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비금융권 친구들은 여의도의 주식쟁이들이라면 영화에서 보듯 뭐 기가막힌 정보를 미리 입수해서 돈을 버는 줄 알고 있던데, 미안하지만 우리 금융권 사람들 만큼 주식을 못하는 집단도 드물다. 도대체 우리가 주식을 잘 못한다면 누가 주식을 잘하겠는가. 행여나 한 둘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주식과 달리 부동산시장에는 누구나 부자가 되지 않는가. 당신이 주식투자로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는 데에는 분명한 네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 자본시장의 왜곡.
예전 글에서 여러번(링크 링크 링크) 지적했다시피,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왜곡되어있기 때문에 비즈니스의 성장성이 주가로 곧장 연동되지 않는다. 애초에 당신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대거 사들여도 고작 3-5%밖에 보유하지 않은 이건희-이재용이 회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는데 왜 당신의 주가가 삼성전자의 지분가치를 온전히 반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에서 가업승계가 예정된 그룹들은 예외없이 승계 전 주가가 폭락했다 승계 이후 반등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 기업을 지배하는 변태적 구조가 지속되는 한 오너는 기업을 망칠 동기가 있으니까. 한 교수는 이를 자본주의가 아닌 재벌사회주의라고 불렀고(링크) 나는 이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우리나라가 만약 미국의 시스템을 도입했다면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 재벌 오너들은 감방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기업가치를 분석해 보기 위해서는 회계장부를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대형 유명기업들의 회계장부도 엉망인데 중소기업들은 오죽할까. 1980년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출범한 이후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다만 여기에 더 구체적으로 적지 못할 뿐.
둘. 전문성의 결여.
개미 투자자들은 늘 공매도 세력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개미들이 돈을 못버는 이유는 병신같은 주식을 병신같은 타이밍에 샀기 때문이지 공매도 때문이 아니다. 증권쟁이는 하루 내내 밥 먹고 주식을 분석하는 것이 생업이다. 여의도와 광화문에 저능아 등신들만 모아둔 것이 아닌 이상, 회사 갔다 데이트 하고 밥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영화보고 술도 먹다 남는 시간에 (엉터리 숫자도 간간히 껴 있는)기업재무보고서와 그럴싸 한 인터넷 까페 글 몇개 읽는다고 기관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더 어리석은 일이다. 반면 부동산과 비교해 보자. 여러 이유로 기관은 주거용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기 어렵고 세제 혜택을 받기도 힘들다. 무엇보다도 새들이 적절한 장소를 찾아 둥지를 틀고 곰이 굴을 파듯, 우리의 본능은 적절한 주거지를 골라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그리고 이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히 앞선다.) 좋은 부동산을 골라내는 데엔 숫자로 점철된 보고서보다 우리의 본능이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외 유명 투자자들이나 기관들이 특정 지역 부동산에 집중할 때, 복부인들은 코웃음을 치며 강남으로 몰려가곤 한다. 아마 이 부분이 부동산과 주식이 가장 다른 부분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개미들은 자신의 전문성이 없는 분야에서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HTS를 켜고 매수를 누른다.
셋. 레버리지.
부동산은 자동으로 레버리지가 되는 상품이다. 갭투자를 하든, 아니면 은행 대출을 끌어 쓰든. 설령 100% 현금으로 매수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미래의 소비를 줄여 자금을 끌어다 부동산을 사기에 그들의 현금흐름을 보면 사실상 어느정도 레버리지를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 주식투자자들은 레버리지를 극도로 경계한다. 게다가 소비를 줄이지도 않는다. 주식으로 돈을 벌면 벌었다고 쓰고, 터지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쓴다. 왜냐면 애초에 그 돈은 날려도 죽지 않을 돈이었으니까.(날리면 죽을 돈을 주식에 박은 투자자는 이미 다 죽었겠지.) 따라서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제약을 뚫고 주식투자에 성공해도 그들의 인생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집값이 두배 뛰면 사람들의 삶은 크게 변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두 자산의 실적이 인생에 미치는 민감도가 매우 다르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이 레버리지를 전혀 하지 않은 주식에 돈을 넣으면서, 투자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한 기업이 자동차를 만들면서 노력의 거의 대부분을 백미러 디자인과 에어백 색상에 할애한다면 결과가 좋을 수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투자하면서 자본을 적게 배정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주식투자로 부자가 되지 못하는 한계이다. 추가: 게다가 그들은 적은 자본을 투입하면서도 터무니없이 큰 수익을 꿈꾸기 때문에 삼성전자같은 우량주가 아닌 이상한 잡주나 비트코인 같은 부실한 버블자산을 매입한다. 모두가 얌체같이 적은 돈으로 일확천금을 꿈꾸기 때문에 그런 대박이 가능한 자산들의 밸류에이션은 터무니 없이 높다. 로또의 기대값을 떠올려보라.(링크) 그래서 그들은 늘 버블의 끝자락에 뛰어드는 실수를 반복하기 쉽다.
넷. 장기보유.
삼성전자를 한번도 사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장기보유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부동산이 폭등하기 시작한 2015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이 강남 부동산을 사든, 삼성전자를 사든 실적의 차이는 거의 없었겠지만 내 주변에서 그때 삼성전자를 사서 지금까지 들고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사람은 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에 특히 돈을 벌고 있을 때에는 시장의 작은 물결까지 다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오를때 팔았다, 살짝 빠지면 더 사서 쫒아가야지 라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심지어 아이작 뉴턴도 못한 일을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부동산은 이를 원천적으로 막아준다. 세금과 부족한 유동성, 그리고 높은 거래비용은 사람들을 강제로 장기투자자로 만들어준다. 반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가 장기투자가로 변모할 때는 대부분 물렸을 때 뿐이다. 만약 강남아파트 ETF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ETF에 투자하는 개미들은 필연적으로 단타에 나설 것이기에 그들의 실적은 아파트 보유자들보다 현저하게 낮을 것이다. 거래빈도와 장기실적은 반비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는, 특히 sns에는 부동산으로 번 돈을 폄하하는 젊은 자본가들이 많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건 누구나 한다, 그렇게 큰 돈을 깔고 앉아있는 것은 사실상 손해다, 그 시절에 레버리지로 삼성전자 주식만 샀어도 강남 부동산 만큼 벌었다, 등등. 하지만 그들은 결과적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지 않았고, 삼성전자를 사지도 않았다. 그래서 부동산에 돈을 깔아둔 것 보다 못한 수익을 냈고 따라서 누구나 쉽게 버는 돈을 벌지도 못했다. 십수년 간 회사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수도 없이 많은 투자에 나서며 깨달은 것은 투자란 마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 물살을 거슬러 가는 것 보다 해류를 따라 가는 것이 훨씬 쉽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 역시 주식보다 부동산으로 훨씬 큰 돈을 벌었고 이는 물결이 어느 방향으로 치고 있는지를 암시한다. 펠프스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류를 거슬러 가 볼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쩌면 평범한 투자자일 뿐이니 그저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해류를 따라갈 것이다. 하지만 언제고 물살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기에 우리는 그에 대해 오감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 글은 그에 대한 작은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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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반포래미안퍼스티지 34평의 지난 5년간 실적 비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