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31.

올브라이트의 브로치, 앙투아네트의 목걸이, 그리고 김정숙의 까르띠에

현대사에서 브로치로 가장 유명한 여성을 꼽으라면 지난 3월 22일에 작고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체코의 유대계 이민자 출신이었던 그녀는 미소 대립이 첨예하던 70년대부터 세계 외교사의 거두였던 브레진스키 밑에서 일했으며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외교 고문을 맡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직하고 유엔 대사로 임명되는 등 국제정치, 특히 동유럽과 소련 문제에 가장 정통한 미국인 중 하나였기에 여자였던 그녀가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부 장관으로 거론되었을 때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독재자 앞에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았던, 미국판 철의 여인과도 같았던 그녀는 동시에 수려한 패션 감각으로도 유명했다. 단순히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의상을 세련되게 소화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외교적 메시지를 브로치로 암시하곤 했다. 푸틴을 견제하기 위한 자리에 그녀는 미사일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였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그녀를 독사 같은 여자라고 비난하자 그녀는 이라크를 방문할 때 뱀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평화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엔 나비나 꽃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기도 하고 2000년 평화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해 김정일을 만날 때에는 미국이 진심으로 북한과 협정을 맺기를 원한다는 신호로 심장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했다. 결국 그녀는 적대 관계 종식, 평화 보장 체제 수립, 미국 국무장관 방북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북·미 공동코뮈니케 발표를 이끌어냈다. 나의 브로치를 읽어라, 라는 문장은 그녀의 외교술을 상징하는 말이자 자서전의 제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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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신구로 유명한 또 한 명의 여성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들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던 그녀는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음악과 예술을 좋아하던 공주였지만 이윽고 닥쳐올 험악한 시대는 교양과 우아함이 아닌 그녀의 피와 살을 탐하고 있었다. 어머니 테레지아 여제는 프러시아의 압박이 거세지자 가까운 협력자를 찾기 위해 오랜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혼인동맹을 맺기로 결정했고 그 적임자로 앙투아네트를 꼽았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서투른 프랑스어를 구사했던데다 오랜 적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던 탓에 프랑스 국민들은 그녀를 싫어했고 일부는 그녀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 앙뚜아네트가 사실은 동성애자라든지, 혹은 시동생과 불륜 관계라든지 등등. 그런 대부분의 가십들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대중들에게 그런 사실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그렇게 민중의 불만이 무르익어가던 시기, 그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 사건이 터졌다. 루이 15세는 자신의 애첩에게 줄 선물로 무려 200만 리브르에 달하는 고가의 목걸이를 주문했고 보석상 샤를르 뵈이머는 전 세계에서 540개의 다이아몬드를 모아 이 화려한 목걸이를 완성했다. 하지만 그 때 갑작스럽게 루이 15세가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난데없이 고가의 물건을 떠안게 된 보석상은 새 왕비 앙투아네트에게 이 목걸이를 넘기려고 했지만 재정이 빠듯했던 왕실은 이를 거절했다. 그때 사기꾼들이 보석상에게 접근했다. 그들은 왕비가 목걸이를 사도록 중재하겠다고 꼬드겼고 절박했던 보석상은 그만 속아넘어가 목걸이를 넘기고 만다. 무려 200만 리브르 짜리 보이스 피싱에 성공한 그 일당은 목걸이를 분해해 540개의 다이아들은 전 유럽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돈 떼인 채권자마냥 하염없이 대금 지급을 기다리던 보석상은 결국 왕비를 찾아가 잔금을 지불해 줄 것을 요구했고 눈이 휘둥그래진 앙투아네트가 진상조사를 명령하며 이 목걸이 사건은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냈다. 왕비 앙뚜아네트는 이 스캔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지만, 대중들은 타락한 귀족들의 사치와 방탕한 생활에 충격을 받았고 그 분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에게 향했다. 이후 이 소식을 들은 괴테는 목걸이 사건을 두고 프랑스 혁명의 서곡이라고 표현하며 이후 불어닥칠 피바람을 예고했고 사형을 선고한 혁명 정부의 앙투아네트 재판에도 이 목걸이 사건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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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한민국에는 김정숙이 있다. 지난 5년간 김정숙은 약 48회의 해외순방에 나섰는데 이는 이전 영부인들의 해외순방이 약 20여 회에 그쳤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1년 7개월 동안 해외순방이 중지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그녀는 매달 1번씩 해외여행에 나선 셈이다. 무엇보다 과거 영부인들이 해외순방에서 주로 교민들을 위로하거나 현지의 문화행사를 이끈데 반해 김정숙은 주로 관광지를 중심으로 순방에 나섰으며 교민 행사에 참여한 것은 고작 3회에 불과했다. 더욱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그녀가 순방에서 자랑한 막대한 양의 의상과 장신구들이었다. 샤넬, 막스마라, 에르메스, 루이비똥, 까르띠에 등 갤러리아 명품관을 1층부터 샅샅이 털어도 모자랄 만큼의 의상과 악세사리들이 화려한 조명과 함께 영부인의 온몸을 감쌌고 특히 런던 G20 정상회의에서 김정숙은 하루에 4벌의 다른 옷과 장신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실 영부인이 명품 좀 입은 것이 뭐 대수랴. 그리고 단언컨대 못생기고 살찐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정치인들과 배우자들의 씀씀이에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이들은 당신네들 아니었던가. 게다가 대중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청와대가 어떤 돈으로 그 명품들을 구매했는지 속시원히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수백만 원의 누비 옷을 판매한 한 장인은 보좌관이 5만 원짜리 현금다발로 결제했다고 증언했고 청와대는 영부인의 의상비 등 특별활동비 내역은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는 일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청와대는 계속해서 김정숙의 명품 사랑은 그저 내돈내산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국가행사를 관광기회로 삼고 공직자들을 여행가이드로 쓰는 영부인이 국고와 사비를 엄격하게 구분했을까? 무엇보다 공직자 재산 공개를 보면 문재인의 재산은 약 21억 9천만 원이고 그의 연봉은 약 2억 5천만 원인데 그리고 그는 그 돈으로 새 집도 짓고 명품도 사고 심지어 이혼한 딸의 생활비까지 대고 있다. 소득 편차가 매우 큰 여의도와 금융권에서 나는 문재인보다 자산과 소득이 몇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을 다수 보았지만 그 어떤 욜로족들도 저런 생활 수준을 누리지는 않았다.

이 논란의 정점에는 까르띠에 브로치가 있다. 탁현민은 이 브로치가 호랑이를 표현한 것이며 이는 인도와의 외교를 위한 것이었고 수 억짜리 정식 까르띠에 제품은 아니라고 둘러대고 있다. 하지만 누가 저걸 호랑이로 보는가, 또 누가 이게 까르띠에와 무관한 디자인이라고 하겠는가. 청와대는 애써 김정숙을 올브라이트나 앙투아네트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그녀는 외교 천재도, 속아넘어간 왕비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김정숙일 뿐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임기중 가장 많은 해외관광지를 다녀온, 동시에 가장 적은 교민행사에 참석한 영부인. 그리고 그 가운데 그녀의 남편이 우리에게 약속한 특활비의 투명한 공개나 국민세금을 아껴 쓰겠다는 말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다른 많은 공약들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영부인이 세금을 들여 수 억짜리 브로치를 구매한 것인지 아니면 공식 행사에 짝퉁을 차고 나간 것인지 알지 못한다. 슬프게도 둘 중 하나는 진실이다. 왜 창피함은 우리의 몫인가. 

김정은 동지가 주신 풍산개는 버릴지언정 표범 브로치는 꼭 챙겨가겠다는 김정숙 여사님

댓글 10개:

  1. 도대체 이해가 안갑니다. 어떻게 이렇게 표리부동할 수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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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반인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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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젠 박근혜 대통령이 왜 탄핵됐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순실이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아주머니가 비선이 아니라
    그냥 공무원 채용 했으면 되는데...
    하루에 세월호가 한대씩 침몰해도
    방역은 자랑스러운 성과...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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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조선후기 쓰레기관리들의 모습과 딱 맞네요 크크
    탄핵당한 전정권을 보고도 부패한 우남가,우덜식 네트워크를 대놓고 보여주는걸보니 흐흐

    한검사의 정의구현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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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스태그플레이션..그리고 불편한 인플레이션 시대가 오고있습니다... 주인장님의 자산시장 그리고 새로운 정부아래 부동산 시장 전망에 대해 궁금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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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택시장은 이제 모든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더이상 거시환경과 공급을 고려해도 저평가리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아직도 시장이 전반적으로 장기인플레이션을 저평가하는 중이라 그에 연동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른 자산들에 대한 전망은 이미 예전 글에 밝힌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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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검수완박 관련해서 너무 화가 납니다. 막말로 독재시절 시체 안수 도장 찍은건 경찰이고 도장 안찍은건 검찰인데.... 이건 제가 생각한 상호견제와 달리 상부상조 부패 정책입니다.. 민주당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해산의 정당으로 자리잡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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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나 검수완박이 통과된 모든 책임은 아마 다 국민의힘한테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수정이 안돼서 댓글 여러개를 지웠습니다 망할..) http://whitedwarf.egloos.com/4207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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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글쎄요 권의원의 실책과 이대표의 절반의 성공이란 워딩과 별개로 향후 헌법소원이 가능하고, 이 정국을 더 끌면 끌수록 민주당은 보수가 탄핵 당했을 때처럼, 조국사태 처럼 서서히 망할 거에요. 2020년에 총선을 이긴건 누누이 말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집권당에 힘을 몰아준 것이고, 저들이 패악을 부리면 부릴수록 2024년 총선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저들은 20년 총선 결과에 취해있고, 24년에 그 청구서를 받겠죠. 뭐 때문에 망했는지 모를거에요. 그들의 독선, 부패, 무능 등등 네탓이다 싸우다 갈라지고 서로 갈라먹기식으로 뒷방 퇴물 지역정당으로 남겠죠. 상설특검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특별법의 특별법이 나오지 않는 이상, 뭐 뻔합디다. 5/4 한동훈 후보자의 청문회 시청률 30% 넘는 순간 게임 끝이에요. 지금 한동훈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 안하고 민주당 검수완박 안의 허점 찾아서 수사 어떻게든 할 수 있도록 찾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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