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1.

아시아의 미래3. 다가오는 사무라이의 귀환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캔들차트를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캔들차트가 언제 어디서 발명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캔들차트 기법은 18세기 일본의 쌀 거래상이었던 혼마 무네히사가 쌀 선물시장의 가격 움직임을 분석하기 위해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같은 시기 조선의 경제활동의 대부분은 여전히 물물교환에 의존했다. 이는 조선과 일본이 엇비슷한 발전과정을 거치다 운 나쁘게도 개화기부터 차이가 벌어졌다는 한국인들의 편견과는 다르게 두 나라가 아주 다른 출발선상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경제력 차이는 아무리 늦어도 고려 시대 중반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일본의 농경지가 한반도의 약 2배인데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특성상 3모작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공업생산력도 뛰어나서 1863년 일개 지방정부에 불과한 조슈 번은 자신들이 직접 주조한 대포로 영국을 포함한 서구의 4개국 함대와 포격전을 펼치기도 했다. 승리했지만 의외의 전투력에 놀랐던 영국군은 자신들과 대적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이 극동의 섬나라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는 이후 영국이 일본을 식민지로 삼을 대상이 아닌 대등한 국가로, 더 나아가 러시아를 견제할 아시아의 파트너로 여기게 된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의 교과서는 이러한 일본의 역량을 가르치지 않는다. 거기에 개량한복을 입고 이크, 에크와 같은 추임새를 읊조리며 교내를 배회하는 전교조 민족주의자들의 망상이 가미되면 그들의 근대사는 더욱더 초라하게 각색된다. 이는 일부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는데, 미개한 일본이 선진국으로 도약한 것처럼 우리도 산업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우리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아시아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또 거기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었는지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한국인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사무라이의 후손들은 다시금 동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는 당연하고 군사적으로도.


*               *               *


한 해 국방비만 천 조원을 쓰는 나라,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과 싸워서 이기는 법이 있다. 미군을 3만 명 이상 죽이고 3년만 항복하지 않고 버티면 된다. 그러면 대개 미국의 의회와 언론이 알아서 미군을 쫓아낸다. 6.25에서 유엔군은 3년간 약 4만 8천여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약 6만여 명이 사망하였다. 공산정권과 정면으로 맞붙은 이 두 전쟁에서 미군은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과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이 인명 손실을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현상은 21세기 들어 더욱 심해졌다. 아프간-이라크 전쟁에서 미군 손실은 비전투원을 포함해 만 5천 명에 지나지 않고 이름만 바꾼 테러조직들이 다시 결성되고 있지만 미군은 전쟁을 매듭지으려 한다. 따라서 미국의 적국이나 단체는 스텔스기인 F22를 상대로 어떻게 방공망을 구축할 것인지, 스트라이커 여단으로부터 어떻게 요충지를 방어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3년간 3만 명의 미군을 죽일지만 고민하면 된다. 이 얼마나 손쉬운 전략적 목표인가. 

미군 역시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각국에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줄 전략적 파트너를 심어두었다. 극동에서는 대한민국이, NATO에서는 터키가 전투보병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미군이 돈과 장비를 대면 동맹국이 목숨을 대는 이 간단한 구도로 미국은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최근 이 구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터키는 나토의 주적인 러시아의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여 동맹국들의 신경을 긁고 있고 대한민국은 노골적인 친중/친북 행보를 보이며 미국과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지속된다면 미국이 반세기에 걸쳐 구축한 세계전략이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전략 파트너를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유사시 극동에서 미국이 대한민국 대신 기댈 수 있는 나라는 일본 뿐이다.

일본은 육군을 육성하기에 유리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바다로 둘러써여 중국이나 소련이 선제적으로 공격하기 어렵고 남한의 3배에 달하는 인구와 막강한 공업 생산량 덕에 병력과 물자를 충당하기도 용이하다. 게다가 생산시설 역시 동쪽에 분포되어 있어 적이 공업지대를 파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육군을 육성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동맹국들 중 아무도 일본의 재무장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과 전면전을 펼친 일본이 대규모 군대를 육성하는 것이 불편할 것이고 또한 다른 동맹국인 한국의 반발을 가져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일본 스스로도 자신의 재무장을 거부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미군은 일본이 육군을 재건해 극동 방위의 한 축을 맡기를 바랐지만 수상 요시다 시게루는 이를 거부하는 요시다 독트린을 공표하곤 자국 내 경제발전에 전념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에게 훈도시 속까지 탈탈 털린 일본인들은 전략적으로 총칼보다 돈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역학구도가 변하고 있다는데에 있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일본과 싸운 마지막 세대의 대통령인 W.H. 부시**는 2018년 사망했고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가미카제와 진주만의 흔적은 점점 옅어져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이 재무장을 거부한 것은 과거 일본군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며 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던 기억과도 연관이 깊다. 하지만 현 자위대는 그런 과격파들과는 거리가 멀고 또 자국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일본의 전략목표가 경제발전보다 이젠 대외 팽창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이 미국에게 위협이라면 이는 일본에겐 몸서리치는 공포라는 뜻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일본은 더욱 재무장을 서두를 것이다.(링크) 이런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미일 양국의 최근 성명서를 살펴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새롭게 출발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압박하는 전선을 구축하는 데 있어 계속해서 엇박자를 보이는 한국 정부보다 일본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평화헌법의 개정과 재무장이 논의되지 않았을 리 없다. 육군이 빠진 반쪽짜리 군대로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일본을 노쇠하여 침몰한 국가로 업신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명확하게 디플레에서 벗어나 본궤도로 진입하기 직전이며 국내총생산 역시 작년 우한 폐렴의 충격에서 벗어나 올해 약 4%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1980년 후반의 일본의 장기 침체가 시작된 원인중 하나가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을 견제해야하는 미국이 반대로 이젠 일본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태평양전쟁 후 일본이 수백 년이나 앞선 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잿더미와 원폭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이 잃어버린 xx년 시리즈를 연장할 가능성도 낮다.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서 평화라는 배당금으로 배를 한껏 불린 사무라이가 다시 칼을 쥐는 것은 시간의 문제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대한민국에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일간 분쟁이 재발할 때마다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던 것은 남한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었는데 일본이 그 역할을 일부 분담한다면 한국의 입지는 과거보다 좁아진다. 게다가 자칫하면 일본과 한국이 군비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는데 양국의 경제력 차이를 고려하면 이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게임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미국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상황이 된다.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 지리적 여건만 보면 미국이 한국을 버리고 일본을 택할 수는 있어도 일본을 버리고 한국을 택할 순 없으니까.

한 역사학자는 한반도의 역사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로 해석했다. 대륙과 해양세력 중 어느 한쪽이 부상하게 되면 그들은 다른 한쪽을 침략하기 위해 반드시 한반도를 지나게 된다고. 그리고 지난 50년은 전통적 해양세력이었던 일본은 군대가 없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자처했고 중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주변국보다 가난한 시기를 보냈다. 그 결과 양 세력의 충돌의 기점이었던 한반도는 최대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허니문은 끝났다. 대륙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호전적인 국가가 들어섰으며 일본열도는 히키코모리처럼 칩거하던 기간을 마치고 외부로 팽창할 준비를 끝마쳤다. 당신과 내가 살아갈 미래의 국제정세는 지난 50년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세계 최초의 상품선물시장 역시 17세기 일본에서 태동했다.
**그는 전투기 조종사였는데 복무 당시 일본군이 포로로 잡은 자신의 동료 조종사의 인육을 먹는 사건이 벌어져 일본에 대해 비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아시아의 미래4. 문재인의 대한민국, 병신외교와 매국의 경계.

2021. 4. 20.

아시아의 미래 2. 바둑을 버리고 체스판에 앉은 시진핑

바둑과 체스. 두 게임에 내재된 철학은 아주 다르다. 체스나 장기는 기본적으로 세가 같은 두 군대가 전장에서 마주 보고 전투를 펼치는 것인데 비해 바둑은 빈 땅에 두 국가가 같은 생산력을 가지고 세를 쌓아가는 과정을 풀어낸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두 게임의 다른 철학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체스의 목표는 상대의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인데 반해 바둑의 목표는 상대보다 많은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다. 체스는 상대의 말 위로 이동해야 그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바둑은 전투가 생략되어 있고 포위당한 적은 자동으로 항복한다. 체스에서는 상대 말을 잡으면 그 즉시 게임에서 소멸하지만 바둑에서는 사로잡은 상대의 돌이 훗날 나의 자원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소규모 유목사회의 전투와 대규모 농경 기반 중앙집권 국가의 전쟁이라는 관점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체스에서는 병종의 차이가 커서 룩과 비숍 그리고 폰은 기능이 아주 다르다. 유목 민족에게 일상이었던 소규모 전투에서는 개별 전사들의 능력과 역할이 극명하게 달랐으리라. 하지만 단기간에 농민들을 대규모로 징집해 전쟁에 내보내던 중앙집권 농경국가의 전쟁은 바둑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백대 백의 싸움에서는 한 병사의 역량 차이가 두드러질 수 있어도 수십만 병사들이 맞붙는 싸움에서는 개인이 금세 지워지기 마련. 또한 포로의 처우도 달랐다. 유목 민족의 전투에서 포로는 죽이거나 전투불능이 되지만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에서 확보한 상대 병력과 영토는 바둑에서처럼 훗날 나의 자원이 된다. 이를 고려하면 문헌상으로는 둘 다 오래된 게임이지만 실제 태동은 체스나 장기가 바둑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을까.

요약하면 체스는 전술을 바둑은 전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중원을 3천 년간 지배해 온 것은 전술보다는 전략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사실 전술면으로 볼 때 한족의 전투능력은 참으로 형편없었다. 그들은 상고시대부터 근대까지 유목 민족들이 남하할 때마다 한결같이 흠씬 두들겨맞곤 했으니까. 고대 중국 문화를 정점에 올려놓은 당나라도, 세계 최강의 몽고의 일부였던 원도, 그리고 현대의 중국보다도 넓은 영토를 확보한 청나라 모두 한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그 이민족들의 명맥은 대부분 끊기고 모두 한족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결국 중국이라는 거대한 판위에서 3천 년간 벌어진 게임에서 한족은 체스에서 지고 바둑에서 이긴 셈이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그 바둑판을 걷어 차고 체스판으로 옮겨 않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               *               *


시진핑은 미국을 상대로 한 체스에서 점차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홍콩의 일국양제는 사실상 무너지고 있으며 중국이 대만에 군사적으로 개입해도 미국은 대항할 군사적 수단이 많지 않다. 거기에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를 암묵적으로 지원한 중국은 곧 뱅골만으로 나아갈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으니 미국의 전통적 봉쇄 라인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있다. 온전한 핵보유국이 된 북한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은 베이징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게 되었고 남한에는 노골적으로 친중 색채를 드러낸 정부가 들어섰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2010년 일본을 넘어 미국을 추격하고 있으며 자신의 강화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기업들과 자신의 무역 파트너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H&M과 나이키가 중국 당국이 신장지역에서 벌이는 광범위한 인권탄압을 비판하자 중국 소비자들은 두 브랜드를 겨냥한 불매운동을 펼쳤고 그 불똥을 피하기 위해 몇몇 기업들은 공산당과 인민들의 입맛에 맞게 마케팅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그 예이다.

과거 서구식 경제성장 모델이 완전하고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자유진영의 학자들은 중국이 조만간 내부적 갈등에 직면해 자연스레 체제가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언은 결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중국보다 부자인 나라는 이제 미국 하나뿐이지만 당의 권력은 더욱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IT 기술의 발전으로 여전히 국가는 국민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중국 대중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더이상 낯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천안문 시위와 같은 민주화운동이 재발할 가능성은 낮다. 중국인들은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중국의 정치적 위상을 회복한 당을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신뢰하고 있으며 시진핑은 그런 인기를 등에 업고 독재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중국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그가 장기적 시각보다는 단기적, 전략적 목표보다는 전술적, 즉 바둑이 아닌 체스의 방식으로 국가전략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를 불리는 것이다. 바둑에는 잡을 상대의 킹도 퀸도 없다. 그저 더 많은 집을 얻는 쪽이 승리할 뿐. 과거에 시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제국들은 모두 이 방법을 충실하게 따랐다. 로마는 점령지를 단순히 약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돈과 인력을 들여 수도와 도로를 설치하고 로마식 건축물을 세웠으며 로마의 법과 사치품을 들여왔다. 그리고 한번 로마의 삶을 맛본 속주의 원주민들은 다시는 야만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그들은 로마의 시민이 되어 자발적으로 로마의 가치관과 영토를 확장하는 군단의 최전선에 합류했다. 가깝게는 소련과 미국의 대결도 마찬가지였다. 냉전은 단순히 두 강국의 대립이 아니라 무엇이 인간을 더 풍요롭게 하는가에 대한 인류 차원의 물음이었는데 소련은 공산주의가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자본주의가 그 해답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두 강국은 70여 년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진영을 늘리고 상대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애썼다. 세계 제일 강대국이 극도로 빈곤한 남한이나 월남을 지원한 것은 경제적 이득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은 단순히 자유진영의 영역을 늘리기 위해서 달러와 자국민의 목숨을 지불한 것이다. 그렇게 인류사의 대부분의 장은 바둑의 룰에 따라 전개되었다.

인간 사회에서 집단을 확장하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일까? 바로 사상을 퍼트리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 외에도 개미나 벌과 같은 사회적 동물이 있고 저들도 전쟁을 벌이지만 이런 동물들의 결속력은 DNA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세력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길은 같은 DNA를 가진 개체를 늘리는 것 밖에 없다. 다른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아군으로 포섭하는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사람은 사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유대감을 형성하고 집단을 이룰 수 있다. 심지어 그 집단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다. 이슬람교도들이 다른인종을 같은 무슬림이라는 이유 만으로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보라. 심지어 사상은 DNA보다도 강한 결속력을 지니기도 한다. 6.25를 겪으신 옛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공산주의에 빠지면 형제자매도 몰라본다는 말을 되뇌시지 않았는가.

따라서 모든 제국들의 영역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팽창했다.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혹은 사상이든. 알렉산더의 제국은 헬레니즘과 함께 확장되었고 오스만의 영역은 이슬람교와 함께, 그리고 나폴레옹의 군대는 혁명정신과 함께 커졌다. 유전적으로 마케도니아인이나 투르크, 혹은 프랑스인이 아니어도 그들이 퍼트린 사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점령지의 백성들은 제국의 시민이 될 수 있었기에 자발적으로 입대하여 제국의 확장에 목숨을 바치곤 했다. 마치 바둑에서 내가 사로잡은 돌이 차후에 상대의 집을 메우는 것처럼. 반면 전파할 이데올로기를 갖추지 못한 제국들은 빠르게 붕괴했다.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세운 몽고의 몰락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건설한 오늘날의 미국도 그렇다. 그들은 자유무역과 민주주의라는 복음을 세계에 전파하였고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를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박정희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와는 아주 거리가 먼 방법으로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개도국에서 벗어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 덕분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소수의 진성 친북주의자를 제외하면 미국의 방식이 번영과 발전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발적으로 미국이 퍼뜨린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심지어 입으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조국이나 한때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한 림종석 동지조차도 사모펀드를 없애고 자녀의 미국 유학을 금지한다고 하면 당장 투쟁에 나설 것 아닌가. 이처럼 집단을 확장하는 이데올로기의 힘은 너무나 강력하다.

따라서 미중대립이 어떻게 끝날지 가늠해보려면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현대의 중국인들을 규합하는 핵심 이념은 공산주의도, 전체주의도 아닌 바로 중화사상이다. 뭘 하든 어딜 가든 중국이 최고라는 이 자뻑주의는 중국을 고립시킨다. 처음부터 중국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이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당장 2차 6.25전쟁이 발발했다고 상상해보자. 미국인들은 남한 사람들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공유할 수 있지만 전선의 반대편에서 중국군이 "5천 년 중화의 영원한 번영을 위하여!"라는 민족주의 구호를 외친다면 바로 옆의 북한군은 돌격하다 말고 그들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이제껏 인류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유전적 한계를 벗어나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을 이루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집단인 중국은 유전자에 기반한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회귀했다.* 

그리고 그 한계는 중국이 패권국을 지향할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영국이 홍콩의 자치권을 언급하거나 프랑스가 티베트의 인권을 거론했을 때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던 중국은 대한민국이 사드를 배치하자 곧장 자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보복했다. 19세기 영국이 홍콩을 99년 동안 빼앗아간 것을 비난하던 중국은 스리랑카가 중국 국영기업이 제공한 차관을 상환하지 못하자 스리랑카 북동부의 항구를 99년 동안 차지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런 중국의 행보에는 아무런 철학도 원칙도 없다. 그저 무한 이기주의를 외치는 무한도전의 박명수만이 겹쳐 보일 뿐. 중국의 한 강경파는 트럼프의 관세 보복이 이어지던 시기에 환구시보에 기고한 사설에서 "트럼프는 세계의 미움을 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미중 분쟁에서 중국의 편을 들어주는 나라가 없다"고 한탄했다. 그도 그럴것이 트럼프의 임기는 고작 4년이지만 저들의 중화사상이 앞으로 5천 년 더 지속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과연 인류 역사에서 도전자가 동맹 하나없이 패권국가로부터 세계의 헤게모니를 빼앗아 온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시진핑은 이런 구조적 한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격대지정(차차기 지도자를 이전 지도부가 결정)과 칠상팔하(68세 은퇴)원칙을 어기고 원로들이 세운 집단지도체제를 무력화하고 있으며 부패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경쟁자들을 탄압하여 내부적 반발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독재자들이 흔히 선택하는 카드는 외부의 위협을 부각하는 것이다. 지난 3월 18일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이 열렸는데 여기서 중국 대표가 외교적 관례를 한참 벗어난 수위로 미국을 비난한 배경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황제를 꿈꾸는 시진핑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 그는 단기간 내에 중국 원로들과 인민들에게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는 대국적인 시각으로 전략을 설계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전술에 매진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중국은 늘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였다.  18세기까지 중국의 영아사망률은 영국보다 낮았으며 청나라가 운용하던 북양함대는 19세기 서양 열강들에 견주어도 못지 않은, 세계 10위권의 군사력을 자랑했다. 그런 중국을 최빈국으로 몰락시킨 것은 서태후의 사치도, 태평천국의 난도, 아편전쟁도, 일본 관동군도 아닌 바로 마오쩌둥이었다. 마오가 펼친 쇄국정책,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은 차례로 중국의 산업과 문화를 파괴하였고 자유진영에 속한 인도나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같은 공산국가였던 베트남과 심지어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과도 전쟁을 벌였다. 미국이 손을 내밀어 주기까지 중공은 세계로부터 고립된 외톨이였으며 그 결과 처음으로 중국은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마오쩌둥은 정적을 견제하고 제거하는 체스 게임에는 강했지만 서구문물을 제대로 경험한 적도 유학한 적도 없어 세계사의 흐름에 어두웠던 근시안적 리더였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뒤를 이은 덩샤오핑은 달랐다. 프랑스와 소련에서 유학하며 르노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자로도 일했던 그는 중국의 미래전략을 체스보다 바둑의 룰로 이해했다. 그는 미국이 깔아놓은 포석에 따르지 않는 나라에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다. 중국의 최고 국수였던 덩샤오핑은 후대 지도자들에게 두 가지 훈수를 남겼는데 하나는 1인 독재를 막을 격대지정의 원칙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앞으로 적어도 100년 동안 미국과 대립하지 말라는 유언이었다. 그가 남긴 신의 한 수는 마오 사후 40여 년간 독재자의 출현을 막고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두 가지 유산을 폐기하고 중국을 고립시키고 독재를 택한 마오의 길을 따르고 있다. 심지어 무리수를 두어 가며 정적을 제거하고 암투를 펼치는 그의 방식은 덩샤오핑의 바둑보다 마오의 체스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과연 그 미래는 어떨까? 나는 역사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민족주의를 핵심 철학으로 내세웠다가 실패한 제국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나치 독일. 소련과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나치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과 소련의 동쪽 영토를 점령했는데 당시 스탈린의 공포정치에 시달리던 현지인들은 처음에는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흔들며 독일의 진군을 반겼다고 한다. 하지만 동유럽에서 슬라브인들을 몰아내고 순수 아리아인의 터전을 건설하려 했던 나치는 그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고 얼마 안가 현지인들은 파르티잔이 되어 틈만 나면 나치의 예비대와 보급선을 공격했다. 아리아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었던 그들 입장에서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소련 편에 서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렇게 6주 만에 프랑스를 무너뜨린 유럽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였던 독일은 그렇게 동유럽이라는 바둑판에서 패배했다. 

**정작 과거의 중화사상은 현재의 중국이 택한 노선과 정확하게 정 반대였다. 일례로 조선이 건국된 후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정립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는데, 조선은 1년에 3번 조공을 바치겠다고 주장한데 비해 명은 3년에 한 번만 바칠 것을 요구했다. 황제가 주변국에게 공물 좀 작작 바치라고 주문하는 이 코메디같은 사건은 조공이 기본적으로 호혜적 무역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발생했다. 명의 통치이념을 설립한 주자는 황제는 공물을 적게 받고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따라 명나라는 조공을 받으면 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답례품을 회사라는 이름으로 제공했다. 그래서 조공이 잦아질수록 명이 적자를 보는 구조였다. 그러니 주변국들이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것을 마다할 리가 없다. 명나라의 이런 대외정책은 주변국들 내부 투쟁에서 친명파들이 득세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에서도 자주적 성향을 가진 정도전이 실각하고 친명 정책을 내세운 태종이 즉위하자 명나라는 조공을 1년에 3번 허용하겠다고 양보했다. 그렇게 주변국들은 앞다투어 볼품없는 향토품을 싸들고 명나라에 찾아가 황제의 곳간에 쌓인 비싼 진상품들을 털어왔고 자발적으로 명의 헤게모니에 복속되길 원했다. 명의 중화사상은 한족이 아니더라도 주자학을 받아들인 민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심지어 경제적 혜택까지 주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공무역에서 최혜국 대우를 받던 조선이 명이 멸망한 이후에도 소중화를 자처하며 명의 연호를 19세기까지 사용한 것을 보면 명나라가 무역에서 손해를 보는 대신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다음편 아시아의 미래 3. 일본의 부상



2021. 4. 18.

아시아의 미래1. 대만을 지배하는 자가 한반도를 지배한다

영국의 금융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다소 공격적이고 급진적인 칼럼을 올렸는데 현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한 번씩 읽어볼 것을 권한다.(링크)

그는 미국이 다양한 전략적 목표를 지닌데 비해 중국은 단 하나의 목표, 통일된 중국을 지향하기 때문에 미국이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고 그로 인해 미국, 더 나아가 서양이 지배해 온 헤게모니가 몰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대만을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선진적인 정치체제와 우수한 인력과 금융 시스템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와 생산력에서 밀려 세계 1위 자리를 내어준 영국에서 태어나고 수학한 그의 배경 때문일까, 미국의 몰락을 내다보는 그의 주장은 급진적으로 들리지만 적어도 대만을 지배하는 자가 한반도를 지배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대만에서 일어나는 일은 한반도에서 반복될 것이다. 반드시.

영국과 제국의 헤게모니를 이어받은 미국이 경쟁자들을 몰락시키는 전략은 늘 같았다. 상대를 국제무역에서 고립시키는 것.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바다였다. 영국은 2강국기준이란 법을 도입해 2위와 3위의 해군을 합한 것보다도 더 강한 수준으로 해군력을 유지하였고 더 이상 그 준칙을 유지할 수 없었을 때 그중 한 나라(미국)와 동맹을 맺었다. 그 결과 영국과 그 후계자 미국은 세계정세를 결정지은 모든 전쟁에서 상대를 말려 죽였고 그 전쟁은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승패가 결정 나 있었다. 나폴레옹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해양을 봉쇄했고 나폴레옹은 여기에 대항하여 당시 세계 GDP의 절대비중을 차지했던 서유럽을 봉쇄했지만 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였기에, 그를 어긴 러시아를 정벌하려다 몰락했고, 1차 세계대전 발발 시 세계 2위의 해군력을 자랑했던 빌헬름 2세의 제국해군은 발트해와 지중해로 나뉘어 산발적인 도발 외엔 종전까지 별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은 독일의 해상무역을 압박했고 미국은 일본에 석유 금수조치를 가해 전시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가했으며 소련 역시 세계무역시장에서 사실상 봉쇄당하는 바람에 결국 경제적으로 붕괴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대중 전략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링크) 미국은 중국을 둘러싼 우방국들의 군사거점들을 연결해 유사시 중국의 무역을 봉쇄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중국의 세계전략은 미국의 봉쇄망에 구멍을 뚫어 활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의 2013년에 시진핑이 일대일로를 주창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족이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선 러시아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은 과거 러시아를 봉쇄하기 위해 친중 외교를 펼쳤으며 마찬가지로 중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러시아가 필요하다. 따라서 트럼프가 그랬던 것처럼 바이든 행정부 역시 러시아에 강공책으로 나서기 어려우며 이에 따라 러시아가 동부 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묵과할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들어 항공운송산업의 발전으로 비중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물류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해운이다. 따라서 중국의 해양 진출을 봉쇄하는 것이 핵심이고 그 키는 바로 남중국해에 있다. 만약 중국에게 동북과 동남 중 하나를 택하라면 그들은 주저 없이 동남을 택할 것이다. 베이징이 지리적으로 북쪽에 있고 또 북한과의 외교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극동의 정세도 중요하지만 실리적으로,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찢어졌던 중국의 재통일이라는 국가적 사명 때문에서라도 남중국해는 중국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요충지이다. 

여기서 만약 중국이 대만을 확보한다면 미국의 대중 최전방 기지는 대만 대신 오키나와가 되어야 하는데 오키나와의 면적은 대만보다 1/15에 불과한 데다 대만의 동쪽 끝부터의 거리가 600km도 되지 않아 대만에 배치한 단거리 미사일로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자원을 더 후방으로 배분해야 한다. 무엇보다 유사시 경제력이 집중된 중국의 남쪽 지역을 노릴 수 있는 중화민국의 상비군 20만 예비군 160만에 이르는 우방을 잃는 것은 미군에게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뼈아픈 손실이다.

이런 대만이 없다면 미국은 대중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하고 한정된 자원으로 같은 효과를 내려면 동아시아의 전략 자산들을 재배치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예산과 병력은 방대하지만 결코 무한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생될 것은 단연 한국이다. 대만이 없다면 중국에 대규모 상륙작전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 옵션*이 되고 그렇다면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도도 낮아진다. 중국이 한반도와 남중국해 중 택하라면 남중국해를 택할 것처럼 미국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겠지만 주력 방어선이 일본으로 후퇴하는, 위 지도에서 A에서 B로 주 봉쇄선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B가 바로 그 유명한 애치슨 라인이다. 

Acheson Line

남한 GDP와 인구의 약 절반에 달하는 대만이라는 우방을 잃는다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군은 국방비와 전략 자산들을 더욱 남쪽으로 재배치할 것이고 이는 결코 남한에 유리하지 않다. 한때는 공산권의 일본이라고 불리던 북한의 경제가 곤두박질친 것이 미군의 원조를 받던 남한과 군비경쟁을 펼치느라 가용자원을 국방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와 인구 차이는 60배/2배지만 남한과 중국의 차이는 10배/28배에 달한다. 무엇보다 그런 상황이 되면 미국이 동북아 방위전략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고 이는 남한의 대일 외교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미 이런 징후가 여러 군데서 드러나고 있다. 

나는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의 헤게모니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어 궁극적으로 미국에 패배하고 세계적 패권국가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다 패배하고서도 지역의 패자로 남은 사례도 많다. 과거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했지만 결국 오키나와를 자국의 행정권 아래로 편입한 것을 보라. 이처럼 중국의 패배가 꼭 한국의 승리, 혹은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대만을 지배하는 자가 한반도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주장이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글의 서두에 링크한 니얼 퍼거슨의 글을 다시 읽고 오길 바란다. 대만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 대신 고작 한반도를 차지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신중하고 심지어 소박하게 들리지 않는가. 


다음 편: 바둑을 버리고 체스판에 앉은 시진핑은 어떻게 실패하고 있는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맥아더는 장개석의 중화민국군을 중국 본토로 상륙시키는 안을 구상했고 이후 이는 미군이 휴전협상에서 중공을 압박했던 가장 중요한 카드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현재도 주한미군이 육군으로 중국의 북쪽을 압박하는 것은 힘들지만 대만까지 없다면 중국은 상륙군 방어전략을 동북방으로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된다. 그리고 특히나 베트남 패전 이후 미군은 장기간에 걸쳐 인력손실이 커질 수 있는 방어형 전략을 기피해왔다.

2021. 4. 11.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전

기분이 들뜬 탓인지 아니면 날씨 탓에 집중력이 흐트러져인지 전시 주제와 상당히 동떨어진 감상들만 마음에 남았다. 

그래도 감상은 감상이니까.


노은주 작가


노은주 작가는 파괴된 콘크리트와 철근을 마치 정물화처럼, 혹은 초현실주의처럼 그려냈는데 이는 바니타스적 정물화를 연상시킨다. 바니타스는 화려한 장신구와 황금 그리고 만개한 꽃과 함께 해골이나 꺼져가는 촛불 시들어가는 꽃을 배치하여 삶의 허무함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정물화인데, 당시의 사회가 전염병과 또 30년전쟁으로 인한 대량학살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 염세주의의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

당시 정물화의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과일이나 꽃이었는데 이는 이 오브제들이 풍요 혹은 화려함을 상징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신흥 계층이었던 부르주아와 유한계급은 자신의 풍요를 과시하고 싶어 했기에 이런 꽃과 과일 그림들을 거실에 걸어두곤 했다. 농경 기반의 사회에서 보리나 밀 대신 재배한 과일과 꽃은 늘 가장 사치스러운 오브제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꽃과 과일 따위로 현대의 풍요를 나타낼 수 없다. 과일보다 자극적이고 비싼 음식은 수도 없이 널렸으며 이젠 꽃 자체보다 그것이 어느 플라워샵에서 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양재동 비닐하우스의 장미 한 송이의 가격과 니콜라이 버그만의 장미 한 송이의 가격은 아주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16-17세기의 정물 화가들이 21세기에 태어났다면 그들은 무엇을 그렸을까? 청담동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아마 샤넬이나 롤렉스를 그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에르메스나 파텍필립?

주기적으로 기근을 겪고 굶어죽던 중세 유럽의 서민들에게 과일과 꽃이 사치재였던 것처럼 우리에게 명품이 그렇다. 우리는 샤넬을 원한다. 롤렉스를 욕망한다. 아름다워서? 천만에. 그 사치재들이 값나가는 진짜 이유는 쓸모없는 게 희소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들고 다니기에 백팩만큼 편한 게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에르메스나 샤넬은 백팩을 만들지 않는다. 왜? 백팩은 너무나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실용성은 우아하지 못하다, 아름답지 못하다, 그리고 우아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실 이 모순을 설명하기엔 롤렉스가 더 적합하다. 쿼츠시계는 물론이고 0.1밀리 초보다도 더 정확한 핸드폰을 두고 굳이 불편한 기계식 시계를 고집하는 허영 가득한 저 남자들의 왼쪽 손목을 보라. 그들은 아침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맞추겠답시고 그 작은 기계장치의 조그마한 나사를 돌리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21세기에 사는 이들이 18세기의 선조들과 같은 불편을 누리기 위해 수백 수천만 원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실용성은 그 자체로서 심미성의 적이다. 

또 샤넬과 롤렉스가 생산라인에 포드주의를 도입해 한 해 수백만 개의 제품을 대량생산하면서 판매 가격을 혁신적으로 낮춘다면 그대들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절대로 대량생산될 수 없다.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이러니 쓸모가 없는 것에 수천만 원을 쓰는 것 보다 더 유혹적인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명품 브랜드들은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주말 아침에 백화점 앞에 길게 줄 선 남녀들을 보라. 

이런 현상은 동물들에게도 나타난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와 사슴의 뿔, 그리고 수사자의 갈기는 생존에 방해가 되지만 대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여 성선택에서 유리하다. 이성에게 "나는 이런 쓸모없는 것을 달고서도 살아남을 정도로 강인한 개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인간의 꼬리털, 뿔, 갈기는 17세기에는 꽃과 과일이었지만 21세기엔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에서 제작된 가죽 바구니와 금속수갑이 되었다. 이런 상념을 마음에 품고 17세기의 해골을 오늘날의 콘크리트 더미로 치환한 노은주 작가의 그림을 보며 비어있는 캔버스 한편에 놓인 샤넬과 롤렉스를 상상해본다.



문이삭 작가

사물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전에도 많은 작가들을 통해 다루어졌기 때문에 이런 시도가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고 내가 이 작가의 배경과 그 의도를 몰라 작품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원인이 작가에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 조영남 위작 사건(링크)으로 드러났던 것처럼 이미 대중과 현대미술의 괴리는 너무나 벌어져 이젠 양측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대중에 가까운 사람이니 내가 교감할 수 없는 작가나 작품의 경우 내 이해와 고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어려울까? 물론 그 발전사를 모르고서는 납득할 수 없는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도 있지만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리라. 중세-르네상스 미술과 대중의 관계를 보자. 당시 그림에 숨겨져있던 수많은 도식들, 그리고 종교적 상징과 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단순한 저녁 모임 인증샷에 불과하다. 그 시대의 그림을 정확하게 읽어내려면 오늘날의 현대미술 못지않게 수준 높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반면 당시의 대중은 어땠을까. 기초교육 따윈 없이 유년/청년기의 대부분을 생존을 위한 노동으로 보냈던 이들은 현대인에 비해 지식수준이 현격하게 낮았다. 대다수는 문맹이었고 성직자들이 읽어주지 않으면 성경의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해 무엇이 신성모독인지 분간할 능력조차 없었다. 귀족이 아닌 신흥 브루주아 계급이라고 뭐 그리 달랐을까. 그들과 미술의 거리는 현재 우리들이 겪는 간극만큼이나 멀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바로 시간. 중세-근대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아주 부유한 왕과 귀족조차도 광대의 쇼나 무용수들의 공연을 매일 볼 수는 없었기에 시각적으로 즐길 거리라곤 예술가들이 제작한 회화나 조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림 앞에 앉아 감상하고 사색하고 고찰할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과학과 자본의 발달로 인해 회화의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기 전까지는. 유한계급이 늘어나며 오페라나 연극도 함께 성장했으며 풍부한 수요는 더 많은 공급을 불러일으켰다. 인쇄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의 볼거리를 폭발적으로 늘렸고 영상기술-대중문화-인터넷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혁명은 그에 기름을 부었다. 아마 21세기의 일반인이 10분 안에 접할 수 있는 볼거리의 양은 근대 이전 그 어떤 왕이나 파라오, 혹은 황제가 평생 본 것보다도 많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사람들이 미술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리가 없다. 더 가까이 앉고 더 친근하게 붙고 더 세심히 바라보아야 느낄 수 있던 것들을 찾아볼 시간이 없다. 넷플릭스, 유튜브, 그리고 네이버 웹툰. 미술의 경쟁자들은 너무나 막강해서 어쩌면 작가들 본인들조차 저 세 가지 매체에 쏟는 시간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에 따라 미술의 방향도 점점 바뀌고 있다. 오래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에서 순간적인 인상만으로도 관객의 시선을 사라잡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 역시 그런 관객의 하나일 뿐이니 작품 너머에 있는 작가와 마주 앉아 작품을 매개로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그의 생각과 미술 세계를 엿볼 시간을 내어주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 타인을 이해할 시간이, 사색에 잠길 시간이, 누군가를 생각할 시간이, 행복을 추억할 시간이, 그리고 사랑할 시간이 없다. 현대의 자본주의적 사회는 그런 삶을 무척이나 권장하고 예찬한다. 효율이란 이름 아래 그런 여백 같은 시간들은 종종 거세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없다면 도대체 삶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2021. 4. 10.

0.7%의 확률

나는 트레이더다. 세상에 고작 0.7%의 확률에 베팅하는 바보 같은 트레이더는 없다. 사실상 그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비참하게도 지난 몇 주간 나는 그 멍청한 확률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고 무릎 꿇고 애원해야 했다. 0.7%이라니. 이 얼마나 하찮은 숫자인가.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희망에 더더욱 매달리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청천벽력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던 그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금요일 오후,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그 희망들을 잔인하게 잘라냈다. 날개가 있는 것은 추락하기 마련이니 희망을 품은 우리들은 결과를 받아본 순간 더욱 절망할 것이다. 그들이 의지할 사람은 나뿐이니 적어도 나만큼은 그 순간 더 절망해선 안되었다. 기업이 재무제표에서 잔존가치가 얼마 남지 않은 악성부채를 상각하듯이 나 역시 0.7%의 희망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막상 겪어보니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더라. 예상하지 않았던,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비극을 약간이라도 막을 방법은 돈에 의지하는 것 외엔 없었다. 얼마 전 의사가 내게 심부전증이 의심된다고 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그날 내 심장이 그랬던 것 아닐까. 제멋대로 날뛰는 심박을 애써 무시하고 최악의 경우를 모면할 비용을 계산했다. 반쯤 마비된 머리로 어떻게 그 숫자를 도출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그 계산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것들이 몰락했다. 미국채는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고 빌황의 펀드는 하루아침에 파산했으며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여당의 지지도는 보궐선거에서 25개 구 모두에서 패배하리만큼 떨어졌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무엇도 나보다 더 빨리 침몰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0.7%란 확률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신에게 애원하는 것과 동시에 희망을 버리기를 반복하는것, 또 반복해서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신이 내 기도를 들었는지 한낱 인간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고, 버렸다고 생각한 희망은 문득문득 고개를 쳐들어 나를 더욱 괴롭혔으며 밥은 먹는 족족 체했고 별일 없이도 숨을 헐떡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간절히 바랬던가. 암울하게 글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0.7%의 확률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구원했다. 사실 담당자가 몇몇 특이사항을 간과하는 바람에 그 확률을 잘못 전한 것이라고 했다. 화가 나기는커녕 울음이 터져 나오도록 기뻤다. 지난 몇 주간 나는 삶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가장 혹독한 방법으로 깨닫고 있었으니 지금 그 고통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 처음 전화를 받던 날이나 마지막 날이나 여전히 시장에서는 여러 가격들이 어지러이 점멸하고 있었고, 창밖에선 봄이랍시고 벚꽃이 피고 지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가장 끔찍한 지옥에서 엉금엉금 기어돌아왔다. 

이렇게 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삶에서 최악의 비극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또) 겪을 것이며 궁극엔 나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미쳐 생각지도 못한, 참으로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비극을 선사하곤 한다. 그저 주식이 좀 빠지고 오른다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앞차가 끼어든다고 빵빵대며 부잣집 친구 놈이 전화해서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듣는 이 삶은 얼마나 평온한가. 내 일상이 또다시 부서지기 전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보고, 느끼고, 웃고, 만나고, 나누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