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6.

시장의 비명, 그리고 병신된 이주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2번째로 높게 올라간 공포지수 VIX
지난 열흘간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면서 수도 없는 시장 전망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절대 다수는 금융시장 참가자가 아닌 사람들이 상상력을 가미해 쓴 것이고 나머지 중 또 대다수는 금융인이라고는 하나, 트레이딩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쓴 뇌피셜에 불과하다.(얼마나 많은 금융권 종사자들이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안다면 놀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국제 금융시장을 가까이 관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끽해야 주식이나 환율 몇개나 볼 뿐. 물론 나보다 더 열심히 트레이딩하는 사람들도, 나보다 실적이 더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은 한글로 글을 쓰지 않거나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나는 지금부터 설명할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글을 쓸만큼 한가한, 딱 그 경계에 있다. 그리고 최대한 쉽게 써볼테니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보다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내 개인적 전망은 []로 따로 표시하겠다.

지난 글에서 금과 주식이 동시에 하락하면서 국채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는 신용경색의 대표적 징후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좋지 않을때엔 금이 오르고 채권금리가 내린다. 금이 내리면서 금리가 오른다면 경제(인플레)전망이 좋기 때문이라 주식이 오른다. 금이 빠지면서 주식이 하락하는데 채권금리가 내린다면? 역사적으로 그런 경우의 수는 딱 둘 뿐이었다. 하나, 금시장에 투기적 포지션이 과도하게 들어와 있었거나 둘, 유동성이 마르고 있을때. 그리고 지금은 적어도 첫번째 경우는 아니다.

두번째 신호는 자산 간의 상관관계가 부서지는 것이다. 대개 주식이 좋지 않으면 환율은 오르기 마련이다. 경제전망이 좋지 않으면 성장주보다 가치주가 선방한다. 유가가 오를때 정유/화학주가 강세를 가는 등, 모든 금융자산 사이에는 시장에서 널리 통용되는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투자자들은 이를 참고하여 투자를 한다. 그런데 지난 14일간 우리는 이들이 망가지는 것을 목격했다.

세번째 신호는 자본을 조달하면서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은행은 판사보다 목수에게 더 비싼 금리를 받고 돈을 빌려준다. 우리가 아무리 일본에게 지지 않는다고 외쳐도 국제금융시장은 국민은행보다 미즈호은행에게 더 낮은 금리를 받고 돈을 빌려준다. 금융기관끼리도 1주간 융통하는 돈의 이자가 1달간 운용할 자금의 이자보다 낮다. 그리고 지난 12시간 동안 자금을 조달하는 프리미엄이 빠르게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 모든 신호는 금융시장이 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비명소리나 다름없다. 그것도 연준이 50bp의 깜짝 인하를 단행하고 시장이 이달 말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준의 가장 과감한 안정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비명을 멈추지 못하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던 글과 같이 리만사태 이후 연준이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지 못한 적은 2011년을 제외하면 지금이 유일하다. 우리는 이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경제성장률을 수정하거나 아니면 기업의 실적을 하향하는 사건은 주가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수익률이 다시 올라가 다시 매입할 환경이 조성되지만, 신용경색이 일어나게 되면 가치평가와 무관하게 무조건 팔아야 할 압력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천억 짜리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의 입장에서, 만약 무역분쟁이 터져 메모리 수요가 감소한다면, 생산업체의 목표주가를 낮추면 끝이다. 실적이 100에서 80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만원이 아니라 8천원에 사면 되지 뭐. 설령 시장이 과도하게 하락해 7천원까지 간다고 해도, 버티거나 아니면 물타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금융시장이 붕괴하며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급격한 환매를 시작하면 펀드매니저는 무조건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주가와 상관없이 무조건 팔아야 한다. 심지어 주식이 저렴해 질 수록 사기는 커녕 더 많이 팔아야 하는 딜레마에, 그것도 잘 팔리는 가장 우량한 자산부터 팔아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다. 삼성전자와 개잡주를 들고있는데, 개잡주가 하한가라 팔 수 없으니 우량한 삼성전자를 팔아서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처럼. 이 단계에서는 가치평가와 미래 실적 예측은 아무 의미가 없다. 파산하느냐, 돈을 돌려주지 않고 고소당하느냐, 아니면 팔 것이냐의 기로에 있을 뿐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나는 현 상황이 금융위기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008년의 금융위기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는 것 외에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랐던 상황에서 맞이한 신용경색이었고, 지난 10년 간의 경험 끝에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의 한계는 0%라는 가상의 선이 아니라 상상력과 중앙은행의 의지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금리가 더 인하될 지, 또 신용경색이 얼마나 더 강하게 발생할 지 모르겠지만 중앙은행은 우한코로나 환자들은 구하지 못해도 금융시장은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할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개입이 시작되어 신용경색은 피하더라도 주식의 부진은 한동안 멈추지 않는다. 중앙은행들이 돈을 더 풀기까지 주식시장은 5% 폭락했다, 금리인하 소식에 도로 상승했다가 또 나쁜 헤드라인 하나에 폭락하는 상황을 반복할 것이고, 또 이렇게 변동성이 커지게 되면 각 투자자들은 자산을 재평가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좋은 자산이란 무조건 절대수익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변동성은 낮은데 투자수익률이 괜찮은 자산들이다. 거의 모든 투자자들은 이 기준에 따라 좋은 자산과 나쁜 자산을 구분한다. 허나 변동성은 순식간에 몇배로 커질 수 있는데 비해 투자수익률은 그러기 어렵다, 아니 현재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는 되려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회사의 기업가치가 변한 것도 아니고, 경제전망이 바뀌지 않아도 변동성이 커졌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좋은 기업이 하루아침에 나쁜기업으로 탈바꿈한다. 물론 투자자들도 바보가 아니니, 하루 이틀 혹은 1주와 같은 짧은 기간의 변동성만으로 자산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식의 급등락이 단기에 그치지 않고 한달 이상 이어질 경우 그들은 변동성을 새롭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은 2차 충격을 겪는다. [내가 이전 글에서 시장에 두번째 폭락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주식시장 변동성이 현재와 같은 수준에 이를 경우 이와 같은 프로세스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저점매수 기회를 노리는 사람은 1차가 아닌 이 2차 폭락기에 진입해야 한다. 저점을 정확하게 잡아내지 못하는 이상, 1차 폭락에 진입하면 대개 2차 폭락을 못견디고 손절하게 되기 대문이다.

[나는 우한코로나가 스페인독감과 같은 치명적 재앙을 가져오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이나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높은 사망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공포의 본질은 늘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치료제 제조가 임박하다곤 하지만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사망률이 뭐 한  2%에서 0.2%로 줄어들 뿐이다. 이는 의학적 관점에선 엄청난 발전일 지 몰라도 인간의 감정은 합리적으로 확률을 계산하지 않기에 공포를 크게 경감하진 못할 것이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길은 백신을 맞아서 면역을 갖추는 것 뿐인데 현재 전문가들 중에 백신이 3달 안에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시장의 공포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가장 불쌍한 투자자들은 연준의 깜짝 금리인하했다고 다음날 곧장 한국 주식을 매입한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2차 폭락은 아직 오지 않았을 뿐더러 역대급으로 무능한 한국은행 총재를 둔 덕에 전세계 금융시장이 신용경색을 일으킬 동안 한국은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앙은행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시장으로 남았고, 또 동시에 환시개입으로 환율수준을 찍어누르기 때문에  해외중앙은행들이 공급한 유동성이 국내로 흘러들어올 루트도 막은데 동시에, 환율의 자연스러운 조정으로 국내 수출이 개선될 여지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 인구당 확진자 수가 세계 1위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주식시장은 박살나는데 중앙은행이 완화에 나서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 국가의 미래를 거하게 말아먹은 케이스가 있다. 바로 옆 나라 일본. 이 블로그의 첫 포스팅(링크)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중앙은행장 하나가 어떻게 나라경제를 20년간 거덜냈는지 분석한 글이고 이를 작성한 지 자그마치 5년이나 흘렀는데, 놀랍게도 그 마지막 문단은 오늘날의 총재를 평가하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의 주장과는 다르게 디플레이션 압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고,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이미 디플레와 싸우기 시작했다. ........ 어쩌면 총재는 속으로 조직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잔다르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장은 그를 시대착오적 돈키호테라며 조롱했다.


5년이 흘렀건만 같은 병신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병신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20. 3. 5.

파리, 전쟁의 신 그리고 선거의 여왕


파리에 방문한 이들은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대개 역사가 오래된 도시는 구조가 엉망인데 파리는 한국의 왠만한 신도시보다도 더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 해질녘에 개선문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발 아래를 중심으로 곧게 뻗은 방사형 도로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대혁명 이후 반복적인 시민봉기에 시달린 정부가 적은 수의 대포로도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설계라고 하지만, 그런 섬뜩한 배경을 잊고 보면 이런 도시구조야말로 파리를 파리답게 만들어 준 것이다. 현재의 파리는 조르주 외젠 오스만 시장의 손에 재탄생한 셈이나 다름 없는데 그는 임기 내내 파리 전체 면적 중 거의 절반의 구조물을 부수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고작 몇백 몇천 세대에 불과한 재개발이 십수년 씩 걸리는 것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것도 수틀리면 왕과 귀족의 목을 뎅강 쳐내는 혁명의 도시에서.

두번째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건물과 도시구조가 1850년대 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파리 구도심에는 6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으며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거나 개보수하려고 해도 문화재관리당국의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 다큐에서는 개축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문화재관리국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계단의 난간이 아르누보시대의 양식이니 보존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건축기술은 100층 따윈 가볍게 넘길 정도로 발전했는데 도시 전체를 나폴레옹시대의 기준에 맞추고 있으니 파리의 거주여건이 좋을 수 없다. 평균적인 파리 시민은 소득의 약 1/3을 월세로 지불하고 있으며 1-3평 밖에 되지 않는 하녀방조차도 약 500-1000유로의 월세를 내야 한다고 한다. 이러니 인구가 집중될 수 없고, 인구가 모이지 않으면 혁신도 없다. EU내에서 프랑스의 경제적 위상은 나날이 하락하고 있으며 이제 유럽의 경제적 리더는 프랑스가 아닌 독일이라고 보는 시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다. 한때 런던과 경쟁하던 파리의 금융가 역시 순위에서 밀려나 제네바나 토론토 뿐 아니라 심지어 서울보다도 순위가 아래다.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하지만, 예술계와 미술품시장에서도 파리의 위상은 런던이나 뉴욕과 비교할 수 없다. 이게 무슨 굴욕인가. 과연 이런 현상이 파리의 낡은 도시구조와 무관한 일일까.

당시 오스만 시장의 도시계획은 분명 혁신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19세기가 아니다. 당시부터 경쟁하던 도시들 뿐 아니라 베이징, 도쿄, 홍콩에서 마천루들이 속속들이 올라가는 데도 파리와 시민들은 미래로 나아가는 대신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기를 택했다. 파리에서 시작된 대혁명은 상퀼로드와 삼색기와 함께 전 유럽으로 뻗어나갔고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이념적 토대가 되지 않았는가. 심지어 전제적 독재국가인 북한조차도 공식명칭에 인민이라는 두 글자를 박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거의 모든 근대국가는 프랑스 대혁명의 직계, 혹은 방계 후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 영광의 시대와 영영 작별해야 했다. 보불전쟁에서는 처참하게 패해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히고, 1차세계대전에서는 적의 영토에 한걸음도 진출하지 못한채 자국 영토가 쑥대밭이 되도록 방어전만 펼쳤으며 2차 세계대전에서는 6주 만에 파리를 점령당했으니. 그렇게 무참하게 무너진 프랑스인들의 시선이 자꾸만 과거로 향하는 것을 어리석다고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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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프랑스의 영광은 나폴레옹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동시에 그는 영광의 시대를 영영 끝장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남자를 황제로 출세한 코르시카의 촌드기 정도로 기억하지만 그는 혼자의 힘으로 한 시대를 열어젖힐 만큼의 군사적 재능을 지닌 천재였다. 그를 워털루에서 쳐부순 아서 웰즐리는 자신과 나폴레옹을 비교하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에도, 과거에도, 언제라도, 최고의 전략가는 나폴레옹일 뿐이오"라고 답했고 전쟁론을 집필한 클라우제비츠는 그를 가르켜 "전쟁의 신 그 자체"라고 평했다. 그와 그가 이끄는 혁명군을 꺾기 위해서 온 유럽이 총 7차례에 걸쳐 연합을 결성해야 했으며 그는 거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적들을 철저하게 분쇄했다. 그는 총 68회의 전투 중에서 60회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러시아에서 후퇴하기 전까지 그가 패한 것은 고작 3번에 불과했다. 오늘날까지 프랑스인들이 기억하는 프랑스의 영광은 거의 대부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지휘봉 끝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바로 그때문에 몰락한다. 나폴레옹의 군사적 재능이 너무나 뛰어났던 탓에 프랑스는 연합을 결성하고 적을 회유하거나 분열시키는 외교적 노력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전 유럽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간단한 외교적 노력으로도 풀 수 있는 문제를 두고도 그는 걸핏하면 군대를 동원해서 전쟁을 일으켰으며 상대에게 패배의 치욕을 안겼다. 어찌 보면 그의 몰락을 촉발한 러시아 원정 역시 불필요한 군사작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거듭된 승리과 믿을 수 없는 전과는 그가 적들을 가벼이 보게 만들어 이 무모한 도박판에 앉게 만들었으며 결국 그 한번의 패배는 혁명군의 몰락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그의 치명적 실수는 프랑스에게 호되게 당한 다른 유럽의 열강들이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독일의 통일을 방기하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자신의 이웃에 강력한 정치세력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주변국가들의 방해 탓에 독일은 본디 수백개의 크고 작은 공국과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나폴레옹의 패전 이후 전후체제를 논하던 빈 회의에서 동맹군은 프랑스를 견제할 목적으로 39개 국가와 자유시로 구성된 독일연합을 탄생시키기로 했고 이후 1871년 프러시아가 이들을 통합하고 독일제국을 세운 이래 프랑스는 단 한번도 독일을 넘어서지 못했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일어난 보불전쟁과 두 번의 세계대전은 큰 관점에서 독일이 유럽의 맹주 자리를 프랑스에게서 빼앗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성은 결국 본인과 당시의 프랑스 뿐 아니라 현재의 프랑스를 몰락시킨 것이나 다름 없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친필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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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치 아다다 같은 캐릭터로 전락했지만 본디 박근혜의 별명은 선거의 여왕이었다. 그녀가 1997년 이회창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이래 그녀는 거의 모든 선거에서 본인이나 자신이 지지한 후보들을 승리로 이끌었다. 2004년 탄핵과 차떼기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공멸할 상황에 처했을때 그녀는 당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를 차리고 낡은 이미지를 지닌 후보들을 쳐내고 새로운 정치 신인들을 등용하여 예전의 당세를 회복하기도 했다. 심지어 2008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의 계파가 주도하던 공천심사에서 박근혜측 후보들을 대거 탈락시키며 공천학살을 일으키자 친박계 의원들은 탈당하여 친박신당을 창당하여 여당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딴 팬클럽이 원내교섭단체까지 이루는 한국 현대사에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후 그녀는 18대 대선에 출마해 87년 헌법 이래 최초로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승리하여 다시금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증명했다. 혹자는 그녀의 성공을 아버지의 후광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박정희에겐 세 자녀가 있었지만 나머지 둘은 정계 가까이에도 가지 못했고 김대중 김영삼 등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거물정치인들이 있지만 그들의 2세들 중 정치인으로 성공한 것은 박근혜 뿐이다.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도,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녀가 선거때마다 보여준 저력을 폄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은 선거에서 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오만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된 것은 그녀가 전무후무한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지금 정부에서 보다시피), 보수대통령이 공격당할 때 사상 최초로 보수세력이 지원사격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거 한나라당을 재건할 때와는 다르게 그녀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적인 친이계 의원들 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지 않는 비박계 의원들을 공천에서 대거 배제하는 악수를 두었고 그 결과 새누리당은 의석의 과반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이어 자신의 정책을 비판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당청간의 갈등을 악화시켜 이후 그녀에 대한 탄핵투표가 실시되자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찬성표가 대거 쏟아져 탄핵안이 통과되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 기고만장한 우병우가 조선일보와 싸우는 바람에, 섹스비디오, 세월호인신공양설, 최순실 300조 등과 같이 자극적 뉴스들이 퍼져나갈 때 보수여론은 그녀를 감싸기는 커녕 함께 공격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결과를 초래했는지 상상하려면 현 문주당 정부가 악정을 거듭해도 한결같이 빨아주는 진보언론의 역할을 떠올려 보면 쉽다.

결국 전쟁의 신이 전쟁만 하다 망했듯 선거의 여왕도 자기 맘대로 선거를 하다 망한 셈인데, 그 여왕폐하께서 총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어제, 갑자기 지지자들에게 옥중서신을 보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중도표를 모으는데 유리할텐데 왜 목소리를 냈는지 궁금해서 그 편지를 찬찬히 읽어보다 잊혀진 그녀의 별명을 떠올렸다. 현 보수층은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사람들과 반대한 사람들의 어정쩡한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태극기세력은 민주당과 문재인 만큼이나 보수세력 내의 탄핵찬성파를 증오하는데, 과연 그들이 총선까지 마찰 없이 견고한 연합을 유지할 수 있을까? 20대 국회의 초선의원 중에는 친박계가 많고 아마 그들 중 다수는 공천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반발이 있을 것이며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은 으레 그렇듯 분당하거나 우리공화당같은 극우당으로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는 아마 중도표를 약간 잃더라도 자신을 빌미로 연합에 반대하는 극우세력을 막는게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6차 대프랑스동맹군에게 패한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됐지만 탈출해 다시 황제로 복귀했다 95일만에 쫒겨나 더 먼 세인트헬레나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평생 영애로 불리다 한 끗 차이로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는 구속된 지 약 2년여 만에 다시 여의도 정계에 승부수를 던졌다. 이 편지 한장이 그녀의 워털루 전투가 될지 아니면 선거의 여왕이라는 이름값을 다시금 증명할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2020. 3. 4.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 (feat. 이주열)

비단 금융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내기 마련이다. 때론 내가 투자한 회사 실적이 나빠져서 화를 내고, 실적이 잘 나와도 오너가 사고를 쳐서 주가가 빠지면 책상을 내려친다. 비오는 날 간신히 카톡택시를 잡아서 나갔더니 엉뚱한 사람이 이미 탑승해서 출발했댄다. 니미럴. 그 때마다 터져나오는 욕지거리를 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주열 씨에게 빡치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비록 연준이 2008년 이후 최초로 기습적으로 금리인하를 감행했지만 나는 한국은행이 이를 무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침에 부총재보가 주관하던 긴급회의를 총재가 이어받았을 때도 절대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총재는 이미 두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사람이고 나라짬밥을 오래 먹은 꼰대들의 행동패턴은 대체로 변하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총재는 2월 14일에 열렸던 긴급기자회견에서 금리인하가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엇다. 바로 그 직후 확진자 수가 폭증하고 최초 한국인 사망자까지 나왔다. 따라서 온 시장은 2월 27일 금통위에서 한국은행이 기존의 스탠스를 뒤엎고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DNA와 RNA의 차이도 모르는 총재는 그 믿음을 배신하고 우한코로나의 영향은 3월 중반에 곧 잦아들 것이라고 큰소리를 땅땅 치며 금리인하를 거부했다. 그 바로 다음날 부터 세계 경제는 패닉에 빠져 미국 주가가 5일간 18%나 곤두박질쳤으며 전세계 경제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랬던 인간이 연준이 긴급인하를 했다고 갑자기 인하를 한다고? 천만에. 늙은 개에겐 새로운 기술을 가르칠 수 없는 법이다.

이 추태는 한국은행이 오후 3시에 발표하기로 한 긴급회의 결과를 오후 3시 46분, 즉 한국거래소의 선물시장이 닫히고 나서 1분 뒤에 발표하기로 하며 정점을 찍었다. 왜 이주열은 자신의 결정을 시장이 닫힌 직후로 연기했을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똥고집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알고 있었고 시장의 평가를 예감하고 있던 것이다. 다만 하룻밤이 지나면 파웰이 나 대신 뭔가 해주겠지, 하는 기대감에 일부러 장 끝난 직후로 발표를 미뤘을 뿐.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금융안정이다.*금융안정의 기본 원리는 시장이 과열상태라면 금리를 올려서 진정시키고, 시장이 패닉을 향해갈 때 금리를 내려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선제적 조치에 있다. 경제가 나빠진 뒤 내리고 좋아진 뒤 올릴 것이라면 중앙은행은 뭐하러 존재하는가? 통계청에서 GDP 발표하며 그냥 같이 하면 되지. 그리고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우한폐렴의 급격한 확산을 겪은 나라고 다른 모든 나라보다 먼저 시장불안을 겪은 나라다. 미국보다도 더 빨리 정보를 분석하고 여파를 관측했을텐데 총재는 경제학 박사학위도 없는 파웰이 행동에 나설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연히도 한국은행의 정례금리결정은 우한코로나가 대대적으로 발발한 직후였지만 총재는 아무것도 안했고 연준은 다음 미팅이 고작 2주 밖에 안 남았지만 손 놓고 스케줄을 기다리는 대신 기습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금융불안을 대하는 두 중앙은행장의 차이는 첫 사망자가 나온 날 짜파구리를 먹은 문재인과 긴급기자회견을 연 트럼프 만큼이나 달랐다.

첫 사망자가 나온 날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상반된 대응


그럼 왜 총재는 금리를 동결했을까? 아마도 그는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자신)의 고유 권한이고 금리인하는 자신이 결정해야지 행정부나 시장 혹은 외부변수에 떠밀려 인하를 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2월 14일의 긴급회의에서 동결을 주장했다. 은성수와 홍남기는 개념없는 총재의 자신감이 어떤 비극을 초래할 지 알고 있었지만 책임을 지기 싫어 내버려뒀고, 우쭐한 총재는 당당하게 이후 이어진 "긴급해서 긴급회의는 했지만 긴급하지 않으니 금리를 인하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바보의 비극은 바보 짓이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는 2월 14일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2월 27일에 똑같은 실수를 몇배 더 큰 강도로 저질렀으며, 드디어 오늘 판돈을 몇배로 키워 연준의 결정에 반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는 재능없는 도박꾼들이 손모가지를 날리는 전형적 패턴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손모가지가 저 할배 손에 달렸다는 거지.

결국 오늘의 긴급회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상식적 예측과는 달리, 아마도 총재는 어떻게 해야 내 거듭된 실수들을 숨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면피를 할지, 그리고 언제 발표를 해야 가장 욕을 덜 먹을지 고민하느라 가장 중요한 하루를 소비했을 것이다. 오늘의 회의는 한국의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총재의 체면, 그 하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애초에 발표시간을 오후 3시로 잡은 것도 주식시장 폐장시간이 3시 반으로 연기된 것을 까먹고 잡은 것 아닌지 심히 의심된다.

청와대의 존재 이유는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권력으로 국민을 섬기기 위해서 존재한다. 한국은행의 존재 이유 역시 총재의 권한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데에 있다. 하지만 총재는 반대로 자신의 권위를 위해 통화정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보다. 금리를 올려야 할 때엔 올리지 못하고,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한 채 자신의 결정을 연준이 대신 해주길 바란다면 월급도 연준한테 줘야지. 이 블로그에서 여러번 주장했던 바지만 저런 총재가 존재하는 한 한국은행은 당장 폐지해도 될 조직이다. 아니, 폐지해야만 한다. 어차피 통화량 조절은 재경부에서 단기국고채 발행하면 되는 것이고 경제보고서와 전망은 KDI에게 위임하면 되고 통화증발은 어차피 조폐국이 하는 일이다. 금리결정도 연준에게 맡기고 쳐놀다 재경부에게 팔 비틀려 할 것이라면 애초에 한국은행을 없애고 업무를 분산하는게 낫지 않나. 대충 계산해보니 한국은행 제도를 폐지할 경우 무려 약 1억 장의 마스크를 국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수 있는데!

제목을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고 썼지만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쪼다가 하고 있다. 지금 그래서 한국은행 총재가 쪼다냐는 애기냐고? 그렇다. 국가정책과 미래, 그리고 통화정책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자신의 자존심을 앞세워 직무를 유기한 사람을 달리 뭐라고 부를까.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는 총재의 가오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믿는 분


*아니라고? 물가안정이라고? 그럼 어째서 물가는 11년째 한국은행의 목표수준을 하회하는가.


2020. 3. 1.

트럼프 긴급 기자회견

  • 뉴욕에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깼다. 어제 블로그에 썼던 것과 비슷한 내용을 친구에게 애기했더니, 분명 내가 이걸 보고 싶어할테니 깨운걸 고맙게 생각하라는 뻔뻔한 멘트를 날리면서. 에휴. 한숨 내쉬다가 대충 졸며 듣다가 그제서야 미국에서 우한코로나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 나라마다 전형적 공포영화의 클리셰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한 맺혀 죽은 귀신이고, 추운 지방에서 살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는 강시(얼어죽은 귀신)가 있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공포영화의 클리셰들은 그 문화권이 가진 가장 큰 두려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럼 미국 공포영화의 클리셰는 무엇일까? 바로 좀비다. 따라서 미국인들의 가장 큰 공포는 감염/전염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민족 이민자들로 시작한 미국은 필연적으로 병균과 바이러스의 용광로였으니까. 미국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뉴욕에서는 정말 세계 모든 바이러스와 세균을 채취할 수 있었다고.
  • 그런 두려움을 지닌 나라에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우한코로나 환자들이 발생했고 그 중 첫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별다른 공포가 없는 우리나라는 첫 사망자가 나와도 대통령이 짜파구리나 먹으며 히히덕대도 맞아죽지 않을 수 있지만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한국의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던 것은 자식을 잃은 한이었듯, 미국의 대통령을 갈아치울수 있는 것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다. 수 억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수십 조 원을 다루는 펀드매니저도 결국 감정에 휘둘리는 일개 사람일 뿐이고 그의 가장 근원적 두려움을 건드리는 일이 터진 것이다.
  • 자꾸 지난 전망을 수정해서 머쓱하지만 나는 이제 파웰 혼자서 시장을 구원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통화정책만 으로는 노동생산성의 향상도 없고 수요의 반등도 없으며 무엇보다 시장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지울 수도 없다. 공포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강력한 행정부 뿐이다. 나는 트럼프가 그럴만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가진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은 그를 확인할 때 까지 고통스러운 하락을 겪게 될 것 같다.
  • 비록 정제된 언어로 조심스럽게 언급하긴 했지만, 트럼프행정부는 한국의 일부 도시에 4급 여행경보를 걸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여행금지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노노재팬 이후 반년 만에 다시금 위기의 진원지가 되었는데 이 모든 일이 터지기 고작 몇일 전에 우한폐렴은 별 것 아니니 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며 큰소리 땅땅 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혜안이 너무나 눈부시지 않은가! 세계 최고의 생물학 전문가들이 포진한 한국의 중앙은행은 코로나의 종식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  

2020. 2. 29.

trading the fear

S&P500 weekly in log scale
어쩌면 지난 10년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오늘 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꼴딱 밤을 새웠다. 오늘 미국 주식이 반등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고꾸라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전략이 달라야하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 포스팅에서 나는 이번 베어마켓이 지난 10년 중 top5안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정정한다. 이번 주 미 증시의 폭락은 절대값으로는 물론이고 로그스케일*로도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세번째로 가장 커다락 낙폭을 보였다. 이보다 더 큰 폭락이 나타났던 적은 금융시장 종사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조차도 잘 알고 있는 IT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때 뿐이었다.
 
당신의 경력이 10년을 넘기지 않는다면 이제까지 익숙했던 투자패턴과 필승의 공식은 모두 잊어라. 역사적으로 드문 폭락이 시작될 때에는 지난 몇년간 지켜졌단 자산간의 코릴레이션이 모두 깨지고 시장은 당신의 상식을 벗어나 움직이게 된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폭락할 때 미국 테크 주식을 사면 좋다든지, 미국 주식은 코스피보다 아웃퍼폼 한다든지와 같은 상식이 모두 삐걱거리며 어긋나게 된다. 당신의 감을 믿지 말고 경험에 의존하지 마라. 당신이 리만을 겪어본 적이 없다면 이제부터의 시장은 당신이 겪었던 것과 매우 다르게 전개될 것이므로.
 
아마 이 블로그를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내가 지난 몇년 동안 세계 경제에 대해 별 다른 전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왜냐면 변곡점이라고 할 만한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분명히 변곡점에 있으며 지금이 12년 만에 처음 찾아온 민스키 모먼트인지, 아니면 흔하디 흔한 단기 베어마켓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나는 결국 세계 중앙은행들과 정부가 금융/재정 정책을 공격적으로 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붕괴가 오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아마 리만을 다시 겪게 되겠지, 아멘) 현재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이 조만간 비명을 지르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비관론자들의 목소리가 가장 큰 순간에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지금은 아직 낙관론자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뿐.
 
지난 몇년 간의 가격 움직임을 보면 시장이 두번째 패닉을 겪기 전 잠시 반등하곤 한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dead cat bounce라고 한다. 높은 곳에서 죽은 고양이를 떨어뜨리면 바닥에 부딛친 뒤 한번은 튕기겠지만 그게 고양이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아니듯이, 폭락하는 주가가 잠시 반등한다고 해서 그게 꼭 상승모멘텀이 살아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의 데이터를 보면 바이러스보다 인간의 건강에 더 해로운 것은 경제불황이다. 부디 우리가 거기까지 가지는 않기를.
 
바이러스에 대한 시장의 패닉은 1/31 수준을 한참 넘어섰지만 그 뒤엔 보다 무서운 것이 숨겨져있다.
 
 
*일반적으로 지수는 장기적으로 상승하기 마련이니 차트를 절대값으로 단순비교하면 과거의 폭락이 상대적으로 작아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심지어 대공황시기의 다우존스의 폭락조차도 장기차트를 절대값으로 보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아보이니, 이러한 오류를 최대한 보정하기 위해 로그스케일 차트를 보기도 한다.   

2020. 2. 28.

한국은행이 울린 레드얼럿

오늘 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 총재를 보아하니 앞으로 3달간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금융시장이 크게 망가질 것 같다. 그의 이율배반적 태도와 언행은 현재 세계 금융시장이 처한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반대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우한폐렴의 확산으로 투자와 소비가 망가지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데도 금리를 동결한 이유로 총재는 이 전염병이 3월에 고점을 찍고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여기에 지금 모든 금융시장이 애써 외면하려는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오늘의 기자회견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기자들을 회의실에 모으는 대신 미리 서면으로 질의를 받고 두 한국은행 직원이 대독하는 것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사스나 메르스 때도 없었던 유튜브금통위를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시장 참여자들은 위화감을 느꼈으리라. 단일 사건으로는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금통위를 화상으로 진행해야 할 정도로  바이러스가 위험하다면 얼마나 많은 회사들이 외부행사와 모임을 취소할 것이며, 또 과연 그들이 투자에 나서겠는가. 또 개인적인 모임을 가질 사람도 줄어들 것이고 그들의 경제활동은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다. 그렇게 2월 한달간 경제는 박살이 났고 다음 3월은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1분기 중 2/3동안 충격은 이미 확정이니 이번 분기는 기존 예상치가 무의미할정도로 망가질 것이고 또 이 충격이 다음 분기까지도 이어질 지, 또 얼마나 오래갈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인데 총재는 바이러스 확산이 3월에 피크를 찍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고 있다. 요새는 한국은행이 감염내과 의사들이나 생물학 박사들도 뽑나. 총재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자신이 가장 인하하고 싶지 않을 4월에 멱살잡혀 강제로 인하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총재의 저런 한심한 모습이 현재 금융시장에 만연해있다는 데에 있다. 폭락은 대개 늘 아는 위험이 아니라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나. 무엇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고. 지금 우리가 그렇다. 우한폐렴이 확산된 첫날부터 생물은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우리 문돌이 금융인들은 이 사태가 별게 아니라며 무시하곤 주식을 추천하기 바빴다. 확산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며 허둥대다가, 이제 중국에서 숫자가 잦아들자 다시 주식을 사들였다 중국 외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나자 투매에 나섰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 1월에 했던 똥개훈련을 2월에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이 바이러스의 지구적 확산은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 바보짓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대중이 생필품을 사들이느라 마트에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를 반영해서 이마트의 주가는 지난 3일간 거의 10% 가까이 반등할 정도인데, 동시에 대부분의 개미투자자들은 게시판에서 저점매수를 기다리고 있고 실제로 다수는 이미 행동에 나섰다. 그렇게 외국인들이 지난 1주간 약 3조원어치 주식을 파는 동안 그 매물은 모두 개인이 받아갔다. 즉 바이러스와 세균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집단이,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는 사람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믿는 것이다. (현재 이와 같은 양상은 미국시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주간 주식거래동향
개미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과거에 그랬으니 미래에도 통할 것이라는 점. 과거는 미래예측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지표이니 그 말을 부정하진 않겠지만 우리는 늘 과거와 현재가 무엇이 같고 다른지 유념 해야한다. 미국 주식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약 5 거래일 동안 8%이상 하락한 경우는 모두 5번이 있었는데,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1) 2011년 7월: 미국채 신용등급 강등 + 유럽위기
2) 2015년 8월: 중국 주식의 폭락 + 위안화 급격한 절하
3) 2018년 1월: 미국 10년 금리의 급격한 상승
4) 2018년 말  : 미중 무역분쟁 + 연준 금리인상
5) 현재

앞서 네 경우는 모두 정치적 갈등으로 촉발되었거나 혹은 금융시장의 일시적 불균형, 예를들면 경제가 안 좋은데 시장금리가 지나치게 오른다던지, 연준이 지나치게 금리를 올린다든지 등등 때문이었다. 그런 요소는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자연스레 바뀌게 된다. 주가가 빠지면 트럼프와 시진핑은 날을 세우고 싸우기보다 화해를 모색하게 되고 브렉시트를 이끄는 영국 총리는 요구조건을 완화한다. 또 연준은 금리인상 대신 인하를 고려하게 되며 올라간 시장금리는 자연스레 내려온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재의 위협은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는 주가폭락과는 상관없이 창궐할 것이며 경제나 통화승수 PER따위에 연동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판데믹이 어떻게 진행될 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굳이 위 네 사례와 비교한다면 1번에 가까울 것이다. 당시에 담보와 안전자산으로 취급되던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이 깎이고 나서 세계금융시장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물론 지나서 깨달은 건데 별거 아니었다.) 그리고 네 경우 중에서 그 1번의 폭락이 가장 심각했다.

당시에도 코스피는 리만 이전 고점을 넘어 무섭게 상승했으며 개미들은 조정이 와도 주식을 더 못사 안달이었다. 어닝과 비즈니스 모델이 망가지고 기업전망이 좋지 못했는데도 국내 증권사들은 앞다투어 20-30%대의 순이익 성장을 외쳤지만 그 허풍은 주가가 2170에서 두 달만에 1697까지 급락하며, KOSPI가 미국 주식을 앞서던 십여년 간의 황금기에 꽝 하고 종지부를 찍으며 끝이 났다. 그 이후로 코스피는 단 한 해도 미국 주식을 앞서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또 한번 대중들 사이에서 주식은 밀릴 때 사기만 하면 무조건 돈 번다는 맹목적 믿음이 만연해있고 그들은 그 신앙에 따라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트럼프가 아니며 브렉시트와도 같지 않고 파웰이 통제할 수도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애써 이를 간과하려고 하지만 unknown unknown은 늘 도둑같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늘의 유튜브 금통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이 모든 모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수십 명의 기자들로 번잡했던 회의실은 휑하게 비워진 채 책상 하나 만이 떨떠름한 모습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었고, 거기에 더럽게 인기 없는 소극장의 공연에 억지로 끌려나온듯 한 세명의 직원은 멀찍이 떨어져 마스크를 쓰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스탠딩 코미디는, 학위는 커녕 중학교 생물학도 다 까먹었을 우리 총재님께서 우한폐렴이 곧 수그러들 것이기 때문에 굳이 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큰소리를 빵빵 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우한폐렴 때문에 최초로 유튜브금통위를 열었지만 사실 별거 아니니깐 금리는 동결이라고 일갈하는 뒷북 이주열 총재

2020. 2. 23.

누가 여의도 텔레토비를 죽였나


2012년 제 18대 대선을 앞둔 무렵 여의도 텔레토비라는 정치풍자코너가 있었다. 혹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찾아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내가 이제부터 늘어놓을 진지한 얘기에 비하면 이건 다시 봐도 진짜 웃긴데다가 이제부터는 다수의 스포가 있으니까. (링크)

정치인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무자비한 풍자와 유머는 그 사회가 선진화되어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다. 사회가 미개할 수록 지도자에 대한 풍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미합중국 대통령 트럼프를 미국의 언론이 대하는 자세와 가장 가난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보도하는 조선중앙통신을 비교해 보라. 그런 의미에서 여의도 텔레토비는 분명 우리나라 정치가 한단계 성숙해졌다는 기념비적인 코너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다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방송계가 진보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통념을 까부술 정도로 캐릭터 간 패러디와 비꼼의 균형을 맞춘 것을 느낄 수 있다. 혹자는 그렇지 않다고 하긴 하지만 특정 정치세력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과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의 패러디가 주를 이루는 것을 편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정치패러디의 초점은 당연히 살아있는 권력이어야하지 않겠나. 특히 TV 대선공개토론에서 통진당 이정희가 박근혜를 매섭게 몰아붙이자 그 직후 편성된 화에서는 [또]가 [구라돌이]를 피해 숨어서 무서워하며 벌벌떠는 등 참으로 시의 적절한 패러디로 큰 인기를 끌었다.

반장선거 공개토론회에서 구라돌이에게 극딜당하는 또

"듣보잡인줄 알았던 구라돌이가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당시 박근혜를 상징하는 [또]라는 캐릭터가 지나친 쌍욕을 일삼고 [화나](문재인)와 [구라돌이](통진당)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두고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텔레토비 제작진은 이에 위축되기는 커녕 [또] 배역을 맡은 배우 김슬기가 울먹거리며 "저기. 제가요 하는 일이 이거 밖에 없거든요. 제 첫 직장이고, 아직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되는데. 앞으로 욕 많이 안 할게요." 라는 대사를 읊는데서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새누리당은 어쩔수 없다고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것인지 모르지만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되려 18대 대선에서 이 캐릭터를 활용한 홍보운동까지 펼쳤다.

이런 분위기는 분명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17대 대통령인 이명박은 윤석렬의 수사팀이 자기 친형의 비리를 조사하는데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고 16대 대통령인 노무현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인터넷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는데도 "먹고 살기 힘들면 대통령 욕도 하고 그런거지 뭘!" 이라며 엄숙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때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검찰청의 여려 검사들은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수사하다 지방으로 귀양을 떠났고 한 남자 방송인은 대통령의 이름에 존칭을 붙이지 않고 "문재인씨"라고 불렀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를 해야 했다. 대통령과 여당은 체고존엄의 지위에 올라 이제 우리는 그의 이름조차 함부로 부를 수 없다. 문득 김남주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술자리에서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꺼내면 일베 소리를 듣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웃고 즐길 정치 풍자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가 여의도 텔레토비를 죽였나.

나는 특정 세력을 지지하지 않고 어떤 정치인이 대한민국 사회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유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세가지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후보들을 지지하고 표를 던질 뿐이다. 다만 거기에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의도 텔레토비같은 정치풍자 프로가 부활해서 분장한 개그맨들이 살아있는 권력을 희화화하고 까는데 대통령이 화를 내는 대신 방청객 자리에 앉아 함께 웃으며 박수치는 모습을 보길 바란다. 그러다 꽁트가 끝나고 나면 무대로 나와 포옹 한번 하는 것이 훨씬 더 쿨하고 멋지지 않나. 조선시대 후기에도 양반들을 까는 판소리들의 가장 큰 후원자들은 바로 양반들이었다는데, 우리가 그래도 조선시대보다 나은 시대에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