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6.

선거의 종말, 혹은 선관위의 종말

선거관리위원회가 강한 독립성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60년 3월 15일, 행정부는 대통령과 부대통령을 각각 뽑는 선거에서 매우 계획적으로 여당에 유리하도록 선거를 조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전국단위로 선거를 조작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고, 일부 지역에서 유권자들의 수를 훌쩍 넘기는 득표가 나오는 등 너무나 명백한 부정선거의 증거들과 증언이 터져 나오자 시민들은 폭발했다. 이 사건은 4.19혁명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몇 번의 부침을 겪었지만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정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수차례의 헌법개정을 통해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의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아 형식적으로도 독립성을 보장하는 형태에 이르렀다.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조직은 부패한다. 그리고 선관위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선관위는 절차적 파행을 야기했고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이후 감사원이 감찰에 나서자 선관위는 자신의 헌법적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거부했지만, 이는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 내부의 병폐와 태만을 감추기 위한 저항에 불과했던 것이 드러났다. 수많은 채용비리와 근무태만 그리고 절차적 결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는 방패 뒤에 숨어 아무런 개혁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투표용지 미교부라는 초유의 사고를 쳤다. 이로 인해 손상된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뢰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선관위의 독립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정한 선거를 위한 수단이다. 그 궁극적 목표를 위해 일개 공무원들에 불과한 당신들에게 그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천부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선관위신수설을 밀다 오늘날에 이르렀다. 1960년 3월 15일, 한국의 시민들은 선거의 종말을 보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의 선관위를 만들었다. 현재의 선관위가 민주주의에 방해가 된다면 이 조직은 이제 그만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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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과거 몇 번이나 절차적 위반을 저질렀을 때 일부 유권자들은 그에 항의하며 부실인지 부정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재검표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정치인들은 그 유권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그들을 바보 취급 하며 목소리를 잠재우려 했다. 그런 행동은 매우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보든 천재든 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결격사유가 없다면 투표장에 나가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마땅한 권리이듯 그들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재검표를 요구하는 것도 정당한 요구이다. 그 권리는 선거 결과나 정치공학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 원칙은 조국혁신당원들이니 애국보수당원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는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1960년 같이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오랜 기간 동안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은 나태하고 부패한 조직이 얼빠진 실수를 거듭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검표를 요구한 다른 이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막을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자기의 커리어를 걸겠다며 다른 이들의 권리요구를 막으려고 했던 이들의 행태(링크)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이제는 공감할 수 있겠는가. 물론 당사자들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그런 거라며 홍상수를 추억하듯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말을 읊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당신의 추정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해서 타인의 권리를 억압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만약 누군가가 그들에게, 합리적으로 당신네들은 당선될 리가 없으니 자원을 아끼기 위해 너희들은 선거에 못 나가게 막는 게 맞다고 하면 그들은 무어라 대꾸할 것인가.

폰을 붙잡고 카톡을 보내는 남자친구를 의심하며 뭔지 보여달라는 여자친구의 요구에 "너의 의혹은 논리적이지 않으니 묵살한다"라고 대답하는 모쏠찐따는 더 큰 의혹과 싸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친에겐 남친의 폰을 볼 권리가 없지만 선거인들에겐 개표 결과를 검증할 권리가 있는데. 지난 수 년간 정치를 좀먹어 온 부정선거론의 덩치를 키운 책임은 타인의 정당한 권리를 묵살하려 든 오만한 그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씨발 폰 까서 안 나오면 넌 뭘 걸래"라며 여기저기 쌈박질만 하지 말고.

2026. 5. 12.

공위공직자 초과재산 환수제를 제안합니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은 이제껏 나라가 준 녹봉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 역시 대부분 자신들이 가장 죄악시하던 갭투자로 불린것 아닌가. 뭐 원가만 따지면 남은 공무원 연금으로도 그들이 남은 생애동안 생존에 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고위공직자들이 이제까지 먹고사는데 쓰고 남은 초과재산과 초과소득은 그냥 국민에게 환수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 좋은 제도를 청와대 정책실장부터 우선 적용해 보도록 할까. 마침 그가 평소에 페북에 올리는 글들을 보아하니 그의 철학과 잘 맞아 보인다. 자 어서 그의 초과재산부터 환수하자.

이재명은 참 좋겠다, 비데 돈 주고 안 사도 돼서.

2026. 5. 10.

AI 버블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금융사에서 가장 어려운 것으로 손 꼽히는 일은 바로 버블을 예측하는 것이다. 자산시장의 거품은 결코 예상할 수 없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누구도 맞출 수 없다. 그 시작과 끝은 오로지 빵 하고 터진 뒤에나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전투가 끝난 뒤 그 전사자들의 피떡이 진 시체와 부서진 잔해를 치워가면서. 하지만 모든 것을 재단하려 드는 오만한 금융시장은 끊임없이 버블을 예측하려 든다. 이게 버블이다, 아니다, 다만 아직 아닐 뿐이다. 등등. 그러니 나도 그 오만의 탑에 돌 하나를 더 보태보련다. 

신기술의 탄생은 어김없이 버블을 가져왔다. 인류는 생산성의 개선 측면에서 근대 이후 약 다섯 번의 커다란 혁신을 겪었다. 산업혁명, 전기생산, 대량생산, 자동화, 그리고 가장 최근의 IT혁명까지. 그리고 각 단계는 어김없이 주식시장의 커다란 버블을 불러일으켰다. 각 혁신이 실제로 생산성의 개선을 가져오는 데에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던 반면, 각 테마의 자산/주식 가격은 단기간에 빠르게 오르곤 했다. 기대가 현실을 과도하게 앞서 달리다 과열된 시장이 발 디딜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김없이 폭락이 찾아왔다. 신기술이 촉발한 버블은 그렇게 생겨났다 꺼지곤 했다. 그러니 AI혁명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신기술의 도입과 버블의 붕괴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시점이 어디에 있는지 예단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현재의 AI혁명이 기존의 혁신과 구별되는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공격적인 투자가 탐욕뿐 아니라 두려움에도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AI섹터를 이끄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의 승자들이 전체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온라인 생태계 전체를 불과 서너 개의 인터넷 업체들이 독식한 것처럼 AI 모델과 그 시장도 불과 두어 개, 어쩌면 단 하나의 플레이어가 독점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국가 간의 경쟁에서도 이 구도가 반복된다. 미중 패권경쟁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AI가 있으며 두 나라가 서로에게 번갈아가며 가하는 수출 통제 역시 AI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두려움은 G2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세계무대의 중심에 있다 밀려난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역패권을 꿈꾸기 어려운 대한민국조차 소버린 AI를 외치며 인공지능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즉 과거의 버블이 탐욕이라는 모티브로 이루어졌다면, 현재 AI혁명은 탐욕 뿐 아니라 공포에 의해서도 견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근원적 차이는 AI로 인한 버블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을 암시한다. 

일반적인 버블은 시장의 수요가 가격을 쫓아오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투자를 점차 줄이며 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튤립 하나가 10만 굴덴의 효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그 구근의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IT버블 역시 기술기업들의 매출이 주가의 상승속도만큼 증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꺼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AI로 인한 버블 역시 같은 경로를 따를 것이라 예측하기 쉽다. 하지만 탐욕과 두려움이 뒤섞이면 좀 더 복잡한 미래가 펼쳐진다. AI에 투입되는 자원이 그 결과물의 시장가치를 현저하게 상회하게 되면 투자가 줄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뒤쳐지면 자신이 공룡처럼 멸종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다, 국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니 좀처럼 투자가 줄어들 지 않는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capex지출을 줄일 계획이 전혀 없고, 중국은 미국의 제제로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확연하게 뒤처졌는데도 여전히 천문학적인 비용을 써가며 비효율적으로 별도의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독자적 AI모델을 만드는 것이 별 경쟁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모델을 개발하는데 나라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참고로 AI투자에 대한 예산 지출은 여타 복지예산보다 우선순위가 높았던 몇 안 되는 항목 중 하나이다. 모두가 수익을 더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생존을 위해 투자를 하고 있으니까.

따라서 우리 앞에 다가올, 어떤 이들이 이미 다가왔다고 말하는 이 AI버블의 끝은 과거의 버블보다도 더 지독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버블이 잦아들 시점에 거대 자본을 가진 국가와 기업들이 가진 실존적 두려움에 떠밀려 계속해서 과도한 투자를 이끌 수 있다는 면에서 더욱 지저분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것도 각 정부들이 가진 재정의 여력이 점점 한계에 가까워져가는 좋지 않은 시점에. 과거의 버블의 고점과 저점은 해당 기술이 가져올 생산성의 개선의 폭과 얼추 비례했다. 그리고 산이 높으면 봉우리도 깊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앞에 AI가 만들어낼 버블은 본래 감당했어야 할 수준보다도 훨씬 더 높이 치솟고 더 깊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본문을 AI에게 던저주고 그린 이미지

나는 투자를 해라 말아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나는 그 버블을 발라먹을 자신이 있어" 라며 자신있게 투자에 뛰어들거나, 어쩌면 과감하게 숏을 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투자자들은 늘 오만하니까. 하지만 당신들보다 더 돈이 많고, 더 경험이 많고, 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더 성공하고, 더 지혜롭고, 더 뛰어나고, 더 명석하고, 모든 면에서 나와 당신보다 훨씬 뛰어났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시도를 하다 그 버블에 집어삼켜져 파산하고 빈털털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이 어떤 뷰를 가지고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 날이 오면 분명 우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가격이 점멸하는 MTS와 뉴스창에 새로고침을 연타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버블을 맞이할 내 목표는 그 광기와 패닉의 순간에도 올곧게 살아남는 것이다. 

2026. 5. 5.

정책실장과 엑셀방송의 사회적 효용의 비교

 


얼마나 출세하고 싶으면 저렇게 권력의 뒤를 헷헷대며 핥아댈 수 있는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다. 참, 코인 때려잡다 코인 회사 간 전적이 이미 있구나. 순수하게 궁금증이 든다. 알량한 자리 하나 받아먹으려고 지성과 양심을 파는 일과 별풍선 몇 개에 수술한 가슴을 흔들어대며 섹시 댄스를 추는 엑셀방송 중에서 어떤게 더 사회에 해를 끼치는 쪽일까? 어느 쪽이 더 천박한 것일까. 

2025. 12. 8.

창용상회 사장의 철없는 푸념

한 전통시장이 있다. 이름하여 대한시장. 한때는 크게 번창하기도 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이제는 시설도 낡았고 가게들도 트렌드에 뒤떨어져서 점차 활력을 잃어가는, 뭐 그저 그런 여느 전통시장 중 하나인 곳이다. 이 전통시장에 새로운 가게를 내려면 먼저 상인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컨셉의 가게가 시장 분위기에 어울리는지, 요 상품들이 여 대한시장에서 팔리는게 적절한지 일일이 검사를 받고 허가를 받아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아따 그거시 우리 대한상회의 전통이랑께? 죠오기 도심에서 잘 나간다는 유명 프랜차이점도, TV에도 나왔던 유명 쉐프들이나 인플루언서들도 한 번씩은 대한시장의 명성을 듣고 가게를 내려고 했지만 상인회의 까다로운 허가를 받지 못해 계획을 접어야 했다. 거 뭐라카노, 로마 오면 로마법 따르라 카더라.

게다가 대한시장에는 아름다운 전통도 내려온다. 잘 팔리는 가게들이 파리 날리는 가게들의 관리비와 월세를 모두 대신 내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낮에 반짝 열고 잠깐 앉아있다 집에 가는 베짱이 가게들이 늘어하긴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혼자 잘 되는 게 어딨어유, 다 같이 먹고 사는 게 중요하쥬. 그들의 월세까지 버느라 잘 되는 가게의 사장들은 더더욱 열심히 일하느라 골병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저찌 대한시장은 안 망하고 잘 돌아가고 있다. 아니,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이 모든게 상인회가 상가들을 잘 지도편달하고 관리한 덕 아니겠는가. 그 보답으로 각 상인회들은 회비를 걷어다가 상인회에 갖다 바친다. 상인회의 임직원들을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하고, 여름휴가도 보내주고 경조사도 챙기고 장사 말고도 할 것이 참 많다. 아 이게 다 우리 시장 잘 되라고 애쓰는 분들 아니던가요잉.

그렇게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대한시장의 요새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쩐지 옛날보다 빈 가게도 많이 보이고 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매출도 줄었다. 경기가 어려워 그렇겠지, 해보지만 시내 백화점과 쇼핑몰은 불황이 없단 말도 들린다. 상인들끼리도 뭔가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저기 골목에 있던 이가네 있쥬? 여기 월세가 비싸다구 시내로 나가부렀다유." "아랫목에서 가게 크게 하던 김 씨는, 여기서는 장사해먹기 힘들다꼬 문 닫아부렀다 카더라." 이대로는 안된다. 상인회는 팔을 걷어부쳤다. 그래그래,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해서 신토불이 말구 요새 아들이 좋아하는 깔쌈한 카페도 허가하고! 주차장도 늘리고! 대청소도 하자카이! 다시금 대한상회의 부흥을 꿈꾸며 대대적 캠페인을 일으킨다. 자자 거 김씨. 내가 다 해결해줄라니께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루만 허랑게?” 하지만 나훈아 메들리로 가득 찬 CD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빛바랜 새마을운동 모자를 쓰고 갑질하는 상인회가 이 재래시장을 뒤바꿀 수 있을 리 없다. 상인회장은 계속 화만 낸다. "아니 시방 우리는 런던 베이글인가 뭔가 그 거시기를 못 해부는 거여??" 

상품이 거지 같으면 장사가 안 되고 음식이 맛이 없으면 손님이 끊기는 것처럼 경쟁력을 잃어가는 재래시장에도 한파가 찾아온다. 대한상회도 예외는 아니다. 듣자 하니 대한상회 상품권이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의 반값에 팔린다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하. 잘나가던 우리 시장이 어쩌다 이 꼬라지가 됐는지 상인회 간부 중 하나인 창용상회 사장님이 한 말씀하신댄다. 야야 있어봐라, 가가 그래도 서울대까지 나온 우리 동네 최고 천재라 안카나? 연단에 오른 창용상회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거시 그 뭐다냐 요새 아들이 쿨허다구 저기 읍내 쇼핑몰 가브러고 시내 백화점만 들락날락 허니께, 그러니께 우리 시장이 망한 거 아니여??" 상인회 간부들이 옳소를 연발하며 박수를 친다. 환호하는 사람들 앞에 기분이 한껏 들뜬 창용상회 사장의 핸드폰에는 그 집 아들들이 시내의 백화점에서 긁어 대는 신용카드의 결제 문자들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한국의 관치금융과 자본제도가 후져서가 아니라 외국시장이 쿨해보여서 환율이 오른다는 쿨병 창용상회 사장


2025. 12. 7.

진보는 갑자기 왜 토착왜구가 되었나

지난 며칠간 소년범 출신 배우를 옹호하는 진보 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그들의 논리가 일본 극우의 사고 구조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극우들은 과거 전범행위들이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모두 처벌받았으니, 해당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미 여러 차례의 사과와 보상으로 과거사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으니, 그 시대의 범법자들이 아닌 현대의 일본인들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과거사를 되묻는 이들을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피해자들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부로 격하되어 어느덧 삭제된다. 

신기한 것은 그런 관점을 그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비난하던 진보진영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일본 극우들의 관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에서 대상을 일제로 바꾸어 보자. "과거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나라가 국제연합의 주요 국가로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 아닌가.", "한번 전쟁범죄를 일으킨 나라는 영원히 전범국가로 살아야 하나", "이미 과거사 배상과 처벌은 다 끝났는데 이를 계속 언급하는 의도가 뭔가" 욱일기를 머리에 두르고 혐한 시위에 나선 일본의 극우들이 박수 치고 환호할 논리가 펼쳐진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진보가 이와 같은 극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룬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쟤, 우리 편이잖아. 초딩같은 진영논리에 따라 하루는 말이 사슴이 되고 다음 날은 사슴이 말이 되는 고무줄 논리를 펴면서도 도덕적 선민의식이 그윽한 그들의 태도란 참으로 보기 흉하다. 자신의 위선과 가식을 온갖 현학적 용어와 유려한 문체로 치장하는 것은 구차하고 추하게 보일 뿐이다. 보수 역시 진영논리에 따라 같은 편이면 계엄도 옹호하는 머저리들인데도 불구하고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유독 진보를 상징하게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하다못해 이제는 자신들이 극렬하게 비난하던 일본 극우들의 뇌구조까지 빌려와서 침튀기며 아군 지원사격에 나선 영포티들과 쉰세대들의 태도가 괴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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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예인들에게 정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대중사회의 정서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술계가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가슴이 차갑고 뇌가 뜨거우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많은 작가나 배우, 감독 화가들 중에서는 훨씬 더 큰 결함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폭행, 마약, 도박, 더 나아가 싸이코패스나 살인자, 사디스트, 아동 성착취, 인종차별주의자, 여성 혐오, 파시스트 등 개인적으로 상종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창작물이 모두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이 배우 또한 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그가 영영 은퇴하는 대신 이제 정의의 용사 코스프레를 그만두고 과거의 피해자들에게 뉘우친 뒤에 계속해서 활동하며 소년범들을 갱생하는데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길이라고 믿는다. 나는 진심으로 미래에 그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보다 더 사소한 잘못으로 커리어가 박살 난 수많은 연예인들도 함께.

하지만 자기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아주 티끝만 한 잘못에도 린치를 가하고 축출하고 선거날 특정 색이 들어간 옷만 입어도 우르르 달려가 멍석말이를 할 때는 같이 낄낄거리며 웃던 인간들이 이번엔 자기편이랍시고 갑자기 정색하며 차가운 이성을 되찾는 진보 인사들의 모습이 참 싫다. 그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만들었는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라. 예술계에는 박근혜의 블랙리스트만이 있던 것이 아니다. 진보 홍위병들의 린치는 그보다 더 폭력적이었고 현재진행형이다. 언제는 피해자 중심적 사고를 하라더니, 어라? 이번엔 우리 편이다 사격중지를 외치며 어느새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슬그머니 빼버리는 그 이중잣대가 싫다. 그런 주제에 틈만 나면 남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그들의 선민의식과 위선이 진심으로 싫을 뿐이다. 으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논리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보편타당하다 믿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너 혹시 토착왜구니?

2025. 12. 6.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V) - 인플레이션, 그리고 1965년 12월 5일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I) (링크)


반세기 전, FOMC를 앞두고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가 동료들을 설득해 금리 인상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며칠 뒤인 1965년 12월 5일, 대통령 린든 존슨으로부터 서늘한 초대장이 날아왔다. 존슨은 마틴을 자신의 텍사스 목장으로 불러 처음에는 환대와 미소로 맞이했지만, 목장 내 저택의 깊숙한 곳에 이르자 그의 태도는 돌변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존슨은 마틴을 벽에 몰아붙이며 격렬하게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는 “내 병사들이 베트남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은 내가 필요한 돈을 찍어주지 않는다”라고 얼굴 바로 앞에 대고 외쳤다. 마틴이 간간이 중앙은행의 책무를 상기시키려 했지만, 이는 오히려 존슨의 분노를 더 키웠다. 존슨은 욕설을 섞어가며 마틴을 인격적으로 몰아붙였고, 그의 격앙된 고함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키가 190cm가 넘는 대통령이 왜소한 연준 의장을 벽에 밀어붙이며 위협하던 장면은 당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얼마나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해 연준은 이미 결정한 대로 금리 인상을 발표했지만 다음 해부터 통화정책은 눈에 띄게 완화 기조로 돌아섰고 1967년 5월에는 50bp 인하와 함께 기준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 인플레이션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후임 의장이었던 아서 번즈가 진정한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들은 1970년대의 실패가 이미 마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마틴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영예로워야 할 은퇴 만찬에서 이 노쇠한 중앙은행가는 잠시 침묵을 머금은 뒤 “I've failed”이라는 문장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했으니. 

후임자 아서 번즈는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전미경제연구소를 거친 그는 자타공인 경제 전문가였으며, 과거 선거에서 닉슨의 패배가 지나치게 긴축적인 통화정책 때문이었다고 대통령에게 직언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금리 인하를 바랐던 닉슨이 연준 의장 자리에 앉힌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운전대를 잡은 이 신참 중앙은행장은 자신의 책상에 놓은 여러 경제지표를 보자 지금은 금리인하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행정부는 그가 소신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이 샌님 경제학자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철학을 이러쿵 저러쿵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재무장관과 백악관의 보좌관들은 아주 집요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아서 번즈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했고 결국 연준은 이에 굴해 금리를 크게 내렸다. 그 결과 과열된 경제는 더욱 달아올랐고,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것은 폭발적으로 불어난 통화량과 거센 인플레이션의 파고였다. 그 선택이 어떤 시대를 열어젖혔는지는 오늘의 역사적 평가가 분명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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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옆에 선 연준의장 파월, 그리고 린든 존슨과 악수하는 연준의장 마틴  


1970년대의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여러 전쟁 같은 인상적인 사건들에 가려 마치 피할 수 없었던 우발적 비극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은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정치적 압력에 오염된 통화정책이 폭발적인 통화 팽창을 불러왔고, 파괴적 인플레이션은 그 필연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현재를 돌아보자. 지금 백악관과 연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면은 기이한 데자뷔를 일으키고 있다. 존슨이 마틴을 직접 텍사스 목장으로 호출한 사건과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파월을 공격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위협적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당시와 지금 사이의 닮은 점이 대통령의 190cm 장신 하나가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례마다 차이는 있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을 받을 때 이후의 인플레이션이 뚜렷하게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50년 전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한 이유는 독립적 통화정책의 원칙을 몰랐거나 경제학적 식견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틴은 전후 19년에 걸쳐 연준의 독립성을 체계화한 최장수 의장이었고, 번즈는 연준 역사상 최초의 경제학 박사 출신 의장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처절한 실패를 겪었다는 사실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결정적 변수는 중앙은행의 모델이나 경제학 박사들보다 백악관과 의회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는 또한 어느 한쪽 진영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의 연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민주당 역시 지난 집권기에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유력 대선 후보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마치 당적이 달랐던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이 똑같이 연준을 몰아붙였던 것처럼. 따라서 어느 쪽이 집권하든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고 선거를 앞둔 갈등이 극단적으로 고조된 오늘날 연준이 오롯이 중립적 데이터만을 근거로 금리를 조절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잠시 언급하지 않았나. 정치로 오염된 통화정책 뒤에 인플레이션이 따라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1970년대의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이 탄생한 1965년 12월 5일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현재 우리가 마주한 장면들은 반세기 전의 모습들과 데자뷔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맞이할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결국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다. 아, 이미 헤겔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