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김현미에게는 집을 살 능력과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다. 그녀의 수많은 대학 동창이나 사회 친구들이 그 혜택을 누렸듯이. 하지만 지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며 집을 마련할 동안 그녀는 집을 사지 않았다. 그녀가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던 것인지, 혹은 자신의 구매능력을 벗어난 지역에 거주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쨋거나 그녀는 집을 필요로 하는 실 수요자임에도 불구하고 구매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은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매년 더 올랐고 그녀는 11년간 6번이나 전세를 옮겨다니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고양시의 한 아파트를 대출을 끼고 샀다. 트레이딩 용어로 이를 숏 커버, 혹은 공매도 손절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이 착실하게 살 집을 마련한 동안 자신은 집값 하락에 베팅했다 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왜 (내가 산) 고양시의 아파트는 40평에 5억인데 강남에서는 같은 평수가 20억인가?라는 분노에 찬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은 마땅히 내가 아닌 시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졌고 정의감에 불타는 이 국토부 장관은 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계도하려 한다. 집을 사지 않고 버텼던 자신의 11년간의 고난과 결심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김수현은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주목받고 높이 올라갔던 시기에 시행했던 정책이 처참하게 실패했으니 지난 10년간 이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으리라.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과 신문이 그와 그의 정책을 비난했고 아마도 그는 사석에서도 공격받았을 것이다.("야 너는 집값 잡는다며?? 네 말 믿고 버티다가 망했잖아") 그는 본인 뿐 아니라 자신의 말을 믿었던 사람들을 모두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가 다시 화려하게 청와대에 복귀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 인고의 시간동안 왜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는지 면밀히 분석했는데, 그 원인은 정부계획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즉 내 책임이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때문에 실패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음식이 왜 상했냐는 물음에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대답을 얻었다는 그는, (나한테) 올바른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정신무장까지 갖추어 비장한 모습으로 규제 패키지를 쏟아냈다. 마치 손절한 투자자가 똑같은 투자 전략을 똑같은 상황에서 사이즈만 두배로 키워 과거의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듯이. 문제는 글로벌 유동성 상황만 보면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더 풍부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이 틀려도 이를 고치고 반성하는 일 보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데에 비용과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김현미와 김수현은 과거의 판단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10년전의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 뿐 아니라 지지자들과 국가의 미래까지 걸었다. 그리고 그들이 10년째 실패했듯 또 실패할 것이다.
이런 똥고집이 어디 저 둘만의 모습이겠는가. 인간은 다 똑같다. 자신이 가진 작은 전망이 틀리기 시작하면 사람은 전망을 소망으로 바꾸고, 또 그 소망이 계속 배반당하면 분노를 품은 정의로 업그레이드 된다. 김현미와 김수현처럼 과거에 주택시장을 잘못 판단한 이들이 과거의 실수를 반성하기는 대신, 옹기종기 모여 지루한 주장을 반복한다. 그들은 국토부 장관이 사나운 어조로 주택보유자들을 겁박하는 것을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겠지만, 누가 진짜 그들의 친구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최경환때는 모든 전세입자가 자기가 살던 집을 살 수가 있었다. 월세입자도 매달 월세를 내는 대신 그보다 더 작은 이자를 내면 집을 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와 시장을 잘 모르는 서민들을 위해 정부는 집을 사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목돈을 타고난 사람이나 초고소득자가 아니면 아예 살 수가 없다. 집을 사게 해준 최경환과 집을 못사게 만든 김현미/김수현, 과연 서민들의 친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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