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29.

우리 집의 근현대사

큰할아버지가 만주로 떠나시고 차남이었던 할아버지는 교사가 되어 서울로 상경했다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맞이하셨다. 현재 서울 약수동의 한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가 도보로 낙향하셨는데 당시 제2한강교는 너무 멀리 있었으니 아마 뚝섬이나  서울숲 언저리에서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시지 않았을까. 남쪽 고향 땅으로 향하던 도중 동향의 대학생 둘을 만나 짐을 나눠 지고 이동하는데 미군의 폭격을 만나 그들과 헤어지게 되셨다고 한다.
 
보름인가 한달인가를 걸려 고향에 도착하셨다고 하는데 당시의 열악한 교통 상황과 당시 돌을 갓 넘겼던 아버지를 업고 이동하셔야 했던 할머니의 이동속도를 고려해도 30일은 너무 길고 15일 정도 걸리시지 않았을까 한다. 게다가 30일이 걸렸다면 전선이 그 분들을 따라잡았을 테니 더욱 어려움이 많으셨을텐데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으신거로 보아 보름이 걸리셨을거라 추측해 본다. 고향에 도착해 보니 앞서 헤어진 두 대학생이 먼저 도착해 자신들이 들고 있던 할아버지의 봇짐 하나만 증조할아버지께 드렸고, 그 분들은 피난길에 죽은줄로만 알고 슬퍼하고 계시다 아들내외가 나타나니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군은 빠르게 남진했고 고향땅 역시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선다. 증조부는 지주 출신이었던 터라 할아버지 역시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한채 숨죽이고 계셨다고 한다. 특히 인민위원장에 예전 고조부의 노비였던 사람이 임명되자 더욱 그러셨다. 하루는 완장 찬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쳐 마당의 장작을 하나씩 손에 들고 집 주변을 에워싸자 그땐 정말 죽었구나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그분들은 가족들에게 해를 끼지시지는 않았다. 다만 사위 한분(내겐 고모할머니의 남편)이 순사 출신이었던 터라 그분이 본가로 돌아올거라고 기대하고 잡기 위해 지키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모할머니는 본가로 오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말씀해주시지는 않았지만 아마 자기 남편의 본가 혹은 부산으로 달아나지 않았을까.
 
노비였던 인민위원장은 다행히 증조할아버지와 그 집에 별 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다. 폐쇄적인 시골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나라가 뒤바뀐다는 것은 그냥 동네 내에서 주민간 서열이 바뀌는 정도를 의미하지 이념에 따라 서로가 꼭 죽고 죽이는 것 만은 아니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지 모든 동네가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6.25 전쟁이 유독 비참했던 이유는 사상자 거의 대부분이(80%) 민간인이었고 그 중 상당 비율은 같은 민간인이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 등으로 인해 농경사회에 대한 환상을 다소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는 늘 숨겨진 갈등이 있으며 특히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쳐 격동을 겪었던 시대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과거부터 품어온 약간의 앙심이 처형으로, 아이들 간의 사소한 다툼이 일가족의 몰살로 쉬이 번지던 시기였다.
 
전쟁 당시 날짜별 전선 변화를 살펴보면 고향 땅이 북한군의 점령지에 넘어간 것은 약 7월 초중반이고 이후 전황이 뒤집어져 남한이 수복한 것은 대략 9월말-10월초로 보인다. 모든 한국인들이 그 6-7주 동안 내린 선택은 이후 60-70년의 삶을 영구히 바꿔놓았다. 다행히 고모할머니와 그 남편은 동네로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 동네에서는 인민재판이 일어날 일이 없었다. 인민위원장은 아무도 처형하지 않아도 되었고 북한군이 물러날 때 같이 도망가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 고향이 비극을 피할 수 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 인민위원장이 훌륭한 분이셔서 북한군의 감시아래 반동분자들을 색출하는 시늉만 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보호했을 수도 있고(깡촌이지만 기차역이 있기 때문에 북한군이 없었을리가 없다) 고조부나 증조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또 인간적인 친분에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리 아름다운 동기가 아니었을수도 있다. 노비출신이지만 세상 사는 머리가 발달한 인민위원장에겐 친일 경력이 있어 인민재판을 열면 누군가가 자신을 밀고할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내 증조부가 그에게 뇌물을 줬을 수도 있다. 어쨋거나 살육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의 다른 곳은 이렇게 다행스럽지 못했다. 6.25전쟁의 첫 반년은 전선이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였는데 2달만에 낙동강까지 후퇴한 최전선은 그 해 10.1에 38선을 돌파해 겨울 전 두만강에 이르렀다가 다음해 1.4에 서울을 버리고 다시 후퇴한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1년 1월 4일까지 약 반년간 전선은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을 왕복달리기한 것과 같다. 군인 사상자의 네배에 달하는 민간인인 사상자 대부분은 이 과정속에서 나왔다.
 
특히 개성과 평택 사이의 주민들은 반년간 정부가 반년 사이 세번에서 네번이나 바뀌는 것을 겪어야 했고 첫번째 두번째에는 비극을 피했던 동네도 세번째 네번째에 살육과 폭력, 그리고 보복이 이따랐다. 만약 전선이 평택에서 더 남쪽까지 후퇴했다면 북한군은 자신들을 따라 후퇴하지 않은 기존 인민위원장을 처형하고 새로운 사람을 앉혔을수 있고 새 권력자는 증조부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지 모른다. 인간사의 대부분의 비극이 그랬던 것 처럼 삶과 죽음, 그리고 선량한 피해자와 학살자를 가른 것은 그저 우연한 우연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무남독녀셨고 할아버지 역시 큰할아버지가 만주로 떠나 생사가 불투명해진 이래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두 집안에서는 부부가 다시 상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외증조부는 집과 땅을 주며 고향 땅에 정착하라고 했고 서울에서 피난의 고통을 겪은 할아버지는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퇴사하지 않고도 고향에 집을 지으셨던 것을 보면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짓던 그 집은 아직 주소지가 없어 복귀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남한에 있는 지는 물론이고 생사여부조차 파악되지 않던 시절이라 학교는 미복귀자 모두를 일괄 퇴직시켰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평생 떠나고자 했던 고향 마을에 다시 정착하셨다. 살아계실 적 할아버지는 대청마루에 앉아 "내가 이집 짓느라 서울을 못갔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할아버지는 이후 평생을 그 집에 사시며 팔남매를 길러내셨고 마을 내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은퇴하셨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cf가 유행하던 시절 아궁이를 보일러로 고쳤던 그 집은 반세기 넘게 아버지 뿐 아니라 나와 사촌들의 기억에도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철거되었다. 지금은 그 지난 세기의 기억위에 신식 주택이 들어서 있다.
 
인민위원장이었던 그분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계속 같은 동네서 살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동네에 애착이 있었으니 자신의 팔에 완장이 채워지고 손에 장작이 쥐어져도 이웃사촌의 머리를 후려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몇번 처가를 오갔던 큰고모할머니의 남편도 자신을 해치려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순경이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복수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정부에 이웃을 빨갱이라며 밀고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주와 친일부역자들을 인민재판에 세우지 않았던 것 처럼. 아마 인민위원장의 아들딸들은 할아버지의 학교에 다녔을 것이고 그의 손자들은 우리 아버지와 같이 자랐을 것이다. 족보와 가족관계도를 되짚어보면 개중엔 혼인으로 맺어진 이들도 있을 지 모른다.
 
20세기 최악의 전장으로 흔히 스탈린그라드를 뽑는다. 약 5개월 간 진행된 그 전투해서 독일과 소련 양측은 각각 약 백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한국전쟁의 첫 반년의 참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사상자 중 군인/민간인의 비율이 반대였을 뿐. 요동치던 전선 덕에 한반도에는 수도 없는 스탈린그라드가 존재했고 그 가난한 나라의 내전에서 사람들은 쇠가 없으면 죽창이나 각목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 가운데서도 마치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처럼 큰 비극으로 번지지 않았던 우리 마을같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동네 사람들이나 어른들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일제시대, 패망과 해방 그리고 내전과 같은 격변의 시기를 겪은 그분들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쟁통에서는 남을 죽일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 뿐이지 히틀러나 스탈린, 도죠 히테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1.4후퇴때 전선이 평택 방어선에서 멈췄기 때문에 우리 마을은 북한군의 재점령을 피했던 터라 우연히 비극을 피했던 것이지 동네 사람들이 유난히 도덕적이거나 우애가 깊어서는 아니었다고. 해방한국의 모든 도시와 마을이 스탈린그라드, 아니면 동막골로 나뉜 것은, 군 수뇌부들이 작전지도에 임의로 그은 선 하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결국 그저 그런 우연에 불과했다는 것을.
 
개개인의 기억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관용어구처럼 되풀이하지만 정작 각자가 자신의 할아버지의 역사는 모르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러니 빨갱이의 후손이 김씨일가를 욕하고 친일순사의 아들이 반일을 외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유시민이 딸에게 일제시대 공무원으로 출세하려고 애쓰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것 처럼 나 역시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사에 무엇이 숨겨져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남은 흔적들을 하나하나 기록해보려고 한다. 더 없어져 정말 잊혀지기 전에.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다들 그랬다. 그래서 옆동네의 지주들을 찾아가서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더라"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동막골은 그저 신화적 환상일 뿐인가 보다.

2019. 6. 21.

자유시장경제 (Free Mayor's Economy)


 
우리가 시장경제라고 할 때의 "시장"은 서울시장, 안산시장, 논산시장 할 때의 시장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교차하는 market을 의미한다. 일부 페북 논객들이 시장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드디어) 깨달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나, 일부 용어를 혼동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격은 시장(market)이 정하는 것이 맞고 시장(mayor)가 정하는 것은 정치다.

2019. 6. 10.

Das Parfum


이 소설을 통독한 것은 단 한번 그것도 십여년 전 내 이십대 중반 언젠가였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려지는 한 장면이 있다.

냄새를 가지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 그루누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한 소녀의 내음이 너무 탐이나 그를 빼앗고자 한다. 그녀를 죽여서라도. 이런 음모를 감지한 그녀의 아버지는 온갖 트릭을 동원하여 그녀를 도시로부터 대피시켰다. 뒤늦게 그녀의 자취를 좆아 그루누이는 성 밖에 나서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강렬한 열정을 느낀 것은 그녀가, 아니 그녀의 향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성문앞에 서서 침착하게 그녀의 행적을 가늠해본다. 모든 흔적과 증거가 그녀가 동쪽으로 향했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단 하나 그의 후각을 제외하고는.

서쪽에서부터 그녀의 미세한 내음을 맡은 순간 그는 주저없이 그 방향으로 내달린다. 천가지 이정표와 만가지 증거들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단 하나, 그의 코가 반대편을 가르키자 그는 주저없이 말머리를 틀었다.


*                   *                   * 


그 옛날의 내가 그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기록한 부분은 전혀 다른 페이지였지만 한참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만약 그루누이였다면 나는 그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내 커리어에서 지난 십년은 확신을 부수고 당위를 분쇄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온 내가 어찌 나에 대한 그런 강한 믿음을 가지겠냐만은. 내 어찌. 감히.

2019. 6. 9.

박원순의 부도덕한 사생아, 제로페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국가는 자유로운 경쟁을 보호하고 시장을 수호하는 심판의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하지만 경기에서 주심이 선수들의 경기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직접 공을 드리블해서 슛을 날린다면 그는 그 한 경기나 시즌 뿐 아니라 축구라는 제도 자체를 산산히 부숴놓는 것이다.

그리고 제로페이는 시장(market)이 뭔지도 모르고 아직도 시장(mayor)의 역할이 뭔지도 모르는 병신같은 박원순 시장이 등신같이 필드에 드리블 하면서 등장했다 자빠져서 코가 깨지는 새로운 코미디 쇼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쇼를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쇼는 우리의 제도 자체를 산산히 부숴놓을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할 예외적 경우를 보자. 시장의 독과점이나 담합으로 자유로운 경쟁이 제한될 경우나 혹은 시장논리가 사회적 약자들을 소외할 경우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국가는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신용시장이 그런가? 국내엔 열개가 넘는 신용카드회사가 서로 무한대로 경쟁하고 있고 상위 1,2,3위 조차도 수익이 점점 악화되고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경쟁원리를 따라 매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럼 제로페이가 기존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편익을 제공하나? 제로페이의 지불은 신용이 아니라 은행 잔고다. 쉽게 말해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카드인데 지명수배자나 금치산자가 아니라면 현금계좌를 가지고 현금카드를 만들지 못할 사람은 없다. 제로페이가 사회에 제공하는 추가 효용은 전혀 없다.

결국 제로페이는 성공할 유인도 없고 존재할 이유도 없는 쓰레기같은 제도다. 자연상태라면 이런 거지같은 서비스는 자동으로 도태되겠지만 문제는 그 운영 주체가 정부라는 데에 있다. 그리고 무능한 소인배들이 종종 그러듯이 박원순 시장은 이 제도의 성패에 자존심을 걸었다. 정부는 효율성의 압박을 받지 않으면서 돈이 많으니,  만약 서울시가 제로페이 사용자 모두에게 사용액의 10%를 대신 내준다고 한다면 일반 신용카드 회사들이 그와 제대로 경쟁할 수 있겠는가. 저질 농담같지만 이렇게 농담같이 저질스러운 일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이용자 3명을 추첨해 뉴욕 항공권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뭐 이래도 먹히지 않으면 점점 사은품을 늘리겠지. 물론 그 재원은 세금에서 나올 것이고 물론 그 일부는 카드회사들에게서 걷은 것이다.

따라서 제로페이는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도이며 이런 사산아를 낳은 박원순은 공직에 있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물론 그가 과분한 자리에 앉아있다는 증거는 이 말고도 많다. 3선을 거치고서도 아무런 실적을 남기지 못해 허둥지둥 아무거나 막 날리는 그의 말로는 대단히 추하고 대단히 초라할 것이라 장담한다. 그의 임기 내내 서울이 그랬듯이.

2019. 6. 7.

한국 경제 네 가지 예측

대학때 은사님께서 돈 받는 일이 아니라면 사석에서 절대 공짜로 예측 따위는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야 뭐 말 안듣기로 소문난 제자니 그냥 하겠다. 그리고 아래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전망일 뿐이다.

1. 불황이 온다면 한국은 2008/09년보다 더욱 심하게 타격을 받을다.
2. 불황이 오든 오지 않든 한국의 지니계수는 역대 최대로, 또 최대 속도로 벌어질 것이다
3. 환율은 연말 전 1200원 중반을 찍을 것이다.
4. 다음 경제부총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될 것이다.


1. 경제가 침체에 들어가면 정부는 두 가지 수단을 써서 대응한다. 하나는 통화정책, 또 하나는 재정정책. 통화정책은 쉽게 말해 다같이 대출을 회수해서 시중에서 돈이 귀해질 때 중앙은행이 나서서 돈을 풀어줘 유동성을 확보해주는 정책이다. (이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Ray Dalio의 동영상 강의를 추천한다. 링크) 재정정책은 다같이 지출과 투자를 줄여서 경제가 침체될 때 정부가 돈을 대신 써줘서 수요를 늘리고 대신 경제가 활황일 때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과거의 GDP를 보면 프랑스나 영국같은 선진국들도 한 해는 +15%성장했다 다음 해에는 -9% 감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앞서 언급한 두 정책수단을 통해 경제가 과냉, 혹은 과열로 흐르지 않도록 조절해준다. 그 결과 이제 규모가 있고 어느정도 경제가 성숙한 국가의 성장률이 5%이상 스윙하는 일은 드물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은 이 두 수단을 모두 쓰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먼저 통화정책을 보면, 앞서 여러번 지적했듯이(링크) 우리나라는 통화정책을 제대로 쓰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금리결정은 항상 후행적이고 늘 너무 늦게 올리고 너무 늦게 내린다. 게다가 현 청와대가 각종 경제 현안에 입김을 미치는 정도가 그 어느때 보다도 강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갑자기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칠 가능성은 더 낮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오더라도 한국은행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체면치례로 뒤는게 연준이나 타 중앙은행을 후행적으로 쫒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그나마 괜찮다. 옛날에도 그랬으니까. 진짜 문제는 재정정책에 있다. 만약 경기가 극도로 나빠진다면 빠르고 강력한 재정정책이 중요하다. 2008년에 우리가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던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재정정책이 있었다.(내가 4대강을 재평가하는 날이 올 줄이야..) 당시 아시아 국가 중 GDP대비 재정지출 비율을 보면 단연코 한국이 가장 컸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IMF 시절 경제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강만수 부총리가 있었고 국회를 장악한 여당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는 이 둘이 모두 없다. 홍남기 부총리는 예산처 출신으로 재정집행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청와대 내에서 발언권도 세지 않다. 보통 청와대 내에서 경제정책과 아젠다를 담당하는 것은 정책실장인데 현재 정책실장은 부동산 폭등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는 김수현 실장이다.(전공: 도시공학) 그러니 경제위기 상황이 와도 재정정책을 드라이브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갑자기 홍남기 부총리가 영웅처럼 나서거나 운좋게 청와대 내의 숨겨진 제갈공명같은 인재가 재정정책을 설계해 들고 나오더라도 그 전망은 암울하다. 어디까지나 내 사견이지만, 재정정책은 어디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돈을 바보같이 쓰더라도 그 돈을 번 사람들은 최대한 현명하게 쓰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재정승수는 여전히 어느정도 유지될 것이다. 케인즈는 아예 땅을 파서 돈을 묻어도 된다고 했는데 뭐 반도국가에서 세로로 운하를 파는 것 쯤이야 양반이지. 하지만 그러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국회는 그 어느때보다도 분열되어 있고 자한당 의원들은 균형재정에 집착하고 있어 문재인의 추경에 동의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장 GDP의 0.3%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세먼지 추경도 몇달째 국회에서 표류중이지 않은가. 정부지출이 경제를 떠받친 2009-10년 재정적자가 GDP의 거의 4-5%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재정정책이 적절하게 시행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뿐만 아니라 과거 금융위기 시절에는 중국의 성장률이 유지되면서 한국도 덩달아 선방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현재 만약 리세션이 온다고 한다면 그 진원지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2009년의 순풍이 이제는 악풍이 되었다. 배는 더 망가지고 선장과 선원은 더 무능한데. 그럼 같은 폭풍이 닥친다고 해도 피해는 훨씬 크겠지.


2. 불황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현재의 소득주도정책은 부자의 소득을 폭증시키고 빈자의 소득을 0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 해결할 적절한 정책은 대대적 감세를 시행해서 자본투자가 이뤄지도록 만들고 최저임금을 크게 깎아 가난한 사람들이 근로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당신은 이 둘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특히 현 정부 아래서. 문재인 정부는 계속해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난 올해 7월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8%를 상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박근혜-이명박정부 시절 상승률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럼 빈민층을 넘어 이제 중위권 노동자들 중 일부가 실직하거나 구직을 못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소득은 0이 될 것이다. 정부는 미봉책으로 그들에게 실업급여와 복지혜택을 제공하겠지만 기존 소득에 비하면 이는 턱없이 작은 금액이다. 그리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이다. 그럼 부자들은 자본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돌릴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해외에 발을 걸칠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은 더욱 가난해지고 그럴 방안이 있는 자본은 더욱 부유해질 것이다, 아 물론 저소득층에 비해서.

결국 최저임금이 빈부격차를 벌리는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데(나머지 하나는 필수재인 부동산을 폭등시키는 정책) 명목상승률을 깎을 수 없으니 인플레이션을 높여 실질 상승률을 낮추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오면 빈부격차는 더 벌어진다. 게다가 당장 다음 정권이 맞는 정책을 시행해서 고용이 다시 늘어난다고 해도, 현재 장기실업에 빠진 사람들에 앞서 갓 졸업한 대졸자들이나 단기실업자들이 먼저 직업을 고용할 것이다. 2016년에는 92년생 김지영은 25살의 실직자였지만 2021년이 되면 지영씨는 30살의 실업자가 된다. 그리고 기업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늘 30살의 실업자보다 그 해의 25세 실업자를 선호한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듯 92년생 김지영의 실직한 삶도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 몇년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부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지지 마라. 두번 다시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3. 지난 5년간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설 때의 환경을 보면 주로 외국인들의 국내자산 매도 물량이 수급을 끌어올렸던 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외국인이 채권과 주식 모두를 순매수했는데도 불구하고 원화는 약 5.5% 폭락했다. 모든 EM국가들 중 원화보다 더 폭락한 나라는 몇년 전 쿠데타가 일어났던 터키와 국가부도의 단골멤버인 아르헨티나 밖에 없다. 즉 과거와는 원화 약세의 요인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것이 내국인들의 해외자산 수요라고 생각한다. 외국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통화가 5%정도 약해지면(그것도 태국 바트같은 통화는 4% 강해질 동안)  원화자산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해 매도세가 약해지거나 매수로 돌아서는데, 환변동에 덜 민감한 국내 투자자은 애초에 해외자산을 확보하는게 목적이라 환율이 올라가면 더욱 빠르게 쫒아가서 산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수출기업에도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수출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할 때엔 원화가 필요하니 갑작스럽게 환율이 반등하면 열심히 달러를 팔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투자가 해외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달러를 팔 압력이 덜하다. 올해 환율이 1200을 돌파하고 나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4. 다음 경제부총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고 청와대는 국회에서 개헌 통과선을 확보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에 연말로 갈 수록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수장에 코드보다 능력을 갖춘 사람을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최종구 위원장은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국과 경제정책국을 거쳐 현 정부 인사중 그 누구보다도 경제부총리 자리에 맞는 적임자이며 정무적 감각도 갖춘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 그는 금융위원장의 직무를 넘어서는 사안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타다 이재웅 대표에게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지적했으며 얼마 전에는 각 은행들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평가하겠다고 발언했다. 이 둘은 모두 금융위원회의 소관이나 책임을 벗어나는 분야인데,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해온 그가 타 부서의 영역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엔 복안이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닐까. 특히 환율과 경상수지 흑자폭 축소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면 국제금융국에 오래 몸담은 그에게 힘이 실릴 가능성이 더 크다.

7년만의 경상수지 적자 속에 숨겨진 함의

7년 만에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매년 4월마다 돌아오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배당소득 유출 때문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고 배당이 없는 다음 달에는 흑자로 다시 돌아설 것이다. 하지만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현재 경제상황을 좀 더 엄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먼저 외인 배당 유출 규모는 작년보다 줄어들었다고 하나, 이는 환율이 올라온 결과로 내 분석이 맞다면 지난 10년 중 재투자율이 가장 낮다. 많은 투자자가 배당으로 현금을 받으면 그 돈으로 재투자에 나서는데 외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이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국제수지 중에서 상품수지는 점점 나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고 여행수지 적자폭은 확대되고 있으며 해외 직접투자/증권투자는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경상수지 흑자폭이 GDP의 4%에 달해 IMF시절은 물론이고 2008/09년의 금융위기 상황과는 거리가 아주아주 대단히 멀고, 국제수지는 늘 평형을 이뤄야 하는데 한쪽의 흑자가 계속해서 누적되는게 꼭 좋은것 만은 아니다. 이 점을 고려해서도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인들도 외국인들도 국내자산에 투자를 줄이고 해외투자를 늘린다는 점인데, 금융/자본수지 적자 자체보다 그 배경이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가지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저소득 저생산성 노동자들의 강제파업. 정부는 시간당 생산성이 8,500원에 미달하는 노동자가 일을 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들어 그들을 강제로 파업시켰다. 세상에 오천원짜리 물건을 만원을 주고 사는 사람이 없는 것 처럼, 오천원짜리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를 만원을 주고 고용할 기업은 없다. 폐업을 하고 말지. 사실 이걸 파업으로 분류해야할지 모르겠다만, 어쨋거나 이 파업의 여파는 몇년간 급증한 실직자와 실업률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두 번째 파업은 바로 자본파업. 지금 우리나라 GDP의 주요 요소 중 가장 악화되는 것은 투자다.(I) 4분기 이동평균으로 볼 때 지난 50년동안 투자가 현재보다 나빳던 적은 딱 네번 뿐이다. 오일쇼크, IMF, IT버블 붕괴 그리고 리만사태. 경제성장률이 반토막나면서 악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민간투자가 망가지고 있어서이다. 신문은 대기업들이 몇십조를 투자하고 수만명을 고용한다고 헤드라인을 뽑지만 죄다 공염불이다. 그저 클럽에서 여자를 꼬시는 한량의 멘트처럼 진심이 결여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 뿐 아니라 자본까지 파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배경으로 여당 지지자들은 대외환경을, 야당 지지자들은 정책실패를 들며 끊임없는 입싸움을 하고 있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 경제는 지난 21세기 들어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는 MSCI rebalancing 때문에 코스피를 팔아야하는 타이밍에 배당이 이루어져서 재투자율이 낮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재투자율은 2011년 이래 꾸준히 낮아졌다.

2019. 6. 6.

영화 기생충, 그리고 계급의 법칙 + 사족 3개


[아래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지하에서 살며 지상을 꿈꾸다 지하로 추락해버린 한 가장과 가족의 이야기.

 
이 영화의 시작은 한 친구가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재물복이 들어온다는 수석과 부잣집 과외자리를 선물하며 시작된다. 학벌위조로 시작된 과외는 장녀 기정(박소담)의 사이비 그림치료로 이어지고, 또 그녀는 운전기사를 모함해서 쫒아낸 뒤 아버지를 불러들인다. 마지막으로 이 셋은 음모를 꾸며 가정부를 쫒아내고 그 자리에 어머니를 들여놓는 것으로 부잣집 기생하기 작전을 완벽하게 마무리한다.
 
쫒겨난 가정부가 한밤에 찾아와 벨을 누르기 전 까지는.
 
집주인들이 집을 비운 사이 찾아온 그녀는 두고간 것이 있으니 꼭 좀 문을 열어달라며 애처롭게 부탁한다.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어리둥절하는 기생충 가족들을 지나쳐 집안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진 지하공간을 열어젖히며 영화의 후반부를 시작한다.
 
우리는 피라미드의 각기 다른 층에 속해있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절대 낮은 곳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 기택의 시선도 그러하다. 반지하에 살며 창문 너머의 지상만을 바라봤지 온전한 지하의 삶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마치 벤츠 뒷좌석에만 앉는 박사장이 반지하의 삶을 모르듯이. 자신의 발 아래를 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마치 물리법칙처럼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 전 우주적으로 항상 F=ma가 성립하듯 아래를 향한 시선은 늘 충격과 공포를 동반한다. 사채업자들에게 쫒겨 지하에서 4년간이나 은둔하며 살아 온 가정부의 남편을 보는 기택의 시선도 그러했다. 

영화의 전반부가 유쾌한 신분상승 스토리였다면 그 후반부는 비참한 계층갈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상vs반지하vs지하. 그리고 이는 사회계급에 관한 두번째 물리법칙과 함께 시작한다. 세상에는 우리를 더 낮은 곳으로 끌어 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 마치 중력처럼. 가정부의 남편은 스스로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왔으며 반지하에서 살던 기택(송강호)과 기우는 희망을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지하로 걸어 들어간다. 박사장(이선균) 역시 아들의 생일파티를 위해 운전기사 기택과 함께 계단 아래에 쪼그려 앉아 숨어있다. 상한 무말랭이 냄새를 폴폴 풍기는 그와 숨을 맞대고서.
 
이 무시무시한 중력은 기택의 가족이 한밤에 박사장의 집에서 탈출하는 신에서 시각적으로 극대화된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 유명한 건축가 남궁뭐시기 선생이 지은 저택에서 로얄 살루트를 비우던 기택과 그의 가족들은 차고를 열고 나서자 마자 끝없이 아래로 내달린다.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자유낙하하는 빗줄기처럼. 처음엔 부잣집 주택촌 언덕길 아래로 내달리고 둑방 아래를 건너 계단길을 따라 전속력으로 끝없이 달려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간다. 하지만 그렇게 내려간 그들의 반지하는 비참한 현실로 가득하다. 누가 상선은 약수라 했던가. 높은 곳에서 내린 비는 미세먼지를 씻어내릴지 몰라도 낮은 곳에 모이면 똥물을 왈칵 솟게 만드는데. 젖은 라이터로 시끄먼 똥물 튄 담배에 어렵사리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빨아들이는 딸 기정의 입가에서 소리없이 읽히는 한 마디는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이 상황을 요약한다. "아이 씨발"

다음날 아침 일장춘몽에서 깨어나 체육관에서 눈을 뜬 기택은 더 이상 반지하의 삶에 안주할 수 없다. 벤츠를 몰고 대저택에서 온갖 고오급 위스키와 꼬냑을 들이켜 본 그는 더 이상 열두 캔에 만 원짜리 필라이트 맥주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 선악과를 깨물은 아담처럼 그는 자신의 몸에서 부끄러운 무엇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킁킁. 반지하의 냄새. 사장님 사모님들은 지하도로 내려가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만날 수 있는, 그 칙칙하고 꼬리꼬리한 냄새. 냄새는 마치 가난과도 같아서 혼자서는 느낄수가 없고, 또 숨길 수도 없다. 기택 뿐 아니라 기우/기정이가 그랬듯이. 그들은 그제서야 자신의 진짜 삶이 얼마나 서글프고 비참한지 깨닫는다.
 
하지만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비극으로 끝났다. 심지어 경제지 1면을 장식한 박사장조차도 이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아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져 죽을뻔 했는데도 "귀신 나온 집에 살면 사업이 잘된다"며 이사 나가기를 거부하다 이런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잖은가. 그가 만약 요새 핫한 한남 더 힐이나 아리팍 펜트하우스로 이사갔더라면 아무 탈 없이 잘 살았을터인데.(뭐 기생충 네 마리에게 뜯어먹히기야 하겠지만) 하지만 지하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행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곳에 박사장의 가족을 가둔 것은 더 위로 올라가고자 하던 그의 욕망이었다. 상류층의 사정마저 그럴진대 기택의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 애시당초 반지하는 지상보다는 지하에 더 가까운 곳이었으니 더더욱.
 
이 영화의 마무리가 더욱 슬픈 이유는 감독이 엔딩신에서 넌지시 던지는 메세지에 있다. 이 세상에는 계급이 있고, 우리는 결코 그걸 뛰어넘을 수 없다는, 그 불변의 법칙. 예고없이 주말에 사장 아들 생일파티에 소환된 송강호는 이선균을 바라보며 그의 사생활을 입에 올린다, "사장님 가족을 사랑하시는군요"라고. 그렇게 아빠 기생충은 무의식적으로 사장님이 그토록 싫어하던 그 선을 슬쩍 넘고 말았고 불쾌감을 숨기지 못하는 이선균은 그에게 계급의 선을 일깨워준다. 대저택의 뜰을 호젓하게 바라다 보며 시작된 간밤이 어떻게 체육관에서 끝나버렸는지 또 사랑하는 가족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지 납득하지 못하던 송강호는 그제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는다. 그 모든게 바로 넘을 수 없는 계급의 선, 아니 벽 때문이었고 그는 억눌러왔던 분노를 터뜨린다.
 
sns에 뻔지르한 문구나 올려대는 아가리 낭만주의자들은 부자들도 싸구려 짜파구리를 먹는 신을 보며 "보라 민주주의 사회서 인간은 평등하다"라고 외칠 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근대국가에서는 누구나 몇푼만 주면 짜파구리를 사먹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거기엔 짜파구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는 사람과 끓이는 사람이 있다.(그러고 보니 조여정은 얄밉게 충숙에게 짜파구리 한 입을 안주더라) 이선균과 송강호는 둘 다 아빠고 가장이지만 한 쪽은 사장 아빠고 나머지 한쪽은 기생충 아빠다. 하나가 같지만 나머지 하나가 다르다면 그들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계급사회에 살면서도 서로가 평등하다는 환상 속에 빠져있지 않은가. 이선균이 송강호에게 일깨워 준 그 "선"은 바로 계급을 의미하고 "냄새"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 계급을 오감의 영역으로 끌어내 주는 일종의 신분증이었을 것이다. 아니 이 경우는 낙인이라고 하는게 더 맞겠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기택의 가훈은 바로 안분지족이었다. 하지만 분에 넘치게 지상을 꿈꿨던 송강호는 결국 지하로 추락한다. 그리고 물리적 위치가 낮아질 수록 소통의 영역 또한 함께 줄어든다. 스마트폰과 무전기로 소통하는 지상, 무료 와이파이 존을 찾아야만 카톡이 되는 반지하, 그리고 19세기의 통신수단인 모르스 부호로-그것도 단방향으로만 소통할 수 있는 지하의 삶.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메시지를 받아본 기정은 또 한번의 비극을 예고한다. 간신히 집행유예로 풀려나 반지하로 돌아오고서도 여전히 지상을 꿈꾸며 영영 전해지지 못할 독백과 함께.
 
"아버지 저에게 계획이 생겼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그 집을 사는 것입니다."
 
그의 이루어질 수 없는 계획은 반지하에서 지하로 추락한 송강호의 비극이 아들에게 또 다시 반복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듯이.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영영 지하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계급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처럼.
 
 
"부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      *      *

 
(사족 1)
봉준호 감독은 이전에도 밀폐된 공간에서의 계급간 갈등을 그려낸 적이 있다.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열차 앞칸으로 한걸음씩 나아가 맨 앞칸에 도달하지만 결국 전체 체제가 붕괴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그렇게 보면 단 한칸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되려 지하실로 추락하는 기생충의 스토리는 더욱 암울하고 더욱 비참해졌다. 설국열차가 개봉한 2013년에 비하면 2019년 현재 한국사회의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과 일자리는 줄어들었으며 계층이동은 더욱 어려워졌는데 어쩌면 감독의 세계관이 후퇴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그런 사회에서 생존할 유일한 방법은 꿈을 꾸지 않는 것이다. 지하실의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는 자발적으로 불안정한 지상의 삶을 버리고 지하로 숨어들었고 박사장에게 감사하는 삶을 충실히 살았기에 4년이나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지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송강호의 가족들에게, 그는 처음부터 여기서 태어나고 살았던 것 같다며 지하의 삶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송강호 역시 숙주를 죽이고 나서 자발적으로 침전하여 지하의 삶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은 계층이동이 거의 불가능해진 한국 사회에서는 포기하고 안주하는 것 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자조하는지도 모른다.
 
 
*      *      * 
 
 
 (사족 2)
기생충은 쟁쟁한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2019년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논란의 여지 없이 대중성까지 갖춘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흥행하고 있다. 하지만 칸은 본디 영화의 대중성이나 성적보다 예술성과 정치적 색채에 높은 점수를 줘 왔다.(2005년 수상작이 화씨 9/11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따라서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인 이 영화는 영화적 기교나 표현 뿐 아니라 내포한 메시지나 정치적 색채도 칸의 취향에 잘 맞아 의외의 대상을 수상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근거없는 추측을 좀 더 확장한다면 계급사회와 거기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쉬운 비유와 상징들로 강조해서 보여준 것, 그리고 처음엔 두 피지배 계층이 숙주를 차지하기 위해 협력을 거부해서 서로 싸우지만, 마지막에 지배층인 박사장을 찌르는 신 등이 진보적 색채가 강한 서구의 영화인들의 입맛에 딱 맞았으리라.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그들의 위선과 가식을 읽는다. 영화는 반지하에서 사는 기생충 가족의 현실을 구질구질하게 묘사하지만, 70억 인류 중 절대 다수는 그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세계 중위권 가구 소득은 약 12,000달러 밖에 되지 않는데 비해 우리나라 고졸 1인의 평균임금은 그의 약 3배나 되고 이는 세계 상위 약 1% 안에 드는 상류층이다. 부르고뉴 산 와인을 마시고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든 턱시도를 입고서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칸에 도착하는 품격있고 엘레강스하며 고매하신 영화인들은, 지구상에는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 수 있는 사람보다 가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평균적인 인류의 삶이 어떤지 가늠할 생각 조차 없는 그 상류층들은 자신만의 축제를 열어 빈민 뿐 아니라 (지구적 관점에서)중산층의 박탈감과 비극마저도 끌어다가 영화의 소재로 삼아 윤리적 우월감과 명성을 얻었다. 뭐 돈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고.
 
여담이지만 어차피 사족으로 쓰는 글이니 덧붙이자면, 나는 2017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그들의 이런 위선을 보았다. 수상자 중 하나였던 메릴 스트립은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장벽을 우아한 어조로 비난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적은 부당하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들을 막고 시민권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러고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대통령이 할 일이다. 아니면 뭐 국가 수장이 불법을 방임하란 말인가. 게다가 미 합중국의 대통령은 유엔사무총장이나 지구방위대가 아니다. 비록 열린 이민정책이 미국의 인재풀과 사회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혜택은 고루 배분되지 못했다. 자본가들은 더 나은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미국의 저소득 노동자들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다. 물론 나 역시 경제학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삶을 개선한다고 생각하지만 옳든 그르든 대중과 유권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건 잘 빼입고 잘 배운 잘난 사람들끼리 지지고 볶는 귀족정이지.

되려 인종차별은 헐리웃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 아닌가. 미국의 소수인종에조차 속하지 못하는 아시안들의 눈에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비흑인이 흑인에 대한 농담을 하면 sns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지만 안경 낀 동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위트넘치는 유머감각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원작에 엄연히 존재하는 소수인종 캐릭터들을 지워내기까지 하는데 닥터 스트레인지의 에인션트 원은 본디 아시아 계였지만, 아시아인이든 여성이든 똑같은 minor이니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지 제작진은 백인 여자인 틸다 스윈튼에게 배역을 맡겼다. (just go on a trip~) 이런 인종 바꿔치기는 너무 흔해서 아예 화이트 워시라는 전문용어까지 존재한다.
 
영화 기생충에도 영화인들의 이런 위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신이 있다. 바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들 기우가 비를 맞으며 계단에 서 있는 장면. 설정 상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그 장남은 $500짜리 크리스찬 디올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아마도 봉준호 감독은 배우 최우식에게 낡고 추리한 운동화를 신고오라고 지시했을 것이고 그는 신발장을 뒤져 한 10년 신었던 낡은 스니커즈를 골랐을 것이다. 빈곤과 열악한 환경을 강조하는 장면에서 비싼 신발을 신고 등장하는 이 장면은 아마 영화인들이 그들이 그려내려는 실제의 삶과 얼마나 괴리되어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이 아닐까 싶다. (배우를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와 별개로 그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너무나 훌륭하게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물론 수많은 혜택을 누리고서 이런 글을 쓰는 나 역시 그 위선자 대열의 끄트머리 어딘가에 서 있겠지만.

 
*      *      * 

 (사족 3)
본인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봉준호 감독은 정치와 온전히 분리될 수 없는 감독이다. 그는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정의당원일 뿐 아니라 자신의 영화 곳곳에 사회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영화 초중반 이선균의 대사, "코너링이 훌륭하시네요" 라는 대사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아들 병역비리를 연상하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영화에 담긴 메시지도 정치적 배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

살인의 추억에서는 공권력이 시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위협하는 군사독재 시절의 폭력적이고 암울한 시대상을 담아냈고 괴물에서는 생태를 파괴하는 미군 그리고 그 앞에서 무력한 한국의 치안시스템을, 그리고 박근혜 정권시절 개봉된 설국열차는 하위계층이 반란을 일으키는, 다분히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주인공은 항상 순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으며 가장 최근 개봉된 옥자 역시 극악무도한 코쟁이와 다국적 자본이 착한 주인공을 위협하는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자기 캐릭터들에게 기생충이라는 다소 경멸적인 타이틀과 함께 그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파해쳤다. 서민이라고 착하기는 커녕, 돈 없으니 얼굴도 구겨지고 마음도 구겨지고 사기치고 삥땅치고 속여먹는 일에 별 죄책감도 없는, 남을 무시하면서도 자신은 무시당하기 싫어하는, 파렴치한 인간 군상의 진짜 얼굴을 영화에 담았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달라진 것은 봉준호 감독과 그를 둘러싼 주변환경이 아닐까.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이 우리나라 정치의 헤게모니를 장악했고 자신과 친구들은 사회의 지도계층이 되었다. 그는 더이상 배곯고 춥고 힘들던 뜨내기 영화낭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명실공히 인정받은 거물이다. 설국열차같은 계급사회의 저어기 뒤편에서 출발한 커티스 봉은 이제 1등석으로 올라와 운전기사 딸린 벤츠를 타는 봉 사장, 아니 감독님이 되었다. 세상이 뒤집어지길 바라는 것은 늘 하층민들이다. 양반네들과 가진자들, 그리고 봉 감독같은 사람들은 결코 세상이 뒤집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이 감독의 달라진 영화세계는 지배당하는 자에서 지배하는 자의 대열에 들어선 그의 위상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장 봉준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저항하고 도전하는 젊은 날의 봉준호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리라. 그가 이번 영화에서 박 사장을 칼로 찌른 기택을 기생충이라고 부르며 지하에 가둔 것은 이러한 두려움의 반영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궁예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