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0.

주식은 어째서 강한가 (by Paul Krugman)

요새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받는 질문은 "어째서 실물경제는 이렇게 엉망인데 주식은 강한가"일 것이다. 거기에 대해 폴 크루그먼의 짧은 글이 있으니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링크) 이 글의 핵심은 주식시장은 실물경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들에게 다음의 간단한 한가지 사고실험을 해보도록 하자.


1. 우한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인을 모두 죽고 단 한명이 살아남았다고 하자, 그런데 우연히 인류 유일의 생존자가 파웰 연준의장이었다고 가정하자. 이 처참한 비극의 과정에서 연준은 1,524,231번째 양적 완화에 나설 것이고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넘어 무로 돌아가겠지만 S&P500 지수는 0이 되기는 커녕 더 오를수도 있다. 100을 만들지 100,000,000을 만들지 그것은 순전히 파웰의 마음에 달렸다.

2. 사실 당신은 닥터 스트레인저다. 영화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이 외과의사가 아니라 기업의 회계사, 혹은 GDP를 산정하는 한국은행의 직원이라는 점이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은 타노스가 어떤 힘을 발휘해서 지구의 시간을 멈췄다고 한다. 하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진 당신만은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성실한 당신은 회사로 출근해 2분기 재무제표, 혹은 GDP 통계를 작성하고 있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경제활동이 멈췄으니, 이번 분기 실적은 전분기 대비 -100%가 될 것이다. 이런 젠장할. 이런 끔찍한 지표는 인류 역사를 넘어 백악기 대멸종이래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활약으로 타노스의 마법이 풀리고 사람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3분기 GDP는 전분기 대비 무한대의 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당신을 제외한 아무도 이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1과 2의 복합적 현상과 같다. 세계 주요 경제는 전면적 셧다운에 들어갔지만 아직 죽지 않은 파웰은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시행했고 셧다운이 풀리고 나면 닥터스트레인져의 장부 뿐 아니라 많은 국가와 기업의 장부가 그와 비슷해 질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사람들이 코로나의 상흔을 기억하리라는 것과, 또 수많은 가계/기업들이 락다운 기간동안의 비용지출로 인해 파산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정부가 각종 구제책을 내놓아 이를 막는다면 위의 사례와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나쁜데 주식시장은 좋다는 아이러니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처참하게 망가진 GDP와 미국의 실업률을 내세우며 왜 주식시장은 하락하지 않냐며 고성을 지르는 것은 수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시 금융은 다 사기야! 라는 자기위안도 당신의 수익률을 개선시키지 않는다.

1973년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 그리고 로버트 머튼은 옵션의 공정가격을 계산할 수 있는 방정식을 정립해서 1997년에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 수식에 따라 산정한 옵션가격은 시장가격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고 한다. 정작 시장을 우습게 알았던 그들이 만든 펀드는 당시 역대 최대규모로 파산했다. 우리는 늘 시장을 앞서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하지만 동시에 시장이 충분히 효율적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를 인정하고 시장이 무엇을 프라이싱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트레이딩과 투자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보지 말아야할 영화, Big Short

[영화 Big Short에 대한 감상은 과거에 한차례 올린 적이 있으니(링크) 본문을 읽기에 앞서 먼저 읽기를 권한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두가지 카타르시스를 판다. 대중들이 동경하는 월가의 고소득 뱅커들은 사실 인성 빻은 멍청이들이자 사기꾼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똑똑한 당신이라면) 그들의 헛점을 노려 큰 돈을 벌 기회가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부자가 되고 싶은 이들은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 그 환상은 무척이나 잘못되어 있으니까.
 
금융권은 매년 대학 졸업자들 중 가장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들을 뽑기 위해 애쓰고 그들중 가장 돈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승진하며, 또 가장 훌륭한 시스템을 가진 회사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애쓴다, 낮에도 그리고 밤에도. 뭐 그러다 비도덕적인 일을 저지르다 감방에 가기도 하지만. 그리고 금융시장은 그들중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돈을 몰아준 뒤,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곳이다. 따라서 당신이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있다면 시장이 아닌 자신이 바보가 아닌지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명심하라, 당신은 천재도 아니고 또 금융시장에 타고난 천재란 없다. 타고난 일중독자만이 있을뿐.

트레이더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의 팀원들이 자신에게 CDS를 매도한 도이치의 세일즈 지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을 불러 항의하는 장면이다. 모기지 시장의 붕괴에 베팅했던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기초자산이 박살나는데 어떻게 MBS의 가격이 오를 수 있냐면서. 지레드는 침착하게 그들에게 이렇게 받아친다. "당신들은 이 시스템이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데에 베팅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시스템을 믿고 있지 않냐." 사실 MBS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은행들의 양심이 불량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연준이 7개월동안 금리를 325bp나 급격하게 인하해서 모든 채권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시점부터는 파산위험이 금리하락분을 상쇄해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맞았겠지만, 부동산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 않은가. 그런 은행들이 매기는 시가평가가 하락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애초에 시장이 비합리적라는데에 베팅한 이들이 시가평가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것 또한 비합리적인 일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기억해야하는 것은 투자은행의 로비에서도 쫒겨나던 얼치기들이 베팅을 잘해서 수억달러를 버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시장을 거슬러 베팅하기로 결정한 마크 바움의 팀원들이 실사를 펼치는 장면이다. (그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로 수천개의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CDS를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모기지 집 주인들, 부동산 중개업자, 모기지 세일즈, 세입자들을 찾아가 일일히 면담했고 심지어 그들 중 하나인 스트리퍼를 만나기까지 했다. 그는 평생 살면서 자신이 마주칠 일도 없던 사람들을 일일히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조롱을 참아가며 실사를 마친 뒤 베팅에 나섰다. 99대 1의 베팅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의 99배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시장에 맞선 베팅기회는 십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인데다 그 기회를 포착하려면 백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머지 시간은 시장에 순응한 이의 몫이다. 지난 한달간 개미들이 세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이 코스피 인버스인데 우리 한국 시장에 마이클 베리와 마크 바움 꿈나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마이클 베리는 비관론이 최고조일 때가 아니라 낙관론이 팽배할 때 시장을 거슬러 베팅했고, 마크 바움은 시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접 자기 발로 뛰어 밝혀낸 뒤 행동에 나섰다. 악재가 터진 뒤 시장이 붕괴한 뒤에 방구석에 앉아 신문기사 몇개 읽고 인버스를 사는 것은 Big Short이 아닌 그저 small gamble일 뿐이다.

2020. 5. 5.

착한 건물주, 못된 정부 그리고 빵구난 지준

착한 시리즈가 유행이다. 우한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나빠지자 정부가 앞장서서 임대료를 인하하는 착한 건물주 운동을 선도하더니, 이제는 또 사지도 않은 물건의 대금을 미리 납입하라는 착한 소비자 운동을 외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정부는 4월 건보료를 예정대로 걷었고 6월 1일 기준으로 부과될 종부세의 공시지가를 십여년만의 최고치로 올렸으며 공기업/공무원들의 임금을 줄이거나 그러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 얼마나 파렴치한 짓인가. 타 경제 주체들에게 착해질 것을 요구하면서 정작 본인은 반대로 행동하다니. 임대료를 내리는 건물주가 착하다면, 기회를 틈타 세금을 더 올리는 정부는 못된 정부인가.

윤리적으로 무차별한 경제활동에 착하다는 도덕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지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걱정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연달아 빵구나는 지준이다. 지준이란 지급준비금의 약자로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해야하는 지급준비금적립액의 적수를 의미한다. 모든 은행은 고객 예금의 일정 부분을 중앙은행에 예치해서 자신들이 고객의 예금인출에 대비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하는데, 간단히 말해 모든 은행은 매달 특정 날짜에 중앙은행에 특정 금액을 예금해야한다. 만약 이를 못 맞추면? 우리 세련된 금융인들은 이를 전문용어로 빵구났다고 하는데 자금부에 오래 계신 분들이라면 이 용어를 듣자마자 문득 조인트가 얼얼해지는, 그런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키는 마술적 단어라고나 할까.

아마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 금융시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이 시스템이 어떻게 운용되고 돌아가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지준이 금융시장의 주목을 받은 적이 두번이나 있다. 올해 1월에 사상최대의 지준적수가 대량으로 발생했으며 이어 4월에 다시 한번 빵구가 났다. 상세한 내용을 공개된 자리에 쓰기엔 적절하지 못하지만(과거 경제전망을 맞췄다는 이유로 미네르바를 색출해 기소한 무시무시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길), 아마 각각의 날짜로 기사를 검색해보면 대충의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뒤의 실상은 기사에 설명된 것 보다 더 심각했다고 생각하길. 그러나 그 원인은 분명하다. 정부의 실패. 2020년이 시작한 지 고작 4달밖에 안되었는데 그 중 지준이 빵구난게 벌써 두 달이다. 그리고 두번 모두 정부가 시장에서 대규모로 자금을 환수하거나 지급일정을 바꾸며 벌어진 일이다. 열심히 일하는 기재부/한은 사무관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는 순전히 그들의 잘못이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진 배경은 블로그에 쓸 수 없으니 지인들이 있다면 한번 물어보시라.

작년 미국에서 9월 그리고 12월에 일어난 대규모 단기자금시장과 비슷한 일이 올해 1월 4월에 한국에서 벌어졌지만, 그 배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이 지준부족사태는 현재 한국경제에서 벌어지는 일의 축소판이다. 정부는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으며, 정책이 필요한 순간에도 가장 멍청한 방법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빵구난 지준처럼 올해는 세수도 빵구나고 정부보조금도 틀어지는 등 각종 정책이 빵구나는 해가 될 것이지만 관료주의와 정치에 가려, 그 실수들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내일이 바로 5월의 지준일이다. 또다시 지준이 빵구나는 일도, 또 정부가 못된 짓을 하는 것도, 그러면서도 경제주체들에겐 착하기를 강요하는 것도 보지 않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합리적인 나라에 살고 있지 않다.



2020. 4. 26.

제로유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

  • 작년 여름의 한 글(링크)에서 언급했듯 모든 기술적 지지선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0이다. 다양한 파생상품을 접해온 사람이라면 유럽의 장기금리가 마이너스를 찍은 마당에 WTI 유가가 마이너스를 가지 말란 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겠지만, 아니 이해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어떻게 유가가 마이너스를 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쉽게 풀어보기로 한다.
  • 모든 재화는 저마다의 활용가치를 지니겠지만 마찬가지로 비용을 발생시킨다. 당장 당신 집앞의 주유소에서 휘발류를 공짜로 나누어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집안의 온갖 드럼통과 용기들을 모두 가지고 주유소 앞에 줄을 설 것이다, 당장 쓰지 않을 기름을 모으기 위해서. 하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주유소는 기름을 공짜로 뿌리는데 당신의 집안에는 휘발류냄새가 진동을 한다, 흉측한 드럼통때문에 거실에는 당신이 오갈 공간조차 부족하다, 그지경이 되면 얼마간 버텨보던 당신은 기름을 버리러 통을 돌돌 굴려가며 가지고 나간다. 하지만 쓰레기 하역장엔 당신같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주유소 앞에 줄 서있던 사람들은 이제 분리수거장 앞에 다시 줄을 선다. 이제는 휘발류를 처리하는데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그때의 휘발류 가격은 당연 마이너스겠지.
  • 상품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당신이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쓸만한 의자와 TV를 버리기 위해선 구청에 과태료를 내야 하며 가끔 신문에선 농민들이 배춧값이 폭락해 밭에 불을 지르고 돼지를 땅에 묻는 것을 보곤 한다. LA에서 오래 산 내 친구는 캘리포니아에선 오렌지가 굴러가도 거지도 집어먹지 않는다는 농담을 던진다. 단지 이번에는 텍사스 유가가 오렌지가 되었을뿐이다.
  •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하는 대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마라. 수많은 증권사, 헷지펀드 심지어 레이 달리오조차 그랬으니까.(그는 사실상 자신이 통화속도의 풋옵션을 팔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수를 두번 저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정말 유가에 대해 반등의 확신이 있다면 차라리 정유사 주식을 사는 것이 낫다.
  • 지금 이 말은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이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한다. 수많은 전쟁에서 영웅들은 자신들이 가장 경시하던 위험 때문에 무너지곤 했다. 적어도 금융시장은 그랬다. 선진금융시스템과 시장원리를 과신하던 월가는 바로 그 이유로 파산할 뻔했고,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던 리만직후의 세계는 디플레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고 현재 우리 모두는 인플레이션을 마치 지난 세기에 멸종된 생명체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다음 10년은 인플레이션이 한밤중의 도둑처럼 닥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닥쳤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을 것이고 그 결과 역대 가장 큰 버블사이클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 그 이유는 다음 셋과 같다. 하나-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아예 잊은 각 정부는 우한코로나사태 이후 수요가 회복하기 시작할 때 출구전략을 제때 시행하지 않을 것이고,  둘-2014년에 시작된 상품시장의 베어사이클로 인해 CPI는 실제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며 셋-코로나사태로 엄청나게 재정적자를 늘린 각 정부는 실질부채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허용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유효했던 투자전략이 다음 10년간 통용된 적은 많지 않으며 아마 포스트코로나의 시대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적 생물학

1. 아마 기원전 1만년 전 쯤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했다면(그리고 그들이 우리와 아주 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면) 털도 없고 강한 근력이나 이빨 혹은 날개도 없는 호모 사피엔스가 조만간 이 행성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압도적 성공이 우리의 뛰어난 지능과 이성에 있다고 주장했고, 인류학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화석들이 대량으로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들은 현생인류보다도 더 늦게 출현했으며 놀랍게도 우리보다 더 강한 근력과 더 큰 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250cc나 더 큰 두뇌를. 이 차이는 우리보다 약 140만년 앞서 탄생한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인류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은* 보다 힘세고 영리한 네안데르탈인들을 멸종시키고 호모 종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승리자로 남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답은 집단의 규모에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고작 20-30명의 무리로만 구성된 반면 호모 사피엔스들은 100명 이상의 집단을 구성할 때도 있었고 때때로 다른 무리와 연합하여 그 이상의 규모를 이루기도 했다. (현대 가장 큰 집단인 중국의 인구는 15억 이상이다.) 그러니 아무리 개개인이 뛰어난 네안데르탈인조차도 호모 사피엔스들의 집단 공격을 이겨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증거는 우리의 행동양식에도 깊이 남아있다. 침팬치와 같은 타 유인원들은 아무리 가까운 친족에게도 결코 자신의 새끼를 맡기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과 유전자가 전혀 섞이지 않은 이웃에게도 아이를 맡긴다. 이렇듯 우리의 생존 비결은 바로 집단화, 사회학적인 단어로 사회화에 있었다. 태초부터 사회주의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생존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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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단화를 곧장 사회주의로 연결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 둘은 필연적으로 이어져있다. 대규모의 집단을 이루려면 분업이 필요한데 구성원들끼리 생산물을 공유한다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집단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식량을 찾을 수 있을지 알수 없다면 누군가는 가젤을 잡으러 가고, 누구는 낚시에 나서며, 어떤 이는 과일을 따러 갈 것이다. 해질녘에 돌아온 그들이 모였을 때 실패한 이들에게도 자신의 수확물을 나누어줘야 내가 실패했을때 저들도 나에게 식량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첫 발생부터 큰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면 이런 평등은 후천적 학습이 아닌 우리의 본능에 기인해야 한다.

이는 한 심리학실험으로 입증된 바 있다.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카타리나 하만 박사는 3살짜리 아이들을 둘씩 짝지어 줄을 동시에 잡아당기면 장난감 구슬들을 얻지만 한 쪽에겐 3개, 나머지 한 명에겐 1개씩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실험에 참여한 75%의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구슬 하나를 상대에게 나누어주며 공평하게 2개씩 가졌는데, 이는 교육을 받기 전에도 인간이 협업한 상대에게 생산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참고로 침팬지들을 같은 실험에서 동료와 획득물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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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같은 방식으로 진화적 종의 경쟁에서 정점에 오른 생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개미. 당신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 아니더라도 개미와 인간에겐 많은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개미와 우리는 기후를 가리지 않고 전 대륙에 퍼져 살고, 둘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그렇다. 개미도 농사를 짓는다), 거대분업으로 생산한 먹이를 나누고, 또 빈번하게 전쟁을 벌이며 영역을 확장해 왔다. 그렇게 인간은 땅 위를 평정했으며 개미는 땅 아래를 정복했으니 이 두 종은 지구를 공평하게 반반씩 나눠가진 셈이다.

한낮 개체로서의 개미 역시 너무나 초라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위풍당당한 하늘소나 사나워보이는 사마귀에 비해 땅바닥에 떨어뜨린 잉크방울 같은 저 조그만한 개미를 보노라면 우리는 종종 그들이 땅 속을 지배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개미는 인간보다도 먼저 농업과 목축을 시작했으며 훨씬 더 철저한 분업과 계급에 의해 효율적으로 사회를 운영한다. 전쟁이 발생하면 몇몇 인간 전사가 그러하듯, 개미 역시 오로지 자살이 목적인 특공대까지 운용하곤 한다. 인간이 소뇌의 언어처리능력을 발전시켜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이끌어냈다면 개미는 독특한 유전자변형(개미는 수정시 정자에서 받은 유전자의 절반이 없어져 형제끼리는 유전자의 75%를 공유한다. 반면 대부분의 양성생식 동물은 형제끼리 50%만 공유한다.)을 통해 사회주의를 이룩했다. 진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생명의 나무에서 인간과 개미가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불구하고 동등한 진화적 성공을 이룩한 것을 보면 두 종이 채택한 사회주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진화의 계보를 그린 생명의 나무: 개미와 인간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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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에서는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혼용해서 썼지만 엄밀히 저 둘은 다르다. 아니 사실 대체로 같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표방한 독일과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이 맞붙은 2차세계대전의 기억 때문에 그 둘이 매우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만 이들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일 수 밖에 없다. 개미와 인간에게 성공을 가져온 것을 무엇이라고 명명하든 이는 결코 민주적이지도, 또 자본주의스럽지도 않다. 이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실패가 인간 본성에 반하는 정치시스템 때문이라고 배워온 우리 자유진영 사람들에겐 불쾌하리만큼 낯선 결론을 안겨준다.

어쩌면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비록 사회주의가 현대의 체제경젱에서 우월하지는 않더라도, 인간 본성에 맞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레닌이 연단에 올라서기도 전부터, 또 스탈린이 시베리아에 굴라크를 세우기도 전 부터 수도 없는 사회주의적 실험이 존재했고 또 하나같이 실패했지만, 인류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마치 달콤한 사탕처럼 계속해서 집어먹는다. 인간의 몸이 단짠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은 좀처럼 사회주의를 밀어내지 못한다. 넘어져서 코가 깨지기 전 까지는.

우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문재인의 사회주의는 이미 엇나가고 있고 때가 되면 대중은 그 부작용을 깨닫고 이명박같은 지도자를 찾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는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200석 이상 가져가며 개헌선을 넘겨 34년만에 헌법이 개정되는 것이었는데, 일단 그 선은 지켰으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앞으로 정치는 게속해서 시끄러울 것이고 또 대중이 현실을 깨닫기까지 더 많은 사건들이 터지겠지만 이들이 대한민국의 장래에 불가역적인 상흔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에 명시된 한은.*** 그래도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좌절에 빠진 이들을 위해  미국의 20세기 소득세율 표를 공유하고자 한다. 미국 뿐 아니라 모든 선진사회는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위치에 도달했다. 다행스럽게도 현 정부의 노선이 너무나 멍청하기 때문에, 그의 사회주의는 아래 수준에 이르기 전에 좌초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다들 너무 낙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의 최고세율 구간: 1916년 이전과 1925-31년을 제외한다면 1986년 이전 미국의 소득세 최고구간은 상당히 높음  

* 사하라 이남의 인류를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3-5%정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우리는 그 두 종의 혼혈 후손인 셈이다.
** 개미 외에도 벌이나 흰개미도 있다. 참고로 흰개미는 개미가 아닌 바퀴벌레의 아종.
***하지만 만약 개헌이 된다면 나는 곧장 영주권을 취득할 것이다

2020. 4. 12.

그놈의 갬성정치

사랑하는 사람과 입을 맞추는 그 두근거리는 순간에 "지금 이순간 내 시상하부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고 있어, 이건 우리가 종족번식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할 때마다 도파민을 분비시키도록 진화한 덕분이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부를까? 미친놈? 또라이? 병신? 쉘든? 사이코패스?

인간에겐 이성과 감성이 있고 이는 신이 주신 선물처럼 소중한 능력이다. 하지만 각자가 역할을 발휘할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이를 혼동하면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대개 감성이 나서야할 때 이성이 나서기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욱 흔하다. 왜냐하면 이성이란 진화의 단계에서 후반부에 생겨난 것인데 비해 감성, 즉 감정이란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존재하는 극히 말초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애기하는 지능은 대부분 이 이성을 측정하는것 아닌가. 따라서 머리가 나쁜 사람일 수록 이성 대신 감성을 쓰기 마련이다.

투표는 이성을 사용할 문제인가, 감성을 사용할 문제인가. 당연히 전자이다. 역사를 보면 대중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감성을 발휘해서 내린 정치적 결단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너무나 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다. 당장 눈물 줄줄 흘리는 아줌마들 몇몇이 통과시킨 민식이법이 얼마나 끔찍한 악법인지 보라. 정치는 전적으로 이성이 작용해야할 문제이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의 정치적 성향은 서로 다르겠지만 투표의 중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투표는 최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거르는 것이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을 합리적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 투표에 앞서 감성이 아닌 이성을 선택하길 바란다. 내가 가진 자산은 주식도, 연봉도, 부동산도 혹은 다른 무형자산도 아닌 바로 내 국적이며 한국의 국제적 값어치가 하락할 수록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 역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이 잘 되길 바라며 또 같은 국가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길 바란다. 특히 2030대 후배들이여. 투표하라. 소비하지 않는 고객들을 챙길 기업은 존재하지 않듯, 투표하지 않는 계층을 배려할 정당은 없다. 4050대를 위한 고용정책과 복지는 끝없이 늘어나는데 비해 2030대를 위한 정책은 지리멸렬한 이유는 바로 투표율에 있다. 부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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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자주 들리던 동네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다 예전에 종종 갔던 맛집을 찾아갔다. 맛집이라고 하지만 TV에 나올 정도는 아니고, 또 상권이 발달한 부잣동네도 아닌 뭐 그저그런 서민동네의 평범한 식당. 추리닝 입은 대학생, 등산복 입은 아저씨들과 같은 장삼이사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모여앉는 그런 곳. 홀로앉아 김치를 짝짝 찢으며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벙거지 모자를 쓰고 등이 무척이나 굽은 한 노인이 들어와 나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다른 손님들에게 하던 것과는 달리 식당주인은 그에게 음식값을 선불로 받았고 그 노인 역시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 국밥값을 먼저 치르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내 기억에도 그리고 그날에도 밥값을 선불로 낸 손님은 그 하나 뿐이었다.

어림잡아 80세는 되어보이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은 한 노인.  6.25를 비롯하여 날짜로 이름지어진 수없는 사건들, 3.15, 4.3, 4.19, 5.17, 5.18, 12.12와 같이 굴곡진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끝에 그의 허리는 휘었고 손톱은 누렇게 부르텄다. 그 고난의 시간을 함께 보낸 벗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이 고단한 노인은 홀로 밥숟가락을 든다. 하지만 그의 등에 업혀 태어난 우리사회는 그에게 국밥 한그릇조차 먼저 내어주지 않았다.

그런 소소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감성이 아닌 이성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더더욱 합리적으로 투표해야만 하는 것이다.

2020. 4. 9.

경제수장이 된 타짜들

영화 타짜에서 아귀는 구라치다 걸리면 손목이 날아간다는 가르침을 설파하다 잘못걸려 자기 손목을 날렸다. 그런 아귀를 잡은 고니조차도 벌벌 떨며 손목을 옷섶으로 숨기게 만드는 진짜 타짜들이 있다, 기재부와 한국은행에.

홍남기 부총리는 어제 2차 추경을 하지만 그 재원은 기존 세출을 아껴 마련한다고 했으며 2월 말까지도 코로나 그거 별거 아니라며 큰소리를 땅땅 치던 우리 팔불출 이주열은  6월 말까지 무제한 RP매입을 한다고 외쳤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타짜 아니겠는가.

경제가 어려워 총수요가 위축될 때 정부는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출을 늘린다. 그러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 바로 추가경정예산, 줄여서 추경이라고 한다. 즉 이 재정정책의 핵심은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인데,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하지만 적자내긴 무서우니 다른 지출을 줄인다는 소리는 그냥 추경을 안하겠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밑장빼기와 무어가 다른가. 주식시장은 그의 발언과 함께 반락했으니 과연 시장의 귀는 타짜들의 눈보다 빠르다.

은행시스템에서 신용이 위축되기 시작해 총통화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늘리는 것이 통화정책의 핵심이고, 또 중앙은행이 금리를 0%로 내리고 나서도 통화승수가 늘지 않아 자산을 직접매입하는 것을 양적완화라고 한다. 양적완화의 효과가 직접적이고 얼마나 강력한지는 연준이 여러번 증명한 바 있다. 한국은행 부총재도 "이 조치가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하긴 어렵다"고 밝히며 한국은행의 강력한 통화정책을 강조했지만 과연 이게 양적완화라고 할 수 있을까. 널 너무나 사랑해, 올해 여름까지는. 이라는 고백에 설렐 사람이 없는것 처럼, 코흘리개의 첫사랑보다도 짧은 3개월짜리 양적완화는 QE가 아니다. 그냥 남대문의 흔한 일수업자일 뿐이지.

추경이 아닌 것을 추경이라 하고 양적완화가 아닌 것을 양적완화라고 포장하는 저들의 손기술은 캬. 참으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경제가 무너지는데도 밑장이나 빼고 탄이나 돌리는 홍남기&이주열 콤비의 대담함을 보라. 홍경장과 남대문 작두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으리. 하지만 문제는 그 판에 앉은 호구가 당신이라는 것이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펼치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무역파트너들에게 스왑라인을 열어준 덕택에 시장은 빠르게 안정되었다. 하지만 타짜들의 손장난에 놀아나는 한국의 금융시장은 또다시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보나마나 홍경장께서는 3차추경을 발표하며 적자국채를 찍을 것이고, 남대문 작두 이주열은 무제한 RP를 6월 말에서 더 연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모가지가 날아가겠지. 여러분들이 진정 자신의 손모가지를 아낀다면 저 타짜들의 모가지를 쳐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