 내수와 고용시장을 희생시켜서라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한다. 한국은행법 제1조 1항에 명시된 이 조직의 첫 번째 존재의의는 바로 물가안정인데 그들은 물가고 고용이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이젠 금리 인상 그 자체를 조직의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들은 계속해서 금융 불안정을 금리 인상의 빌미로 들지만 진짜 문제는 그 정책목표가 전혀 계량화되지 않았다는데에 있다. 금융 불안정을 어떤 지표로 측정할 것인가. 주식의 P/E?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은 절대적으로 보나 시계열로 보나 미국이 훨씬 높다. 주택시장의 PIR? 수급불균형으로 가격이 상승한 재화가 통화정책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부채 증가율? 지금 급증하는 부채는 정부로 인한 것이고 그걸 뒷받침하는 것은 급증한 가계저축률이다. 부채위험이 걱정된다면 기재부와 국회에 가서 따질 일 아닌가. 다른 중앙은행들이 정책목표를 더욱 구체화하고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과 정반대로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에 직접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추상적인 대상을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고, 고용시장은 아직 위축되어 있고, 서비스 분야와 자영업자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그것은 한국은행이 알 바 아니라던** 이주열. 그가 금리 인상을 서두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산 가격의 통제. 지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언급한 자산이 세가지 있었는데 바로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가상화폐였다. 그러니 이주열과 금통위원들은 강남 부동산과 삼성전자,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르는게 문제라서 금리정책으로 이를 잡겠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링크) 여기에는 개인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금통위원들은 개개인의 경제적 입장을 통화정책에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다. 아니라고? 2017년 첫 금리인상을 불과 두달 앞두고 상도동의 아파트부터 팔아치운 총재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금통위가 전세계에서 가장 매파적인 것이 금통위원들의 예금잔액과 비율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인 것과 완전히 무관할까? 이주열과 금통위는 통화정책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앞선 글에서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자산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은 고용시장의 회복세를 막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계급갈등을 낳는다. 당장 방역의 희생양이 된 20대 청년들을 보자. 미래의 주택가격과 주식 가격은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 공급이 충분히 많다면 그들은 미래에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이 미래에 적절한 직업을 가지고 소득을 낼 가능성은 극히 낮다. 실업상태에 10년 이상 놓인 청년은 결국 중년 알바생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그러면 주택 가격과 상관없이 집을 사지 못한다. 지금 청년들에게 시급한 것은 자산가격이 아니라 바로 구직과 소득이다. 물론 실업의 걱정이 전혀 없는 금통위원들에겐 오르는 비트코인과 아리팍 가격만 보이겠지만.  

아마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내 글을 본다면 발끈할 것이다. 과도한 자산 가격의 상승은 금융 안정을 위협할 수 있으니 초기에 통제해야 하는 것인데다 현재 추이를 보면 한국 경제가 부채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대외변수의 영향을 심하게 받기 때문에 미국처럼 정교한 통화정책을 펴는데 한계가 있고 이번 사태는 코로나로 인한 돌발적 변수 등 현재 한국은행의 행보를 정당화할 백만 가지 이유를 댈 것이다. 사실 그들의 말이 대부분 옳다. 무엇보다 일개 트레이더에 불과한 내가 통화정책에 특화된 이 조직보다 적절한 중립금리 수준과 인플레이션 경로에 대해 어찌 더 잘 알겠는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한국은행은 분명 연준과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으며 파웰은 자신과 반대되는 주장을 펴는 이들에게 명백히 경고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열린 금통위는 어김없이 제한된 인원만 참석한 채 유튜브를 통해 진행되었고 배석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작년 우한페렴이 창궐한 이래 한국은행은 계속 금통위를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어 예전처럼 기자들이 배석해 왁자지껄한 금통위를 보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여전히 마스크를 낀 총재는 아직 금통위를 유튜브로 진행해야 하지만 경제는 정상화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땅땅 치고 있었고, 반대로 마스크를 벗은 파웰은 상원 의원들과 대면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은 줄어들 것이며 고용시장이 아직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은 틀릴 수밖에 없다. 고용을 위해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무릅쓴 파웰, 그리고 금리 인상을 위해 고용을 희생시키겠다는 이주열. 오늘 방역 당국은 여의도에서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국회와 여의도에 위치한 35개 금융사 전직원에게 코로나 검사를 권유했다. 오늘 낮 여의도공원의 임시검사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뙤양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줄 선 금융인들은 파웰과 이주열을 번갈아가며 떠올리다 아마 이 격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Don't fight the fed

마스크를 착실히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열린 금통위

다들 백신 맞았으니 마스크와 거리두기는 필요 없다는 미국의 상원과 연준의장,

과연 둘 중 누가 매파적이어야 할까?


하지만 트레이더로서 나는 한국은행의 실수를 무척이나 반길 것이다. 우리는 금리가 오를 때 수익을 내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또 그들이 실수를 되돌릴 때 돈을 버는 여러 방법이 있다. 또 금리가 오를때 오르는 주식이 있고 내릴때 강세로 가는 주식이 있다. 사실 그들이 실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가 돈을 벌겠는가. 트레이더의 입장에서 실수하지 않는 중앙은행이란 실책 없는 메이저리그의 투수처럼 까다로운 존재다. 게다가 나에겐 한은이 실기해서 성장성을 훼손하더라도 적절한 수준으로 회복할 때까지 견딜 자본과 소득도 있다. 다만 모두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뿐.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보낸다.


사족: 나는 정치인이든 관료든 모든 사람들은 개인적 동기를 정책철학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금통위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3명의 총재와 수도 없이 많은 금통위원들의 구성을 보았는데 그 중 이렇게나 현금보유성향이 강한 조합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통화정책을 운용하게 되면 디플레이션을 지향하게 된다. 다 잘라라***. 


*한국은행법 1조 2항은 금융안정인데 과도한 금융불안정은 향후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금융안정이 심각하게 위협받던 작년 2월 한국은행과 이주열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국가경제를 신용경색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우리나라 국회가 좀 더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면 청문회에서 이 점을 혹독하게 지적했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향후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는데, 쉽게 말해 별 관심이 없다는 말을 격식을 갖춰 말한 관용어구나 다름없다.

***실제로 자를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