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0.

21세기의 시작을 부른 버블

많은 이들이 지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을 지목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 버블로 지목받은 자산은 그 거품이 꺼진 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이전의 고점을 회복했다. 1929년의 대공황 이후 미 증시가 같은 수준으로 돌아오는데에 29년이 걸렸고 2001 IT버블은 급격한 기술력과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15년이나 걸렀다. 일본 증시는 거의 30년이 지나도록 2/3수준으로도 반등하지 못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GDP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의 증시도 십수년이 걸려야 이전의 고점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18세기 툴립구근처럼 영영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버블자산들도 많다. 하지만 미국 부동산은 단 10년만에 모든 손실을 회복하고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이로 보아 2007년의 미국 부동산이 고평가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금융위기를 불러올 버블이었냐는 질문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 과연 무엇이 버블이었는가? 아마도 시장에 팽배했던 서구 금융시스템에 대한 이성적 믿음이 아닐까 싶다. 완전히 이성적인 시장에서는 가격이 아주 높거나 낮다면 항상 팔거나 사고싶어하는 사람이 존재해야하니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패닉장에서는 대개 유동성이 사라지는 liquidity cruch가 종종 일어난다. 신흥시장의 자산을 거래하는 투자자는 이 위험을 늘 감안하기 마련인데, 현대문명을 발달시킨 서구의 금융시장과 자산을 거래하는 투자자들은 이런 패닉의 가능성에 눈을 감아버렸던 것이다. 누구도 입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높은 교육수준과 합리적 시스템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돌아가는 서구의 시장에서 미개한 신흥국에서나 벌어질만한 일이 터지리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흔한 베어마켓이 패닉을 동반한 폭락으로 번졌던 것이다. 물론 거기엔 자신의 금융모델을 과신했던 서구의 오만함이 있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고.

위기가 번지기 시작한 그 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크게 변화했다. 죽어가던 월가는 재무부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자금에도 의존해야 했고 리만의 인수를 검토하고 메릴린치 지분을 늘린 한국의 자금도 시장안정에 일부 기여했다. 이제 금융 시장은 더이상 유럽과 미국의 헤드라인 뿐 아니라 중국의 시장동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으며 월가에서도 이제 아시아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인간승리의 아이콘 대신 마땅히 있어야 할 구성원들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시장 너머에서도 감지된다. 새로 늘어나는 GDP의 60%는 아시아 지역에서 나오고 있으며 2015년에 개봉한 쥐라기공원 4를 보면 공원의 오너와 개발팀장도, 그리고 수많은 관객들도 아시아 유색인종들이다. 20여년 전에 개봉한 1편에 비하면 얼마나 큰 변화인가.

흔히 역사학자들은 100년을 아우르는 가장 커다란 변화를 야기한 사건을 그 세기의 시작으로 정의한다. 현재의 사람들은 21세기는 911테러로 시작됐다고 하지만 , 이번 세기에 벌어진 가장 인상깊은 일이 기독교의 몰락이나 테러의 보편화가 아니라 서구의 헤게모니가 세계를 독점하는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라면 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번 세기의 시작을 2008년 리만의 파산으로 잡을 것이다.

2017. 8. 17.

부동산.부동산.부동산.

*    주택은 거주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라는데 동의한다. 그런데 왜 모든 사람의 인권이 강남을 향해 있는가? 섹스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지만 모두가 수퍼모델과 섹스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도심만 벗어나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에 강남보다 1/5 가격의 아파트가 많다. 게다가 대부분 공기는 더 좋고 더 자연과 가깝다. 꼭 강남이나 투기지역에 살아야 인간다운 삶인가.

*     강남의 집값을 떠받치는 것은 강남에 사는 다주택 보유자들이 아니라 바로 강남에 살지 못하면서 강남에 입성하고 싶은 그들의 욕망이다. 아무도 강남에 살고싶어하지 않는다면 강남은 그냥 지들끼리 사고파는, 무의미한 통정매매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냥 온국민이 강남 집값에 신경 끄면 강남의 집값이 폭등할 일도, 폭등한다고 해도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일도 없다. 찐따들이여, 자신의 컴플렉스를 정의로 포장하지 말자.

*     인터넷 댓글을 보면 싼 값에 좋은 지역의 큰 아파트에 살고 싶은 자신의 욕망은 정의고, 자기보다 한발 앞서서 행동한 타인의 욕망은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무리들이 가득하다. 무주택자들은 다주택자들을 욕하지만 그들이 전월세로 현재 집에 살수 있는 것은 다주택자들이 대신 자본을 투자해 준 덕이다. 다주택자들이 없었다면 집값이 내려갔을 것이 아니라 집이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분양시장에서 다주택자들의 비율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가격이 더 낮았다면 사업성이 악화되어 시공사가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것은 본능이지만 자기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물론 가장 멍청한 것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기 입맛대로 계도하려 드는 김수현 수석이다. 머리 수, 그리고 돌 석.

*    투자 격언에 기다리는 조정은 오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집값이 빠져야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이유는 자기가 집을 사기 위해서이다. 내가 사야하니까 가격이 하락해야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을 뿐더러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 김현미는 집을 파시라, 라고 했지만 집이 필요한 이는 반대로 해야한다. 모두가 기다리는 조정은 오지 않는다, 집을 사시라.

2017. 8. 8.

김현미 김수현의 컴플렉스

80년대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김현미에게는 집을 살 능력과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다. 그녀의 수많은 대학 동창이나 사회 친구들이 그 혜택을 누렸듯이. 하지만 지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며 집을 마련할 동안 그녀는 집을 사지 않았다. 그녀가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던 것인지, 혹은 자신의 구매능력을 벗어난 지역에 거주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쨋거나 그녀는 집을 필요로 하는 실 수요자임에도 불구하고 구매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은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매년 더 올랐고 그녀는 11년간 6번이나 전세를 옮겨다니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고양시의 한 아파트를 대출을 끼고 샀다. 트레이딩 용어로 이를 숏 커버, 혹은 공매도 손절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이 착실하게 살 집을 마련한 동안 자신은 집값 하락에 베팅했다 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왜 (내가 산) 고양시의 아파트는 40평에 5억인데 강남에서는 같은 평수가 20억인가?라는 분노에 찬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은 마땅히 내가 아닌 시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졌고 정의감에 불타는 이 국토부 장관은 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계도하려 한다. 집을 사지 않고 버텼던 자신의 11년간의 고난과 결심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김수현은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주목받고 높이 올라갔던 시기에 시행했던 정책이 처참하게 실패했으니 지난 10년간 이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으리라.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과 신문이 그와 그의 정책을 비난했고 아마도 그는 사석에서도 공격받았을 것이다.("야 너는 집값 잡는다며?? 네 말 믿고 버티다가 망했잖아") 그는 본인 뿐 아니라 자신의 말을 믿었던 사람들을 모두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가 다시 화려하게 청와대에 복귀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 인고의 시간동안 왜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는지 면밀히 분석했는데, 그 원인은 정부계획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즉 내 책임이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때문에 실패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음식이 왜 상했냐는 물음에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대답을 얻었다는 그는, (나한테) 올바른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정신무장까지 갖추어 비장한 모습으로 규제 패키지를 쏟아냈다. 마치 손절한 투자자가 똑같은 투자 전략을 똑같은 상황에서 사이즈만 두배로 키워 과거의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듯이. 문제는 글로벌 유동성 상황만 보면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더 풍부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이 틀려도 이를 고치고 반성하는 일 보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데에 비용과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김현미와 김수현은 과거의 판단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10년전의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 뿐 아니라 지지자들과 국가의 미래까지 걸었다. 그리고 그들이 10년째 실패했듯 또 실패할 것이다.

이런 똥고집이 어디 저 둘만의 모습이겠는가. 인간은 다 똑같다. 자신이 가진 작은 전망이 틀리기 시작하면 사람은 전망을 소망으로 바꾸고, 또 그 소망이 계속 배반당하면 분노를 품은 정의로 업그레이드 된다. 김현미와 김수현처럼 과거에 주택시장을 잘못 판단한 이들이 과거의 실수를 반성하기는 대신, 옹기종기 모여 지루한 주장을 반복한다. 그들은 국토부 장관이 사나운 어조로 주택보유자들을 겁박하는 것을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겠지만, 누가 진짜 그들의 친구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최경환때는 모든 전세입자가 자기가 살던 집을 살 수가 있었다. 월세입자도 매달 월세를 내는 대신 그보다 더 작은 이자를 내면 집을 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와 시장을 잘 모르는 서민들을 위해 정부는 집을 사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목돈을 타고난 사람이나 초고소득자가 아니면 아예 살 수가 없다. 집을 사게 해준 최경환과 집을 못사게 만든 김현미/김수현, 과연 서민들의 친구는 누구인가.

2017. 8. 7.

블라인드 결혼은 어떤가?

블라인드 채용이 인기다. 서류의 스펙으로 사람을 뽑는 일은 그 사람의 진가를 보여주지 못하며 이 스펙은 업무 능력과 연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전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이라고 한다.

나는 비슷한 발상으로 블라인드 결혼을 제안한다. 결혼하기 전에 자신의 배경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는 징역 5년이하의 형사법으로 다스려서 모든 만남이 진정한 의미의 블라인드 데이트, 더 나아가 블라인드 결혼이 될 수 있도록 규제해야한다. 일을 시키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 데에 블라인드 방식이 맞면, 훨씬 더 다양한 차원의 감정적 교감이 있어야 하는 연애와 결혼에서야말로 더 올바른 방식이 아니겠는가.

모든 젊은이들이 상대의 학력, 집안, 직업, 소득, 나이 등을 일체 모르고 데이트를 한 뒤 결혼을 결정한다면 블라인드 채용보다 훨씬 더 많은 차별을 타파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졸이 박사과정생과 결혼하고, 생활보호대상자의 아들이 삼성가의 사위가 되며, 농촌총각이 회계사와 가정을 꾸리고, 생활보호 대상자가 억대연봉자와, 그리고 40살 골드미스가 21살 군 미필 청년과 이어진다니 마치 꿈만 같은 세상이 벌써 도래한 것 같다. 아, 외모도 하나의 조건이 될 테니 모두 복면을 쓰고 데이트하다 서로 결혼식 첫날밤에 공개하는 것으로 하자.

현실적으로 위의 정책은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먼서도 사람들을 더 불만족스럽게 만든다. 정보를 가리고 숨긴다고 사람들은 그 배경에 무관심해지는게 아니기 때문에 딴 여러 방법으로 상대의 배경을 유추하는데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느라 시간을 쓸 것이다. 게다가 차후 결정을 번복하는 일도 늘어날 것이다. 결국 나중에 다 알게될 정보들이라면 차라리 첫 만남에서 서로 다 공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극소수는 편견과 고정관념의 불이익을 받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전체가 정보의 불충분으로 인한 손해를 보는게 더 나쁘니까. 지금 블라인드 결혼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채용도 마찬가지다.

2017. 8. 6.

집값이 빠진다고 그들이 집을 살까?

인터넷 댓글을 보면 부동산 폭락을 원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많은데 인터넷에서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아마 네티즌 중 젊은층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간다면 그들이 집을 살까? 3년전엔 금리는 그대로에 대출은 거의 두배 가까이 더 받을 수 있었고 집은 지금보다 30-40% 쌋다. 그런데도 그때 집을 안 산 사람들이 이제와서 집값이 너무 올랐다고 투덜대는 걸 보면 답은 명확하다. 두번째 기회를 주어도 그들은 집을 사고 충실히 이자를 갚는 삶을 사는 대신, 맛있는 것을 먹고 여행을 다니고 차를 사고 멋진 옷을 입는데 돈을 소비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집을 사지 않을 것이다.

아무나 강남에 집을 살 수 있는건 아니지만 누구나 자기가 살 수 있는 집이 있다. 월세를 내고 집에 살 것인지(reside), 아니면 비슷한 금액의 은행이자를 내고 집을 살 것인지(purchase)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었다. 다주택자들은 전자를 가능하게 만들고 최경환은 후자가 가능한 조건을 마련해줬다. 이번 정부와 부동산 악플러들은 저 둘을 싸잡아 욕하며 종교적 구호처럼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그 헛된 믿음이 결실을 맺을 수록 자신들이 집에 사는 것도, 집을 사는 것도 어려워지는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 결국 모든 규제의 희생과 부담은 사회의 가장 아래쪽 약자들이 지는 법이니까.

2017. 8. 3.

8.2대책 평가: 내집마련의 꿈이여 안녕


*   이제 보통 중산층 맞벌이 부부가 목돈을 상속받지 않고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출의 문턱이 높아져 주택 가격의 40%밖에 대출을 안해주는데 누가 어떻게 집을 사겠는가? 애초에 집값의 60%나 되는 돈을 들고 있던 사람이라면 3년전에 대출을 거의 받지 않고 살수 있었을텐데, 이제와서 빚을 내고 사겠는가? 그동안 집을 당장 사라고 주장했는데,(링크) 이젠 이런 조언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못 살테니까. 현재 전세를 사는 사람은 계속해서 전세에 주저앉을 것이고 집을 이미 삿던 사람은 갭투자를 활용해 계속해서 주택 수를 늘려갈 것이다. 그리고 물론 빈부격차도 확대될 것이다.

*   정부가 세금 폭탄을 통해 다주택자들의 매도를 유도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다주택자들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뒤 실제 거주하는 집 1채 외에 나머지 집들을 임대주택으로 신고하면 그만이다. 이 경우 몇몇 요건만 충족시키면 되려 집을 1채 갖고 있는 사람보다 세금을 더 절약할 수 있다. 그들은 몇년동안 소비하는 대신 이자를 내고 마음편히 발뻗고 잘 시간에 발품을 팔아 집을 매입하고 놀고먹을 시간에 공부하고 분석하고 연구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런 제도를 몰라서 집을 투매할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   원래 집을 팔 계획이 있던 사람들은 내년 3월 31일 전에 집을 팔 것이고 이 물량이 단기적 안정을 가져올 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이 8.2대책은 집값을 더 끌어올릴 것이다. 세부 사항을 뜯어보면 재건축을 더 어렵게 하거나, 재건축 조합의 실질 부담을 늘린다. 결국 이 조치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부자가 아닌 무주택자들과 재건축을 추진하던 단지들인데, 이 둘이 바로 재건축 사업의 수요와 공급의 주체들 아닌가. 매수자와 매도자 양측에게 어퍼컷을 날렸으니 재건축 사업은 곳곳에서 지연되거나 좌초할 것이고 서울의 주택 공급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   김현미 장관을 비롯, 계획 입안자들은 서울시의 주택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통계를 기만하고 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링크) 서울시의 집 수는 총 360만 호인데 주택은 대략 375만호로 주택보급률은 96% 밖에 안된다. 이 중 실제로 완전히 노후화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나 퇴거가 이루어진 집 들을 감안하면 실제 주택보급률은 더욱 내려간다. 여기에 주택의 감가상각을 40년으로 잡으면 매년 2.5%의 집들이 살기 싫은 낡은 집으로 전락한다.  즉 매년 9만호의 집을 추가로 지어야 적어도 공급부족이 악화되지 않는다는 뜻인데, 지난 10년동안 주택건설이 9만호를 넘었던 해는 단 두 해 뿐이었다. 서울의 주택공급은 악화되고 있다.

*   세입자들에게 더 암울한 얘기를 하자면 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쁘다.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은 지난 4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사실상 80년의 한국과, 90년 그리고 2010년의 한국은 아주 다른 나라이다. 다시말해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들 수준으로 먹고 입고 즐기면서도, 저녁만 되면 지은지 15년된 하노이의 아파트나 30년 된 짐바브웨의 콘크리트 더미로 돌아가 자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구연한이 아직 한참 남은 아파트의 주민들도 재건축을 원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감가상각은 더욱 크다.

*   이게 다 최경환 때문이다? 그가 시행한 정책은 1)대출의 문턱을 낮춰주고 2)재건축을 용이하게 해줘 과열지역의 공급을 늘린뒤, 정부는 실수요자에게 대출받아 집을 살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그 때가 가계가 집을 사기에 가장 쉬운 시기였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최경환이 그당시 시행했던 정책을 지금 되돌리자 집을 사려던 실수요자들이 아예 못사게 되지 않았는가. 애초에 다주택자들은 직접 거주할 필요가 없어 갭투자를 하면 됐고, 부자들은 굳이 은행에 갈 필요가 없으니 이 정책의 수혜자들이 아니다. 최경환이 서민과 중산층들에게 집을 살 문을 열어줬는데, 그 문을 통과하는 대신 먹고 입고 노는데 돈을 써버린 사람들과 집값이 더 폭락하는데 베팅한 실수요 무주택자 투기꾼들이 이제 와서 초이노믹스를 탓한다. 그들이 인터넷 댓글에서 서로의 주장을 정당화하며 기분 좋게 정신승리를 할 지 몰라도 내집마련의 꿈을 스스로 걷어찬 것은 부지의 사실이다.

*   일부 사람들은 어쨋거나 최경환이 가계부채를 늘리고 집값을 올려놓지 않았냐고 묻는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택가격 뿐 아니라 우리나라 수출, 국민소득, 삼성전자 주가, 그리고 한국 미술품 경매가 모두가 다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게 다 최경환 한사람의 공이라면 그는 되려 구국의 영웅이 아닌가. 이는 경제의 견고한 회복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등이지 인위적 집값 띄우기도 아니고 버블은 더더욱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30년째 집값은 버블이라고 목놓아 울어대는 이들의 대류에 합류하든가.

*   주택가격 상승의 책임은 시민들 자신에게 있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더 사는 것은 마치 비트코인을 트레이딩하듯 100에 사서 150에 팔려는 것이 아니라, 집을 가지고 있으면 월세가 꼬박꼬박 들어오고 이게 은행이자보다 낫기 때문이다.(전세도 다른 루트지만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집값 상승의 원인은 그만한 월세를 내는 세입자들 때문이고, 이는 그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이뤄진 것이지 누군가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더 작은 집에서 살던가 아니면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옵션이 있었는데 굳이 투기지역에 비싼 월세를 내고 사는 길을 택했다. 예를 들어 압구정에서 사는 대신 대중교통으로 1시간 떨어진 수락산 근처의 아파트에서 살면 1/6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데, 압구정에 사는 사람은 더 비싼 월세를 내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이를 "시장에 의한 가격 결정"이라고 부른다.

*   그래서 앞으로 집값은 어떻게 될 것인가? 반년도 안돼 오를 것이다. 이 대책은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했을 뿐 이에 대한 공급계획은 전혀 없다. 사람들이 용산, 성동, 강남에 살고 싶어하는데 2시간도 더 떨어진 지방에 짓겠다는 대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국가의 정책은 국민의 수요를 만족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그를 제멋대로 틀겠다는 것은 매우 구시대적 발상이고 바로 그들이 비난하는 적폐세력과 군사정권의 방식이다. 수요를 끌어내리려면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어야하니 불가능하고, 공급은 하기 싫으니 집값은 오를 수 밖에 없고 사람들의 욕망을 거스른 정부의 정책은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마치 군사정권들이 아무리 억압하고 때려도 결국에는 무너졌던 것 처럼.

2017. 7. 26.

현 20대는 "가장" 힘든가? -헬조선의 헬철부지들

굳이 자세한 뜻을 풀이해주지 않아도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헬조선. 그리고 그 단어를 만들어 낸 20대들은 자신들이 모든 대한민국 국민 중 가장 고통스러운 세대라고 주장한다. 그들 주장의 허구와 내재된 유아성, 그리고 그 위험성을 분석해 보자.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단군이래 최고스펙을 갖췄는데도 취직이 어렵다.
2. 그러니 자산을 축적하기가 어렵다.
3. 따라서 연애 결혼, 그리고 출산과 육아가 힘들다.
4. 이 모든게 사회구조 탓이며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5. 따라서 이런 구조를 개혁하는 것은 정당하다.

자 ,1번부터 시작해보자. 그들이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춘건 사실이다. 하지만 역대 어느 세대가 취업 당시에는 선배/부모에 비해 최고스펙을 갖추지 않았던가. 1인당 GDP가 장기적으로 늘 최고값을 경신하는 것 처럼 구성원들의 능력이 경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그들이 고 스펙을 가지게 된 것은 본인의 노력 뿐 아니라 부모 세대가 자식의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다. 그 투자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5060대, 그 꼰대세대가 자신을 위한 소비를 아낀 데서 나온 것이다. 이 투자는 교육 뿐 아니라 의식주와 같은 생활 수준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20년 전만 해도 잘난 서구문물의 상징이었던 맥도날드 햄버거는 이제 싸구려 패스트푸드로 전락했고, 먹고 입는 것 만을 보면 이제 서울의 1020대들과 뉴욕 런던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이렇게 현 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호화스러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숙련 노동집약적 직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해당 분야 산업들은 노인 빈곤층, 혹은 동남아시아 등의 EM에서 온 노동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부모 세대가 배곪고 노예같이 일했다고 나까지 그래야 하느나!"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지금은 윤리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을 보는 것이다. 핵심은 기업이 20대가 원하는 연봉을 줄 만큼 그들의 생산성이 높지 않기에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이다. 정리하자면, 대한민국 산업은 저숙련 노동자와 고임금 대졸자들을 둘다 필요로 하는데 현재 20대들은 대부분 교육에 거액을 투자하고 높은 생활 수준을 누려온 결과 저숙련 노동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노동집약적 산업의 구인난과 대졸자들의 구직난이 동시에 발생했다. 노동시장이 폐쇄된 완전 경쟁시장이라면 노동집악적 산업의 임금이 오르거나 대졸자들이 굶어죽기전 요구임금을 낮춰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고 20대는 취업대신 고임금 고숙련 노동자인 부모세대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

2. 따라서 이들은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역대 20대가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게다가 자산을 축적하기 힘든건 그들의 높은 소비성향 때문이지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다. 일례로 해외여행객 수를 보면 1990년에 연 150만명에 불과했던 내국인 출국자 수는 2016년 현재 2,238만명으로 15배나 증가했다. 어떤 이는 이러한 통계를 일부 상류층의 이야기로 평가절하하려고 하겠지만 1년 출국자 수가 인구의 40%가 넘는다는 것은 일부의 이야기일 수 없다. 국민 전체의 생활수준과 소비성향이 올라간 것이다. 게다가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보자. 90년대 이전만 해도 은행권에서 대출을 잘 받기 위해서는 개인적 친분이 필요할 정도로 금융서비스는 소수에게만 허용된 것이었지만 이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대신 해외여행을 가고 선진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의 식문화를 즐기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자산 축적을 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지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3. 연애가 힘들다는건 개소리고 결혼이 힘든건 성비 불균형 때문이며 출산육아가 힘든건 소비성향이 높아서이다. 현 20대는 역대 가장 연애를 많이 하는 세대다. 첫경험 연령이 낮아지는 것이나 결혼전 성관계 파트너 횟수만 봐도 이전 세대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가. 결혼이 힘든건 8090년대에 광범위하게 벌어진 여아낙태로 성비 불균형이 극심하게 벌어진 탓이다. 출산과 육아는 과거가 더 힘들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젠 아이를 낳고 나면 조리원에도 가야하고 산모는 살도 빼느라 고생해야하고 애를 영어유치원에도 보내면서도 자신이 과거에 누리던 문화적 생활 수준을 영위하느라 힘든 것이다.

4.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사회, 혹은 윗 세대 때문이라고 불평하지만 이는 모두 본인이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만약 본인들에게 저런 선택을 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 사회라는 변명을 한다면 그들은 먼저 자신의 자유 의지를 부정해야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게 바로 저들이 주장하는 바이다. 우리가 미성년자에게 법적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미성숙한 판단 능력을 가진 이에게 성인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무가 없다면 권리도 없다. 현 20대들은 이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본인들이 내린 결정의 책임을 사회, 혹은 부모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저들을 미성숙하다고 부르는 핵심 이유다.

5. 따라서 그들이 주장하는 개혁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들의 목적은 공정하면서도 효율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전가할 희생자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득세는 한푼도 내지 않으면서 재정의 배분을 요구하고, 본인에게 투자하는 대학등록금이 비싸단 이유로 정부에게 보조금을 요구하면서 대학생 유흥비, 핸드폰 요금 지출, 배낭여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익자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사회 구조는 효율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잘못되어 있다.

20대들에게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 많다. 그들은 이미 사회 권력구조에 적응한 3040대와는 달리 성차별 노동시장의 왜곡 일상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아직 본인이 성인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지 못하다. 박근혜 탄핵에 앞서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개진했으면서도 투표율은 여전히 최저를 찍었고, 현 세대의 어려움을 알아달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지금 "우리땐 더 힘들었어"와 같은 꼰대류 잔소리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너보다 힘든 사람 많으니 불평하지 마라"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너희들처럼 남들도 다 힘드니까 네 밥값은 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말이 하고 싶었다. 즉 성숙한 민주사회의 구성원 노릇을 하라는 얘기다. 아니면 닥치고 참정권을 내놓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