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4.

착각에 빠진 운동권 피터팬들

최근 발표된 문재인 지지층의 분포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이로 분류할 때, 문 대통령을 가장 강하게 지지하는 세대는 바로 40대고 반대로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세대는 60대, 그리고 놀랍게도 20대가 그 뒤를 잇는다는 것. 보수를 외치며 홍준표의 발언에 열을 올리는 6070대를 보며 486운동권들은 “쉰내 나는 틀딱들”이라며 조롱했지만, 그들보다 두 배는 더 젊은 20대의 지지율은 오히려 60대에 가깝다. 스스로를 세련된 오빠라고 착각하는 40대 운동권들이여, 착각에서 깨어나라.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늙어가면서 성격도 성향도 가치관도 달라진다. 그건 1900년에 태어난 사람에게도, 2000년에 태어난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유독486 운동권들은 자신은 그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보수 계층을 보며 늙었다고 조롱하는 그들은, 자신들도 더 이상 젊은 계층이 아니라 꼰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믿겨지지 않는다면 을지로에 서서 지나가는 신입사원에게 사내에서 회식과 야근을 강요하는 꼰대 상사가 몇 학번인지 물어보라.)
 
그리고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운동권의 좌충우돌 정치적 실험은 바로 이 착각에 기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2030대 유권자들과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둘이 공유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 뿐이다. 그 분노가 해소되고 나자 두 세대는 찢어지기 시작했다. 미투를 외친 20대 여성들이 지목한 가해자들은 대부분 운동권 세대, 혹은 그 지지자들이었고, 그녀들을 달래기 위해 4050대 정치 지도자들은 2030대 남성의 몫을 뺏어다 여성들에게 선물했다. 88년도에는 북한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진취적이고 열린 사상으로 비춰졌지만 현재의 젊은 세대는 김정은의 집권 이후 벌인 군사 도발에 형제 친구들을 잃은 세대라 북한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486세대는 자신의 머리 위에 빨간색 선을 그어놓은 뒤 이보다 나이가 많은 세대를 비정상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젊은 우리들"이 정상이라며 젊은이들 사이에 은근슬쩍 뭉개들어가려고 했지만, 그 모습은 미혼남녀 신입사원들 주말 모임에 어거지로 낀 부장처럼 어색하고 불편하다. 20대의 문재인 지지율이 초반 80%대에서 50%대로 폭락한 것은 바로 젊은 세대가 486들이 밀어붙이는 이념과 철학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에 대한 착각은 곧 시대에 대한 착각으로 이어지기 마련. 21세기에 정권을 잡은 그들은 체코가 체코슬로바키아였던 시절의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다.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외세를 배격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 그러나 남북한은 이제 서로 동질감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으로 변했고, 수출액이 GDP의 70%에 달하는데 국수주의는 더 이상 우리에게 맞는 이념이 아니며 노동자들의 삶은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로 양분되었다. 박근혜가 21세기 한국을 1970년대의 철학으로 운영하는 우를 범했듯 운동권은 나라를 80년대의 철학으로 경영하고 있다. 그 결과가 좋을 리 있겠는가. 이 철이 덜 든 피터팬 운동권들의 괴상한 주택정책으로 집값은 폭등하고 급진적 노동시장 개입때문에 저소득층은 근로소득을 잃고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피해자는 진보성향이 가장 강한 2030대들이다. 이렇게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가장 진보적인 세대의 뒷통수를 냅다 후려치는 일은 다분히 슬랩스틱류의 희극이지만 그를 가장 가까이서 삶으로 직접 견뎌내야하는 젊은이들에겐 비극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시대를 착각한 이들은 잘못된 선악의 기준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반미/친미, 민족/반민족, 수시/정시, 정의/적폐, 네편/내편 등. 과거 민주화 vs 군사독재와 같은 이분법적 도식에 익숙한 486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선악의 이분법적 문제로 바라본다. 그러니 사실판단이 들어설 자리에 가치판단이 뱀처럼 또아리를 튼다. 친환경 에너지가 원자력 발전을 대체할 효율을 내는가? 와 같은 공학적 문제에 "원자력 에너지는 나쁘다"와 같은 도덕을 들이대곤 한다. 대중은 점점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물음에 "짝수는 나쁘니 답은 홀수다"와 같은 샴페인 좌파의 선문답에 지쳐간다. 게다가 이런 실패에 대한 반성조차 없지 않은가. 정책이 망해도, 돈과 청탁을 받다 걸려도, 성추문이 있어도 진정한 운동권은 반성하지 않는다. 쿨하게 이해하고 끝까지 연대할 뿐. 그 비위와 실패의 책임은 모두 지지자들의 몫이다. 이렇게 486들에게 뒷통수를 하도 맞아 조기탈모가 올 지경인 젊은세대가 주 지지층에서 이탈하고 있는데도, 운동권들은 눈을 감고 입을 모아 현실을 잊게해주는 주문을 외운다. 수리수리마수리 이모든게이명박근혜.
 
486들은 87년 항쟁을 주도하여 군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그 직후 자유 투표에서 국민들이 군사정권의 후신 노태우를 뽑았다는 좌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1987년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피터팬들은 대학생 시절의 낭만으로 돌아가 미완의 항쟁을 완성시키려 한다. 그것이 현재 486 운동권 정치의 본질이며 근본적으로 그들의 정치가 올드하고 과거지향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서 오늘을 산다. 조선시대 무덤이나 고려시대 무덤이나 시체이긴 마찬가지인데 이 486들은 자신들이 욕하는 박사모들과 무어가 그리 다른가.

그들이 젊었던 시절, 한 개그우먼은 "착각의 늪"이라는 노래를 냈다. 박색인 그녀가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빠져들어 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게 바로 개그포인트였는데, 나는 이 노래가 현재 운동권 세대의 시대착오적 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녀의 노래는 대중에게 웃음을 줬는데 과연 운동권의 착각은 20대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2018. 9. 26.

지금이라도 집을 사라.

나는 지난 5년간 한국 부동산을 매수하라고 강력 권고했다, 2015년(링크)에도 그리고 2017년(링크)에도. 하지만 공급이 부족한 마당에 모든 사람이 집을 매수할 수는 없는 법인지라 몇년 전에 받았던 질문을 아직도 똑같이 받는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하는가?" 내 대답은 아직도 똑같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사라"

이것이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다. 서울 주요지역의 집값은 저점이던 2014년 대비 거의 2배 이상 올랐는데 그때보다 대출은 더 어렵고, 세금은 늘어났으며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수억이나 되는 돈을 들이는 데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트레이딩은, 그리고 투자는 그런 당연한 감정들을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유명한 펀드 매니저나 트레이더가 "마음 내키는대로 사고 팔았더니 어느새 부자가 되어 있더라"라고 하는 것을 보았는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그냥 오랑우탄이나 침팬치같은 동물처럼 투자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분명 돈은 인간의 감정을 싫어한다.

따라서 다시 한번 경제 지표와 시장을 냉정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현재 집값은 고평가되어 있는가, 그리고 서울 시내의 주택공급은 충분한가. 아래의 데이터와 수치는 yes라고 대답하기 쉬운 그 통념을 산산히 부순다. 서울의 집값은 버블은 커녕 아직도 저평가 되어있고 공급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주택 가격 평가


위의 차트는 서울시 내의 평균 주택가격을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1인당 가처분 소득이 거의 50% 증가하는 동안 주택 가격은 고작 12%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 지표를 보면 서울의 주택난이 극심하던 1980년대나 주택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던 2000년대 중반에 비하면 서울의 주택가격은 아직도 싸다. 게다가 평균소득이 오르면 고소득자의 수는 더욱 빠르게 늘어난다. 2007년 연봉 1억이 넘는 근로소득자는 10.1만 명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무려 65.3만 명이 되었다. 고액연봉자가 살고 싶어하는 강남이나 마포, 용산, 성동구의 신축 아파트 가격이 2배 이상 뛰며 타 지역을 압도하는 데엔 이와 같은 배경이 있다. 사람들의 소득이 줄지 않는 이상 집값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다.



집값의 valuation을 비교할 또 다른 지표를 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특정 재화의 실질 가격을 평가할 때 통화량과 명목 가격을 종종 비교한다. 이는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효과를 대략적으로 보정해주기 때문이다. 통화량 대비로 보아도 한국의 주택 시가총액은 전혀 고평가 구간에 들어가 있지 못하다.


2)주택 공급 평가

서울시의 주택 공급 수급을 평가할 때엔 아래의 표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수요
서울시 가구 수  : 385만 가구
+서울시 생활권 :   55만 가구
           합           : 440만 가구

*공급
서울시 주택 수  : 365만 채
그 중 아파트 수 : 165만 채
신축 아파트 수  :   65만 채

아주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서울 내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어한다. 서울시의 인구가 줄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서울을 떠난 것이 아니라, 부족한 주택 수로 인해 밀려난 것이다. 그렇게 서울시 밖에 살면서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156.3만 명, 약 55만 가구다. 이렇게 총 440만 가구가 저 65만 채의 신축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해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서울 부동산 시장의 현 상황이다.

구체적인 숫자를 따져 보면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암담하다. 흔히 사람들은 지은 지 15년이 넘으면 구축 아파트로, 40년이 넘으면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할 재건축 대상 아파트로 분류한다. 따라서 매년 9.1만 채(365만 채/40년) 집을 새로 지어 줘야 서울 내의 주택 수급사정이 악화되지 않는데, 지난 10년간 이 숫자를 맞춘 적은 단 두 해 뿐이었다. 나머지 8년 동안 수급 사정은 계속 악화되어 온 것이고, 그 결과 서울시에는 미분양 주택이 거의 사라졌다.

서울시 미분양 주택 수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재건축/재개발을 막은 국토부의 어리석은 정책 덕분에 더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멍청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이미 겪은 적 있지만, 정책 설계자들은 집값 안정이라는 대의적 목표가 아니라 개인적 욕망에 따라 고집을 부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링크)

*      *      *

이렇게 서울 내 주택 수요는 풍부한데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어떤 대책을 써도 주택가격을 잡을 수 없다. 종부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매기면 가장 가난한 주택 보유자가 조세부담을 못 견디고 전세입자로 전락하여 전세수요가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돈이 가장 많은 다주택자가 그 집을 사들여 전세를 돌리게 되니, 결국 주택 가격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소유구조만 악화될 뿐이다. 조선시대에 지대를 높이면 결국 지주가 아니라 소작농이 비싼 세금을 부담하게 되듯, 모든 사회적 비용은 가장 약자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니까.

또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을 죄는 통화정책은 부동산 외의 여러 시장에 영향을 주게 된다.  지나치게 많은 시중 유동성 때문에 부동산이 폭등했다고 하지만, 그럼 이 통화량이 왜 주식시장, 상품시장, 혹은 떡볶이시장 학원수업료 등으로 흐르지 않고 부동산 시장에만 모이겠는가. 유동성은 마치 물과 같아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주는 곳으로 모이기 마련이고, 어리석은 정부 정책 덕에 마침 그게 부동산 시장이 되었을 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유동성을 죄면 수익성이 가장 나쁜 시장에서 먼저 돈줄이 마른다. 부동산에서 돈을 퍼내도 어떻게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나간 만큼을 채울 테니까. 내 생각에는 만약 정부가 그런 정책을 쓰면, 자영업 대출시장이 그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들어 전세대출을 금지했다고 치자. 그럼 새 전세금을 맞추지 못한 세입자는 월세로 전환할 것이고, 이렇게 월세수익이 올라가면 집주인은 저축은행에서 예금을 빼서 전세를 월세로 돌릴 것이다. 자금이 빠져나간 저축은행은 안정적인 부동산 담보 대출보다 어떻게 돈을 날려먹을지 모르는 자영업자 대출과 신용대출을 먼저 줄인다. 그중에서도 저소득자의 대출을 가장 먼저 줄일 것이다. 결국 줄어든 통화량은 어느 경로를 통해서든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타격을 입히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정책의 가장 큰 비극이자 희극은 현 정부를 가장 지지하는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8. 7. 23.

노회찬, 그리고 한국 정당정치

자유한국당은 자유를 부정하고
민주당은 민주적이지 못하며
정의당은 정의롭지 못한 돈을 받았다.

정당정치는 명분도 목적도 의식도 없는 여의도 배 프로야구나 다름없는 듯.

2018. 3. 18.

새로운 신지식인들의 시대.

우리는 개그맨이 헌법 강의를 하고 미술 사학자가 수학논리를 가르치며 음식 평론가가 아이스하키 전술을 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경제학을 인터넷 댓글로 배우며 물리학을 인터스텔라로 깨우친다고 말한다.

이런 얄팍한 지식이 소비되는 사회에서 대중의 교양은 처참한 수준인데 비해 그들의 권력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깊게 생각하는 이는 적고 주먹을 휘두르는 이는 많으니, 1970년대의 중국 홍위병과 다를 바가 무어냐.

바야흐로 새로운 신 지식인의 사회다. 지식의 척도가 돈 버는 것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지식의 척도가 sns의 좋아요 갯수로 평가되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단언컨대, 무식은 죄가 아닌게 아니라 죄다.

2017. 12. 18.

대한민국 외교, 처참한 실패

*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3일부터 3박 4일간 중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다. 현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두 약점-외교와 안보에 대해 중국이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만큼 , 청와대는 아마 해를 넘기기 전에 성과를 내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중국은 한국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고, 마치 산타처럼 연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려던 문재인 대통령은 서류쪼가리와 사진 몇장만 들고 귀국해야 했다. 여러 논란을 빚은 이번 방중을 두고, 청와대는 120점짜리였다며 자평했지만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문재인의 지지율은 2.2%가 하락하며 다시 70%선 아래로 주저앉았는데, 이는 북한 도발이 멎은 이래 가장 큰 하락세이다.

* 외교는 의전에서 시작해서 의전으로 끝난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상복에 관한 의전을 두고 자신의 목숨과 가문의 미래를 걸고 싸운 것 처럼, 외교의 승패는 의전으로 나타난다. 바로 그 의전에서 우리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대통령의 방중 행사는 항상 국가주석과 총리와 각각 한 번씩, 그리고 지방 지도부와 한번씩 만찬을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경우에 따라 지방 지도부와의 만찬이 생략되는 경우는 있어도, 총리와의 만남이 빠지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 방중에서는 처음으로 빠졌다. 중국에게 가장 구구절절한 러브콜을 보낸 문재인 대통령은 한중 수교 25년만에 가장 낮은 대우를 받고 돌아왔다.

* 그렇게 홀대받았는데 협상의 결과가 좋을 리도 없다. 사드 압박에 관한 부분은 지난 10.31 한중 합의에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고 공동 선언문 채택도 불발되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중국의 대북억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없었다.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항하여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고난이도의 다자외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결국 문재인은 또 한번 중국이 발행한 공수표 몇 장만 들고 귀국했고 청와대는 방중 성과 브리핑에서 화려한 수식어와 형용사로 숫자들의 빈 자리를 메워야 했다.

* 애초에 이는 대등한 협상이 아니었다. 중국의 사드제제라는 카드는 애초에 없던 걸 만들어낸 것이고, 한국은 거기에 주권국가의 자위권을 걸었다. 이제 중국이 만약 관광을 넘 서비스업 전체, 혹은 제조업을 걸고 한국의 모든 순항미사일을 폐기하라던가, 아니면 F35 전투기의 도입을 막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중국은 새로운 카드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남한은 나라의 주권이란 카드를 내미는 소모적 게임을 시작해야한다. 그 불리한 테이블에 자진해서 앉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그것도 울고불고 애걸복걸해서.

* 청와대와 여당 지지자는 "중국이 삐쳤으니 달래러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정신착란에 가까운 현실 인식이다. "달랜다"는 표현은 강자가 약자를 대할 때 쓰는 말이다. 아니면 적어도 관계가 동등하든가. 중국은 강자고 우리나라는 약자다. 약자가 화가 난 강자의 집앞에 찾아가는건 "달래"는 것이 아니라 "빌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치면 인조도 땅바닥에 아홉번 머리를 찧은 뒤 "내 시끄러워서 오랑캐놈들 자존심 한번 살려줬다" 하고 허세를 떨 것이다. 애초에 자위권이라는 삥을 뜯기고도  상대의 집에 찾아가 홀대를 당하는 마당에 외교와 협상, 그리고 성과를 논하는 것이 웃기는 일이다.

* 수행 기자들이 구타당한 사건에 두고 여당 지지자들은 기레기라 맞았다, 맞을 짓을 했다며 이 사건의 외교적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물론 중국에서 기자들 폭행은 가끔 있는 일이며 일부 기자들의 잘못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어쨋거나 그들은 대통령을 수행하는 기자단이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평소 행실과 무관하게 중국인들이 개패듯이 팬 사람은 청와대의 봉황과 무궁화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어찌 외교적 의미가 없다고 믿는가.

* 왕족의 권력 다툼을 다루는 한 인기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왕이 자기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해야한다면 그는 왕이 아닌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스로 홀대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홀대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내실없는 회담에 별 관심도 없는 중국에게 매달려서 억지로 방중 스케줄을 잡은 외교 실무진의 잘못이다. 더욱이 노영민 주중대사의 이력을 보면 95년 환경운동으로 경력을 시작 한 뒤 단 한번도 외교에서, 그와 비슷한 분야에서도 경력을 쌓은 적이 없다. 이런 사람에게 맡길 정도로 어디 외교가 쉬운 일인가. 안보와 외교가 현 정부의 지지율을 갉아먹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얼른 다 잘라라.

2017. 12. 7.

네티즌보다 멍청한 경제기자들.

이전에도 여러번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경제지는 공짜로 뿌리는 광고찌라시 수준이고 경제기자들의 소양과 지식은 거의 쓰레기다. 경제기자를 하는데 필요한 스킬셋은 나이트 삐끼와 비슷한 것 같다. 둘다 창의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늘 같은 말을 반복하고(경제가 위기다/형님 웨이터 박찬호입니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원화강세로 국가경쟁력 악화/오늘 물 정말 좋아요!) 무식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데다가(가계부채 시한폭탄/제가 쌈박한 애들로 ㅋ 아시져?) 돈만 무지하게 밝힌다.(최고의 중소기업 ㅇㅇ, 알고보니 전면광고/아 형님 섭섭하게 왜이러실까)

이들이 어찌나 무식한지 이제는 네티즌들에게 댓글로도 까인다. 고금리와 고원화로 더블딥이 온다는 이 병신같다못해 참신하기까지 한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라. 무슨 네이버 지식인도 아니고 댓글이 글쓴이를 가르쳐주고 있다니. 정치부 기자는 민주주의에 이바지하는 바라도 있지, 경제기자들은 도대체 기여하는 바가 뭔가. 심지어 스포츠 기자도 나름대로 머리를 써 가며 분석을 하는데 경제 기자는 그마저도 안한다. 하루바삐 AI로 대체되고 이 잉여인력은 건설경기 회복을 위해 노동판에 투입되길 바란다.


2017. 12. 1.

6년 5개월만의 금리 인상

* 오늘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하며 역대 최저금리의 시대를 마감했다. 금리 인상은 2011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중앙은행이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싸워 온 디플레이션의 시대가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

* 그러면서도 금리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는 중앙은행의 언어는 매우 부드러웠다. 현재 총재의 임기는 3월에 끝나는데 그 전까지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을 시사했고, 신임 총재가 취임 첫 달에 금리를 움직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두 번째 인상은 아무리 빨라도 5월에나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런데 6월에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금리를 올리기엔 정치적 부담이 있으니 미뤄질 가능성도 크다. 6월에는 금통위가 없으니 어쩌면 다음 인상은 7월에나 가능할 지 모른다. 결국 기준금리는 앞으로 반년간 제자리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 나는 블로그에 단기 전망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회사에서 할 일인데다, 트레이딩과 다른 투자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굳이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선진국의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플레는 낮게 유지되어왔다. 그리고 이는 (기술의 발전과) EM국가, 특히 아시아의 과잉투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플레 압력을 흡수시켜주던 아시아 국가 중에서 금리를 올리는 나라가 나왔다는 것은(혹은 올릴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물가상승을 막던 범퍼가 얇아지고 있으며 내년의 인플레 압력은 어제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 다수의 외국계 은행 리서치는 내년에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데 비해, 인플레는 여전히 낮게 유지되어 미국채 2-10년 수익률이 리세션 수준인 0에 이르를 것으로 전망한다.(JP 등) 나는 이들의 뷰가 빗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처럼 경기가 과열이 아닌데(혹은 GDP갭이 크게 플러스가 아닌데) 커브가 역전된다는 것은 Fed가 지나치가 금리를 올리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난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가장 정확하게 경제를 전망한 조직이 바로 연준 아닌가. 지난 2011년 멍청이들이 디플레를 눈 앞에 두고 하이퍼인플레 타령을 할 때,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양적완화를 이어간 조직이 바로 연준이다. 당시 한국은행을 비롯한 주요 EM의 중앙은행 뿐 아니라 심지어 ECB도 금리 인상을 했는데 과연 누가 옳았는가? 또 몇년 뒤, 예전의 그 멍청이들이 이번엔 디플레로 지구종말이 올거라고 꽥꽥댈 때 과감하게 자산을 축소하고 금리를 올린 것도 연준이다. 과연 누가 옳았는가? 실수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10년간 연준은 항상 옳았다. 다른 중앙은행과 민간은행들을 모두 제치고. 이렇듯 가장 우수한 경제전망 모델을 가진 연준이 내년에는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고 주장한 다수의 셀사이드 리서치는 그 꽥꽥대던 멍청이 무리에 속해 있었다. 낙제생들이 모여서 전교1등이 이번엔 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 낙제생 무리들이 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비단 나 하나는 아닌듯 싶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