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0.

살인자들의 선거법

사전투표를 앞두고 아버지와 식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정부의 국정철학은 스탈린이 다스리던 소비에트 연방에 가깝다고. 제1공화국에서 태어나 정치가 폭력과 너무나도 가깝게 맞닿아있던 시기를 살아오신 아버지는 그런 험한 말을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며 나를 나무라셨지만 나는 이들의 행태를 다른 순화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국민을 의도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들을 달리 뭐라고 부르겠는가. 

 

다른 나라들의 확진자 증가 추이는 이미 1월 초중순에 정점을 찍었지만 한국의 코로나 환자는 아직도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사이에 매일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로 사망하고 있다. 갑자기 한국에서 코로나가 악화된 주된 이유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방역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다른 해외의 사례들을 보면 바이러스 확산세가 정점을 찍기 전에 방역조치를 완화할 경우 확진자들의 수가 지수적으로 폭증했고 이런 패턴은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방역을 거듭 완화한 이 조치는 그간 정부가 밝혀온 가이드라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는 확진자 증가 추이가 꺾일 경우, 혹은 치명률이 현격하게 낮고 병상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 사망자의 숫자가 낮게 유지될 경우 방역조치를 완화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1월 16일 확진자의 숫자가 사상 최대치를 넘어 5천 명에 근접하는데도 정부는 첫 번째 완화조치를 내놓았으며 약 한 달 뒤 확진자의 숫자가 20배가 늘어나 10만 명을 돌파했는데도 두 번째 방역완화에 나섰고 그로부터 3주도 안되어 확진자가 30만에 달하는데도 다시 한번 방역지침을 대폭 완화했다. 심지어 세 번째 방역 완화는 역대 최대 사망자를 기록한 날 발표되었다, 그것도 본디 3월 13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방역지침을 전례 없이 앞당겨서. 하필이면 선거가 불과 1주일 남은 그 시점에.  
지난 세 달간 정부가 급박하게 갈아치운 방역정책 덕에 코로나 환자는 세계 1위로 폭증했고 전체 세계 인구 중 불과 0.7%에 불과한 나라에서 확진자 수는 세계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치라고? 위중증/사망자의 수도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고 이대로라면 인구의 0.1%가 매달 죽어나갈 텐데 위드 코로나의 목표가 이런 것인가? 아 자랑스러운 K-ill 방역. 즉 명백하게 방역정책의 목적은 코로나 관리에 있지 않았다. 되려 확진자 수를 황급히 늘리기 위해 취하는 조치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어째서인지 정부가 내놓은 모든 방역지침들은 선거에서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사망자가 폭증하는데도 방역지침을 완화한 것은 자영업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선거를 불과 2주 앞두고 그들에게 몇백만 원의 지원금을 살포하기도 했다. 게다가 선거 당일 기준 약 185만 명의 확진자들이 격리되어 투표권이 일부 제한되었는데 사전투표를 꺼리던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의 투표율 역시 자연스레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바이러스는 사망률이 높은 노인층, 다시 말해 야권 성향이 가장 강한 유권자들이 인구밀도가 높은 투표소를 오가는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살인자의 선거법. 스탈린스러운 이들의 선거전략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노영민 비서실장은 재작년 여름 시민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시 집회 주동자들을 두고 살인자들이라며 소리 높여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일일 사망자는 최대 6명을 넘지 않았고 확진자들의 수는 고작 300명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정부의 적극적인 방역조치 완화로 일일 확진자 수는 천 배나 많은 3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의 수 역시 2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정부가 방역조치를 완화한 1월 16일이래 코로나로 사망한 환자들은 무려 3336명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 코로나 사망자 412명의 약 8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이제 노영민과 기모란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들과 선거를 주도한 너희들의 면상에 이렇게 소리치겠다. 너는 살인자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죽도록 방치한 살인자들이다. 그래, 너희는 나치나 스탈린 같은 살인자들이다. 

그리고 이제 너희들은 이에 따른 응당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2022. 3. 6.

문재인이 쏘아올린 선거참사

친여당 성향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구성

여론이 불타고 있다. 지난 토요일 확진자들의 사전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의 투표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했고 일부 투표지들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아 다른 유권자들에게 건네지거나 방치되었으며 심지어는 분실되기도 했다. 이는 1987년 직선제가 시작된 이래 단 한번도 발생한 적 없던 유례없는 대참사이다.   

조직관리의 측면에서 보면 이런 대형사고가 발생한 이유는 자명하다, 문재인의 편향된 인사 때문이지. 능력보다 친분이나 이념 혹은 특정 정치인의 편의를 봐준 사람들로 구성된 인사는 조직의 올바른 운영과 성과보다 다른 목적을 중시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조직이 파행으로 운영되는 것을 방치하게 된다. 아니라고? 그 징후는 지난 총선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여러 유권자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선관위의 일부 조직은 선거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소수의 야권 지지자들이 결과를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선관위는 해당 주장에 대해 매우 수동적으로 반응했으며 일부 핵심 자료를 공개하기를 거부했다. 그 음모론에 살을 덧붙이고 뼈를 입혀 키운 것은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나 편집증 환자들이 아닌 바로 선관위 자기 자신이었다.  

그뿐인가. 작년 4월 보궐선거에서도 선관위는 친여 성향의 TBS의 ‘일(1)합시다’ 캠페인은 문제 삼지 않았지만, 야당이 제시한 ‘보궐선거 왜 하죠?’ ‘내로남불’ ‘우리는 성 평등에 투표한다’ 등의 문구는 못 쓰게 하였고 심지어 오세훈 후보의 아내가 신고액보다 세금을 30만 2천 원을 더(그렇다, 덜이 아닌 더) 냈다는 사실을 선거 당일 투표장 앞에 정정내역 공고문으로 배치했다. 과연 후보의 배우자가 세금을 30만 원 더 냈다는 사실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줄 사안이라 긴급하게 알릴 소식인가. 

하지만 선관위는 이 모든 논란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바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막강한 친여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파행적 운영을 비판하는 보고서는 윗선으로 전달될 때마다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을 것이고 이 조직을 감시할 여당은 그들을 옹호하기 바빳으며 청와대는 그 조직을 개편하기는 커녕 조해주 상임위원의 임기를 연장하는 꼼수를 부렸다. 다시 묻겠다, 이 대참사가 왜 발생했냐고? 문재인의 인사 때문이다. 외교가, 부동산이, 소주성 정책이 마찬가지로 대참사를 일으킨 것처럼.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란 한 국가의 운영이 최대 다수의 의지와 신념을 반영하는 시스템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그 핵심이 바로 선거이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절차적 정당성은 민주주의의 알파요 오메가나 다름없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모두 이 선거권을 가지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그런 선거가 전례없는 파국을 맞이했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믿음 없이는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오늘 선관위는 부정행위는 절대로 발생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선거법을 어긴 것이 부정이 아니라면 무엇이 부정이란 말인가. 그것은 아내에게 거짓말을 들킨 남편이 모텔방에서 후배 여직원과 나오다 적발된 상황에서 나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그런 되도않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권자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과거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는 동쪽의 소련을 치기로 결심한다. 유럽 제 1의 인구와 자원 그리고 방대한 영토를 가진 바로 그 소련을. 하지만 전쟁 초 소련의 군대는 너무나 허약하게 붕괴했다. 개전한지 불과 3개월 만에 붉은 군대는 약 2백만 명의 전사자를 내며 서부전선의 거의 모든 사단이 붕괴했다. 이렇게 커다란 피해를 낸 데에는 독일군의 우수한 작전수행능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스탈린의 군부 숙청이 큰 기여를 했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스탈린은 대숙청을 실시했고 이는 군 수뇌부 조차도 피할 수 없었다. 소련군 내에서 전차의 유용성을 알아차린 미하엘 투하쳅스키 원수는 물론이고 셀 수 없이 많은 장성/영관급 장교들이 시베리아 형벌지로 쫒겨나야 했다. 심지어 독소전의 영웅 주코프 원수까지도 이때 숙청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니 평범한 장교들은 어떠했겠는가. 거기에 소련군에는 정치장교라는 독특한 보직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군사경험은 부족하지만 공산주의 사상이 투철한 사람들로 채워졌고 이 때문에 일선 부대들은 혼란에 빠지기 일수였다. 개전 초기 키예프와 하르코프를 비롯한 많은 도시가 불타고 약 400개 사단이 분쇄된 데에는 스탈린이 저지른 인사참사가 상당부분 공헌을 한 것이다.   
   
이 정부는 이념 뿐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도 스탈린과 매우 흡사하다. 그가 실시한 파행적 인사는 경제, 주거, 외교, 금융, 방역을 짓밟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꽃마저 꺾어 쓰레기통에 쳐박았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비위중 하나는 바로 대통령의 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다. 자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문재인의 선관위를 불태울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가 불타도록 방치할 것인가.



2022. 3. 3.

사전투표하세요

 

지난 총선 이후 나는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유권자와 후보의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고, 또 그런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타인의 마땅한 권리를 억압하는, 일종의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윽박지르며 억압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 결과가 정치공학적으로 불리할지라도.

하지만 나는 사전투표에 나서는 것이 마땅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약 80% 이상의 유권자들이 반드시 투표에 나가겠다고 답하지만 실제 투표율은 그보다 늘 10%가량 낮다. 인간은 늘 자신의 의지를 과신하니까.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실천할 수 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지금쯤 멋진 전문직에 몸짱이 되지 않았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가 크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의지를 선거 당일의 당신이 배신할 가능성이 더더욱 크다. 산술적으로도 매일 20만 명의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린다면 선거 당일 약 115만 명의 유권자들이 자가격리 중일 것이고 그중 실제로 투표에 나설 생각이었던 85만 명의 유권자들의 마음은 지금과 사뭇 다를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 오랜 시간 트레이딩을 해오는 동안 내 전망은 수도 없이 틀렸으며 때때로 손절하고자 했던 자산이나 포지션을 제때 버리지 못했고 트레이딩의 원칙을 너무나도 많이 어겼다. 따라서 나는 3월 9일의 나 자신을 믿지 않기로 했다. 나는 사전투표에 나설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전투표를 꺼리는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권했다. 정부를 심판하고자 하는 당신의 의지보다 야당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여러 야당 지도부의 분노가 더 크다고. 그리고 선거에서 질 경우 우리가 겪을 후폭풍보다 그들이 겪을 고난이 더 클 것이다. 그런 그들이 사전투표를 택하지 않았는가.  

사전투표하세요.     

2022. 2. 26.

코리안 싸이코

 

운동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현실인식이 실제와 완전히 동떨어진, 일종의 가상현실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진중권 교수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늘 불편한 사실을 차단하고 자신들의 매트릭스로 도피한다고. 그리고 그 매트릭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이들의 눈에는 현실이 꿈이요, 자신들의 꿈이 곧 현실이다. 객관적인 지표로 보아도 이번 정권의 외교가 처참하게 실패했음에도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세계정세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있는 우리 586세대가 외교를 주도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우상호 의원의 발언을 보면 그들의 매트릭스가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있는지 알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두 발을 디딛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곳은 그 매트릭스가 아니지 않은가. 북한이 남한의 영토를 포격하고 우리의 땅에서 시민과 젊은 병사들이 죽어나가며 중국이 대만의 방공지역을 매일같이 침범하는데다 러시아의 탱크가 키예프를 향해 돌진하는 바로 이 현실이다.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도덕과 당위가 아닌 철과 피 뿐이다. 인류의 역사가 늘 그랬듯이. 그리고 그런 세계에 사는 정상인의 눈에 운동권들의 저런 현실인식은 미친사람의 절규처럼 들린다.

코리안 싸이코. 그리고 진짜 비극은 그 앞에 노스가 아닌 사우스가 붙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22. 2. 7.

평창 여자아이스하키 팀을 떠올리며

지난 2018년. 집권 2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성급한 대화에 나섰고 그 첫 희생양은 바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었다. 처음에는 공동 응원단과 올림픽 공동 입장만을 계획했지만 청와대의 누군가가 더 큰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과 북의 선수를 한 팀으로 묶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제안은 빠르게 현실화되었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로 선언한 직후 남한은 북에 단일팀에 대한 제안을 했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는 청와대의 발표로 최종 확정되었다.

개막식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팀 스포츠에 새로운 선수들을 편입하라는 주장은 얼핏 들어도 말이 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이념이 현실을 지배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념은 미사일을 불상의 발사체로 증거인멸을 증거 보존으로, 그리고 전과 4+범을 유능한 대통령 후보로 둔갑시키곤 하는데 불과 23명의 어린 선수들의 꿈을 찢어놓는 것쯤이야. 엔트리에서 탈락한 한 선수가 용기를 내어 그와 같은 결정의 부당함을 알렸지만 청와대는 각하의 권위로 그들의 목소리를 침묵시켰고 그 결과 선수들은 이름조차 낯선 외지인들과 호흡을 맞춰볼 새도 없이 떠밀리듯 빙판에 올라야 했다. 청와대는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공정이라 말했다.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유로 챌린지에서 3위,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2위, 세계 선수권대회 디비전 1그룹 A에서 2위에 오르며 착실하게 성적을 쌓아가고 있었고, 또 임진경 선수와 박윤정 선수는 한국 팀에 합류하기 위해 원래의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으로 귀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조국은 그녀들을 이념의 제물로 바쳤다. 결국 한국은 8개 국가가 참가한 대회에서 전패를 기록하며 개최국이 꼴찌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하고야 말았다.  

당시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릇된 철학을 가진 정치인이 젊은 선수들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고 미래를 유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비극에 눈을 감고 다수는 허황된 평화쇼와 내셔널리즘에 한껏 취해 있었다. 거의 전 연령에서 국민들은 이념과 쇼를 위해 선수들의 꿈을 앗아간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념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국민들의 허가를 받은 문재인 정부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는 그 선수들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비극을 감내해야 했다. 처음에는 천안함과 연평도의 유족이, 그리고 현역에서 복무하던 젊은 남성들이, 그리고 집을 찾던 신혼 부부들이, 그리고 구직서를 들고 회사를 오가던 취준생들이, 그리고 저소득 노동자들이, 그리고 자영업자가, 그리고 세입자들이, 그리고 곧 온 국민들이 평창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때마다 이념이라는 싸구려 독주에 한껏 취한 불량배들은 자신들의 의도는 선했노라고 국민들을 윽박질렀고 좌파 언론인들은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수구세력의 책동, 혹은 낡은 반공주의의 잔재라는 낙인이 찍힌 채 불태워졌던가. 하지만 그 희생자들의 명단에 청와대와 민주당 권력자들의 이름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들의 상처를 외면하던 국민들이 같은 정치인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뒤통수를 맞는 것을 본 그 어린 선수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치즘에 저항하던 한 목사의 시를 나지막이 읊지 않았을까.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누군가가 이 정부가 어디서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냐고 물을 때 우리는 마땅히 한때 해맑게 웃던 그녀들의 얼굴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2018년 평창 여자아이스하키팀 (남북단일팀 구성 전)

2022. 1. 28.

주식의 적은 누구인가(II), 그리고 뒤늦은 삼프로tv 후기

굳이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아마 지금쯤이면 물적분할을 통한 지주사의 디스카운트가 어떻게 우리의 자본시장을 망가뜨리는지 모두들 깨달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작년에 이루어진 상당수의 IPO들이 신규회사의 상장이 아닌 기존 상장사들이 사업부문을 분할해 상장시킨 회사들이었고 오늘 첫 거래를 시작한 LG에너지솔루션은 역대 최대 규모의 IPO를 단행하여 화룡점정에 올랐다.

거의 대부분의 오너들이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을 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와 같은 기형적 지배 구조에서는 물적분할을 택해야 남의 자본을 조달하면서도 오너들이 지배력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오너들이 너무나 적은 자본으로 너무나 많은 의결권을 가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불과 5%의 주식을 소유하고도 회사의 의사결정을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오너는 배임이나 횡령을 저지를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지게 된다. 내가 회사에서 100억을 빼돌려도 그중 내 손실은 5억에 불과하니까. 대부분의 비용은 생면부지인 나머지 95%의 투자자들이 지는 셈이다. 지난 몇십 년간 마치 클리셰처럼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던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구조, 기형적인 합병비율은 모두 오너들이 투자자들의 돈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늘리기 위해 자행되었고 최근 유행하는 물적분할은 강세장에 알맞은 또 다른 배임/횡령기법에 불과하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주장했듯(링크) 모두가 외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누군가가 5%의 지분으로 51%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나머지 95%가 온전히 인정받겠는가. 따라서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이런 잘못된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아니고서는 계속해서 잘못된 인센티브와 왜곡된 자본의 배분을 재촉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들이 지게 된다, 불쾌하고 기분 나쁜 할인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짓누를 것이다.

*               *               *

지난달 방영되었던 삼프로tv의 세 대선후보 인터뷰는 이를 대하는 명백한 차이를 드러냈다. 한국 증시의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으로 이재명 후보가 주가조작 세력과 대기업의 갑질 등 강자의 횡포나 불법을 근절해야 한다고 대답했다면 윤석열 후보는 자본시장의 제도를 정비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고, 안철수 후보는 한국 기업들이 선진분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셋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안 후보의 인터뷰였고 솔직하게 말해 윤 후보의 인터뷰는 끝까지 듣기가 괴로울 정도로 지루했지만 현재 한국의 자본시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윤석열 후보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오너들이 알짜배기 사업을 연달아 물적분할로 내놓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너들이 개인적 이득을 위해 사실상 주주와 회사에 손해를 끼쳤던 수많은 사건들이 모두 불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합법이었던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당시 미비했던 자본시장법의 틈새를 찾아 그를 이용한 것 아닌가. 이런 조건에서는 사법적 통제와 감시를 강화한다고 해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앨 수 없으며 오너들은 계속해서 주주들의 자본을 약탈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하는 제도는 폐지하고 잘못된 자본의 배분을 촉발하는 구조는 개선하도록 룰을 고치는 수밖에 없다. 아니고서는 언젠가 삼성전자는 메모리사업부를 물적분할할 것이고, 현대차는 전기차 사업부를 신설해 분할할 것이다. 

스포츠 시합을 뛰거나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재미있다. 하지만 해당 종목의 규칙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이나 따분하고 지루한 일이다. 농구의 3초 룰, 축구의 오프사이드, 야구의 보크 등.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스타 선수들의 시원시원한 플레이지 따분하고 복잡한 룰북이나 규정이 아니다. 하지만 메시나 스테픈 커리가 활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정하고 합리적인 규칙이 필요하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에서의 정부의 역할은 플레이어가 아닌 심판이고 그가 합리적인 규제와 제도를 마련한다면 스스로의 역할을 다 한 것이다. 혁신과 발전은 민간과 기업의 몫이고, 정부가 경제성장이나 주식시장의 가격목표를 정하는 것은 계획경제 시절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미국의 테크산업은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과 혁신을 견인했지만 이게 어디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나 트럼프가 해당 분야에 선구자적 안목을 가지고 육성한 덕분이었던가. 반면 그 경쟁자인 중국은 국가가 주도하여 자본과 인력을 해당 산업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혁신을 이끌던 창업자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감옥에 가고 성장의 결실은 소수의 권력자들이 독점하였다. 지난 몇 년 간 미국보다 중국처럼 변한 것이 비단 코스피 뿐일까.  

나를 포함한 많은 투자자들이 윤석열의 인터뷰를 미치도록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꼈던 것은, 물론 그의 답답한 눌변도 한몫했겠지만, 그가 선수가 아닌 심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관에서 근무하는 트레이더의 입장에서, 그리고 개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자본시장에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올바른 룰과 공정한 심판이다. 득점은 민간이 하면 되는 것이다. 자산이 오르든 빠지든, 코스피가 5천을 가든 2천을 가든 잘못된 투자를 한 사람은 실점을 할 것이고 올바른 투자를 한 사람은 트로피를 들어 올릴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부는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수를 제치고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올려줄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라 상대의 변칙 플레이를 막을 룰과 심판이다. 나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또 윤석열의 모든 공약들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간에 적어도 다음 정부는 자본시장에 대해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심판이 나타나기를 원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주관적으로 요약한 것이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2021. 12. 26.

아시아의 미래 5. 러시아의 진격, 주춤하는 NATO, 그리고 숨죽인 아시아.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당연히 일본이다(링크).* 그리고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반일감정의 근원이 70여 년 전의 식민 지배에서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당시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식민통치로 인한 조선인 사망자는 몇이나 될까? 거의 대부분의 조선인 희생자는 태평양전쟁으로 발생했으며 그 숫자는 7만-12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당시 조선 인구수가 총 2500만 명이었으니 전체 인구의 약 0.4%가 사망한 셈이다. 반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소전쟁으로 소련은 인구의 10-13%에 달하는 2500만 명이 사망했다. 연일 외신을 수놓는 푸틴의 공격적인 대외전략을 이해하려면 러시아인들의 깊은 트라우마부터 이해해야 한다.

2차세계대전 후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나토의 대립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 소련의 전략적 목표는 잠재적 적국인 서유럽과 소련 본토 사이에 최대한 넓은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독소전 초기의 전개 과정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스탈린은 이를 위해 극동의 전략적 요충지들을 미군에게 양보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최근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스탈린은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면 미국이 참전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김일성의 군사작전을 승인했는데, 미군이 중국으로 진군하게 되면 넓은 전선을 유지하느라 유럽의 병력을 증강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후 소련의 공포는 서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https://m.news1.kr/articles/?2714778#_enliple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자 스탈린의 철의 장막 역시 빠르게 해체되었다. 러시아가 위성국가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동구권 국가들의 내부 문제에 적극 개입하자 이에 시달리던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회원국들은 빠르게 나토에 도움을 청했고 얼씨구나 하며 이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와 같이 러시아와의 숙원이 있던 나라들은 물론이고 발트 3국의 약소국과 발칸반도의 다수 국가들도 나토에 합류했거나 가입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는 아무런 완충지대 없이 나토와 곧장 국경을 맞대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러시아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개
독소전 개전 직후 독일군은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 소련을 침공했지만 동쪽으로 진군할수록 전선은 넓어지는 데다 보급선이 과도하게 길어지는 바람에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서방의 군대는 과거 독일군의 공세종말점 바로 뒤에서 전쟁을 시작하는 셈이고 모스크바는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된다. 러시아는 단 한 번도 이런 불리한 조건에서 전쟁을 치른 적이 없다. 과거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러시아 침공에 실패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광활한 동유럽을 가로지르는 보급선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현재 나토는 러시아에게 이 자연 장벽을 제거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를 받아들일 나라는 없다. 게다가 푸틴의 커리어를 고려하면 그가 지정학적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리는 더더욱 없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사실상 러시아의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고 푸틴은 이에 적극적인 군사대응으로 응수했다. 2014년 그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 크림반도를*** 확보했고 동부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군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바이든이 아프간 철군으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자 푸틴은 더욱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 내의 문제에 정통한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나토에 가입하려면 주변 국가들과 영토분쟁 등의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푸틴의 군사행동은 단지 분쟁을 부각시켜 나토 회원국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 국가들은 19세기 초 무분별한 군사조약 때문에 의도치 않게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린 적이 있으며, 따라서 나토를 설계할 때 상호방위조약을 넣는 대신 분쟁국가가 가입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나 역시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러시아의 플랜 A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플랜 B 없이 움직이는 군대가 있던가. 게다가 근본적인 문제는 서유럽과 러시아가 투키데스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세력이 다른 정치세력을 굴복시키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경제, 외교, 군사.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의 경제와 외교지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군사균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 후 유럽의 각국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감축에 나서는 등 마치 배당금을 타 먹듯 미국이 선사한 평화를 한껏 만끽했다. 반면 무질서하게 붕괴하는 것처럼 보이던 러시아는 푸틴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아래 안정을 되찾고 군을 재건하고 있다. 러시아가 계속해서 신무기를 개발하고 과거에 폐기했던 여러 군 프로젝트들을 재가동하는 동안 서유럽의 군사동맹은 지속적인 병력/군비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나토는 회원국들에게 GDP의 2% 이상을 군비에 쓰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만족시키는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면 8개 국가뿐이다. 게다가 점차 서유럽과 거리를 벌리며 이슬람주의로 회귀하는 터키와 대서양 반대편의 미국을 제외하면 나토가 가진 병력의 절대적 우위는 대폭 줄어든다. 현대전은 머릿수로만 하는 게 아니라며 젠체하던 미군이 아프간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자. 
https://www.nato.int/nato_static_fl2014/assets/pdf/2021/6/pdf/210611-pr-2021-094-en.pdf
이런 상황에서 나토가 동진하는 까닭은 명확하다. 서유럽의 핵심 회원국들은 군비를 확충하고 징병제로 회귀하는 대신 동유럽의 위성국가들을 대거 편입함으로써 자국의 부담을 줄이고, 또 과거 소련의 완충지대를 자신들의 완충지대로 편입하려는 것이다. 즉 쇠퇴하는 군사력을 외교와 지정학적 우위로 상쇄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결과를 낳고 있다. 나약한 동기로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것이 어떻게 성공하겠는가. 소련의 봉쇄정책을 이끈 조지 케넌은 나토의 팽창정책이야말로 미국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로 이는 러시아를 자극하여 상대가 미국이 가장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14년 크림반도 사태가 발발하자 거의 대부분의 외신들은 경제력과 첨단 무기의 격차를 언급하며 나토가 행동에 나서면 러시아가 패퇴할 것이고 서방의 경제제제로 경제적 타격을 받아 푸틴이 실각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크리미아반도를 강탈당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기만 했고 그들이 자랑하던 경제제제는 푸틴의 권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러시아 대중들의 분노를 자극해 그의 독재를 돕기까지 하였다. 메르켈을 마지막으로 당시 러시아에 대한 강경책을 이끈 나라의 지도자들 중 남아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정작 러시아의 경제적 위협에 시달리는 것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서유럽 국가들이다. 사용하지 않는 군사력은 의미가 없고 완벽하지 않은 경제제제는 매우 제한적인 효과를 낸다는 것을 북한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서방은 또다시 자신들의 힘을 과대평가했고 또 실패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루지야에서 패배했고 크리미아에서 또 패배했기에 이제 우크리이나에서 다시금 패배할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저 끝에서 발생하는 이 사건은 반드시 아시아의 정세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만약 서유럽이 무너져가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푸틴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지속적으로 확장에 나선다면 모스크바는 플랜 B와 C를 고려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 전략에는 반드시 아시아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토 군사력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군의 역량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중국과 공동 대응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양면 전쟁을 사실상 포기한 미군의 방침상 둘 중 하나의 전선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모두 신냉전시대의 최전방에 놓여있다. 미국이 셋 중 하나, 혹은 둘만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들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과거 역사를 보면 구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이 반드시 투키데스의 함정에 빠지던 것은 아니었다. 1등 국이 2등의 역량을 인정하고, 또 2등이 1등의 헤게모니를 용인하면 그 둘은 생각보다 평화롭게 공존하기도 한다.**** 지금 이런 지형의 변화는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미중이 좀 더 온건한 방식으로 서로의 영향력을 인정한 반면 서유럽과 러시아는 좀처럼 상대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약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 터진다면 그 주 무대는 또다시 서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평화 조건으로 성 안의 모든 무기를 내놓으라고 제안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사카 성을 지키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성 외곽의 해자를 메우라고 했다. 철저하게 수세에 몰린 카르타고와 히데요리는 모두 상대의 조건을 수락했지만 결국 적군은 철군하지 않았고 카르타고와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했다. 서방은 자신들이 로마나 도쿠가와처럼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지만 러시아는 과거보다 쇠퇴하긴 했어도 카르타고처럼 완전히 패전하지도, 도요토미처럼 몰락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토가 계속해서 우크라이나라는 해자를 메우라고 강제한다면 크렘린의 차르에게 남은 옵션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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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봄 아시아의 미래 4편으로 작성하던 내용이었지만 아시아와는 동떨어진 내용이라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는데 최근의 변화를 반영한 몇몇 내용을 덧붙여 완성했다. 사람들은 세계가 무척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이 어디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하다. 주식시장은 테크의 혁신에만 주목하고 잡스를 메시아이자 우상으로 여기는 스타트업들은 멋진 신세계를 외치지만 거기서 눈을 돌려 반대편을 보면 사회 내부 곳곳에 파괴적인 심리들이 응축되어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치안도 점차 불안해지고 있으며 지난 3백여 년간의 트렌드를 거슬러 세계는 통합이 아닌 대립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나스닥이 자랑하는 테크 기술들은 인류를 통합하기는커녕 더 빠르게 분열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대중들의 불만은 끓고 있는 압력솥의 밸브처럼 삐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증기를 내뿜고 있다. 그리고 그 징후들은 유럽의 각 지방의 분리독립 움직임, 남미의 좌파 정권들의 승리, 법인세 인상, 범죄율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역사는 이때 지도자들이 외부의 긴장을 유도하여 내부적 갈등을 해결하곤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따라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외신이 일간지 1면을 장식하는 날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계속해서 참사에 가까운 외교적 실수를 거듭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이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다음 대선에서도 우리의 외교는 다시금 부차적인 주제로 격하될 것이고 유권자들은 생존과 번영이 아닌 이념과 기분에 따라 표를 던질 것이다. 그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구한말 열강 사이에 낀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이 독립국으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웠다. 일부는 친러를, 일부는 친일을 또 일부는 친청을 외쳤고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목숨까지 내놓기도 했다. 과연 우리는 구한 말의 그들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지만 우리는 그 말을 되뇌는 것 외에 무엇을 배웠는가.  
 


*그러나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일본보다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도 전 소련군은 한반도에 진군하여 조선 전역을 점령할 수도 있었지만 미군의 요청에 따라 진군을 멈추고 38선 이남을 미국에 할애하기로 합의했다. 19세기 러시아가 안정적인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에 영향력을 투사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전략적 양보였다.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크림전쟁, 2차 세계대전의 세바스토폴 공방전 등을 떠올리면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