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어떠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표면의 존재가 아닌 부재를 살펴보아야 할 때가 있다.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것은 인류애지만 그가 동시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문다면 그것은 정치인 것처럼. 최근 붉어진 한 양궁 선수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20대 남성들은 안산 선수가 sns에서 사용한 몇몇 단어들 때문에 분개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지난 몇 년간 사회가, 그리고 주류 언론이 그들에게 엄격한 자가검열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이중잣대였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한 선수는 자신의 팬들에게 "노무노무 고맙습니다"라는 포스팅을 올렸다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고 한 유명 유튜버 역시 해당 문구를 자신의 영상에 삽입했다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나를 포함하여 저들의 인터넷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윗세대들이 보기에 오조오억이나 웅앵웅이 뭐가 문제냐며 젊은 남성들을 타박하겠지만 그렇다면 노무노무는 왜 문제가 되었나, 그리고 왜 우리는 그때 침묵했던가. 이대남들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말과 입이 억압당하고 검열당할 때 주류언론과 윗세대들이 소극적으로, 때때로 적극적으로 동조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표면의 웅앵웅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부재를 보아야 한다. 그들의 표현의 자유에 무관심했던, 우리 여론과 관심의 부재를.
그리고 지금 이 젊은 남성들은 우리가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 역시 표면의 현상에 집착하느라 수면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다시 정치적 오판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실수는 자신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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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의 성추행을 고발하여 명성을 얻은 박원순 시장이 공권력으로 성추행을 저지르다 들통나서 자살하는 바람에 열린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여당 후보를 57.5%대 39.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며 시장직에 복귀했다. 불과 1년 전에 서울 시민들이 여당에 지배적인 의석수를 안겼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분명 이는 엄청난 변화였고 그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그중 20대 남성들의 해석은 다분히 이색적이었는데, 오세훈 후보가 성평등 관련 질문들에 답변을 거부했는데 이런 반 페미니즘 선언이 유권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독특한 세계관은 젊은 이준석이 제1야당의 당 대표가 되며 더욱 강화되었다. 반 페미니즘을 외치는 젊은 남성이 구체제의 인사들을 제치고 당의 얼굴이 되는 것을 보며, 집을 마련하는 것도 취직도 여의치 않았던 20대 남성들은 최초의 정치적 승리를 맛보았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가장 커다란 패배는 모두 작은 승리로부터 출발했다. 이 두 사건으로 이십 대 젊은 남성들은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졌다. 마치 그들이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당 대표의 페르소나가 된 것처럼.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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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대선 총 투표수 (연령별/성별) |
지난 대선은 20대 남성들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선거였지만 그들의 정치참여도는 여전히 처참하다. 지난 대선에서 20대 남성은 고작 228만 표를 행사했는데 이 숫자는 그들이 주적으로 여기는 40대 남성의 절반에 불과하고 심지어 동년배 여성보다도 50만 표나 더 적다. 산술적으로 보면 20대 남성의 정치적 영향력은 인천광역시의 투표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구월동의 한 주민이 선거 직후 우리 인천이 승리의 주역이라고 외친다면 그들의 현실 인식엔 크나큰 결함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착각은 야당의 당 대표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의 힘에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은 약 28만 명이고 그중 50대 이상이 72.8%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20대는 고작 3.9%, 30대는 7.7%에 불과한데 그런데도 이준석 대표는 43.8%의 득표로 2위 나경원 후보(37.1%)를 큰 표 차로 이겼다. 젊은 남성들은 젊은 당 대표라는 표면을 보고 있지만, 이 승리의 진짜 함의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50대 이상의 보수층이 정권교체를 위해 전략적으로 30대 당대표를 밀어 줬다는 데에 있다. 즉 이준석의 승리는 20대의 지지가 아닌 중년/노년층의 양보 덕이다. 게다가 책임당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핵심 보수층이 탄핵에 찬성한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원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또 전략적으로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젊은 남성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50-70대들의 양보와 협력을 자신들의 승리, 즉 그들의 패배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준석 대표는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내 주요 대선주자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합당 과정에서 안철수와도 파열음을 내고 있다. 당내에서 다수인 80%는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양보를 하는데, 소수인 20%는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각자의 옳고 그름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택은 대단히 위험하다. 정치적 소수가 다수를 무시하며 대립하기 시작하면 다음 양보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럼 소수집단인 2030대 남성들은 당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고립될 것이다.
이런 징조는 최근 안산 선수의 페미니즘 논쟁에서 드러난다. 웅앵웅과 오조오억이 젊은 남성들에게는 중요한 주제지만 그 위 세대들에겐 정말이지 생소한 문제다. 나 역시 당신들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그러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나보다 더 윗세대인 중년 노년층이 그를 어찌 알겠는가. 당신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도 당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중도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언론이 젊은 남성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는 거대한 어둠의 세력 때문이 아니라, 당신네들을 제외한 다른 세대들이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고립된 소수집단이 극단적 주장을 펴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프리퀼에 불과하다.
젊은 남성들이 정치적으로 실수를 저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때 그들은 40대 민주화 세대와 연합하여 보수정권을 몰아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터무니없이 오른 주택 가격과 줄어든 일자리, 그리고 교육을 잘 못 받았다는 조롱과 모욕뿐이었다. 불과 4년 전 20대 학생들은 그 어느 계층보다도 충성스럽게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지만 오늘날 이들의 정치적 입장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특히 20대/남성/학생의 지지율은 4년 전 9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는데 이런 급격한 변화는 한국 정치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처음 정치판에 뛰어든 그들은 아무런 정치적 경험도, 식견도, 배경도, 지식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고 대개 그러한 오만은 패배를 부른다. 2017년 그들의 선택이 그러했듯이.
나는 진심으로 20대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길 바라며 그들의 목소리가 나라정책에 더욱 반영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더욱 영리해져야 하고 좀 더 성숙해야 한다. 국민의힘 당의 책임당원들 상당수는 탄핵에 반대했던 이들이며 아직도 그들은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배신자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박근혜 특검수사를 담당한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지지하고 있고 바른미래당 출신인 이준석을 당 대표로 뽑았다. 반대로 젊은 남성들은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홍준표를 대선후보로 뽑고 나경원을 지지할 수 있을까. 전략적으로 유연한 계층은 과연 누구일까, 파릇파릇한 20대 청년들이 골다공증으로 골골대는 노년층보다도 더 완고하고 고집 센 이 현상을 뭐라고 설명할까?
작년 주식시장에서 20대 남성의 수익률은 평균 3.81%로 전체 계층 중에서 가장 낮았다. 이에 관한 몇몇 논문들은 그 원인으로 남성호르몬을 지적한다. 평균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집단의 주식 수익률이 낮았는데 이 남성호르몬이 과도한 자기 확신을 야기하고 새로운 정보의 습득을 막으며 사고의 유연성을 억제해 수익률을 낮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현재의 20대 남성들의 정치적 태도와도 일치한다. 한때 문재인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던 계층이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으로 돌아서서 특정 사상과 특정 인물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강력한 자기 확신과 독단은 지난 2016-17년과 똑같이 닮아있다. 그 과정에서 연합해야 할 장년/노년층을 틀딱이라며 조롱하고, 그들의 양보를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를 원한다. 그것도 야권에서 1/5도 안되는 지분을 가진 집단이,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줄 나머지 절대다수를 분노케 하면서. 그런 현실인식을 가진 그들에게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부디 그들의 선택이 주식수익률과는 다른 결과를 낳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진심으로 당신네들을 응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