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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 그리고 격분한 트럼프 |
귀여운 주디의 외모와 재치넘치는 위트 덕에 놓치고 지나가기 쉽지만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애초에 주디에게 경찰다운 일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그녀가 생물학적으로 토끼이기 때문이었고 닉이 자신의 꿈을 버린것도 영악한 여우였기 때문이다. 하울링을 따라 하는 늑대들도, 느리게 일을 처리하는 나무늘보도, 시기심 많은 양도, 시장인 사자도 모든 등장인물들의 본성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생물학이고 그들의 DNA이다. 애니메이션은 주디의 입을 빌려 그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링크) 포식자들에게는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포악한 사냥의 본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독특하게도 주토피아에서는 핍박받고 탄압당하는 쪽이 강한 포식자다. 음모를 꾸민 벨웨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초식동물들)는 늘 무시당하지, 그래, 육식동물들은 힘이 세. 하지만 포식자와 피식자의 비율은 1:10이야, 사회 구성원의 90%가 공공의 적에 대항해 뭉친다고 생각해봐.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링크) 자연상태에서는 피식자가 아무리 많아도 포식자를 누를 수 없다. 라이온킹에서 미어캣 열마리가 사자 심바를 학대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민주주의 아래서는 다르다. 다수결에 의해 통제되는 주토피아에서 약하고 남성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양이 유전적으로 더 강인한 야수들을 핍박하고 통제하는 것, 그것이 이 서사의 핵심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교묘하게도 우리로 하여금 맹수가 보잘것 없는 피식자들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이 애니메이션이 미국에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끈 데에는 귀여운 주디의 외모 뿐 아니라 약자가 강자를 억압하는 아이러니한 서사가 미국의 주류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의 미국인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에겐 안되는 것도 많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같은 소득수준에서도 인종에 따라 교육열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함부로 지적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어린 침팬치 수컷과 암컷들조차 성에 따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다르지만 미국의 PC들은 그와 같은 생각은 관습적 성역할을 고착화시키는 잘못된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fireman, policeman과 같은 단어는 fire fighter, police officer로 대체되었고, 남미에서 건너오는 불법이민자를 막자는 지극히 합법적인 주장을 펼치려면 무식한 텍사스 레드넥이라는 비난을 견뎌야만 했으며, 중국에서 건너온 코로나를 중국코로나라고 부르는 것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어휴 피곤해.
미국의 주류 백인들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민자들의 숫자로 인해 계속해서 자신들의 권리가 줄어드는 데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말과 행동을 과도하게 구속하는 PC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극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봤을때 무엇을 느꼈을까? 주토피아는 현대 인간사회와 너무나도 유사하고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는 다양한 동물들이 혼재된 도시는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과 닮았다. 영화 초반부터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 추격 신을 떠올려보라. 파키스탄인이 우버를 몰고, 유태인 사업가가 승객으로 탑승하며 그 옆을 한 아시안 비즈니스맨이 바쁘게 뛰어가고 또 베네수엘라에서 온 대학생이 파트타임으로 커피를 내리는 뉴욕의 일상과 닮아있지 않은가. 이성을 갖춘 동물들의 사회, 종에 따라 각자 다른 본성을 지닌 동물들, 그리고 그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이 되는 곳. 미국 어린이들에게 주토피아는 판타지 만화였지만, 어른들에게는 현실을 모방한 우화였다. 이에 열광한 미국인들이 불과 몇개월 뒤의 대선에서 입으로는 힐러리를 찍겠다고 응답하면서도 실제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실(링크)과 무관하지 않다.
감독 바이런 하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이 애니메이션이 기존의 동물 의인화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영화의 대표 OST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난다. 도입부에서 주디는 "In Zootopia, anyone can be anything!"이라고 외치지만 결국 영화는 "Try everything"으로 마무리된다. 당신의 배경과 상관없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같은 외침으로 출발한 영화가 그저 시도나 해보라는 무책임한 말로 마무리된다는, 그런 비관적인 전개를 발랄하게 포장한 것 뿐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생물학적 본성을 극복한 것은 끽해야 주인공인 주디와 닉 뿐이고, 주목받지 못하는 기타 모든 조연들은 그들의 DNA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가. 심지어 주디의 부모조차도. 참고로 주토피아의 줄거리는 원래 더 어두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꾸라는 경영진들의 주문때문에 현재처럼 밝고 쾌활한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내 짐작이 근거없는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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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더 어두웠던 주토피아의 스토리 라인 |
사족1: 애초에 이 글을 구상한 것은 4년 전이지만 제목만 써두고 내 게으름 덕에 완성하지 못할뻔 한 수십개의 빈 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미래를 예언한 세번째 영화가 나온 덕에 귀찮음을 이겨내고 두번째 편을 완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번째 글은 미래가 실현되기 전에 미리 올리련다.
사족2: 주디 너무 귀여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