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간 거의 글을 올리지 못했던 것은 앞으로의 시장에 대한 전망이 정리되지 못해서, 구체적으로는 전망은 정리되었지만 투자방법을 정리하지 못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향후 장기간 세계가 저성장을 동반한 인플레이션, 어쩌면 스테그플레이션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현상이 1960년대 중반 저금리가 끝나갈 무렵의 세계경제와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은 금융시장과 당시 시민들의 삶뿐 아니라 경제학에도 커다란 도전이었다. 때맞추어 등장한 케인즈라는 걸출한 학자는 급격한 불황으로 수요가 위축되었을 때 정부지출을 늘려 벗어날 수 있다는 해결책을 제시했고 미국은 그 처방을 충실히 따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대공황과 같은 급격한 수요의 급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비했고 일부 부침이 있긴 했지만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세계대전에서 나치와 일본을 쳐부수고 명실공히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다는 미국의 자부심은 어떤 불황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만을 낳았고 국민들 역시 그런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불황이 닥칠 때마다 계속해서 과도한 재정지출에 의존했고 전체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은 전례없이 낮았으며 이에 연준은 극도로 낮은 금리를 유지하며 연방정부의 채권발행을 간접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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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기금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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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PI |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종종 황금의 시대는 예고없이 종말을 고하곤 한다. 그리고 그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벨 에포크가 그랬듯이. 60년대 하반기에 들어서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신호를 무시하기 어려웠던 연준은 점차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 대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것은 호경기인 경우가 많아 금리가 올라도 시장과 성장률이 하락하지 않는데,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기를 보낸 끝에 낮은 성장을 동반한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들어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의 스테그플레이션을 두차례의 오일쇼크 때문이라고 기억하지만 이미 오일쇼크가 시작되기 전에도 미국에서는 분명 스테그플레이션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었다. 세상에 언제 어디서든 널리 통용되는 황금률은 많지 않은 법인데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지출확대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고,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는 그 믿음을 산산히 부수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 학자들이 내린 진단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지출은 민간에 비해 비효율적이라 정부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생산성을 해치는 단계에 이르른다고. 이는 경제를 위축시키면서 물가의 상승을 가져오는 스테그플레이션을 촉발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현상은 놀랍게도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
과거 70년대의 스테그플레이션은 두가지 트라우마를 남겼다. 첫째,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둘째, 큰 정부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이어진 디플레이션은 첫번째 두려움을 망각하기에 충분했고 코로나에 대한 대중과 정부의 공포는 두번째 두려움을 마비시켰다. 놀랍게도 코로나 아래서 신용위험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는데 최소한 생명의 위협은 없었던 08년의 위기가 얼마나 많은 기업들을 도산시켰는지를 감안하면 우리는 상당히 평온하게 위기를 넘긴 셈이다.(3월의 몇주를 제외한다면)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올해 상반기에 우리가 보았던 정부와 중앙은행의 예외적인 대응책들이 우리의 새로운 기준점이 되었고 다시 불황이 찾아와도 정부와 유권자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경제적 고통을 회피하려 들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정부 부채가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각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 조장할 수 밖에 없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도 대규모 추경으로 인한 재정악화에 대해 찬반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선방한 축에 속한다. 미국은 이미 GDP의 10%가 넘는 재정지출 외에도 다른 여러 지원프로그램들을 가동, 혹은 준비중이며 재정건전성의 첨병으로 여겼던 독일은 금융지원을 포함 GDP의 30%가 넘는 프로그램을 운용중에 있다. 물론 이 수치는 상반기에 발표된 대책만을 집계한 것으로 하반기에 경제둔화가 지속되거나 우한폐렴의 2차확산이 시작된다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장률이 2010년 이전의 속도로 회복하지 않으면 이 수치가 가까운 미래 안에 개선될 가능성은 아예 없기에 정부가 다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플레이션으로 부채를 태우는 길 밖에 없다.
여기에 두가지 부수적인 사건은 이 인플레이션이 성장에 따른 부수물에 그치기보다, 우리가 70년대에 본 것과 같이 매우 불쾌한 인플레이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나는 미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리쇼어링 정책, 또 하나는 코로나로 인한 생산라인의 다변화. 리쇼어링은 순전히 정치적이고 경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대중의 요구로 이루어졌지만 후자는 코로나로 인해 생산라인에 타격을 입은 기업의 전문가들이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들이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인간은 방금 겪은 사건을 과도하게 평가하기 마련이니까. 이 두 요소는 앞으로 우리가 마주한 인플레이션이 공급측면에서도 시작될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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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으로 환산한 S&P500 지수 |
새로운 시대에는 구시대의 투자법이 독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중후장대가 그룹의 미래라고 믿었던 두산이 그러했듯이. 따라서 나는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IT와 같은 테크주식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식의 시대가 될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과거 1970년대의 사례를 보면 골디락스의 시대가 끝나며 금값으로 환산한 주가지수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다시 전고점을 회복하는데 거의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스테그플레이션의 시대에서는 주식이 금이나 은, 유가, 부동산과 같은 현물을 이기지 못한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율은 반복된다고. 분명 미국의 주식시장이 오랜기간 상품시장을 언더퍼폼한 시기는 굵직한 현대사들과 겹친다. 석유파동, 베트남전쟁, 케네디 암살,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 미중수교 등.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미래에 그런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정부부채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시작하는 정치인들과 유권자는 우리가 70년대와 비슷한 운율을 따를 것이라는 미래를 암시한다.
무엇보다 올해 말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이와 같은 추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60년대 말-70년대에 명목금리가 인플레이션의 속도를 쫒아가지 못했던 것 처럼 디플레이션의 시대에 너무나 익숙한 세계의 중앙은행장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제때 대응하지 못할 것이며 대응하려 해도 방대해진 정부부채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이미 우리를 덮치기 시작했으며 오랜 가뭄 끝 단비처럼 세계는 그를 반길 것이나 그것이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로 이어지는 이정표였다는 것을 바로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이 시기에 확실한 투자는 하나다. 바로 최대한 현금을 숏치는 것. 인플레이션의 초입에서는 당신이 무엇을 사는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빚을 냈는 지에 따라 수익이 정해지고 당신의 근로소득이 휴지가 되는 것을 겪을 것이다. 그렇게 인플레이션의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이윽고 하반기가 시작될 것고 시대의 막바지를 향해 달릴수록 각 중앙은행들이 뒤늦게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을 겪을 것이다. 디레버리징의 시대가 오겠지만 그 시기를 완벽하게 맞춰 적응하는 투자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가 레버리지된 채 새로운 후반전을 맞이하겠지. 그제서야 투자자들은 자신이 어떤 자산을 샀는 지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더 나아가 자신의 생사가 엇갈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