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서 가장 확실하게 수익을 내는 방법은 저평가된 자산을 매입하고 고평가 된 자산을 매도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보다 더 확실하게 장기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투자법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뇌는 반대로 작동한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우리의 오감과 이성은 주변 개체들의 편향에 쉽게 오염되기 마련. 따라서 우리의 뇌는 대중이 사는 것을 쫓아 사도록 작동한다. 하지만 모두가 매입한 자산은 역설적으로 가장 비싼 자산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모두가 웃는 날은 지속되기 어려운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견뎌낼 투자법을 찾고 있지만 어쩌면 그 해답은 그들의 주식 호가 창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재와 재정/국제정세가 상당히 유사했던 1960년대의 주식시장을 되돌아보자. 한국전쟁 종전 이후 미국의 주식시장은 15년간 약 3.7배 상승하며 연평균 11%의 수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이후의 15년 동안 조금도 오르지 못하며 예금만도 못한 투자수익률을 가져다주었다. 되려 고점에서 42%나 하락하기까지 했으니 무척이나 형편없던 투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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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이후 S&P500 주가 |
그런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동소득에 집중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투자기회는 대개 오늘날 저평가 된 자산들 중에 있다. 그리고 노동이야말로 지금 가장 저평가 된 자산이다. 자산 시장의 랠리로 사람들은 자신의 임금소득을 가볍게 여기고 있고 지금은 일반 대기업뿐 아니라 전문직 직종의 지인들까지도 본업보다 투자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지속되면 현재 크게 오른 몇몇 자산들의 요구수익률은 크게 재조정될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을 쫓아가는 자산과 그렇지 못한 자산 간의 명암이 크게 갈릴 것이다. 반면 우리들의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착실하게 따라갈 것이다. 여러 인플레이션 중에서 중앙은행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로 wage-price spiral로 인한 인플레이션인데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들이 여럿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저학력/저임금 계층의 임금이 고학력/고소득층의 임금보다도 더 빠르게 오르고 있으며 코로나 이후 노동시장의 공급 부족으로 이런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10년 전의 삼성전자 대졸자 초봉과 오토바이 배달부의 임금격차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 보자) 이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나는 가장 큰 원인은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과 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경제를 개방하면서 무려 15억 명이나 되는 값싸고 숙련된 노동자들이 세계로 쏟아져 나왔고 이런 노동시장의 변혁은*** 이후 세계가 낮은 인플레이션을 누릴 수 있는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노동시장은 더 이상 값싸고 젊지 않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시작된 반이민 정책은 노동시장의 비용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신 앞에 놓인 여러 선택지 중에서 가장 저평가되었으면서도 유망한 자산은 바로 노동이다. 모두가 퇴근 후 주식 스터디에 나서고 새 ICO를 검색하고 전혀 모르는 지역으로 임장을 다닐 때 자신의 노동 수익률을 높이는 데에 시간을 쓰는 것이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합리적인 투자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자들이 고과와 승진을 포기하고 해외 주식 창을 켤 때 당신은 실적을 내는데 집중하고 승진하고 연봉을 높여야 한다. 특히나 젊은 층은 현재 자산보다도 미래소득이 더 큰 데다 동년배 경쟁자들이 회사에서의 노동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한다. 1960년대와 같은 시대가 반복된다면 인플레이션을 가장 정직하게 따라가는 것은 바로 당신의 월급명세서가 될 것이다.
워런 버핏은 가장 위대한 투자자들 중 하나이다. 단기간에 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린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무려 반세기에 걸쳐, 또 고작 수백 달러의 투자금부터 수백조에 다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수익을 낸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전례 없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믿던 시기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낡은 투자법을 평가절하했지만 버핏은 살아남아 여전히 벤치마크를 상회하는 실적을 내고 있고 한때 그를 퇴물이라고 부르던 헛똑똑이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한 초과수익을 낼 수 있던 데에는 지독하리만큼, 때론 지루하리만큼 원칙을 따르는 지키는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난 주주총회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인플레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는 것입니다. 돈과는 달리 그런 기술들은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하락하지도 않고 달러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던 간에 그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항시 존재할 것 입니다"
나는 트레이더지만 정작 블로그를 통해 어떤 투자에 반드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적은 몇 차례 되지 않는다. 2015년에, 그리고 문재인 집권 초기에 한국 부동산을 사라고 했던 것. 그리고 코로나 직후 최대한의 레버리지로 자산을 매입하라고 권했던 것. 그리고 2021년에도 그를 유지해야 하지만 4분기부터는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등 단지 몇 차례에 불과하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틀렸던 것들도 많다. 비트코인에 대한 전망을 바꾼 것도 그렇고, 또 테슬라처럼 전망을 바꾸지 않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완전히 엇나간 것들도 있다. 하지만 경제 사이클의 큰 흐름에서는 대체적으로 맞는 쪽에 서 있었기에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그리고 그때와 같은 확신으로 이렇게 권한다.
"당신이 현재 가진 투자자산이 미래소득보다 작다면,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자산배분에 많은 시간을 쓰는 것보다 버핏의 조언을 듣는 것이 올바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재차 강조하는 탓에 오해할 수 있지만 상당히 높은 확률로 미국의 CPI는 이번 상반기에 정점을 찍고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8.5%에 달하는 CPI가 반토막이 나서 4%대를 기록한다고 인플레이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란, 경제에 내재된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둔화시키기 위해 상시 고금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시대를 의미한다. 2010-20년의 평균 인플레이션이 1.8%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향후 10년 평균 인플레이션이 3%, 혹은 그 이상을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은 장기금리 역시 과거의 평균을 큰 폭으로 상회할 것을 암시한다.
**연준은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거기에 중국을 필두로 한 개발도상국의 막대한 투자가 과거 낮은 인플레이션의 근본적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늘 장기적 가치투자로만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때론 자신의 명성이나 자본을 이용해 투자하는 대상에게서 가혹할 만큼의 수익을 얻어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