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5.

노조나 재벌이나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24일자 신문 1면을 통해,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를 독려하는 김종인을 강력 비판했다. 재벌들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문들이니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요새 회사를 망친 오너가들의 작태를 보면 과연 재벌이 노조보다 회사를 더 잘 경영할 능력이 있는가 재고해 볼 필요는 있다.

동양그룹이 망하기 직전 현재현 회장의 부인 이혜경씨는 그룹내 금융사의 자기계좌에서 거액을 인출했으며 한진해운의 자율협약이 발표되기 직전 한진의 오너가는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경제지(라고 쓰고 찌라시라고 읽는다)들은 재벌들이 대주주들 보다도 더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을 한다고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회사 지분을 5%도 가지지 않은 재벌이 어떻게 나머지 95%보다 더 책임감을 가지겠는가. 책임감 측면에서는 재벌보다 노조가 더 낫다. 그들은 회사가 망하면 몰래 주식을 매각하고 도망가지만 노조는 회사와 운명을 함께한다. 지난 5년간 경영위기에 처한 대기업이 대부분 재벌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차라리 노조가 경영을 맡는게 낫지 않은가.

주주자본주의와 주주회사를 표방하면서도 오너가 경영을 독점하는 정치모델이 한반도에 존재한다. 바로 북한이다. 이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은 민주주의 따르는 척 하지만 사실 오너가인 김씨 일가가 나라를 지배한다. 오너가의 경영을 옹호하는 저 경제지들은 사실상 북한의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내눈에는 그들은 빨갱이들이다. 왜 국정원은 저 빨갱이들을 가만 놔두는가.

2016. 5. 16.

흐드러지다

 
 
우리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항상 벚꽃이 흐드러지는 날들만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언젠가 그 아름다운 분홍색 꽃몽아리가 부풀어 오르다 터져오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더이상 봄이 오지 않을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땐 도대체 어찌할 것인가.

2016. 5. 1.

Goldbugs

많은 원시인들이 아직도 금본위제에서 벗어난 현대의 통화정책은 비현실적이고 더 나아가 사악하기 때문에 언제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종이쪼가리나 인터넷 데이터 상의 통화가 아닌 실재하는 금을 바탕으로 한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치와 돈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금은 원소기호로 Au인 수많은 광물질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금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남들도 금을 소중하게 여길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며 경제학에서는 이 믿음을 신용이라고 부른다. 다시말해 금을 화폐로 만들어주는 것은 실체가 아닌 신용이며, 따라서 지폐나 전자화폐를 구성하는 요소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우리중 일부가 1만년 전의 지구로 여행을 떠낫다고 가정하자. 원시인들과 조우한 goldbug들은 주변 사람들이 쩔쩔매는 것을 보며 의기 양양하게 금덩이를 내밀며 식량과 교환하자고 요구하겠지만 원시인들은 주변의 짱돌을 들어 비교한 뒤, 네가 가져온 물체가 바닥의 돌보다 나은게 뭐냐며 따질 것이다. 당당한 표정으로 걸어나갔다 망신만 당하고 온 금본위제 신봉론자는 쪼그려 앉아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붙잡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왜 짱돌본위제가 아니라 금본위제를 지지했더라?'

2016. 4. 26.

중앙은행과 규제

지금 사람들은 간단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통화량은 본원통화와 신용의 합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어느 나라든 신용의 크기가 본원통화보다 몇배가 더 크다. 그리고 그 신용을 창출하는것은 은행시스템이다. 그러나 각국은 은행권의 신용을 규제하면서 중앙은행들의 발권력으로 신용을 본원통화로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

이와같은 노력은 성공하기 대단히 어려우며 단언컨대, 10년뒤 가장 인기있는 경제학 논문의 주제는 2011년 이후, 디플레를 촉발한 금융규제에 관한 내용이 될 것이다.

2016. 4. 4.

멍청한 경제 기사의 좋은 예

다음 글을 읽고 그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내 시간과 노력을 매우 비경제적으로 쓰는 것이지만, 나름 이런 멍청이들을 보며 조소하는 즐거움도 있으니 오락하는 기분으로 글을 써내려 가겠다.


'한국판 QE' 공방…"野 관치금융 vs 與 나쁜 데 가만 있냐" 링크


위 글은 연합뉴스의 이성규 기자가 4월 4일자로 작성한 기사이다. 고교 교과과정을 공부한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절대로 쓰지 않을 내용을 이 기자는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써놨다. 그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자.

1. 한국판 QE는 관치금융이다: 야당의 주장이야 정치적 레토릭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경제를 담당하는 기자가 관치금융의 뜻도 몰라서는 안된다. 관치금융은 금융기관의 영업을 시장질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규제등을 통해 정부가 멋대로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형이든 미국형이든 일본형이든 QE는 기본적으로 장기금리, 혹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끌어내려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즉 창구지도 등을 통해 가계부채를 억누르는 것이 관치금융이지, QE는 관치금융과 상관없다. 만약 금융당국의 금리개입도 관치금융의 영역에 들어간다면 공개시장 조작이나 한국은행의 금리결정도 관치금융의 영역에 속한다.

2. 일본 QE는 실패했다: 일본의 양적완화가 실패한 것은 신용을 늘리는 것에 실패해서 그런 것이지 QE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잘못된게 아니다. 즉 은행들에게 돈을 공급하는데엔 성공했으나 가계와 기업들에게 돈을 공급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같은 일은 유로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만약 QE라는 것이 실패했다면 가장 먼저 QE를 도입한 미국이, 신용위험의 진원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불황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3. 아베노믹스는 환율에만 의존했지, 인플레이션 퇴치에는 실패했다: 이 부분이 이 기사의 백미이다. 어떻게 이런 멍청한 소리를 부끄럼 없이 꺼낼수 있을까. 일본처럼 자유롭게 열린경제에서는 환율과 인플레이션이 같이 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앞서 여러 글에서 말했듯이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환율이 아니다. 리플레이션이다. 이러한 기본사안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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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예전 최경환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생각과는 달리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 강봉균 선거대책위원장이 내놓은 한국형 QE 역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미국과는 달리, 유럽과 일본에서 양적완화가 생각보다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규제와 금융위기, 혹은 디플레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에 돈을 공급한다고 해도 이것이 실물경제로 잘 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그렇다고 QE가 효과 없다는 주장은 멍청한 소리다. 은행권에도 돈을 풀지 않으면 실물경제는 더더욱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밥을 먹었는데도 살이 찌지 않으면 회충약을 먹거나 밥의 영양소가 부실한게 아닌지 검토해봐야지, 밥을 먹는게 소용이 없다고 주장해선 안된다.) 강봉균의 주장은 실물경제로 돈을 투입하는 역할을 민간은행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정책을 통해 직접 투입하자는 소리다. 금리를 150비피나 인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QE를 생각해야 하는지, 통화정책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여야 하는데, 그게 주택담보대출로 한정되면 부작용은 없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는 있지만 적어도 유럽/일본이 처한 문제-실물경제로 돈이 잘 흘러들지 않는다는 점(QE에도 불고하고 M2증가율은 낮음)에 대해서는 탁월한 처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멍청한 기자들과 병신같은 블로거들은 정치인들을 욕하고 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기자와 블로거들보단 공부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역시 민주주의는 위대하다.

2016. 3. 23.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12만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을 추모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한 11만명의 민간인들을 추모한다.

시리아 내전에서 희생된 7만여명의 민간인 사망자들을 추모하며

2015년 앙카라 테러에서 스러진 100여명의 사망자들을 추모한다.


그리고 벨기에에서 희생된 30여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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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32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갈땐 하하호호 하며 신나게 먹고 노는 사진들을 올려대던 인간들이 왜 하루아침에 휴머니스트로 돌변하여 30여명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지 알수는 없지만, 나의 추모는 더 극적인 상황에서 더 고통받으며 더 많이 죽어간 이들에게 먼저 돌아가리라.

2016. 3. 20.

알파고와 등신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신문 방송은 인공지능의 미래가 어쩌고 하며 호들갑을 이어간다. 기자들과 비 전문가들이 쓰레기 글 더미를 쏟아내는 속도와 양은 충격과 짜증을 동반한다. 심지어 문학평론가에게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묻고 이를 1면기사에 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발생했다. 그가 인류사와 인간의뇌, 그리고 알고리즘에 대해 내 조카보다 아는게 뭐가 더 있단 말인가. (이쯤 되면 무식이 거의 광기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저런 멍청이들과 사느니 차라리 알파고와 대화하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어서 오는게 나을듯 싶기도 하다.

저런 멍청이들은 이 현상이 7천년 전 부터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기원전 5천년 쯤, 메소포타미아의 한 지방에서는 암기력 대결이 펼쳐졌을지 모른다. 기억력이 비상하게 좋은 한 현자와 바닥에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다시 그걸 보는 것 만으로도 과거의 모든 것들을 떠올려 낼 수 있는 마술사. 5판 3승제의 승부는 그 마술사에게 돌아갔고 사람들은 모두 그 마술사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며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대신 그는 모두에게 이 마술을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 마술의 이름은 문자고, 현재 알파고에 대해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쏟아내는 이들의 모습은 선사시대 이전 원시인들의 모습과 똑같다. 그리고 그 이후 돋보기 축음기 계산기 데이터베이스 등, 인간의 뇌를 보완해주는 장치들이 나올 때마다 저 원시인들은 어김없이 등장해 호들갑을 떨어왔다.

자칫하면 멍청이들이 주최하는 호들갑의 축제에 휘말리기 쉽다. 인간의 진수는 창의력과 고난이도의 사고력에 있고 알파고의 승리는 그 영역이 인공으로 복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들은 인간의 뇌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뇌도 하나의 인공지능과 정확하게 같다. 때가 되면 분열하고 영양소를 보면 분열하라 라는 명령어를 따르는 아메바부터 출발하여 수십억년의 진화과정 속에서 명령어를 점차 추가하고, 그 결과 우리 뇌에는 수억 수십억개의 논리회로들이 결합되어 있다. 창조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행위들도 사실상 이 명령어들의 다양한 조합 덕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창조성이나 사고력 또한 언젠가는 인공적으로 복제될 것이다.

인간 뇌의 우수성은 창조력이 아니라 그 효율에 있다. 알파고는 수천억원을 들여 개발한 뒤 수백억을 투입해 이세돌의 바둑에 특화했고, 전력소비 서버유지 관리 네트워크 유지 등에 수백억을 쓰지만, 인간의 뇌는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그라고 몇몇 무기물을 제공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태양광 전지와 식물의 광홥성 과정을 비교하면 그 효율의 극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공 기술로 만들어진 기관과 분자수준에서 재조합된 생명체의 에너지효율은 차원이 다르다. 인공지능이 인간 뇌의 효율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뇌의 한계로 여겨진 망각 감정과 같은 기능들도 사실 한정된 뇌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장치들이다. 망각은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을 의식영역 내에서 지워 우리 뇌가 중요한 정보들에 집중하도록 돕고, 감정은 상황에 따라 뇌가 쓸모없는 기능을 억제하고 필요한 기능을 강화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들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아주아주 발전하게 되면 그는 인간의 뇌와 별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수억년의 진화 역사 가운데서 인간의 뇌가 가장 효율적임이 증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고서는 곧 회사는 인간의 뇌를 대체하는데 수퍼컴퓨터를 사고 전기료를 내는 것보다 인간을 쓰는게 더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코올이 뇌에 충격을 주도록 술을 마시는 것이 사회생활이고 취재원 확보라고 믿는 머저리 기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당신들은 알파고가 너네 직업을 대체할거라며 불안해하겠지만 걱정하지 말라. 돈을 들여 워크스테이션을 장만한 뒤 인공지능을 설치하고 그를 관리할 전문인력을 뽑는 것 보다는 푼돈을 주고 당신같은 저급두뇌를 쓰는게 더 경제적이다. 기자들의 월급이 낮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