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9.

trading the fear

S&P500 weekly in log scale
어쩌면 지난 10년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오늘 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꼴딱 밤을 새웠다. 오늘 미국 주식이 반등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고꾸라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전략이 달라야하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 포스팅에서 나는 이번 베어마켓이 지난 10년 중 top5안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정정한다. 이번 주 미 증시의 폭락은 절대값으로는 물론이고 로그스케일*로도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세번째로 가장 커다락 낙폭을 보였다. 이보다 더 큰 폭락이 나타났던 적은 금융시장 종사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조차도 잘 알고 있는 IT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때 뿐이었다.
 
당신의 경력이 10년을 넘기지 않는다면 이제까지 익숙했던 투자패턴과 필승의 공식은 모두 잊어라. 역사적으로 드문 폭락이 시작될 때에는 지난 몇년간 지켜졌단 자산간의 코릴레이션이 모두 깨지고 시장은 당신의 상식을 벗어나 움직이게 된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폭락할 때 미국 테크 주식을 사면 좋다든지, 미국 주식은 코스피보다 아웃퍼폼 한다든지와 같은 상식이 모두 삐걱거리며 어긋나게 된다. 당신의 감을 믿지 말고 경험에 의존하지 마라. 당신이 리만을 겪어본 적이 없다면 이제부터의 시장은 당신이 겪었던 것과 매우 다르게 전개될 것이므로.
 
아마 이 블로그를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내가 지난 몇년 동안 세계 경제에 대해 별 다른 전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왜냐면 변곡점이라고 할 만한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분명히 변곡점에 있으며 지금이 12년 만에 처음 찾아온 민스키 모먼트인지, 아니면 흔하디 흔한 단기 베어마켓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나는 결국 세계 중앙은행들과 정부가 금융/재정 정책을 공격적으로 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붕괴가 오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아마 리만을 다시 겪게 되겠지, 아멘) 현재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이 조만간 비명을 지르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비관론자들의 목소리가 가장 큰 순간에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지금은 아직 낙관론자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뿐.
 
지난 몇년 간의 가격 움직임을 보면 시장이 두번째 패닉을 겪기 전 잠시 반등하곤 한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dead cat bounce라고 한다. 높은 곳에서 죽은 고양이를 떨어뜨리면 바닥에 부딛친 뒤 한번은 튕기겠지만 그게 고양이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아니듯이, 폭락하는 주가가 잠시 반등한다고 해서 그게 꼭 상승모멘텀이 살아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의 데이터를 보면 바이러스보다 인간의 건강에 더 해로운 것은 경제불황이다. 부디 우리가 거기까지 가지는 않기를.
 
바이러스에 대한 시장의 패닉은 1/31 수준을 한참 넘어섰지만 그 뒤엔 보다 무서운 것이 숨겨져있다.
 
 
*일반적으로 지수는 장기적으로 상승하기 마련이니 차트를 절대값으로 단순비교하면 과거의 폭락이 상대적으로 작아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심지어 대공황시기의 다우존스의 폭락조차도 장기차트를 절대값으로 보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아보이니, 이러한 오류를 최대한 보정하기 위해 로그스케일 차트를 보기도 한다.   

2020. 2. 28.

한국은행이 울린 레드얼럿

오늘 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 총재를 보아하니 앞으로 3달간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금융시장이 크게 망가질 것 같다. 그의 이율배반적 태도와 언행은 현재 세계 금융시장이 처한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반대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우한폐렴의 확산으로 투자와 소비가 망가지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데도 금리를 동결한 이유로 총재는 이 전염병이 3월에 고점을 찍고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여기에 지금 모든 금융시장이 애써 외면하려는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오늘의 기자회견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기자들을 회의실에 모으는 대신 미리 서면으로 질의를 받고 두 한국은행 직원이 대독하는 것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사스나 메르스 때도 없었던 유튜브금통위를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시장 참여자들은 위화감을 느꼈으리라. 단일 사건으로는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금통위를 화상으로 진행해야 할 정도로  바이러스가 위험하다면 얼마나 많은 회사들이 외부행사와 모임을 취소할 것이며, 또 과연 그들이 투자에 나서겠는가. 또 개인적인 모임을 가질 사람도 줄어들 것이고 그들의 경제활동은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다. 그렇게 2월 한달간 경제는 박살이 났고 다음 3월은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1분기 중 2/3동안 충격은 이미 확정이니 이번 분기는 기존 예상치가 무의미할정도로 망가질 것이고 또 이 충격이 다음 분기까지도 이어질 지, 또 얼마나 오래갈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인데 총재는 바이러스 확산이 3월에 피크를 찍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고 있다. 요새는 한국은행이 감염내과 의사들이나 생물학 박사들도 뽑나. 총재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자신이 가장 인하하고 싶지 않을 4월에 멱살잡혀 강제로 인하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총재의 저런 한심한 모습이 현재 금융시장에 만연해있다는 데에 있다. 폭락은 대개 늘 아는 위험이 아니라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나. 무엇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고. 지금 우리가 그렇다. 우한폐렴이 확산된 첫날부터 생물은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우리 문돌이 금융인들은 이 사태가 별게 아니라며 무시하곤 주식을 추천하기 바빴다. 확산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며 허둥대다가, 이제 중국에서 숫자가 잦아들자 다시 주식을 사들였다 중국 외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나자 투매에 나섰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 1월에 했던 똥개훈련을 2월에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이 바이러스의 지구적 확산은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 바보짓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대중이 생필품을 사들이느라 마트에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를 반영해서 이마트의 주가는 지난 3일간 거의 10% 가까이 반등할 정도인데, 동시에 대부분의 개미투자자들은 게시판에서 저점매수를 기다리고 있고 실제로 다수는 이미 행동에 나섰다. 그렇게 외국인들이 지난 1주간 약 3조원어치 주식을 파는 동안 그 매물은 모두 개인이 받아갔다. 즉 바이러스와 세균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집단이,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는 사람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믿는 것이다. (현재 이와 같은 양상은 미국시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주간 주식거래동향
개미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과거에 그랬으니 미래에도 통할 것이라는 점. 과거는 미래예측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지표이니 그 말을 부정하진 않겠지만 우리는 늘 과거와 현재가 무엇이 같고 다른지 유념 해야한다. 미국 주식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약 5 거래일 동안 8%이상 하락한 경우는 모두 5번이 있었는데,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1) 2011년 7월: 미국채 신용등급 강등 + 유럽위기
2) 2015년 8월: 중국 주식의 폭락 + 위안화 급격한 절하
3) 2018년 1월: 미국 10년 금리의 급격한 상승
4) 2018년 말  : 미중 무역분쟁 + 연준 금리인상
5) 현재

앞서 네 경우는 모두 정치적 갈등으로 촉발되었거나 혹은 금융시장의 일시적 불균형, 예를들면 경제가 안 좋은데 시장금리가 지나치게 오른다던지, 연준이 지나치게 금리를 올린다든지 등등 때문이었다. 그런 요소는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자연스레 바뀌게 된다. 주가가 빠지면 트럼프와 시진핑은 날을 세우고 싸우기보다 화해를 모색하게 되고 브렉시트를 이끄는 영국 총리는 요구조건을 완화한다. 또 연준은 금리인상 대신 인하를 고려하게 되며 올라간 시장금리는 자연스레 내려온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재의 위협은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는 주가폭락과는 상관없이 창궐할 것이며 경제나 통화승수 PER따위에 연동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판데믹이 어떻게 진행될 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굳이 위 네 사례와 비교한다면 1번에 가까울 것이다. 당시에 담보와 안전자산으로 취급되던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이 깎이고 나서 세계금융시장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물론 지나서 깨달은 건데 별거 아니었다.) 그리고 네 경우 중에서 그 1번의 폭락이 가장 심각했다.

당시에도 코스피는 리만 이전 고점을 넘어 무섭게 상승했으며 개미들은 조정이 와도 주식을 더 못사 안달이었다. 어닝과 비즈니스 모델이 망가지고 기업전망이 좋지 못했는데도 국내 증권사들은 앞다투어 20-30%대의 순이익 성장을 외쳤지만 그 허풍은 주가가 2170에서 두 달만에 1697까지 급락하며, KOSPI가 미국 주식을 앞서던 십여년 간의 황금기에 꽝 하고 종지부를 찍으며 끝이 났다. 그 이후로 코스피는 단 한 해도 미국 주식을 앞서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또 한번 대중들 사이에서 주식은 밀릴 때 사기만 하면 무조건 돈 번다는 맹목적 믿음이 만연해있고 그들은 그 신앙에 따라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트럼프가 아니며 브렉시트와도 같지 않고 파웰이 통제할 수도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애써 이를 간과하려고 하지만 unknown unknown은 늘 도둑같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늘의 유튜브 금통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이 모든 모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수십 명의 기자들로 번잡했던 회의실은 휑하게 비워진 채 책상 하나 만이 떨떠름한 모습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었고, 거기에 더럽게 인기 없는 소극장의 공연에 억지로 끌려나온듯 한 세명의 직원은 멀찍이 떨어져 마스크를 쓰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스탠딩 코미디는, 학위는 커녕 중학교 생물학도 다 까먹었을 우리 총재님께서 우한폐렴이 곧 수그러들 것이기 때문에 굳이 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큰소리를 빵빵 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우한폐렴 때문에 최초로 유튜브금통위를 열었지만 사실 별거 아니니깐 금리는 동결이라고 일갈하는 뒷북 이주열 총재

2020. 2. 23.

누가 여의도 텔레토비를 죽였나


2012년 제 18대 대선을 앞둔 무렵 여의도 텔레토비라는 정치풍자코너가 있었다. 혹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찾아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내가 이제부터 늘어놓을 진지한 얘기에 비하면 이건 다시 봐도 진짜 웃긴데다가 이제부터는 다수의 스포가 있으니까. (링크)

정치인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무자비한 풍자와 유머는 그 사회가 선진화되어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다. 사회가 미개할 수록 지도자에 대한 풍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미합중국 대통령 트럼프를 미국의 언론이 대하는 자세와 가장 가난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보도하는 조선중앙통신을 비교해 보라. 그런 의미에서 여의도 텔레토비는 분명 우리나라 정치가 한단계 성숙해졌다는 기념비적인 코너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다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방송계가 진보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통념을 까부술 정도로 캐릭터 간 패러디와 비꼼의 균형을 맞춘 것을 느낄 수 있다. 혹자는 그렇지 않다고 하긴 하지만 특정 정치세력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과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의 패러디가 주를 이루는 것을 편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정치패러디의 초점은 당연히 살아있는 권력이어야하지 않겠나. 특히 TV 대선공개토론에서 통진당 이정희가 박근혜를 매섭게 몰아붙이자 그 직후 편성된 화에서는 [또]가 [구라돌이]를 피해 숨어서 무서워하며 벌벌떠는 등 참으로 시의 적절한 패러디로 큰 인기를 끌었다.

반장선거 공개토론회에서 구라돌이에게 극딜당하는 또

"듣보잡인줄 알았던 구라돌이가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당시 박근혜를 상징하는 [또]라는 캐릭터가 지나친 쌍욕을 일삼고 [화나](문재인)와 [구라돌이](통진당)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두고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텔레토비 제작진은 이에 위축되기는 커녕 [또] 배역을 맡은 배우 김슬기가 울먹거리며 "저기. 제가요 하는 일이 이거 밖에 없거든요. 제 첫 직장이고, 아직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되는데. 앞으로 욕 많이 안 할게요." 라는 대사를 읊는데서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새누리당은 어쩔수 없다고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것인지 모르지만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되려 18대 대선에서 이 캐릭터를 활용한 홍보운동까지 펼쳤다.

이런 분위기는 분명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17대 대통령인 이명박은 윤석렬의 수사팀이 자기 친형의 비리를 조사하는데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고 16대 대통령인 노무현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인터넷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는데도 "먹고 살기 힘들면 대통령 욕도 하고 그런거지 뭘!" 이라며 엄숙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때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검찰청의 여려 검사들은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수사하다 지방으로 귀양을 떠났고 한 남자 방송인은 대통령의 이름에 존칭을 붙이지 않고 "문재인씨"라고 불렀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를 해야 했다. 대통령과 여당은 체고존엄의 지위에 올라 이제 우리는 그의 이름조차 함부로 부를 수 없다. 문득 김남주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술자리에서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꺼내면 일베 소리를 듣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웃고 즐길 정치 풍자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가 여의도 텔레토비를 죽였나.

나는 특정 세력을 지지하지 않고 어떤 정치인이 대한민국 사회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유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세가지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후보들을 지지하고 표를 던질 뿐이다. 다만 거기에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의도 텔레토비같은 정치풍자 프로가 부활해서 분장한 개그맨들이 살아있는 권력을 희화화하고 까는데 대통령이 화를 내는 대신 방청객 자리에 앉아 함께 웃으며 박수치는 모습을 보길 바란다. 그러다 꽁트가 끝나고 나면 무대로 나와 포옹 한번 하는 것이 훨씬 더 쿨하고 멋지지 않나. 조선시대 후기에도 양반들을 까는 판소리들의 가장 큰 후원자들은 바로 양반들이었다는데, 우리가 그래도 조선시대보다 나은 시대에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박정희가 일산에 드리운 무거운 그늘

일산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들어오긴 쉬워도 살아서 나가긴 어렵다는 곳. 김현미 장관을 포함한 일산 주민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1990년대 초만 해도 강남의 소형아파트를 팔면 일산의 대형 복층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지만 이후 두 지역의 격차는 크게 벌어져 당시 이주한 많은 주민들이 후회하는 곳이라고 한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3호선이 지나는 지역인데다 녹지도 많고 공기도 좋은데 왜 집값은 오르지 못했을까? 물론 이를 단순히 신도시와 서울의 격차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 지어진 3호선 반대쪽 끝 분당의 경우 "천당아래 분당"이라는 호사까지 누린 반면 일산은 소외된 것을 보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서울의 베드타운들, (시계방향대로) 일산 노원 분당 안양(평촌) 부천(중동) 목동

이는 위치적 한계 때문이 아닐까 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선거 나선 노태우는 당시 군사정부 출신 후보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민심을 다잡기 위해 집값 안정을 내세우며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서울 내의 판자촌/공터와 서울 근교에 신도시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는데 당시에 형성된 주 베드타운의 분포를 보면 위와 같다. 서울 중앙을 동작대교 북단으로 잡았을 때 대부분의 베드타운들이 모두 15-20km 이내에 있으나 일산 신도시만은 이보다 좀 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일산의 집값에 큰 장애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거주공간이 부족하자 정부는 서울시 내외의 공터를 택지로 지정해서 개발하기 시작하며 이런 추세는 2010년까지도 이어졌다. 이는 서울 서북권도 마찬가지로 일산과 도심 사이의 상암이나 삼송이 대규모로 개발되기도 했다. 보다 가까운 거리의 아파트 단지들이 차례로 들어서자 베드타운으로써의 일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애초에 도심에서 더 가까운 은평 불광 상암 삼송을 건너 뛰고 일산에 대규모 아파트촌을 건립하게 된 것일까?

그 까닭은 박정희에게 있었다. 북한보다 경제도 열악하고 군사력도 열세였던 1970년대 군사정권의 가장 큰 고민은 자주국방이었고, 당시 독재를 견제하려던 미국과의 마찰이 심해지자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이 없어도 북한을 방어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비록 못살던 시대였지만 6.25때의 지긋지긋한 참호전을 겪었던 탓에 남한의 포병전력은 타 병과대비 상당히 우수했는데 이를 활용해 북한의 남침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방안을 마련했다. 바로 북한의 기갑전력을 서울의 연신내 근방의 좁은 평지로 유인한 뒤 그 곳에 포병화력을 집중해서 초기에 섬멸하는 것. 그리고 포병장교 출신인 박정희는 이런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높은 콘크리트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1970년대에 마련된 이 수도방위계획은 아마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져왔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이었던 노태우는 이런 군사적 목적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서북부의 베드타운을 좀더 먼 지역인 일산에 짓기로 한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후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을 압도하고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지속되면서 북한이 대규모 기갑군을 이끌고 남침할 가능성은 보다 줄어들었다. 아마도 현재의 수도방위계획은 당시와는 크게 다르게 수정되었을 것이고 군사적 목적이 줄어든 이 지역들에 고층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추측한다. 그리고 이 공급물량은 앞서 말한대로 일산의 집값에 북한의 기갑전력보다도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고양시는 서울 근교의 인구밀집지역 중에서도 민주당 성향이 가장 강한 곳 중 하나인데, 박정희의 계획이 본의아니게 일산 집값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들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2020. 2. 22.

신천지와 종교탄압

먼저 나는 기독교인으로 자랐기 때문에 신천지와 같은 이단교회에 대한 반감이 대단히 크고 그들의 비정상적인 포교방식이 어떤지는 충분히 들어서 알고 있으니 결코 그들을 보호하고자 쓰는 글이 아님을 밝힌다.
  • 우리나라 헌법 20조 1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세월호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소수종교인 구원파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 종교지도자에게 5억원의 현상금을 내걸어 객사하게 만들었다. 그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지만, 문제해결의 방식만큼은 똑같이 닮았다. 정부와 여당지지자들은 소수종교 신천지를 희생양으로 삼아 방역실패(한 적이 없으니 엄밀히 말해 실패는 아니지만)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대 크기의 지역단체장인 경기도지사 이재명과, 수도의 3선 지역단체장 박원숭시장은 신천지의 집회를 금지하고 교회를 폐쇄하라고 지시했으며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은 신천지를 엄격하게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종교의 자유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물론 예배나 집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방역에 있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특히나 신천지 교인의 확진자가 많으니 더더욱. 하지만 이는 신천지 교인만 선별적으로 우한폐렴을 검사했기에 당연한 일이다. 중국 대사관 직원들의 동선을 따라 접촉한 모든 사람을 전수조사한다고 해도 비슷한 결과를 얻지 않을까.(난 서울에도 이미 지역사회감염이 만연하다고 생각한다.) 백번 양보해서 설령 신천지교인들의 감염률이 높다고 쳐도, 전체 433명의 감염자 중에서 신천지교인 244명을 뺀 나머지 189명 중 (통계적으로) 개신교인은 43명 불교는 42명 천주교인은 19명이다. 그럼 왜 모든 교회와 불당 그리고 성당의 미사를 금지하지 않는가. 게다가 종교행사로 대량감염이 발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종로 명륜교회의 예배를 통해 6번확진자는 83번 확진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겼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온 개신교인들 39명 중 9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왜 그들의 종교집회는 위험의 대상이 아니고 신천지만 문제가 되는가.
  • 가장 위험한 것은 정부가 모든 책임을 신천지에게 돌리며 자신의 실책을 가리는 데에 있다. 애초에 이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입되었고 국경을 차단하지 않은 것은 정부 자신이다. 교주 이만희에게 초능력이 있어 우한에서 대구로 바이러스를 직접 텔레포트한 것이 아니라면 31번 확진자 역시 중국인, 혹은 교민이나 여행객에게 옮았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 스치는 것 만으로는 전염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장담한 것은 정부와 대통령 자신 아닌가. 31번 확진환자 역시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요청했으나 보건소는 정부방침대로 검사를 거부했고 그녀는 일상생활을 이어나갔을 뿐이다. 물론 그녀가 정부조사에 비협조적이긴 했지만 이는 3번 확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의사 대신 정부를 믿었다는 것이다. 근데 정부부터 의사협회의 권고를 6번이나 무시하고 바이러스 유입경로를 활짝 열어두지 않았나. 모든 신천지 교인들을 화형에 처해 바이러스와 함께 불태워 없애도 중국 입국자들을 무방비로 받는 이상 바이러스는 아무런 제약 없이 확산될 것이다.
  • 이단종교의 바이러스 전파. 이보다 더 자극적인 소재가 있을까. 정부의 실책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들부터 심지어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던 사람들까지 모두 신천지를 비난하고 있다. 그 때를 틈타 그들의 교리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출발한 종교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토속종교에서 민족이동과 함께 분파한 유대교는 예수를 거짓 선지자라며 처형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로마교회가 탄생했고, 이 둘은 후일 가톨릭과 정교로 갈라졌으며 후에 이슬람교를 낳았다. 또 가톨릭은 신교의 목사들을 이단이라며 불태웠고 그 신교는 신대륙과 식민지로 퍼져나가 수많은 분파를 낳았다. 이처럼 모든 종교는 이단의 낙인을 안고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단종교는 신도의 돈과 시간을 뺏고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만 세상 어떤 종교가 신자들에게 돈과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가, 또 거짓말을 안 하는 종교가 어디있나. 가톨릭은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는 성경에도 없는 거짓을 가르쳤고 또 근 300여년간 지동설을 부정했다. 기독교의 거짓말이 듣고싶다면 목사님의 손을 이끌고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가 보라. 이단은 여신도들을 성적으로 학대한다? 가장 많은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은 기독교 목사들이다. 더 나아가 기독교 목사들의 성범죄율은 모든 전문직 중 단연 1등이다.(이전글 중 발췌) 게다가 수녀와 신부들에게 성생활을 금지한 로마교회야말로 가장 악랄한 성 착취 아닌가.
  • (이 글의 주제와 무관하지만)흥미롭게도 종교와 바이러스는 성격이 비슷하다. 모든 종교는 신도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지나치게 요구하게 되면 신도들이 사회활동에 집중할 시간과 자원을 빼앗겨 번성하기가 어렵다. 반면 신도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 신도들은 쉽게 이탈하고 종교를 버린다. 우리나라에서 매주 교회에 가야하는 개신교도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라. 바이러스 역시 숙주의 세포를 갉아먹지만 숙주에게 너무 치명상을 입히면 개체가 죽어버려서 확산하지 못하고, 숙주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복제가 더디면 마찬가지로 감염시키기 어렵다. 종교와 바이러스를 분석하면 각각의 최적값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공포와 분노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둘이 결합되었을때 인간은 가장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유대인이 아이를 잡아먹고 금융을 장악해 독일을 몰락시킨다고 믿었던 나치가 그러했고 대지진으로 삶이 무너진 1930년대 관동의 일본인이 조선인을 대하던 태도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의 대중은 그들과 너무나 닮았다. 신천지에 가하는 비난과 정부의 조치는 종교탄압으로 기록될 것이며 기독교인들의 정신세계를 차용한 그들은 이를 자신들에 대한 악마의 시험으로 받아들이며 정신승리에 이르를 것이다. 통나무에 못박아 과다출혈과 탈진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던 잔인한 형벌인 십자가형을 자신들의 종교적 상징으로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을 보라. 종교는 본디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법이다. 나는 신천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들과 평생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는 데다, 어차피 이만희가 죽으면 자연스레 사라질 종교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가 나의 믿음과 자유를 억압하고 조롱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그들 편에 서서 변호하겠다. 뭐 누군가에겐 너도 신천지구나? 라는 한마디로 묵살되겠지만, 그런 무지와 야만과 싸우라고 이제껏 배우고 글을 써 온 것이 아닌가.

우한폐렴(2)

  • 지난 글(링크)에서 나는 두 가지 예측을 했다. 하나는 우한폐렴의 확산 속도가 기존 코로나바이러스인 사스나 메르스때와는 달리 인플루엔자였던 신종플루에 가깝다고 본 것이고 두번째는 시장의 공포의 절정이 해외에서 첫 사망자가 나올 때라고 본 것이다. 현재 우한폐렴 확진환자는 총 77,816명으로 메르스나 사스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었고 해외 첫 사망자는 2월 1일 필리핀에서 나왔다. S&P의 저점이 1월 31일이니 얼추 맞춘 셈이다. 굳이 자화자찬을 꺼내는 것이 방정맞아 보이겠지만 전망이 맞았을 때 재빨리 자랑하는 것은 금융인의 필수 스킬 중 하나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 하지만 미국이나 상해의 주식과는 달리 코스피는 그때로부터 고작 1.5% 밖에 오르지 못했다. 최근 한국의 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주가도 함께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방역을 한 적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역감염이 없을 수가 없고 직선거리로는 우한과 베이징보다 베이징과 서울이 더 가깝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과도하게 걱정하지 말고 대외활동을 권장한 탓에 개인 단위의 방역도 느슨해졌다가 대구에서 확진자가 급증한 이후 다시 강화되었다. 한국의 상황은 당분간 악화될 것이다. 
  • 19일 이후로 3일간 한국의 확진자 수는 매일 2배씩 늘어 오늘 오후 433명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확산속도는 중국의 초기 확진자 증가세와 매우 유사하다. 비록 중국의 인구가 우리보다 약 27배 더 많지만 아주 초기단계서의 모수 차이는 별 의미가 없다. 첫 확진자가 타인을 감염시키는 속도는 모수가 5천만이든 14억이든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감염자 한 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인구밀도에 달렸는데, 대구의 인구밀도는 중국 우한의 약 2.5배, 서울은 약 15배 가량 되니 훨신 더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모델을 만들어본 것도 아니고 논문은 읽은 것도 아니지만 짐작컨대 적어도 확진자가 전체 인구의 0.01%도 안되는 단계에서는 전체 인구수의 차이가 확산속도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확진자 수는 당분간 중국의 추이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 만약 위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확진자 수는 24일 오후 기준 약 600명에 이르를 것이고 이달 말 약 2500-3000에 도달할 것이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 2월 18일이고 평균 잠복기를 2주로 계산한다면 이런 추세는 3월 초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마 그 뒤로는 중국처럼 우리도 둔화되지 않을까. 반면 사망자의 수는 의료시설 캐파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라 중국보다 훨씬 낮을 가능성이 크다.
  •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한국에 국한된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국에서의 확진자 수는 이미 크게 둔화했고 중국 정부는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고려하고 있어 최초로 2년 연속 큰 폭의 적자재정을 편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 구글 트렌드를 살펴보아도 전세계의 우한폐렴에 대한 관심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우리는 늘 시장의 낙관론이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비관론에 귀 기울여야하고 비관론자들이 가장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를때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솔직한 생각으로는 우리는 아직 그 어느 극단에도 도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coronavirus 검색어 추이


국내 트렌드를 반영하는 네이버의 검색빈도


2020. 2. 1.

비합리적 공포, 우한독감, 정치 그리고 시장.

 
1.약 3년 반 전, 메르스가 창궐하던 시기에 이런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공포라는 감정은 애초에 합리적일 수 없는 것이기에 누군가의 공포가 비합리적이라고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다만 두려움을 호소하는 무리와 이성적일 것을 주문하는 사람들의 진영이 뒤바뀌었을 뿐. 광우병, 세월호 그리고 메르스로 대중이 국가시스템을 믿지 못하고 공포에 빠졌을 때 너의 불안감은 결코 비합리적이지 않다며 위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그들을 계몽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시도는 당연히 성공할 수 없지 않겠는가. 저들의 기나긴 노력 끝에 대중은 국가시스템을 본능처럼 의심하고, 음모론을 맹신하며, 마치 조건반사 훈련이 된 파블로프의 개 처럼 보도자료 네글자가 찍힌 하얀 종이를 보면 패닉으로 반응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있다. 마치 가득 찬 성냥통처럼 대중은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다.
 
2. 먼저 나는 방역과 바이러스의 전문가가 아님을 밝힌다. 그런 나의 단견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우한독감은 사스나 메르스보다 더 큰 공포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스나 메르스는 치사율이 높긴 했지만 전파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사스는 총 8천여 명을 감염시켰고 메르스는 약 1,600명의 환자를 만들었지만, 현재 우한독감은 확진자만 벌써 11,374명에 이른다.
  • 2009년에 유행한 신종플루의 경우 첫 확진자가 나타난 뒤 5개월 간 한국에서만 약 74만 명이 감염되었다. 물론 인플루엔자는 코로나와 아예 다른 바이러스지만 현재까지 진행 경과만 놓고 보면 우한코로나는 신종플루와 같은 확산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 일부는 방역이 뚫린건 아닌지 의심하던데, 애초에 방역같은건 존재하지 않았다. 방역의 가장 첫번째 원칙은 사람이나 가축의 이동 통제 아닌가. 하지만 정부는 중국인 입국자에 대해 아무런 통제를 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방역이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단 것인가. 뚫렸다는 것은 막긴 했다는 것이다. 막은 적이 없는데 뚫릴 수도 없다. 우한독감 바이러스는 그냥 한국으로 아무런 제지 없이 걸어들어온 것 뿐이다. 참고로 미국은 2월 2일부로 중국에서 오는 모든 외국인들의 입국을 잠정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 Johns Hopkins CSSE에서 발표하는 발병자현황(링크)을 보면 발달된 방역체계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확진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4시간 전에 비해 홍콩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미국 독일 프랑스 독일 캐나다 영국에서 확진자가 증가했다. 그리고 필리핀 인디아 스웨덴 스리랑카에서 새로 확진자가 발생했다. 잠복기가 1-2주에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최소 1주간은 통제되지 않은 상태서 확산된 확진자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이는 방역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의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이 비전문가이기에 위와 같이 생각할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SARS때와는 달리 훨씬 더 강력하게 방역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확산이 더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사스환자들의 수를 넘어서지 않았나. 그리고 대중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것은 병의 치사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무서운 병"에 걸릴 확률이라는 점이다. 사스로 죽은 사람은 고작 700여명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해 수십억을 호가하던 홍콩의 부동산과 시총 수천조를 자랑하던 항셍지수가 폭락했던 것을 기억하자.

3. 문재인정부는 우한독감을 대하며 방역은 물론이고 정치적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다. 자신들이 야당에서 비판할 때 박근혜가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춘절 기간에 대통령은 휴가를 종료하고 복귀하지도, 과거 포항 지진사태처럼 발빠르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도, 중국입국자들을 막아들라는 국민여론과 소통하지 않았다. 비선실세에 대한 의혹이 차올랐을때 박근혜가 개헌카드를 던졌듯 우한독감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개혁을 외쳤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구체적인 대책 없이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세월호의 선장 이준석의 마지막 방송을 떠올렸다. 불필요한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그 한마디를.

결정적으로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여당은 다음의 두가지 정치적 실수를 저질렀다.
  • 우한교민들을 격리수용할 후보지가 천안에서 아산과 진천으로 변경하는 혼선이 있었는데 세 후보지는 모두 충청도였다.
  • 평택에서도 확진자가 나왔으며 정부의 능동감시가 실패해서 발생한 6번째 확진자의 딸이 태안의 어린이 집 교사였고, 경기도 남부권에 거주하는 확진자의 아내와 아들 역시 확진자로 판명되었다. (딸은 검사결과 음성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두 사건이 대한민국 선거 역사에서 결과를 좌우하는 대표적 swing votes 지역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충청도는 전라도보다 인구가 많지만 의석 수나 사회/정치적 영향력은 그에 못미치기 때문에 모종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인구밀도가 낮지도 않고 물류의 중심지라 이상적인 격리지역도 아닌 충북에서 후보지를 골랐다는 사실에 충청 유권자들은 분개할 것이다. 그들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공약을 이행하는데 시큰둥하자 배신감에 보수권에 대거 표를 던젔던 경험이 있다. 이번 사태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가 좀 더 침착했더라면 박근혜가 사드를 자신의 지지층인 경북 성주에 배치했던 것처럼 자신의 지지도가 가장 높은 지역에 배치했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첫 후보지 천안을 강행했어야 한다. 격리지역 1개가 충청도에서 나오는 것과 후보지 3개 모두 충청도에서 나온 것은 아주 다르니까. 민주당은 충청을 잃었다.

인구 밀집지역인 경기 남부 역시 의석도 많은데 정당별 손바뀜이 잦은 지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역의 유권자들은 젊은 육아 부부들이 많아 커뮤니티를 통한 의견 결집과 전파가 매우 빠르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가장 히스테리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어머니들인데 마침 6번째 확진자가 그 공포를 확산시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포는 원래 다 비합리적인 법이다. 하지만 이제 능동감시자에 어린이집 교사가 최소 둘이나 포함되었으니 경기남부 xx맘들의 맹목적인 충성을 마음놓고 기대할 수 만은 없게 되었다. 백명의 적 보다 더 뼈아픈 것은 한명의 배신자인 법인데. 중국에 보낼 마스크를 경기 남부의 어린이집으로 돌렸더라면 지지율의 손실을 최소로 막을 수 있었으리라.

 4. 금융시장의 반응은 강력하고 또 즉각적이었다. 우한독감이 이슈가 된 이후 외국인들이 7 영업일간 약 1.4조의 주식을 팔아치우자 코스피는 약 6.5% 하락하고 달러원 환율은 1190원을 넘어섰다. 금요일 밤에 미국 주식이 또 한차례 폭락했으니 여의도와 광화문의 월요일 아침은 꽤나 분주할 것이다. 2017년과 같은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다시 한번 기대하던 한국 증시는 예상 외의 풍랑을 만나 표류하고 있다. 난 아직 우한독감으로 인한 최악의 시점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 세가지와 같다.
  •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이렇게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악재가 터지는 것은 단기에 잦아들기 힘들다. 미국-이란 전쟁이야 트럼프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만 우리가 바이러스에게 퍼지지 말아달라고 빌 수도 없지 않은가. 두려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의 무지이다.
  • 세계 금융시장이 기대하던 낙관론은 중국과 한국의 경기반등에 기반한 부분이 컸는데 지금 우한독감이 그 희망의 핵심을 강타하고 있다. 사망자수가 전혀 증가하지 않더라도 물류와 인구 이동의 통제는 1분기의 각종 경제데이터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이다.
  •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퍼질때와 구글트렌드 추이를 비교하면 아직은 두려움의 초기단계로 보인다.   
대중의 공포는 중국 밖, 특히 서구 국가에서 사망자가 나올 때 정점을 찍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무관심했듯) 매스 미디어의 주 소비층인 유럽과 북미 사람들에겐 멀고 기이한 나라, 동아시아에서 사람이 죽는 것과 우리 이웃이 죽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가장 낙관적이어야 할때는 모두가 비관적인 순간이다. 다만 그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을 뿐.





*박근혜와 달리 문재인은 청와대는 왜 충성도가 높아 표 이탈이 적을 전남에 격리지역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엔 이것이 청와대가 당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여당 수뇌부와 핵심들을 자신의 친위대로 구성했기 때문에 정부가 당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공수처법/울산선거개입 등등의 이슈로 국회의 지원이 절실한 청와대 입장에서는 당을 설득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는 1. 격리캠프를 전남에 설치해서 표의 손실을 최소화하지 못했고, 2. 격리장소를 민주당의 지역구인 천안으로 밀어붙이지도 못한 채 패닉하며 가까운 충북에서 후보 둘을 고르는 커다란 실수를 범한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