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방문자수가 늘어난 뒤로 내가 가장 많이 접했던 댓글들은 오르는 집값을 두고 좌절한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담고있었다. 나는 여전히 지난 30년 중 가장 길고 커다란 부동산 상승 사이클을 볼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당신이 무주택자라도 아직 40이 넘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좌절하고 분노할 필요는 없다. 모든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고 부동산 또한 예외는 아니니까. 현재 우리는 상승기에 있지만, 언제고 내릴 때도 있을 것이며 당신이 충분히 젊다면, 그때에도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테니 너끈히 집을 마련할 것이다.
예전의 글에서 어떻게 이런 사이클이 완성되는지를 밝혔다.(
링크) 요약하면 과거에도 잘못된 주거정책으로 인해 집값이 크게 폭등하자, 정부는 돌아서서 과도한 공급으로 집을 오히려 지나치게 공급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집값이 오랜기간 낮게 유지되어 중산층들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하지만 몇몇은 이렇게 반문했다. "과거에는 고도성장기에 금리가 높아 재테크도 더 쉬웠고 집값도 싸서 사기 쉽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잘못된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아니, 집 사기는 과거가 훨씬 더 어려웠다. 옛 데이터를 뒤적거리는 것은 늙은이들의 넋두리를 듣는 것 만큼이나 고역이겠지만, 그래도 꾹 참고 한번 1980년대의 "라떼는 말이야"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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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비자물가 연 상승률 |
7080년대의 은행이 예금자에게 10%가 넘는 이자를 주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목돈을 예금으로 모아 집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했다. 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보다시피 7080년대에는 물가가 20-30%씩 오르는 일이 흔했다. 일반적으로 주택가격이 소비자물가보다 더 빠르게 오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저 시절의 집값은 해마다 더 크게 올랐을 것이다. 은행에 100만원을 넣으면 1년 뒤 110만원이 되지만 1000만원짜리 집은 1200만, 1500만원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일은 가능했을까. 그것이 거의 유일한 길이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은행예금금리가 10%인데 대출금리가 그보다 더 낮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친척 중 한분이 처음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때의 대출금리는 무려 15%였다고 한다. 아무리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도, 두자리 수라는 살인적 고금리에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는 것이 어찌 쉬웠겠나.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대출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느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혜같은 것이었고, 때때론 은행 지점장에게 고맙다며 소정의 보답을 해야 하던 시대였다. 장담컨대 집을 사는 것은 7080년대가 훨씬 힘들었다.
과거에는 집이 매우 싸서 소득만으로 살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철부지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데이터는 그 반대를 보여준다. 위에서 보다시피, 소득대비 주택가격은 80년대가 말도 안되게 더 비쌌기 때문에 소득으로 집을 사는 것은 몇배나 더 힘들었다*.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는 뉴스 아카이브에서 당시 신문들을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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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2월 27일 경향신문 기사 |
이처럼 고작 17평짜리 아파트, 현재는 찾아보기도 힘든 그런 초소형 거주지를 마련하는데 1980년의 도시근로자들은 11년 이상의 저축을 쏟아부어야 했다. 아마 당시의 물가상승률이 예금금리보다 훨씬 높았을테니 실제 도시 노동자가 집을 장만하는데엔 훨씬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게다가 위의 사례가 한국의 13개 주요도시의 평균을 구한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울의 사정은 더욱 처참했을 것이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불과 40%를 갓 넘기던 시절이었으니까. 현재의 주택난이 아무리 지옥같아도 7080년대 보다는 더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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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30일 매일경제 기사 |
거기에 대응하는 우리 윗 세대의 반응도 똑같았다. 집값이 계속해서 폭등하자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결혼을 연기하고 부업에 나서며 돈을 모으기도, 아예 포기하기도 했다. 현재 젊은 세대들의 반응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그랬던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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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택가격 / 물가인덱스 = 서울 주택 실질가격 |
아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보통사람을 자처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수도권 주택 200만호 건설을 약속했고 그에 따라 서울의 실질주택가격은 1991년에 정점을 찍은 뒤 약 10년간 하락했다. 결혼을 미뤘던 사람들은 다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부업을 뛰며 종잣돈을 모으던 사람들은 큰 집을, 그리고 현재를 즐기며 소비를 하던 사람들은 뒤늦게 돈을 모아 작은 집을 마련하고, 뭐 그렇게 살아갔으리라. 1980년에 20-30대였던 세대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10년 만에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41%에서 80%까지 뛰어오르자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이 더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 소수의 무주택 투기꾼을 제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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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재산세를 늘려야 집값이 잡힌다고 주장하던 멍청이가 있었다. |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정부가 공급으로 방향을 선회한 후 일어난 일이다. 현재의 정부는 너무나 멍청하고 너무나 고집이 세서 공급을 꽉꽉 틀어막고 있지만, 민주주의 아래서 이런 멍청한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어디까지나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면) 1987년 민주화항쟁을 겪은 군사정권이 대중의 필요에 따라 정책의 방향을 주택공급으로 돌렸듯, 현재의 정부도 결국 굴복할 것이다. 언젠가 공급을 약속한 정부가 들어설 것이며, 그때 좌절한 청춘들은 1980년대의 신혼부부 崔모씨(31살)가 그랬듯 자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미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울 아파트의 실질가격이 떨어지던 저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일 것이다. 내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옛날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꼰대처럼 그때가 더 힘들었어! 라고 일갈하며 당신들의 좌절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입견과는 정반대로 그대의 아버지들 역시 1970-80년대 주택 폭등기를 힘들게 견뎌낸 끝에 가까스로 내 집 하나 마련한 분들임을, 그리고 그들의 인고와 노력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자 고통스러운 시절도 지나가고 지금의 그대들이 기억하듯, 어찌보면 너무나 쉽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듯이, 당신들이 겪을 오늘과 내일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고 사이클 역시 돌아올 것이다. 나는 희망을 파는 사람이 아니지만 뭐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밀레니얼 세대여,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몇몇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7080년대에 집을 사는 것이 더욱 쉬웠다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대치동이나 잠실같은 지역을 예로 드는데 그 당시의 이 지역들은 사실상 신도시나 다름없던 지역이거나, 심지어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이 아닌 곳들도 있었다. 지하철 3호선도 개통되기 전이라 그 지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데에 1-2시간이 걸렸는데, 지금도 출퇴근에 그정도 걸리는 교외의 아파트 가격은 월급으로도 살 수 있을 만큼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