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3.

완장 찬 준초딩과 반장선거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화를 학습하는 곳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초등학교에서도 반장선거를 여는 이유는 어린아이들에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무, 그리고 마땅한 권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은 이 점을 구분하지 못한다. 반장은 학우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자리이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학우들을 지배하는 왕좌가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반장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고집 센 아이들이 있다. 어느 학급이든 반장이 언제 환경미화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주번을 정할지, 그리고 급훈을 무엇으로 정할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반장은 그저 회의를 주재하여 급우들의 의견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아무리 늦어도 초등학교 4,5학년만 되어도 이 사실을 알지 않는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만이 이 사실을 모른다. 이 대표는 윤석열 캠프와는 물론이고 최재형, 원희룡 당사자들과 공개적으로 충돌했으며 윤희숙, 홍준표 등, 심지어는 아군인 유승민과도 마찰을 빚었다. 대선을 불과 반년 앞두고 모든 대선주자들과 충돌하는 당 대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모두 그가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7월 여당 대표인 송영길과 만난 자리에서 이준석이 당의 공식적 입장을 정면으로 거슬러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독단적으로 합의한 사건은 그가 당론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당내 주요 후보들과의 마찰도 당사자들과 협의되지 않은 일정이나 행사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그와 지지자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나 토론회를 여는 것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그가 전례 없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혁신이 아닌 철저한 퇴보다. 박근혜가 당 로고를 빨간색으로 바꾸고 미래통합당이 파격적인 핑크색 로고를 동원하는 것이 혁신과 무관한 일이었듯 수십여 회의 토론회를 열고 토론배틀을 여는 것이 당의 혁신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저 철없이 신난 당 대표의 장기자랑 대회에 불과한 것이지. 게다가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가장 형편없는 토론자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나. 

당을 장악하고 선거에서 이긴 대통령조차도 이런 독선적인 결정을 내리면 당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는데 처음으로 이겨본 선거가 내부의 당 대표 경선인 30대 중고 신인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마당에 어떻게 마찰이 없겠나, 충돌이 없기를 기대한다면 멍청한 것이고 일부러 그랬다면 사악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당의 이미지 쇄신과 외연 확장을 기대하는 당원들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들과 당원들은 이제 그의 입과 페북에 따라 사분오열하여 네 탓 내 탓을 다투고 있는데 책임소재를 따지기에 앞서 대선이 불과 반년 남은 시점에서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을 보면 나는 그를 무능한 당대표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그의 미흡한 리더쉽은 성적으로 드러난다. 당내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와 쌈박질을 벌이는 돈키호테 같은 당 대표의 달갑지 않은 지원 덕분에 범야권 후보들의 지지율은 하락세에 있으며 여야 1위 후보의 양자대결 결과는 뒤집혔다. 이준석 대표의 말과 페북 포스팅이 20대 남성에겐 카타르시스를 주었을지 몰라도 그들보다 수가 몇 배나 많은 중도/무당층은 그에게서 반감과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아니 준초딩은 20대들의 홍카콜라에 불과하다.* 그리고 과거 박사모들의 청량한 홍씨 탄산음료가 어떻게 중도층을 쫓아냈는지 기억하자. 

어쩌면 일부 지지자들과 이준석 본인은 당과 후보들이 대표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면 이런 마찰이 없었을 것이라고 옹호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으면서도 위험한 발상이다. 대표가 당심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게다가 당 대표란 자리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리인데 이준석이 그런 노력을 조금이라도 보였던가. 태어나 처음으로 완장을 차 본 코흘리개 아이처럼 제멋대로 지시하고 자신의 지시를 무시한다며 역정을 내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이준석 대표가 당을 통솔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무능하고 독단적이기 때문이지 결코 어려서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와 정치경력과 상관없이 그런 리더는 실패했다. 게다가 자신의 무능으로 인한 실패의 원인을 타인과 사회에게 돌리는 것이야말로 여성우월주의에 적대적인 그대들이 가장 혐오하는 태도 아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판을 납득할 수 없다고 항변하는 젊은 꼰대들이여, 그렇다면 초등학교 앞에 서서 열 살짜리 아이에게 묻길 바란다, 내가 반장이니 내 마음대로 장기자랑도 하고 소풍지도 정하고 참가자들을 채점하고 상벌을 내리려고 하는데 학우들이 말을 안듣는다고. 인생 최대의 관심사가 초통령 유튜버의 근황인 그 어린아이들도 당신들을 힐끔 쳐다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저씨 그러시면 왕따 돼요"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토론으로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글이 바로 이전에 포스팅한 이대남과 테스토스테론의 저주(링크)라는 사실과, 이 블로그의 주 방문자층이 젊은 남성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준석이 모든 20대들에게 청량감을 주는 지도 심히 의문이다.

2021. 8. 7.

이대남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의 저주

때때로 어떠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표면의 존재가 아닌 부재를 살펴보아야 할 때가 있다.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것은 인류애지만 그가 동시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문다면 그것은 정치인 것처럼. 최근 붉어진 한 양궁 선수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20대 남성들은 안산 선수가 sns에서 사용한 몇몇 단어들 때문에 분개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지난 몇 년간 사회가, 그리고 주류 언론이 그들에게 엄격한 자가검열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이중잣대였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한 선수는 자신의 팬들에게 "노무노무 고맙습니다"라는 포스팅을 올렸다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고 한 유명 유튜버 역시 해당 문구를 자신의 영상에 삽입했다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나를 포함하여 저들의 인터넷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윗세대들이 보기에 오조오억이나 웅앵웅이 뭐가 문제냐며 젊은 남성들을 타박하겠지만 그렇다면 노무노무는 왜 문제가 되었나, 그리고 왜 우리는 그때 침묵했던가. 이대남들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말과 입이 억압당하고 검열당할 때 주류언론과 윗세대들이 소극적으로, 때때로 적극적으로 동조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표면의 웅앵웅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부재를 보아야 한다. 그들의 표현의 자유에 무관심했던, 우리 여론과 관심의 부재를.

그리고 지금 이 젊은 남성들은 우리가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 역시 표면의 현상에 집착하느라 수면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다시 정치적 오판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실수는 자신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               *               *

공권력의 성추행을 고발하여 명성을 얻은 박원순 시장이 공권력으로 성추행을 저지르다 들통나서 자살하는 바람에 열린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여당 후보를 57.5%대 39.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며 시장직에 복귀했다. 불과 1년 전에 서울 시민들이 여당에 지배적인 의석수를 안겼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분명 이는 엄청난 변화였고 그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그중 20대 남성들의 해석은 다분히 이색적이었는데, 오세훈 후보가 성평등 관련 질문들에 답변을 거부했는데 이런 반 페미니즘 선언이 유권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독특한 세계관은 젊은 이준석이 제1야당의 당 대표가 되며 더욱 강화되었다. 반 페미니즘을 외치는 젊은 남성이 구체제의 인사들을 제치고 당의 얼굴이 되는 것을 보며, 집을 마련하는 것도 취직도 여의치 않았던 20대 남성들은 최초의 정치적 승리를 맛보았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가장 커다란 패배는 모두 작은 승리로부터 출발했다. 이 두 사건으로 이십 대 젊은 남성들은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졌다. 마치 그들이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당 대표의 페르소나가 된 것처럼.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어야 한다.

19년 대선 총 투표수 (연령별/성별)

지난 대선은 20대 남성들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선거였지만 그들의 정치참여도는 여전히 처참하다. 지난 대선에서 20대 남성은 고작 228만 표를 행사했는데 이 숫자는 그들이 주적으로 여기는 40대 남성의 절반에 불과하고 심지어 동년배 여성보다도 50만 표나 더 적다. 산술적으로 보면 20대 남성의 정치적 영향력은 인천광역시의 투표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구월동의 한 주민이 선거 직후 우리 인천이 승리의 주역이라고 외친다면 그들의 현실 인식엔 크나큰 결함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착각은 야당의 당 대표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의 힘에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은 약 28만 명이고 그중 50대 이상이 72.8%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20대는 고작 3.9%, 30대는 7.7%에 불과한데 그런데도 이준석 대표는 43.8%의 득표로 2위 나경원 후보(37.1%)를 큰 표 차로 이겼다. 젊은 남성들은 젊은 당 대표라는 표면을 보고 있지만, 이 승리의 진짜 함의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50대 이상의 보수층이 정권교체를 위해 전략적으로 30대 당대표를 밀어 줬다는 데에 있다. 즉 이준석의 승리는 20대의 지지가 아닌 중년/노년층의 양보 덕이다. 게다가 책임당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핵심 보수층이 탄핵에 찬성한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원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또 전략적으로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젊은 남성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50-70대들의 양보와 협력을 자신들의 승리, 즉 그들의 패배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준석 대표는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내 주요 대선주자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합당 과정에서 안철수와도 파열음을 내고 있다. 당내에서 다수인 80%는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양보를 하는데, 소수인 20%는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각자의 옳고 그름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택은 대단히 위험하다. 정치적 소수가 다수를 무시하며 대립하기 시작하면 다음 양보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럼 소수집단인 2030대 남성들은 당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고립될 것이다.

이런 징조는 최근 안산 선수의 페미니즘 논쟁에서 드러난다. 웅앵웅과 오조오억이 젊은 남성들에게는 중요한 주제지만 그 위 세대들에겐 정말이지 생소한 문제다. 나 역시 당신들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그러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나보다 더 윗세대인 중년 노년층이 그를 어찌 알겠는가. 당신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도 당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중도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언론이 젊은 남성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는 거대한 어둠의 세력 때문이 아니라, 당신네들을 제외한 다른 세대들이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고립된 소수집단이 극단적 주장을 펴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프리퀼에 불과하다.  


젊은 남성들이 정치적으로 실수를 저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때 그들은 40대 민주화 세대와 연합하여 보수정권을 몰아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터무니없이 오른 주택 가격과 줄어든 일자리, 그리고 교육을 잘 못 받았다는 조롱과 모욕뿐이었다. 불과 4년 전 20대 학생들은 그 어느 계층보다도 충성스럽게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지만 오늘날 이들의 정치적 입장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특히 20대/남성/학생의 지지율은 4년 전 9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는데 이런 급격한 변화는 한국 정치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처음 정치판에 뛰어든 그들은 아무런 정치적 경험도, 식견도, 배경도, 지식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고 대개 그러한 오만은 패배를 부른다. 2017년 그들의 선택이 그러했듯이.

나는 진심으로 20대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길 바라며 그들의 목소리가 나라정책에 더욱 반영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더욱 영리해져야 하고 좀 더 성숙해야 한다. 국민의힘 당의 책임당원들 상당수는 탄핵에 반대했던 이들이며 아직도 그들은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배신자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박근혜 특검수사를 담당한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지지하고 있고 바른미래당 출신인 이준석을 당 대표로 뽑았다. 반대로 젊은 남성들은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홍준표를 대선후보로 뽑고 나경원을 지지할 수 있을까. 전략적으로 유연한 계층은 과연 누구일까, 파릇파릇한 20대 청년들이 골다공증으로 골골대는 노년층보다도 더 완고하고 고집 센 이 현상을 뭐라고 설명할까?

작년 주식시장에서 20대 남성의 수익률은 평균 3.81%로 전체 계층 중에서 가장 낮았다. 이에 관한 몇몇 논문들은 그 원인으로 남성호르몬을 지적한다. 평균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집단의 주식 수익률이 낮았는데 이 남성호르몬이 과도한 자기 확신을 야기하고 새로운 정보의 습득을 막으며 사고의 유연성을 억제해 수익률을 낮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현재의 20대 남성들의 정치적 태도와도 일치한다. 한때 문재인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던 계층이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으로 돌아서서 특정 사상과 특정 인물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강력한 자기 확신과 독단은 지난 2016-17년과 똑같이 닮아있다. 그 과정에서 연합해야 할 장년/노년층을 틀딱이라며 조롱하고, 그들의 양보를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를 원한다. 그것도 야권에서 1/5도 안되는 지분을 가진 집단이,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줄 나머지 절대다수를 분노케 하면서. 그런 현실인식을 가진 그들에게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부디 그들의 선택이 주식수익률과는 다른 결과를 낳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진심으로 당신네들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2021. 8. 4.

빨간구두



안데르센 동화 중 빨간 구두라고 알아?

소녀는 엄숙하고 경건한 정소에도 굳이 그 빨간 구두를 신고 가지.


그 구두를 신으면 두 발이 저절로 춤을 추게 되고

영원히 춤을 멈출 수도 구두를 다시 벗을 수도 없게 돼


그런데도 소녀는 빨간 구두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

결국 사형집행인이 나서서 소녀의 발목을 잘라냈지만

잘려나간 두 발은 빨간 구두를 신은 채 계속해서 춤을 췄어


억지로 갈라놔도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게 있어.

집착은 그래서 숭고하고 아름다운 거야.



나, 

이제야 내 빨간 구두를 찾았어.


 사이코지만 괜찮아 中


paint by Egon Schiele

2021. 7. 24.

에드바르트 뭉크와 뱀파이어

 

모든 예술가에게 저마다의 뮤즈가 있다면 에드바르트 뭉크의 뮤즈는 바로 죽음일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뭉크가 5세가 되던 해에 죽었고 몇 년 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큰누나마저 세상을 떠났다. 이어지는 비극을 견디지 못한 그의 여동생은 정신병에 걸렸으며 아버지는 가족이 파괴되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광적으로 종교에 집착했다. 노르웨이의, 아니 근대 유럽의 최고의 화가 중 하나인 에드바르트 뭉크의 음울함은 죽음으로부터 탄생했다. 

때때로 사랑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뭉크의 운명은 불행히도 정반대였다. 그의 첫사랑은 자유분방한 사교계 인사로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연애를 지향하던 보헤미안이었으며 동시에 치명적인 팜프파탈이었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들이 흘린 피 내음을 마치 향수처럼 온몸에 두른 그녀가 고작 스무 살짜리 풋내 나는 그림쟁이에게 만족할 리 없지 않은가. 6년여의 연애 기간 동안 뭉크는 그녀만을 바라보고 헌신했지만 그녀는 뭉크의 사랑에 오롯이 거짓으로 응답한다. 보헤미안 부인의 주위엔 늘 욕정에 불타는 남자들이 맴돌았고 그 가운데 뭉크의 순수한 사랑은 그녀에게 가벼운 키스나 갓 구운 마들렌만도 못한, 그저 작은 오락에 불과할 뿐이었다. 철저하게 농락당한 뭉크는 마침내 그녀를 떠나면서 일기에 그녀가 자신의 생의 향기를 영영 앗아갔다고 기록했으니 그에게 실연이란 마치 죽음이나 다름없었나 보다.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떠나보내던 것처럼.

그의 두 번째 사랑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는 다그니 유엘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지만 자유연애주의자였던 그녀는 베를린에서 만난 뭉크의 동료이자 건축가인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를 선택한다. 그야말로 잘못된 만남의 조연이 된 뭉크는 연인이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이 러브 스토리의 비극적 조연에 불과했다. 유엘과 프시비세프스키는 얼마 뒤 결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그녀를 놓지 못했던 뭉크의 영혼과 작품세계는 더욱 침전한다. 심연의 어둠으로. 첫사랑의 비극이 방종이었고 두 번째 사랑이 배신이었다면 세 번째 사랑의 비극은 집착이었다. 새 연인인 튤라 라르손은 그에게 깊이 집착하고 결혼을 강요했으며 대답을 회피하는 뭉크에게 자살하겠다며 협박한다. 한 손에 권총을 쥐고 죽겠노라며 울부짖는 연인을 말리다 실수로 총이 격발되고 말았다. 그녀의 가냘픈 손을 떠난 탄환은 화가인 뭉크의 왼손을 관통했고, 화약 내음, 폭발, 그리고 비명소리에 뒤이어 그의 손가락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후 그는 평생토록 독신으로 살았다. 그가 사랑한 모든 여자들은 일찍 죽거나 그를 배신하거나 상처 입혔으며 그에게 애정과 사랑이란 이윽고 밀어닥칠 처절한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뭉크는 술에 더욱 의존했고 폭음을 거듭했으며 불안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환각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핏빛으로 물든 하늘이 질러낸, 그 찢어질듯한 비명소리에 공황에 빠져 귀를 틀어막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 것인데 아마도 이는 비유나 은유가 아닌 뭉크가 실제로 겪은 환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뭉크가 처음으로 겪은 실연의 고통을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 바로 맨 처음 소개한 이 작품이다. 한 여자가 엎어져있는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다. 남자가 무슨 악몽이라도 꾼 것일까, 여자는 남자를 다독이고 있고 또 그들 위로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들이 흐르고 있다. 힘없이 늘어진 그들의 머리와는 달리 그녀의 오른팔은, 그리고 그의 왼팔은 서로를 간절히 붙들고 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음울한 어둠을 밀쳐낼 힘도 의지도 완전히 잃은 두 연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서로에게 절절하게 매달리는 것뿐인 양. 이 그림의 제목이 무엇일까? 사랑하는 연인들? 절망 속에서의 사랑?



작가는 이 그림에 뱀파이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뺨이 다소 창백해 보이지 않은가. 



*               *               *



나를 처음으로 미술로 이끈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세상에는 서로가 서로를 부수는 사이가 있다. 하지만 대개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과거 스무 살을 갓 넘긴 나 역시 그런 파괴적인 관계의 한 가운데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고 철부지였던 나는 그 수렁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지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 빠져나올 의지조차 없었다. 그녀가 나에게 뱀파이어였던 것처럼 나 역시 그녀의 목에 이를 박아넣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이 그림을 마주쳤고, 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제목과 이미지를 번갈아 보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마치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황무지에서 헤매다 앞서 이곳을 지난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낸 앳된 이방인처럼. 당시 길을 잃은 이가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그리고 그 작은 흔적들을 따라 다시금 걷고 또 넘어지고 또다시 절뚝이며 헤매고, 뭐 그렇게 어찌어찌하다 오늘날 여기까지 왔노라. 그러니 내일도 모레도 또 다른 이들의 자취를 따라 어찌어찌 살아가겠지. 당신들도 나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Kiss(1897) by Edvard Munch

2021. 7. 22.

다른 신흥국은 금리를 올리고 있을까


*

한국의 통화정책을 미국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마침 한 보고서에서 여러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에 대한 요약이 있어 간단하게 표로 정리했다. 우리는 선진국이 아닌 EM들을 하나로 묶지만 각각은 매우 다르다. 이들을 크게 둘로 나누면 저인플레이션 국가들과 고질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미 인상에 나선 신흥국들은 주로 후자에 속하는 그룹으로 대부분 1차 산업의 비중이 높고 수출품의 상당수가 원자재나 농산물이다. 그리고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한국은 여느 아시아 국가들처럼 낮은 인플레이션 그룹에 속한다. 그리고 그 나라들 중 단기간 내에 금리인상을 예고한 국가는 한국뿐이며 동시에 인상을 예고한 나라 중 CPI가 가장 낮은 나라 역시 한국이다. 한국은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매파적인 중앙은행이다.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산업, 젊은이들과 저소득층이 타격을 받은 것은 모든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자산시장의 급격한 상승을 겪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은행만이 인플레이션의 압박 없이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나섰다. 오로지 자산가격을 잡기 위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무모한 도전에 나선 한국은행, 단언컨대 그 짐은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아닌 한국의 한계계층에게 돌아갈 것이다. 대만의 국숫집보다, 폴란드의 취준생보다 그리고 태국의 여행사보다 한국의 경제적 약자들은 더욱더 고통받을 것이다. 오로지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


*위 도표는 향후 1년간 금리상승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정리한 것으로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2021. 7. 16.

파웰이 이주열에게 보내는 경고

미안하게도 또 한국은행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며 막장 너머 더한 막장을 보는 기분이라 다시금 이주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한국은행과 선진 중앙은행들의 대응이 얼마나 극명하게 대조되는지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썼는데 둘의 차이가 지난 24시간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난 적이 몇 없었으니까.
흰색: 미국 cpi      주황색: 한국 cpi

이번 주 발표된 미국의 6월 CPI는 5.4%으로 2008년 이래 가장 가파른 상승세 보였지만 파웰은 간밤의 청문회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잦아들 텐데 때이른 금리 인상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상원의원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강력한 어조로 저지했다. 반면 불과 몇 시간 뒤 한국 시간에 열린 금통위에서 이주열 총재는 6월 CPI는 고작 2,4%에 불과하지만 금리인상은 불가피하며 당장에라도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5% 이상도 문제없다는 파웰과 고작 2%에 화들짝 놀란 이주열, 둘 사이에는 분명 거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거시적 환경을 보면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극명한 차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되려 표면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은 미국이 2배 이상 높으며, 경제성장이나 통화량 증가율, 백신 접종 속도, 소매판매 회복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의 회복세가 한국을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웰이 출구전략을 늦추는 핵심 이유는 바로 고용시장의 더딘 회복에 있다. 코로나 이전 6.8%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아직도 높은 수준인 9,8%에 머물러 있는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하지 않다면 고용시장의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서 연준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행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자신들의 분석에 따르면 CPI가 내년엔 2% 선에서 등락할 것이니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지만 회복하지 못한 내수와 고용시장을 희생시켜서라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한다. 한국은행법 제1조 1항에 명시된 이 조직의 첫 번째 존재의의는 바로 물가안정인데 그들은 물가고 고용이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이젠 금리 인상 그 자체를 조직의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들은 계속해서 금융 불안정을 금리 인상의 빌미로 들지만 진짜 문제는 그 정책목표가 전혀 계량화되지 않았다는데에 있다. 금융 불안정을 어떤 지표로 측정할 것인가. 주식의 P/E?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은 절대적으로 보나 시계열로 보나 미국이 훨씬 높다. 주택시장의 PIR? 수급불균형으로 가격이 상승한 재화가 통화정책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부채 증가율? 지금 급증하는 부채는 정부로 인한 것이고 그걸 뒷받침하는 것은 급증한 가계저축률이다. 부채위험이 걱정된다면 기재부와 국회에 가서 따질 일 아닌가. 다른 중앙은행들이 정책목표를 더욱 구체화하고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과 정반대로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에 직접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추상적인 대상을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고, 고용시장은 아직 위축되어 있고, 서비스 분야와 자영업자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그것은 한국은행이 알 바 아니라던** 이주열. 그가 금리 인상을 서두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산 가격의 통제. 지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언급한 자산이 세가지 있었는데 바로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가상화폐였다. 그러니 이주열과 금통위원들은 강남 부동산과 삼성전자,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르는게 문제라서 금리정책으로 이를 잡겠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링크) 여기에는 개인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금통위원들은 개개인의 경제적 입장을 통화정책에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다. 아니라고? 2017년 첫 금리인상을 불과 두달 앞두고 상도동의 아파트부터 팔아치운 총재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금통위가 전세계에서 가장 매파적인 것이 금통위원들의 예금잔액과 비율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인 것과 완전히 무관할까? 이주열과 금통위는 통화정책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앞선 글에서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자산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은 고용시장의 회복세를 막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계급갈등을 낳는다. 당장 방역의 희생양이 된 20대 청년들을 보자. 미래의 주택가격과 주식 가격은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 공급이 충분히 많다면 그들은 미래에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이 미래에 적절한 직업을 가지고 소득을 낼 가능성은 극히 낮다. 실업상태에 10년 이상 놓인 청년은 결국 중년 알바생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그러면 주택 가격과 상관없이 집을 사지 못한다. 지금 청년들에게 시급한 것은 자산가격이 아니라 바로 구직과 소득이다. 물론 실업의 걱정이 전혀 없는 금통위원들에겐 오르는 비트코인과 아리팍 가격만 보이겠지만.  

아마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내 글을 본다면 발끈할 것이다. 과도한 자산 가격의 상승은 금융 안정을 위협할 수 있으니 초기에 통제해야 하는 것인데다 현재 추이를 보면 한국 경제가 부채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대외변수의 영향을 심하게 받기 때문에 미국처럼 정교한 통화정책을 펴는데 한계가 있고 이번 사태는 코로나로 인한 돌발적 변수 등 현재 한국은행의 행보를 정당화할 백만 가지 이유를 댈 것이다. 사실 그들의 말이 대부분 옳다. 무엇보다 일개 트레이더에 불과한 내가 통화정책에 특화된 이 조직보다 적절한 중립금리 수준과 인플레이션 경로에 대해 어찌 더 잘 알겠는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한국은행은 분명 연준과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으며 파웰은 자신과 반대되는 주장을 펴는 이들에게 명백히 경고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열린 금통위는 어김없이 제한된 인원만 참석한 채 유튜브를 통해 진행되었고 배석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작년 우한페렴이 창궐한 이래 한국은행은 계속 금통위를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어 예전처럼 기자들이 배석해 왁자지껄한 금통위를 보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여전히 마스크를 낀 총재는 아직 금통위를 유튜브로 진행해야 하지만 경제는 정상화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땅땅 치고 있었고, 반대로 마스크를 벗은 파웰은 상원 의원들과 대면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은 줄어들 것이며 고용시장이 아직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으니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은 틀릴 수밖에 없다. 고용을 위해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무릅쓴 파웰, 그리고 금리 인상을 위해 고용을 희생시키겠다는 이주열. 오늘 방역 당국은 여의도에서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국회와 여의도에 위치한 35개 금융사 전직원에게 코로나 검사를 권유했다. 오늘 낮 여의도공원의 임시검사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뙤양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줄 선 금융인들은 파웰과 이주열을 번갈아가며 떠올리다 아마 이 격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Don't fight the fed

마스크를 착실히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열린 금통위

다들 백신 맞았으니 마스크와 거리두기는 필요 없다는 미국의 상원과 연준의장,

과연 둘 중 누가 매파적이어야 할까?


하지만 트레이더로서 나는 한국은행의 실수를 무척이나 반길 것이다. 우리는 금리가 오를 때 수익을 내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또 그들이 실수를 되돌릴 때 돈을 버는 여러 방법이 있다. 또 금리가 오를때 오르는 주식이 있고 내릴때 강세로 가는 주식이 있다. 사실 그들이 실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가 돈을 벌겠는가. 트레이더의 입장에서 실수하지 않는 중앙은행이란 실책 없는 메이저리그의 투수처럼 까다로운 존재다. 게다가 나에겐 한은이 실기해서 성장성을 훼손하더라도 적절한 수준으로 회복할 때까지 견딜 자본과 소득도 있다. 다만 모두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뿐.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보낸다.


사족: 나는 정치인이든 관료든 모든 사람들은 개인적 동기를 정책철학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금통위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3명의 총재와 수도 없이 많은 금통위원들의 구성을 보았는데 그 중 이렇게나 현금보유성향이 강한 조합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통화정책을 운용하게 되면 디플레이션을 지향하게 된다. 다 잘라라***. 


*한국은행법 1조 2항은 금융안정인데 과도한 금융불안정은 향후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금융안정이 심각하게 위협받던 작년 2월 한국은행과 이주열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국가경제를 신용경색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우리나라 국회가 좀 더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면 청문회에서 이 점을 혹독하게 지적했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향후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는데, 쉽게 말해 별 관심이 없다는 말을 격식을 갖춰 말한 관용어구나 다름없다.

***실제로 자를 길은 없다.

2021. 7. 14.

금리의 온도

우리 모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분야의 아마추어 혹은 초보들이다. 그리고 그 둘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종종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다 오해를 낳는다. 나 역시 금통위를 앞두고 작성된 기사의 댓글들을 보고서야 왜 일부 대중들이 금리인상을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요구하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지난 1년여간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강력한 부양책을 사용했고 그 결과 금융시장이 발달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가와 부동산이 고점을 경신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주변을 돌라보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제 자산 가격들이 마천루보다 더 높아진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고 그런 정서는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전해 듣기론 모 재벌도 술자리에서 측근들에게 그런 푸념을 늘어놓았다고 하니 일반 서민들이야 오죽하랴. 

대중은 상대적 빈곤의 원인으로 느슨한 통화정책을 지목하고 있다. 우한폐렴의 지독한 상흔이 지나갔으니 어서 통화량 공급을 줄여 이 늘어나는 빈부격차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특히 한국에서는 끝도 없이 올라버린 집값이 사람들의 박탈감을 자극하고 있다. 규제로도 세금으로도 집값을 잡을 수 없다면 그 범인은 분명 통화정책 때문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때이른 금리 인상 기대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이 불은 꽁꽁 언 얼음을 녹이는 동시에 바짝 마른 종이를 태워버릴 것이다. 아니 얼음이 녹기보다 종이가 타는 것이 빠를 것이다. 금리의 온도는 당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매우 다를 테니까.

부문별 대출 연체 추이를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가계부채의 연체율이 가장 낮고 중소법인의 연체율이 가장 높은데 심지어 주택 담보대출은 대기업 대출보다 연체율이 낮은,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대출 중 하나라는 것. 또 우리는 연체율의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지원으로 코로나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중소법인과 신용대출의 연체 추이가 지난 1년간 크게 하락했다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각종 지원책들을 종료시키거나 거두어들이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정책의 영향은 경제주체와 부문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일부 대중들은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의 상승세가 잡히고, 따라서 빈부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이른 출구전략은 그들의 믿음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로 괴로워하는 몇몇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질 것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사라진 개인사업자들이 청산될 것이며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산업의 기업들도 투자를 줄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용을 줄일 것이니 구직시장에서 소외된 청년들의 취직이 회복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주택시장이 잠시 주춤하는 동안 취약계층과 업종의 소득이 크게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는 결국 빈부격차를 개선하고 서민들의 주택 구입을 용이하게 하기는커녕 반대로 악화시킬 것이다. 

흥미롭게도 내 주변 금융권 중 이른 금리 정상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 든 자산가들이다. 한국 가계가 소유한 금융자산은 금융부채의 2.2배인데 그 상당액을 중/장년층, 그리고 노년층 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자산가들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한다. 반면 가장 가난한 1분위 계층이나 젊은 층, 특히 학생들은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아 금리 상승은 그들의 소득을 갉아먹는다. 2020년 자료를 보면 순자산 기준으로 가장 가난한 1분위의 대출은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21.6%가 늘어났으며 그들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무려 81%에 달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득은 각종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17.1%가 감소했다. 같은 기간 5분위의 대출은 고작 2.2%가 늘었고 부자들의 부채비율은 14.5%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금리 인상이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타격을 줄지 너무나 명확하지 않은가.

금리를 결정하는 이들의 자산 내역을 보면 그들의 편향을 이해할 수 있다. 금통위원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임지원 위원은 약 71억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고 총재 역시 16억 원을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조윤제와 서영경 위원도 각각 22억 원의 예금을 보유 중이고 고승범 의원도 18억이 넘는 예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예금액은 모두 합해 반올림하면 200억이다. 이들이야말로 벼락거지란 말에 가장 속이 쓰릴 사람들이다. 불과 몇년 전에는 강남 신축을 몇 채나 살 수 있던 돈이 이젠 전셋값도 간당간당하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그들만큼 예금이 많다면 경제상황을 무시하고 금리를 올리고 싶지 않을까? 금통위원들이 가장 견실한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배경엔 이러한 편향이 있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아리팍과 샤넬, 그리고 포르쉐를 소비하는 현금부자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평균적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코로나로 타격받은 산업과 계층이 금리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건실한가. 그것도 가장 높은 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새롭게 실시하는 이 시점에서.

당신이 경제가 매우 견고하다고 느낀다면 코로나의 타격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금리 인상을 부르짖는 그대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축복받은 그런 운 좋은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처럼 축복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벼락거지의 기분을 느끼기 싫어 때이른 그리고 과도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것은 서민들을 진짜 거지로 만들 것이다. 각각이 느끼는 금리의 온도는 무척이나 다를테니까. 부디 나의 이 모든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출처: KOSIS



*사실 통화정책의 영향은 동일하지만 각 경제주체들이 현재 너무나 다른 위치에 있어 파급력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똑같이 초콜렛을 먹어도 당뇨환자와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