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8.

집값에 대한 전망 그리고 소망

전망
오늘 한국은행은 25비피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제 시장은 연내 추가로 한차례의 인하를 반영하고 한국은행이 경기전망을 크게 내린 것을 감안하면 시장의 기대가 현실화 될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이는 서울 신축 주택가격을 더욱 끌어올릴 것이다. 가장 최근인 6월 21일 발표된 주택금융공사의 10년 보금자리론 금리는 2.40%인데 오늘 금리결정 이후 10년 금리가 약 5비피 하락했고 미 연준 등 중앙은행들이 추가 완화를 단행한다면 이 금리는 더욱 내려갈 것이다. 즉 주택 구매자의 대출금리가 서울 주요지역의 신축아파트 월세율(매매가의 약 2.3-2.5%)을 다시한번 하회한다는 것이고  세입자들은 또다시 신중한 마음으로 주택구매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일부는 월세입자의 수가 얼마나 되겠으며 또 LTV 40% 대출규제로 신규수요가 유입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분석은 애초에 틀렸다. 서울 내 평균 전세가율은 약 66%로 대부분의 세입자는 대출을 풀로 받으면(40%) 자신이 사는 주택을 살 수 있다. 주택구매는 여전히 능력이 아닌 의지의 문제다. 게다가 효율적 자본배분의 차원에서 봐도 이전에 주식이나 펀드 채권과 같은 타 재테크 상품에 묶여있던 돈을 빼서 집을 사는 것도 타당하다. 특히나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올해 수익률만 두고 보면 한국의 거의 모든 자산이 집과 채권을 제외하고는 마이너스인데, 이제 채권/예금의 수익률은 1%초반에 불과하다. 그들이 집 말고 도대체 무엇을 사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주택구매는 능력이 아닌 의지의 문제다.
 
많은 이들이 1.국가 경제 전망이 좋지 않고, 2. 전세가가 오르지 않는 점을 근거로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들의 전망은 일견 합리적이고 타당하나 모두 틀렸고, 앞으로 틀렸음이 증명될 것이다. 먼저 한국의 향후 경제전망은 똥망이지만 경제상황은 수요에만 영향을 준다. 하지만 수요보다 공급측 상황이 더욱 나쁘다. 왠만큼 심한 경기 불황이 오지 않고서야 12월 24일 밤에 강남의 가장 핫한 클럽의 테이블 가격이 내리지 않는 것 처럼, 특정 재화의 가격은 전반적 경기상황 뿐 아니라 그 공급에도 달려있다. 그리고 앞으로 서울시 내에서는 신축아파트의 공급을 찾기란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정에 홍대 거리에서 빈방 찾기보다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전세가격은 안정적인가? 이는 공급절벽의 시점이 2년 뒤이기 때문이다. 매매가격이 미래 모든 시점의 기대치를 반영하는데 비해 전세가격은 향후 2년간의 기대치만을 반영한다. 딱 2년만. 정부가 만약 2년 뒤부터 아파트를 점차 부숴버리겠다고 협박을 해도 2년간 전세가격은 변하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우산을 들고 나갈지 말지 고민할 때, 내일의 날씨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 처럼(내일 아침에 고민해도 되니까) 오늘 시점에 2년 이후의 수요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 고민은 2년 뒤 전세를 재계약할때 고민하면 된다. 채권이나 이자율상품을 거래해 본 사람은 아마 다 이해할 것이다. 시장의 2년 금리가 10년뒤 30년뒤 금리를 반영하지 않는 것 처럼, 현재 전세가는 향후 10년 30년간의 공급에 별 관심이 없다. 현재 전세가가 안정적인 이유는 향후 2년간 공급이 안정적이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 공급은 미래에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물량을 모두 끌어온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자 주요 지역의 많은 재건축 단지들이 앞다투어 허가신청을 냈다. 아직까지 허가를 받지 못한 단지들은 앞서 언급한 규제들로 인해 재건축을 진행할 수 없다. 따라서 2021년이 끝나고 나면 그 뒤로는 공급 스케줄이 텅텅 비게 된다. 오늘의 전세가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미래의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장마철을 앞두고 오늘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우산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같다.
 
애초에 내가 예측했던 주택가격 상승 목표는 이미 2018년 초에 달성했지만, 이전 글에서 밝혔다시피 현 정부의 멍청한 정책은 공급을 끊어 기대 상승수준을 높였다(링크). 그리고 이 멍청함은 이번 정권의 마지막까지 이어질 것이다. 상승 타겟을 섣불리 정하지 마라.
 
소망
고등학교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시장의 효율성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대중들은 부동산 시장을 논할 때에는 경제학 책을 슬그머니 덮고 확성기를 꺼낸다. 무주택자들은 서울, 특히 강남의 집값을 잡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것이 본인에게 이롭기 때문에(혹은 시기심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지 그게 정말 국가의 정의에 부합하는지 따져보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주택자들이 사실상 집값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백날 설명해줘도 그들은 듣지 않고 다주택자들에게 대한 징벌적 세금을 때리라며 울부짖는다. 그건 정의가 아니라 멍청하면서도 이기적인 분풀이 일 뿐이다.
 
그래. 그럼 나도 이기적인 소원 하나를 빌어 보리라.
 
나는 분양가상한제가 선분양 뿐 아니라 후분양에도 적용되길 바란다. 박원순 시장이 계속해서 재건축 단지마다 아파트 1개 동을 남겨놓는 기괴한 정책을 펼치길 바라며 한강변의 층고제한이 더욱 강화되길 바란다. 분양가상한제가 실시되면 현재 진행되는 모든 재건축은 좌초하고 서울의 주택공급은 사실상 끊어진다. 재건축 단지마다 1개 동을 문화유산으로 남기면 신규 공급물량은 더욱 줄어든다. 한강변의 층고제한 역시 공급을 줄여 내가 보유한 한강뷰 신축 아파트들의 시장가치를 높일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정책이 결국 무주택자들에게 불리하고(링크) 국민 전체의 후생을 떨어뜨리는 나쁜 정책이라고 비난했지만(링크) 무주택자들부터 신나서 이 정책을 지지하는데 내가 왜 이타적이어야 하는가? 그래 내가 바보같았다. 반성한다. 나도 당신들처럼 이제 분양가상한제와 재초환 그리고 강력한 재산세를 지지한다. 당신들이 그토록 내 집값을 올리고 싶어하는데 내가 마다한다는게 웬말인가. 이제 신축 아파트는 일요일 점심시간의 붐비는 백화점의 푸드코트에서 빈 테이블 찾기마냥 잡기 어려워 질 것이고 적어도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서울 내 신규아파트의 공급은 연평균 10,000세대가 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이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어한다면, 나 역시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 하자.

2019. 7. 7.

sns 신진사대부들의 병신외교

과거 명청 교체기와 구한말에 조선의 외교가 절름발이로 전락한 이유는 바로 힘도 없으면서 명분만 따졌기 때문이다. 명을 도와 청을 물리치거나 대한제국을 유지할 힘이 있는지 자문해야 할 외교담당자들과 위정자 그리고 국내 여론은 열강들 사이에서 한줌 값어치도 안되는 명분에 집착하다 한심한 자충수만을 거듭했고 그 결과 민족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현실을 외면하고 사대부들이 둘러앉아 명분만 논하는 병신 짓을 병신외교라는 고유명사로 부르기로 하자.
 
이 병신외교의 말로는 다 똑같았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랑캐 무리들의 기세가 날카롭지만 그들을 덕으로 가르치고 교화한다면 결국 알아서 부끄러움을 깨닫고 물러날 것이라고 주장하며 뜬구름 잡는 신선놀음을 하다 저세상으로 떠나 진짜 신선을 만났다. 19세기에는 태국이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인도차이나 반도의 완충지대로 남아 독립을 유지한 데 비해 고종이 다스리던 조선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뜬금없이 제국선언을 했다가 강제로 합병당했다.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것이 청, 러시아, 일본이었고, 이 힘의 균형이 조선이 독립국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유일한 이유였는데 그 마당에 갑자기 황제선언이라니 희극 아닌가. 이 "대제국"은 수립 8년만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13년만에 도로 왕으로 강등당한다. 남의 역사라면 크게 웃겠건만 우리의 이야기라 못 웃을 뿐이다.
 
그 후손인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기계처럼 되뇌이면서도 그 말의 뜻을 곱씹어보지 않는 듯 하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외교노선은 병신외교에 가까우니까, 아니 그 자체니까. 한국인인 나는 일본이 매년 매번 천황 명의로 사죄하면서 총리가 새로 취임할 때마다 3.1절에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 무릎꿇고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기를 바란다. 아니 아예 전 일본 국민들에게 3.1운동 서사시 백일장을 열어 매년 1등 작품들을 암송시키고 전범기업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 노동자들 후손들에게까지 나눠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는가?
 
정상적인 국가의 정상적인 외교라면 하나, 우리가 뭘 원하는지를 자각하고 둘, 상대의 입장을 파악한 뒤 셋, 그 차이를 조율할 전략을 세운다. 하지만 병신 외교는 1번에서 멈춘다. 내가 뭘 원하는지 이게 왜 정당한 지 우리끼리 모여서 허구한 날 지지고 볶는게 외교의 전부라고 믿는다. 왜 우리가 명에 보은해야하는지, 그리고 왜 대한제국이 독립국으로 남아야하는지 한반도 유생들끼리 모여 백날 명분을 따지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청에게는 늙은 말 한필보다 값어치가 없고 일본제국에겐 대포 한방보다 못한 헛짓거리에 불과한데.
 
이는 미숙아의 방식이다. 신생아는 원하는게 생기면 그것이 충족될 때 까지 운다. 울고 울고 또 운다. 엄마가 혹은 아빠가 줄 때 까지 운다. 하지만 세상은 엄마나 아빠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니기에 성장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상대가 뭘 원하는지 파악한 뒤 전략을 세운다. 아무리 미숙한 어린아이도 완구점에 가서 "오등은 자에 이 변신로봇을 원하노라, 이 로봇을 만든 것은 나같은 어린아이에게 제공하기 위함이었으니 이 메가트론은 나에게 주어짐이 마땅하다"라며 명분을 논하지 않는다. 아군인 엄마 앞에서 울면서 무력을 투사하거나 명절에 받은 세벳돈을 주고 사거나 아니면 훔치기라도 한다. 하지만 과거 한국의 병신외교는 6세 아이만도 못한 행태를 반복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병신외교로는 변신로봇조차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아니라고?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이 왜 사과를 해야하는지 명분을 논하지 어떻게 사죄를 받을지 방법론을 논하지 않는다. 아베가 잘못했고 일본이 치사하고 이런 도덕적 평가만 가득하고 희망과 전망을 범벅한 비정상적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이게 병신외교를 펼치던 조선 사대부들과 무엇이 다른가. 거기에 가방끈 긴 병신외교 옹호론자들이 국제법이네 보편적 인권이네 하며 명분을 강화시키고 있다. 중화사상의 핵심 교리가 성리학이었던 것 처럼 국제사회의 새 윤리는 인권이다. 하지만 그런 도덕은 힘을 가진 자들에게만 허락된 일종의 사치재이지 만국의 움직임을 제어할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힘도 없는 주제에 성리학을 들먹이며 청나라의 팔기군이 멈추기를 바랐던 것 처럼 sns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한국의 21세기 신진사대부새끼들도 인권을 들먹이면 일본이 겁이 나 깨갱하며 사과할 줄 안다. 인조반정의 개국공신들이 대청 강경발언들을 늘어놓고 청의 경고를 무시하다 적의 반격이 국경을 넘자 헐레벌떡 대책회의를 열었던 것 처럼, 강제징용 판결 이후 8개월 간 우리는 일본 외교가의 소통채널을 무시하면서 심지어 외교부 장관 까지 나서서 "일본이 보복할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다 수출제한조치가 나오자 그제서야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이래도 우리가 펼치는 것이 병신 외교가 아니라고?
 
현실을 돌아보자. 2차 세계대전의 도죠 히데키 내각은 황군을 천황의 아들들이라며 치켜세웠지만 보급을 무시해 총 250만 명의 전사자 중 100만 명 이상이 굶어서 죽었을 정도로 자국민 목숨을 소모품처럼 대한 인간백정 정권이었다. 그 역사를 긍정하는 일본인은 소수 극우들 뿐이고 그들도 내부에서는 한국의 박사모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평화헌법으로 태어난 현재 일본 정부는 헌법 이전 정부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이번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그나마 조선인들이라 한국 법정으로 온 것이지 일본 국적의 타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모두 일본 내에서 같은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일본인들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국가가 저지른 일들로 인해 70년째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해, 그리고 아무리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해도 끝나지 않는 거듭되는 과거사 논쟁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의 멱살을 잡고 인간백정 정권을 지지한 이들의 후손이 어찌 그러냐고 일갈하고 싶지만 지금 우리는 그게 안되는 현실세계의 정치를 논하는 것이다.)
 
게다가 함께 일본을 압박해주길 바라는 서구의 동맹국들은 다들 일본이 저지른 전과를 하나 이상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한국의 입장에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일본계 자국 시민권자들을 몇년 간이나 격리시키고 구금한 적이 있으며 흑인 노예, 인디언 원주민들에 대한 과거사 및 경제적 보상 논쟁을 마주하고 있다. 영국은 식민지 통치기에 끔찍한 범죄들을 저지른 전력이 있으며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뱅골에서 의도적으로 기아를 촉발해 수백만 명을 굶겨죽였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당연히 프랑스나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처럼 적극적으로 해외식민지를 운영한 나라들이나 독일 소련처럼 20세기 들어 적극적 팽창정책을 펼친 나라들, 심지어 폴란드 그리스 터키 처럼 우리가 희생자리고 생각했던 나라들 조차 누군가에겐 전쟁범죄의 가해자로 등재되어있다. 그들이 이런 범죄를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새로 써 낸 인권이라는 멋지고 폼나는 낱말 하나 만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백지수표나 국제사법재판소의 전권 위임장을 던저주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만약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열강들이 식민지를 평화롭게 나눠먹는 자리였던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해서 쫒겨난 고종 수준의 인식을 가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역사로 타인을 재단하니 서구의기준에서 이 문제를 보자. 나치 합병의 첫 희생자들은 체코나 폴란드가 아니라 바로 오스트리아다. 물론 당시 오스트리아와 도이칠란드의 합병 찬성 여론은 90%가 넘었고 나치 당원 비율도 오스트리아 높았다. 하지만 전후 오스트리아는 빠르게 피해자로 둔갑하고 중립국 선언을 했다. 그들의 눈엔 조선은 어떤가? 조선은 2차 세계대전은 물론 1차 세계대전도 훨씬 전인 1910년에 일본과 합병한 나라지 식민지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자원병을 모집하자 지원자가 수백대 일에 달했고(출세길이 몇 없었으니까) 일부 조선인 출신 고급장교들은 연합군 포로를 학대한 죄로 전범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자 조선인들은 갑자기 스스로를 식민지로 낮추고 모든 전쟁범죄에서 피동적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분명 조선인의 전쟁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한 사회 지도층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해방 대한민국(및 북한)의 건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우리는 그들을 "친일파"로 구분짓고 나머지 한국인들과 분리했지만 그건 우리의 논리고 제 3자의 시각에서는 그냥 다 한국인들이다. 그들이 만약 극동군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조선인들 명단을 보여주며 "이들은 분명 조선인이고 이들의 전쟁참여를 독려한 한국인들도 건국에 참여했다. 그럼 대한민국 정부도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은 것 아닌가" 라고 물으면 우리는 아마 "에이 그건 일부 친일파들의 비행이에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이 바로 현 일본 정부의 변명이다. "이는 일부 군국주의자들의 소행이었다"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다르길 바란다면 오늘의 전략이 달라야 한다. 위와 같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정상적인 국가의 정상적인 외교를 해보자. 우리에겐 일본을 굴복시킬 힘이 없으며 서구열강들이 무상으로 우리를 도와 일본의 팔을 비틀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 전략은 수정되어야한다. 먼저 우리의 목적을 재정립해야 한다. 배상인가? 사과인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은 외환보유고의 약 1/4가 넘는 금액의 용역과 물품을 제공했고 일본은 지난 70년간 최소 8번 이상의 사과를 했다. 따라서 사과와 배상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일본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들은 정상국가로 나아가고 또 경제력 만큼의 정치력을 인정받길 원한다. 특히 UN을 개편해서 상임이사국 중 하나가 되기를 꿈꾸고 있지만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동맹국 한국이다. 그들은 우리 만큼이나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원할 때마다 배상을 하고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ATM이나 ARS가 될 생각은 없다. 지난 2015년 위안부 협상에서 일본 측의 요구로 "비가역적이고 항구적인 합의"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목표와 우리의 목표가 겹치는 부분을 찾아 협상에 나서는 것이 바로 정상국가의 외교이므로 우리는 한국의 전략적 목표 우선순위를 정립하고 일본의 우선순위를 파악한 후 협상에 나서야 한다. 물론 손익계산서를 작성해서 이득이 된다면 무력도 투사할 수 있도록 현실적 준비도 갖추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마지막 외교적 승리는 거의 천년도 전인 1차 여요전쟁이었다.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자 겁에 질린 고려 지도부는 땅을 주더라도 휴전을 하자고 제의하지만 이에 반대한 서희는 혼자 적진으로 걸어들어가 담판을 짓고 강동 6주까지 얻어서 돌아온다. 병신외교술을 추종하는 sns사대부들은 서희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하여 명분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거란의 진짜 침공 목적은 주적인 송과 고려의 연대를 끊는 것이지 땅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그 관계 재정립을 대가로 영토를 받아낸 것이다.
 
명분을 논하는 일은 편안하고 달달하다. 현실이 열악할 수록 더욱 그러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강남의 아파트를 살수 있는지 논하는 일 보다 내가 강남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논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쉬운 것과 같다. 하지만 이제 병신외교 매뉴얼은 휴지통에 넣고 영구히 삭제하자. 우리는 한국인의 시각 뿐 아니라 일본의 시각과 제 3자의 시각을 모두 가르쳐야 하며 그 시각을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해야한다. 현재 sns의 신진사대부 무리는 "이야 토착왜구 많네"라는 비아냥거림으로 우리의 눈이 국수주의에 머물기를 바라지만 나와 이해관계가 반대인 적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지능의 문제이지 나라사랑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소손녕이 우리의 역사인식 처럼 서희와의 담판 후 요의 황제에게 돌아가 "고려가 고구려 후예라는데요"라며 명분하나 때문에 땅 까지 주고 빈손으로 회군한 병신이었다면 목이 뎅겅 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그는 공신의 칭호를 받고 이후로도 계속 중책을 맡았다. 실제로 그는 병력과 물자를 거의 소모하지 않고도 짧은 시간 안에 송과 고려의 동맹을 파기시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 명장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국제외교가 명분 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병신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의 외교는 조선 사대부들이 아니라 고려의 서희에 가까워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신채호 선생님께서 기르는 구관조마냥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짹짹거릴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되새겨야 한다.


뭐 새대가리같은 신진사대부들은 저 주문을 읊으면 자동으로 괜찮은 미래가 올 거라고 믿겠지만.

2019. 6. 29.

우리 집의 근현대사

큰할아버지가 만주로 떠나시고 차남이었던 할아버지는 교사가 되어 서울로 상경했다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맞이하셨다. 현재 서울 약수동의 한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가 도보로 낙향하셨는데 당시 제2한강교는 너무 멀리 있었으니 아마 뚝섬이나  서울숲 언저리에서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시지 않았을까. 남쪽 고향 땅으로 향하던 도중 동향의 대학생 둘을 만나 짐을 나눠 지고 이동하는데 미군의 폭격을 만나 그들과 헤어지게 되셨다고 한다.
 
보름인가 한달인가를 걸려 고향에 도착하셨다고 하는데 당시의 열악한 교통 상황과 당시 돌을 갓 넘겼던 아버지를 업고 이동하셔야 했던 할머니의 이동속도를 고려해도 30일은 너무 길고 15일 정도 걸리시지 않았을까 한다. 게다가 30일이 걸렸다면 전선이 그 분들을 따라잡았을 테니 더욱 어려움이 많으셨을텐데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으신거로 보아 보름이 걸리셨을거라 추측해 본다. 고향에 도착해 보니 앞서 헤어진 두 대학생이 먼저 도착해 자신들이 들고 있던 할아버지의 봇짐 하나만 증조할아버지께 드렸고, 그 분들은 피난길에 죽은줄로만 알고 슬퍼하고 계시다 아들내외가 나타나니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군은 빠르게 남진했고 고향땅 역시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선다. 증조부는 지주 출신이었던 터라 할아버지 역시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한채 숨죽이고 계셨다고 한다. 특히 인민위원장에 예전 고조부의 노비였던 사람이 임명되자 더욱 그러셨다. 하루는 완장 찬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쳐 마당의 장작을 하나씩 손에 들고 집 주변을 에워싸자 그땐 정말 죽었구나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그분들은 가족들에게 해를 끼지시지는 않았다. 다만 사위 한분(내겐 고모할머니의 남편)이 순사 출신이었던 터라 그분이 본가로 돌아올거라고 기대하고 잡기 위해 지키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모할머니는 본가로 오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말씀해주시지는 않았지만 아마 자기 남편의 본가 혹은 부산으로 달아나지 않았을까.
 
노비였던 인민위원장은 다행히 증조할아버지와 그 집에 별 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다. 폐쇄적인 시골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나라가 뒤바뀐다는 것은 그냥 동네 내에서 주민간 서열이 바뀌는 정도를 의미하지 이념에 따라 서로가 꼭 죽고 죽이는 것 만은 아니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지 모든 동네가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6.25 전쟁이 유독 비참했던 이유는 사상자 거의 대부분이(80%) 민간인이었고 그 중 상당 비율은 같은 민간인이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 등으로 인해 농경사회에 대한 환상을 다소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는 늘 숨겨진 갈등이 있으며 특히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쳐 격동을 겪었던 시대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과거부터 품어온 약간의 앙심이 처형으로, 아이들 간의 사소한 다툼이 일가족의 몰살로 쉬이 번지던 시기였다.
 
전쟁 당시 날짜별 전선 변화를 살펴보면 고향 땅이 북한군의 점령지에 넘어간 것은 약 7월 초중반이고 이후 전황이 뒤집어져 남한이 수복한 것은 대략 9월말-10월초로 보인다. 모든 한국인들이 그 6-7주 동안 내린 선택은 이후 60-70년의 삶을 영구히 바꿔놓았다. 다행히 고모할머니와 그 남편은 동네로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 동네에서는 인민재판이 일어날 일이 없었다. 인민위원장은 아무도 처형하지 않아도 되었고 북한군이 물러날 때 같이 도망가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 고향이 비극을 피할 수 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 인민위원장이 훌륭한 분이셔서 북한군의 감시아래 반동분자들을 색출하는 시늉만 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보호했을 수도 있고(깡촌이지만 기차역이 있기 때문에 북한군이 없었을리가 없다) 고조부나 증조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또 인간적인 친분에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리 아름다운 동기가 아니었을수도 있다. 노비출신이지만 세상 사는 머리가 발달한 인민위원장에겐 친일 경력이 있어 인민재판을 열면 누군가가 자신을 밀고할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내 증조부가 그에게 뇌물을 줬을 수도 있다. 어쨋거나 살육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의 다른 곳은 이렇게 다행스럽지 못했다. 6.25전쟁의 첫 반년은 전선이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였는데 2달만에 낙동강까지 후퇴한 최전선은 그 해 10.1에 38선을 돌파해 겨울 전 두만강에 이르렀다가 다음해 1.4에 서울을 버리고 다시 후퇴한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1년 1월 4일까지 약 반년간 전선은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을 왕복달리기한 것과 같다. 군인 사상자의 네배에 달하는 민간인인 사상자 대부분은 이 과정속에서 나왔다.
 
특히 개성과 평택 사이의 주민들은 반년간 정부가 반년 사이 세번에서 네번이나 바뀌는 것을 겪어야 했고 첫번째 두번째에는 비극을 피했던 동네도 세번째 네번째에 살육과 폭력, 그리고 보복이 이따랐다. 만약 전선이 평택에서 더 남쪽까지 후퇴했다면 북한군은 자신들을 따라 후퇴하지 않은 기존 인민위원장을 처형하고 새로운 사람을 앉혔을수 있고 새 권력자는 증조부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지 모른다. 인간사의 대부분의 비극이 그랬던 것 처럼 삶과 죽음, 그리고 선량한 피해자와 학살자를 가른 것은 그저 우연한 우연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무남독녀셨고 할아버지 역시 큰할아버지가 만주로 떠나 생사가 불투명해진 이래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두 집안에서는 부부가 다시 상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외증조부는 집과 땅을 주며 고향 땅에 정착하라고 했고 서울에서 피난의 고통을 겪은 할아버지는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퇴사하지 않고도 고향에 집을 지으셨던 것을 보면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짓던 그 집은 아직 주소지가 없어 복귀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남한에 있는 지는 물론이고 생사여부조차 파악되지 않던 시절이라 학교는 미복귀자 모두를 일괄 퇴직시켰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평생 떠나고자 했던 고향 마을에 다시 정착하셨다. 살아계실 적 할아버지는 대청마루에 앉아 "내가 이집 짓느라 서울을 못갔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할아버지는 이후 평생을 그 집에 사시며 팔남매를 길러내셨고 마을 내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은퇴하셨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cf가 유행하던 시절 아궁이를 보일러로 고쳤던 그 집은 반세기 넘게 아버지 뿐 아니라 나와 사촌들의 기억에도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철거되었다. 지금은 그 지난 세기의 기억위에 신식 주택이 들어서 있다.
 
인민위원장이었던 그분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계속 같은 동네서 살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동네에 애착이 있었으니 자신의 팔에 완장이 채워지고 손에 장작이 쥐어져도 이웃사촌의 머리를 후려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몇번 처가를 오갔던 큰고모할머니의 남편도 자신을 해치려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순경이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복수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정부에 이웃을 빨갱이라며 밀고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주와 친일부역자들을 인민재판에 세우지 않았던 것 처럼. 아마 인민위원장의 아들딸들은 할아버지의 학교에 다녔을 것이고 그의 손자들은 우리 아버지와 같이 자랐을 것이다. 족보와 가족관계도를 되짚어보면 개중엔 혼인으로 맺어진 이들도 있을 지 모른다.
 
20세기 최악의 전장으로 흔히 스탈린그라드를 뽑는다. 약 5개월 간 진행된 그 전투해서 독일과 소련 양측은 각각 약 백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한국전쟁의 첫 반년의 참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사상자 중 군인/민간인의 비율이 반대였을 뿐. 요동치던 전선 덕에 한반도에는 수도 없는 스탈린그라드가 존재했고 그 가난한 나라의 내전에서 사람들은 쇠가 없으면 죽창이나 각목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 가운데서도 마치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처럼 큰 비극으로 번지지 않았던 우리 마을같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동네 사람들이나 어른들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일제시대, 패망과 해방 그리고 내전과 같은 격변의 시기를 겪은 그분들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쟁통에서는 남을 죽일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 뿐이지 히틀러나 스탈린, 도죠 히테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1.4후퇴때 전선이 평택 방어선에서 멈췄기 때문에 우리 마을은 북한군의 재점령을 피했던 터라 우연히 비극을 피했던 것이지 동네 사람들이 유난히 도덕적이거나 우애가 깊어서는 아니었다고. 해방한국의 모든 도시와 마을이 스탈린그라드, 아니면 동막골로 나뉜 것은, 군 수뇌부들이 작전지도에 임의로 그은 선 하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결국 그저 그런 우연에 불과했다는 것을.
 
개개인의 기억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관용어구처럼 되풀이하지만 정작 각자가 자신의 할아버지의 역사는 모르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러니 빨갱이의 후손이 김씨일가를 욕하고 친일순사의 아들이 반일을 외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유시민이 딸에게 일제시대 공무원으로 출세하려고 애쓰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것 처럼 나 역시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사에 무엇이 숨겨져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남은 흔적들을 하나하나 기록해보려고 한다. 더 없어져 정말 잊혀지기 전에.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다들 그랬다. 그래서 옆동네의 지주들을 찾아가서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더라"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동막골은 그저 신화적 환상일 뿐인가 보다.

2019. 6. 21.

자유시장경제 (Free Mayor's Economy)


 
우리가 시장경제라고 할 때의 "시장"은 서울시장, 안산시장, 논산시장 할 때의 시장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교차하는 market을 의미한다. 일부 페북 논객들이 시장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드디어) 깨달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나, 일부 용어를 혼동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격은 시장(market)이 정하는 것이 맞고 시장(mayor)가 정하는 것은 정치다.

2019. 6. 10.

Das Parfum


이 소설을 통독한 것은 단 한번 그것도 십여년 전 내 이십대 중반 언젠가였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려지는 한 장면이 있다.

냄새를 가지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 그루누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한 소녀의 내음이 너무 탐이나 그를 빼앗고자 한다. 그녀를 죽여서라도. 이런 음모를 감지한 그녀의 아버지는 온갖 트릭을 동원하여 그녀를 도시로부터 대피시켰다. 뒤늦게 그녀의 자취를 좆아 그루누이는 성 밖에 나서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강렬한 열정을 느낀 것은 그녀가, 아니 그녀의 향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성문앞에 서서 침착하게 그녀의 행적을 가늠해본다. 모든 흔적과 증거가 그녀가 동쪽으로 향했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단 하나 그의 후각을 제외하고는.

서쪽에서부터 그녀의 미세한 내음을 맡은 순간 그는 주저없이 그 방향으로 내달린다. 천가지 이정표와 만가지 증거들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단 하나, 그의 코가 반대편을 가르키자 그는 주저없이 말머리를 틀었다.


*                   *                   * 


그 옛날의 내가 그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기록한 부분은 전혀 다른 페이지였지만 한참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만약 그루누이였다면 나는 그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내 커리어에서 지난 십년은 확신을 부수고 당위를 분쇄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온 내가 어찌 나에 대한 그런 강한 믿음을 가지겠냐만은. 내 어찌. 감히.

2019. 6. 9.

박원순의 부도덕한 사생아, 제로페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국가는 자유로운 경쟁을 보호하고 시장을 수호하는 심판의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하지만 경기에서 주심이 선수들의 경기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직접 공을 드리블해서 슛을 날린다면 그는 그 한 경기나 시즌 뿐 아니라 축구라는 제도 자체를 산산히 부숴놓는 것이다.

그리고 제로페이는 시장(market)이 뭔지도 모르고 아직도 시장(mayor)의 역할이 뭔지도 모르는 병신같은 박원순 시장이 등신같이 필드에 드리블 하면서 등장했다 자빠져서 코가 깨지는 새로운 코미디 쇼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쇼를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쇼는 우리의 제도 자체를 산산히 부숴놓을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할 예외적 경우를 보자. 시장의 독과점이나 담합으로 자유로운 경쟁이 제한될 경우나 혹은 시장논리가 사회적 약자들을 소외할 경우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국가는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신용시장이 그런가? 국내엔 열개가 넘는 신용카드회사가 서로 무한대로 경쟁하고 있고 상위 1,2,3위 조차도 수익이 점점 악화되고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경쟁원리를 따라 매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럼 제로페이가 기존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편익을 제공하나? 제로페이의 지불은 신용이 아니라 은행 잔고다. 쉽게 말해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카드인데 지명수배자나 금치산자가 아니라면 현금계좌를 가지고 현금카드를 만들지 못할 사람은 없다. 제로페이가 사회에 제공하는 추가 효용은 전혀 없다.

결국 제로페이는 성공할 유인도 없고 존재할 이유도 없는 쓰레기같은 제도다. 자연상태라면 이런 거지같은 서비스는 자동으로 도태되겠지만 문제는 그 운영 주체가 정부라는 데에 있다. 그리고 무능한 소인배들이 종종 그러듯이 박원순 시장은 이 제도의 성패에 자존심을 걸었다. 정부는 효율성의 압박을 받지 않으면서 돈이 많으니,  만약 서울시가 제로페이 사용자 모두에게 사용액의 10%를 대신 내준다고 한다면 일반 신용카드 회사들이 그와 제대로 경쟁할 수 있겠는가. 저질 농담같지만 이렇게 농담같이 저질스러운 일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이용자 3명을 추첨해 뉴욕 항공권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뭐 이래도 먹히지 않으면 점점 사은품을 늘리겠지. 물론 그 재원은 세금에서 나올 것이고 물론 그 일부는 카드회사들에게서 걷은 것이다.

따라서 제로페이는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도이며 이런 사산아를 낳은 박원순은 공직에 있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물론 그가 과분한 자리에 앉아있다는 증거는 이 말고도 많다. 3선을 거치고서도 아무런 실적을 남기지 못해 허둥지둥 아무거나 막 날리는 그의 말로는 대단히 추하고 대단히 초라할 것이라 장담한다. 그의 임기 내내 서울이 그랬듯이.

2019. 6. 7.

한국 경제 네 가지 예측

대학때 은사님께서 돈 받는 일이 아니라면 사석에서 절대 공짜로 예측 따위는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야 뭐 말 안듣기로 소문난 제자니 그냥 하겠다. 그리고 아래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전망일 뿐이다.

1. 불황이 온다면 한국은 2008/09년보다 더욱 심하게 타격을 받을다.
2. 불황이 오든 오지 않든 한국의 지니계수는 역대 최대로, 또 최대 속도로 벌어질 것이다
3. 환율은 연말 전 1200원 중반을 찍을 것이다.
4. 다음 경제부총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될 것이다.


1. 경제가 침체에 들어가면 정부는 두 가지 수단을 써서 대응한다. 하나는 통화정책, 또 하나는 재정정책. 통화정책은 쉽게 말해 다같이 대출을 회수해서 시중에서 돈이 귀해질 때 중앙은행이 나서서 돈을 풀어줘 유동성을 확보해주는 정책이다. (이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Ray Dalio의 동영상 강의를 추천한다. 링크) 재정정책은 다같이 지출과 투자를 줄여서 경제가 침체될 때 정부가 돈을 대신 써줘서 수요를 늘리고 대신 경제가 활황일 때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과거의 GDP를 보면 프랑스나 영국같은 선진국들도 한 해는 +15%성장했다 다음 해에는 -9% 감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앞서 언급한 두 정책수단을 통해 경제가 과냉, 혹은 과열로 흐르지 않도록 조절해준다. 그 결과 이제 규모가 있고 어느정도 경제가 성숙한 국가의 성장률이 5%이상 스윙하는 일은 드물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은 이 두 수단을 모두 쓰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먼저 통화정책을 보면, 앞서 여러번 지적했듯이(링크) 우리나라는 통화정책을 제대로 쓰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금리결정은 항상 후행적이고 늘 너무 늦게 올리고 너무 늦게 내린다. 게다가 현 청와대가 각종 경제 현안에 입김을 미치는 정도가 그 어느때 보다도 강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갑자기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칠 가능성은 더 낮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오더라도 한국은행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체면치례로 뒤는게 연준이나 타 중앙은행을 후행적으로 쫒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그나마 괜찮다. 옛날에도 그랬으니까. 진짜 문제는 재정정책에 있다. 만약 경기가 극도로 나빠진다면 빠르고 강력한 재정정책이 중요하다. 2008년에 우리가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던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재정정책이 있었다.(내가 4대강을 재평가하는 날이 올 줄이야..) 당시 아시아 국가 중 GDP대비 재정지출 비율을 보면 단연코 한국이 가장 컸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IMF 시절 경제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강만수 부총리가 있었고 국회를 장악한 여당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는 이 둘이 모두 없다. 홍남기 부총리는 예산처 출신으로 재정집행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청와대 내에서 발언권도 세지 않다. 보통 청와대 내에서 경제정책과 아젠다를 담당하는 것은 정책실장인데 현재 정책실장은 부동산 폭등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는 김수현 실장이다.(전공: 도시공학) 그러니 경제위기 상황이 와도 재정정책을 드라이브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갑자기 홍남기 부총리가 영웅처럼 나서거나 운좋게 청와대 내의 숨겨진 제갈공명같은 인재가 재정정책을 설계해 들고 나오더라도 그 전망은 암울하다. 어디까지나 내 사견이지만, 재정정책은 어디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돈을 바보같이 쓰더라도 그 돈을 번 사람들은 최대한 현명하게 쓰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재정승수는 여전히 어느정도 유지될 것이다. 케인즈는 아예 땅을 파서 돈을 묻어도 된다고 했는데 뭐 반도국가에서 세로로 운하를 파는 것 쯤이야 양반이지. 하지만 그러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국회는 그 어느때보다도 분열되어 있고 자한당 의원들은 균형재정에 집착하고 있어 문재인의 추경에 동의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장 GDP의 0.3%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세먼지 추경도 몇달째 국회에서 표류중이지 않은가. 정부지출이 경제를 떠받친 2009-10년 재정적자가 GDP의 거의 4-5%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재정정책이 적절하게 시행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뿐만 아니라 과거 금융위기 시절에는 중국의 성장률이 유지되면서 한국도 덩달아 선방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현재 만약 리세션이 온다고 한다면 그 진원지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2009년의 순풍이 이제는 악풍이 되었다. 배는 더 망가지고 선장과 선원은 더 무능한데. 그럼 같은 폭풍이 닥친다고 해도 피해는 훨씬 크겠지.


2. 불황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현재의 소득주도정책은 부자의 소득을 폭증시키고 빈자의 소득을 0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 해결할 적절한 정책은 대대적 감세를 시행해서 자본투자가 이뤄지도록 만들고 최저임금을 크게 깎아 가난한 사람들이 근로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당신은 이 둘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특히 현 정부 아래서. 문재인 정부는 계속해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난 올해 7월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8%를 상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박근혜-이명박정부 시절 상승률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럼 빈민층을 넘어 이제 중위권 노동자들 중 일부가 실직하거나 구직을 못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소득은 0이 될 것이다. 정부는 미봉책으로 그들에게 실업급여와 복지혜택을 제공하겠지만 기존 소득에 비하면 이는 턱없이 작은 금액이다. 그리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이다. 그럼 부자들은 자본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돌릴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해외에 발을 걸칠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은 더욱 가난해지고 그럴 방안이 있는 자본은 더욱 부유해질 것이다, 아 물론 저소득층에 비해서.

결국 최저임금이 빈부격차를 벌리는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데(나머지 하나는 필수재인 부동산을 폭등시키는 정책) 명목상승률을 깎을 수 없으니 인플레이션을 높여 실질 상승률을 낮추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오면 빈부격차는 더 벌어진다. 게다가 당장 다음 정권이 맞는 정책을 시행해서 고용이 다시 늘어난다고 해도, 현재 장기실업에 빠진 사람들에 앞서 갓 졸업한 대졸자들이나 단기실업자들이 먼저 직업을 고용할 것이다. 2016년에는 92년생 김지영은 25살의 실직자였지만 2021년이 되면 지영씨는 30살의 실업자가 된다. 그리고 기업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늘 30살의 실업자보다 그 해의 25세 실업자를 선호한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듯 92년생 김지영의 실직한 삶도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 몇년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부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지지 마라. 두번 다시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3. 지난 5년간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설 때의 환경을 보면 주로 외국인들의 국내자산 매도 물량이 수급을 끌어올렸던 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외국인이 채권과 주식 모두를 순매수했는데도 불구하고 원화는 약 5.5% 폭락했다. 모든 EM국가들 중 원화보다 더 폭락한 나라는 몇년 전 쿠데타가 일어났던 터키와 국가부도의 단골멤버인 아르헨티나 밖에 없다. 즉 과거와는 원화 약세의 요인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것이 내국인들의 해외자산 수요라고 생각한다. 외국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통화가 5%정도 약해지면(그것도 태국 바트같은 통화는 4% 강해질 동안)  원화자산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해 매도세가 약해지거나 매수로 돌아서는데, 환변동에 덜 민감한 국내 투자자은 애초에 해외자산을 확보하는게 목적이라 환율이 올라가면 더욱 빠르게 쫒아가서 산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수출기업에도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수출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할 때엔 원화가 필요하니 갑작스럽게 환율이 반등하면 열심히 달러를 팔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투자가 해외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달러를 팔 압력이 덜하다. 올해 환율이 1200을 돌파하고 나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4. 다음 경제부총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고 청와대는 국회에서 개헌 통과선을 확보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에 연말로 갈 수록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수장에 코드보다 능력을 갖춘 사람을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최종구 위원장은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국과 경제정책국을 거쳐 현 정부 인사중 그 누구보다도 경제부총리 자리에 맞는 적임자이며 정무적 감각도 갖춘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 그는 금융위원장의 직무를 넘어서는 사안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타다 이재웅 대표에게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지적했으며 얼마 전에는 각 은행들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평가하겠다고 발언했다. 이 둘은 모두 금융위원회의 소관이나 책임을 벗어나는 분야인데,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해온 그가 타 부서의 영역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엔 복안이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닐까. 특히 환율과 경상수지 흑자폭 축소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면 국제금융국에 오래 몸담은 그에게 힘이 실릴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