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3.

박정희가 일산에 드리운 무거운 그늘

일산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들어오긴 쉬워도 살아서 나가긴 어렵다는 곳. 김현미 장관을 포함한 일산 주민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1990년대 초만 해도 강남의 소형아파트를 팔면 일산의 대형 복층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지만 이후 두 지역의 격차는 크게 벌어져 당시 이주한 많은 주민들이 후회하는 곳이라고 한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3호선이 지나는 지역인데다 녹지도 많고 공기도 좋은데 왜 집값은 오르지 못했을까? 물론 이를 단순히 신도시와 서울의 격차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 지어진 3호선 반대쪽 끝 분당의 경우 "천당아래 분당"이라는 호사까지 누린 반면 일산은 소외된 것을 보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서울의 베드타운들, (시계방향대로) 일산 노원 분당 안양(평촌) 부천(중동) 목동

이는 위치적 한계 때문이 아닐까 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선거 나선 노태우는 당시 군사정부 출신 후보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민심을 다잡기 위해 집값 안정을 내세우며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서울 내의 판자촌/공터와 서울 근교에 신도시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는데 당시에 형성된 주 베드타운의 분포를 보면 위와 같다. 서울 중앙을 동작대교 북단으로 잡았을 때 대부분의 베드타운들이 모두 15-20km 이내에 있으나 일산 신도시만은 이보다 좀 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일산의 집값에 큰 장애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거주공간이 부족하자 정부는 서울시 내외의 공터를 택지로 지정해서 개발하기 시작하며 이런 추세는 2010년까지도 이어졌다. 이는 서울 서북권도 마찬가지로 일산과 도심 사이의 상암이나 삼송이 대규모로 개발되기도 했다. 보다 가까운 거리의 아파트 단지들이 차례로 들어서자 베드타운으로써의 일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애초에 도심에서 더 가까운 은평 불광 상암 삼송을 건너 뛰고 일산에 대규모 아파트촌을 건립하게 된 것일까?

그 까닭은 박정희에게 있었다. 북한보다 경제도 열악하고 군사력도 열세였던 1970년대 군사정권의 가장 큰 고민은 자주국방이었고, 당시 독재를 견제하려던 미국과의 마찰이 심해지자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이 없어도 북한을 방어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비록 못살던 시대였지만 6.25때의 지긋지긋한 참호전을 겪었던 탓에 남한의 포병전력은 타 병과대비 상당히 우수했는데 이를 활용해 북한의 남침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방안을 마련했다. 바로 북한의 기갑전력을 서울의 연신내 근방의 좁은 평지로 유인한 뒤 그 곳에 포병화력을 집중해서 초기에 섬멸하는 것. 그리고 포병장교 출신인 박정희는 이런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높은 콘크리트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1970년대에 마련된 이 수도방위계획은 아마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져왔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이었던 노태우는 이런 군사적 목적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서북부의 베드타운을 좀더 먼 지역인 일산에 짓기로 한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후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을 압도하고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지속되면서 북한이 대규모 기갑군을 이끌고 남침할 가능성은 보다 줄어들었다. 아마도 현재의 수도방위계획은 당시와는 크게 다르게 수정되었을 것이고 군사적 목적이 줄어든 이 지역들에 고층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추측한다. 그리고 이 공급물량은 앞서 말한대로 일산의 집값에 북한의 기갑전력보다도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고양시는 서울 근교의 인구밀집지역 중에서도 민주당 성향이 가장 강한 곳 중 하나인데, 박정희의 계획이 본의아니게 일산 집값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들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댓글 10개:

  1. 대학생이 몇백~몇천만원 정도의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투자를 꼭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주식시장이 왜곡돼있는것 같고 종잣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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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꼭 하세요. 지금 몇백 몇천으로 안하면 먼 미래에 몇천 몇억을 날릴겁니다. 다만 목숨걸고 열심히 공부해서 하세요. 그래야 배우는게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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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작년에 천만원 남짓 되는 돈을 모았습니다.. 이것을 모두 투자해도 좋을까요?
      그리고 메일같은 수단으로 간단한 질문 좀 드려도 될까요? 말 그대로 '간단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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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물론입니다. 블로그 주소와 같은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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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메일 주소가hugin00munin.blogspot.com 이거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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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tx-a로 일산킨텍스-삼성역 편도 20분 안으로 도착할수 있다면서 최근 일산킨텍스 쪽이 주목받는데 주위 부동산 시세가 장기적으로 올라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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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기적으로 오르긴 오릅니다. 진짜 쓸모없는 야산의 돌더미도 공시지가는 장기적으로 올라요. gtx-a는 일산과 경쟁하는 같은 수준의 도시보다 앞서게 되는거지 서울의 수요를 분산하는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압구정과 노원이 교통편이 불편해서 싸고 비싼건 아닌 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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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경제에 무지한 공대생입니다. 이번 위기(?)에 모은 돈으로 주식이든 뭐든 투자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하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그냥 경제학 입문 서적부터 찾아보면 될까요? 추천하시는 책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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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직 학생이시라면 투자론과 경제학원론 수업을 들으세요. 회계원리도 들으시면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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