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가 이주열 씨에게 빡치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비록 연준이 2008년 이후 최초로 기습적으로 금리인하를 감행했지만 나는 한국은행이 이를 무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침에 부총재보가 주관하던 긴급회의를 총재가 이어받았을 때도 절대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총재는 이미 두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사람이고 나라짬밥을 오래 먹은 꼰대들의 행동패턴은 대체로 변하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총재는 2월 14일에 열렸던 긴급기자회견에서 금리인하가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엇다. 바로 그 직후 확진자 수가 폭증하고 최초 한국인 사망자까지 나왔다. 따라서 온 시장은 2월 27일 금통위에서 한국은행이 기존의 스탠스를 뒤엎고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DNA와 RNA의 차이도 모르는 총재는 그 믿음을 배신하고 우한코로나의 영향은 3월 중반에 곧 잦아들 것이라고 큰소리를 땅땅 치며 금리인하를 거부했다. 그 바로 다음날 부터 세계 경제는 패닉에 빠져 미국 주가가 5일간 18%나 곤두박질쳤으며 전세계 경제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랬던 인간이 연준이 긴급인하를 했다고 갑자기 인하를 한다고? 천만에. 늙은 개에겐 새로운 기술을 가르칠 수 없는 법이다.
이 추태는 한국은행이 오후 3시에 발표하기로 한 긴급회의 결과를 오후 3시 46분, 즉 한국거래소의 선물시장이 닫히고 나서 1분 뒤에 발표하기로 하며 정점을 찍었다. 왜 이주열은 자신의 결정을 시장이 닫힌 직후로 연기했을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똥고집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알고 있었고 시장의 평가를 예감하고 있던 것이다. 다만 하룻밤이 지나면 파웰이 나 대신 뭔가 해주겠지, 하는 기대감에 일부러 장 끝난 직후로 발표를 미뤘을 뿐.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금융안정이다.*금융안정의 기본 원리는 시장이 과열상태라면 금리를 올려서 진정시키고, 시장이 패닉을 향해갈 때 금리를 내려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선제적 조치에 있다. 경제가 나빠진 뒤 내리고 좋아진 뒤 올릴 것이라면 중앙은행은 뭐하러 존재하는가? 통계청에서 GDP 발표하며 그냥 같이 하면 되지. 그리고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우한폐렴의 급격한 확산을 겪은 나라고 다른 모든 나라보다 먼저 시장불안을 겪은 나라다. 미국보다도 더 빨리 정보를 분석하고 여파를 관측했을텐데 총재는 경제학 박사학위도 없는 파웰이 행동에 나설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연히도 한국은행의 정례금리결정은 우한코로나가 대대적으로 발발한 직후였지만 총재는 아무것도 안했고 연준은 다음 미팅이 고작 2주 밖에 안 남았지만 손 놓고 스케줄을 기다리는 대신 기습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금융불안을 대하는 두 중앙은행장의 차이는 첫 사망자가 나온 날 짜파구리를 먹은 문재인과 긴급기자회견을 연 트럼프 만큼이나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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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망자가 나온 날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상반된 대응 |
그럼 왜 총재는 금리를 동결했을까? 아마도 그는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자신)의 고유 권한이고 금리인하는 자신이 결정해야지 행정부나 시장 혹은 외부변수에 떠밀려 인하를 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2월 14일의 긴급회의에서 동결을 주장했다. 은성수와 홍남기는 개념없는 총재의 자신감이 어떤 비극을 초래할 지 알고 있었지만 책임을 지기 싫어 내버려뒀고, 우쭐한 총재는 당당하게 이후 이어진 "긴급해서 긴급회의는 했지만 긴급하지 않으니 금리를 인하할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바보의 비극은 바보 짓이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는 2월 14일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2월 27일에 똑같은 실수를 몇배 더 큰 강도로 저질렀으며, 드디어 오늘 판돈을 몇배로 키워 연준의 결정에 반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는 재능없는 도박꾼들이 손모가지를 날리는 전형적 패턴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손모가지가 저 할배 손에 달렸다는 거지.
결국 오늘의 긴급회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상식적 예측과는 달리, 아마도 총재는 어떻게 해야 내 거듭된 실수들을 숨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면피를 할지, 그리고 언제 발표를 해야 가장 욕을 덜 먹을지 고민하느라 가장 중요한 하루를 소비했을 것이다. 오늘의 회의는 한국의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총재의 체면, 그 하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애초에 발표시간을 오후 3시로 잡은 것도 주식시장 폐장시간이 3시 반으로 연기된 것을 까먹고 잡은 것 아닌지 심히 의심된다.
청와대의 존재 이유는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권력으로 국민을 섬기기 위해서 존재한다. 한국은행의 존재 이유 역시 총재의 권한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데에 있다. 하지만 총재는 반대로 자신의 권위를 위해 통화정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보다. 금리를 올려야 할 때엔 올리지 못하고,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한 채 자신의 결정을 연준이 대신 해주길 바란다면 월급도 연준한테 줘야지. 이 블로그에서 여러번 주장했던 바지만 저런 총재가 존재하는 한 한국은행은 당장 폐지해도 될 조직이다. 아니, 폐지해야만 한다. 어차피 통화량 조절은 재경부에서 단기국고채 발행하면 되는 것이고 경제보고서와 전망은 KDI에게 위임하면 되고 통화증발은 어차피 조폐국이 하는 일이다. 금리결정도 연준에게 맡기고 쳐놀다 재경부에게 팔 비틀려 할 것이라면 애초에 한국은행을 없애고 업무를 분산하는게 낫지 않나. 대충 계산해보니 한국은행 제도를 폐지할 경우 무려 약 1억 장의 마스크를 국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수 있는데!
제목을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고 썼지만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쪼다가 하고 있다. 지금 그래서 한국은행 총재가 쪼다냐는 애기냐고? 그렇다. 국가정책과 미래, 그리고 통화정책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자신의 자존심을 앞세워 직무를 유기한 사람을 달리 뭐라고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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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는 총재의 가오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믿는 분 |
*아니라고? 물가안정이라고? 그럼 어째서 물가는 11년째 한국은행의 목표수준을 하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