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ER(Working Paper
No. 24489), Pierre Azoulay, Benjamin Jones, J. Daniel Kim, and Javier Miranda |
미국의 조사결과와 데이터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데이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전문성의 부재에 있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핫한 모 비스트로를 방문했을 때 두 가지에 놀랐는데 하나는 쉐프와 오너의 나이가 너무나 어리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식의 퀄리티가 참으로 처참했다는 것이다. 요식업의 기본조차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음식점을 개업하고 거기서 실패를 맛보는 일은 이미 TV 예능 골목식당의 단골 소재가 된지 오래다.
이는 비단 요식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매년 여름이면 청계천 변에는 도깨비야시장이 열리는데 시의 후원을 받은 젊은 소상공인들이 가판을 열고 자신들이 만든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다. 하지만 살 것이 없다. 젊은 창업가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청계천고가도로가 철거되기 전 노점상들보다도 더 조악한 품질과 형편없는 디자인 때문에 도저히 지갑을 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들의 대부분은 필히 파산할 것이고 운이 좋다면 차라리 일찍 폐업해서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형편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이 회사나 식당이나 공방에 들어가 기본기를 배울 나이에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미숙함은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와 정부가 그들로 하여금 창업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멘토들이 나서서 너는 지금 창업을 할 때가 아니라, 기본기를 익히고 기술을 배울 때다. 창업은 아이디어 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비즈니스 모델은 경쟁력이 없다, 와 같은 쓰린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 되려 이상한 창업지원센터를 만들어 청년들을 실패의 일방통행길로 유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졸자들의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한다. 그렇게 폐업의 비극은 나라에 의해 대량생산된다. 이는 비단 문재인 뿐 아니라 박근혜 정권부터 이어진 문제로 정부는 최저임금을 취준생들의 생산성보다 더 빠르게 높여 그들의 취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링크), 그로 인해 20대 실업률이 폭증하자 창업을 유도해 청년실업률을 낮게 유지시켜왔다. 하지만 숙련공들과 대기업 자본들이 경쟁하는 시장에, 비숙련인데다 소자본, 아니 무자본인 청년들이 뛰어드는 것은 그냥 가미가제 작전이나 다름없다.
날씨가 좋아 서울숲을 걷다 모 기업에서 후원하는 청년창업공간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시세에 맞는 월세를 감당하고 살아남을 가게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당장 이 곳의 가게들과 시장경제 맞게 월세를 내는 인근 겔러리아포레의 가게들과 비교해 보라. 이 청년들이 유동인구가 이렇게나 많은 곳에 가게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기업이 후원 덕이다. 차라리 그 자리를 일반 자영업자들에게 개방했다면 가장 많은 수익을 낼 가게들이 입점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훌륭한 사업모델을 가진 가게들은 알바생을 고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알바생들이 직원이 되고, 그들이 경력과 자본 그리고 인맥을 모아 새로운 장소에 분점을 내고 창업하는것 그것이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선순환 아니였나. 기업이 수십만 청년창업가 중 몇명을 뽑아 마치 부자엄마나 아빠행세를 하며 월세를 대신 내주며 자비를 베푸는 것은 낭만이나 후원이 아닌 사회적 낭비고, 또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숙련공 노조들의 정치행위로 인한 최저임금의 비정상적 폭등, 그리고 코로나 사태. 한낱 개인이 넘을 수 없는 두 벽의 사이에 낀 청년들은 멧돌 사이에 갈리는 콩 처럼 부숴지고 있다. 함께 정권교체를 이뤄낸 40대 운동권들은 20대를 외면하고 배신했으며 그들의 젊은 날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식어가고 있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마치 갈증에 못이겨 바닷물을 들이키는 조난자들처럼 대한민국의 20대는 창업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하는 것은 환갑을 넘긴 노인이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것 만큼 힘들다. 그들도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리라. 단지 대안이 없을 뿐이지. 오늘의 20대가 한국 중산층의 황금기였던 8090년대의 대중문화에 빠져드는 것이 내겐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